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원이 계속 말했다."비록 소희가 화원에 앉아 있는 모습만 멀리서만 보았을 뿐 똑똑히 보지는 못했다지만, 지난번 일로 소희에 대한 인상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잘못 보지는 않았을 거래."임구택은 큐대를 상 위에 던지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운기 그룹과 정순 산하의 모든 회사에 통지해, 심씨 그룹과의 프로젝트를 전부 철수하라고. 그들이 만약 응하지 않는다면 임씨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알리고."그러고는 또 연달아 여러통의 전화를 걸었다.장시원이 옆에서 듣더니 비웃었다."너 지금 뭐하는 거야? 마침내 분풀이를 할 상대를 찾았다 이거야?"임구택의 긴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매서울 정도로 아무런 감정 기복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내가 놀다 남은 거라 해도 그놈은 앗아갈 자격은 없어."......이틀 후,교외의 한 개인장원,심명은 주방에서 새로 끓인 약밥 한 그릇을 들고 소희 방으로 갔다.소희는 비록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청력이 더욱 예민해졌기에 심명이 문 쪽에 접근하자마자 소리를 듣고 즉시 누워 이불을 덮고 잠든 척을 했다.심명은 그릇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자는 척하지 말고 빨리 뜨거울 때 먹어."소희는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심명은 침대옆에 앉아 몸을 숙인 채 온유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착한 소희 씨, 빨리 먹어. 다 신체 회복에 좋은 것들이야."소희는 여전히 깨어나려 하지 않았다."계속 자는 척하면 나 너 간지러움 태울 거야."심명이 손을 뻗어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러자 소희가 즉시 눈을 뜨고 어쩔수 없다는 듯이 심명을 ‘바라보았다’."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차라리 벌을 줘, 더는 이런 것들로 나를 괴롭히지 말고.”심명이 어디에서 영양사들을 찾아왔는지, 끓인 약밥은 냄새도 고약하고 맛도 없어 한 번 먹을 때마다 인생이 암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먼지가 한층 뒤덮인 듯한 그녀의 눈을 보며 심명은 마음이 아파났다. 하지만 아무 일도
소희는 아주 심하게 다쳤다. 잘려나간 다리의 두 힘줄은 수술 후 성공적으로 연결되었지만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래서 지금은 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었다.오전 10시, 해빛이 제일 뜨거울 때 그들이 밖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 심명이 떠보 듯 물었다."소희야, 빛을 느낄 수 있어?"소희는 큰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에 심명이 즉시 말했다."괜찮아, 조급해하면 안 돼. 의사께서 그러셨거든, 너의 회복 속도가 아주 빠른 거라고."소희가 옅게 웃었다."나를 위로할 필요 없어. 이미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거든."심명은 갑자기 목구멍이 메왔다.깨어난 후 자신이 실명했다는 걸 알게 된 소희는 잠시 멍해있었을 뿐 울지도 떠들지도 않았다.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 내가 너의 눈이 될 거야."소희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연희도 내 눈이 되겠다고 그러고, 서인도 내 눈이 되겠다고 그러던데. 지금은 너마저도 똑같은 말을 하네. 내게 만약 진짜 그렇게 많은 눈이 생기면 괴물이 되는 거잖아?"심명은 그녀를 밀며 돌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히히덕거렸다."괴물이 돼도 나는 네가 좋아."소희는 단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물었다."그럼 네 여자친구는?""여자친구 아니야!"심명이 바로 말했다."그럼 섹파?"소희가 눈썹을 올리며 다시 물었다.심명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인정했다."그래, 여자친구 맞아, 하지만 이미 헤어졌어!""왜?"소희가 물었다."내가 제일 사랑하는 소희한테 화를 냈으니까."심명은 몸을 굽혀 비위를 맞추 듯 웃으며 대답했다.그러자 소희가 바로 그의 얼굴을 밀어젖히고 말했다."나쁜 남자 냄새 나, 나한테서 떨어져."심명은 갑자기 좌절감이 들었다. 소희는 분명 볼 수 없지만 매번 그가 그녀를 기습하려고 할 때면 그녀는 항상 미리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참 기다려도 장명원이 말을 하지 않자 소희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간미연은요? 함께 오지 않았나요?"장명원이 내색하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왔어요. 의사 만나러 갔거든요, 조금 있다가 올 겁니다.""올 때마다 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는데. 나 바로 여기 있는데 그냥 나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소희가 농담하 듯 말했다.장명원은 말을 하지 않았다.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지, 아니면 전에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명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소녀의 상처와 빛을 잃은 두 눈 앞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창백하고 무기력하기 했을 거니까.반나절의 침묵 후, 소희는 휠체어를 돌려 장명원을 향했다."장명원 씨, 난 장명원 씨를 한 번도 탓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전에 장명원 씨가 구은서 때문에 나를 적대시했던 건 장명원 씨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였으니까 그랬겠죠. 우리가 친구라는 걸 모르기도 했고. 그러니 난 장명원 씨를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불곰에 대해서는, 나 오히려 장명원 씨한테 고마워하고 싶어요. 장명원 씨도 내가 불곰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했는지 잘 알잖......"소희의 말허리가 갑자기 끊겼다. 남자의 억눌린 목메는 소리가 들려와서.그녀는 장명원의 마음속에 한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직하고 의리적이며 시비가 분명하고, 사랑할 줄 알고 미워할 줄 아는 그런 아이.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정 때문에 남김없이 구은서를 감싸다가도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즉시 구은서와 선을 긋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그래서 그의 자책과 괴로움을 그녀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한참 후, 장명원이 냉정해지고 나서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저 반드시 서희 씨의 눈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소희가 듣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현실을 받아들인 후의 태연함이 역력했다."내가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혀 하느님이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걸 겁니다. 남은 생은 어둠 속에서 살아야하는 벌.""
심명이 냉소하며 물었다."설마 그 임구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까?""두려워하지 않는 거랑 적대시하는 건 별개의 일이야!"심명의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나 심지어 임구택과 연락도 안 돼. 장시원이 나한테 연락이 와서 너에게 전하더라군, 당장 소희에게서 떨어져라고.”심명이 하찮다는 듯 웃었다."임구택은 정말 자신이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에게 전해 주세요. 소희는 이젠 그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니, 소희가 앞으로 누구와 있던 그가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이 없다고요."말을 마치고 심명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의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는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눈빛이 금세 어두워진 심명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임구택, 벌써 조급해 난건가?하지만 더 조급해 날 일이 아직 남았는걸?그는 몸을 돌려 소희 찾으러 갔다. 그러다 해당화 나무를 사이에 두고 멀리서 간미연, 그리고 장명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희를 보았다. 소희의 희고 온화한 얼굴에는 느긋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차마 방해하고 싶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그렇게 잠시 서 있다 그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소희에게 친구와 담소를 나눌 시간을 줄겸 그도 마침 처리할 일이 생겼으니.*늦게 심명은 장원으로 돌아와 소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소희는 하인의 시중이 필요없이 매번 젓가락으로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정확하게 집을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얼굴에서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 못챌 정도로.심명이 탕수물고기를 그녀 앞으로 밀며 웃었다."소희 착하지? 밥 먹고 약 먹자?"소희는 심명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말 똑바로 해.""어떡하지?"심명이 실눈을 뜨고 웃었다."네가 화난 모습조차도 이젠 너무 귀여워."소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긴 속눈썹을 드리우고 담담하게 말했다."심명, 내일 나를 돌려보내줘. 나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어.""왜?"심명이 듣더니 즉시 눈썹을 올리고 물었다."하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임구택은 성씨 가문, 노씨 가문, 심지어 진석까지 모두 뒤에서 심씨 그룹을 지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임구택은 하찮다는 듯 제재강도를 거듭 높여 심씨 그룹을 겨냥했다.임씨 가문은 어디까지나 강성의 주재였으니 뒤에서 지지하는 세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심씨 그룹 안팎에서는 여전히 각종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심명의 아버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심명은 죽어도 소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심지어 부자 관계를 끊겠다는 얘기까지 오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늦은 밤.임구택이 집에 돌아왔을 땐 시간이 이미 많이 늦었다.그러다 마침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소파에 놓여진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수신번호를 확인한 그의 눈에는 음울한 빛이 스쳤다. 그는 베란다로 걸어가면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야, 소희."임구택의 말투에서 소외감이 느껴졌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정말 영광이네,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소희가 담담하게 말했다."임구택, 우리 사이의 일은 심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더는 심씨 가문을 겨냥하지 말아줘.”순간, 임구택의 마음속에서 노기가 솟구쳤다.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웠다."심명이 너더러 나에게 사정하라고 한 거야, 아니면 네가 심명이 불쌍해서 이러는 거야? 소희, 넌 정말 대단해.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나와 사귈 때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건드린 거야?"소희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 한참이 지나서야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심씨 가문을 놔줄 거야?""놔줘?"임구택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말투에는 서리가 껴있었다."심명을 떠나. 그리고 될수록 내 앞에도 나타나지 마. 네가 눈에 보이지 않고, 너의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나도 화 낼 일이 없겠지?"휴대폰 맞은편이 다시 침묵에 잠겼다. 미세한 숨소리만 들렸다.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임구택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감히 심명을 위해 사
……이틀 후.오늘은 임구택의 생일이라고 구은서가 이른 아침부터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저녁에 보자고 약속했다.장시원은 진작 케이슬에 전세방을 예약했고,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케이슬에서 임구택의 생일을 축하했다.구운정의 복귀와 성연희의 폭로로 구은서의 가문과 사업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회사에서는 더욱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이유로 그녀의 모든 일정을 잠시 중단했다.그렇게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구은서는 일을 삭감하고 정력과 시간을 모두 임구택을 되찾는 일에 퍼부겠다고 결정했다.그래서 임구택의 생일 당날, 그녀는 많은 신경을 써서 선물을 고르고 생일상을 차리고 저녁에 입을 옷을 골랐다.사업을 잃으면 어때, 임씨 대표님의 부인만 된다면 여전히 모든 여인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인생의 승자로 되는 건데.*같은 시각, 강성공항.개인 비행기장에서, 진석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기분 전환하는 셈 치고, 쓸모없는 생각하지 마요. 졸업에 관한 일은 내가 처리해 줄게요. 그리고 사부님과 할아버지한테 당분간 비밀로 할 테고."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선배."진석은 그녀를 흘겨보고 가볍게 웃었다."이미 익숙해졌는걸요."소희는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선배, 내가 선배에게 진 빚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나중에 갚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바보!"진석은 반쯤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눈살을 어루만졌다."몸 잘 기르고,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해요.""네!"바람이 건조한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소희의 귀밑머리를 불어 날렸다. 빛을 잃은 눈은 고요했다."갈게요.""잘 다녀오세요!"진석은 천천히 일어나 직원이 그녀를 밀고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소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들어 팔만 휘두르며 진석과, 그리고 이 도시와 작별했다.그녀는 차오르는 시큰거림을 삼키고 어둠 속에서 평정심을 되찾았다.헬리
"왜서긴."성연희가 냉소하며 "전에 내가 드레스를 입어보러 가자고 했거든? 그런데 시간이 없대.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그의 회사에 갔지. 마침 회사에서 방금 계약한 연예인이 그의 다리에 앉아 있는 거야. 두 사람은 웃고 떠드느라 내가 거기에 서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라고 대답했다.그러면서 자조하듯 웃었다."소희야, 네 말이 맞아. 두 사람의 감정을 혼자서 유지하는 건 정말 너무 피곤해!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고, 결혼식도 취소했어."소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언제적 일이야?""네가 밀수에 가기 전. 하지만 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말하고 있는 성연희의 목소리는 어딘가 어두웠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나 네가 걱정이 되어서 진작에 나가 기분을 전환하고 싶어도 나가지 못했거든. 그런데 마침 네가 떠나겠다니, 정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는 거지. 우리의 이번 여행은 ‘즐거운 행성’여정이야. 우리 세계 여행 가자. 얼어 죽을 남자들은 다 꺼지라고! 남자들은 다 인간 쓰레기야.""저기요, 저기요!"심명이 불쾌해서 말했다."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난 여태껏 소희에겐 일편단심이었어. 한번도 변해본 적이 없다고.""네가 감히 소희에게 못되게 굴었다간, 도중에 너를 밖으로 걷어차버릴 거야!"성연희가 냉소하며 말했다.심명이 듣더니 숨을 내쉬며 키득거렸다."왠지 지금 네가 남자한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나와 소희를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할 작정인 거 같은데?""나와 소희야말로 진심이야. 넌 쓸데없는 사람이라고. 사라지는것도 맞는 일이야."성연희가 다시 말했다."난 몰라. 아무튼 난 소희 따라 갈거야!"심명이 뻔뻔스러우면서도 또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소희에게 끼어들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그럼 네가 우리 소희에게 잘해줬던 걸 봐서 한 번만 태워줄게."성연희가 웃으며 조종석으로 돌아가 똑바로 앉았다."똑바로 앉아, 이륙할
임구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손에 들린 남색 벨벳 상자를 보며 물었다."언제 너에게 준 거야?"임유민이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십여 일이 되었을걸요. 먼 곳에 한 번 갔다 와야 한다면서,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대신 전해 달하라고 했어요."임구택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그는 바로 손을 뻗어 상자를 건네받았다.상자는 가벼운데,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대체 무슨 뜻이지?그녀의 성격으로는 헤어진 사람에게 선물을 줄 리가 없는데.열흘 전이라고? 어디로 간 거지?마음이 어수선해진 임구택은 더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선물상자를 들고 위층으로 걸어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는 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그렇게 손에 든 상자를 한참 보다가 위의 리본을 천천히 풀었다.상자를 여는 과정에서 그는 의외로 약간 긴장되었다.그에게 무엇을 준비했을까?임유민의 손을 빌려 그에게 선물을 주는건, 화해하려는 걸까?그의 끊임없는 추측하에 상자가 열렸다. 상자속에는 영어로 된 증서가 있었다. 결혼증이었다.더욱 어리둥절해졌다.증서를 열어보니 안에는 그와 소희의 이름, 그리고 4년 전으로 적혀 있는 결혼 날짜가 있었다.임구택은 순간 멍해졌다.내가 언제 소희와 결혼한 적이 있었던가?난 딱 한 번, 그것도 소씨 가문의 딸과 혼인을 맺었었는데?소정인의 딸, 소희.임구택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휴대폰을 꺼내 소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소정인의 공손한 말투가 들려왔다."임 대표님?”임구택이 숨을 깊이 들이쉬며 평정심을 되찾은 후 덤덤하게 물었다."당신 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소정인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제 딸? 소동이요?"임구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물었다."그럼 나와 결혼한 건 누구입니까?"소정인은 그제야 알아듣고 바로 대답했다."임 대표님과 결혼한 건 저의 다른 딸, 소희입니다.”임구택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더니, 휴대폰이 바로 손바닥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오석준은 결국 해고되었고, 정휘현도 부하 직원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징계받았다. 그리고 안토니네 민박집은 철거되지 않기로 확정되었으며, 주변의 다른 민박들도 철거 대상에서 제외되었다.이 소식을 들은 박민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모든 일이 해결되자, 서인은 마심호에게 먼저 강성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한 뒤, 직접 차를 몰아 안토니네 가족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토니의 부모와 박민란은 서인의 차에 타고, 토니는 다른 차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 오직 박민란만이 계속 떠들었다.“윤석경 씨, 솔직히 작은 안주설 같은 여자는 절대 며느리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헤어진 게 잘된 일이죠. 저런 애는 속이 너무 안 좋아요!”“그 애가 저도 속이려고 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서인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죠!”“이번 일은 정말 서인 씨 덕분이에요. 덕분에 우리 집도 철거되지 않게 됐고요. 그런데 서인 씨, 그 오석준이 왜 당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거예요?”조수석에 앉아 있던 임유진이 뒤를 돌아보며 웃으며 말했다.“도련님은 말 그대로 뜻하는 거죠!”박민란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가씨, 나를 속이려는 거 아니죠? 난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그러면 왜 물어보셨나요?”박민란은 순간 말문이 막히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서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한 듯, 태도는 더욱 공손해졌다.“아가씨도 참 대단해요!”유진은 여전히 밝은 미소로 말했다.“칭찬은 됐고요. 제가 선생님네 난초를 꺾은 걸 용서해 주시기만 하면 돼요!”박민란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민망하게 웃었다. 토니네 집에 도착한 후, 가족들은 모두 서인에게 미안해했다.비록 주설이 가족은 아니지만, 그녀는 약혼자나 다름없었기에 그녀의 행동이 곧 가족의 잘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서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어차피 주설이 사진 몇 장으로 나를 모함하려고 했을 때도, 여러분은 저를 의심하지 않았잖아요.
서인은 유진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나가자, 방 안에는 오직 안토니 가족만이 남게 되었다....옆 사무실에서 이한우가 웃으며 서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야, 너 진짜 구씨 집안 사람이었어?”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냥 서인이라고 부르는 게 편할 거예요.”이한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겠네?”서인은 쓴웃음을 지었다.“처음엔 이 호텔이 우리 가족 소유인 줄 몰랐어요. 형이 담당자를 찾아 해결할 수 있다고 하길래, 괜히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맡긴 거예요.”“그런데 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죠.”그는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토요일에 이한우와 만났고, 일요일에 유진과 함께 흥성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호텔을 지나쳤다. 그때야 호텔의 로고를 보고, 이곳이 구씨 그룹의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라는 걸 알았다.월요일에 오석준을 만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기에, 더 이상 문제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주설과 오석준이 손을 잡고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서인과 한우는 과거 함께 훈련받고 임무를 수행했던 사이다.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이는 되어도, 서로의 사적인 신분에 대해서는 깊이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한우도 그런 서인의 태도를 이해하고, 그런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따지지는 않았다. 대신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해결됐으니 다행이지. 더 중요한 건, 이 일 덕분에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거야. 그리고 서로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도.”서인은 미소를 짓고 이한우와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한편, 토니는 끝내 주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고, 주설은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주설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유진을 찾아가 따지기로 했다. 마침 사무실 맞은편 회의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주설은 안을 들여다보았다.그곳
오석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제가 철거 담당자들에게 안토니 가족을 압박하라고 지시하고 있을 때, 도련님이 흥성에 오셨어요. 그러자 안주설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요.”“어떻게든 도련님을 쫓아내지 않으면 계약이 성사되지도 않고, 집도 철거할 수 없을 거라고 했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이한우 씨가 저를 찾아왔어요.”“그래서 저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우선 도련님께 안토니네 민박을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일부러 차를 건네는 척하며 사진을 찍게 했죠.”“안주설과 저의 계획은 이랬어요. 도련님이 흥성을 떠나면, 즉시 안토니네 민박을 철거하는 것.”“하지만 도련님이 떠나지 않으면, 그 사진을 안주설에게 보내 안주설이 안토니 가족에게 보여주면서 도련님이 호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모함한다.”“그렇게 해서 안토니 가족이 도련님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흥성을 떠나게 할 생각이었어요.”오석준의 말을 들은 토니의 가족은 모두 경악했다. 주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곧바로 오석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당신 지금 헛소리하는 거잖아요! 난 그런 일 전혀 몰라요! 근데 왜 나를 모함하는 거죠? 혹시 서인 사장님이 시킨 거 아녜요? 당신들 한 패잖아요!”하지만 오석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설을 내려다보았다.“처음 나를 찾아온 건 당신이었어. 일이 끝나면 보상금의 10%를 주겠다고 했지.”“그리고 도련님께서 철거를 막으려고 하자, 당신이 더 급해져서 나와 철거 계약까지 따로 체결했잖아.”유진은 모든 게 이해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철거 담당자들이 더 이상 안토니 가족을 압박하지 않았던 거군. 이미 안주설이 가족을 사칭하고 계약했으니까.’그 순간, 박민란의 얼굴도 점점 변했고 마침내 작게 중얼거렸다.“사진, 그 사진은 안주설이 나한테 준 거예요. 서인이 호텔 측에서 돈을 받아서 자기 남자친구네는 철거하지 않을 거지만, 우리 집은 곧 철거될 거라고 했어요.”“그래서 다른 민박집 주인들과 함께 가서 소란을 피우
오석준의 시선이 흔들리며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마심호가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와서 숨길 게 뭐가 있나? 전부 말해요!”오석준은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보상금 총액의 10%를 저에게 주기로 약속했어요.”“허!”정휘현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임유진과 서인은 눈을 마주친 뒤, 유진이 오석준을 향해 말했다.“일단 여기까지 듣죠.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시죠.”그러고는 오석준의 비서를 바라보며 지시했다.“안토니네 가족이 맞은편 식당에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당장 그 사람들을 데려오세요. 안주설도 포함해서 모두 오게 하세요.”마심호가 도착하기 전, 서인은 이미 이한우를 시켜 토니 가족을 시내로 데려오게 했다. 안토니 가족을 맞은편 식당에 대기시켜 두었는데, 진실을 밝히려면 관련된 모든 사람이 있어야 했다.비서가 오석준을 바라보자, 그는 깊게 찡그린 채 짧게 말했다.“가서 데려와요!”이에 비서는 즉시 밖으로 나갔다.몇 분 뒤, 토니네 가족이 도착했고, 옆집 민박집 주인 박민란도 따라왔다.박민란은 토니 가족이 불려 간다는 소식을 듣자, 철거 보상금 문제를 몰래 처리하는 게 아닌지 걱정돼서 어떻게든 따라오려 했다.운전기사가 말렸지만, 그녀가 완강하게 버티자 결국 데려오게 됐다. 사무실 문을 열기 전부터 박민란은 소리를 질렀다.“또 우리한테 강제로 철거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하는 거예요? 저 서인이라는 사람, 당신 도대체 우리 돈 받아서 어디로 사라진 거예요?”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고 난 후, 방 안을 가득 채운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보자마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토니는 서인을 보자 반갑게 외쳤다.“서인 형!”그러나 토니의 옆에 서 있던 주설은 냉소적인 태도로 말했다.“아직도 형이라고 부르네? 눈치 좀 챙겨. 형이 아니라 호텔 측 사람이야. 넌 진짜 바보야.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도 모른다고!”토니는 눈살을 찌푸렸다.“서인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주설은 화를 내며 말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안에는 마심호뿐만 아니라 서인과 이한우도 있었다.오석준이 나타나자마자, 한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성큼 다가가 오석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챘다.“오석준 사장님, 감히 날 가지고 놀아요?”오석준은 서인과 한우를 보자마자 상황을 눈치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둘이 아니라, 마심호였다.오석준은 재빨리 이한우의 손을 뿌리치고 옷깃을 정리하더니, 곧장 마심호에게 다가가 얼굴 가득 아부하는 미소를 지었다.“마심호 사장님, 저는 오석준이라고 해요. 호텔의 모든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죠.”“이번에 몇몇 민박이 우리가 계획한 골프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상금을 주고 이주하도록 했죠.”“그런데 이 두 사람이 그중 한 가족을 대신해 저를 찾아와서 뇌물을 주려 했어요. 그 집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제가 거절했더니, 이렇게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그러자 한우가 격분하여 소리쳤다.“헛소리하지 마세요! 본인이 분명 동의해 놓고, 나중에 말을 바꿨잖아요! 이제 와서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겠다고요?”하지만 오석준은 오직 마심호만 바라보며 말했다.“마심호 사장님, 저는 오로지 우리 호텔을 위해 일했을 뿐이에요. 호텔과 그룹을 배신하는 행동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마심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석준 사장, 누가 당신한테 뇌물을 줬다는 거죠?”그러자 오석준은 곧장 서인을 가리켰다.“바로 이 사람이요! 그날 저를 초대해 밥을 사더니, 돈을 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받지 않았죠. 제 비서가 그 증인이에요!”그 순간, 서인 옆에 앉아 있던 유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마심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당신 말은, 서인 씨가 당신에게 뇌물을 줬다고요?”오석준은 확신에 찬 듯 말했다.“네, 맞아요!”마심호가 다시 물었다.“그럼, 당신이 말하는 서인 씨가 누구인지 알고
사람들이 끌려가고, 바닥에는 피가 얼룩진 채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도로가 깨끗이 정리되자, 두 사람은 차를 길가로 옮겨 도로를 비워주었다. 서인은 차를 출발시켜, 굉음을 내며 달려 나갔다.임유진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인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몇 분 후 차를 길가에 세웠다. 서인은 휴지를 꺼내 몸을 기울여 유진의 옆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놀랐어?”서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이제야 깨달았겠지?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없어. 멀리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았다.“예전에도 이렇게 살아왔어요?”서인의 손등 위로 유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그러자 서인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지만, 얼굴은 여전히 냉담했다.“그래.”유진은 서인을 깊이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사장님이 싸울 수 있는 걸 존경하지 않을래요. 대신, 네가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길 바랄 거예요.”오늘 유진은 분명 충격을 받았다. 저 칼은 진짜였고, 사람을 향해 휘두르면 살점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저 무거운 곤봉이 내려치면 뼈가 부러질 정도의 위력이었다.서인은 강했다. 하지만 결국 서인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만약, 혹시라도 다친다면...서인은 유진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가까이에서 맞닿았다.“어떤 일들은 피할 수 없어.”유진은 즉시 말했다.“그러면 앞으로 내가 항상 따라다닐 거예요. 사장님이 싸우면 나도 따라갈 거예요.”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안 무섭다고?”유진의 눈빛이 깊어졌다.“사장님이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서워요.”서인은 갑자기 손을 내리며 비웃듯 말했다.“구제 불능이군.”유진은 즉시 반박했다.“누가 그래요? 사장님은 내 치료약이예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집요함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액셀을 밟아 차를 빠르게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자, 맞은편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음침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지금 당장 흥성을 떠나. 그렇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죽게 될 거야. 네가 죽으면 네 여자친구는 더 비참한 꼴을 당할 거고. 선택해 봐!”곁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느끼한 목소리로 거들었다.“고작 안토니 가족 일에 네 목숨을 걸겠다고? 이렇게 예쁜 여자를 두고? 어이 형씨, 다시 한번 생각해 봐.”한쪽 팔에 기린 문신이 새겨진 사내가 비웃으며 말했다.“주제도 모르고 까불긴.”남자의 조롱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서인은 검은 옷을 입은 채,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도서인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안토니 가족 일,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야.”“이 새끼가 죽고 싶나 보네!”기린 문신의 사내가 침을 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긴 몽둥이를 휘둘러 서인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그러나 서인은 남자가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단숨에 앞으로 돌진한 그는 강하게 발차기를 날려 그 사내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퍽! 문신남은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땅에 쓰러진 그의 입에서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오자, 주변의 남자들은 순간 굳어버렸다.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고, 산속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싸늘하게 불어닥쳤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몇 초 후, 무리가 일제히 달려들었고, 길고 날카로운 칼과 몽둥이를 든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맹렬한 기세로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유진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사장님!”유진은 잔뜩 긴장했지만, 차마 서인을 혼자 두고 도망칠 수 없었다.서인은 냉정하게 움직였다. 달려오는 자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차 쓰러뜨린 후, 그가 떨어뜨린 칼을 순식간에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왼쪽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적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었다.“윽!”피가 솟구쳤고,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뒤쪽에서 또 다른 남자
윤석경은 눈가가 붉어졌지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힘들어하지 마. 정말 안 되면 그냥 철거해도 괜찮아. 어차피 아들이 매달 돈을 보내주니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서인은 잠시 윤석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유진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차가 산길로 접어들자, 유진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댔다.“그 안주설, 정말 능청스럽게 변명하더라고요. 증거가 다 나왔는데도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다니!”“누가 들어도 우리가 철거를 막는 게 못마땅했던 게 분명한데, 뒤에서 조종한 거 아니에요?”서인은 앞을 주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너도 거짓말을 했잖아. 그러니 사람들이 네 말을 전적으로 믿겠어?”“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유진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인을 바라보자, 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네가 월세로 산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랑 결혼해도 계속 월세로 살 거라고?”유진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 입술을 꼭 다문 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월세 살아도 괜찮아요.”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너 좀 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철없네.”유진은 억울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왜요?”서인은 무심하게 말했다.“넌 돈이 없는 생활을 해 본 적 있어? 돈이 없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유진은 서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조용히 말했다.“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여러 채 있어요. 결혼하든 안 하든 그건 변하지 않고요. 사장님이 월세 살고 싶다면 나도 그렇게 할게요.”“사장님이 원치 않는다면, 그냥 내 집에서 살면 돼요.”서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물었다.“그래서, 월세 살 거예요? 아니면 내 집에서 살 거예요?”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반문했다.“누가 너랑 결혼한대?”유진은 장난스럽게 피식 웃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한껏 우쭐해했다.그때, 도로 한가운데 두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