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는 담요를 가져와 그에게 덮어주었고 또 베개를 가져와 그의 머리 밑에 놓았다.주방으로 돌아오자, 청아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보면서 입맛이 떨어졌다. ......시원이 다시 깨어났을 때, 시간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방 안은 엄청 어두워서 그는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청아 씨!”그는 문득 일어나며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에 있던 담요도 땅에 떨어졌다.소파에 기대어 잠시 앉아 있던 그는 열이 내려가서인지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았고 다만 코가 좀 막혔다.그는 일어나서 거실로 돌아갔다. 주방의 불은 켜져 있었고 소녀는 식탁에 엎드려 이미 잠이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옆에는 보고서가 가득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보았는데, 이미 밤 11시였다. 그는 다가가서 손을 청아의 어깨에 걸치며 살짝 흔들었다."청아 씨!”“정신 차려요, 방에 가서 자요!”청아는 고개를 들었고 왼쪽 볼은 팔을 베고 있어서 몇 갈래의 붉은 자국이 생겼으며 졸린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은 왠지 모르게 시원의 마음을 녹였다.“시원 오빠." 청아가 입을 열었다."깨어났어요? 몸은 좀 나아졌고요?”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곧 그의 상태를 관심했다.시원은 웃으며 말했다."많이 좋아졌어요, 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가서 자요!”청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아직 식사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가서 음식 좀 데울게요. 밥 먹고 나서 약을 한 번 더 먹으면 내일 아침에 다 나을 거예요!”시원은 그녀를 따라 주방으로 갔다."청아 씨는 먹었어요?”“아니요!”청아는 식탁에 있는 컴퓨터와 보고서를 정리하고는 주방에 가서 솥에 있는 음식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는 솥 안의 국도 데웠다.“시원 오빠 감기에 걸렸으니까 생선을 먹으면 안 돼서 내가 또 토마토 계란국을 만들었는데 비교적 담백해서 마셔도 괜찮아요." 청아는 설명했다.시원은 온몸에 아직 힘이 없어서 나른하게 주방 문에 기대어 소녀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깊은 밤, 어
다음 날 아침.청아가 깨어났을 때, 시원은 이미 아침밥을 주문했고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뒤돌아보며 말했다."좀 더 자요. 이따 나랑 같이 출근해요.”아침 햇살이 남자를 비추니 마치 그의 몸에 금색의 부드러운 빛을 입힌 것 같았고, 그는 또다시 우아하고 존귀한 도련님이 되었다.청아가 물었다."감기는 좀 어때요?”“다 나은 거 같아요, 청아 씨의 약은 정말 효과가 있군요."시원이 웃으며 말했다.청아는 얼굴을 붉혔다."그냥 보통 감기약일 뿐이에요.”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맛있겠다! 나 세수하고 바로 나와서 아침 먹을게요!”“그래요!”청아는 세수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식탁에 예닐곱 가지 아침밥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뭐가 이렇게 많아요?”“청아 씨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여러 가지로 주문했어요."시원은 그녀에게 우유를 따라주며 부드럽게 설명했다.“우리 두 사람 다 못 먹을 거 같은데요. 내가 소희한테 아침 먹었냐고 물어볼게요." 청아는 핸드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희는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시원을 보며 멈칫했다.‘아침부터 시원 씨가 왜 여기에 있지? 설마 또 야식을 먹으려고 여기에서 지냈나?’시원은 자연스럽게 그녀와 인사를 했다."좋은 아침이에요, 소희 씨, 와서 함께 아침 먹어요!”소희는 그가 이렇게 당당한 것을 보고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세 사람은 아침을 먹은 뒤 소희는 수업하러 갔고 시원은 청아를 데리고 회사에 갔다.청아는 자신의 부서로 갔고 출근하자마자 먼저 어제 체크한 보고서를 수진에게 보냈다.수진은 원래 청아가 틀림없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데서 그녀를 한바탕 호되게 욕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청아는 모든 것을 완성했다.청아를 꾸짖을 구실을 찾지 못한 수진은 잠시 그녀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청아가 그녀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기필코 그녀에게 잘못을 잡힐 것이다!
은서는 기뻐했다."그럼 우리 약속한 걸로 해요!”“네!”전화를 끊고 은서는 바로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이미 확인했는데, 소희 씨도 토요일에 올 거야. 다들 기쁘지?”단톡방에는 동의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물론 예외도 있었다.명원, [모두 친구인데, 좀 시원하게 대답할 순 없는 거예요? 굳이 다른 사람더러 여러 번 초대하라고 하다니!]은서, [명원아, 그게 무슨 소리야? 소희 씨는 확실히 일이 있어서 미루고 온 거야.]명원은 믿지 않았고 은근히 비꼬았다, [그래요? 난 또 누군가가 일부러 억지를 부리는 줄 알았죠!]은서, [명원아, 그 말 취소해!]1분 후, 명원은 방금 보낸 문자를 취소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택도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 [토요일에 난 일이 있어 못 가!]은서는 즉시 대답했다.[내가 소희 씨를 초대했는데,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나는 거야?]구택, [너랑 상관없어!]시원은 핸드폰을 보다 구택에게 따로 문자를 보냈다. [나 갑자기 네가 소희 씨와 화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매일 단톡방에서 구경이나 하지.]구택은 그에게 두 글자 보냈다.[꺼져!]시원은 꺼지지 않았다. [저번 토요일에 네가 소희 씨랑 배드민턴 치러 갔다고 들었는데, 왜 또 이러는 거야? 너 정말 그 서이연하고 사귀는 거야? 확실해?]구택은 대답하지 않았다.토요일 오전, 소희가 임가네에 도착했을 때, 마침 차 한 대가 별장에서 나와 멈추지도 않고 모퉁이를 돌면서 쏜살같이 질주했다.소희는 운전석에 있는 구택을 보았으니 그도 틀림없이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그녀는 안색이 담담한 채로 천천히 별장으로 걸어갔지만 속으로는 무척 씁쓸했다. 그는 지금 그녀를 만나고도 싶지 않았다!점심때 시원은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청아 씨 집에 있어요? 그녀도 같이 불러서 함께 놀아요. 10분 후에 내가 어정에 도착할 테니 같이 별장으로 가요.”소희는 가볍게 웃었다. "고마워요 시원 오빠.”“천만에요!”소희는 청아와 점심을 먹고 있었기에 시원
백림의 별장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착해서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소희를 보자 은서는 열정적으로 맞이하여 인사를 했다."소희 씨!”말을 마치고 그녀는 청아를 바라보았다."이 아름다운 아가씨는?”소희는 그녀들에게 서로를 소개했다.청아는 눈을 부릅 뜨며 은서를 바라보았다."당, 당신은 여우주연상 받은 구은서 씨 맞죠?”은서는 담담하게 웃었다."여기서 배우 뭐 그런 거 없으니까 청아 씨도 절대로 나를 연예인으로 생각하지 마요.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니까요.”청아는 두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정말 팬이에요. 은서 씨가 나온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데 정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예뻐요!”“고마워요! 그럼 이렇게 하죠."은서는 부드럽게 웃었다."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내가 사인해 줄게요, 어때요?”청아는 멈칫하더니 곧 웃으며 소희를 한 번 보고는 은서가 정말 뉴스에서 보도한 것처럼 명문 출신답게 교양도 있고 고귀하다고 느꼈다.“또 미인이 한 분 오셨군요!"백림은 다가와서 눈웃음을 지으며 청아를 바라보았다."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할게요. 난 성이 조 씨이고 용모도 단정하고 몸도 건강하며 신혼집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는 거죠!”백림은 원래 잘생겼는데 고운 운은 매혹적이었고 말할 때 눈 밑에 웃음기가 숨어있어 쉽게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시원은 그를 힐끗 보며 농담으로 말했다."거짓말하면 벼락에 맞을 거야!”백림은 즉시 말했다."어제 금방 헤어졌으니까 여자친구 없는 것도 사실이지!”“어제 금방 헤어졌는데, 오늘 줄 서서 널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시원은 콧방귀를 뀌며 청아에게 말했다."그를 상대하지 마요!”“시원아, 너 지금 미녀 앞에서 나의 체면을 구기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백림은 시원의 어깨를 걸치고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서 청아에게 윙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아가씨, 줄 설래요? 내가 새치기하게 도와줄 수 있는데!”청아는 웃
은서는 아쉬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King은 줄곧 신비주의자라서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데도 보지 못했어요. 근데 그녀는 대본을 읽은 후, 영화 속 인물의 캐릭터에 따라 옷을 디자인했는데, 대단한 것은 우리는 만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디자인한 옷은 뜻밖에도 전부 나의 안목에 부합하고요. 정말 신기하죠?”청아는 넋을 잃었다."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King은 왜 줄곧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거죠?”은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추측했다."북극 디자인 작업실의 일종의 자체 브랜드 마케팅 전력인 것 같아요. 북극은 신비한 King때문에 점점 유명해지고 King의 몸값도 점점 높아지는 거죠."그녀는 멈칫하더니 계속했다."물론 어느 정도 인기가 많아지면 King은 오히려 얼굴을 내밀지 못할 거예요.”“왜요?"청아가 물었다.소희도 궁금해서 그녀를 쳐다봤다.은서는 그녀들이 너무 단순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차라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 거죠. 또 다른 가능성은 바로 King이 한 사람이 아니라 한 팀인 거죠. 북극의 디자이너가 지혜를 모아 만든 효과이기 때문에 폭로할 수 없는 거죠."청아는 탄복해하며 하게 은서를 바라보았다."그런 것 같네요!”소희는 맑고 분명한 눈빛으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요? 바로 King은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고 그냥 조용히 창작하기를 좋아해서?”은서는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흔들며 웃었다."소희 씨는 여전히 인간의 욕심에 대해 모르는 거 같군요. 높은 곳에 서서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남의 추앙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라고요. 그들은 그저 탈속하고 청렴한 캐릭터를 잡고 있을 뿐이에요!”“똑똑똑!”세 사람이 말할
청아는 뒤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자 다소 불편해했다."난 잘 놀지 못해서 백림 오빠 지게 할 수도 있어요.”백림은 바로 감동을 받으며 가슴을 치며 말했다."나를 이토록 걱정하는 사람은 청아 씨가 처음이에요, 정말 너무 착해요!”청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시원은 그를 힐끗 보더니 청아에게 말했다."그의 허튼소리 듣지도 마요. 이 말은 내가 들은 것만 해도 20명 이상의 아가씨한테 말했어요!”테이블의 사람들은 모두 웃기 시작했고 백림은 탄식했다."시원아,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까 체면을 좀 남겨주지 않을래?”시원은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너랑 같은 사람이란 거야? 난 그렇게 징그러운 말을 한 적이 없어!”다른 사람들은 더욱 크게 웃었고 소희마저 눈웃음을 지었다.시원은 이 기회를 틈타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 구택에게 보냈다."혼자 즐기는 건 다 같이 즐기는 것보다 못하지. 우리 지금 이렇게 재밌게 노는데, 너 정말 안 올 거야?”사진에는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었고 소희는 창문 앞에 앉아 밖에는 활짝 핀 보라색의 꽃이 그녀의 미소를 비추고 있었고 정교한 옆모습에 눈웃음을 지으며 깨끗하면서도 영롱하게 웃고 있었다.구택이 답장하지 않자 시원은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놀기 시작했다.그들은 마작을 놀았고 세 사람이서 한 사람을 잡으며 마지막 한 사람이 지면 이마에 거북이가 찍혔다.청아는 역시나 칠 줄 몰랐다. 10여 장의 패가 이러저리 움직이며 뭐가 뭔지 몰랐다. 백림은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카드를 잘 정리해 주었고 또 그녀에게 작은 기교를 가르쳐 주었다.청아는 집중하고 있어서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원은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라운드에서 진 사람은 청아였다. 시원은 웃으며 말했다."너는 군사로서 있든 없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네가 청아 씨를 함부로 지휘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비참하게 지진 않았을 텐데. 가서 명원 그들이나 괴롭혀. 여기 와서 소
시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마작을 했다.그렇게 또 30분을 놀다 은서와 청아의 얼굴에는 모두 거북이 하나가 추가되었지만 오직 시원의 얼굴만이 깨끗했다.이때 소희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그녀는 번호를 확인하더니 눈빛이 싸늘해졌고 고개를 들어 말했다."백림 오빠, 나 패 좀 봐줘요. 나가서 전화 좀 받아야 해서요.”“오케이!"백림은 일어나서 소희의 자리에 앉았다.소희는 옆 문을 열고 정원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은 바로 입을 열었다."서희야, 불곰은 역시나 죽지 않았어. 그가 나타났다고!”오늘은 날씨가 맑았지만, 태양 아래에 서있는 소희는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그녀는 방 안의 사람들을 힐끗 훑어보고는 청석으로 만든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뒤쪽의 화원으로 걸어갔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디에 있어?”“델리주에. 전에 삼각용을 만났지만 그 후 행방을 잃었어. 보아하니 너와 진언 보스를 피하고 있는 것 같아.”“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됐어!" 소희는 눈빛이 차가웠다.그는 쉽게 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그를 끝내리라 맹세했기에!“네가 직접 나설 필요 없어. 불곰은 삼각용의 친동생이야. 그가 4년 동안 숨을 수 있었던 것은 삼각용이 뒤에서 그를 도와준 게 틀림없어. 삼각용은 그렇게 많은 형제들이 죽을지언정 불곰을 보호했으니, 만약 그의 수하들이 이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도 불곰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희가 말했다."일단 불곰부터 찾아. 삼각용으로부터 추적할 수 있고.”“알았어, 소식이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응!”전화를 끊고 소희는 별장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오솔길을 따라 뒤뜰로 갔다. 그녀는 무려 4년을 기다렸는데, 이제 마침내 자신의 전우들을 위해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화원 맞은편에는 별장의 작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구택은 차 안에서 이미 10분이나 앉아 있었다.그는 사진을 보자마자 바로 차를 몰고 달려왔지만, 여기에 도착하자 또 망설였다.분명
조이는 그곳에 멈춰 서서 억울한 눈빛으로 구택을 보며 검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오열하며 돌아갔다.구택은 소녀가 자신의 셔츠를 꽉 잡고 있는 것을 느꼈고 마치 그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소희를 안고 있던 손을 놓으며 가능한 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라앉혔다."이제 괜찮아요!”그는 오늘 짙은 남색의 비단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소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이 닿으며 남자의 옷 밑에서 전해오는 피부의 열기를 선명하게 느꼈다. 그녀는 그의 옷을 잡으며 한동안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구택은 마음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왜요, 다른 남자가 나보다 못하다는 거 알고 이제 마음을 돌리려고요?”그는 결국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소희는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남자를 쳐다보는 눈빛은 약간 화가 났다.구택은 표정이 차가웠지만 소녀가 얼굴에 거북이 두 마리 찍힌 채 눈을 부릅뜨고 입술은 촉촉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며 화가 난 거 대신 오히려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순간, 그는 분노가 가셨고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의 거북이 자국을 닦아주며 일부러 냉담하게 말했다."놀 줄 모르면 놀지 마요, 내 체면 깎이게 하지 말고요!”소희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의 품에서 나와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구택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안색이 담담해졌다."날 꼬시고 바로 떠나려는 거예요?”소희는 그를 등진 채 심쿵 했지만 눈시울은 약간 빨개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어떻게 하고 싶은데요?”구택은 깊고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인이 누구죠?”소희는 멈칫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구택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며 안색이 어두워진 채 또박또박 말했다."난 그가 누구든 상관없어요. 소희 씨는 그와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내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
“이거 소매 속에 숨기면 안 보일 거예요!”임유진은 서인의 손을 꽉 잡고, 손목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끝까지 팔찌를 채우려 했다.이에 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무슨 소매 속에 숨긴다는 거야?’그러나 유진은 자기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손목에 팔찌를 걸어주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요!”서인은 손을 빼내려 하는 순간, 앞에서 안토니가 그를 불렀다. 그렇게 서인이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유진은 순식간에 서인의 손목에 팔찌를 걸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절대 빼면 안 돼요. 안 그러면, 계속 떠벌릴 거예요. 내가 사장님 좋아한다고!”둘은 한적한 산길 위에 서 있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며, 유진의 맑은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을 담았다. 그 말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깊고 따뜻한 감정을 담은 채, 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팔찌가 손목 위에 얹혀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것이 뜨겁게 달궈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 감정이 그의 맥박을 타고 흘러드는 것처럼.서인은 아무 말 없이 방향을 돌려 토니에게 향했다. 유진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손안에 남은 하나의 팔찌를 꼭 쥐었다.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는 여러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과 지역 특산물이 가득했다. 넷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그러나 한참 후,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안주설과 토니는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추었다.“아 나 더 이상 못 걷겠어.”주설이 투정을 부리자, 토니는 다정하게 그녀를 업었다.“어릴 때부터 산길을 걸었으니까, 널 업고 정상까지 가는 것도 문제없어!”주설은 토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며들어 있었다.“우리, 원래 이래요.
유진은 서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 안토니가 우리를 산에 데려가 준대요!”토니도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마을 뒷산 경치가 꽤 괜찮아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도 없으니까,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게 어떨까요?”서인은 유진이 잔뜩 들뜬 모습을 보자, 별다른 거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렇게 토니의 안내에 따라 산길을 걸었다.약 10분 정도 걷자, 산으로 오르는 메인 길이 나왔다. 그곳에는 관광객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안주설은 토니의 팔을 꼭 끼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 다정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은 웅장하게 솟아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산허리에는 옅은 안개가 감돌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고, 울창한 숲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유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와, 정말 아름답네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애초에 유진은 이번 주말에 회사 워크숍이 있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집에서 쉬는 게 더 좋다고 했던 사람이, 여기 와서는 이렇게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인을 올려다보았다.“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여행이 즐거운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참, 까다롭네.”이에 유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이게 왜 까다로운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인데!”그러나 서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유진은 잽싸게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그럼 사장님은 나랑 같이 산에 오는 게 좋아요,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노는 게 좋아요?”서인은 잠시 걸음을 늦추더니, 진지하게
유진은 볼이 살짝 붉어진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인을 노려보았다.“설령 난초라 해도, 가장 흔한 종류잖아요! 어떻게 그게 100만원이나 해요? 역시 사장님, 돈이 많긴 많네요!”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100만원, 네 월급에서 차감할 거니까.”그 말에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서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웃었고, 눈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원래라면, 유진은 자신이 바보 같아서 화가 났고, 서인이 계속 놀려서도 화가 났다. 그런데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말했다.“앞으로는 아무거나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게요.”다시는 서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인은 웃음을 거두고, 유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사실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또한 서인은 유진을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결국, 서인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원래 그건 그냥 잡초였어.”그것을 귀한 보물로 만든 건,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유진은, 이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하고, 보기 좋았다....점심때가 되자, 토니네 가족은 뒷마당에서 키운 닭을 요리하고, 지역 특산 음식을 만들어 서인과 유진을 대접했다. 소박한 가정식이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유진은 원래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지만,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닭볶음과 깊은 맛이 우러난 닭국물을 맛보며 연신 감탄했다.“이거 정말 맛있어요! 닭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국물도 진하고요!”윤석경은 놀라면서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많이 먹어요. 또 떠줄 테니까!”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유진의 그릇에 음식을 더 담아 주었고, 유진도 서인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맛있
서인은 안토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윤석경 씨, 잠깐 나와 보세요! 이 사람이 당신네 집 손님 맞나요?”서인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향했다. 토니의 부모도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곱슬머리로 말려 있었다. 여자는 토니네 가족을 보자마자, 곧장 손가락으로 한쪽에 서 있는 유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당신네 손님 맞아요?”유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발 소리치지 마세요! 제가 돈 드린다고 했잖아요!”유진은 당장이라도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인은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박민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이 여자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 난초를 뽑아서 토끼 먹이로 줬어요! 내 난초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조금만 늦었어도 다 뽑혀 나갔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라고요!”유진은 머리를 싸매고 싶었고, 작은 목소리로 서인에게 변명했다.“난초인 줄 몰랐어요. 그냥 잡초인 줄 알았어요.”유진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나 박민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쏘아붙였다.“변명하지 마요! 어쨌든 내 난초를 뽑은 건 사실이잖아요!”그때, 윤석경이 나서서 말했다.“우리 집에도 난초가 있으니까, 그걸로 대신 보상해 줄게요. 어린애한테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까지야 있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하지만 박민란은 완강했다.“안 돼요! 당신네 집 난초랑 내 난초는 품종이 달라요! 그러니 난 절대 못 받아요!”윤석경도 화가 났다.“똑같은 난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박민란이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내 난초는 특별히 돈 들여 키운 거예요. 이미 손님이 예약한 거라고요! 근데 이제 어쩌란 말이에
안토니는 이미 저들과 한 차례 몸싸움을 벌였는지,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는 부모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시키려는 남자들과 격렬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때, 서인이 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서인을 바라봤다. 서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이윽고 한 손으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차갑게 말했다.“안토니네 가족은 이사하지 않으니까, 당장 꺼져요!”그때, 상대편의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 누구야? 당신이 뭔데 결정해?”서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금부터 이 집안일은 내가 결정해.”임유진도 단호하게 나섰다.“당신들, 합법적인 철거 허가서라도 있어요? 없으면, 지금 이건 불법으로 민가에 침입한 거고,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예요! 신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요!”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신고? 해보시지, 이 계집애가!”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는데, 서인의 차가운 눈빛이 번뜩이며 그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이내 남자는 수치심에 휩싸여 분노를 터뜨렸고 뒤에 있던 부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 우락부락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먹을 쥐고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서인은 간단하게 공격을 막았다. 팔을 낚아채어 비틀어버린 후,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쿵! 남자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으악!”놀란 안주설과 토니네 부모님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토니는 같이 싸우려 했지만, 서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넌 신경 쓰지 마.”서인의 태도는 한결같이 차분했지만, 움직임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몇 초 만에 남은 두 명까지 모두 쓰러졌다.우두머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보며, 서인이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당할 것이 뻔했다.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기
서인이 약속한 장소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찻집이었다. 두 사람이 몇 분을 기다리자, 상대가 도착했다.그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짙은 남색의 운동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멀리서 서인을 발견한 남자는 곧바로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걸어오면서 팔을 벌렸고,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한 뒤, 어깨를 가볍게 맞댔다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이렇게 오래 못 봤는데, 네가 갑자기 연락할 줄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네!”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에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이에 서인은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오랜만이긴 하죠.”“예전에 너희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살아 있어서 다행이네.”서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남자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남자는 놀란 듯 서인을 쳐다보았다.“여자친구야?”서인은 짧게 답했다.“아니요. 그냥 같이 온 친구예요. 임유진.”그는 이어서 남자를 소개했다.“이한우라고 해요.”유진은 그를 한 번 보더니 따라 불렀다.“한우 씨!”한우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인의 친구라면 나한테도 친구나 다름없죠. 편하게 있어요.”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서인과 한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다실에서 나온 말차 케이크와 재스민 차를 즐겼다.서인은 흥성에서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우는 지역에 오래 정착한 사업가로, 여러 방면에 인맥이 있었다.서인은 안토니네 가족을 돕기 위해 한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우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흔쾌히 말했다.“리조트 호텔 사장은 모르지만, 철거 보상 담당자는 잘 알지. 같이 술도 마셨던 사이라, 내
서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임유진은 재빨리 침대 옆 협탁에서 안대를 꺼내 들었다. 자신이 눈을 가릴 거라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미 씻었어.”서인은 무심하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물었다.“불 꺼도 돼?”방 안에는 서인의 쪽에만 벽 등이 켜져 있었다. 이에 반쯤 몸을 돌린 채 유진을 바라자, 유진도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다.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작 오초였지만, 묘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유진의 눈빛은 마치 깊고 맑은 호수 같았다. 그 안에 잔잔한 물결이 퍼지는 듯했다.어둠 속에서도 유진의 눈빛이 한층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헐렁한 티셔츠의 목 부분이 흘러내려, 가느다란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유진의 피부는 눈이 부시게 하얗고 매끄러웠다. 마치 만지기라도 하면 부서질 듯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방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짧은 순간에 묘한 분위기도 함께 사라졌다. 유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은 서인의 침대 너머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야외 수영장의 물이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유진의 들뜬 마음처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곧, 자동으로 커튼이 내려졌다.그 작은 물결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인이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고, 유진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이불을 단정하게 덮고 눈을 감았다.서인도 조용히 눈을 감았으나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유진의 상쾌한 바디워시 향이 공기 속에 가볍게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서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곧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뭐지?’유진은 원래 잘 때 얌전한 모습이었으나 자고 나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