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 요영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일지 짐작이 갔다. 요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맞은편 가게에서 발만 동동 구르면서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는 진고은을 보며 한참 지나서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된 순간, 요영은 마치 딴사람이 된 듯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보! 제 카드가 없어졌어요! 어떡해요, 어떡해!”기승전결을 전부 알고 있는 윤설아조차도 엄마의 표정 변화를 본 순간, 속으로 엄마의 명연기에 감탄했으며 굳이 표정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요영의 다급함과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누가 봐도 이 일은 그녀와 상관없었다. “카드가 왜 없어져요, 천천히 얘기해 봐요, 어떤 카드가 없어졌는데요.”“모르겠어요, 그게 제 카드와 지갑이 다 없어졌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손에 들고 있었는데 왜 없어졌지!”요영은 요지부동의 자세로 자리에 앉아서 통화를 했지만 목소리는 급해서 미칠 지경인 듯했으며 심지어 울먹이기까지 했다. 따지고 화내려고 전화했던 윤중성은 그녀의 말에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급해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요. 평소에 덤벙대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그걸 어떻게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혹시 차에 두고 내린 거 아니예요? 당신 어디 다녀왔어요?”“차에 흘렸을 가능성은 없어요, 오늘 기사님에게 운전을 부탁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화장실에 갔을 때 흘린 거 아닐까요? 아니면 물건 살 때 누가 훔쳐 갔나?”요영은 울먹이면서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카드를 주워서 긁을까 봐 당신 명의로 되어있는 카드를 일단 전부 정지해 놨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훔쳐 갔다고 해도 큰 손실은 없을 거예요, 다만 나중에 카드를 다시 만들려면 그게 좀 번거로울 뿐이지.”윤중성은 그녀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며 말했다.“손실이 없어서 다행이죠,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나중에 다시 만들어야죠 뭐, 근데 당신이 잃어버린 카드만
기자 회견은 저녁 7시로 정해졌고 김서진과 한소은의 항공편은 오후 3시에 도착했기에 그들은 착륙하자마자 집에 갈 시간도 없이 서둘러 회사에 가서 자료와 사전 소통을 준비했다. 조현아와 오이연도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중대 사안으로 지금까지 환아 본부에서 해결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끼어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속으로 묵묵히 걱정할 뿐이었다. 한소은을 본 순간, 그제야 안도감이 든 오이연은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부둥켜안았다.“드디어 돌아왔네! 간지 얼마 됐다고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은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잖아! 그 녹음은 언니가…”말을 꺼내려던 순간, 곁에 있던 조현아가 오이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고 눈치를 줬다. 사무실에 들어선 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치고 나서 조현아가 물었다.“그 녹음은 어떻게 된 거예요, 또 누군가에게 당한 건가요?”그들 입장에서는 한소은을 절대적으로 믿었지만 목소리로만 들었을 땐 너무 비슷해서 구분할 수 없었다.설마 편집한 건가?“아니요, 내 목소리 맞아요! 걱정할 거 없어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할 거예요.”한소은이 화끈하게 인정했다.“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이 일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래? 제성 시까지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던데, 며칠 안에 조향 업계 협회에서 사람을 시켜 조사까지 한다고 해. 왜 그런 말 했어, 이유도 없이 향료에 독은 왜 탔어, 미쳤어?”흥분한 오이연은 한소은이 도대체 왜 그런 발언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끝까지 한소은이 한 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는데 이제 한소은 스스로도 인정한 마당에 오이연이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없었다.그런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저녁에 기자 회견이 있을 거야, 이 일에 대해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밝힐 거고. 그때 가면 알게 될 거야.”한소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오이연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왜 그때 가서 얘기해야 해, 지금 하면 안돼?
저녁 6시 반.강성 5성급 호텔의 연회장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차 있었고 기자들뿐만 아니라 조향 업계의 조향사, 심지어 업계의 신인까지, 모든 관계를 통해 초대장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참석했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조향 업계를 뒤흔들었기에 다들 한소은이 공개 사과를 할지, 아니면 자신이 했던 말을 부인할지 너무도 궁금했다. 김서진의 차는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향했고 경호원의 안내 하에 VIP 통로를 통해 휴게실에 들어섰다. 비서는 김서진보다 먼저 도착해 모든 걸 철저하게 준비했고 김 대표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으며 품에는 연설문을 꼭 껴안은 채,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초조함이 보였다.“김 대표님.”문을 연 비서는 이리저리 살폈지만 당사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놀란 얼굴로 물었다.“한소은 씨는… 안 오셨나요?”“볼일이 좀 있어서 조금 있다 올 거예요.”비행기에서 내린 두 사람은 각자 일 처리를 하러 갔고 한소은이 회사로 간 사이에 김서진은 본부로 향했다.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조금 있으면 기자 회견을 시작해야 합니다. 밖에 기자들도 거의 다 왔습니다.”대표님과 한소은의 관계가 남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비서는 감히 대놓고 원망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일은 한소은이 저지른 잘못으로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까지 물었을 텐데, 김 대표님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회사 관리 부서에서는 그녀가 저지른 일을 처리하느라 애를 쓰고 있고 이번 기자 회견도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데 지금 그녀는 뭐하고 있단 말인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다니.아직 얼굴을 본 적도 없지만 벌써 텃세를 부리는 한소은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대표님이 저 정도로 신경 쓰는 건지 궁금했다.소성 차 씨 집안 사람이라고 하던데 또 철없
마음이 급한 비서는 몇 분 더 기다리다가 미동조차도 없는 사장을 보며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대표님, 제가 한소은 씨에게 전화를 걸어볼까요?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 볼까요?”회사 직원의 연락처를 알아내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비서는 그 나쁜 사람 역할을 자신이 도맡을 생각이었지만 김서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일단 밖에 상황을 좀 정리해 주세요. 조금 있으면 나타날 거예요.”대표가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비서가 아무리 급해도 소용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서 휴게실을 나섰다.그제야 김서진은 핸드폰을 꺼내 힐끔 보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한소은은 증거를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만 늦더라도 꼭 나타나서 기자들과 회사가 받아들일 만한 해명을 할 거라고 했었다.김서진은 한소은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으며 그녀가 아직 소식이 없는 건 준비가 채 안 됐다는 뜻이기에 재촉해도 소용없다. 시간이 일분일초 흘렸고 시계가 6시 55분을 가리키던 순간, 그의 핸드폰이 드디어 울렸다.“여보세요?”김서진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 한소은의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서진 씨, 저 지금 길이 너무 막혀요, 최대한 빨리 가고 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혹시 회사 사람들이 조금만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까요, 저… 죄송해요!”분명히 시간을 정확히 계산했고 그 시간에 맞춰서 준비를 했는데 저녁 퇴근 시간에 걸려서 차가 막힐 줄은 상상도 못했으며 7시가 코앞인데 아직 도착도 하지 못했다.“여긴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와요. 어디에서 막힌 거예요? 제가 데리러 갈까요?”김서진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묻자 한소은이 서둘러 대답했다.“괜찮아요. 여긴 지금 꽉 막혀서 서진 씨가 오는 길도 막힐 거예요. 그러다가 두 쪽에서 막힐 수도 있으니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전 지금 이연이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에 김서진은 그제야 안도감
“뭐라고? 그 누구랑 뭐가 달라?”한소은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어떤 남자들은 센스도 없고 재미없잖아. 기분 좋은 말 해줄 줄도 모르고!”오이연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하지만 이걸 그냥 넘어갈 한소은이 아니었다.“그래? 그래서 그 어떤 남자들은 누굴 말하는 건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잘생겼어? 몸매가 아주 좋지 않아? 설마 그 남자가 서씨야?”당황한 오이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한소은을 힘껏 쏘아보더니 말했다.“언니 미워! 언니랑 얘기 안 할 거야!”“이거 봐. 네가 나한테 농담하는 건 괜찮고 내가 농담 한마디 했다고 이러기야? 정말 너무하네.”한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어쨌든 언니는 말하지 마. 그 인간 말도 꺼내지 말라고!”“그래서 그 인간이 누군데?”한소은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오이연은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한소은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됐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오이연은 입을 쭉 내밀며 그녀의 손에 들린 박스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 전에 그들이 제작에 성공한 샘플이었다.사실상 모든 과정은 한소은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가 준 레시피와 지도가 다 했고 오이연은 그냥 보조만 했을 뿐이다.시간이 워낙 급박해서 자세히 연구하지도 않았다. 예전 레시피와 별다를 것 없이 보통의 향료가 들어가는 향수라고 생각했는데 전보다 제작 절차가 조금 추가되었고 전에는 안 쓰던 향료도 조금 들어갔다.그게 뭔지는 오이연도 정확히 몰랐다. 어차피 한소은이 가져온 것이고 그녀는 조수로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기자회견에 참석한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오후 내내 바쁘게 돌아친 것이 오늘의 기자회견을 위한 것이었다니. 과연 한소은은 어떤 해명을 내놓을까?“언니, 이거로 정말 결백을 증명할 수 있어?”그녀를 믿지만 어떻게 대중 앞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지 궁금했다. 그녀의 가까운 지인으로서 걱정되는 건
“이번 사건은 영향력이 꽤 커요. 환아뿐만 아니라 전체 조향 업계에 비상이라고요. 한소은 씨 한 명 때문에 향수 제조업이 다 죽어 나가게 생겼단 말입니다! 앞으로 누가 감히 향료와 향수를 구매하겠습니까? 그 안에 무슨 독이 들었을 줄 알고요? 한소은 씨 본인이 나와서 해명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한소은과 환아를 향한 강한 비난이 이어졌다.담당자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돋았다. 그래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기자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다들 진정하세요. 오늘 이 기자회견을 소집한 것도 여러분께 납득할만한 해명과 결과를 내놓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겨서 한소은 씨가 늦어지고 있어요. 저희에게 그리고 한소은 씨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시겠습니까?”환아는 뷰티업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담당자의 태도도 무척 공손했기에 기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일부 기자들도 있었다.“염치가 없어서 못 오는 거 아닙니까?”일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소은이 죄를 지은 게 확실하기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맞습니다! 오늘 오후 세 시에 강성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여태 뭐하고 아직도 안 나타납니까? 식사를 하고 씻고 준비하고도 남을 시간 아닙니까?”“그러니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세요! 저희도 바쁜 사람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맞아요! 정확한 시간을 주세요. 30분만 더 기다려서 그때도 안 오면 해명할 용기도 없으면서 기자들을 농락한 거로 치부하겠습니다!”몇몇 적대적인 기자들의 말에 환아 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던 기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한편 김서진은 구석진 곳에서 몰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 눈에 띄게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몇몇 기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짓을 했다.눈치 빠른 서한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왔다.“저 기자들 뒤 한번 캐봐. 그리고 교통정리는 어떻게 돼가고
꽉 막힌 길은 앞에 작은 충돌사고까지 나면서 교통경찰까지 출동했지만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기어가듯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차를 보며 한소은도 조바심이 났다. 앞을 바라보니 아득하니 길게 줄 서 있는 차들이 보였다.“기사님, 저 여기서 내릴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오이연에게 고개를 돌렸다.“조급할 건 없어. 너는 차 타고 천천히 와. 나는 일단 내려서 이 길만 지나가고 다시 생각해 볼게.”“차가 이렇게 많은데 위험하잖아!”오이연이 걱정스럽게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괜찮아. 길이 먼 것도 아니고 내가 알아서 조심할게. 지금 안 가면 늦어.”그녀는 전방을 힐끗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기억이 맞다면 근처에 호텔로 바로 갈 수 있는 골목길이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서 가는 게 더 빨랐다.“그럼… 조심해야 해.”오이연은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한소은이 이미 결정을 내렸기에 더 만류할 수도 없었다.차가 멈추자 한소은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길가로 뛰어갔다. 손에는 아까 그 박스가 들려 있었다. 이대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가능한 빨리 호텔에 도착해야 했다.기자회견장.조용하던 현장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과일과 디저트로 배도 불렸고 시간은 일분일초 흐르고 있었다.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들이 다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주인공은 어디 있죠? 계속 이렇게 미루기만 할 건가요?”“맞습니다! 우리는 환아를 존중하고 믿었기에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희를 가지고 놀면 안 되죠. 바보도 아니고. 지금 몇 신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겁니까!”“십분 더 기다려서 안 오면 철수하겠습니다!”“맞아요! 그냥 앞에 나설 용기가 없는 거잖아요!”날카로운 마이크 음이 이들의 소란을 잠재웠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무대에 이끌렸다. 검은색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김서진이 천천히 무대로 걸어 올라왔다.환아의 대표이자 강성을 쥐락펴락하는 존재의 등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잠시 말을 멈춘 그는 기자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오늘 오신 분들 중에 조향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은 거로 들었습니다. 조향사분들은 향수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을 주입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향수의 본연의 향에 영향 주지 않고 제작이 가능한 겁니까?”기자들은 질문을 하러 온 자리에서 역으로 질문을 받을 줄 몰랐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우리는 질문을 하러 왔지 질문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김서진이었기에 속으로만 외칠 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제 의혹을 풀어주실 분은 안 계신 건가요?”김서진이 다시 물었다.태도는 진솔했고 일부러 시비를 걸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조향사들은 김서진과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이 간질간질했다.환아는 뷰티 업계의 최강자이며 지금 안 좋은 스캔들에 휘말렸다고 해도 그 자체의 저력으로 얼마든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조향사는 당연히 더 좋은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더 높은 고지를 볼 수 있다.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김서진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내놓을까 고민했다. 김서진의 신뢰를 얻을 수만 있다면 환아에 입성하고 더 나아가서 수석 조향사의 자리까지 갈 수도 있었다.“대표님이 꺼내신 질문에 대해서 저희도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솔직히 저도 시험해 본 적 있고요.”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하지만 지금의 기술과 조건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그의 말에 기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대놓고 한소은을 감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한소은 씨가 어떻게 하셨는지 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향료의 성분 자체가 워낙 불안정하기에 자칫 잘못 배합하면 향이 휘발해 버립니다. 향수를 제작하려면 들어가는 성분 모두 정밀히 따져야 하고 제작 과정 또한 까다롭습니다. 온갖 재료를 한 번에 섞는 게 아니라 조금씩 주입하여야 하죠. 독성이 강한 물질을 향료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