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를 갖춰 건넨 말에 한소은도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경호원을 대동한다면 이는 그녀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줘요. 바로 나올게요.”“사모님!”경호원은 안심이 되지 않아 그녀를 막아섰다.“괜찮아요.”한소은은 손을 휘휘 저으며 실험실 내부를 살폈다.‘아무리 호랑이 굴이라고 해도, 꼭 들어가고 말 거야!’그녀가 실험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문이 닫혔다. 실험실은 우중충하고 스산한 기운을 풍겨냈다.이 교수와 그녀가 이곳에 일을 할 때만 해도 낮에 대문은 닫지 않았었다.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죽어가는 건물 같아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안쪽으로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흰 가운을 입은 주효영을 발견했다. 그녀는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문서를 들고 있었다. 주효영은 옆 사람에게 귓속말했고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소은과 눈을 마주했다.가볍게 미소를 지은 주효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한소은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중요한 물건이라도 두고 가셨나요? 아니면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온 건가요?”“내가 돌아오면 당신의 자리를 가져갈 텐데, 괜찮겠어요?”한소은이 주효영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주효영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자리를 가져간다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여기가 왕실도 아니고,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이잖아요. 저는 한소은 씨와 함께 일하고 싶은걸요.”“그럼 제가 물건을 찾으러 불쑥 찾아온 게 불편하시진 않으신 거죠?”한소은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긴 제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함께 사용하는 실험실인데요. 한소은 씨가 물건 찾으러 오는데, 제가 왜 불편해지겠어요?”주효영은 몸을 비켜서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한소은은 이런 그녀를 힐긋 쳐다보며 더 안으로 걸어
예전에 일하던 실험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몇몇 실험 장비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많은 물건이 비워진 상태였고, 아마 오랫동안 실험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손을 대보니 먼지도 겹겹이 쌓여 있었다.그녀가 멈춘 위치는 예전에 이 교수가 썼던 방문 앞이었다.실험이 한창 진행될 때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도 없어, 급별이 높았던 이 교수나 그녀는 실험실 옆으로 방을 만들어 휴식을 취하곤 했다.이 교수가 없는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방안도 텅텅 비어있었다. 책상 위에는 문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이 교수님 방은 이미 깨끗하게 비웠어요. 한소은 씨가 찾는 물건이 이 방에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한소은이 고개를 돌리자, 주효영이 소리도 없이 그녀의 뒤로 다가와 있었다.경계심이 높은 그녀가 주효영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의 뒤에는 아무 사람도 없지 않았던가.‘그렇다면 나랑 다른 길을 걸었다는 말인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내가 모르는 길이라면, 설마…… 밀실? 비밀통로?’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로 주효영을 위아래로 살폈지만, 맨눈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한소은 씨가 왜 이 교수 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주효영이 물었다.한소은은 주효영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했다.“저는 주효영 씨 방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데, 한번 구경하러 가도 될까요?”“여기 제 방은 따로 없어요.”주효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저는 한소은 씨와 이 교수처럼 높은 대우를 받지 못했어요. 모든 마음을 실험에 쏟아붓고 있죠. 실험실이 곧 내 집이다, 하고 생각하면서요. 제 실험실이라도 구경하러 가실래요?”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초대는 주효영이 먼저 했고, 한소은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이 실험실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했지만, 주효영이라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가 실험실의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니 그녀의 실력을 한소은은 보고 싶어졌다.한소은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알 수 있어? 만약에 너의 방향이 잘못된 거라면?" 주효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바로 그때 엘리베이터가 땡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한소은은 그의 말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발을 내디디려 했지만 밖에서 한 사람이 두 사람의 길을 막았다.“임상언?"한소은은 멍해졌다.임상언을 확인하고 주효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임상언 씨 여긴 또 어쩐 일로 왔어요?“소은 씨는 이미 실험실 사람이 아니니 여기에 와서는 안돼요." 주효영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임상언은 소은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한소은은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전에 내가 여기 놓고 간 물건을 좀 찾을게요. 왜 그러면 안 되나요? 임 사장님?유독 뒤의 세 글자를 강조했는데 이 임상언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곳곳에서 그녀를 방해했다.“무슨 물건을 빠뜨렸는데 여기에 와서 찾아야 합니까?" 임상언은 옅은 눈길로 조그마한 표정도 짓지 않으며 말했다."여기에 당신 물건 없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죠. 무엇을 빠뜨렸는지 저한테 말하시면 제가 사람 시켜서 찾고 당신한테 돌려주라고 할게요. 그러니 지금 당장 소은씨 가주세요.”이것은 직접 손님을 쫓는 명령이고 임상언은 정말 냉정했다 정말 공과 사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소은 씨는 저를 보러 온 것이고 또 제가 소은 씨를 제 작업실로 초대했어요. 상언 씨 무슨 문제 있다면 저한테 말씀하세요."뜻밖에 주효영이 그녀를 도와 말을 했다.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임상언은 그제야 주효영을 바라보았고 순식간에 그녀를 질책했다."주효영 씨 실험실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데 어떻게 마음대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거죠? 작업실은 더더욱! 당신한테 제가 이런 것도 알려줘야 합니까?소은 씨가 남도 아니고 이 실험실에 대해 잘 아는데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주효영은 혀를 내두르며 대
“임상언 씨 저는 오늘에서야 당신을 알게 된 것 같군요. 아주 위풍당당이시군요!"그를 보고 한소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발을 거두고 엘리베이터로 물러났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미 떠난 이상 다시 여기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게 맞죠. 내가 갈 테니까 당신들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가지 마!" 주효영은 멍해져서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한소은은 손목을 움직여 아무런 기색도 없이 그녀의 손을 피했다.“아직 그가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어요!"주효는 기세등등하게 한소은을 보고 말했다."제 작업실을 보고 싶지 않나요? 당신이 놓고 간 물건을 찾고 싶지 않고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지 않나요?”그녀의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큰 유혹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말에 매우 흔들렸다.한소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방금 생각해 봤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임 사장님 말이 맞아요. 이것은 당신들의 기밀과 관련되어 있는데 제가 더 이상 묻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럼 이만!말이 끝나자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가지 마!" 주효영은 막으려 했지만 임상언에게 덥석 잡혔다.주효영은 방심하다가 그에게 붙잡혔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러서 엘리베이터 문이 눈앞에서 닫히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임상언 씨!고개를 돌리자 주효영이 격노했다.그때서야 임상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느릿느릿 손을 풀었다.“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주효영은 그를 찢어 죽일 만큼 노려봤다.이성은 아직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했지만 분노의 감정은 계속 머리 위로 치솟았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 싫었다.임상언은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보았다."그럼 당신은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만약 제가 오늘 여기를 막지 않았다면 당신은 뭘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그녀를 이 건물에 가두려 했나요? 대체 이 건물에서 몇 명을 가두려고 한 겁니까?“그녀는 조향 무학과 중의약 방면에서 모두 깊은 연구를 하고 있고 그녀의 머
마치 어두운 지옥에서 벗어난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다.건물에서 나와 그녀의 경호원은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나온 것을 보고 인사했다.“부인님!”고개를 끄덕이자 한소은은 물었다.“내가 없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지?“네.”경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말했다.“가자!한소은은 고개를 돌아 빌딩을 보았다. 빌딩의 유리창에서 햇빛이 반사되었지만 따뜻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싸늘한 느낌이 났다.그녀가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어르신의 전화가 왔다.“소은아, 너 괜찮니?“괜찮아요.”그녀는 단지 좀 피곤했을 뿐이다. 배에 있는 아기도 아주 불안해 보인다.그녀는 배를 만지면서 마음도 아주 무거웠다.“그럼 다행이네, 깜짝 놀랐잖아, 말도 다 안 했는데 왜 전화를 끊어? 맞다 원철수가 어떻게 됐다고? 방금 그 녀석의 부모님에게…….”“어르신, 이따가 얘기해요. 저 좀 피곤해요.”한소은은 어르신의 말을 끊었다.“오오, 좋아, 좋아! 쉬어, 쉬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어르신도 눈치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르신의 장원으로 갔다. 한소은은 차에서 내릴 때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고 휴대전화를 차 안에 놔두고 새 폰을 들고 내렸다.대문에 들어가자마자 김준이 뛰어왔다.“엄마!”한소은의 기분이 아주 좋아졌고 허리 숙여 김준의 볼에 뽀뽀했다.“우리 아가 착하네!”칭찬을 들은 김준은 아주 기뻤고 엄마에게도 뽀뽀했다.“아첨꾼!”어르신은 약간 불만스러웠다.“나랑 있을 때 아주 난폭했는데 이제 엄마가 오니까 뽀뽀도 하네. 무슨 강아지냐?”“멍멍!”김준은 개가 짖는 소리를 따라 했고 어르신의 얼굴에도 뽀뽀했다.“허허허, 이 녀석아!”어르신은 크게 웃었다.잠깐 놀다가 한소은은 아들에게 말했다.“준아, 잠깐 혼자 놀아봐. 엄마가 할아버지와 할 말이 있다.”“네.”김준은 대답하고 혼자 놀러 갔다.어르신은 눈치챘다.요즘에 한소은은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보이고 스트레스도 엄청 많은 것 같았다.“왜 그래? 갑
김서진이 돌아오는 게 좋은 일인데 한소은이 오히려 기쁘지 않았다.“전염병에 걸린 것 같아요. 아직 만나지 못해서 상황 잘 몰라요.”한소은은 차 한 모금 마시고 조금 진정해졌다.“전염병?”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돌아왔어? 걔가 집에 왔어?”“아니요.”한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와 아이도 있는데 당연히 오지 않았죠. 지금 제성에 없고 아마 먼 곳에서 휴양하고 있을 겁니다.”어르신은 한숨을 내쉬면서 앉았다.“너 이제 뭐 하려고?”“만나러 갈 겁니다.”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미쳤어?!”“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한소은이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전 세계 다 이것을 연구하고 있어. 너 굳이 안 가도 돼!”어르신은 아주 이성적으로 말했다.“고대부터 지금까지 전염병이 많았고 종류도 아주 다양해. 지금 의료기술이 많이 발달하였지만 이번 전염병이 좀 수상하니 만나지 않는 게 좋아!”“저도 알아요. 근데 만나러 간 것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녀는 또 이어서 말했다.“저는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어르신은 의사로서 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도 처해 보셨잖아요.”“나는…….”어르신은 대답하지 못했다.그가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혼자라서 죽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너는 다르지. 너는 김준도 있고 배 속에 아이도 있잖아!”“아이를 위해서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자기 배를 만지자 한소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 전염병은 확산할 태세가 있습니다. 제성에 아직 확진자가 없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많은 전문가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제 아기를 위해서라도 이 전염병을 없애야 합니다. 저는 훌륭하지 않지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지금 서진이가 병에 걸렸는데 아무래도 아내로서 가봐야 해요.”그녀는 세상을 구하는 생각도 없었고 그런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나서야 한다.어르신은 친목했고 그녀가 한 말이
”그럼 너 조심해라. 이 전염병은 아마 바이러스일 것이야.”어르신은 말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고개를 끄덕이자 한소은은 찬성했다.“그리고 실험실의 실험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너희 그 실험실?”어르신은 멍했고 갑자기 방금 전에 할 말이 떠올랐다.“설마 원철수가 한 짓이니?”한소은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걔는 그런 능력이 없어요.”“역시!”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어르신은 원철수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진짜 원철수가 그랬다면 어르신도 많이 놀랄 것이다.“원철수가 왜?”“실종되었습니다. 실험실에도 없고 집에도 없습니다. 연락도 못 합니다. 실험실 가서 찾으려고 했는데 방해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 빌딩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 누구한테 납치당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신호가 없는 곳에서 길 잃을 수도…… 나도 그런 적이 있거든.”한소은은 말했다.“아닙니다. 원철수는 최근 실험에 빠져서 실험실에서 안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실 진짜 수상해요. 제 생각엔, 걔가 무엇을 발견해서 구속당한 겁니다. 그리고 이 교수님이 교통사고 난 것도 아주 수상해요.”“이 교수? 그 늙은이?”어르신은 아주 놀랐다.“이게 실험실이야 감옥이냐?”“틀림없이 음모입니다. 어르신, 원철수를 구하려면 어르신이 도와주셔야 합니다.”“나?”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데, 설마 나보고 실험실에 가서 찾으라고? 나도 갇힐 수 있잖아.”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가, 안 가!“아닙니다, 원철수의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경찰 신고하시라는 겁니다.”한소은이 말했다.“경찰에 신고해? 네가 하면 되잖아.”“불평해요!”한소은은 조금 어이없었다.“저는 김씨 가문과 관련이 있어서 신고하기 좀 불편합니다. 그래서 원철수의 부모님이 직접 신고해야 합니다.”한소은은 어이없었다.‘도대체 원철수의 부모님이 뭐 하고 있을까? 자기 아들이 실종되는 데 진
”어르신!”한소은은 갑자기 말했다.“진짜 큰일이에요. 어르신의 손자가 죽을 수도 있어요.”“…….”어르신은 억울하게 입을 삐쭉거렸다. 사실 그도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그래 그래.”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무슨 망할 실험실!”사실 한소은도 이렇게 생각했다.‘진짜 이 망할 실험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들어가지도 않았어.”‘하지만…….’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았다.‘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군.’“이 실험실이 딴 곳에도 있다고 생각해요.”한소은이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뭐?!”어르신은 이 말 듣고 놀랐다.“이 실험실이 이번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실험실에서 노출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이게 다 제 추측이고 실제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조사하고 있습니다. 정부 쪽에서도 조사하고 있을 겁니다.”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머리를 가리고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머리가 아프네! 내가 늙었으니까 너희 젊은이들 가서 조사해라.”“그래서 김준 좀 봐주세요. 다 처리하고 나서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한소은이 말했다.“뭐?!”눈을 부릅뜨고 어르신은 원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말하지 않았다.그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됐어, 내가 너희한테 빚진 거지.”“싫으시면 저…….”어르신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됐어! 아기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너랑 김서진은 무슨 구세주냐? 준이가 아직 어린데 세상을 구하더라도 아기를 고려해야지. 그냥 가라, 아기는 나한테 맡겨!”“그래요!”한소은은 아주 시원하게 대답했다.“…….”‘내가 사기당했나?’펑-임상언은 주먹을 맞아 허리를 숙였다. 입가에 있는 피도 마르지 않았다.너무 아파서 온몸이 웅크렸지만 소리 지르지 않았다.“경고일 뿐이야. 또 수작 거리면 네 아들도 맞을 수 있어.”가면 쓴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