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기다려도 장명원이 말을 하지 않자 소희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간미연은요? 함께 오지 않았나요?"장명원이 내색하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왔어요. 의사 만나러 갔거든요, 조금 있다가 올 겁니다.""올 때마다 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는데. 나 바로 여기 있는데 그냥 나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소희가 농담하 듯 말했다.장명원은 말을 하지 않았다.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지, 아니면 전에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명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소녀의 상처와 빛을 잃은 두 눈 앞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창백하고 무기력하기 했을 거니까.반나절의 침묵 후, 소희는 휠체어를 돌려 장명원을 향했다."장명원 씨, 난 장명원 씨를 한 번도 탓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전에 장명원 씨가 구은서 때문에 나를 적대시했던 건 장명원 씨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였으니까 그랬겠죠. 우리가 친구라는 걸 모르기도 했고. 그러니 난 장명원 씨를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불곰에 대해서는, 나 오히려 장명원 씨한테 고마워하고 싶어요. 장명원 씨도 내가 불곰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했는지 잘 알잖......"소희의 말허리가 갑자기 끊겼다. 남자의 억눌린 목메는 소리가 들려와서.그녀는 장명원의 마음속에 한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직하고 의리적이며 시비가 분명하고, 사랑할 줄 알고 미워할 줄 아는 그런 아이.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정 때문에 남김없이 구은서를 감싸다가도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즉시 구은서와 선을 긋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그래서 그의 자책과 괴로움을 그녀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한참 후, 장명원이 냉정해지고 나서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저 반드시 서희 씨의 눈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소희가 듣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현실을 받아들인 후의 태연함이 역력했다."내가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혀 하느님이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걸 겁니다. 남은 생은 어둠 속에서 살아야하는 벌.""
심명이 냉소하며 물었다."설마 그 임구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까?""두려워하지 않는 거랑 적대시하는 건 별개의 일이야!"심명의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나 심지어 임구택과 연락도 안 돼. 장시원이 나한테 연락이 와서 너에게 전하더라군, 당장 소희에게서 떨어져라고.”심명이 하찮다는 듯 웃었다."임구택은 정말 자신이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에게 전해 주세요. 소희는 이젠 그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니, 소희가 앞으로 누구와 있던 그가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이 없다고요."말을 마치고 심명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의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는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눈빛이 금세 어두워진 심명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임구택, 벌써 조급해 난건가?하지만 더 조급해 날 일이 아직 남았는걸?그는 몸을 돌려 소희 찾으러 갔다. 그러다 해당화 나무를 사이에 두고 멀리서 간미연, 그리고 장명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희를 보았다. 소희의 희고 온화한 얼굴에는 느긋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차마 방해하고 싶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그렇게 잠시 서 있다 그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소희에게 친구와 담소를 나눌 시간을 줄겸 그도 마침 처리할 일이 생겼으니.*늦게 심명은 장원으로 돌아와 소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소희는 하인의 시중이 필요없이 매번 젓가락으로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정확하게 집을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얼굴에서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 못챌 정도로.심명이 탕수물고기를 그녀 앞으로 밀며 웃었다."소희 착하지? 밥 먹고 약 먹자?"소희는 심명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말 똑바로 해.""어떡하지?"심명이 실눈을 뜨고 웃었다."네가 화난 모습조차도 이젠 너무 귀여워."소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긴 속눈썹을 드리우고 담담하게 말했다."심명, 내일 나를 돌려보내줘. 나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어.""왜?"심명이 듣더니 즉시 눈썹을 올리고 물었다."하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임구택은 성씨 가문, 노씨 가문, 심지어 진석까지 모두 뒤에서 심씨 그룹을 지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임구택은 하찮다는 듯 제재강도를 거듭 높여 심씨 그룹을 겨냥했다.임씨 가문은 어디까지나 강성의 주재였으니 뒤에서 지지하는 세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심씨 그룹 안팎에서는 여전히 각종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심명의 아버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심명은 죽어도 소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심지어 부자 관계를 끊겠다는 얘기까지 오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늦은 밤.임구택이 집에 돌아왔을 땐 시간이 이미 많이 늦었다.그러다 마침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소파에 놓여진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수신번호를 확인한 그의 눈에는 음울한 빛이 스쳤다. 그는 베란다로 걸어가면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야, 소희."임구택의 말투에서 소외감이 느껴졌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정말 영광이네,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소희가 담담하게 말했다."임구택, 우리 사이의 일은 심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더는 심씨 가문을 겨냥하지 말아줘.”순간, 임구택의 마음속에서 노기가 솟구쳤다.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웠다."심명이 너더러 나에게 사정하라고 한 거야, 아니면 네가 심명이 불쌍해서 이러는 거야? 소희, 넌 정말 대단해.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나와 사귈 때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건드린 거야?"소희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 한참이 지나서야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심씨 가문을 놔줄 거야?""놔줘?"임구택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말투에는 서리가 껴있었다."심명을 떠나. 그리고 될수록 내 앞에도 나타나지 마. 네가 눈에 보이지 않고, 너의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나도 화 낼 일이 없겠지?"휴대폰 맞은편이 다시 침묵에 잠겼다. 미세한 숨소리만 들렸다.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임구택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감히 심명을 위해 사
……이틀 후.오늘은 임구택의 생일이라고 구은서가 이른 아침부터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저녁에 보자고 약속했다.장시원은 진작 케이슬에 전세방을 예약했고,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케이슬에서 임구택의 생일을 축하했다.구운정의 복귀와 성연희의 폭로로 구은서의 가문과 사업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회사에서는 더욱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이유로 그녀의 모든 일정을 잠시 중단했다.그렇게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구은서는 일을 삭감하고 정력과 시간을 모두 임구택을 되찾는 일에 퍼부겠다고 결정했다.그래서 임구택의 생일 당날, 그녀는 많은 신경을 써서 선물을 고르고 생일상을 차리고 저녁에 입을 옷을 골랐다.사업을 잃으면 어때, 임씨 대표님의 부인만 된다면 여전히 모든 여인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인생의 승자로 되는 건데.*같은 시각, 강성공항.개인 비행기장에서, 진석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기분 전환하는 셈 치고, 쓸모없는 생각하지 마요. 졸업에 관한 일은 내가 처리해 줄게요. 그리고 사부님과 할아버지한테 당분간 비밀로 할 테고."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선배."진석은 그녀를 흘겨보고 가볍게 웃었다."이미 익숙해졌는걸요."소희는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선배, 내가 선배에게 진 빚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나중에 갚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바보!"진석은 반쯤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눈살을 어루만졌다."몸 잘 기르고,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해요.""네!"바람이 건조한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소희의 귀밑머리를 불어 날렸다. 빛을 잃은 눈은 고요했다."갈게요.""잘 다녀오세요!"진석은 천천히 일어나 직원이 그녀를 밀고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소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들어 팔만 휘두르며 진석과, 그리고 이 도시와 작별했다.그녀는 차오르는 시큰거림을 삼키고 어둠 속에서 평정심을 되찾았다.헬리
"왜서긴."성연희가 냉소하며 "전에 내가 드레스를 입어보러 가자고 했거든? 그런데 시간이 없대.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그의 회사에 갔지. 마침 회사에서 방금 계약한 연예인이 그의 다리에 앉아 있는 거야. 두 사람은 웃고 떠드느라 내가 거기에 서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라고 대답했다.그러면서 자조하듯 웃었다."소희야, 네 말이 맞아. 두 사람의 감정을 혼자서 유지하는 건 정말 너무 피곤해!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고, 결혼식도 취소했어."소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언제적 일이야?""네가 밀수에 가기 전. 하지만 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말하고 있는 성연희의 목소리는 어딘가 어두웠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나 네가 걱정이 되어서 진작에 나가 기분을 전환하고 싶어도 나가지 못했거든. 그런데 마침 네가 떠나겠다니, 정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는 거지. 우리의 이번 여행은 ‘즐거운 행성’여정이야. 우리 세계 여행 가자. 얼어 죽을 남자들은 다 꺼지라고! 남자들은 다 인간 쓰레기야.""저기요, 저기요!"심명이 불쾌해서 말했다."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난 여태껏 소희에겐 일편단심이었어. 한번도 변해본 적이 없다고.""네가 감히 소희에게 못되게 굴었다간, 도중에 너를 밖으로 걷어차버릴 거야!"성연희가 냉소하며 말했다.심명이 듣더니 숨을 내쉬며 키득거렸다."왠지 지금 네가 남자한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나와 소희를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할 작정인 거 같은데?""나와 소희야말로 진심이야. 넌 쓸데없는 사람이라고. 사라지는것도 맞는 일이야."성연희가 다시 말했다."난 몰라. 아무튼 난 소희 따라 갈거야!"심명이 뻔뻔스러우면서도 또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소희에게 끼어들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그럼 네가 우리 소희에게 잘해줬던 걸 봐서 한 번만 태워줄게."성연희가 웃으며 조종석으로 돌아가 똑바로 앉았다."똑바로 앉아, 이륙할
임구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손에 들린 남색 벨벳 상자를 보며 물었다."언제 너에게 준 거야?"임유민이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십여 일이 되었을걸요. 먼 곳에 한 번 갔다 와야 한다면서,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대신 전해 달하라고 했어요."임구택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그는 바로 손을 뻗어 상자를 건네받았다.상자는 가벼운데,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대체 무슨 뜻이지?그녀의 성격으로는 헤어진 사람에게 선물을 줄 리가 없는데.열흘 전이라고? 어디로 간 거지?마음이 어수선해진 임구택은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선물상자를 들고 위층으로 걸어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는 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그렇게 손에 든 상자를 한참 보다가 위의 리본을 천천히 풀었다.상자를 여는 과정에서 그는 의외로 약간 긴장되었다.그에게 무엇을 준비했을까?임유민의 손을 빌려 그에게 선물을 주는건, 화해하려는 걸까?그의 끊임없는 추측하에 상자가 열렸다. 상자속에는 영어로 된 증서가 있었다. 결혼증이었다.더욱 어리둥절해졌다.증서를 열어보니 안에는 그와 소희의 이름, 그리고 4년 전으로 적혀 있는 결혼 날짜가 있었다.임구택은 순간 멍해졌다.내가 언제 소희와 결혼한 적이 있었던가?난 딱 한 번, 그것도 소씨 가문의 딸과 혼인을 맺었었는데?소정인의 딸, 소희.임구택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휴대폰을 꺼내 소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소정인의 공손한 말투가 들려왔다."임 대표님?”임구택이 숨을 깊이 들이쉬며 평정심을 되찾은 후 덤덤하게 물었다."당신 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소정인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제 딸? 소동이요?"임구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물었다."그럼 나와 결혼한 건 누구입니까?"소정인은 그제야 알아듣고 바로 대답했다."임 대표님과 결혼한 건 저의 다른 딸, 소희입니다.”임구택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더니, 휴대폰이 바로 손바닥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넓은 도로에서 차가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임구택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급속히 변하고 있는 풍경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났다.그가 이를 악물고 억누르고 있던 공포심은 결국 통제를 벗어나 그의 몸에서 만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큰 그물로 변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피할 수도 없이 안에 갇혀버렸다.결혼증을 본 순간, 그는 이미 여러 일이 그의 예상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걸 눈치챘다.반드시 소희를 만나야 해. 직접 그의 입에서 모든 일의 경과를 들어야 해.그는 소희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의 휴대폰은 시종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심명의 휴대폰도 방금 통화가 끝난 뒤로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크나큰 강성은 순간 안개로 뒤덮인 새장으로 변했고, 그는 마치 안에 갇혀 출구를 찾는 짐승 같았다.차는 청원 앞에 세워졌다.청원은 그가 직접 디자인한 곳이지만, 소씨 가문과 통혼한 후로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그와 일면식도 없는 아내가 이곳에서 3년을 살았고, 지난해 두 사람의 결혼이 끝나면서 그 아내도 이집에서 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씨 아주머니가 말해 줬으니까.청원에 들어서니 잔디밭에 엎드려 있던 사모예드가 즉시 경계하며 일어섰다. 그러다 잠깐 멍해지더니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자 오씨 아주머니와 임씨 아저씨가 마중하러 나왔다.오씨 아주머니가 기뻐하며 말했다."둘째 도련님, 오랜만이네요."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별장을 바라보노라니 오만가지의 정서가 북받쳐오르는 느낌이 들었다.소희가 정말 이곳에서 3년을 살았다고?그 소희가 정말 그와 같이 있었던 그 소희인 건가?왜 믿겨지지가 않지?"내 부인은......"임구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아니, 그, 소씨 아가씨가 이 집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온 적이 있습니까?""당연하죠!"오씨 아주머니가 즉시 말했다."사모님께서는 늘 설희 보러 오셨거든요.""설희?"임구택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너무 혼란스러웠다."나가 일 보세요. 저 혼자 여기에 좀 있을게요."임구택이 덤덤하게 말했다."네, 둘째 도련님.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르세요."오씨 아주머니가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임구택은 소파에 앉아 강제로 평정심을 되찾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소정인이 소희가 호텔로 가서 그를 찾은 적이 있다고 했지. 천위 호텔를 말하고 있을 거야. 그들이 처음 만난 곳.그러니 그때 사람 찾으러 왔다고 한 게, 사실은 그를 찾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외로 특수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고, 그후 명후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희는 침대에서 그와 명우의 대화를 듣다가, 그가 소정인을 비웃는 내용까지 나오자 창문으로 뛰여내려 도망쳤을 거고.다음날, 그들은 다시 강성대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세 번째 만남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그녀가 한 별장 구역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수업하러 간 게 아니라 소씨 가문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혼자서 비를 맞으며 떠났다.그리고 그 후 그녀는 가정교사로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많은 의혹이 있었다.소희가 어떻게 소정인의 딸일 수가 있지?소희는 운성에서 입양된 거 잖아?왜 과거가 전부 공백으로 되어있지?서인, 진석 그들과는 또 어떻게 알게 된 거고?임구택은 초조한 나머지 짜증까지 났다. 그는 일어나서 방을 다시 살펴볼 겸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화장대 위는 아주 깨끗했고 두권의 책밖에 없었다.서랍을 열어보니 안에는 간단한 스킨케어 제품들만 있었고, 가장 안 쪽에는 책 한 권이 더 있었다.임구택이 책을 꺼냈다. 왜 그 책만 가장 안 쪽에 두었는지 알 수 없어 닥치는 대로 뒤적였다.책 속에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꺼냈다. 그러다 순간 멍해졌다.익숙한 숲속, 익숙한 위장복. 그의 손은 여위고 허약해 보이는 여자아이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고, 여자아이의 눈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