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나와 길을 따라 한참 걸은 후에야 소희는 비로소 차를 아직 식당 주차장에 세워두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일 너무 바쁜 탓에 점심에 밥을 대충 몇 입밖에 먹지 못했더니 위가 슬슬 아파 나기 시작했다.그러다 사방을 둘러보고 식당이 강성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발견한 소희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면 먹으러 방고거리까지 걸어갔다.예전에 그녀가 자주 왔던 국숫집, 벽에 걸려 있는 메뉴판마저도 예전 그대로였다. 깨끗하고 소박한 가게에는 삼삼오오 식객들이 앉아 있었고, 모양을 봐서는 대부분 강성대 학생들인 것 같았다.소희가 빈자리를 찾아 앉자 사모님이 곧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아가씨, 뭐 좀 드실래요?"그러다 소희를 알아보더니 얼굴에 단골손님을 만난 후의 놀라움과 기쁨이 드러났다."아가씨였네. 오랜만이야. 이미 졸업했지?"소희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난 2년 동안은 외국에 있었어요.""어쩐지!"사모님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열정적이고 담소 나누기를 좋아했다."오랫동안 보이지 않는다 했어. 자네 그 남자친구는 자주 왔었는데."사모님의 말에 소희가 잠깐 멍해졌다."남자친구요?""그래! 예전에 자네랑 같이 국수 먹으러 왔던 그 양반 말이야."사모님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기품이 뛰어난 남자는 한 번만 보면 영원히 잊히지 않았다.‘임구택이 면 먹으러 이곳을 왔다고?’소희가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아무래도 임구택이 성장해 온 환경이 있었으니 이런 붐비고 좁은 곳에서 음식을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그녀와 몇 번 왔던 것도 단지 그녀가 이곳의 면을 좋아했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는 국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올 때마다 그냥 그녀의 비위에 맞춰주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몇 입만 먹곤 했을 뿐."오늘도 게황면, 맞지?"소희가 멍때리고 있는 모습에 사모님이 웃으며 물었다."네? 아, 네, 게황면이요."소희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임유민은 집사와 인사를 나누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3층으로 올라갔다.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방안에는 플로어 스탠드만 조용하게 켜져 있었고 그의 둘째 삼촌은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그러다 인기척에 임구택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불빛 때문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나 때문에 깬 거야?"임유민이 듣더니 다가가 재떨이에 가득 찬 담배꽁초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담배를 얼마나 피운 거예요?"임구택이 일어나 창문 앞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습한 공기가 순간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방안의 담배냄새를 어느 정도 씻어냈다.임구택이 일어나자마자 임유민은 소파 위에 놓인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정면이 아래로 향해 있어 임유민이 호기심에 뒤집어 보려는데 임구택이 마침 몸을 돌려 돌아왔다.그러자 임유민이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둘째 삼촌, 상처가 금방 다 나았는데 아직 그렇게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고요."임구택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알아.""둘째 삼촌, 삼촌 아직도 소희 쌤을 좋아해요?"그러다 임유민이 갑자기 임구택에게 물었다.이에 임구택이 웃으며 되물었다."너 좋아한다는 게 뭔지 알아?""당연하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매일 그 사람이 보고 싶고, 매일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그런 심정이잖아요."임유민의 진지한 대답에 임구택 입가의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너도 좋아하는 애가 있어?"임유민이 듣더니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전 아직 어리단 말이에요. 저의 주요 임무는 공부에요, 공부!"임구택이 나지막하게 웃었다."잘 알고 있네."임유민이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 삼촌, 만약 아직도 소희 쌤을 좋아한다면 다시 잡아요."임구택이 듣더니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하지만 그 여인은 이미 나를 좋아하지 않아.""삼촌이 어떻게 알아요?""그 여인이 직접 말했으니까.""여자들은
이튿날 아침, 임유민은 학교로 가는 길에 우정숙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휴대폰 맞은편의 우정숙이 다정하게 물었다."학교로 가고 있어?""네, 곧 도착해요."우정숙이 듣더니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부했다."엄마와 아빠는 며칠 더 있어야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안 계시니 집에서 둘째 삼촌의 말을 잘 듣고.""알았어요. 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마요."임유민이 어른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그러자 우정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다시 말했다."내일 테스트가 있는 날이지? 긴장하지 말고, 평시대로만 하면 돼.""제가 고작 그런 테스트에 긴장할 사람으로 보여요?"임유민이 신심으로 가득 차서 대답했다."그럼 됐어. 밥 제때에 먹고, 누나와 집 잘 지키고 있어.""네, 엄마와 아빠도 몸 잘 챙기시고요."전화를 끊은 후 임유민은 다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음 날의 테스트 생각에 갑자기 눈에 교활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오후, 소희가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새로 전근된 조수가 그녀의 휴대폰을 들고 달려왔다."소희 씨, 휴대폰이 두 번이나 울렸어요."이에 소희가 수신 번호를 한 번 확인하더니 바로 받았다."아주머니, 무슨 일이에요?"이씨 아주머니의 조급해하는 소리가 휴대폰 맞은편에서 들려왔다."소희 씨, 요요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열이 나기 시작해요. 청아 씨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내가 먼저 요요를 데리고 병원이라도 갈까요?"소희의 얼굴색이 순간 어두워졌다."네, 일단 먼저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알았어요!"이씨 아주머니가 대답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소희는 급히 이 감독과 휴가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소희와 청아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이씨 아주머니는 요요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바로 택시 타러 나갔고, 동시에 소희도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중도에 소희가 또 청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네."그러다 이씨 아주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장시원이 물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요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잠시 연락이 안 되어서요."소희의 대답에 장시원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요요 엄마가 바로 네가 지난 2년 동안 새로 알게 된 친구인 거야?"소희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애 아빠는?""헤어졌어요.""그럼 요요 엄마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건데, 힘들겠다."장시원이 눈썹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에 소희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그녀의 품속에 기대어 있는 요요를 한 번 보고는 입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후 장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안고 있을게."소희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품속의 요요를 장시원에게 건네주었다.요요는 장시원을 전혀 거부하지 않은 채 조용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품속의 깜찍한 아기를 보고 있으니 장시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서가 용솟음치고 있었다.그렇게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요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얼어있던 마음이 점점 녹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처방한 해열제를 들고 들어 온 이씨 아주머니가 의사의 분부대로 요요에게 약을 먹였다.얌전하게 울지도 떠들지도 않고 약을 먹고 난 요요는 다시 조용하게 장시원의 품에 안겼다.그러는 요요의 모습은 더욱 사람을 마음 아프게 했다.이씨 아주머니는 소희의 친구인 장시원에게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 바삐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내가 안을 게요, 힘들겠는데."하지만 장시원은 요요를 이씨 아주머니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 무의식중에 물러섰다. 그러다 다소 오버한 것 같아 바삐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요요가 가벼워서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이씨 아주머니가 소희를 쳐다보았다.이에 소희가 담담하게
아늑하고 예쁘게 꾸며진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시원은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서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요요를 저에게 주시죠. 제가 재우러 가겠습니다."이씨 아주머니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네."여주인의 침실까지는 들어가기 불편하여 장시원이 요요를 이씨 아주머니에게 넘겼다.이때 소희가 그에게 물 한 병을 가져다주며 말했다."오늘 정말 고마웠어요.""천만에. 나랑 요요도 이젠 친구인걸."장시원이 소파에 앉아 농담이 섞인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방을 훑어보았다.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은 온통 옅은 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꽃병에는 몇 송이의 작은 데이지도 꽂혀 있었다.창밖의 바람이 베란다로부터 불어 들어오자 가볍게 드리운 옅은 남색의 커튼까지 살랑살랑 춤추고 있었다.공기 속에는 아기 특유의 젖 향기와 은은한 맑은 향기가 섞여 있어 매우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요요의 엄마가 이혼한 여자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장시원은 갑자기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왠지 그녀는 틀림없이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여인이었으니 이혼한 후에도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요요의 상태가 많이 괜찮아졌으니 장시원도 더는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일어났다."나 먼저 갈게. 요요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전화해도 돼.""네, 고마워요, 시원 오빠.""뭘 자꾸 고맙다는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비록 너와 구택이 이미 헤어졌다지만 네가 나를 시원 오빠라고 부르는 한 우리는 여전히 친구인 거야."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그러다 장시원을 문밖까지 바래다주며 물었다."어떻게 돌아갈 건데요?"병원에서 나오면서 장시원은 소희의 차를 타고 같이 왔으니."운전기사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그럼 조심히 가요.""그래, 어서 들어가. 요요 잘 챙기고.""네, 가요."장시원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지켜보고서야 소희가 돌아갔다.그러자 이
전화를 끊은 후 소희는 이씨 아주머니에게 휴대폰을 돌려주고 요요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요요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도 여전히 빨개 있었다.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열은 나지 않았고, 소희도 그제야 시름 놓았다.*그렇게 저녁 무렵까지 자다가 겨우 깨어난 요요는 기운이 회복되었는지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고, 야채죽 한 그릇을 뚝딱 다 비웠다.급히 집으로 달려온 청아는 요요를 안은 채 미안하다는 말만 끊임없이 반복했고 그 모습에 요요가 청아의 얼굴을 받쳐 들고 깜찍한 목소리로 청아를 위로했다."엄마는 외할머니를 돌봐야 하니까 요요가 말썽 안 피우고 약 먹었어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요요의 말에 청아는 더욱 죄책감이 들어 요요를 품에 꼭 안고 소희를 바라보았다."정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청아는 하루 종일 수고한 이씨 아주머니를 일찍 돌려보내고 직접 주방으로 가서 반찬을 준비했다."요요가 병원에 있을 때 삼촌 한 명이 더 있었다고 하던데, 누구야?"밥을 먹으면서 청아가 조용히 물었다.그리고 청아의 뜬금없는 물음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소희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에 있는 음식을 다 삼키고서야 소희가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조백림. 병문안을 갔다가 마침 우리랑 마주쳤어. 전에 내가 요요를 데리고 그의 약혼식에 참가한 적이 있어 요요를 기억하고 있더라고.""그래?"청아가 가볍게 한 번 웃고는 다시 물었다."잘 지내 있던?""응."밥을 다 먹고 난 후 소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청아네 다른 객실에서 묶었다.약을 먹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늦은 밤중이 되니 요요의 열이 또 40도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청아의 소리에 놀라서 일어난 소희는 청아와 함께 요요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밤새 그렇게 요요의 곁을 지켰고, 요요가 다시 열이 내려서야 소희가 시름 놓고 침대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그러다 이른 아침 청아가 일어나 아침을 차리는 소
장시원이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이렇게 막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발길을 멈추고 이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요요 엄마가 집에 계신가요?""안 계십니다. 환자 돌보러 갔거든요."장시원이 듣더니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딸이 이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상관하지는 않고 무슨 환자를 돌보러 갔다는 거죠?""그런 게 아닙니다. 요요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요."이씨 아주머니가 황급히 설명했다.하지만 장시원은 듣지도 않고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갔다. 아무런 기운도 없이 소파에 누워 흐느끼고 있는 요요의 모습은 여간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장시원은 얼른 과일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요요를 안았다."요요야, 아저씨 왔어. 어디가 불편한 건데?"희고 포동포동한 얼굴에 눈물을 달고 있던 요요가 울먹이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이마를 만지니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열이 손을 타고 전해왔다."요요가 줄곧 열이 나있었던 상태였습니까?""아니요. 어젯밤에 한 번 또 열이 나서 약을 먹인 후 나아졌다고 했어요. 오전 내내 괜찮았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또 열이 나시 시작하더라고요.""계속 이렇게 놔두면 큰일이 날 겁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야 해요."장시원이 초조해서 일어서려 하자 이씨 아주머니가 급히 말렸다."동네에도 같은 병으로 앓고 있는 아이가 있어 제가 한 번 물어봤는데 다들 이렇게 반복적으로 열이 난대요. 그러니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고, 제때에 약만 먹이면 된대요."장시원이 듣더니 눈썹을 찌푸린 채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의사에게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사의 대답은 이씨 아주머니의 대답과 비슷했다.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4~5일 정도 발열 현상이 지속될 거고 3일을 더 지켜보다 별문제 없으면 괜찮은 거라고.장시원이 전화를 끊고 이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해열제는 먹였습니까?""네!"잘생긴 남자한테서 풍겨 나오는 위엄 때문에 이씨 아주머니는 처음 이곳에 와서 면접 볼 때보다 더
"이렇게 인내심이 있는 걸 봐서는 앞으로 틀림없이 좋은 아버지가 될 겁니다."이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칭찬했다.이에 장시원은 담담하게 웃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도 자신이 요요를 이토록 좋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설마 정말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걸까?’하지만 장시원은 순간 자신의 생각이 우습다고 느껴졌다."그럼 요요를 잠깐만 봐주세요. 저 장 보고 올게요. 요요가 깨나서 먹을 이유식을 해야 하거든요.""걱정마세요. 제가 있으니 시름 놓고 갔다 오세요.""네!"이씨 아주머니가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열쇠와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오후의 햇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조용한 방안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장시원은 고개를 숙인 채 요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곤히 잠든 요요의 속눈썹은 길고 촘촘했고, 포동포동한 얼굴에 박힌 작은 코는 오똑하면서 깜찍했다......그냥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장시원은 자신도 모르게 요요를 더 꼭 껴안았다. 은은한 젖 향기가 이상하게 그를 안심시키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고개를 숙이고 요요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장시원은 이내 눈살을 찌푸린 채 무음 모드로 해놓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한참 후, 볼 일이 다 끝났는지 장시원은 다시 거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꽃병 속의 작은 데이지는 약간 시들어 있었다. 보아하니 이 집의 여주인이 확실히 꽃들을 관리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것 같았다.벽에 기대어 세워진 찬장 위에는 오르골이 놓여 있었다. 핑크색 성 앞에, 함께 춤을 추고 있던 왕자와 공주가 갈라져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스위치를 켜고 음악이 울리면 그들은 다시 껴안고 나풀나풀 춤을 추겠지.정교하게 만들어진 성을 보면서 장시원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여인이 생각났다.‘잘 지내고 있을까?’‘가끔 내 생각은 할까?’‘남자친구는 사귀었을까?’‘낯선 외국에서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줘야 외롭지 않겠는데.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
“‘강’ 씨 성이면 어때? 아심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강재석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그건 아심이 예전에 도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 돌아왔으니 성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도경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재희로?”도경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재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도도희는 계속 다퉜어. 얼마 후 도도희는 재희를 데리고 강성을 떠났고, 그저 재희라는 예비 이름만 붙여줬어.”“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재희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지만, 나와 도도희의 의견이 매번 엇갈려 결국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강재석은 기뻐하며 말했다.“그 말은 재희의 운명적인 이름이 이미 강아심이라는 뜻이니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거야!”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절대 불가능해. 내일 바로 도도희와 상의해서 재희를 우리 도씨 가문의 호적에 올릴 거야.”“그 문제는 아심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강재석이 말했다.“네 멋대로 결정하면 아심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그 말을 듣고 도경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했다.“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그는 위층을 올려다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도도희와 아심이가 한방에서 지내고 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모녀가 이미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거리감도 줄었겠지.”“맞아!” 도경수가 감탄하며 말했다.“볼수록 아심은 우리 도씨 가문의 사람처럼 보여.”강재석이 비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사람 깎아내릴 때는 아니었나 봐?”도경수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그때는...”“그때는 뭐? 양재아의 한마디에 휘둘려, 본 적도 없는 아가씨를 편견으로 대했잖아.”강재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아심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지.”도경수는 주름이 가득 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야!”“잘못을 인정한다니 다행이네!”그 말에 도경수는 찡그리며 말했다.“지금까지 재희가 날 외할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려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이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수 있겠네.”구택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가고 싶은 곳 있어?”그 말에 소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사실, 아직 양재아가 조금 걱정돼.”“걱정하지 마. 형님이 있으니까.” 구택이 웃으며 말했다.“형님은 절대 아무도 아심을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그건 그렇지!” 소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오빠랑 아심이 사귀고 있었으면 좋겠어.”“그럴 거야.”...그날 밤, 도도희는 아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오늘 밤은 한방에서 지내자. 아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도우미들이 아심을 위해 새 세면도구와 잠옷을 준비해 놓았다. 아심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도도희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침대로 와.”아심은 신발을 벗고 도희 옆에 앉았다. 방 안은 냉방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도도희는 이불을 들어 그녀의 다리에 덮어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이 너무 차게 하면 안 돼. 특히 너는 위가 안 좋잖아.”아심은 스스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며 웃었다.“이제 알았어요. 제가 위가 안 좋은 건, 알고 보니 유전 때문이었네요.”이에 도도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원인을 찾았구나!”아심은 사진첩을 넘기다가 자신이 세 살이 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양부모님 댁에서도 제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비슷했어요.”도도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널 자주 때렸니?”“친자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정이 없었죠.” 아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도 다행히 할머니가 아주 착해서 저를 보호해 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이 병에 걸리자 저를 팔아버렸어요.”도도희는 가슴이 아파 그녀를
강재석이 말했다.“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면 다 지난 일이 된다. 재희가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야. 너까지 이러면 재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다.”“그렇지!” 도경수가 눈물을 닦으며 강아심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찾아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식사가 끝난 후,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재석이 소희에게 말했다.“너희 부부도 신혼여행을 가야 하지 않느냐? 이제 재희도 찾았으니 내일부터 떠나도록 해.”소희는 만화에서나 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기뻐서 신혼여행이고 뭐고 갈 마음이 없어요.”그 말에 강시언이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이 그룹 일을 전부 내려놓고 널 위해 시간을 냈는데,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신혼여행을 미루지 마.”구택이 소희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걱정하지 마.” 시언이 잔잔히 미소 지었고, 도경수도 진석과 강솔을 향해 말했다.“너희도 나를 계속 돌보려 하지 말고 할 일 있으면 하러 가라. 여기 강재석도 있고, 나와 이야기하면 충분하다.”진석이 말했다.“그러면 강재석 할아버지께서 강성에 며칠 더 머물러 주세요.”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떠날 수 없구나!”도도희가 말했다.“아저씨, 어떤 일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 말에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너희 아빠에게 물어봐라!”도경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돌아가려면 얼른 돌아가!”도도희가 호기심에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언과 아심의 혼사 얘기다!”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전에 재희를 찾으면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인연을 더 깊게 맺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모두가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