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사람으로 실험하다니!’비록 숫자로 이름을 대체했지만, 적힌 수치와 반응 등등으로 봤을 때 분명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이 실험 기지는 그녀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었다.한소은은 두려움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데이터를 보면 볼수록 무서웠고 섬뜩했다.그 순간, 손 하나가 한소은의 어깨에 다가갔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손에 깜짝 놀란 한소은이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 김서진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왜 올라왔어요?”한소은은 멈칫하다 정신이 들었는지 김서진에게 다시 물었다.“일은 다 처리했나요?”“왜 그래요?”김서진은 데이터 내용을 보지 못했다. 그저 한소은이 정신을 놓으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만 보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데이터 좀 확인하고 있었어요.”한소은은 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전에 사람을 시켜 실험 기지의 데이터를 해킹해 달라고 했었어요. 오늘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역시 내가 예상했던 것과 같아요. 이 사람들, 불법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독을 실험하고 있었단 말이에요?”김서진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그것 뿐만이 아니 에요.”한소은이 대답했다.“사람을 상대로 실험하고 있었어요. 지금 진 부장, 원철수 그리고 서한 씨까지, 모두 그들의 실험 상대가 아닌지 의심이 들어요.”“서한도요?!”서한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김서진은 조금 놀랐다.서한이 국내로 돌아오고 나서 조금 이상해지긴 했지만, 김서진은 아직 그의 이상함이 실험 기지와 연관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맞아요.”한소은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컴퓨터에서 일부 화면을 김서진에게 보여주었다.“이것 봐요. 이거 모두 잠긴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내용들이에요. 그들이 특수한 약으로 실험하고 있었고, 이 약품들은 모두 사람의 중추신경과 신체 기능을 통제하는 약들이에요. 약의 성분
“웃긴다고요?”김서진을 바라보면서도 한소은은 웃지 않고, 오히려 진지하게 물었다.“웃기지 않나요?”김서진이 한소은에게 되물었다.“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과학 기술이 이렇게나 빨리 발전하고 최첨단 무기들도 수없이 많아요. 이런 시대에 사람의 마인드를 컨트롤하다니! 그 사람들은 정말 이런 거로 세계 정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지구에 몇 십억의 인구가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약을 먹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잖아요.”“정말 모두가 약을 먹게 되었다고 해도 100% 마인드 컨트롤에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난 그들이 헛된 꿈을 꾼다고 생각해요.”김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야심과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한소은의 생각은 달랐다.“그렇지만은 않아요. 안될 거도 없죠.”그녀의 말에 김서진은 어리둥절했다.“세계를 정복하려 사람의 마인드를 컨트롤한다면, 굳이 모든 사람의 마인드를 컨트롤할 필요가 없어요.”한소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정말 세계를 정복하거나 일부 나라를 정복하려면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약을 먹여 그들의 말을 듣게 하면 그만이죠.”한소은이 이렇게 말하자 김서진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당신 말은…….”두 사람이 말을 마저 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원래 전화를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집요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한소은은 무시할 수 없었다.그녀는 김서진을 슥 보더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오이연이 보낸 문자였다.“소은 언니, 서한 씨 집에 돌아왔어.”“그가 문 여는 소리를 들었어.”“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해.”한소은은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 대장을 보내지 않았다.오이연이 지금 매우 긴장한 상태 일거라 생각했고 자신의 답장을 보낸 소리가 오히려 방금 집에 도착한 서한이 눈치채게 할 수 거로는 생각했다.문자를 확인하고 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김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서한 씨가 집에 돌아왔
문득 뭔가 떠오른 한소은이 급히 김서진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거 같아요!”갑자기 일어서서 인지, 감정이 격해져서 인지 아니면 최근 너무 힘들어서 인지 순간, 한소은은 배가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쓰읍…….”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한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허리가 서서히 굽어졌다.“왜 그래요?!”그 모습에 김서진은 깜짝 놀라 급히 한소은을 부축했다.그러고는 잔뜩 긴장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배가 아픈 거예요?”한소은은 아픔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으로 김서진의 옷깃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를 부여잡으며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통증은 아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아팠다. 마치 무언 가에 잡아당긴 것처럼 한소은 배 속의 아이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태동이 강렬했다.“병원에 가요!”김서진은 많이 당황한 얼굴로 한소은에게 말했다.언제나 냉정하고 자제력이 넘치던 그가 한소은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한소은이 김준을 낳을 때 매우 순조로웠다. 임신할 때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김서진은 마음이 아팠다.김준을 금방 나았을 때, 창백했던 한소은의 모습과 많이 허약해진 그녀의 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한소은이 아파 해하자, 그날의 기억들이 김서진의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심지어, 김준이 태어나던 날, 의사가 순산 도중 일어날 수 있는 위험들을 알려줬던 내용들도 생각이 났다.김서진은 마치 금방이라도 한소은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는 기사에게 차를 준비하라 일러 두고 급히 병원에 연락했다.마음이 너무 급했던 그는 한소은이 자기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것을 발견하지도 못했다.한소은이 김서진의 손을 세게 잡아당기고 나서야 그가 고개를 숙여 한소은에게 물어보았다.“왜요? 많이 아파요? 조금만 참아요. 바로 병원에 갈 거예요!”그러면서 한소은을 번쩍 안아 들고 밖으로 걸어가려 했다.“아뇨!”원
차는 곧 병원에 도착했다. 오기 전에 먼저 병원에 연락을 해두었기 때문에 한소은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검사를 진행하면서 한소은은 너무 요란을 떤다고 생각했다.“검사 결과를 봐서는 크게 이상이 있는 부분이 없어요. 그저 휴식이 부족해서 몸이 조금 허약해진 것 뿐이에요.”의사가 결과 보고서를 보면서 김서진과 한소은에게 말했다.“그리고 일부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없을 거예요.”이 결과를 들은 김서진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고, 한소은은 그의 안도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거 봐요. 괜찮다고 했잖아요.”“괜찮으면 다행인 거죠. 하지만 의사 선생님도 그랬잖아요. 당신 휴식 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몸이 제일 중요한 거 알죠?”김서진은 한소은에게 혼내듯 말했다.“나도 알아요!”한소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다 이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 김서진이 자기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한소은 자신도 의술을 배운 사람으로서 지금 자기의 상태가 어떤지 모를 리가 없다.하지만, 최근에 발생한 일들은 어느 하나 쉽게 놓을 수 없는 일들이다.“안다고요?”김서진은 미간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정말 알긴 아는 거예요?”“그럼, 몰라야 하는 건가요?”한소은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반농담으로 대답했다.다른 일은 몰라도, 한소은의 건강에 관련된 일이라면 김서진은 더 없이 고집이 세지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게 된다.“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휴식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김서진은 작게 기침을 한번 하고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에게 물었다.“입원할 테니 준비해 주세요.”난데없는 입원 소식에 한소은은 어리둥절해 졌다.“괜찮다는데 입원은 왜 해요?”옆에 서 있던 의사도 어이가 없었는지 작게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그래요. 지금 상황으로는 집에 돌아가서 푹 쉬기만 하면 돼요. 굳이 입원할 필요가 없다는
“정말요?”김서진은 한소은을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당연하죠!”그가 믿지 않을까 봐 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못 믿겠으면 맹세라도 할까요?”김서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걸 보고 한소은은 손을 번쩍 들어 맹세하기 시작했다.“집에 가서 푹 쉬겠다고 맹세할게요. 만약 이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난…….”한소은이 말을 마치기 전에 김서진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안 좋은 말은 막 하는 거 아니에요!”김서진은 다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건지 참…….”“그러면 이제 믿는 거죠? 이제 집에 갈 거죠?”김서진이 한발 물러선 게 보이자, 한소은은 손을 내려놓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한소은은 그가 자신을 막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행여나 정말 말이 씨가 될까, 김서진은 한소은이 맹세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한소은도 그저 김서진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말을 꺼낸 것뿐이다.이 시점에 입원한다면 한소은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어디도 못 가는 건 둘째 치고 정말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난데없이 입원한다면 한소은은 심심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물론,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한소은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최대한 힘들지 않게 조절하겠지만, 한소은더러 모든 일에서 손을 떼라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다.이걸 김서진이 모르는 건 아니다.다만, 한소은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았기에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강제로 입원을 해서라도 그녀를 며칠동안 푹 쉬게 하고 싶었다.한소은의 부드러운 눈과 예쁜 웃는 얼굴을 마주하면 김서진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녀를 마주하면 그는 항상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알겠어요. 하지만 잘 쉬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약속 지켜야 해요. 너무 힘들게 모든 걸 혼자 떠안으려 하지 마요. 지금 당신은 혼자가 아니잖아요. 배속 아이들의 엄마이고, 우리 준이의 엄마이도 해요. 준이는 아직 엄마의 사랑
한소은은 저번에 두 사람이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명백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속에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고 더 이상의 만날 일도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오늘 여기로 그가 찾아올 거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당신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라는 거 알아요.”임상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기를 비웃었다.“당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미안했어요.”“임상언 씨.”약을 받아온 김서진이 한소은에게 급히 달려오며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임상언을 보았다.그래서인지 김서진은 더욱 빨리 달려왔다.하지만, 전과는 달리 임상언에게 예의를 차리는 듯 했지만, 김서진의 얼굴에는 얼음이 서려 있는 듯 차가웠다.“임상언 씨가 여긴 웬일이세요?”물론, 그들이 이것이라는 걸 임성언은 진작에 진작 예상했다.임상언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전에 내가 한 짓이 당신들에게 미안한 짓이라는 거 잘 알아요. 당신들에게 용서해달라고 안 해요. 다만, 오늘 내가 온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에요.”“정말 중요한 일인지, 아니면 함정을 파는 것인지 어떻게 알아요? 임상언 씨, 당신이 우리 서진 씨와 그냥 오랜 시간 함께 협력해 온 비즈니스 파트너 일 뿐이에요. 우리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죠?”한소은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들의 용서를 빌어 온 게 아니에요. 나를 믿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을 당신들에게 알려야 할 거 같아서 온 거에요.”“이 조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곳이에요. 내가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임상언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가득했다.다만…….“죄송하지만, 당신이 한 말에 관심 없어요.”김서진은 한쪽 팔로 한소은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쪽 팔로 임상언 앞에 막아 나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길 막지 말고 비켜요!
멱살이 조금 풀린 임상언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지며 옷깃을 다시 정리했다.그제야 상기된 얼굴색이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김서진의 눈빛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방금 한 말, 그게 무슨 뜻이야?”“임남이 납치되었다는 뜻이겠죠.”한소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홱 돌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사실을 처음 안 김서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오늘 임상언이 찾아오기 전에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김서진이 알 리가 없었다.나중에는 비즈니스로 바빴고, 남아시아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상황에 부닥치다 보니 다른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한소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김서진은 머리가 멍해 졌다.다만, 당사자인 임상언은 오히려 담담한 얼굴이었다.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기가 스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우리 다른 데로 가서 얘기해.”그러고 나서 좌우로 한 번 살펴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여기서 할 얘기가 아닌 거 같아.”확실히, 그들이 하려는 말은 이런 공적인 장소에서 크게 토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김서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한소은은 한발 앞서 그의 팔을 내리며 임상언에게 말했다.“다른 장소도 문제없지만 장소는 우리가 정해야 해요!”전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한소은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임상언도 당연히 한소은이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다.지난번 이후로 그녀는 자기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원망할 것도 없다.결국 모든 것을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좋아요!”임상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한소은이 선택한 곳은 병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조용하고 미팅 룸이 따로 준비되어 있으며 회원제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여긴 김서진 명의 하의 산업이었다.한소은은 이런 곳에서는 임상언이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거나 무슨 수작을 부릴까 두렵지 않았다.임상언은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이의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인맥과 자원으로 어떤 사람의 행방을 찾으려면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다.만약 이런 경우 국제적으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게 된다. 거액의 현상금에는 반드시 언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찾을 수 없었어.”임상언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이 말만 반복했다.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정말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면, 내가 그렇게 그들에게 휘둘리겠어?”침묵이 흐르고, 김서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임상언에 대해 수년간 알고 있던 바로는, 그는 당연히 남에게 휘둘려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그가 그렇게 쉽게 머리를 숙였다면 사업을 지금처럼 크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파트너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가 지금 이러는 것은 틀림없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을 것이다.정말 방법이 없으니, 그들에게 구속당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옆에 있던 한소은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하려다 멈췄다.김서진은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봐요.”“…….”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의문을 제기했다.“혹시, 임남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본 적…….”한소은은 차마 뒤의 말을 할 수 없었다.자기 자신도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아이의 아버지인 임상언은 더 말할 것도 없다.김서진도 가슴이 덜컹거렸다.이것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만약 정말 살아 있다면 어떻게 조금의 단서도 없을 수 있겠는가?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아니, 남이는 살아있어. 틀림없이 살아있어!”임상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비록 그는 초췌하고 의기소침해 보였지만, 아이의 생사를 언급하는 것은 조금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매우 확고했다.“일정 간격을 두고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 번 할 수 있었어요. 그때마다 특정된 행동을 하도록 유도 했죠. 예를 들면 내 말을 따라 하게 하던가 어떤 동작을 하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