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김서진이 말했다.김서진은 가까이서 자세히 보았다.“이 사람은... 왕자님?”“Y국 왕자님인가요?”김서진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이며 확실하지 않다는 듯 애매하게 말했다.진가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맞아요, Y국 로사왕자님이고 여왕님의 큰아들이에요.”“진가연 씨 아버지가 보낸 거예요?”김서진은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했다.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아버지가 직접 나서기 애매한 데다가 또 자주 김서진 씨한테 오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에 제가 겸사겸사 소식을 전하러 왔어요. 요 며칠 로사왕자님께서 H국으로 올 거예요.”“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긴 해요.”하지만 모든 관심, 몸과 마음이 모두 한소은 쪽에 있었기 때문에 김서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게다가 왕자는 올해까지 마흔이 되도록 여전히 왕자에 불과할 뿐이었고 여왕은 조금도 물러날 마음이 없는 듯했다. 더구나 여왕에게는 아들이 많았기 때문에 왕자는 그저 이름만 왕자인 데다가 가끔 타국을 방문할 뿐 실권은 없었다.“아버지께서는 그게 계기가 될 거라고 하셨어요.”진가연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지만 사실 진가연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계기라고 하는지 말이다.물어봐도 진정기는 그저 진가연더러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이해할 필요 없다고, 말만 전하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김서진이라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진가연은 호기심에 물었다.“서진 씨,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김서진은 뭐라고 읊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알겠다고요? 정말 알아요?”진가연은 깜짝 놀랐다.“왜 다들 알고 있는 거죠? 저는 왜 모르는 거죠? 왕자님께서 H국을 방문하는 것이 소은 언니를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맞아요.”이렇게 말하면서 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진은 계속해서 말했다.“가연 씨 아버지는 이 왕자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나요?”“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 말에
“그건 진가연 씨 아버지께서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 말을 들으면 돼요.”김서진이 말했다.“네.”진가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알 듯 말 듯 말했다.“두 분 사이의 일은 제가 잘 모르니까 됐어요. 저는 그저 말만 잘 전달했으면 돼요.”“참, 서진 씨랑 소은 언니의 두 아이가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좀 봐도 될까요?”진가연은 흥분한 듯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저는 아직 이란성쌍둥이를 본 적이 없어요.”“위층에 있어요, 지금 깨어났는지 모르겠지만요. 가서 보세요.”김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진가연은 사양하지 않고 일어나서 바로 위층으로 달려갔다.“계단에서 좌회전해서 세 번째 방이에요...”김서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가연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위층으로 뛰어 올라간 진가연은 빠른 속도로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은 데다가 두 아이는 이미 깨어나서 펑펑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가장 흥미로운 건 방안에는 원철수와 임상언 두 명의 남자만 있고 하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분유를 타러 갔는지 아니면 물건을 준비하러 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진가연이 들어섰을 때, 임상언이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진가연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이미 울음을 그친 뒤여서 매우 귀여웠다.하지만 원철수 쪽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이는 슬퍼서 울고 있었고 원철수도 정신없이 바빴다.“울지마 울지마, 계속 울면 삼촌이 주사 놓을 거야!”원철수가 달래면서 말했다.“주사를 맞은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울어? 배고파? 곧 있으면 아주머니가 분유 가지고 올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만 더...”원철수가 계속 중얼거렸지만 아이가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아이는 목놓아 울기만 할 뿐이었다. 기분 나쁘기만 하면 울기 시작했다.“아이고, 울지 말아줘. 네가 계속 울면 나도 울 거야.”원철수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렇게 낭패한 적은 처음이었다.
“분명 내가 다 달래준 거야. 이제 울다가 지쳐서 안 우는 거고.”원철수는 인정하지 않으며 말했다.원철수는 자기가 오랫동안 달랬지만 결국 진가연의 손에 가니 울음을 그치는 모습을 보고 자기의 체면이 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쳇하며 원철수는 코를 찡그렸지만 진가연은 기뻐하며 얌전히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았다. 핑크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두 볼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근래의 우울함을 모두 씻어내듯 아이들의 웃는 모습은 이 세상에 걱정할 것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가연이가 안는 게 맞아요.”임상언은 옆에서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주사라뇨? 어린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바로 주사인 걸 모르세요?”원철수는 중얼거리며 말했다.“그냥 해본 말이야.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해.”“아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이가 어려도 그런 말은 다 알아들어요, 우리 집 임남이는 어렸을 때 내가 조금만 욕해도 울상을 지었어요.”임상언은 요즘 임남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아마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하지만 임상언은 임남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예전처럼 그렇게 슬퍼하진 않았고 점점 체념하는 것 같아 운철수는 임상언을 말리지 않았다.이렇게 말하는 것이 임상언의 슬픈 감정을 발산해 버리고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리는 좋은 방법이었다.바로 이때 유모가 젖병 두 개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저 왔어요.”유모는 주위를 살피다가 진가연의 품에서 아이를 안아 들었다.“동생이 먼저 먹어야지. 레이디 퍼스트니까.”“너무 편애하는 거 아닌가?”원철수가 말했다.“이렇게 어린데 뭐가 레이디 퍼스트야?”진가연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죠.’아이를 유모의 손에 맡기며 조심스럽게 팔을 빼자 어깨가 조금 시큰거렸다.진가연은 조금 안고 있었을 뿐인데도 어깨에 통증이 느껴져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진가연은 임상언이 하나도 힘든 내색 없이
“원 선생님은 유명한 한의사세요. 모르셨어요?”진가연이 웃으며 말했다.“몰랐어요. 원 선생님 시간 되실 때 저도 맥을 짚어주실 수 있나요?”유모는 단순히 궁금해서 맥을 짚어 보고 싶었다.“당연히 가능하죠.”원철수는 거절하지 않았다.“먼저 아이를 재우고 아무 때나 날 찾아와요.”“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원 선생님.”유모는 기뻐하며 말했다.이 분위기를 이어 원철수는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때 내가 맥을 짚어 줄까?”임상언은 원철수를 흘겨보며 말했다.“미쳤어? 난 병도 없는데 무슨 맥을 짚어?”“아이고. 어떤 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야. 누가 자신한테 병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 맥을 짚어서 진단을 내려야지. 혹시 네 정력이 약할지 누가 알아?”원철수는 농담하며 말했다.임상언은 쳇하며 몸을 돌렸다.“정력은 네가 약하겠지.”“왜 뭐가 질리나 본데?”원철수는 말하면서 앞으로 다가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원철수 따라와 봐.”원철수는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김서진이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무슨 일이야?”원철수가 물었다.“볼 일이 있어서.”김서진은 바로 말하지 않고 한마디를 남긴 채 몸을 돌려 떠났다.“어.”원철수는 그렇게 대답한 뒤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먼저 가 봐야겠다.”원철수는 방을 나서기 전에 임상언을 향해 턱을 추켜 올리며 말했다.“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임상언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원철수의 말을 무시했다.김서진을 따라 밖으로 나온 원철수는 조금 궁금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주효영 씨 일 때문에.”김서진은 고개를 돌리며 원철수를 바라보았다.“지금 나하고 너밖에 없어. 네 생각에는 투명 인간이 가능할 것 같아?”원철수는 무슨 일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왜 너하고 나밖에 없다고 강요하는 거야? 설마 너 못 믿는 사람이라도 있어?”원철수는 바로 생각이 떠올라서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저었다.“누구를 못
두 사람은 모두 침묵했다.잠시 후 김서진이 말했다.“누가 처음으로 주효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지?”“나야.”원철수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나도 문 안을 들여다보고 알았어. 문은 열쇠가 없어서 열 수 없었고. 너 말고 누가 또 문을 열 수 있어?”원철수가 또 물었다.김서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설마 그 사람인가?”원철수는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임상언은 나처럼 주효영을 원망해. 난 임상언이 주효영을 위해 문을 열어줬다는 걸 믿을 수 없어. 더욱더 임상언이 주효영과 한패라서 주효영을 풀어줬다는 건 말도 안 돼.”김서진은 응하고 대답하며 말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우리는 인정하기 전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봐야 해. 네 말처럼 주효영이 갑자기 사라질 수 없고 투명 인간이 됐다고 해도 혼자서는 문을 열 수 없다며.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야. 임상언이 아니라면 분명 다른 주효영의 조력자가 주효영을 도와 문을 열어준 거야.”원철수는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이런 가능성은 없을까? 내가 주효영이 사라진 줄 알고 너한테 연락한 뒤에 우리가 문을 열었을 때 주효영이 도망갔다면?”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여러 사람이 함께 들어가서 텅 빈 방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 앞에서 투명 인간이 도망간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투명 인간 실험에 성공해 그들을 죽일 가능성도 있었다.“불가능해.”김서진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숨결은 느껴져. 그때 내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을 때 안에서는 어떤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고 조금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어. 주효영은 그때 이미 방 안에 없었던 거야.”무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감각이 뛰어났기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숨결과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심장이 뛸 것이고 숨을 쉴 것이다. 그
김서진은 이런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지금은 그들이 한소은을 이용할 가치가 있어서 남겨뒀으니까 주효영이 어떻게 하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김서진의 말에 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냥 두려워.”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원철수는 일을 길게 끌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원철수가 말하지 않아도 김서진이 어떻게 원철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수 있을까?“인내심을 갖고 이틀만 더 기다려보자. 이틀 안에 아마 터닝 포인트가 있을 거야.”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틀?”원철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김서진은 왜 시간을 이렇게 확신하는 걸까?하지만 김서진의 단호한 눈빛을 보더니 더 말하지 않고 그저 물었다.“그럼 이 일은 먼저 그 사람하고 말하지 말까?”원철수는 뒤를 바라보며 집을 향해 눈짓했고 서로 그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먼저 말하지도 말고 괜히 은근슬쩍 떠보지도 마. 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몰라.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그럼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거야.”“그렇긴 하지.”한숨을 쉬며 원철수는 기지개를 킨 뒤 궁금한 표정으로 김서진을 향해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넌 날 의심한 적 없어?”김서진은 원철수의 궁금해하는 표정을 보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말해서 있어.”순간 원철수는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너는 불가능해. 너한테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김서진은 다시 한번 떠올려보며 원철수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원철수를 불러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원철수는 몇 초간 멍하니 있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그래 나한테 그런 기회가 없었던 걸 고마워해야겠네. 네 명쾌한 판단 고마워.”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사실 누구라도 의심이 대상이 될 수 있어. 날 포함해서.”김서진 이 말을 이었다.“내가 한소은을 구하기 위해 주효
저녁에 김서진은 바로 차를 몰고 할아버지의 저택으로 향했다.할아버지는 이미 김서진이 올 것을 예상했는지 따뜻한 차와 간단한 디저트를 준비해 두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왔어?”“할아버지.”“투명 인간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할아버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김서진은 웃으며 할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이미 말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하하하.”할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맞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하지만 난 네 성격을 알잖아.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러 올 줄 알았지. 하지만 네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항상 차리던 대로 차렸으니까 같이 먹자.”할아버지는 김서진에게 차를 따르더니 자기의 잔에는 술을 따르며 천천히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김서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준이는요?”“내가 정원에 가서 놀라고 했어. 나도 네가 올지 안 올지 확신할 수 없어서 네가 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만약 네가 오지 않으면 애가 얼마나 실망하겠니?”할아버지는 김준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김서진은 그 말을 듣고 아이에게 많은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슬프고 죄책감을 느꼈다.“듣자 하니 네 쌍둥이들도 돌아왔다고?”할아버지는 한잔을 마시며 물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원철수가 이미 할아버지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았다.“그래.”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했다.“다음번에는 한소은이겠구나.”“제가 잘 챙기지 못했어요.”김서진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김서진은 차를 운전하고 왔기에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저 차를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뿐이었다.할아버지는 김서진은 위로하는 대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소은이를 잘 돌보지 못했지.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자기 아내를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네가 소은이와 결혼을 했으면 소인이가 안전하도록 잘 챙겼어야지. 소은이가 강하다고 해서 네가 챙길 필요가 없는 건 아니야.
김서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김승철에게 술을 따랐다.“투명 인간일 리는 없다고 하셨잖아요.”“그러니까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그 허세 부리는 사람이 누군지 나도 좀 보고 싶어.”김승철은 눈을 부릅뜨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김서진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잡히면 꼭 뵙게 해드릴게요.”두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서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다.“아빠, 아빠예요?”앳된 목소리와 감격스러운 말투의 김준이었다. 그 조그마한 형체가 바람처럼 빠르게뛰어왔다.하인이 그 뒤를 바싹 따르며 김준을 쫓아다녔다.“아빠, 진짜 아빠네요!”김준은 김서진의 품에 와락 안겨 격한 포옹을 했다.“아빠, 아빠!”“맞아, 아빠야.”김서진도 설레는 마음으로 김준을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김준의 몸에서 나는 우유 향과 젖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이 여리고 자그마한 몸뚱이가 김서진으로 하여금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이 꼬맹이가!”김승철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호통을 쳤다.“네 아빠만 보이냐? 이제 할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지?”“할아버지, 할아버지!”김준은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삐죽거렸다.“할아버지 또 술 마셔요?”“어쭈? 꼬맹이가 내가 술 마시는 것도 참견해?”김승철은 말하면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네 아버지가 널 데려간다는데 내가 마음 편하게 술도 마셔? 나도 좀 즐길 수도 있지. 네가 있을 때, 정말 오랫동안 술 마시고 싶었는데도 참았거든!”김승철의 말에 김준은 기뻐하며 김서준을 돌아보았다.“아빠, 정말요? 정말 절 데리러 온 거예요?”“응, 맞아.”김서진은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승철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아셨어요?”“데려갈 줄 어떻게 알았냐고?”김승철은 코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두 아들딸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니 꼬맹이도 데려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김승철은 사실 김서진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승철은 감격스러운 말투로 말했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