“그냥 쇼핑 좀 하면 안 될까요?” 김서진은 그녀를 힐끗 본 뒤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같이 제대로 쇼핑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는 김서진이 바쁘거나 한소은이 바빠서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갑자기 왜 쇼핑을 하러 온 거지?주차를 하고 시동을 끈 뒤 김서진은 내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이 있는데 당신과 상의하고 싶어요.”“어떤 거요?”“...” 그는 고개를 숙인 뒤 작게 읊조렸다가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말했다. “결혼해 줘요!”“!!!” 한소은은 눈을 깜빡였다. 아직 그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희 이미 혼인신고 했잖아요!”“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결혼식을 하자는 거예요!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이 제 아내고 김서진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할 거예요.” 김서진은 그녀의 한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한소은은 김서진의 진지함에 오히려 반문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이전에는 두 사람 모두 이 일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형식적인 의례일 뿐인데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낸 거지.“당신이 임신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저...” 그녀는 방금 임신하지 않았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김서진은 그녀의 말을 끊은 뒤 말을 이었다. “당신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렇게 오랫동안 결혼식도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언젠가 임신했을 때 당신이 배가 나온 채로 그런 힘든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가 말하고 있을 때 한소은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김서진이 말을 멈추었을 때도 한소은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김서진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좋아요, 그럼 결혼해요.”“정말요?!” 그는 예상 밖인 듯 기쁨
김서진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고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미리 짜놓은 것 같았다. 가자마자 점원이 VIP 룸으로 안내하고 곧 두 명의 점원이 두 개의 팔레트를 들고 들어왔다. 팔레트 위에 다이아몬드 반지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사모님께서 고르시면 됩니다.”한소은은 김서진을 힐끗 바라본 뒤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았다. 반지는 매우 눈부셨고 반지들이 불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골라봐요.” 김서진이 말했다. “저는 신상으로 가장 특별한 것들을 남겨두라고 했을 뿐이지 당신을 대신해서 고른 건 아니에요.”팔레트를 힐끗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반지들은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반지 모양 자체는 비슷했다.“사모님은 손가락이 가늘고 피부도 하얗네요.” 점원들이 그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이 모델은 올해 새로운 모델이에요. 많은 공정을 거쳤고 순도도 매우 높습니다. 한 번 보세요...”점원들은 말하면서 전문적인 도구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한소은은 힐끗 쳐다보았고 매우 큰 다이아몬드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다른 점원이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른 반지를 집어 들고 설명해 주었다. “이 모델도 매우 좋아요. 대표님의 사모님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 유일함을 상징해요. 그리고 이 보석은...”한소은은 손사래를 친 뒤 팔레트 위에 있는 한 반지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요.”큰 다이아몬드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 가운데에 있는 테가 다이아몬드를 감싸고 있어 마치 별이 달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운데의 다이아몬드는 특히 커 보였고 멀리서 봤을 때 더욱 빛났다.하지만...가운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가격 면에서는 아까 두 명의 점원이 추천한 반지보다 비싸지 않았다.“이건...” 두 명의 점원은 서로 쳐다보았다. 실망한 눈치였다.김서진은 엄청난 고객이었고 몇 년 동안 이런 고객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분명 큰 실적이 있을 것이라고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말문이 막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한소은은 서로를 바라보며 실망하는 모습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이 모델로 하고 혹시 커플반지는 없어요? 저랑 서진 씨가 골라볼까요?”“있습니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린 뒤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정말 더 큰 거 살 생각은 없어요?” 그녀가 고르는 동안 김서진은 입을 열지 않고 그녀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었다.그는 두 사람이 나가고 나서야 손을 들어 그녀의 잔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점원 분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에요. 다이아몬드는 클수록 가치가 있어요. 두 개를 사는 건 별로일까요?”한소은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토를 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로 할 게 뭐가 있겠어요. 할 거라곤 보관할 일 밖에 없는데. 제게 보관이라고는 향료 외에는 의미가 없어요.”“있어요!” 김서진은 그녀에게 다가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만약 어느 날 남편이 파산한다면 그걸 팔아서 남은 삶을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녀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한소은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면 안 된다.“그런 얘기 하지마요. 설령 그런 날이 있다고 해도 제가 향수로 번 돈으로 당신 먹여 살릴 수 있을 거예요.”정말 농담이었다. 환아의 사업이 얼마나 큰지 일반인들은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환아가 파산한다면 한국 경제의 절반 이상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하지만 한소은의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김서진이 돈이 없다고 해도 그녀는 자기 능력으로 김서진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김서진은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 “그럼 제가 빌어먹는 꼴이 되는 거 아닌가요? 나이 들면 치아도 좋지 않을 텐데 그런 선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그때 두 명의 점원이 들어왔는데 이 장면을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소은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작은 원이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마음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신기했다.그녀는 손가락으로 반지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가볍게 웃었다. “좋아요.”반지를 모두 정한 뒤 두 사람은 일어서서 나갔다. 점원은 이미 김서진의 카드를 가지고 계산을 하러 나갔고 김서진은 비즈니스 통화를 하러 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다른 사람들이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엄마, 저 이거 괜찮은 것 같아요. 무조건 옥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도 괜찮아요.”“너희 젊은이들이 뭘 안다고 그래. 금과 옥은 값지지만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비싸다고 한들 옥과 비교할 순 없어.” 노인의 목소리는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한소은이 그들의 대화에 주목할 필요는 없었지만 노인의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다.이 액세서리 가게는 원래 다이아몬드만 취급한다. 다이아몬드 가게에서 다이아몬드가 옥보다 못하다고 한다면 점원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이아몬드를 사러 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그래요. 옥을 좋아하신다고 해도 여기선 마땅한 게 없잖아요. 마땅한 게 없다면 여기서 마음에 드는 거 먼저 골라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음 달이면 약혼해야 하는데 체면은 살려줘야 하지 않을까요?”한소은은 그곳을 바라보다가 시무룩한 얼굴로 카운터 옆에 앉아 있는 부유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을 발견했다. 그 여자는 잘 꾸민 듯했지만 눈가의 주름과 팔자주름은 나이를 감출 수 없었다.“이거 보시겠어요. 이 모델 꽤 괜찮아요. 손님이랑 잘 어울려요.” 점원이 다급히 노인에게 추천하며 말했다.“다 저급해.” 중년 여성은 콧방귀를 뀌며 못마땅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 뭐 핑크 다이아몬드나 블루 다이아몬드 있나요? 남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보여주기나 해보쇼.”“있긴 있습니다만 다 가격이...”일반적으로 가격이 너무 비싸면 점원들은 완곡하게 주의를 준다.일단 이렇게 비싼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위험하기 때
“흠.” 노인은 콧방귀를 뀐 뒤 시선을 그의 뒤에 있는 한소은으로 옮겼다. “왜 이 할머니에게 소개해 주지 않은 거야?”“결혼식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잖아요.” 그는 곧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할머니의 신통력은 정말 대단하신데 제가 소개해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알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너...”노인의 얼굴살이 떨리고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김서진이 말을 마친 후 노인의 눈빛이 매우 험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녀는 한소은을 매우 싫어하고 배척한다는 것이었다.“서진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할머니는 널 걱정하는 거야.”옆에 있던 김지영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결혼한다고? 언제? 결혼 날짜는 정해진 거야? 왜 얘기해 주지 않은 거야?”김서진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고모가 이렇게까지 제 결혼에 신경 써 주시다니 큰 선물이라도 보내시려고 그러는 거예요?”김지영은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지! 친조카가 결혼하면 고모가 당연히 선물을 줘야지. 다만...”그의 뒤에 있는 한소은을 쳐다보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빈틈없이 막아섰다. 일부러 그곳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막아내고 있었다.왜 이렇게까지 보호하려고 하는 거지?“너 결혼한다면서 왜 나와 할머님께 소개해 주지 않는 거야? 우리 한 가족 아니야?” 그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한소은이라고 하던데 맞아? 차 씨 가문의 외손녀?”“고모님도 다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소개가 필요할까요? 설마 저희가 평소에 어떻게 연애하는지 알고 싶으신 거예요?”“... 서진아!”“할머니가 모처럼 외출하신 것 같은데 다이아몬드 고르는 흥은 깨지 않도록 할게요. 그래도 이렇게 만났으니 손자가 귀띔해 드리도록 할게요. 결혼식 때 손자며느리의 상견례를 잊지 마세요.”노인은 한 손으로 의자를 누르고 손가락으로는 손잡이를 꽉 쥐었다. 이를 깨물지
잠시 후 한소은은 손을 들어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마치 그에게 따뜻함을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김서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저 괜찮아요.”“괜찮은 거 알아요. 전 단지 당신 손을 잡고 싶었어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애교 부렸다.그녀의 손을 잡자 김서진은 한결 편안해진 듯 머리를 의자에 기댄 채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 사람들이 당신 다치게 할 일 없을 거예요.”“그 사람들이요?” 한소은은 생각한 뒤 그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어요.”김 씨 가문의 일에 대해서는 그녀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이나 밖에서도 김 씨 가문에 대한 보도는 상세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집안은 뭔가에 둘러싸인 것처럼 바람도 통하지 않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한소은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형제 서열에서 4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우연이 그에게 “넷째 오빠”라고 불렀고, 비록 그는 4위지만 지금은 그 혼자만 남았다. 왜냐하면 그의 형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김서진 혼자만 남았다. 듣기로 김서진도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유명한 의사의 진찰 이후로는 점점 나아졌고,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그 속사정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오늘 할머니와 고모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그의 집안이 화목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다.차 씨 가문은 외할아버지가 계서서 화목한 편이지만 차성호라는 인물이 나왔다. 김 씨 가문을 비롯해서 다른 가문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명문가, 가업이 커지게 되면 각종 이익 다툼도 생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온갖 음모와 사기가 발생한다. 인간의 마음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법이다.“근데 방금 제가 듣기로는 누가 약혼을 한다고 했어요.” 혹시 그들과 결혼 시기가 겹치지는 않을까?“아마 김승엽을 말하는 거일 거예요.” 김서진이 담담하게
“...” 그는 마치 김 씨 가문의 사람들을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그녀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저희 둘이 결정하도록 해요.”그녀의 반응을 보고 김서진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저는 당신이 저한테 그래도 가족이니 집과 껄끄럽게 지내지 말라고 할 줄 알았어요.”그는 예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권유를 너무 많이 받아왔다. 어릴 때부터 소위 친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를 설득했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며, 가문과 화해하고 어른들과 가족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결혼식이나 가족의 축복에 대한 한소은의 충고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한소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전 당신이 아니에요. 왜 당신이 집안에서 그렇게 소란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전 당신 편이에요.”“저는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전 당신의 판단을 믿어요. 당신이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과 왕래가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만의 이유가 있겠죠.”소위 말하기를 남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자는 친절을 권하지 말라고 했다. 바늘이 자신의 몸에 박히지 않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게다가 이 세상의 일은 때로는 말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다. 그녀가 가장 힘들었을 때 김서진이 그녀를 도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녀는 혈연관계인 차성호에 의해 온갖 누명을 썼었고, 차성재도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아 이런 큰 소동이 있었다.혈연? 가족?어떤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도 중요하지 않다.한소은의 말은 그를 감동시켰고 김서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앞에 있는 그녀가 바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다. 일찍부터 마음에 둔 여자였다. 과연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김 씨 가문
“윤 부장님, 내일 고위급 회의가 있으니, 축하회는 좀 늦추는 게 어떨까요? 내일 회의 후에...”이 비서는 윤소겸이 인턴 중에서 직접 고른 사람이며, 윤설아에게 말했더니, 곧바로 사람을 파견해 주었다.그에게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인턴 중에서 몇 명을 골라 자기 옆에 두면, 한 손으로 길러낸 것과 마찬가지고, 만약 회사에 인사문제가 생기면, 천천히 이들을 중요한 직위에 안배하려고 계획한 거였다.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바뀐다고, 일찍이 준비해, 심복을 만들어 구시대의 사람들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그래서 이 비서 말고도 인텅 중에서 사람을 물색해 조그마한 상담을 했고, 축하회가 열리자, 그들을 모두 부르라고 했다.“뭘 기다려? 이미 손에 넣은 트로피가 날아갈까 두려운가?”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은 윤소겸.“지금이 좋은 시기야! 계속한다면, 우리 부서는 곧 회사의 핵심이 될 거니까!”“주눅 들지 말고, 내가 전에 너를 고른 것은 나와 같은 젊은이기 때문이야. 우리 같은 젊은이는 용감하게 도전하고, 막 나가야 해. 요즘 모두가 힘들었으니, 오늘 밤에 편히 쉬다 가자고, 그리고 계산은 내가 할게!”“그럼...”비서는 그의 생각을 빠꿀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고, 망설이다 물었다.“윤 부사장님과 노 부장님도 부르실까요?”그들 둘은 프로젝트의 책임자였고, 윤소경이 윤설아 손에서 이 프로젝트를 가질 때, 노형원도 주책임자, 프로젝트 매지너의 직위에서 부책임자로 되었다.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축하회에 그들도 초대해야 하지 않을까?윤소겸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불시에 그의 목을 갑자기 걸고, 다른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자식이! 기분 망치는 소리 그만하고!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졌잖아?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지? 노형원 그 자식이 공장에 가 본 적도 몇 번 안 되잖아? 그러니 축하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어!”그는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윤 부사장님은 여자잖아. 우리와 함께 놀 사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