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건데?”“얼른 약속해.”소희는 임구택의 허리를 꼬집었다.임구택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아니, 그렇게는 못하겠어. 예전이라면 약속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난 네가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을 죽일거야.”소희는 고개를 들어 임구택을 바라보았다.임구택은 소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내가 만약 널 배신한다면 그땐 날 죽여줘.”소희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임구택은 소희가 놀랬을가 걱정되여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매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고싶은데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수 있어?”임구택은 소희의 귓가에 대고 뭐라 말했다.소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임구택을 노려보았다.임구택은 소희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시간 끌지 마,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데다가 너 잠도 많잖아.”소희는 임구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구은서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전전긍긍한 태도를 취한다면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것이다.…….다음날, 아침을 먹은 임구택은 옷을 갈아입었다. 소희는 아직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임구택은 소희한테 우유를 따라 먹이고는 한 숨 더 자라고 했다.어제밤 너무 늦게 취침했기에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소희는 임구택이 가슴 아프다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마음 아프면 어젠 나한테 왜 그랬는데?’소희는 너무 졸려 임구택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소희는 우유를 마시고는 다시 누웠다.임구택은 그제야 집을 나섰다.현관문에서 신발을 갈아신을때 임구택이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핸드폰을 켜보니 누군가가 친구 요청을 보내왔다. 이틀전에도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인지라 임구택은 망설임없이 거절했다.얼마 지나지 않으면 설 연휴였다. 소희는 할아버지한테 29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오늘부로 3일 남짓했다.제작사 쪽에서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는지라 소희는 한가했지만 임구택은 바빴다.
소희는 동공이 흔들렸다.“친구에요.”남자친구도 친구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날 속일 셈이냐?”도 씨 어르신이 불만을 토했다.“언제 데려올건데?”소희가 말했다.“설 연후에요.”“설 연후에 데리고 온다고?”도 씨 어르신이 피씩 하고 웃었다.“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하는거나.”소희의 꼼수가 들통나자 진석의 비웃음을 당했다.도 씨 어르신은 소희의 입에서 남자친구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소희의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도 씨 어르신도 급했는지라 다짜고짜 물었다.“그럼 강성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줘.”소희가 머리를 끄덕였다.“맞아요.”도 씨 어르신은 그제야 만족을 했다. 다른건 묻지 않았다. 고향이 강성이면 되었다.점심을 먹고나서 진석과 도 씨 어르신을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소희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임구택의 메시지를 받고는 방에서 나와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도 씨 어르신이 물었다.“쟤 임씨 가문이랑은 정리한거 맞지?”진석이 대답했다.“네, 3년전 일이잖아요.”“그럼 다행이고.”도 씨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계집애 진심인거 같은데 남자친구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네가 한번 봐줘.”진석이 머리를 흔들었다.“지금까지도 저한테 남자친구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요. 하지만 강 어르신은 알고 있어요. 강 어르신이 말리지 않는걸 보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아요.”“그 영감이 뭘 안다고 그래?”도 씨 어르신이 입을 삐쭉거리며 물었다.진석은 바둑판을 보며 말했다.“사부님 강 어르신은 믿지 못해도 소희는 믿으실거 아니에요. 소희가 마음에 둔 사람이면 괜찮은 사람일거에요.”도 씨 어르신이 차를 마시며 머리를 끄덕였다.“나도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보고 싶어.”진석이 웃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하인이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여선생님이 학생을 거느리고 왔어요.”도 씨 어르신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어느 학생?”“소연 아가씨요.”진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로 안부를 묻고서야 여정은 오늘 도 씨 어르신 댁에 들른 목적을 얘기했다. 소씨 가문에서 소연에게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주려고 하는데 진석이 한번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 씨 어르신의 명성으로 홍보를 하려는 속셈도 있었다.작업실을 마련하려는건 소연의 뜻이었다. 소연은 진원처럼 일찍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았다. 소희는 소씨 가문의 울타리에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씨 가문에서의 지위가 높아야 소희를 짓밟을수 있었기 때문이다.소연은 진심으로 사죄드렸다.“지난 번 일은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제가 어리고 멋 모른다고 생각하시고 절 용서해주세요.”진석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일은 없었던 일로 해.”진석은 소연이 지난번 소희를 모함한 일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앞으로 잘 부탁해요, 진 선생님.”“고마워 할 필요 없어, 지난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한다고 했지만 널 도와준다고는 하지 않았어.”진석이 차갑게 내뱉었다.소연은 퍽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정을 바라보았다.여정도 진석의 성격을 알고 있는지라 진석이 소연을 돕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었다. 오늘 도 씨 어르신께 소연을 소개시켜주려 온거였다.처음에 거절당하면 두번째 기회를 기다리면 되는 법이었다. 진석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소연이 안절부절해하자 여정은 다음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하며 몸을 일으켰다.두 사람이 정문으로 떠나려 할때 하인들이 마당 뒤쪽으로 걸어가는걸 보았다.도 씨 어르신은 뒷마당에 많은 꽃들을 심었는지라 겨울에도 꽃향기를 맡을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 짧은 부츠를 신고 하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있었다.보아하니 젊고 예쁜 여자인듯 했다.설마 저 여자가 King인걸까?King이 저렇게 젊었다고?진석은 여정의 선배지만 아주 젊었다 소연은 도 씨 어르신께서 나이순으로 계급을 나누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있었다.소연은 여자의 뒷모습이 웬지 익숙했다.“소연아!”여정이 소연을 불렀다.“가고 있어요.”소연은 고개를 돌려 여정의 뒤를 따랐다.소희는 임구택과 메시
“강시언은 돌아오는거야?”진석이 물었다.소희가 말했다.“안 돌아올거야, 오빠는 새로운 임무를 맡았는지라 설 쇠러 오지 못할거야.”진석은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이어갔다.“강시언은 강 어르신과 우리 모두가 우러러봐야할 영웅이야.”소희는 저 멀리 있는 노을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는 내 인생에 빛이었어.”소희는 오빠에 의해 지옥같은 훈련을 진행하며 조직생활을 진행했다. 서서히 소희에게도 전우들이 생기고 처음으로 임무를 맡았었다.소희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오빠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 막힌다고 소희가 임구택한테 문자했다.어정에 들어설때는 이미 땅거미가 어둑어둑 져있었다. 소희는 진석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계단으로 올라갔다.문을 열고 들어거자 주방의 불들이 켜있었다. 소희가 코트를 벋고 들어서자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임구택은 엷은 셔츠와 옅은 색의 긴바지를 입고있었는데 뒷모습만으로도 소희를 설레게 했다.국을 끓이고 있던 임구택이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어디 갔었어?”소희는 임구택의 허리를 끄러안았다.“어르신 뵈러 갔었어.”임구택이 물었다.“강성에 친척 있어?”“응.”소희가 나지막하게 대답하며 말했다.“맛있겠다.”임구택은 국을 한술 떠서는 호호 불어 소희의 입에 갖다대였다.“오늘 새로 배운 삼계탕이야, 어때?”소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맛있어!”임구택은 소희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떨렸다. 임구택은 소희를 끌어당기더니 두 손으로 턱을 잡고 뽀뽀를 했다.“달지 않아?”“맞춤해.”소희가 올려다보며 말했다.임구택은 머리를 숙여 진하게 키스 했다.“난 여길 말하는거야.”소희는 임구택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손만 씻고 나올게.”임구택은 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이튿날, 집에 있던 소희는 낯선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전화 건너편에서 고등학교때 반장이었다고 자칭하는 사람이 연말에 진행되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성하라와 소희 모두 강성미고 학생이었지만 다른 반이었다. 성하라는 워낙 인싸였는지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성하라는 캡쳐한 채팅 기록을 소희에게 보내주었다. 힐끗 보니 온통 소희 얘기 뿐이었다.반장이 채팅 그룹에서 소희가 개인사정으로 회식에 불참한다고 말하자 장미연이라는 여자애가 소희가 요즘 워낙 잘 나가서 회식자리에 참가하고 싶지 않을거라고 했다.이어 이지나 라는 사람이 소희에 대해 아는것이 있으면 얘기해봐라고 했다.장미연은 여름 방학때 소희가 케이슬에서 서빙 하는걸 보았었다고 했다.[설마, 그래도 강성대 학생인데, 여름방학 알바라도 그런곳에는 가지 않을거 아니야!][그런 곳에서 서빙만 하는줄 알아?]다른 사람들도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소희가 진짜 자신의 노력으로 강성대 붙은거 맞아?]소희는 채팅기록을 보며 장미연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소희는 미고를 다닐때 총점 750에서 120점은 맞고 다녔었다미고로 다니기전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지라 소정인이 0점을 맞으면 안된다고 귀띔하지 않았으면 소희는 아예 백지장을 낼 셈이었다.미고는 강성 귀족 중학교였기에 120을 맞은 후로 소희는 학교에 소문이 자자했다. 소정인이 돈을 두둑히 썼음에도 불구하고 소희는 제일 차한 반에서 지냈다.진성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소희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소희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성은 자신의 노트를 빌려주었다.장미연이 진성을 짝사랑하고 있었는지라 장미연은 소희를 미워했다.장미연은 여자애들 몇명을 불러 방과후 소희의 앞길을 막았다.그 일곱명의 여자애들은 소희한테 맞아서 병원에 실려갔다.성적도 안 좋은데다가 애들을 패기까지 했으니 이 일로 진연과 소정인도 학교에 불리워갔다.소희가 소씨 가문에 갓 들어갔을때라 처음애는 진원도 소희한테 잘해줬지만 소희가 싸움을 시작한 후로 진원은 소희를 망나니로 여겼다.그후로 진성도 소희한테 접근하지 않았다. 소희는 학교에서 누구나 피해다니는 열등생이 되었다.석달후, 소희는 차한 반에서 중등 반으로 올라오더니
“착해라.”…….우정숙은 9번방에 있었다. 6시쯤 임구택과 소희가 문밖에 도착해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정숙, 임지언, 임유민이 도착해 있었다.우정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를 반갑게 맞이했다.“소희야!”소희는 웃으며 세 사람을 맞이했다.“임 사모님, 임 아저씨.”임지언이 웃으며 말했다.“앉아요.”소희가 코트를 벗자 임구택이 자연스럽게 코트를 받아안아 옆 걸상에 걸어놓았다.우정숙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집 둘째 삼촌이 언제부터 이렇게 매너가 넘쳤대?”소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차를 마셨다.임구택이 웃으며 말했다.“매너가 꽝이었으면 소희가 절 받아주지도 않았을거에요.”우정숙이 웃으며 말했다.“둘째 삼촌이 눈 너무 높은건 아니에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설 연후에 소개팅 자리 마련하신다고 했어요.”임구택이 소희를 보면서 말했다.“엄마더러 그만 좀 하시라고 하세요, 시간 나시면 고스톱이나 치러 다니시라고 전해주세요.”임유민은 소희를 뾰로통하게 바라보며 언제까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다.소희가 임유민을 째려보았다.우정숙은 소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소희앞에 가져다놓으며 말했다.“편하게 먹어요.”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요.”“임유림도 오늘 오려고 했는데 감기 걸리는 바람에 오지 못했어요.”우정숙이 말했다.“심한가요?”소희가 물었다.“심하지는 않아요, 이튿만 푹 쉬면 괜찮아질거에요.”다섯 사람은 서로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임구택은 임지언이 말을 하는 틈을 타 테이블 아래에서 소희의 손을 잡았다.소희가 멈칫하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임구택은 더욱 힘을 주었다.소희의 왼쪽에 앉아있던 임유민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엄마, 소 선생님 얼굴이 빨개, 불편하신가봐.”소희가 고개를 들었다.우정숙이 소희의 안색을 살폈다. 소희가 임구택의 손을 뿌리치며 머리를 저었다.“괜찮아요.”우정숙이 물었다.“방안이 너무 더워서 그런가요?”“아마도 그런것 같아요, 저 얼굴
화장실 앞에 있는 커다란 화분이 소희를 막아주었다. 소희를 보지 못한 소연은 장미연을 웃으며 맞이했다.“너희들도 여기에서 식사하는거야?”장미연이 기뻐하며 말했다.“네 오늘 고등학교 회식 자리가 있어서요.”소연이 웃으며 말했다.“난 아빠 엄마가 날 데리고 왔어.”장미연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소연을 알고 있었다. 소연은 공부뿐만아니라 다재다능했기에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장미연이 학생회에 들어가면서 소연의 작은 팬이 되었다.몇년이 지나서도 장미연은 소연을 보고 반가워했다.“소연 언니, 작업실 차린다면서요? 너무 대단한데요.”소연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금방 시작했는데 뭐.”“너무 대단하세요.”소연이 친절하게 물었다.“지금은 어느 학교 다니고 있어?”장미연이 냉큼 대답했다.“민대 다니고 있어요.”“잘됐네.”두 사람은 몇마디 주고 받던 도중 장미연이 갑자기 말했다.“소연 언니, 우리 회식자리에 소희도 불렀는데 안 왔어요.”밖으로 걸어나가려던 소희는 두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얘기하자 꼼짝않고 서있었다.“그래?”소연이 담담하게 물었다.장미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이 물었다.“소연 언니, 소희가 아직도 언니 집안을 귀찮게 해요? 예전에 우리가 소희랑 싸워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언닐 위해 나서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어요.”소연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지난 일이잖아.”“소희 그 계집애 언니 집안 덕분에 강성에서 학교 다닐수 있었으면서 소씨 가문 아가씨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다니, 너무 뻔뻔해요.”장미연이 화를 냈다.소연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것 같아, 다행히도 우리 엄마 아빠가 소희의 속셈을 알아차렸는지라 이젠 관계하지 않아.”“그럼 다행이에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잘해줄 필요가 없어요.”소연은 머리를 끄덕였다.“다 지나간 일이니 마음에 둘 필요 없어.”장미연은 화제를 돌렸다.“저 앞에 있는 방이 우리가 잡은 방이에요, 놀
만 소연은 그때부터 소희를 쫓아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소연의 이간질에 진원은 소희를 미워하기 시작했다.그때 소희는 너무 비참했던 환경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라 소연이 자신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소연은 목이 조여오자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혔다.“소희, 이거 놔. 이거 놔.”“소연아.”뒤에서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임이 분명했다.소희는 소연을 바닥에 내팽겨치며 진원을 바라보았다.진원이 다급히 소연을 일으켰다.“소연아, 괜찮아?”소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엄마,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해.”진원은 소희를 노려보며 물었다.“너 지금 뭐하는거야?”“무슨 일인데?”소정인이 달려와 물었다.진원이 울부짖으며 말했다.“아까 소희가 소연을 때리려고 했어요, 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소희가 소연을 목졸라 죽였을거에요.”소정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야, 무슨 일이야?”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원은 소연의 옷을 정리해주며 목에 상처가 남았는지를 체크했다.소정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소희야, 오늘 회식자리는 너한테도 알릴려고 했는데 날씨가 안 좋은지라 너 안 불렀어, 그것때문에 화난거라면 아빠한테 화내, 소연이 괴롭히지 말고.”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소희가 외쳤다.“소연이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세요.”소정인이 소연을 바라보며 물었다.“소연아, 어떻게 된 일이야?”소연은 억울한듯 머리를 흔들었다.“저도 모르겠어요, 화장실에서 언닐 만났는데 갑자기 저의 목을 조르면서 절 죽이겠다고 했어요.”진원은 눈을 부릅뜨고 소희를 바라보았다.“우리가 널 부르지 않은건 널 보고 싶지 않아서였어, 오늘뿐만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엄마.”소연이 진원이 어깨에 기대여 울먹였다.조정인은 진원을 째리더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그래요.”진원이 말을 하기도 전에 소희가 통쾌하게 대답했다.네 사람은 소정인이 잡아놓은 방으로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