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높이 들고 심명에게 구조요청을 했다."빨리! 요요를 말려 줘!"이에 심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가가 요요를 안았다."우린 저런 거 안 먹어. 아주머니가 요요를 위해 새우 계란찜을 했는데, 계란찜이나 먹으러 갈까?"하지만 요요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소희의 아이스크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글동글한 눈을 한번 깜박거리더니 눈물이 금세 솟아올라 곧 떨어지려 했다.심명은 바삐 다른 장난감을 들고 요요를 달랬다. 그러고는 뒤돌아 소희를 노려보았다."너도 먹지 마. 너 차가운 거 먹으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어쩜 그렇게 요요보다 더 말썽이야."소희가 듣더니 다리를 꼬고 앉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누가 말썽인데. 네가 쓸데없이 계속 내 일에 참견하니까 그렇지."심명은 화가 나서 책상 위의 물을 소희에게 끼얹고 싶을 지경이었다.하지만 소희도 끝내는 제멋대로 굴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반만 먹고 남은 절반은 고분고분 냉장고에 넣었다.그러다 부엌에서 나오는데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내밀어 보니 역시 청아였다."엄마!"거실에 있던 요요가 소리를 지르더니 작은 걸음으로 달려왔다.청아가 허리를 굽혀 요요를 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소희와 심명에게 말했다."수고했어."예전과 변함없는 깨끗하고 명랑한 웃음이었다. 심지어 웃을 때마다 보일 듯 말 듯 나타나는 보조개도 여전했다."수고는 무슨. 우리도 미리 육아의 삶을 체험해보고, 좋은데?" 심명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소희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소희는 그를 상대도 하지 않고 청아에게 물었다."아주머니는 좀 괜찮으셔?""응. 상태는 이미 안정되었지만, 그래도 좀 더 관찰해봐야 알 것 같대."옆에 있던 심명이 청아의 품에서 요요를 안고 갔다."자, 심 아빠랑 놀러 갈까? 엄마와 소희 이모가 좀 얘기하게."워낙 심명의 말을 엄청 잘 따르는 요요라, 조용히 그와 함께 기차놀이 하러 거실로 갔다.소희가 청아에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소희는 그곳에 그들 세 사람, 그리고 청아 모녀까지 함께 살아도 충분할 정도로 큰 집 한 채를 마련했다.하지만 성연희와 심명은 필경 큰 가문의 후계자였으니 그녀처럼 줄곧 밖에서 떠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시간은 청아 두 모녀와 소희가 치카고에서 살았다.소희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안 돌아가.""그럼 청아가 간 후에 우리 집으로 옮겨."심명이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고는 소파에 앉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소희가 듣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나에게도 집이 있어.""하지만 네 집에는 너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가잔 말이야. 내가 24시간 너의 분부에만 따를게."심명이 실눈을 뜨고 유혹하듯 말했다."네가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든, 내가 다 들어줄게. 날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어."소희가 알약을 입에 던지고 물을 한 모금 크게 마셨다. 그러고는 그를 상대하지도 않고 일어나 침실로 걸어갔다."나 낮잠 잘거야. 나갈 때 문 닫는 걸 잊지 말고."심명이 소리쳤다."그럼 꿈에서 내 제의를 잘 고려해 봐!"하지만 돌아온 건 '펑'하고 문 닫는 소리뿐이었다.심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약을 거두어들이고 물컵을 주방에 갖다 놓고서야 웃음을 머금은 채 떠났다.*그렇게 낮잠을 자고 다시 눈을 떴을 댄 오후 3시였다. 날은 언제 흐려졌는지 방안이 어두컴컴했다.소희는 머리를 비비며 일어나 베란다로 걸어갔다. 온 강성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고, 공기는 습한 냄새를 띠고 있었다. 방금이라도 비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다.몸을 돌려 청아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마침 방 안 캐비닛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그래서 다시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들었다.낯선 번호였다."여보세요?""소희 씨!"핸드폰 맞은편에서 깜짝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제가 누군지 알아맞혀 봐요!"소희가 맑고 빛나는 눈으로 창밖의 음침한 날씨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소희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밖에 비가 오고 있어 청아는 이씨 아주머니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직접 나서서 저녁을 준비했다.소희는 요요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옛날옛적에 세 마리의 아기돼지가 있었어요. 아기돼지들이 무럭무럭 자라 성인이 되니 어느 날 돼지 엄마가 말했어요. ‘너희들, 스스로 나가 너희들의 집을 지으렴!’"요요가 듣더니 바로 고개를 들어 말했다."요요는 엄마를 떠나지 않을래. 스스로 집을 짓지 않을래."소희가 아이의 작은 코를 살짝 꼬집었다."그래, 요요는 그럼 스스로 집을 짓지 마. 앞으로 소희 이모가 큰 집을 사줄게."요요가 소희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엄마, 소희 이모, 요요 이렇게 셋이서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고야~"아이의 앳되고 천진난만한 대답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다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는데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이정남의 메시지였다.[소희야, 이현이 자신 생일파티에 널 초대했어?]메시지를 확인한 소희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요요에게 먼저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하고는 답장을 했다.[네, 제가 돌아왔다는 걸 알고 있더군요.]이정남이 바로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가지 마!]이에 소희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왜요?]이번엔 5, 6분 정도 지나서야 이정남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소희야, 이현이 새 남자친구를 사귀었거든? 그런데 상대가 누군지 알아?]그러다 소희가 대답도 전에 이정남이 곧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임구택.]소희의 눈빛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화면에 나타난 이름을 본 순간, 추억들이 예고도 없이 마구 밀려왔다. 하지만 밀려온 추억들은 또 그렇게 아득히 먼 곳에서 있는 것 같았고, 마치 안개를 사이에 두고 물속의 환상을 보고있는 느낌이 들었다.놀라울 거 있나?아니. 함께 많은 곳을 드나들며 군중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던 임씨 대표님과 인기 스타 이현의 세기의 사랑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이
소희가 이를 닦으며 택배 포장지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거기에 놓으면 돼."하지만 다 씻고 돌아왔을 때 택배는 이미 뜯겨져 있었고, 정교한 초청장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심명이 그녀에게 계란을 까주면서 물었다."너 진짜 이 여인의 생일파티에 가려고?""응, 어제 이미 약속했어."소희가 고개를 숙여 죽을 마시며 대답했다. 긴 속눈썹에는 채 닦지 않은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가도 돼!"심명이 계란을 그녀의 손 옆에 있는 접시에 올려 놓았다. 그러고는 조소하듯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나도 너와 함께 갈거야.""이현이 너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도 않았잖아."소희가 덤덤하게 말했다.심명이 듣더니 바로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받았잖아. 가족도 못 데리고 가냐?""일 만들 생각은 하지도 마.""걱정마. 나 아무 짓도 안 해. 맹세할게!"심명이 실눈을 뜬 채 매혹적인 웃음을 드러냈다."조용히 너의 곁에서 투명 인간 역할만 할게."소희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역시 소희가 최고야!"심명이 몸을 일으켜 입술을 내민 채 소희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했지만, 소희가 바로 막았다.이튿날, 이현의 생일파티 현장.이현은 현재 인기가 들끓고 있는 배우로 생일파티도 역시 주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현은 미리 개인 생일파티의 규모애 맞춰 준비하고 모든 기자의 취재를 사절했다. 초청한 손님도 연예계에서 그녀와 사이가 괜찮은 자들, 그리고 줄곧 그녀를 지지해 온 일부 팬들뿐이었다.저녁 무렵이 되자 심명이 소희 데리러 왔다.그런데 심명을 보자마자 소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흰색 셔츠, 파란색 체크 조끼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청색 스포츠카 안에 앉아 있는 심명은 블록버스터를 찍고 있는 모델 같았다.소희가 의아해 하며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너 설마 이현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오늘에 가서 고백하려고?"심명이 듣더니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흰 티셔츠에
비길 데 없이 호화로운 7성급 호텔의 연회장, 화려한 인테리어, 신분이 존귀한 손님, 모든 것이 오늘의 생일파티를 고급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소희는 보면서 옅은 미소를 드러냈다. 이현이 마침내 원했던 인생을 얻었으니까.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소희는 이현을 발견했다.이현은 분홍색 드레스에, 머리에도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을 쓰고 있었다. 공주처럼 예쁘게 자신의 팬들과 웃고 있었다.그리고 이현도 곧 소희를 발견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여러 번 변했지만 마지막에는 반가움과 기쁨만 남았다. 그녀는 치마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소희를 향해 걸어왔다."소희 씨!"매우 흥분한 듯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는 깜찍 발랄하면서도 빛을 띄고 있었다."드디어 돌아왔네요. 지난 2년 동안 저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혀 변하지 않았네. 여전히 그렇게 예뻐요. 아니다,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요!"소희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을 보며 옅게 웃었다."그래?"이때 옆에 있던 심명이 이현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아주 소희와 똑같게 뜯어 고쳤네.그도 전에 이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땐 눈이 확실히 소희와 약간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 입과 코도 뜯어 고치고 나니 점점 소희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물론 소희의 만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당연하죠!"이현은 심명의 냉소에 애교를 부리 듯 콧방귀를 뀌고는 소희의 손을 잡고 물었다."다시는 안 떠날 거죠?""아마도?"소희가 대답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뺐다.이현은 그제야 심명을 보며 깜찍하게 눈을 깜박였다."소희 씨, 이분은 소희 씨 남자친구?"소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심명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당연하죠. 남자친구도 아닌데 같이 왔을 리는 없죠?""축하해요, 소희 씨!"이현이 진지하고도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연회장을 한번 둘러보고는 누군가를 향해 높은 소리로 말했다."구택 씨, 나 여기에 있어요!"소희도 소리에 고개를 들
소희의 허리를 감싼 심명의 손을 한번 쳐다보고는 임구택이 덤덤하게 말했다."심 대표가 이렇게 기뻐하는데, 잠시 후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시죠.”"당연하죠. 하지만 제가 술에 취하는 걸 소희는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밤중에 저를 침대에서 걷어차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심명이 아양을 떨 듯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다.듣고 있는 소희의 얼굴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손은 몰래 심명의 허리살을 꼬집고 힘껏 비틀었다."습!"심명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더욱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어차피 다 아는 얼굴들인데 뭐."이에 임구택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마요, 소희는 침대에서 사람을 걷어차지 않습니다.""그래요?"심명이 듣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소희를 바라보았다."그럼 제가 소희를 너무 아끼는 탓에 새로 생긴 버릇이겠네요."소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임구택과 이현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라 화제를 돌리려고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이현에게 건네주었다."생일 축하해."선물을 받은 이현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가시지 않았다."소희 씨, 고마워요. 오늘의 디저트는 구택 씨가 미슐랭 3성급 셰프를 모셔 만든 것들이 거든요. 소희 씨 단 걸 좋아하니 많이 먹어요."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이현이 남자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들어 애교 부리듯 말했다."나 드레스 갈아입고 싶은데, 도와줘요.""그래."임구택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소희와 심명에게 말했다."실례하겠습니다. 두 분은 편한대로 돌아다녀요.""그러죠."이현이 다시 남자와 함께 떠났다.고개를 들어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현의 밝은 두 눈에는 예전과 똑같은 숭배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리고 임구택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소를 옅게 머금고 있는 남자는 인내심 있고 다정해 보였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희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2
그녀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고, 그걸 보고 있는 심명은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즉시 말했다."관둬, 관둬.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으니, 나중에 후회된다고 울어도 난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그러고는 손을 내려 다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심명은 소희를 데리고 곳곳을 돌아다니다 술 한 잔을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오늘 저녁엔 취해도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무조건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줄게."소희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제일 위험해.""소희야, 너는 왜 모든 사람을 믿으면서 유독 나를 믿지 않는 거야!"심명이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이에 소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어쩔 수 없어. 내가 널 너무 잘 알아서.""진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심명이 듣더니 바로 소희 곁에 바짝 붙어 매혹적인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오늘 밤 더 철저히 알아보고 싶지 않아?"미소가 순간 굳어버린 소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심명, 절교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말해.""쳇, 시시해."심명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이용 가치가 있을 땐 내 허리를 마구 감싸더니, 이용 가치가 없으니까 바로 버리는 거야?"소희가 순간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누가 널 이용했어? 아니, 누가 널 감쌌다고 그래?"분명 그가 먼저 감쌌으면서."그냥 방금 내가 네 기를 살려줬는지 않았는지만 대답해 봐."심명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소희는 순간 심명이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려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임구택은 몇몇 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담소를 나누는 사이, 남자의 시선은 무심코 디저트 코너를 스쳐 지나 입을 오므린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눈동자에는 차고 그윽한 빛이 스쳐지나갔다.연회장에 좀 더 있다가 소희는 이현과 작별하고 일찍 떠났다.임구택은 상업계 친구를 만나 이야기
심명은 소녀가 건물에 들어선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실의에 빠진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다음날청아는 허홍연을 돌보러 병원에 갔고, 소희는 집에서 요요랑 놀고 있었다.그런데 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 요요가 갑자기 엄마를 찾으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어 소희는 요요와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두 사람은 먼저 백화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로 위층의 놀이터로 올라갔다.그리고 요요는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고, 소희는 밖에 앉아 요요를 보고 있었다. 옆에는 노인 몇 명이 더 앉아 있었는데 모두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온 듯 했다."저 아이가 아가씨 아이인겨? 아가씨 아직 학생인 것 같은디, 이렇게 일찍 결혼했어?"한 노인이 놀란 얼굴로 소희를 보며 물었다.이에 소희는 옅은 웃음만 보일뿐 따로 설명 하지는 않았다.요요는 신나 있었고 소희는 너무 심심했고, 그래서 소희는 게임이나 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그런데 오랜만에 게임에 오르니 누군가가 그녀에게 요청을 걸어왔다.임유민이었다.그리고 곧 임유민의 음성 메시지가 떴다. 엄청 놀란 말투였다."소희 쌤, 정말 소희 쌤 맞아?"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급도 높지 않은 게임 계정을 누가 훔쳐가기라도 했을까 봐?"임유민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소희 쌤 돌아왔어? 언제 돌아온 거야?""며칠 안 됐어.""그럼 언제 만날 수 있어? 나랑 누나 지금 소희 쌤이 보고싶어 죽을 지경인데!"소희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요즘은 좀 바빠서 안 되고, 이제 시간이 되면 너희 둘에게 연락할게.""그래, 잊지마!""응. 먼저 게임이나 한 판 하자. 오랜만이라 좀 서투네. 네가 날 리드해 줘."임유민은 즉시 소찬호도 끌어들여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처음 소희가 온라인에 접속한 걸 봤을 때, 소찬호도 엄청 놀랐다. 하지만 임유민 앞에서 너무 많은 걸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참았다.그렇게 게임을 몇 판 하고 나니 요요가 다른 걸 하러 가자고 징징거렸다.소희는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도도희는 아심을 의미심장하게 흘낏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아심은 도도희가 시언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려 한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꽃이 가득한 정원에는 어느새 둘만 남아 있었다. 도도희가 좋아하는 꽃은 자스민이었다. 도경수의 정원에는 자스민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오월의 따뜻한 날씨 덕에 이미 꽃망울이 터졌고, 얼음 조각처럼 하얀 꽃잎들이 싱그러운 초록 잎 사이에 피어 있었다. 작고 귀여운 꽃들이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와 함께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요한 정원에서 시언은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를 살짝 닦아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울었어?”아심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도도희 이모가 제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엄마라고 불러야지.” 시언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오늘부터는 엄마라고 불러야 해.”아심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매혹적인 눈동자에는 어색함이 서려 있었다.시언은 부드럽게 말했다.“첫마디는 어렵겠지만, 한 번 입을 떼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질 거야.”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아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언은 아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가족을 찾은 기분이 어때?”시언의 넓은 어깨에 기대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심은 조용히 말했다.“좋아요.”“나도 기뻐.” 시언의 거친 손끝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었다.“네가 도도희 이모의 딸이라는 사실이 정말 기쁘거든.”아심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은 왜 기쁜 거죠?”시언의 눈빛에는 노을이 어스름이 비쳤고, 그의 표정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네가 드디어 가족을 찾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약속을 지켰으니까.”그 말에 아심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맞았다. 아심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가족이 생겼다. 아심은 시언의 팔
도경수는 상황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재아야, 어떤 상황이든 내가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단다. 네가 친부모를 찾고 싶지 않다면 계속 이 집에 살아도 돼. 우리는 언제까지나 너의 가족이야.”그러자 양재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도경수는 서둘러 달래듯 말했다.“알고 있어.”재아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할아버지, 저도 생각해 봤어요. 저는 친손녀도 아닌데 이 집에 계속 머물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이제 진짜 손녀분이 돌아오셨으니, 제가 여기 남아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어요.”“하지만 저는 정말 갈 곳이 없어요. 양부모님 댁에는 돌아갈 수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도경수는 재아의 말을 듣고 더욱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우리 손녀를 찾지 못했더라면, 걔도 너처럼 집 없이 외롭게 살았을지 모른다. 어디에도 갈 필요 없어.” “그냥 여기 계속 살아. 도도희가 아심이를 찾은 지금 정말 행복해하니까, 너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너와 아심이가 친한 자매처럼 지낼 수도 있겠지.”재아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저는 아심이와 아무것도 경쟁하지 않을 거예요. 여기 남아서 도우미로 일해도 괜찮아요.”“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나한테 몇 달 동안이나 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도우미 취급을 하겠느냐.” 도경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렴.”그 말에 재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감사해요, 할아버지. 아마 저희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할아버지 곁에 오게 된 거겠죠.”도경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것도 다 인연이지.”그때 강재석이 입을 열었다.“도경수, 내 생각에는 양재아의 친부모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 이 아이도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 집에서
이 모든 것을 보며 강아심의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진짜로 자신이 이재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이 나무 목마는 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거야. 위에 색칠한 것도 그분이 손수 한 거고.” 도도희는 눈가에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여기 달린 금방울도 네 할아버지가 금을 녹여 특별히 만들어주신 거야. 네가 어렸을 때 이 목마를 정말 좋아했거든.”아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목마 앞에 그대로 앉아 조각처럼 섬세하고 생생한 나무 목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이 목마가 참 마음에 들었다.도도희는 옷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드레스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이건 네가 어렸을 때 입었던 옷들이야.”20년이 지난 옷들은 다소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눈에 익은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그리고...”도도희는 옷장 아래 서랍에서 두 권의 커다란 사진첩을 꺼냈다. 그녀는 강아심과 함께 바닥에 앉아 사진첩을 열었다.“여기에 너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어.”사진첩은 그동안 아무도 펼치지 못한 채 20년간 봉인되어 있었다. 겉면에는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도도희가 그것을 열기 전부터 이미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사진첩을 열자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갓난아이의 사진이었다.20년 전의 사진이라 화질은 다소 흐릿했지만, 뽀얀 볼과 크고 또렷한 눈동자는 여전히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릴 만큼 사랑스러웠다.“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사진이야. 그때 네 아빠는 이미 떠난 후였고, 넌 나에게 살아갈 유일한 이유였어.”도도희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이건 해성에서 찍은 사진이야. 그때 네 할아버지와 다투고 나서 널 데리고 해성으로 갔었지. 우리 둘이서만 거의 1년을 해성에서 지냈어.”“그때 나는 막 졸업한 상태라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미술 선생님으로 일했어. 넌 정말 착한 아이였어.”“내가 수업할 때면 늘 조용히 잠들어 있어서 나를 한 번도 방해한 적이 없었지.”“이건 우리가 다
도경수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너는 동의 안 했잖아? 뭐라 그랬더라,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연애해야 한다고 했었지?”“요즘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손녀를 찾으니까 이제 와서 네가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건가?”강재석은 시언을 향해 물으며 말했다.“누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요.”이에 도경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할아버지와 손자가 둘이 함께 일부러 얼버무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냐?”시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자유롭게 연애하는 걸로 할게요. 그것도 문제없거든요.”그 말에 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였다는 듯했다. 그러나 도경수는 곧바로 반대했다.“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손녀를 건드리려 하지 마. 나와 도도희는 절대 그렇게 서둘러 재희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어. 최소 몇 년은 집에 두고 보고 싶단 말이야.”강재석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아까까지는 강시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게 그에 대한 보답이야?”도경수는 서둘러 말했다.“시언아, 내가 너한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해봐라. 내 수집품 중에 골라.”“골동품이든 진품 그림이든 상관없어.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탐내던 서화도 내줄게.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그러나 시언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도경수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강아심뿐이예요.”당당한 시언에 도경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강재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경수를 바라보았다.“들었지? 우리 시언이 널 대신해 손녀를 찾아줬잖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으면 그것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지.”도경수는 화가 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희 집안은 이걸 빌미로 우리 손녀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정말
도도희는 강시언에게 물었다.“아심이 어렸을 때 사진은 없어?”시언은 아심을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있을 거예요. 돌아가서 찾아보도록 할게요.”“꼭 찾아줘.” 도도희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아심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에게는 모두가 공백이었다. 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식탁은 오래된 황화리 목재로 만들어져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아심은 창가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꽃이 만개한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도경수와 도도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다시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익숙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아심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저기요. 예전에 그 자리에 꽃받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꽃병이 놓여 있지 않았나요?”도경수와 도도희는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경수는 놀라 눈물을 머금은 채 물었다.“그걸 기억하고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도도희는 흥분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맞아, 맞아! 거기에 분채 꽃병이 있었어. 할아버지가 그 안에 사탕을 숨겨두고는 널 안아 그 안에서 꺼내보라고 했잖니.”“너는 사탕을 집어 들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어.”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익숙함의 원인을 알게 된 아심의 마음에는 조금 더 따뜻한 친근함이 스며들었다....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거실로 돌아왔다. 곧 도도희는 강아심에게 물었다.“또 기억나는 게 있니?”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요.”“그럼 내가 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보여줄게. 그러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도도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심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향했다.이에 이반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도희가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강솔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모두가 행복한 날이니까요!”그녀는 소희를
“자, 먼저 밥부터 먹자고! 밥 먹자!” 도경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식사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고, 모두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도도희는 여전히 강아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감정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러니까, 세상에 이유 없는 호감은 없는 거야. 우리 첫 만남에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도 다 피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어.”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신기해요.”도도희는 그녀를 식탁에 앉히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모두가 둘러앉아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은 그때, 도경수는 갑작스럽게 한쪽에 서 있던 가정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양재아는 어디 갔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데.”그러자 도우미가 대답했다.“아가씨께서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하셔서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강시언은 아침에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만난 권수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도도희는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라고요? 아심은 나의 유일한 딸이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외손녀예요. 그런데 집에서 다른 사람이 아가씨라고 불린다면, 아심은 뭐가 되는 거죠?”그 말에 도우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경수가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예전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부른 거야. 이제부터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하지만 도도희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처음부터 양재아를 이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재아가 마치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요.”“아심이 내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아이가 얼마나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네요.”소희가 나서서 말했다.“도도희 이모, 그건 제 불찰이에요. 저를 탓하세요. 스승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임구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잘못은 아니야. 네 의도는 선의였으니까. 애초에 양재아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에 도경수 어르신을 먼저 찾아간 게 문제였지
임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결과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네요!”처음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진석은 강솔과 도경수에게 휴지를 건네며 강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만 울어. 네가 이렇게 울면 스승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워.”강솔은 휴지를 받아 도경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스승님, 이제 울지 마세요. 울지 말아요!”강재석 역시 소희가 건넨 휴지를 받아 눈가를 훔쳤다. 그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손자, 잘했구나!’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아심에게 돌렸다.아심은 울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고 복잡해 보였다.이런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온두리에서 시언에게 끌려가던 날이었다.그때 아심은 시언의 차 안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지금의 감정도 그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어.’도도희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리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애틋함과 따스함이 가득했다. 도도희는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어.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를 알았더라면, 진작에 만날 수 있었을 텐데...”아심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지금도 충분히 좋아요.”“맞아, 놓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도도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너를 데려간 거니?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어?”아심은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그때 저는 자주 맞았고, 기억이 흐릿해요. 조금 더 자랐을 때의 기억은 양부모님 댁에서예요.”“그분들은 제가 친딸이 아니라고 했어요. 강가에서 주웠다며,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더군요.”“널
강시언은 강아심을 데리고 도경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을 지나던 중, 아심은 마당의 풍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낯익은 감정이 가슴 속 깊이 몰려왔다. 아주 오래전,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그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왜 그래?” 시언이 멈춰 선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에 아심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본가에 돌아오니 긴장됐나? 그 용감한 강아심도 이런 상황은 무섭나 보네?”시언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자 도경수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결과가 나왔어?”“나왔어요.”시언은 결과지를 세 부로 나누어 도경수, 도도희, 그리고 강재석에게 각각 건넸다. 도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고 급히 훑어 내려갔다. 거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모두의 시선이 결과지를 쥔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가장 먼저 결과를 확인한 것은 도도희였다. 그녀는 결과를 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아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도도희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 정말, 우리가...”도도희는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려 이십 년. 그 모든 세월이 그녀에게는 과거를 묻어버린 긴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도경수 역시 보고서를 들고 손을 떨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반응만 보고도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심을 향했고, 다들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감격과 놀라움이 가득했다.아심은 시언의 손을 꼭 잡으며 도도희를 향해 천천히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