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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한참 기다려도 장명원이 말을 하지 않자 소희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간미연은요? 함께 오지 않았나요?"

장명원이 내색하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왔어요. 의사 만나러 갔거든요, 조금 있다가 올 겁니다."

"올 때마다 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는데. 나 바로 여기 있는데 그냥 나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소희가 농담하 듯 말했다.

장명원은 말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지, 아니면 전에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명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소녀의 상처와 빛을 잃은 두 눈 앞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창백하고 무기력하기 했을 거니까.

반나절의 침묵 후, 소희는 휠체어를 돌려 장명원을 향했다.

"장명원 씨, 난 장명원 씨를 한 번도 탓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전에 장명원 씨가 구은서 때문에 나를 적대시했던 건 장명원 씨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였으니까 그랬겠죠. 우리가 친구라는 걸 모르기도 했고. 그러니 난 장명원 씨를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불곰에 대해서는, 나 오히려 장명원 씨한테 고마워하고 싶어요. 장명원 씨도 내가 불곰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했는지 잘 알잖......"

소희의 말허리가 갑자기 끊겼다. 남자의 억눌린 목메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녀는 장명원의 마음속에 한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직하고 의리적이며 시비가 분명하고, 사랑할 줄 알고 미워할 줄 아는 그런 아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정 때문에 남김없이 구은서를 감싸다가도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즉시 구은서와 선을 긋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의 자책과 괴로움을 그녀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후, 장명원이 냉정해지고 나서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저 반드시 서희 씨의 눈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소희가 듣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현실을 받아들인 후의 태연함이 역력했다.

"내가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혀 하느님이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걸 겁니다. 남은 생은 어둠 속에서 살아야하는 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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