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방금 소희 씨더러 너 찾으러 가라고 했는데, 그녀는 네가 아직 전화하고 있다고 했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참, 은서는?"구택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별일 아니야. 은서는 집의 전화를 받아서 기분이 좀 안 좋대. 그녀 혼자 있으라고 그래."백림 그들은 모두 은서의 집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동안 분위기가 좀 무거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시원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구택은 아예 의자를 끌고 소희의 뒤에 앉아 그녀가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소희의 기술은 이미 많이 진보되었기에 구택도 그저 보기만 하며 지휘를 하지 않았다.그러다 중간에 청아는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룸 안의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 거 보고 그녀는 바깥 복도에 있는 공공 화장실로 갔다.그녀가 들어갔을 때, 세면대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두 사람 뒤에서 지나갔다.세면대 앞에 있던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음흉한 기색을 드러냈다.두 여자 중 한 명이 바로 시원의 전 여자친구인 이유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줄곧 이유진을 따르던 진혜였다.이유진은 시원과 헤어진 후 허연을 찾아가 그녀를 호되게 때렸고 허연은 너무 두려워서 자신이 그때 입원했을 때 청아가 시원을 꼬셨다고 거짓말을 했다.그녀는 줄곧 청아를 찾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자 원망과 분노는 파도처럼 밀려왔다.이유진과 진혜는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다 진혜는 눈알을 굴리더니 즉시 응답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몇 분 후, 청아는 문을 열고 나와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었다.이유진은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고 차가운 눈빛으로 청아를 힐끗 보았다."우청아 씨, 우리 또 만났네요? 여기에 배달하러 왔어요?"청아는 고개를 돌려 한참 반응하다 그 사람이 이유진이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다.이유진은 립스틱을 던지더니 가슴을 안은 채 청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제 배달 안 하
이유진은 뒤로 물러서서 담배를 피우며 맞은편 소파에 앉아 그들이 놀게 내버려 두었다. 블루드의 방음은 매우 좋아서 그녀가 어떻게 소리를 지르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듣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오늘 우청아를 망칠 것이다!......소희는 카드를 놀다 청아가 나간 지 꽤 됐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서서 시원에게 물었다."청아 지금 안에 있는 화장실에 있어요?”시원이 말했다."아니요, 밖에 나갔어요!"소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블루드는 케이슬보다 수준이 좀 낮아서 별의별 양아치들이 다 이곳에 올 수 있었다.밤은 이미 깊었고 그녀는 또 연약한 소녀였다.시원도 청아가 나간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찾으러 갈게요!"소희가 말했다."그냥 내가 갈게요!"만약 청아가 화장실에 있다면, 그녀가 들어가서 찾으면 됐다.그녀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고 시원은 소희가 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초조해지더니 함께 따라 나갔다.소희는 가장 가까운 화장실에 들어가 청아의 이름을 두 번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화장실에는 청아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세면대에 버려진 립스틱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녀가 화장실을 떠나자 시원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물었다."청아 씨는요?"소희는 얼굴이 차갑고 냉랭했다."여기에 없어요. 지금 당장 블루드의 사람 찾아 감시 카메라 돌려 봐요!”시원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서 웨이터 한 명을 잡고 여기 사장을 찾아오라고 했다.하필 지금 블루드 이 층의 매니저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또 시원이 누군지 몰라 감시 카메라를 보지 못하게 했다.시원은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소희는 휴대전화를 꺼내 매부리에 접속하여 푸른 독수리에게 문자를 보내 블루드 이 시간대의 감시 카메라를 찾게 했다.1분도 안 되어 푸른 독수리는
"당신들은 또 뭐야?" 짧은 머리가 먼저 일어서서 흥이 깨진 듯 짜증을 냈다."당신들 누구야? 빨리 꺼져!"소희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를 그대로 내팽개쳤다!짧은 머리는 탁자에 머리를 부딪쳤고 탁자는 "펑"하고 바로 깨졌다. 옆에 앉은 이유진은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짧은 머리는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으며 바로 기절했다.다른 몇 명의 남자들은 경악하다 일제히 소희를 에워쌌다.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구택은 그 남자들이 소희를 에워싸고 공격하는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탁자에 있는 술병을 잡고 그들을 향해 던졌고 술병은 굉음을 내며 룸을 가로질러 소희의 팔을 잡으려는 남자의 머리에 떨어지더니 그 남자는 바로 땅바닥에 쓰러졌다.시원은 분홍색 셔츠를 입은 남자를 발로 걷어찬 다음 고개를 돌려 청아를 바라보았고 바로 다가가려 할 때, 백림은 이미 자신의 양복을 벗고 청아를 감쌌다.청아는 공포에 질려 악착같이 몸부림쳤다.백림은 그녀를 힘껏 안았다."청아 씨, 나 백림이에요. 두려워하지 마요! 우리 왔어요!"그가 이렇게 몇 마디 위로하고 나서야 청아는 점점 조용해졌다. 백림을 보면서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그를 안았다."백림 오빠!"시원은 마음이 들끓더니 순간 사람까지 죽이고 싶었다.이때 명원 등 사람들도 이미 와서 술병을 잡고 청아를 괴롭힌 남자를 호되게 때렸는데 삽시간에 방 안에는 모두 비명과 용서를 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소희는 청아의 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손바닥에 박힌 깨진 유리를 꺼내려고 했다. 유리는 이미 그녀의 손바닥에 깊이 박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녀가 건드리자 청아는 놀라며 당황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는 따뜻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겁내지 마, 나 소희야!""소희!" 청아는 눈물을 비오 듯이 흘리며 그녀를 껴안고 온몸을 떨었고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소희, 소희야.""나 여기 있으니까 겁내지 마, 이제 괜찮아!"소희는
진수는 녹색 머리로 염색한 남자를 바닥에 던진 뒤 숨을 헐떡이며 일어섰다."이 녹색 털이 방금 말했는데, 이유진이 그들더러 청아를 강요하게 했대!"은서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진아, 너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니?"유진은 슬프게 울었다."우청아가 시원 오빠 빼앗아 가서 너무 미웠어요. 난 단지 그녀에게 복수하고 그녀한테 겁 좀 주고 싶었다고요. 설령 언니가 여기 오지 않았다 해도 난 정말 우청아를 어떻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정말이에요!"소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청아가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겁주는 것뿐이라고?"이유진은 눈물을 닦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눈빛은 음험했지만 여전히 울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끊임없이 반복했다."난 정말 그녀에게 겁만 주고 싶었다고요!""언니, 경찰에 신고하면 나 정말 망했다고요. 우리 아빠도 나 때려죽일 거예요!"이유진은 은서의 손을 잡고 처참하게 울었다."언니, 제발 나 좀 도와줘요, 다신 안 그럴게요!"은서는 시원을 한 번 보더니 마지막엔 구택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구택아, 청아를 괴롭힌 사람들은 모두 혼났으니 내가 우리 이모더러 유진이 단단히 혼내라고 할게. 이 일은 그냥 없던 걸로 하자!"이유진도 울고 불며 말했다."시원 오빠, 나 정말 잘못했어요. 전에 우리의 감정이라도 봐서 제발 용서해 줘요!"소희는 고개를 들어 차갑게 입을 열었다."만약 우리가 오지 않았거나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청아를 봐줄 생각을 했을까?"은서는 천천히 말했다."다행히 청아 씨도 아무런 상처 입지 않은 거 같아요!"소희는 안색이 차갑고 무거웠다."청아의 상황이 어떤지는 의사가 검사한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일은 경찰 외에 그 누구도 이유진을 봐줄 자격이 없고요!”은서는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소희 씨, 내 말을 오해한 거 같은데, 청아 씨도 나의 친구잖아요.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는 거 보면서
그는 좀 혼란스러웠다. 한 편으로는 소희가 쿵후를 할 줄 알아서 남에게 당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또 그녀가 다른 사람의 함정에 걸렸을까 봐 걱정했다. 이렇게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차속도 점점 빨라졌다.병원에 도착하자 그는 프런트의 간호사에게 방금 구급차가 실려온 여자애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고 간호사의 어두운 표정에 그의 마음도 철렁했다.그는 응급실에 가서 황급히 수술실로 달려가다 한 남자와 부딪쳤는데, 그 남자가 그를 욕했어도 그는 전혀 따지지 않았다.이때 그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더니 앞에서 약을 들고 있는 소녀를 쳐다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소희는 청아를 도와 입원비를 내러 왔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자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심명을 보았다.심명은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를 훑어보았더니 나른한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안녕!"소희는 어리둥절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심명은 눈을 깜빡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그냥 들렸어요!"소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할 일 없이 병원에 들리다니?그녀는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어 명세서를 들고 황급히 떠났다.심명은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방금 명세서의 이름을 보았는데 소희가 아니었다!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자신의 등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을 발견했다. 이때 에어컨의 바람이 불자 그는 뜻밖에도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소희가 돌아갔을 때, 의사는 아직 청아에게 검사를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렸다.잠시 후 의사가 나오며 마스크를 벗고 말했다."환자분 손바닥의 상처가 비교적 심각하고, 다른 부위에도 모두 다른 정도의 상처가 있어요. 그러나 다행히 그녀는 실질적인 침해를 받지 않았어요.”소희는 은근히 한숨을 돌렸다.의사는 멈칫하더니 말투가 심각해졌다."다른 사람이 지금 환자분에게 약을 먹였는데 즉시 위를 세척해야 하거든요. 그녀의 가족이 와서 책임서에 사인 좀 하셔야 할 거 같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청아의 가족들도 달려왔다. 그녀의 어머니, 오빠 그리고 미래의 새언니 장설.소희도 청아의 새언니인 장설을 처음 보았는데, 그녀는 키가 크지 않고 타이트한 치마를 입은 채 동그란 눈을 하고 있어 어른들의 환심을 사는 생김새였다.허홍연은 청아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멀쩡한 사람이 왜 이 모양이 된 거지?"소희는 미안해하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청아를 데리고 놀러 나갔는데, 그녀를 잘 돌보지 못했어요."허홍연은 눈물을 훔치며 소희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소희지?""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청아 친구인가?" 허홍연은 울먹이며 말했다."우리 청아가 아가씨를 자주 언급했거든. 전에 우리 집안의 일도 아가씨가 도와줬고. 청아가 밖에 있는 동안 모두 아가씨가 그녀를 돕고 있었으니 줄곧 고맙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소희는 인차 말했다."천만에요. 저와 청아는 서로 챙겨주는 거예요!"허홍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청아는 성실하고 얌전하니까 아가씨도 그녀의 친구인 이상 틀림없이 좋은 아이일 거야. 오늘 일은 나도 아가씨 탓하지 않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구택은 원래 우가네 가족이 소란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지금 청아의 어머니가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허홍연은 시원 등 사라들을 보며 경악했다."너희들은 모두 청아 친구니?"소희는 허홍연에게 간단히 소개를 해 주었다.시원은 겸손하게 말했다."전에 일이 급하고 아주머님도 아직 오지 않으셔서 제가 청아 씨의 책임서에 사인했어요!"허홍연은 시원의 목소리를 듣고 멈칫하더니 그를 자세히 보고 나서야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네, 내가 총각한테 고맙다고 말해야 하네! 청아한테 너희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야!"말하면서 허홍연은 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의사가 와서 청아에게 링거를 놓은 뒤 그녀의 가족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허홍연에게 청아의 상황을 설명
시원은 백림더러 은서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차를 몰고 경찰서로 갔다.길에서 구택은 시원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서 그쪽의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시원이 말했다."이가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니 이욱은 이미 돌아갔어. 다른 몇 사람의 부모는 지금 경찰서와 교섭하고 있고. 우리 회사의 변호사 팀도 이미 경찰서에 도착했으니 소희 씨더러 안심하라고 해. 이 일은 나로 인해 일어났으니 내가 청아 씨를 위해 해결할 거야!"구택은 "응" 하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소희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걱정하지 마요. 청아 씨는 며칠만 잘 쉬면 회복될 거예요. 병원 쪽의 비용은 시원이 이미 충분히 냈으니 우가네 가족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고요. 그리고 이유진 그들도 벌을 받을 거예요."이유진이 사법기관에 들어가는 일은 이미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몇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소희는 눈을 드리우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서워요?" 구택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청아 씨를 본 순간, 무슨 생각 하고 있었는지 알아요? 만약 소희 씨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을 모두 죽였을 것이에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옆모습은 날카로운 기운을 띠고 있었다.소희는 그의 손을 잡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난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으니까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거예요."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희 씨는 누구한테서 쿵후를 배웠어요?"그녀가 한 손으로 성인 남자를 내팽개쳤을 때, 룸 안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소희는 눈을 드리우며 말했다."우리 오빠랑요."구택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전에 말한 그 사촌 오빠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소희 씨의 오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겠군요!" 구택은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하며 소희의 마음이 편해지게 해주고 싶었다.소
"묻고 싶지 않은 이유가 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어둠 속에서 구택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목소리는 낮고 잠겼다.소희는 눈썹을 찡그리고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아니요."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구은서 씨는 구택 씨가 좋아했던 사람인가요?"구택은 소희가 이것을 물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 잠시 침묵하다 눈을 반쯤 드리우고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난 구은서한테 호감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소희는 눈을 들어 물었다."그럼 그녀가 여전히 구택 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구택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가볍게 내려가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나랑 시원, 구은서 그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어서 그녀도 우리에게 비슷한 감정이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나한테 특별히 고백을 한 적이 없지만 만약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반드시 거절할 거예요. 오늘 소희 씨가 본 그런 상황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소희는 마음이 따뜻해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구택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그녀의 얼굴을 주물렀다."우리의 관계 공개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이러면 그녀한테 다른 생각이 있어도 스스로 정리할걸요!"소희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만약 구은서가 그들의 관계를 알았다면 임가네 가족들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그녀의 현재 신분은 유민의 과외 샘이었으니 임가네 가족들은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그녀가 소정인의 딸이란 것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녀는 구택이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후에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그녀는 그에게 말해야 할까?"임구택 씨, 나랑 결혼할 건가요?" 소희가 진지하게 물었다.구택은 멈칫했다."결혼하고 싶어요?"소희는 입술을 깨물었다."먼저 내 말에 대답해요. 결혼할 생각 있나요?"구택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
“이거 소매 속에 숨기면 안 보일 거예요!”임유진은 서인의 손을 꽉 잡고, 손목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끝까지 팔찌를 채우려 했다.이에 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무슨 소매 속에 숨긴다는 거야?’그러나 유진은 자기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손목에 팔찌를 걸어주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요!”서인은 손을 빼내려 하는 순간, 앞에서 안토니가 그를 불렀다. 그렇게 서인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유진은 순식간에 서인의 손목에 팔찌를 걸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절대 빼면 안 돼요. 안 그러면, 계속 떠벌릴 거예요. 내가 사장님 좋아한다고!”둘은 한적한 산길 위에 서 있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며, 유진의 맑은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을 담았다. 그 말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깊고 따뜻한 감정을 담은 채, 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팔찌가 손목 위에 얹혀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것이 뜨겁게 달궈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 감정이 그의 맥박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서인은 아무 말 없이 방향을 돌려 토니에게 향했다. 유진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손안에 남은 하나의 팔찌를 꼭 쥐었다.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는 여러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과 지역 특산물이 가득했다. 넷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그러나 한참 후,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안주설과 토니는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추었다.“아 나 더 이상 못 걷겠어.”주설이 투정을 부리자, 토니는 다정하게 그녀를 업었다.“어릴 때부터 산길을 걸었으니까, 널 업고 정상까지 가는 것도 문제없어!”주설은 토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며들어 있었다.“우리, 원래 이래요.
유진은 서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 안토니가 우리를 산에 데려가 준대요!”토니도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마을 뒷산 경치가 꽤 괜찮아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도 없으니까,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게 어떨까요?”서인은 유진이 잔뜩 들뜬 모습을 보자, 별다른 거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렇게 토니의 안내에 따라 산길을 걸었다.약 10분 정도 걷자, 산으로 오르는 메인 길이 나왔다. 그곳에는 관광객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안주설은 토니의 팔을 꼭 끼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 다정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은 웅장하게 솟아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산허리에는 옅은 안개가 감돌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고, 울창한 숲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유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와, 정말 아름답네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애초에 유진은 이번 주말에 회사 워크숍이 있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집에서 쉬는 게 더 좋다고 했던 사람이, 여기 와서는 이렇게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인을 올려다보았다.“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여행이 즐거운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참, 까다롭네.”이에 유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이게 왜 까다로운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인데!”그러나 서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유진은 잽싸게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그럼 사장님은 나랑 같이 산에 오는 게 좋아요,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아요?”서인은 잠시 걸음을 늦추더니, 진지하게
유진은 볼이 살짝 붉어진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인을 노려보았다.“설령 난초라 해도, 가장 흔한 종류잖아요! 어떻게 그게 100만원이나 해요? 역시 사장님, 돈이 많긴 많네요!”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100만원, 네 월급에서 차감할 거니까.”그 말에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서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웃었고,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원래라면, 유진은 자신이 바보 같아서 화가 났고, 서인이 계속 놀려서도 화가 났다. 그런데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말했다.“앞으로는 아무거나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게요.”다시는 서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인은 웃음을 거두고, 유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사실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또한 서인은 유진을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결국, 서인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원래 그건 그냥 잡초였어.”그것을 귀한 보물로 만든 건,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유진은, 이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하고, 보기 좋았다....점심때가 되자, 토니네 가족은 뒷마당에서 키운 닭을 요리하고, 지역 특산 음식을 만들어 서인과 유진을 대접했다. 소박한 가정식이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유진은 원래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지만,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닭볶음과 깊은 맛이 우러난 닭국물을 맛보며 연신 감탄했다.“이거 정말 맛있어요! 닭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국물도 진하고요!”윤석경은 놀라면서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많이 먹어요. 또 떠줄 테니까!”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유진의 그릇에 음식을 더 담아 주었고, 유진도 서인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맛있
서인은 안토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윤석경 씨, 잠깐 나와 보세요! 이 사람이 당신네 집 손님 맞나요?”서인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향했다. 토니의 부모도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곱슬머리로 말려 있었다. 여자는 토니네 가족을 보자마자, 곧장 손가락으로 한쪽에 서 있는 유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당신네 손님 맞아요?”유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발 소리치지 마세요! 제가 돈 드린다고 했잖아요!”유진은 당장이라도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인은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박민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이 여자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 난초를 뽑아서 토끼 먹이로 줬어요! 내 난초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조금만 늦었어도 다 뽑혀 나갔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라고요!”유진은 머리를 싸매고 싶었고, 작은 목소리로 서인에게 변명했다.“난초인 줄 몰랐어요. 그냥 잡초인 줄 알았어요.”유진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나 박민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쏘아붙였다.“변명하지 마요! 어쨌든 내 난초를 뽑은 건 사실이잖아요!”그때, 윤석경이 나서서 말했다.“우리 집에도 난초가 있으니까, 그걸로 대신 보상해 줄게요. 어린애한테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까지야 있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하지만 박민란은 완강했다.“안 돼요! 당신네 집 난초랑 내 난초는 품종이 달라요! 그러니 난 절대 못 받아요!”윤석경도 화가 났다.“똑같은 난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박민란이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내 난초는 특별히 돈 들여 키운 거예요. 이미 손님이 예약한 거라고요! 근데 이제 어쩌란 말이에
안토니는 이미 저들과 한 차례 몸싸움을 벌였는지,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는 부모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시키려는 남자들과 격렬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때, 서인이 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서인을 바라봤다. 서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이윽고 한 손으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차갑게 말했다.“안토니네 가족은 이사하지 않으니까, 당장 꺼져요!”그때, 상대편의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 누구야? 당신이 뭔데 결정해?”서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금부터 이 집안일은 내가 결정해.”임유진도 단호하게 나섰다.“당신들, 합법적인 철거 허가서라도 있어요? 없으면, 지금 이건 불법으로 민가에 침입한 거고,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예요! 신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요!”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신고? 해보시지, 이 계집애가!”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는데, 서인의 차가운 눈빛이 번뜩이며 그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이내 남자는 수치심에 휩싸여 분노를 터뜨렸고 뒤에 있던 부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 우락부락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먹을 쥐고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서인은 간단하게 공격을 막았다. 팔을 낚아채어 비틀어버린 후,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쿵! 남자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으악!”놀란 안주설과 토니네 부모님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토니는 같이 싸우려 했지만, 서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넌 신경 쓰지 마.”서인의 태도는 한결같이 차분했지만, 움직임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몇 초 만에 남은 두 명까지 모두 쓰러졌다.우두머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보며, 서인이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당할 것이 뻔했다.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기
서인이 약속한 장소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찻집이었다. 두 사람이 몇 분을 기다리자, 상대가 도착했다.그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짙은 남색의 운동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멀리서 서인을 발견한 남자는 곧바로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걸어오면서 팔을 벌렸고,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한 뒤, 어깨를 가볍게 맞댔다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이렇게 오래 못 봤는데, 네가 갑자기 연락할 줄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네!”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에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이에 서인은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오랜만이긴 하죠.”“예전에 너희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살아 있어서 다행이네.”서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남자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남자는 놀란 듯 서인을 쳐다보았다.“여자친구야?”서인은 짧게 답했다.“아니요. 그냥 같이 온 친구예요. 임유진.”그는 이어서 남자를 소개했다.“이한우라고 해요.”유진은 그를 한 번 보더니 따라 불렀다.“한우 씨!”한우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인의 친구라면 나한테도 친구나 다름없죠. 편하게 있어요.”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서인과 한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다실에서 나온 말차 케이크와 재스민 차를 즐겼다.서인은 흥성에서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우는 지역에 오래 정착한 사업가로, 여러 방면에 인맥이 있었다.서인은 안토니네 가족을 돕기 위해 한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우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흔쾌히 말했다.“리조트 호텔 사장은 모르지만, 철거 보상 담당자는 잘 알지. 같이 술도 마셨던 사이라, 내
서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임유진은 재빨리 침대 옆 협탁에서 안대를 꺼내 들었다. 자신이 눈을 가릴 거라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미 씻었어.”서인은 무심하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물었다.“불 꺼도 돼?”방 안에는 서인의 쪽에만 벽 등이 켜져 있었다. 이에 반쯤 몸을 돌린 채 유진을 바라자, 유진도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다.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작 오초였지만, 묘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유진의 눈빛은 마치 깊고 맑은 호수 같았다. 그 안에 잔잔한 물결이 퍼지는 듯했다.어둠 속에서도 유진의 눈빛이 한층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헐렁한 티셔츠의 목 부분이 흘러내려, 가느다란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유진의 피부는 눈이 부시게 하얗고 매끄러웠다. 마치 만지기라도 하면 부서질 듯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방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짧은 순간에 묘한 분위기도 함께 사라졌다. 유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은 서인의 침대 너머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야외 수영장의 물이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유진의 들뜬 마음처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곧, 자동으로 커튼이 내려졌다.그 작은 물결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인이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고, 유진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이불을 단정하게 덮고 눈을 감았다.서인도 조용히 눈을 감았으나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유진의 상쾌한 바디워시 향이 공기 속에 가볍게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서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곧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뭐지?’유진은 원래 잘 때 얌전한 모습이었으나 자고 나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