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에 김채림의 기분이 약간 가라앉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방금 봤던 시신의 시각적 충격이 너무 강해서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생각하지 마요.”그녀의 한쪽 귀를 막고 가볍게 품에 안으며 원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김채림은 발버둥 치며 몸을 돌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원상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주효영이 정말 죽었을까요?”“나도 모르겠어요.”“어떻게 그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죠? 하필 우리가 그 여자를 찾으러 갔을 때 사고가 났어요! 더구나, 우리 사람들은 분명히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 여자가 버려진 공장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공교롭게도 폭발하는 사고 일어났는지, 모든 게 다 수상해요. 마치…….”김채림이 말끝을 흐리자 원상철이 물었다.“마치 뭐요?”김채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마치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나요?”“당신 말은 그들 부부가 연기를 한다는 건가요?”사실 원상철도 이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주현철 부부는 정말 음침한 사람이다.원상철은 이미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고 모두 비밀리에 진행하게 했다. 그런데 주현철이 어떻게 진작 알아차리고 그들이 대응하려 이런 일을 꾸몄을까?게다가 이런 일을 꾸며 주효영이 가짜로 죽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지만 김채림은 남편의 생각을 읽은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들이 연기를 하는 거 같지는 않았어요. 만약 정말 연기를 한 것이라면 너무 무섭지 않나요? 연기대상을 받아도 될 만한 연기인걸요! 전에 유해나라는 사람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방금 유해나가 시신에 덮쳤을 때 바로 기절했었다. 그건 연기로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그들의 연기가 너무 좋아 속아
차가 원청현의 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진 후였다.도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도시의 번쩍이는 네온등이 없어 조용하고 온화했다.오는 길에 원상철은 먼저 원청현에게 전화를 했었다.아니나 다를까 원상철이 입만 열었을 뿐인데 바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주효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멈칫하는 것 같았다.나중에는 한참 침묵하다 그제야 그들이 가는 걸 막지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오는 길에 미행당하지 말라고 당부만 했다.그래서 그들이 원청현의 정원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다.두 사람을 태운 차는 소리 없이 들어와 멈춰 섰다.원상철이 차에서 내릴 때 그들의 차 옆에 또 한 대의 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낯선 번호의 고급 차가 있었다. 원상철은 이상하다 싶어 두어 번 더 보았다.‘손님이 있나?’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있었다. 원청현의 집에 손님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었다.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이니 더욱 이상했다.오기 전에 원청현이 물어보지 말아야 하는 건 묻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원상철은 다른 말 없이 아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원청현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그러자 원상철은 더욱 의심이 들었다.분명 낯선 차가 있는데 손님이 없다니?“이 늦은 시간에 굳이 오겠다고 난리냐?”원청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둘째 삼촌,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방금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원상철이 말을 마치기 전에 원청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됐어, 이상하긴 무슨! 너희 두 사람이 아들 보고 싶어서 온 거잖아!”이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자, 원상철의 얼굴이 뜨거워졌다.반면, 김채림은 그다지 게연쩍어하지 않았다.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둘째 삼촌 말이 맞아요. 난 아들이 보고 싶어서 온 거에요. 내가 낳은 자식이고 어려서 부터 부족할 거 없이 키웠어요. 이렇게 마음 아플
“주효영이 정말 죽었다고?”어디선가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자, 원상철은 어리둥절하여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어떤 여자가 뒷마당에서 걸어 들어오며 손의 먼지를 툭툭 털로 옆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서 수건으로 닦는 모습이 보였다.원상철은 그렇게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그 여자가 자기 앞으로 다가와서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원청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둘째 삼촌, 이분은?”원청현은 코를 쓱 만지더니 말했다.“내 제자야.”“안녕하세요. 한소은이라고 합니다.”한소은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원상철은 한소은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졌다.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원청현이 한소은보고 제자라 부른 것이다.그렇다는 건, 자기 눈앞의 이 여자가 바로 원청현의 마지막 제자라는 말이다.‘둘째 삼촌의 마지막 제자가 여자였어?!’원청현의 가장 친한 친척으로서 그가 마지막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당연히 소문으로 돌던 자기 아들이 마지막 제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밖에서는 다들 원철수가 마지막 제자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고, 원청현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지금 그가 주동적으로 인정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방금, 주효영이 죽었다고 했나요?”멀리서 들어서 인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한소은이 다시 물었다.“밖에서 들어오면서 살짝 들었거든요.”“당신도 주효영을 아세요?”원상철은 흠칫 놀랐다. 원청현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맞아요. 나와 내 아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어요. 그 폐기된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들것에 실려 나온 사람이 주효영이라 하더군요.”“직접 보셨다고요?”한소은은 놀라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이렇게 쉽게 죽었다고?’원상철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바꾸었다.“음…… 그러고 보니 확실하게 단정 지지는 않았어요. 그 시신은 불에 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거든요.”“그렇다면 당신은 그 시신이 주효영이라는걸 어떻
독인 만큼, 분명히 해독제가 있을 것이다.독을 쓴 사람을 찾는 게 해독을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망” 하다니?이렇게 큰 변수가 일어나니 그들은 모든 희망을 원청현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원철수 몸에 있는 건 독이 아니라 촉매제입니다.”이 말 한마디에 원상철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원상철은 두 눈을 깜빡이며 자기가 들은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촉매제? 그게 뭐지?’“미안한데 촉매제가 뭡니까?”촉매제라는 단어를 그는 처음 들어본 것이다.“설명하자면 중독된 것과 비슷해요. 이것도 사람의 몸을 해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반 약품과는 달리 촉매제는 사람 몸의 세포를 가속 성장 및 분열을 하게 만들어요. 이로 하여금 사람의 신체 능력을 올리고 여러 방면의 수치를 최고로 만드는 것이죠.”한소은은 잠시 생각하다 그들이 이해할 만한 말로 설명해 주었다.그러자 원상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머뭇거리다 되물었다.“그럼, 흥분제와 비슷한 건가요?”“아니요. 비슷하긴 하지만 성질은 완전히 달라요.”한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어 갔다.“아무튼, 사람 몸속의 세포 분열과 성장을 최고 속도로 끌어 올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요. 원래 세포 분열과 성장에는 고정적인 규칙과 주기가 있는데 지금 약물로 그 주기를 강제적으로 속도를 높인 거예요.”“그렇기 때문에 지금 원철수가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지만 원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어요. 그래서 지금 많이 허약한 상태에요. 세포가 한계치를 넘는 성장 속도를 보였으니 지금 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한소은은 두 손으로 밧줄을 꽉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지금 원철수의 몸이 바로 이런 상태다. 조금만 더 잡아당기면 한계치를 감당해 내지 못해서 툭 끊어질 수 있는 상태다."짐승! 이런 짐승들!"원상철이 주먹을 꼭 쥐고 원한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지금 자기의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대충 알 것 같
원상철은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에게 큰 일격을 가했다.한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안타깝지만 방법이 없어요. 약 성분이 이미 완전히 원철수의 몸과 융합되었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 손쓸 수 없는 상태에요.”“뭐라고요?!”한소은의 말은 원상철에게 있어서 의심할 여지 없이 심각한 타격이었다.원상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되었고, 그는 허둥지둥 원청현을 바라보았다.“둘째 삼촌, 둘째 삼촌, 당신이 말 좀 해 보세요. 해결할 방법이 정말 없는 건가요? 삼촌은 신의 잖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구하셨으니, 철수도 반드시 구할 수 있겠죠?”“어휴…….”원청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답을 주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다 한소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촉매제가 어떤 치명적인 독은 아니라는 거예요. 당분간은 목숨에 지장이 없을 거예요.”“다행은 뭐가 다행이에요? 지금 철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어요!”원상철은 한 손으로 위층 방향을 가리키고 가슴 아파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슬픔과 괴로움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더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원상철은 차라리 자기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그의 정서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아내를 달래기 위해, 아내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게 하기 위해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이 말을 들으니 순간 심적 방어선이 무너지고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확실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죠.”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촉매제의 작용은 사람의 세포 속도를 올리고, 원래의 법칙에 어긋나게 해요. 인위적인 간섭은 원철수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그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을 뿐, 근본을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려워요.”“덜 고통스럽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절이라도 할게요!”고개를 번쩍 치켜든 원상철의 눈은 환해졌다
“얼마나 많은 보물을 망가뜨렸는지 내가 원가의 두 배로 배상할게요. 하지만…….”한소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작게 치켜 올렸다.“내가 말한 것이 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음…….”말끝을 길게 늘어뜨린 원청현은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는다.“네가 너무 급하게 와서 내가 너 한테 물어볼 겨를도 없었네. 그쪽은 어떻게 되었어?”“이미 끝났어요. 해독제를 성공시켰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었겠어요.”한소은은 아주 가볍게 대답했다.“정말이야?”원청현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너희 쪽에서 스파이가 생겼다고?”한소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원청현이 이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짝 비비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곰곰이 생각했다.“사부, 거기에 사람을 심어 두신 거예요?”“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특수 조직인 것처럼 말하네!”원청현은 허벅지를 두드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건 내 문하생이 천하를 다 돌아다니는 거지!”한소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뒤집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네네네, 스승님의 제자가 하늘 아래 가득한데, 당연히 제자가 말해줬겠죠! 그럼, 그 제자들이 실험 기지의 그 사람들이 어떤 세력인지, 세상을 통치하려는 건지 아니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건지 말해줬나요?”원청현이 수염을 비비며 말했다.“철수 그 자식이 말한 적이 있긴 있어. 그들은 정말 바이러스를 개발해서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하지만 그들이 지금 만들어 낸 이런 것들은 이유를 모르겠어. 요즘 기승을 부리는 전염병과 철수의 몸에 있는 촉매제? 이런 것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당연히 말이 안 되죠. 다만, 일부 사람은 없앨 수 있을 거예요.”한소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전에 실험기지에 있을 때 그들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들이 단지 이런 바이러
김준은 눈을 비비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엄마…….”“왜 또 일어났어?”한소은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김준을 안았고, 아이를 자기 몸 옆으로 끌어당겨 앉혔다.요즘 그녀의 배가 좀 더 나와 그를 안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밀쳐내지는 않았다.“엄마가 다시 간 줄 알았어요.”김준은 엄마의 품에 폭 안겼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는 마음속의 불안함을 들어냈다.한소은은 마음속으로 약간 미안해 했다. 최근 확실히 아들을 소홀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헤어졌으니, 아이는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그러나 김준은 철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 가! 엄마 이제 어디도 안 갈 거야. 우리 같이 집에 가자.”김준의 머리를 비비며 한소은이 부드럽게 말했다.집에 가자라는 말을 듣자, 녀석의 눈이 번쩍 뜨였다.“정말?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물론이지.”김준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한소은도 기뻐서 말했다.“네 아빠도 돌아왔으니 드디어 우리 가족이 모일 수 있어.”“좋아요!”이 말을 들은 김준은 더는 참을 수 없이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이를 본 원청현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김준을 막으며 말했다.“아이고, 이 놈아! 조심해!”간신히 뛰어다니려는 아이를 막아 다시 자신의 품에 안으며 원청현은 한소은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정말 준이를 데려갈 거야?”‘참 나, 이 영감 탱이. 지금 준이가 아쉬워서 이러는 건가?’“아님, 준이를 몇 달 더 보살펴 주실래요?”한소은은 농담조로 말했다.그러자 원청현은 또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됐어 됐어, 네가 그냥 데려가!”한소은은 웃기 시작했다.“사부, 아직도 그렇게 삐치는 걸 좋아하시네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일어서서 위층 방향으로 걸어갔다.“어휴…….”원청현이 막 입을 열려고 하자, 김준은 한소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녀가 갈까 봐 서둘러 쫓아가려 했다.그러자 한소은은 몸을 돌려 입술 앞에 손가락을 대
하지만 이 큰 방은 텅 비어 있었다.임상언이 방안을 둘러보며 남자의 모습을 찾고 있을 때 책상 뒤의 의자에서 왜소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임상언의 앞으로 걸어갔다.“무슨 일이야?”“주효영이 죽었답니다!”임상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 소식을 받았을 때 임상언도 충격을 받았다.심지어 이것이 가짜 소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속이려는 속임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소식의 출처와 현재 밝혀진 정황으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나도 알아.”남자가 고개를 들어 임상언을 바라보았다.가면 뒤의 눈은 약간 실눈을 뜨고 있었고 약간 불쾌해 보였다.임상언은 곧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몸을 웅크려 그보다 한 계단 낮게 앉았다.그제야 남자의 눈이 만족스러운 눈빛을 드러내었다.“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왜 멀쩡하던 공장이 폭발한 것일까요? 그동안 그렇게 많은 실험을 했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 그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 아닐까요?”임상언이 남자를 떠보며 물었다. 그는 이것이 남자와 주효영이 함께 짠 판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남자는 임상언을 깊이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뒤의 의자에 올라가 앉아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죽었는지 아닌지는 경찰서에서 부검 결과가 나오면 다 알 수 있을 거야. 나도 이런 사고가 날 줄은 몰랐어.”“그렇다면 보스가 계획한 게 아니라는 건가요?”의심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며 임상언은 여전히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내가?”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소리를 내며 웃었다.“내가 왜 그런 짓을 하지? 주효영은 너와 같아. 내게 유능한 사람이야. 그녀가 죽으면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잠시 동안 임상언도 보스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지 대답하지 못했다.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고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주효영처럼 날뛰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다니?게다가 실험하다가 폭발한 것이니 그녀로서는 정말 저급한 실수였다.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나는 네가 어떤 이유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