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소희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밖에 비가 오고 있어 청아는 이씨 아주머니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직접 나서서 저녁을 준비했다.소희는 요요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옛날옛적에 세 마리의 아기돼지가 있었어요. 아기돼지들이 무럭무럭 자라 성인이 되니 어느 날 돼지 엄마가 말했어요. ‘너희들, 스스로 나가 너희들의 집을 지으렴!’"요요가 듣더니 바로 고개를 들어 말했다."요요는 엄마를 떠나지 않을래. 스스로 집을 짓지 않을래."소희가 아이의 작은 코를 살짝 꼬집었다."그래, 요요는 그럼 스스로 집을 짓지 마. 앞으로 소희 이모가 큰 집을 사줄게."요요가 소희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엄마, 소희 이모, 요요 이렇게 셋이서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고야~"아이의 앳되고 천진난만한 대답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다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는데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이정남의 메시지였다.[소희야, 이현이 자신 생일파티에 널 초대했어?]메시지를 확인한 소희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요요에게 먼저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하고는 답장을 했다.[네, 제가 돌아왔다는 걸 알고 있더군요.]이정남이 바로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가지 마!]이에 소희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왜요?]이번엔 5, 6분 정도 지나서야 이정남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소희야, 이현이 새 남자친구를 사귀었거든? 그런데 상대가 누군지 알아?]그러다 소희가 대답도 전에 이정남이 곧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임구택.]소희의 눈빛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화면에 나타난 이름을 본 순간, 추억들이 예고도 없이 마구 밀려왔다. 하지만 밀려온 추억들은 또 그렇게 아득히 먼 곳에서 있는 것 같았고, 마치 안개를 사이에 두고 물속의 환상을 보고있는 느낌이 들었다.놀라울 거 있나?아니. 함께 많은 곳을 드나들며 군중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던 임씨 대표님과 인기 스타 이현의 세기의 사랑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이
소희가 이를 닦으며 택배 포장지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거기에 놓으면 돼."하지만 다 씻고 돌아왔을 때 택배는 이미 뜯겨져 있었고, 정교한 초청장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심명이 그녀에게 계란을 까주면서 물었다."너 진짜 이 여인의 생일파티에 가려고?""응, 어제 이미 약속했어."소희가 고개를 숙여 죽을 마시며 대답했다. 긴 속눈썹에는 채 닦지 않은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가도 돼!"심명이 계란을 그녀의 손 옆에 있는 접시에 올려 놓았다. 그러고는 조소하듯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나도 너와 함께 갈거야.""이현이 너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도 않았잖아."소희가 덤덤하게 말했다.심명이 듣더니 바로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받았잖아. 가족도 못 데리고 가냐?""일 만들 생각은 하지도 마.""걱정마. 나 아무 짓도 안 해. 맹세할게!"심명이 실눈을 뜬 채 매혹적인 웃음을 드러냈다."조용히 너의 곁에서 투명 인간 역할만 할게."소희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역시 소희가 최고야!"심명이 몸을 일으켜 입술을 내민 채 소희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했지만, 소희가 바로 막았다.이튿날, 이현의 생일파티 현장.이현은 현재 인기가 들끓고 있는 배우로 생일파티도 역시 주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현은 미리 개인 생일파티의 규모애 맞춰 준비하고 모든 기자의 취재를 사절했다. 초청한 손님도 연예계에서 그녀와 사이가 괜찮은 자들, 그리고 줄곧 그녀를 지지해 온 일부 팬들뿐이었다.저녁 무렵이 되자 심명이 소희 데리러 왔다.그런데 심명을 보자마자 소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흰색 셔츠, 파란색 체크 조끼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청색 스포츠카 안에 앉아 있는 심명은 블록버스터를 찍고 있는 모델 같았다.소희가 의아해 하며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너 설마 이현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오늘에 가서 고백하려고?"심명이 듣더니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흰 티셔츠에
비길 데 없이 호화로운 7성급 호텔의 연회장, 화려한 인테리어, 신분이 존귀한 손님, 모든 것이 오늘의 생일파티를 고급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소희는 보면서 옅은 미소를 드러냈다. 이현이 마침내 원했던 인생을 얻었으니까.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소희는 이현을 발견했다.이현은 분홍색 드레스에, 머리에도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을 쓰고 있었다. 공주처럼 예쁘게 자신의 팬들과 웃고 있었다.그리고 이현도 곧 소희를 발견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여러 번 변했지만 마지막에는 반가움과 기쁨만 남았다. 그녀는 치마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소희를 향해 걸어왔다."소희 씨!"매우 흥분한 듯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는 깜찍 발랄하면서도 빛을 띄고 있었다."드디어 돌아왔네요. 지난 2년 동안 저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혀 변하지 않았네. 여전히 그렇게 예뻐요. 아니다,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요!"소희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을 보며 옅게 웃었다."그래?"이때 옆에 있던 심명이 이현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아주 소희와 똑같게 뜯어 고쳤네.그도 전에 이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땐 눈이 확실히 소희와 약간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 입과 코도 뜯어 고치고 나니 점점 소희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물론 소희의 만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당연하죠!"이현은 심명의 냉소에 애교를 부리 듯 콧방귀를 뀌고는 소희의 손을 잡고 물었다."다시는 안 떠날 거죠?""아마도?"소희가 대답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뺐다.이현은 그제야 심명을 보며 깜찍하게 눈을 깜박였다."소희 씨, 이분은 소희 씨 남자친구?"소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심명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당연하죠. 남자친구도 아닌데 같이 왔을 리는 없죠?""축하해요, 소희 씨!"이현이 진지하고도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연회장을 한번 둘러보고는 누군가를 향해 높은 소리로 말했다."구택 씨, 나 여기에 있어요!"소희도 소리에 고개를 들
소희의 허리를 감싼 심명의 손을 한번 쳐다보고는 임구택이 덤덤하게 말했다."심 대표가 이렇게 기뻐하는데, 잠시 후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시죠.”"당연하죠. 하지만 제가 술에 취하는 걸 소희는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밤중에 저를 침대에서 걷어차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심명이 아양을 떨 듯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다.듣고 있는 소희의 얼굴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손은 몰래 심명의 허리살을 꼬집고 힘껏 비틀었다."습!"심명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더욱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아는 얼굴들인데 뭐."이에 임구택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마요, 소희는 침대에서 사람을 걷어차지 않습니다.""그래요?"심명이 듣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소희를 바라보았다."그럼 제가 소희를 너무 아끼는 탓에 새로 생긴 버릇이겠네요."소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임구택과 이현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라 화제를 돌리려고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이현에게 건네주었다."생일 축하해."선물을 받은 이현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가시지 않았다."소희 씨, 고마워요. 오늘의 디저트는 구택 씨가 미슐랭 3성급 셰프를 모셔 만든 것들이 거든요. 소희 씨 단 걸 좋아하니 많이 먹어요."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이현이 남자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들어 애교 부리듯 말했다."나 드레스 갈아입고 싶은데, 도와줘요.""그래."임구택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소희와 심명에게 말했다."실례하겠습니다. 두 분은 편한대로 돌아다녀요.""그러죠."이현이 다시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개를 들어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현의 밝은 두 눈에는 예전과 똑같은 숭배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리고 임구택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소를 옅게 머금고 있는 남자는 인내심 있고 다정해 보였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희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2
그녀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고, 그걸 보고 있는 심명은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즉시 말했다."관둬, 관둬.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으니, 나중에 후회된다고 울어도 난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그러고는 손을 내려 다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심명은 소희를 데리고 곳곳을 돌아다니다 술 한 잔을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오늘 저녁엔 취해도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무조건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줄게."소희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제일 위험해.""소희야, 너는 왜 모든 사람을 믿으면서 유독 나를 믿지 않는 거야!"심명이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이에 소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어쩔 수 없어. 내가 널 너무 잘 알아서.""진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심명이 듣더니 바로 소희 곁에 바짝 붙어 매혹적인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오늘 밤 더 철저히 알아보고 싶지 않아?"미소가 순간 굳어버린 소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심명, 절교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말해.""쳇, 시시해."심명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이용 가치가 있을 땐 내 허리를 마구 감싸더니, 이용 가치가 없으니까 바로 버리는 거야?"소희가 순간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누가 널 이용했어? 아니, 누가 널 감쌌다고 그래?"분명 그가 먼저 감쌌으면서."그냥 방금 내가 네 기를 살려줬는지 않았는지만 대답해 봐."심명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소희는 순간 심명이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려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임구택은 몇몇 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담소를 나누는 사이, 남자의 시선은 무심코 디저트 코너를 스쳐 지나 입을 오므린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눈동자에는 차고 그윽한 빛이 스쳐지나갔다.연회장에 좀 더 있다가 소희는 이현과 작별하고 일찍 떠났다.임구택은 상업계 친구를 만나 이야기
심명은 소녀가 건물에 들어선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실의에 빠진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다음날청아는 허홍연을 돌보러 병원에 갔고, 소희는 집에서 요요랑 놀고 있었다.그런데 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 요요가 갑자기 엄마를 찾으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어 소희는 요요와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두 사람은 먼저 백화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로 위층의 놀이터로 올라갔다.그리고 요요는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고, 소희는 밖에 앉아 요요를 보고 있었다. 옆에는 노인 몇 명이 더 앉아 있었는데 모두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온 듯 했다."저 아이가 아가씨 아이인겨? 아가씨 아직 학생인 것 같은디, 이렇게 일찍 결혼했어?"한 노인이 놀란 얼굴로 소희를 보며 물었다.이에 소희는 옅은 웃음만 보일뿐 따로 설명 하지는 않았다.요요는 신나 있었고 소희는 너무 심심했고, 그래서 소희는 게임이나 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그런데 오랜만에 게임에 오르니 누군가가 그녀에게 요청을 걸어왔다.임유민이었다.그리고 곧 임유민의 음성 메시지가 떴다. 엄청 놀란 말투였다."소희 쌤, 정말 소희 쌤 맞아?"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급도 높지 않은 게임 계정을 누가 훔쳐가기라도 했을까 봐?"임유민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소희 쌤 돌아왔어? 언제 돌아온 거야?""며칠 안 됐어.""그럼 언제 만날 수 있어? 나랑 누나 지금 소희 쌤이 보고싶어 죽을 지경인데!"소희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요즘은 좀 바빠서 안 되고, 이제 시간이 되면 너희 둘에게 연락할게.""그래, 잊지마!""응. 먼저 게임이나 한 판 하자. 오랜만이라 좀 서투네. 네가 날 리드해 줘."임유민은 즉시 소찬호도 끌어들여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처음 소희가 온라인에 접속한 걸 봤을 때, 소찬호도 엄청 놀랐다. 하지만 임유민 앞에서 너무 많은 걸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참았다.그렇게 게임을 몇 판 하고 나니 요요가 다른 걸 하러 가자고 징징거렸다.소희는
소희도 그의 물음에 잠깐 멍해지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그러자 장시원이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요?"소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제 아이가 아니라, 친구의 아이에요."대답하고 있는 소희의 표정은 어딘가 착잡해 보였고, 요요를 안고 있는 손에도 덩달아 힘이 들어갔다.사실 청아는 장시원에게 요요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니 그녀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거고.그런데 이렇게 공교롭게도 여기서 장시원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장시원이 듣더니 아주 미세하게 한숨을 돌리고는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보노라니 알 수 없는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정말 예쁜 아이구나. 이름이 뭐야?""요요."소희가 대신 대답하고는 요요에게 말했다."아저씨라고 불러야지, 요요야."요요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장시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 손을 내밀었다."아저씨 안아줘!"소희가 순간 멍해졌다.요요는 낯선 성인 남성을 엄청 두려워하는 편이라 밖에서 모르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되도록 피해 다녔다. 그런데 지금 주동적으로 장시원에게 안기려 하다니. 소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이것이 바로 부녀간의 텔레파시인가?’하지만 그것도 그럴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혈연이 그들을 얽매고 있었으니.장시원도 다소 의외였지만 즉시 손을 내밀어 요요를 품에 안았다.그러자 요요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안았다. 심지어 즐거운 나머지 발차기까지 했다.장시원은 처음으로 어린아이를 안는 거라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단아하게 웃으며 말했다."참 낯가림이 없는 아이네요."소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어디로 가는데요? 데려다 줄게요.""괜찮아요. 택시 타면 돼요."소희가 말하면서 손을 뻗어 요요를 안으려 했다."요요야, 우리 이제 집에 가야 해. 아저씨도 바빠."하지만 요요는 장시원의
"그렇죠."장시원은 더 이상 청아에 관한 일을 묻지 않고 고개를 숙여 품속의 깜찍한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이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으니 아이의 부모님도 틀림없이 엄청 이쁘게 생기셨겠죠?”소희가 장시원을 한 번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네, 두 분 다 엄청 이쁘게 생겼어요."차가 천천히 천위 호텔 밖에 멈추었고 장시원이 요요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는 곰돌이를 안은 소희가 따르고 있었다.조백림이 약혼식을 위하여 천위 호텔의 비낙룸 전체를 전세 냈다. 오색찬란한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불은 중국식 고풍스러운 룸 전체를 환하게 비춰주었고 도처에 꽃과 분홍색의 풍선으로 꾸며져 사치스럽고도 호화로워 보였다.마침 오진수 등이 임구택을 둘러싸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높은 소리로 말했다."장 도련님도 왔어!”그리고 그의 소리에 다들 분분히 뒤돌아보았다. 멀리서 장시원이 품속에 아이를 안고 한 소녀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소녀는 품속의 거대한 곰돌이에 의해 얼굴이 가려져 누구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오진수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장 도련님이 어떻게 아이를 안고 있는 거야? 설마 우리 몰래 낳은 건 아니겠지?""오늘은 조 도련님이 약혼식을 올리는 날인데 장 도련님이 아예 아이를 안고 오다니. 이건 조 도련님보다 더 뛰어나겠다는 거잖아.""역시 장 도련님이야. 매사에 앞선다니까."다들 하나같이 농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장시원과 그 옆의 소녀가 천천히 불빛이 밝은 곳까지 걸어왔고, 다들 그제야 소녀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그런데 소녀를 알아본 순간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몇 사람은 더욱 약속이나 한 듯 임구택의 눈치를 살폈다.임구택도 소녀를 알아보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알아보았다.하지만 눈동자에는 여전히 냉담함으로 가득 차 있어 태도나 감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왕년 임구택과 소희의 일에 대해 알 사람들은 다 알고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미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