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김서진이 말했다.김서진은 가까이서 자세히 보았다.“이 사람은... 왕자님?”“Y국 왕자님인가요?”김서진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이며 확실하지 않다는 듯 애매하게 말했다.진가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맞아요, Y국 로사왕자님이고 여왕님의 큰아들이에요.”“진가연 씨 아버지가 보낸 거예요?”김서진은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했다.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아버지가 직접 나서기 애매한 데다가 또 자주 김서진 씨한테 오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에 제가 겸사겸사 소식을 전하러 왔어요. 요 며칠 로사왕자님께서 H국으로 올 거예요.”“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긴 해요.”하지만 모든 관심, 몸과 마음이 모두 한소은 쪽에 있었기 때문에 김서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게다가 왕자는 올해까지 마흔이 되도록 여전히 왕자에 불과할 뿐이었고 여왕은 조금도 물러날 마음이 없는 듯했다. 더구나 여왕에게는 아들이 많았기 때문에 왕자는 그저 이름만 왕자인 데다가 가끔 타국을 방문할 뿐 실권은 없었다.“아버지께서는 그게 계기가 될 거라고 하셨어요.”진가연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지만 사실 진가연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계기라고 하는지 말이다.물어봐도 진정기는 그저 진가연더러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이해할 필요 없다고, 말만 전하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김서진이라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진가연은 호기심에 물었다.“서진 씨,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김서진은 뭐라고 읊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알겠다고요? 정말 알아요?”진가연은 깜짝 놀랐다.“왜 다들 알고 있는 거죠? 저는 왜 모르는 거죠? 왕자님께서 H국을 방문하는 것이 소은 언니를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맞아요.”이렇게 말하면서 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진은 계속해서 말했다.“가연 씨 아버지는 이 왕자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나요?”“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 말에
“그건 진가연 씨 아버지께서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 말을 들으면 돼요.”김서진이 말했다.“네.”진가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알 듯 말 듯 말했다.“두 분 사이의 일은 제가 잘 모르니까 됐어요. 저는 그저 말만 잘 전달했으면 돼요.”“참, 서진 씨랑 소은 언니의 두 아이가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좀 봐도 될까요?”진가연은 흥분한 듯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저는 아직 이란성쌍둥이를 본 적이 없어요.”“위층에 있어요, 지금 깨어났는지 모르겠지만요. 가서 보세요.”김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진가연은 사양하지 않고 일어나서 바로 위층으로 달려갔다.“계단에서 좌회전해서 세 번째 방이에요...”김서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가연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위층으로 뛰어 올라간 진가연은 빠른 속도로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은 데다가 두 아이는 이미 깨어나서 펑펑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가장 흥미로운 건 방안에는 원철수와 임상언 두 명의 남자만 있고 하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분유를 타러 갔는지 아니면 물건을 준비하러 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진가연이 들어섰을 때, 임상언이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진가연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이미 울음을 그친 뒤여서 매우 귀여웠다.하지만 원철수 쪽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이는 슬퍼서 울고 있었고 원철수도 정신없이 바빴다.“울지마 울지마, 계속 울면 삼촌이 주사 놓을 거야!”원철수가 달래면서 말했다.“주사를 맞은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울어? 배고파? 곧 있으면 아주머니가 분유 가지고 올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만 더...”원철수가 계속 중얼거렸지만 아이가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아이는 목놓아 울기만 할 뿐이었다. 기분 나쁘기만 하면 울기 시작했다.“아이고, 울지 말아줘. 네가 계속 울면 나도 울 거야.”원철수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렇게 낭패한 적은 처음이었다.
“분명 내가 다 달래준 거야. 이제 울다가 지쳐서 안 우는 거고.”원철수는 인정하지 않으며 말했다.원철수는 자기가 오랫동안 달랬지만 결국 진가연의 손에 가니 울음을 그치는 모습을 보고 자기의 체면이 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쳇하며 원철수는 코를 찡그렸지만 진가연은 기뻐하며 얌전히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았다. 핑크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두 볼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근래의 우울함을 모두 씻어내듯 아이들의 웃는 모습은 이 세상에 걱정할 것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가연이가 안는 게 맞아요.”임상언은 옆에서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주사라뇨? 어린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바로 주사인 걸 모르세요?”원철수는 중얼거리며 말했다.“그냥 해본 말이야.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해.”“아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이가 어려도 그런 말은 다 알아들어요, 우리 집 임남이는 어렸을 때 내가 조금만 욕해도 울상을 지었어요.”임상언은 요즘 임남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아마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하지만 임상언은 임남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예전처럼 그렇게 슬퍼하진 않았고 점점 체념하는 것 같아 운철수는 임상언을 말리지 않았다.이렇게 말하는 것이 임상언의 슬픈 감정을 발산해 버리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리는 좋은 방법이었다.바로 이때 유모가 젖병 두 개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저 왔어요.”유모는 주위를 살피다가 진가연의 품에서 아이를 안아 들었다.“동생이 먼저 먹어야지. 레이디 퍼스트니까.”“너무 편애하는 거 아닌가?”원철수가 말했다.“이렇게 어린데 뭐가 레이디 퍼스트야?”진가연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죠.’아이를 유모의 손에 맡기며 조심스럽게 팔을 빼자 어깨가 조금 시큰거렸다.진가연은 조금 안고 있었을 뿐인데도 어깨에 통증이 느껴져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진가연은 임상언이 하나도 힘든 내색 없이
“원 선생님은 유명한 한의사세요. 모르셨어요?”진가연이 웃으며 말했다.“몰랐어요. 원 선생님 시간 되실 때 저도 맥을 짚어주실 수 있나요?”유모는 단순히 궁금해서 맥을 짚어 보고 싶었다.“당연히 가능하죠.”원철수는 거절하지 않았다.“먼저 아이를 재우고 아무 때나 날 찾아와요.”“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원 선생님.”유모는 기뻐하며 말했다.이 분위기를 이어 원철수는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때 내가 맥을 짚어 줄까?”임상언은 원철수를 흘겨보며 말했다.“미쳤어? 난 병도 없는데 무슨 맥을 짚어?”“아이고. 어떤 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야. 누가 자신한테 병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 맥을 짚어서 진단을 내려야지. 혹시 네 정력이 약할지 누가 알아?”원철수는 농담하며 말했다.임상언은 쳇하며 몸을 돌렸다.“정력은 네가 약하겠지.”“왜 뭐가 질리나 본데?”원철수는 말하면서 앞으로 다가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원철수 따라와 봐.”원철수는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김서진이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무슨 일이야?”원철수가 물었다.“볼 일이 있어서.”김서진은 바로 말하지 않고 한마디를 남긴 채 몸을 돌려 떠났다.“어.”원철수는 그렇게 대답한 뒤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먼저 가 봐야겠다.”원철수는 방을 나서기 전에 임상언을 향해 턱을 추켜 올리며 말했다.“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임상언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원철수의 말을 무시했다.김서진을 따라 밖으로 나온 원철수는 조금 궁금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주효영 씨 일 때문에.”김서진은 고개를 돌리며 원철수를 바라보았다.“지금 나하고 너밖에 없어. 네 생각에는 투명 인간이 가능할 것 같아?”원철수는 무슨 일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왜 너하고 나밖에 없다고 강요하는 거야? 설마 너 못 믿는 사람이라도 있어?”원철수는 바로 생각이 떠올라서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저었다.“누구를 못
두 사람은 모두 침묵했다.잠시 후 김서진이 말했다.“누가 처음으로 주효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지?”“나야.”원철수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나도 문 안을 들여다보고 알았어. 문은 열쇠가 없어서 열 수 없었고. 너 말고 누가 또 문을 열 수 있어?”원철수가 또 물었다.김서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설마 그 사람인가?”원철수는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임상언은 나처럼 주효영을 원망해. 난 임상언이 주효영을 위해 문을 열어줬다는 걸 믿을 수 없어. 더욱더 임상언이 주효영과 한패라서 주효영을 풀어줬다는 건 말도 안 돼.”김서진은 응하고 대답하며 말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우리는 인정하기 전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봐야 해. 네 말처럼 주효영이 갑자기 사라질 수 없고 투명 인간이 됐다고 해도 혼자서는 문을 열 수 없다며.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야. 임상언이 아니라면 분명 다른 주효영의 조력자가 주효영을 도와 문을 열어준 거야.”원철수는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이런 가능성은 없을까? 내가 주효영이 사라진 줄 알고 너한테 연락한 뒤에 우리가 문을 열었을 때 주효영이 도망갔다면?”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여러 사람이 함께 들어가서 텅 빈 방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 앞에서 투명 인간이 도망간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투명 인간 실험에 성공해 그들을 죽일 가능성도 있었다.“불가능해.”김서진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숨결은 느껴져. 그때 내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을 때 안에서는 어떤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고 조금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어. 주효영은 그때 이미 방 안에 없었던 거야.”무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감각이 뛰어났기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숨결과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심장이 뛸 것이고 숨을 쉴 것이다. 그
김서진은 이런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지금은 그들이 한소은을 이용할 가치가 있어서 남겨뒀으니까 주효영이 어떻게 하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김서진의 말에 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냥 두려워.”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원철수는 일을 길게 끌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원철수가 말하지 않아도 김서진이 어떻게 원철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수 있을까?“인내심을 갖고 이틀만 더 기다려보자. 이틀 안에 아마 터닝 포인트가 있을 거야.”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틀?”원철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김서진은 왜 시간을 이렇게 확신하는 걸까?하지만 김서진의 단호한 눈빛을 보더니 더 말하지 않고 그저 물었다.“그럼 이 일은 먼저 그 사람하고 말하지 말까?”원철수는 뒤를 바라보며 집을 향해 눈짓했고 서로 그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먼저 말하지도 말고 괜히 은근슬쩍 떠보지도 마. 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몰라.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그럼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거야.”“그렇긴 하지.”한숨을 쉬며 원철수는 기지개를 킨 뒤 궁금한 표정으로 김서진을 향해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넌 날 의심한 적 없어?”김서진은 원철수의 궁금해하는 표정을 보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말해서 있어.”순간 원철수는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너는 불가능해. 너한테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김서진은 다시 한번 떠올려보며 원철수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원철수를 불러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원철수는 몇 초간 멍하니 있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그래 나한테 그런 기회가 없었던 걸 고마워해야겠네. 네 명쾌한 판단 고마워.”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사실 누구라도 의심이 대상이 될 수 있어. 날 포함해서.”김서진 이 말을 이었다.“내가 한소은을 구하기 위해 주효
저녁에 김서진은 바로 차를 몰고 할아버지의 저택으로 향했다.할아버지는 이미 김서진이 올 것을 예상했는지 따뜻한 차와 간단한 디저트를 준비해 두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왔어?”“할아버지.”“투명 인간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할아버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김서진은 웃으며 할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이미 말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하하하.”할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맞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하지만 난 네 성격을 알잖아.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러 올 줄 알았지. 하지만 네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항상 차리던 대로 차렸으니까 같이 먹자.”할아버지는 김서진에게 차를 따르더니 자기의 잔에는 술을 따르며 천천히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김서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준이는요?”“내가 정원에 가서 놀라고 했어. 나도 네가 올지 안 올지 확신할 수 없어서 네가 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만약 네가 오지 않으면 애가 얼마나 실망하겠니?”할아버지는 김준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김서진은 그 말을 듣고 아이에게 많은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슬프고 죄책감을 느꼈다.“듣자 하니 네 쌍둥이들도 돌아왔다고?”할아버지는 한잔을 마시며 물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원철수가 이미 할아버지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았다.“그래.”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했다.“다음번에는 한소은이겠구나.”“제가 잘 챙기지 못했어요.”김서진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김서진은 차를 운전하고 왔기에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저 차를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뿐이었다.할아버지는 김서진은 위로하는 대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소은이를 잘 돌보지 못했지.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자기 아내를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네가 소은이와 결혼을 했으면 소인이가 안전하도록 잘 챙겼어야지. 소은이가 강하다고 해서 네가 챙길 필요가 없는 건 아니야.
김서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김승철에게 술을 따랐다.“투명 인간일 리는 없다고 하셨잖아요.”“그러니까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그 허세 부리는 사람이 누군지 나도 좀 보고 싶어.”김승철은 눈을 부릅뜨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김서진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잡히면 꼭 뵙게 해드릴게요.”두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서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다.“아빠, 아빠예요?”앳된 목소리와 감격스러운 말투의 김준이었다. 그 조그마한 형체가 바람처럼 빠르게뛰어왔다.하인이 그 뒤를 바싹 따르며 김준을 쫓아다녔다.“아빠, 진짜 아빠네요!”김준은 김서진의 품에 와락 안겨 격한 포옹을 했다.“아빠, 아빠!”“맞아, 아빠야.”김서진도 설레는 마음으로 김준을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김준의 몸에서 나는 우유 향과 젖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이 여리고 자그마한 몸뚱이가 김서진으로 하여금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이 꼬맹이가!”김승철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호통을 쳤다.“네 아빠만 보이냐? 이제 할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지?”“할아버지, 할아버지!”김준은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삐죽거렸다.“할아버지 또 술 마셔요?”“어쭈? 꼬맹이가 내가 술 마시는 것도 참견해?”김승철은 말하면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네 아버지가 널 데려간다는데 내가 마음 편하게 술도 마셔? 나도 좀 즐길 수도 있지. 네가 있을 때, 정말 오랫동안 술 마시고 싶었는데도 참았거든!”김승철의 말에 김준은 기뻐하며 김서준을 돌아보았다.“아빠, 정말요? 정말 절 데리러 온 거예요?”“응, 맞아.”김서진은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승철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아셨어요?”“데려갈 줄 어떻게 알았냐고?”김승철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두 아들딸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니 꼬맹이도 데려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김승철은 사실 김서진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승철은 감격스러운 말투로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