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던 주 감독님이 멈칫했다. 주 감독님은 구은서도 그 자리에 있을줄 몰랐기 때문이다.때마침 구은서가 임구택 옆에 앉아있었고 임구택이 물고있는 담배에 불을 부쳐부고 있었다. 그들이 보았을때 둘은 아주 가까운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주 감독님은 무의식적으로 소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임구택은 사람들속에서 소희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임구택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임구택은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다른 손에 쥐었다.구은서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주 감독님, 왕 피디님, 여기에서 식사하셨나 봐요?”주 감독님은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은서 씨와 임 대표님이 여기서 식사하신다고 들어 이렇게 인사하러 건너왔어요.”주 감독님은 임구택 술잔에 술을 부으며 말했다.“임 대표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한 잔 올릴게요.”임구택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괜찮아요.”주 감독님은 장시원과 조백림 한테도 한잔 부었다.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서로 술을 부으며 인사치레를 할 동안 임구택은 소희만 바라보았다. 조그만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임구택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 소희가 건너오기 전까지 아무일도 없었는데 하필 소희한테 그런 광경을 보였다. 마치 소희 몰래 흡연하는것마냥 느낌이 이상했다. 게다가 거기에 구은서도 동참했다.주 감독님은 옆에 서있는 소희를 보며 말했다.“소희 씨, 임 대표님이 소희 씨 많이 도와드렸잖아요, 소희 씨도 임 대표님께 한 잔 권하시는게 어때요?”소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임구택 쪽으로 걸어갔다. 눈치 빠른 조백림이 술잔을 건넸다.소희는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임 대표님, 제가 한 잔 권할게요.”임구택은 소희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으려 했지만 질투나 기분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소희가 술을 마시려던 찰나 임구택의 소희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술잔을 가로채더니 웃으며 말했다.“도수가 꽤 높은 술이야
소희는 멈칫하더니 구은서를 바라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구 아가씨, 옛 추억은 당사자와 함께 떠올리는게 어때요? 전 아마 당사자들 마음 이해하지 못할거 같아서요.”구은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저도 갑자기 생각나서 하는 말이에요, 소희 씨,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구 아가씨가 하신 말씀, 저 하나도 궁금하지 않네요.”구은서는 웃음기를 빼고 말했다.“소희 씨, 저한테 안좋은 감정 있으세요? 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요. 저랑 구택이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사이라 소희 씨가 예민하게 받아들여도 옛 추억은 지울수가 없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임구택은 임씨 가문 사람인지라 앞으로 일자리에도 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될거에요. 소희 씨가 구택이를 사랑한다면 이런것쯤은 감안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구은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구택이한테 금연하라고 시킨거 너무한거 아니에요? 구택이는 장사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담배를 끊을수 있겠어요? 구택이가 소희 씨 아낀다고 무례한 요구 제기하는거 아니에요?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때면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겠지만 이런 무례한 요구를 좋아하지 않을거에요. 제가 좋은 마음에서 오늘 귀띔 좀 하력 하는거에요. 남자들은 결국 싫증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반항을 하게 될거에요. 오늘처럼 소희 씨가 없는 자리에선 구택이 담배 피우고 싶었을거에요.”소희는 구은서를 바라보았다. 구은서의 말속에 다른 뜻이 존재한다는걸 알고있었다.구은서가 말하고 싶었던건 자신이 볼수 없는 곳에서 남자는 다른 여자들과도 놀고 싶을거라는거였다.구은서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진심에서 우러나온 말들이에요, 믿을진 모르겠지만.”말을 마친 구은서가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밖에 한동안 서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주 감독님이 불렀다.“소희 씨, 여기 와서 앉으세요.”주 감독님이 앉아계신 테이블에는 유명인사들이 앉아있었다. 주 감독님은 소희가 임구택의 곁에 있길 바랐기에 임구택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중도에 많은 사람들이 앞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지만 소희만 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친한 동료들이 술을 권하러 오면 같이 마시기도 했다.임구택의 시선은 줄곧 소희를 향해 있었다. 소희가 이미 세네잔 마신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소희도 더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현을 보며 물었다.“혹시 숙취제 있어?”“너 너무 많이 마신거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봐.”이현은 가방에서 여러 종류의 숙취제를 꺼내 소희한테 건넸다.“무슨 맛 좋아해?”이정남과 소희 모두 놀란 눈빛이었다.“너 가방에 또 뭐 들어있는데?”“이것도 있어, 발라 볼래?”이현이 립스틱을 꺼냈다.이때 이현이 립스틱에 있던 버튼을 누르자 감전된 이정남이 소리쳤다.“악!’그건 다름아닌 호신용 립스틱이었다.이정남의 외침소리에 다들 분분히 고개를 돌렸다.이정남이 부들부들 떨며 사람들을 향해 애써 웃어보였다.“괜찮아요, 괜찮아요.”너무 어색했다.다른 사람들도 한바탕 웃더니 이어 술자리를 이어나갔다.이정남이 이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진작 좀 알려주지, 이건 왜 갖고 다니는데?”이현이 배꼽을 끄러안고 웃으며 말했다.“이건 우리 엄마가 선물해주신거야, 너가 처음으로 매운맛을 보았네, 하하하하.”이정남은 어이가 없었다.소희는 오히려 둘 덕분에 기분이 풀린듯했다. 소현은 이현의 호신용 립스틱을 만지작거렸다.3차가 되자 뭇 사람들의 기분도 절정에 달아오른듯 했다. 보일러를 세게 틀었는지 방안이 후끈거렸다.머리가 어지러웠던 소희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벨라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벨라에는 이미 누군가가 서있었다.장시원은 뒤돌아 보더니 손에 쥐고 있던 담배불을 껐다.“방이 많이 답답하죠?”“네.”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장시원이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아까는 구택이가 진실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구은이가 담배불을 부쳐주는 벌칙을 한것 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아니에요.”소희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전 먼저 들어갈게요.”장시원
소희는 고개를 들어 임구택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닿자 임구택은 몸을 굽혀 소희의 입술을 깨물었다.“소희?”소희는 무의식적으로 임구택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임구택은 몸을 돌려 소희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이현은 훤칠한 남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가 겹쳐있는걸 보아 남자의 뒤에 여자 한 명이 더 숨어 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림자의 자세로 보아 키스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현은 놀란 나머지 말을 얼버무렸다.“저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말을 마친 이현이는 줄달음쳤다.소희는 이현이가 자리를 떠서야 머리를 빼꼼 내밀어 밖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임구택을 밀쳤다.임구택은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소희를 보며 말했다.“부끄러워 하긴, 여기 내가 널 좋아한다는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나도 너 인기 많다는걸 알고 있어.”소희가 말했다.임구택은 멈칫 하더니 소희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물었다.“질투 하는거야?”소희는 머리를 저었다.“아니야.”“질투하는거 맞네, 무심한척 하지 마. 내가 널 비웃을가봐 그러는거야?”임구택이 웃었다.소희는 임구택을 째려보며 말했다.“왜 날 비웃는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임구택은 당황한 나머지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거야.”“앞으로 그럴 일 없다고 하지 마. 너도 못해낼거라는걸 알고 있잖아.”소희는 임구택의 손을 뿌리쳤다.“여긴 회식자리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 나 먼저 들어갈게.”“소희야.”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소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임구택은 난간에 기대여 사색에 잠겼다. 소희의 개의치 않는 표정에 임구택은 기분이 울적했다. 소희가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하지만 소희가 기분 나빠 하는 모습은 가슴 아파 볼수가 없었다.그 누구도 소희를 기분 나쁘게 할수는 없었다. 그게 누가 됐든.…….이현은 소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너무 달달한거
뭇 사람들의 시선이 소희의 몸에 닿았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구은서를 바라보았다. ‘임구택과 구은서가 커플 아니었어?’‘오늘 임구택과 구은서가 함께 도착했는데.’‘왜 집으로 돌아갈땐 소희와 함께 가는거지?’뭇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 하고 소희는 태연하게 임구택을 향해 걸어가면서 이현과 이정남을 향해 손을 저었다.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임구택이 소희를 향해 차 문을 열었다. 소희가 차에 오른 후에서야 임구택은 주 감독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났다.다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곧이어 장시원도 자리를 뜨고 구은서도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차에 오른 소희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의자에 몸을 기대여 눈을 감았다.“속이 안 좋아?”임구택이 소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조용히 해.”소희는 임구택이 명호 앞에서 자신을 놀리가봐 입을 막았다.워낙 휘연각에 있을때부터 소희가 짜증을 냈었는지라 소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임구택은 외투를 벗어 소희한테 걸쳤다.소희는 임구택이 어떤 행동을 하든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임구택은 창가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소희의 상태를 체크했다.소희가 깨여있는지를 확인했다. 소희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임구택은 명호가 백미러로 뒤쪽을 힐끗 보는것을 보고는 명호를 째렸다.명호는 머리를 돌려 운전에만 전념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꼼짝 못하고 있는 대표님이 신기했다.명호는 갑자기 대표님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자친구한테 혼나며 벌을 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지만 이제는 가능한 일이었다.임구택은 소희한테 기대여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구택은 팔을 뻗어 소희가 자신의 품에 안기기를 바랐다.팔을 뻗자 소희가 눈을 떴다.“난 네가 편하게 휴식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어.”소희는 임구택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임구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임구택은 소희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임구택은 자신의 옷을 챙겨 소희의 몸에 둘렀다. 그리고는 소희를 부축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집문앞에 도착해서야 임구택은 소희를 놓아주었다. 임구택이 몸을 돌리자 소희가 휘청거렸다.임구택은 소희의 팔을 붙잡아 꼭 안아주었다.어두운 방에서 이렇게 두 사람은 반나절이나 서로 안겨 있었다. 깜깜하고 조용한 이 밤에 두 사람의 호흡소리만 들려왔다.임구택이 머리를 숙여 소희의 입술에 키스했다.소희도 반항하지 않자 임구택의 키스는 더욱더 깊어졌다. 손으로 소희의 턱을 잡고 힘 주어 소희의 입술을 포갰다.소희는 임구택의 허리를 끄러안았다. 임구택 입안의 술 향기에 취하는듯 했다.이어 소희는 담배냄새를 맡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 감독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을때 구은서가 마침 불을 부치려던 찰나였는데 입안속의 담배연기는 어디에서 온거란 말인가?구은서 말이 맞았다. 임구택은 자신을 위해 금연을 한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불타오르던 열정이 삽시에 식었다. 소희는 임구택을 밀쳐냈다.임구택은 여전히 소희의 어깨를 끄러안고 호흡을 조절하며 말했다.“소희야. 구은서랑 거리 유지 한다고 내가 약속할게.”소희는 머리를 저었다.“임구택, 날 위해 금연 할 필요 없어, 피우고 싶으면 피워.”소희는 임구택을 금연해라고 요구한적이 없었다. 애초 소희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대신 임구택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것으로 약속한것이 다였다.임구택이 싫어한다면 소희도 강요하지 않을것이다.서로 행복하려고 만나는건데 앞으로도 이건 변하지 말아야 할것이다.무엇때문에 만나게 되었든 서로의 행복이 일순위였다.상대방이 기분 나빠 하고 속박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소희의 말에 임구택은 멍해졌다.“소희야, 기분 나쁜거라면 나한테 화내도 돼, 나한테 구은서랑 거리 유지 해라고 요구해도 돼, 하지만 나 혼자 내버려 두지 마.”임구택은 소희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날 혼자 내버려둔다는건 너한테 걱정거리가 생겼다는 뜻이잖아, 그 말인즉 우
임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건데?”“얼른 약속해.”소희는 임구택의 허리를 꼬집었다.임구택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아니, 그렇게는 못하겠어. 예전이라면 약속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난 네가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을 죽일거야.”소희는 고개를 들어 임구택을 바라보았다.임구택은 소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내가 만약 널 배신한다면 그땐 날 죽여줘.”소희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임구택은 소희가 놀랬을가 걱정되여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매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고싶은데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수 있어?”임구택은 소희의 귓가에 대고 뭐라 말했다.소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임구택을 노려보았다.임구택은 소희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시간 끌지 마,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데다가 너 잠도 많잖아.”소희는 임구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구은서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전전긍긍한 태도를 취한다면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것이다.…….다음날, 아침을 먹은 임구택은 옷을 갈아입었다. 소희는 아직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임구택은 소희한테 우유를 따라 먹이고는 한 숨 더 자라고 했다.어제밤 너무 늦게 취침했기에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소희는 임구택이 가슴 아프다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마음 아프면 어젠 나한테 왜 그랬는데?’소희는 너무 졸려 임구택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소희는 우유를 마시고는 다시 누웠다.임구택은 그제야 집을 나섰다.현관문에서 신발을 갈아신을때 임구택이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핸드폰을 켜보니 누군가가 친구 요청을 보내왔다. 이틀전에도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인지라 임구택은 망설임없이 거절했다.얼마 지나지 않으면 설 연휴였다. 소희는 할아버지한테 29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오늘부로 3일 남짓했다.제작사 쪽에서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는지라 소희는 한가했지만 임구택은 바빴다.
소희는 동공이 흔들렸다.“친구에요.”남자친구도 친구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날 속일 셈이냐?”도 씨 어르신이 불만을 토했다.“언제 데려올건데?”소희가 말했다.“설 연후에요.”“설 연후에 데리고 온다고?”도 씨 어르신이 피씩 하고 웃었다.“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하는거나.”소희의 꼼수가 들통나자 진석의 비웃음을 당했다.도 씨 어르신은 소희의 입에서 남자친구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소희의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도 씨 어르신도 급했는지라 다짜고짜 물었다.“그럼 강성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줘.”소희가 머리를 끄덕였다.“맞아요.”도 씨 어르신은 그제야 만족을 했다. 다른건 묻지 않았다. 고향이 강성이면 되었다.점심을 먹고나서 진석과 도 씨 어르신을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소희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임구택의 메시지를 받고는 방에서 나와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도 씨 어르신이 물었다.“쟤 임씨 가문이랑은 정리한거 맞지?”진석이 대답했다.“네, 3년전 일이잖아요.”“그럼 다행이고.”도 씨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계집애 진심인거 같은데 남자친구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네가 한번 봐줘.”진석이 머리를 흔들었다.“지금까지도 저한테 남자친구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요. 하지만 강 어르신은 알고 있어요. 강 어르신이 말리지 않는걸 보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아요.”“그 영감이 뭘 안다고 그래?”도 씨 어르신이 입을 삐쭉거리며 물었다.진석은 바둑판을 보며 말했다.“사부님 강 어르신은 믿지 못해도 소희는 믿으실거 아니에요. 소희가 마음에 둔 사람이면 괜찮은 사람일거에요.”도 씨 어르신이 차를 마시며 머리를 끄덕였다.“나도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보고 싶어.”진석이 웃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하인이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여선생님이 학생을 거느리고 왔어요.”도 씨 어르신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어느 학생?”“소연 아가씨요.”진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