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연의 질문에 서한은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누구도 나를 강요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서로 감정 소모해서 서로에게 좋을 거 없잖아요. 빨리 벗어나는 것이 나아요.”“벗어난다고요? 이제 우리의 결혼은 당신에게 속박이라는 거예요?”오이연이 눈물을 겨우 삼키며 물었다.“오이연!”서한은 이렇게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는 게 흔치 않았다.그는 고개를 들어 오이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약간 차가워졌다.“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설명할 것도 없어요. 그저 내가 남아시아에서 죽었다고 생각해요. 난 당신을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가 잘못한 거예요. 지금,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서한의 눈빛은 너무나 차가웠다. 오이연은 그를 한사코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조금이라도 사랑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차가움뿐이었다.그것은 오이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비록 그가 통제당하고 세뇌 당했더라도, 그런 눈빛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깊게 찔렀다.꽉 쥔 손의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오이연의 살과 가슴을 찔렀다.“아니, 당신은 남아시아에서 죽지 않았어요. 내게 돌아왔잖아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오이연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일어서서 혼인 서류를 들고 서한을 향해 흔들었다.“난 당신이 날 사랑하든 안 하든, 당신이 뭘 위해서 든 간에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이렇게 버틴다면 좋아요. 그럼, 법원에 가서 고소해요! 절차를 천천히 밟아보죠!”말을 마치고 오이연은 몸을 돌려 나갔다.마음속으로는 서한이 말을 바꾸고 자기를 만류할 것이라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그러나 다음 순간에 아주 가벼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서한이 가볍게 말했다. “그럼, 당신 마음대로 해요!”이 말을 들은 오이연은 순간적으로 방어를 깨고 몸을 확 돌렸다.“서한 씨!!!”자신을 등지고 있는 휠체어를 보고, 오이연은 서너 걸음 걸어가 서
그러나 바로 그때, 왜소한 사람은 마치 눈치챈 듯 재빨리 몸을 돌렸다.“이번에는 어때?”남자가 입을 여니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가 갑작스럽게 몸을 돌리자 검은 그림자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검은 그림자의 손은 아직 공중에 떠 있었다.“지난번보다 나아졌어요.”“흥!”남자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웃으며 말했다.“매번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매번 다 나아지지 않았어! 가끔 정말 의심이 들기도 해. 내 병이 너무 어려운 건지, 아니면 네가 너무 어리석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그런 점잖지 않은 조소에도 검은 그림자는 고개를 떨구고 한마디 반박도 하지 않았다.차갑게 그녀를 한 번 곁눈질하며 남자가 몸을 돌리더니 한쪽 팔의 옷을 올리며 팔을 내밀었다.“자!”남자가 콧방귀를 뀌자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 빠르고 민첩하게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다음 바늘을 찔렀다.물약이 혈관을 타고 들어갔지만, 남자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다만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어서 바늘이 뽑혔다.“후…….”한숨을 돌리고 나서 남자는 느릿느릿 옷소매를 다시 걸쳤다.검은 그림자는 바늘을 내려놓고 분주하게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가녀린 뒷모습이 자신을 향하자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내일 아침, 한소은이 여기 와서 우리 부서에 합류할 거야! 두렵지 않나?”등을 돌린 검은 그림자는 잠시 멈칫했다.이내 자기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가 가득했다.“조직에서 왜 그 여자를 그렇게 아끼는지, 왜 그렇게 믿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직의 결정을 존중합니다.”“왜, 불만이 있는 거야?”남자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허허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너는 네가 그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어떤 유리한 증명도 내놓지 못했지.”“나는 내가 기여한 완성품이 조직에 내 능력을 믿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누구보다 조직에 충성심을 가졌다는 걸 사장님도 알거라 믿어요.”그녀가 몸을 돌리자, 반쯤은 빛나고 반쯤은 어둡
‘거짓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니, 주효영의 아픈 곳을 찔렀다.그녀의 얼굴에 매서운 표정이 스쳐 쏜살같이 지나갔다.“이 일은 보스가 계획한 거잖아요.”주효영은 눈꺼풀을 치켜들며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뇌에는 조각난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갔다.자신이 해외에서 유학한 몇 년 동안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뼛속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그녀는 밖에서 탑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지만, 항상 다른 사람에 의해 가로막혔다.지도교수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탑의 실력은 닿을 수조가 없었다.그 연구소들은 항상 그녀를 무시하고 따돌렸다.바로 그때, 이 남자가 나타났다.사실 그 시절은 꿈만 같았다.진가연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뚱뚱하고 몸이 허약하게 만들었다. 모두 눈앞의 이 남자가 그녀에게 준 아이디어였다.하지만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마치 그녀의 앞에 나타났을 때와같이 갑작스러웠다.어떤 때 주효영은 자신이 꿈을 꾼 것인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모든 것이 자신의 무의식인지 의심하기도 했다.그리고 주효영이 거의 잊어버릴 즈음, 이 남자가 다시 나타나 그녀가 탑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무한한 지원을 해주었다.주효영은 마침내 성공했고, 몇 가지 실험 성과에서 모두 큰 성과를 거두었고, 많은 상을 받았다.주효영은 이 실험을 사랑했고, 바이러스와 병리학적 구조에 열중했다.그리고 그 남자는 그녀를 끊임없이 지지했다.어느 날 그는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통제하고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약을 고안해냈다.처음에 그녀는 긴장하고 놀랐다. 이런 아이디어는 듣기만 해도 악의로 가득 차 있었고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효영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동의했다.남자가 그녀의 은인이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뼛속부터 그
창밖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빌딩의 절반의 불이 켜져 있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야근하고 있다. 모두 죽도록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대부분 사람은 사실 그들이 밤낮없이 고안해 낸 것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아니라 사람을 통제하는 정신성 약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이런 것들이 세상에 나와 합법적인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입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모두가 남자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보스, 시치미 떼지 마세요. 여기엔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없어요. 만약 보스가 일부러 임상언에게 원철수를 놓아주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폭로될 수 있었겠어요? 원씨 가문의 사람들이 날 물고 늘어질 일도 없었겠죠.” “사실 이 모든 건 당신의 통제 속에 있잖아요. 나도 그저 바둑알일 뿐이에요.”주효영은 눈동자를 내리깔고, 눈 속의 감정을 숨기고 목소리 또한 유난히 평온했다.남자는 주효영의 목소리에서 기쁨과 분노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그들이 계획한 바둑알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맞아, 그들!’이 조직은 절대 그녀와 보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게다가 보스는 바로 가장 큰 두목도 아니었다.그녀는 조직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보스의 배후에 더 대단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녀가 알아내고 볼 기회가 없었다.그녀는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건 마지막 실험의 성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위기를 느꼈고, 조직은 그녀를 퇴장 시키려는 것 같았다.몇 초간 침묵이 흐르자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알아차렸어?”그는 부인하지도, 인정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효영에게 반문했다.이 말은 그녀가 추측한 것이 맞는다는 것을 설명한다.원철수는 확실히 그가 일부러 놓아준 것이다.“보스, 제가 몇 년 동안 보스 곁을 지켰는데 조직의 실력은 제가 아직 모를거라 생각해요? 만약 보스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임상언 씨가 어떻게 그 사람을 그렇게 쉽게 놓아줄 수 있겠어요?”“게다가
아침 8시, 김씨 집안 저택 앞에 검은색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이와 동시에 한소은의 휴대폰도 울리기 시작했다.한소은은 위에 반짝이는 번호를 한 번 보고 눈동자를 늘어뜨리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물건을 들고 컵에 남은 우유를 마신 후에야 김서진에게 말했다.“나 간다.”“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멈추고 언제든 연락해.”할 말은 이미 다 했으니 김서진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이 한마디만 신신당부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들어 문밖으로 걸어가려고 했다.“소은아.”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한소은은 걸음을 멈추었다. 김서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를 꽉 껴안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껴안기만 했다.김서진의 품은 매우 따뜻했고 마음을 달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소은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이 순간의 아늑함과 고요함을 즐겼다.사실 그들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것은 매우 잔혹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정세에 쫓겨 누구도 물러설 권리가 없었던 것이었다.“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한소은은 김서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은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더 이상 미룰 필요도 없었다.김서진은 손을 떼어 팔을 내렸고 다시 그녀의 한쪽 손을 잡아당겼다.“내가 바래다줄게!”“…….”한소은은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김서진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입가에 닿은 말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가자!”김서진은 한소은의 손을 꽉 잡았고 손바닥에는 뜻밖에도 땀이 살짝 배어 있었고 표정도 매우 엄숙했다.김서진이 이렇게 긴장하는 것을 보기 드물어 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을 가볍게 긁어 그를 좀 편안하게 하려고 했다.김서진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를 보지도 않다. 단지 그녀의 손을 좀 더 꽉 잡았다.문 앞에 이르자 임상언은 이미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도
“네!”이어폰의 소리는 사라졌다.확실히 필요 없었다.그들이 감히 이렇게 당당하게 사람을 데리러 온 이상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게다가 그들은 매우 교활해서 이전의 CCTV에서도 그들의 동선이 거의 찍히지 않았고 김씨 가문의 인맥으로 조사해도 종종 잃어버렸다.하지만 지금은…….이미 더 이상 미행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엄연히 공개적인 위치에 섰고 그 백신 연구 개발 기지는 가장 큰 은신처였다.김서진은 몸을 곧게 피고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자기 아내는 이미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갔고 자신도 가만히 있을 세 없이 많은 일들이 그가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김서진은 뒤돌아 집으로 돌아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카펫 위에 앉아 열심히 레고를 맞추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다가가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엄마 또 갔어요.”김준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손의 동작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고 진지하게 모형 위치를 겨누고 있었다.“응.”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의 말을 따라 말했다.“엄마가 곧 돌아올 거야.”“아니요.”작은 입에서 이 한 마디가 튀어나오자 그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을 까발랐다.“엄마는 아주 오래 있어야 돌아올 것이에요!”김서진은 조금 뜻밖이어서 눈을 크게 뜨고 한 손으로 턱을 괴며 고개를 기울여 아들을 보았다.“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그랬어?”김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얼굴을 돌려 아버지를 마주했다.“엄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해요. 전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어린…… 사나이에요! 철들어야 하고 자라야 합니다!”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략적인 뜻을 알 수 있었지만 일관되게 표현하기에는 좀 어려웠다.작은 어른 같은 아들의 말에 김서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너는 어린 사나이야. 철이 들어야 해!”하지만 다음 순간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문질렀다.“그런데 급하지 않아. 어른이 되는 것은 과정이 필요해.
녀석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 표정은 뜻밖에도 그의 아버지와 유난히 비슷했다.“아빠도 저를 버리려고 하는 건가요?”“콜록콜록-!”자기 아들의 한마디에 김서진은 좀 난감해했다.그는 손으로 주먹을 쥐어 입가에 대고 가볍게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난감함을 숨겼다.“아빠는 너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야. 아빠는 단지…….”“아빠, 가세요!”김준은 아주 멋지게 작은 손을 흔들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앉아 그의 레고를 계속 맞췄다.“저는 착하게 있을게요!”간단한 몇 마디로 김서진이 아직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단어들을 모두 막았다. 그는 아들의 작은 모습을 보면서 무한한 감회와 미안함을 느꼈다.최근 이 기간 동안 정말 김준과 함께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전에 한소은이 그에게 장유나의 일을 말한 것도 아이의 곁에 여전히 이런 잠재적인 위험이 숨어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있어서 그는 정말 빚진 것이 많았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에 비해 아들은 분명히 어르신 곁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쪽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준아, 엄마 아빠가 일 끝나면 꼭 곁에 있어 줄게. 어때?”김서진은 손을 들어 아들의 머리를 비비며 부드럽게 말했다.“좋아요!”시원시원한 대답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김서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아파요, 아파요…….”울부짖는 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고 정원의 새들은 놀라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쯧쯧, 함부로 움직이지 마!”원 어르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한 손에는 반짝이는 은색 바늘을 쥐고 있어고 조금 짜증 나 했다이놈의 체력이 회복되기 시작한 후부터 예전처럼 그렇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주사를 놓으면 자꾸 꼼지락거려서 짜증이 나 한 방에 찔러 죽이고 싶었다.“둘째 할아버지, 제가 함부로 움직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말 아파서 그래요! 잘못 찌르신 게 아닌 거 확실하지요?”원철수는 입을 삐죽거리며 억울해했다. 그 아픔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정말 그가 움직이려
“너 도대체 끝이 있어 없어. 네가 그 무슨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발작하면 이것보다 더 아프지 않았어? 그런데도 네가 이렇게 지르는 것을 못 봤는데! 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아니요. 둘째 할아버지 계속하세요. 안 지를게요!”원철수는 고개를 숙여 수건을 한 입에 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통증은 이전 바이러스 발작할 때의 통증과는 전혀 달랐다. 이전은 폭발적이었고 몸 안의 세포는 단번에 분열되어 폭발한 것과 같았다. 온몸은 잡아당겨지면서 아파도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힘은 근육이 잡아당겨지는데 소모된 것 같아서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다.하지만 어르신이 침을 놓는 이런 통증은 지속적이었고 끊임없이 조금씩 뼛속으로 스며들어 통증으로 인해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르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 손에는 바늘을 쥐고 다른 한 손은 경혈의 가장자리에 가볍게 몇 번 눌렀다.솔직히 어르신도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증의 원인은 침술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은색 바늘 위에 있는 약물과 경혈 자리가 흡수하여 상호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약효를 더 잘 발휘하고 체내에 남아 있는 독을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바로 이때 가사 도움이가 와서 보고했다.“어르신, 작은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소은이가 왔어?”잠시 멍하니 있다가 원 어르신은 좀 놀라했다.‘왜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바로 왔지?’‘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작은 녀석까지 데리고 오다니?’어르신은 순간 기뻐서 손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옆의 살에 찔렀다.“우…….”원철수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끙끙 소리를 냈다.그도 들었고 마음속으로 심지어 기뻐했다.‘만약 한소은이 왔다면 그녀가 인수하여 계속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렇게 아프지 않겠지?’그러나 그다음 말은 어르신을 실망시켰다.“아니요. 김 선생님께서 작은 도련님을 데리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