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님, 그날 병원에서 어떤 기자가 대표님의 사진을 찍었습니다."비서가 재빨리 말했다."응, 거기 갔었어, 찍으면 찍은 거지."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쨌든 파파라치는 어디에나 있고 기자들도 모두 소문을 듣고 움직이지만 그날은 그를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 주로 화재를 보도하러 갔을 것이라고 믿었고 우연히 그를 찍었을 뿐이라 생각했다."그런데…."비서의 망설임을 듣고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그런데 기자가 대표님이 한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게다가 친밀한 제스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비서는 조금 망설이는 듯했으나 단숨에 말을 마쳤다. 뭐가 됐든 비서는 자기 회사의 회장님은 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어서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매우 놀랐었다. "하지만 몇몇 잡지사의 편집장, 그리고 1인 미디어 쪽은 그래도 생각이 있는지 아직 사진을 노출시키진 않았고 대표님의 의사를 묻고 있습니다.”비록 사진을 찍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을 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에게 물어봐야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를 화나게 만들면 내일도 그들의 작은 잡지사가 존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이것은 의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약간 읊조리고 나서 고개를 돌려 주방 밖을 한 번 보았다. 거실에 있는 한소은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등받이에 한 손을 얹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로 있었다. 긴 머리가 폭포처럼 쏟아졌고 그녀는 또 핑크색 융 재질의 가정복을 입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매우 귀여웠다."괜찮아, 보낼 거면 보내라 해." 부드러운 시선을 거두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 비서는 깜짝 놀랐다. 사진을 다 지우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거면 보내라고 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대표님이 연애를 한다고?!’“그렇게 하는 걸로 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또 뭐가 생각나 말했다."참, 나중에 사진도 한 부 보내줘."만난지 이렇게 오
비록 이 화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허강민은 지금 후회막심했다. 그날 왜 그렇게 입이 가벼웠는지, 굳이 그 두리안 케이크와 밀크티를 탐내려고 했는지, 그가 지금 목을 졸라 토해내더라도 이미 늦었다.그가 회사에 도착했든, 집으로 돌아갔든, 허우연은 끊임없이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결과를 얻어 내려고 했다.원래 그는 이틀 동안 숨어 지내고 싶었다. 어쨌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고, 자신의 여동생이 이걸 들었을 때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을까 봐 두려웠지만, 그가 남자 화장실에 갔을 때 허우연이 화장실까지 뛰어들어와 문을 막았을 때, 그는 그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동…동생아, 여긴 남자화장실이야. 너 화장실 잘못 들어온 것 같아!"손으로 큼지막한 남자 화장실 표지를 가리키며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허우연은 그를 곁눈질하며 차갑게 웃었다."잘못 들어갔어? 허강민이 잘못 들어간 게 아니라면 나도 잘못 들어간 게 아니야!""무슨 소리야! 어떻게 오빠 이름을 그렇게 부르냐!"그는 일부러 오빠 티를 내며 꾸짖고는 고개를 돌려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넌 네가 아직도 오빠인 줄 알아? 너처럼 이렇게 행동하는 오빠가 있어? 약속했던 걸 이렇게 매일 피하는 게 어딨어!”허우연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가 이미 김서진을 찾았다고 해서 매일 그를 찾아다녔지만, 회사에도 없고 집에 돌아오지도 않고 술집에 가는가 하면 또 하필 그녀가 그를 찾으러 술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떠나고 없다는 건 분명 일부러 그녀를 피한 것이었다.그가 이렇게 몸을 피할수록 허우연의 기분은 더욱 나빠져갔고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숨어? 내가 왜 숨어, 안 숨었어!" 허강민이 거드름을 피우며 손을 뿌리쳤고 손의 물이 여기저기 튀었다. 허우연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그는 즉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녀가 한 걸음 더 빨리 다가가 그의 넥타이를 쥐고는 바로 잡아당겼다."너 또 도망가?!""나…나 안 도망
그녀가 따라 들어가자 허강민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박차고 들어섰고, 2초도 안 돼서 다시 문을 열어 밖에 있는 멍한 상태의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다 일 안 할 거야?! 이렇게 한가하게 하는 거 보니까 오늘 저녁에 다 같이 야근하고 싶은가 보지?!"“......”아무도 더 이상 구경하지 못했고 얼른 고개를 숙여 일하느라 바쁜 척을 했다.“쾅!”사무실의 문이 다시 한번 세게 닫혔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몸을 움츠렸다. 허강민의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많은 직원들 앞에서 개를 산책시키듯 끌려다니며 체면도 구겼는데, 하필이면 그의 여동생이라 욕도 할 수 없고 매우 답답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숨는 것도 재미없으니 아예 그녀에게 말을 다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맞아, 나 서진이를 만나러 갔었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서진이 뿐만 아니라 걔 약혼녀도 만났어."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다가 그는 공식 호칭으로 말하기로 결정했다.허우연은 주먹을 죽일 듯이 불끈 쥐었지만, 그래도 자제하며 말했다."그 여우 같은 년?!"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한 글자씩 내뱉었고 허강민은 만약 지금 그 한소은이 여기에 서 있었다면, 틀림없이 허우연의 손에 찢길 것이라는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렇게 말하지 마,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그는 무의식적으로 한소은을 도와 말을 했는데, 그런 미모와 기질을 여우 같은 년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천박하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신선이라 불려야 했다, 적어도 여우가 수련을 쌓아 변신한 신선!"뭐가 서로 사랑한다는 거야, 분명히 여우야!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내 사람을 낚았다고."허우연이 성질을 내며 말했다."그 사람 이름이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왔는지, 뭘 하는지, 그녀가 언제 서진 오빠를 꼬셨는지 말해줘.""......" 허강민이 담배를 한 모금 독하게 들이마시고 연기를 내뿜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동생아, 적당히 해."“???”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
허강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허우연 너 미친 거 아니야? 난 네 친 오빠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퉤, 너야말로 내 오빠가 아니야!" 허우연이 이때 홧김에 욕을 하며 말했다."네가 우리 오빠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 네가 내 오빠라면, 그 썅년이 도대체 누구인지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말해 봐, 도대체 누군데? 고 씨 집안의 여우 같은 년 아니야? 아니면 노 씨 집안?"그녀는 아무렇게나 추측하기 시작했는데, 추측한 것은 모두 주변에 있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자 집안의 나이가 비슷한 여자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상업적인 결혼생활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그녀는 허 씨 집안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김 씨 집안과 같은 대 집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녀의 조건도 충분히 좋다고 느꼈다.그녀는 얼굴도 예뻤고, 여우주연상도 받은 적이 있었으며 김서진과도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왜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일 수밖에 없단 말인 가."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마, 넌 모를 거야. 나도 잘 모르니까.” 허강민은 그녀가 헛된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말했다. "아마도 명문 집안의 따님은 아닐 거야, 아마 평범한 집안의 사람일 거야, 어쨌든 나도 만나본 적이 없어. 그리고 김서진이 그 사람을 엄청 좋아해. 충고하는데, 그녀에게 아무런 마음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거야, 그렇게 안 해서 김서진을 화나게 하면 나도 너를 감쌀 수가 없어."이 말은 진심이었다. 김서진도 경고했던 것이고 절대 그의 마지노선을 넘으면 안 됐었다.밖에서는 김서진이 얼마나 악랄하고 독한 사람인지 소문이 나돌지만, 사실 그는 그저 차갑게만 보여서 접근하기 힘든 것일 뿐,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허강민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겉으로만 잘 지내지 못할 것 같아 보일 뿐 사람은 상대적으로 매우 상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허우연이 매번 가서 소란을 피우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니 허우연은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혼미한 채로 혼자 차를 몰고 다니며 울다가 어느새 윤 씨네 대문 앞에 이르렀다.물론 그녀는 해성으로 가지 않았고, 단지 윤 씨 네도 소성에서 두개 정도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설아야…"허우연이 차 안에 앉아 윤설아에게 전화를 걸어 대문을 바라보며 울었고, 전화기에서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윤설아가 깜짝 놀라 말했다."우연아, 너 왜 그래? 울지 마! 할 말 있으면 천천히 해!""설아야...흑흑흑…너 집에 있어?”허우연은 이제야 자신이 윤설아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체 무작정 달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있어, 있어, 있어, 너 올 거야?""흑흑, 나 이미 네 집 문 앞에 있는데 네가 문…문 좀 열어줄래?"허우연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울어서 그냥 듣기만 해도 분명 굉장히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어? 너 우리 집 앞에 있어? 잠깐만 기다려!" 전화도 끊지 않은 채 윤설아의 탁탁탁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대문이 열렸고 머리가 하나가 삐져나오는 것이 보였다.윤설아는 좌우로 둘러보다가 대문 앞에 서 있는 차를 보고는 황급히 다가왔다."흑흑......" 허우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너 왜 혼자야, 어서 따라 들어와,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해!"얼른 사람을 시켜 대문을 열었고 허우연이 차를 몰고 들어가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의 목을 끌어안았다. "설아야, 나 어떡해, 나 어떡해......""서두르지 마, 우리 일단 들어가자."윤설아가 작은 소리로 허우연을 달래고는 그녀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 안의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퍼졌고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풍겨 사람의 긴장감을 완화시켰다.친한 친구를 만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잠시 시간이 지나서 인지 기분이 많이 풀렸다. 방에 들어간 후, 허우연의
윤설아는 허우연을 달래지 않고 위로도 하지 않은 체 허우연이 다 울 때까지 기다리다가 울음이 그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지?"허우연이 코를 훌쩍이며 친구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더니 글썽이며 말했다.“너도 알고 있는 거야, 오빠가 약혼한대, 근데 난 심지어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몰라.”"아이, 겨우 그런 일이야?"윤설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얼마나 큰일인가 했더니, 그냥 약혼하는 것뿐이잖아. 결혼도 아니고, 게다가 결혼해도 이혼할 확률이 얼마나 높은데.”"……" 김서진이 약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가 정말 약혼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조심스러워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고, 허강민도 단도직입적으로 그녀를 포기하게 했지만 윤설아는 그녀에게 별거 아니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허우연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왜 안 돼." 윤설아가 허리를 굽혀 과일차 두 잔을 들고 그녀에게 한 잔을 건네며 자신도 잔을 한잔 들고 손을 녹이며 말했다.“거울 좀 보고 너 자신의 조건을 좀 봐, 네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팬이 얼마나 되는지, 영화 팬이 얼마나 되는지, 너한테 푹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 스스로한테 이렇게 자신 없게 굴 거야? 나는 줄곧 너를 매우 좋게 봤어. 나는 네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용감하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지도 못했어…."한숨을 쉬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나 좋다고 표현했었어!"윤설아가 이렇게 말하자 허우연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내가 오빠를 몇 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는데, 네가 못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오빠가 나한테 이도저도 아니게 행동하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그녀는 자신이 이미 열심히 노력했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이면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고 계속 버텼
입을 삐죽거리며 허우연은 마지막 선을 지켰다.“네가 나한테 뭐라 안 하면 나도 화 안 낼게.”"피식......" 웃음을 참지 못한 윤설아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바보! 비위를 맞춘 거라 해도 넌 제일 예쁘고 귀엽게 비위를 맞춘 거야!""또 그렇게 말해?"발을 동동 구르며 허우연이 성냈다."그래, 그래, 그래 말 안 할 게. 일단 손부터 떼 주면 안 될까?"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안 놔, 너 도망가면 어떡하라고?”윤설아가 웃으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여긴 내 집인데 어디로 도망가? 위층으로 올라가서 옷 갈아입으려고 하는 거야, 네가 내 옷을 더럽혀서. 옷도 한 벌 안 물어줄 거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허우연은 그제야 그녀의 뜻을 깨닫고 서둘러 손을 놓았다.그녀가 손을 놓았지만, 윤설아는 서둘러 올라가지 않고 말했다."너 나랑 같이 올라가지 않을래? 네 옷도 더러워졌는데 일단 내 옷으로 갈아입어."고개를 숙여 가슴 쪽의 얼룩을 한 번 보았는데 확실히 자국이 있어서 사양하지 않고 윤설아와 함께 위층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윤설아는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는 허우연에게 옷 한 벌을 골라주었고 허우연이 옷을 갈아 입는 걸 기다린 후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거울을 보여주었다."봐봐, 얼마나 예쁘냐!"허우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맑은 눈망울과 하얀 이가 돋보였고 눈은 울어서 약간 부어올랐지만, 그녀의 미모에 조금도 흠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보는 이의 애틋함을 자아냈다. 정면과 측면, 어떻게 봐도 그녀는 다 예쁜데 왜 김서진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이 나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울음을 참기가 힘들어졌다."잘 봐봐." 윤설아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는 허리를 굽혀 말했다. "너 이렇게 예쁜데 왜 그렇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거야.""맞아, 나 이렇게 예쁜데 왜 날 안 좋아하는 거지? 오빠는
윤설아가 한 말을 그녀는 알 것 같기도 했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허우연은 마음속에 조금씩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마치 무언 가가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조금 전처럼 그렇게 막막해하지 않았다."우연아, 너는 너무 아름다워서 빛이 날 정도야. 너는 일단 그가 너에게 관심을 갖도록 해야 돼."윤설아는 더욱 허리를 굽혔고 거의 그녀의 뺨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대고 말했다. 허우연의 눈이 막 빛을 내려 할 때 갑자기 돌아서서 말했다. "하지만...""하지만 뭐?" 그녀의 하지만이라는 단어는 허우연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하지만 지금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엔 이미 늦었어! 전에 네가 너무 비굴하게 행동해서 이미 그 사람을 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했어, 네가 지금 뭘 어떻게 한다 해도 그는 이미 생겨버린 너에 대한 인상을 바꾸지 않을 거야, 게다가 지금 네 앞에는 이름 모를 강적도 있고 시간도 촉박해서 이렇게 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아."윤설아는 손을 떼고는 허리를 곧게 펴 화장대 앞에 앉아 핸드크림을 천천히 발랐다. 그녀는 늘 세심한 관리를 해왔고, 모든 부위를 여유롭게 두루두루 관리했기 때문에 윤설아의 피부는 매우 좋았다. 그녀는 굉장히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고 특히 허우연과 비교하면 더욱 평범해 보였지만 피부가 굉장히 하얗고 부드러워서 물도 빼낼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허우연보다 나았다.윤설아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핸드크림만 열심히 바르는 모습을 본 허우연이 급하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 네가 그렇게 급하게 해야 할 문제도 아니라고 했잖아, 결혼을 해도 이혼도 할 수 있는 거고, 게다가 지금은 고작 약혼만 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또 내가 늦었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야?"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보고는 윤설아는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방법은 당연히 있지, 그냥 네가 그렇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