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녀에게 자신이 하순희의 친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놀라웠고, 심지어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럴 리가?정말 꿈만 같아!찬호는 기뻐서 줄곧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지난번에 누나가 설백현 그 사람한테 속았을 때도 바로 소희 누나가 도와준 거예요. 소희 누나는 또 작업실 사람더러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어요. 근데 당신들은 아무도 날 믿지 않았고, 소희 누나를 믿지 않았어요!”시연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찬호는 콧방귀를 뀌었다."이제 알았죠!”시연은 찔린 듯 눈썹을 치켜세웠고 여전히 믿을 수 없어 중얼거렸다."그녀가 어떻게 King 이지? 시골에서 왔다 하지 않았어?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또 어떻게 도 씨 어르신의 제자가 된 걸까?”지금 시연의 머릿속은 온통 소희에 관한 물음이었다.찬호가 말했다."어차피 누난 그녀가 King이라는 것을 알면 됐어요. 소희 누나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엄마한테도 말하지 마요!”“알아!" 시연은 King의 팬이었고 그녀가 소희라는 것을 알아도 그 숭배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예전에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그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소희를 업신여기며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서 곳곳에서 소연보다 못하고, 설령 친딸이라도 소정인과 진원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소 씨네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어려워서 그녀가 불쌍하고 가소롭다고 생각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소희는 아마 소 씨 집안에 돌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진원은 줄곧 소연을 자신의 보배처럼 자랑해왔지만 소연은 여정 선생님의 제자일 뿐 도 씨 어르신과 한 번 만나기도 무척 어려웠다.그러나 소희는 도 씨 어르신의 득의한 제자였으니 심지어 소연의 선배님이었다!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야 시연은 진원이 얼마나 우스운지 깨달았다!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희 언니는 왜 말을 안 하는 걸까?”그녀가 만약
이틀 뒤 토요일, 소 씨네 본가의 모임에서.소희와 외지에 출장 중인 소정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도착했다.소 씨네 가족 모임은 한결같았다. 남자들은 함께 모여 사업상의 일을 이야기하고, 여자들은 함께 모여 아이들의 일을 토론했다.남을 칭찬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자랑하는 것이었다.물론 매번 칭찬을 받는 사람은 설아와 소연이었다.오늘 식사할 때, 진원은 일부러 화제를 소연한테로 돌리며 그녀가 얼마나 우수하고 작업실에서 얼마나 큰 중시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미 스스로 독립적으로 디자인 원고를 설계하기 시작했다고 자랑했다.사람들은 한바탕 칭찬을 했고, 소연은 겸손하고 조신한 미소를 유지했다.시연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냉소를 지었다.연경은 많은 사람들이 소연을 칭찬하는 것을 보고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소희는 왜 또 오지 않았대요?”진원은 원래 득의양양한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순희는 미적지근하게 말했다."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케이슬에 손님이 그렇게 많으니 주말에도 쉴 수 없겠죠!”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들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 노부인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직 거기에 다니는 거야? 그녀가 만약 명성을 망쳤다면, 임가네 사람들은 그녀를 계속 가정교사로 하게 할 수 있겠나?”순희는 비웃었다."확실히 시야가 좀 짧네요. 만약 임가네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까짓 돈에 신경 쓰겠어요?”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시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그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요? 그냥 밥이나 드세요!”매번 큰어머니가 내색하지 않고 일을 벌이면 그녀의 어머니는 튀어나와서 듣기 싫은 말로 남들의 미움을 샀다. 매번마다 이랬으니 전에 그녀는 귀찮아했지만 지금 보면 소 씨네 가족이 다 나쁜 사람이라고 느꼈다!“어른이 말하는데 넌 왜 끼어들어!" 순희는 시연을 노려보았다.노부인은 진원에게 물었다."소희는 도대체 그 일을 그만둔 거야 안
소연은 눈을 깜박였다."물론이지, 난 북극 작업실에서 일하니까 King을 본 적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거 아니야? 뭘 의심해?”시연이 말했다."거짓말하지 마요. King은 작업실에 거의 가지 않아서 너도 King을 본 적이 전혀 없잖아요. 네가 나한테 준 사인도 가짜고. 가짜를 가지고 사람을 속인다니, 당신은 내가 어리석고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더러워서 정말!”“소시연, 너 말 똑바로 하지 못할까!"진원은 일어서서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너 어린 거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겠는데, 너무 지나치게 굴지 마!”시연도 일어서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둘째 큰어머니, 제발 여린 척 착한 척하는 누군가의 외모에 속아서 큰어머니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을 소홀히 하지 마요!”“너 빗대어 욕할 필요 없다!"진원은 노여워하며 말했다."소희가 너한테 무슨 말 했지? 그녀도 참 능력이 있구나. 먼저 찬호를 매수한 다음 지금은 너까지 이간질해서 우리 연이를 욕해!”“소희 언니는 확실히 능력이 있죠. 그녀는……."시연이 사실을 말하기 직전에 옆에 있던 찬호가 갑자기 그녀의 옷을 잡아당기며 눈살을 찌푸렸다."누나, 좀 작작해요!”시연은 침착해지며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다.진원은 화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순희에게 말했다."별일 없으면 시연이 좀 많이 챙겨요. 하루 종일 그런 깡패 같은 사람들하고 놀지 말게 해요. 이게 무슨 꼴이에요!”순희는 비록 소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싸늘하게 받아쳤다."나도 자신의 딸을 깡패로 말하는 엄마를 처음으로 보네요!”“뭐야……." 진원의 안색은 무척 흉해졌다.정인은 그녀를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도 그만 좀 해! 아랫사람들과 뭘 그렇게 따지는 거야?”진원은 중얼거렸다."아랫사람이 뭐가 어때서요? 아랫사람이라서 더 잘 단속해야 하는 거예요!”순희가 말했다."집에 가서 당신의 딸이나 잘 단속시켜요. 우리 집 시연이 아
임가네.유민은 지난번 생일 소원으로 구택의 하루 스케줄을 바꿨고 토요일에 자신과 함께 승마장에 가서 말 타자고 요구했다.구택은 시원과 지능 로봇 개발에 대해 얘기할 게 있어서 시원을 승마장으로 불렀다.몇 사람은 승마장을 에워싸고 한 바퀴 뛰었고, 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구택은 시원과 얘기를 나누며 유민은 스스로 낚시를 하러 갔다.잠시 후, 유민이 다가왔다."둘째 삼촌, 소희 샘한테 전화해서 시간 있냐고 물어보면 안 돼요?”그는 혼자 낚시를 하다 지루해서 거의 잠이 들 지경이었다.구택은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 그를 더욱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게 했다. 유민의 말을 들은 그는 잠시 멈칫하다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소희 샘은 오늘 일이 있어서 너 혼자 가서 놀아!”시원은 웃으며 말했다."이왕 유민이 데리고 온 이상, 우리 유민이랑 같이 놀자. 일은 나중에 돌아가서 계속 이야기하고.”구택은 "응" 하고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강가로 걸어가면서 유민에게 물었다."너 몇 마리 낚았어? 점심때 먹기엔 충분한 거야?”유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오늘 강 속의 물고기는 모두 수컷이에요!”“뭐?" 시원은 어리둥절해졌다."낚시하는 것도 암컷 수컷 나누는 거야?”오직 구택만이 유민의 말을 알아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또 소희를 생각했다. 그녀의 교활하고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그는 문득 답답해졌고 목소리도 약간 가라앉았다."암컷 수컷은 무슨, 분명 네 낚시 기술이 안 되는 거야.”“그럼 둘째 삼촌이 해봐요, 그들이 낚이는지?" 유민은 야유하며 웃었다.구택은 의자에 앉아 미끼를 낀 뒤 낚싯대를 물속에 던졌다. 반짝이는 수면을 보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난번 숲속에서 그녀가 자신의 품에 부딪치며 웃음을 머금고 수줍게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낚시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지만 하필이면 그의 마음속은 잠시도 평온하지 못했다.오후에 그들은 승마장을 떠났고 시원은 그들과 함께 임가네 본가로 갔다.3층 서재에서 두 사람은 또 잠
“여자아이라고?" 시원은 좀 놀랐다.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뜻밖에도 용병을 하다니!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그녀는 겨우 15살이었을 거야. 그러나 사격 기술은 무척 뛰어났고 몸놀림도 날렵했지만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혼자 앉아 있었지. 그녀는 단 음식을 매우 좋아해서 우리는 초콜릿을 항상 초콜릿을 지니고 있었는데 난 나의 초콜릿을 모두 그녀에게 줬어!”그때 그들이 맡은 임무는 어느 나라에 가서 그들이 원시림 깊은 곳에 지은 실험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팀은 비록 임시로 구성되었지만, 모두들 인차 어울리며 오직 그녀만이 모든 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항상 혼자 다녔다.그도 우연히 그녀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초콜릿을 그녀에게 남겨 주었다.처음에 그녀는 받으려 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천천히 받아들였다.그들은 3일 동안 함께 지냈는데, 그녀는 자신의 초콜릿을 받을 때 고맙다고 말하는 것 외에 거의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용병에서 명망이 높은 진언 보스의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들 그녀의 솜씨에 대해 의심을 했지만 아무도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고, 그녀가 사실 소녀라는 것도 몰랐다.3일이 지난 후 그들은 삼림에 들어섰고 그녀는 실험실 나무에 있던 극히 은폐된 단추형 카메라를 한방에 처리해서야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탄복하기 시작했다.실험실에는 총이 있어서 그들은 억지로 침입할 수 없었고 내부에 잠입하여 무기 가동 장비를 폐쇄해야 했다. 그러나 실험실 안에는 사람들이 겹겹이 지키고 있어서 이때 그녀는 자신의 여위고 작은 몸의 우세를 발휘하여 실험실의 감시와 수비를 피하고 순조롭게 잠입했다.이때에야 그들은 비록 사람들이 계획을 말할 때 그녀는 종래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든 디테일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동료들과 아주 잘 배합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리고 그와 그녀 두 사람은 지하 창고에 가서 실험실이 연구한 약물을 소각했고 그중 한 방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이 약을 먹은 시험자들로서 그녀는 그들을
저녁에 소희는 6616호 손님에게 술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마침 성 대표님의 손님이 도착해서 호스티스 비비안 눈치 빠르게 소희와 함께 룸을 나섰다.성 대표는 조숙한 소녀를 좋아해서 비비안은 로리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고양이 발톱 모양의 머리핀을 달고 유난히 귀엽고 섹시해 보였다.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다."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종업원으로 되긴 너무 아까운걸. 이 언니를 따르지 않을래?”소희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비비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사실 6616호 손님은 아주 괜찮았다. 그는 매번 올 때마다 고정된 호스티스를 요구했고 원하는 술도 기본적으로 똑같았다. 가끔 두 세명이 함께 와서 거의 소희를 부르지 않았다.그리고 10시쯤이면 그는 떠났고 술에 취하지도 않고 소란도 피우지 않았다.그와 호스티스 사이에 관해서는, 그것도 서로 원하는 것이었고 이 성 대표님이라는 사람도 팁을 두둑하게 챙겨줬다.주말이라 6층은 꽉 찼고, 소희는 다른 사람들이 바삐 돌아치는 것을 보고 주동적으로 미선을 찾아가서 자신은 다른 룸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오진수가 전에 미선에게 소희를 잘 챙기라고 말했기에 그녀도 줄곧 소희를 매우 공손하게 대했고 오늘도 확실히 너무 바빴다. "그래, 그럼 소희는 원이를 도와서 6612룸 책임져. 일 있으면 나 부르고.”“네!" 소희는 응답하며 원이를 찾아갔다.두 사람은 술을 들고 6612호로 갔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짙은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에는 10여 명이 있었는데 마치 누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얼굴에 케이크가 묻어 있었고 음악소리와 고함소리는 한데 뒤섞여 무척 떠들썩했다.안에 앉은 여자들 중, 낯이 익은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텔레비전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여자 스타들인 것 같았다.소희는 원원의 뒤를 따라 술을 탁자 위에 놓았다.소파의 가장 가운데에 앉은 남자는 20대 정도에 머리에는 생일 축하해하는 왕관을 쓰
“난 200만 원!”“뽀뽀 한 번 하면 200만 원? 도련님, 나한테 뽀뽀해 줘요!”“네 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지!”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자 소희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졌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손 놓으라고요!”승우는 소희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다."거절하는 거야?”소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금방 손을 쓰려고 할 때, 문이 갑자기 열렸고 미선이 들어왔다."왜 이렇게 떠들썩한 거예요? 소희야, 술을 전해드렸으면 얼른 나가야지. 손님들을 방해하지 말고!”승우는 미선을 보고, 그제야 소희의 손을 놓았고, 입을 삐죽거리며 냉소했다."마침 잘 왔어. 난 그녀를 고소할 거야. 규칙도 모르고, 태도도 나빠. 즉시 이 여자 쫓아내!”미선은 헛웃음을 하며 소희를 뒤에 감싸고 주동적으로 승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도련님, 소희는 새로 온 아이잖아요. 도련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녀와 따지지 마세요. 이 술은 제가 올릴게요!”“네가 나한테 올리면 내가 네 체면을 봐줘야 하는 거야?" 도련님은 손에 든 절반 피운 담배를 미선이 들고 있는 술잔에 던졌다."그녀가 이걸 마시면 이 일은 끝난 걸로.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꺼지라고 해!”미선은 난처해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도련님, 제가 도와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소희를 잘 챙겨주라고 부탁을 하셔서 저도 어쩔 수 없어요.”“스폰서가 있었구나, 어쩐지 이렇게 날뛰더라니! 말해 봐, 도대체 누구야?"승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미선이 말했다."조백림 도련님께서 말씀하셨고, 심명 도련님께서도 소희를 잘 돌봐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오진수는 백림의 사람이었으니 미선은 백림을 말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조백림을 들었을 때 승우는 안색이 변했고 심명의 이름을 듣고 그는 아예 눈썹을 찌푸렸다."정말 심명 도련님의 사람이야?”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승우는 소희를 힐끗 쳐다보며 다소 조심스러워졌다."됐어, 나도
저녁에 소희가 어정으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고 문 앞에는 보온병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청아가 자신에게 남겨준 야식이었다.소희는 보온병을 들고 방에 들어간 다음 거실의 착지등만 켜고 소파에 앉았는데 문득 방이 무척 쓸쓸하다고 느꼈다.창밖의 등불조차도 방 안을 비출 수 없었다.그녀는 이전에도 늘 혼자였다. 여태껏 그녀는 이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간이 힘들고 길어졌다고 느꼈다.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며 또다시 한 사람이 되었을 때, 밤은 뜻밖에도 이렇게 쓸쓸하고 외로웠다.소희는 밤새도록 설계도를 그리다 날이 밝아서야 잠을 자러 갔고 점심까지 잤다.그리고 그녀는 일어나서 하면을 대충 끓여 먹은 뒤, 청아의 디저트 가게로 걸어갔다.8월 중순, 이미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더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소희는 그렇게 햇빛 아래서 걸어갔지만 손은 여전히 차가웠고 이마에는 땀방울조차 없었다.가게에 들어서자 그녀는 그들 가게의 스페셜인 치즈 아이스크림 하나, 초콜릿 케이크 하나 그리고 생강 홍차 하나를 시켰다.생강 홍차의 열기로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을 억제하는 것은 소희가 최근에 연구한 것이었다.미연은 다가와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또 보네!”소희는 부드럽게 웃었다. "안녕하세요!”미연은 디저트를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뒤에 있는 머리카락은 짧았지만 앞머리는 눈을 가릴 정도로 길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차갑고 냉정한 눈동자로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 씨는 학생인가?”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곧 대학교 4학년이에요.”“걸어서 가게로 온 것 같은데, 이 근처에 살아?”“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정에 살아요. 청아 위층에요.”“혼자 사는 건가?”“네!”미연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웃었다."청아는 옆집에 가서 디저트 배달하러 갔으니 곧 돌아올 거야. 잠깐 기다려.”“그럴게요." 소희는
부신명은 고영해의 표정을 보며 더 화가 치밀었다.“그럼 당신,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고영해는 급히 해명했다.“그렇게 일찍 안 건 아니에요. 최근 이틀 사이에야 겨우 소식을 들었고, 오늘도 최이석한테 전화했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어요.”“인정할 리가 있나?”부신명은 분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인정하면 지금까지 받아 챙긴 돈 다 토해내야 하니까.”그는 냉랭한 눈빛으로 고영해를 쏘아봤다.“회사가 최이석한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지 알아요? 당신은 자신만만하게 꼭 이 프로젝트 따내겠다고 장담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죠?”부신명은 탁자 위를 세게 내리쳤다.“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가요!”고영해는 면박을 당해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입술을 깨물었고, 속으로는 온통 최이석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이 지경까지 만든 게 다 최이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망하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다음 날구씨그룹 인사부와 이사회 일부 고문들의 이메일에는 한 통의 실명 고발장이 도착했다.유지그룹 영업팀 본부장 고영해가 보낸 것으로, 그는 최이석이 먼저 뇌물을 요구하며 협상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고발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거액의 이체 기록과 녹취 증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이에 모두가 이 고발장을 받고 충격에 빠졌다.구은정은 증거의 진위를 조사하게 했고, 확인을 마친 뒤 회의석상에서 서성 앞으로 서류를 던지듯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조사해 보니 더 충격이네요. 유지그룹 건만이 아니에요. 최이석이 맡은 프로젝트는 전부 사익을 취했어요.”“이 사람, 당신이 데리고 온 인물이죠?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서성은 눈앞에 놓인 자료들을 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정말 최이석이 이렇게 대담할 줄은 몰랐어요!”그는 고개를 들고 은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회사는 최이석을 해고해야 해요. 저는 절대 감싸거나 묵인하지 않을 거예요!”“해고요?”은정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이미 법무팀에 고소 진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임유진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고, 유진이 멀어지자 그제야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구씨그룹과의 계약은 여전히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최이석은 최근 구은정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여러 단계를 더 거쳐서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었다.사실 잘 알고 있었다. 최이석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라는 걸.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양보를 한 상태였다.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양쪽은 암묵적으로 팽팽하게 대치 중이었고 이석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석이 몰래 여씨그룹과 접촉해 유지그룹과 여씨그룹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가 더 많은 돈을 주느냐에 따라 결국 그쪽과 손을 잡을 셈이었다.고영해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 자신이 최이석에게 준 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충동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일부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 4층 버튼이 눌린 걸 확인했다.그 순간, 예약해둔 고객의 전화가 울렸다.“왜 아직 안 오셨어요?”[곧 가요.]고영해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임유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했지만 내리지 않고 다시 1층 버튼을 눌렀다. 자리에 돌아온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구은정에게 말했다.“사람이 많아서 조금 기다렸어요.”음식은 이미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고, 은정은 그녀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일단 식사부터 하자.”요리는 꽤 괜찮았다. 재료는 신선했고, 요리사의 솜씨도 뛰어났지만 유진은 많이 먹지 않았다.레스토랑 내부는 품격 있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는 중식 스타일의 조각된 펜던트 조명이 달려 있어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었고, 그 아래에서 구은정의 이목구비는 더욱 짙어 보였다.은정은 유진을
유진이 요즘 운동을 안 해서 걷고 싶다고 하자, 구은정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임유진이 중식을 먹고 싶다고 말했고, 마침 한 블록 건너편에 중식 전문점이 있어 두 사람은 걸어서 향했다.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저녁 시간대라 거리는 번화했다. 네온사인은 반짝이고, 도로 위는 차량과 인파로 북적였다.식당이 거의 다 왔을 무렵, 유진은 길 건너편에서 이벤트 중인 디저트 가게를 발견했다.가게 앞에는 커다란 케이크 조명 간판이 환히 밝혀져 있었고, 예쁘고 유혹적인 분위기였다.유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맞은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전에 삼촌이 주문해 줬던 타로 크림 롤, 여기 거예요? 맛 괜찮았어요.”은정은 곧장 눈치를 채며 말했다.“내가 다녀올게.”이에 유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고마워요, 삼촌!”은정은 말없이 길을 건너 디저트 가게로 향했고, 유진은 그 자리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5, 6분쯤 지났을까? 은정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여러 명의 사람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중이었다.키 크고 잘생긴 그는, 냉철한 분위기와 독특한 존재감으로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은정을 향해 자연스레 쏠렸다.번화하고 소란스러운 거리, 은정이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와, 손에 디저트를 들고 자신에게 곧장 다가오는 모습은 어딘지 낯익고 익숙했다.유진은 잠깐,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느꼈다. 유진의 앞으로 다가온 은정은 타로 롤케이크를 그녀에게 곧바로 건네지 않았다.“식당 가서 먹자.”그 말에 유진은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식당에 도착해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고, 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여기 새로 생긴 식당인가 봐요.”“마음에 들면 자주 오자.”은정의 말에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나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할머니께 한 달만 따로 살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 시간이 거의 다 됐고요.”은정은 순간 멍해졌고, 낮은 목소리로
정현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가끔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구씨그룹 나름대로 고려가 있겠죠.”그의 말은 겉도는 이야기뿐, 전혀 실질적인 조언은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현준의 말에서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계속 의견을 나눴고, 두 사람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꽤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곽시양의 책상은 유진의 사무실 맞은편에 있어, 현준이 유진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현준은 나올 때, 어딘지 모르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시양은 직감했다. 현준은 틀림없이 유진에게 소혜를 추천하고 나왔을 것이다.소혜는 부서 신입 중에서도 능력과 학력이 가장 두드러졌고, 현준의 밀어주기가 더해진다면 부팀장 자리는 거의 따놓은 당상일 수 있었다.시양은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을 번득이며 조용히 자료를 정리했다.유진은 평소처럼 정시에 퇴근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익명의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팀장님, 보고드릴 게 하나 있어요. 구씨 그룹이 우리와 협력하지 않기로 한 건, 담당자인 최이석 부장이 유지그룹 쪽과 친분이 있어서예요.][이미 프로젝트는 유지그룹에 넘기기로 결정됐어요. 진소혜 씨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팀장님께 알리지 않았고요.][팀장님이 실패하게 만들고, 직원들 앞에서 망신 주기 위해서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팀장님에게 떠넘긴 거예요.][자기는 책임 피하고, 팀장님을 함정에 빠지게 했죠. 이 모든 게 그 사람의 계략이에요.]유진은 메시지를 다 읽고 나서 눈을 반짝이며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쪽은 장난기 어린 여자 목소리였다.“삼촌,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전화를 끊은 유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갈아입고는 옆집으로 향했다. 문은 닫히지 않고 반쯤 열려 있었고, 유진은 별다른 예고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구은정은 서재에서 전화를 받는 듯했고, 유진은 소파에 앉아 애옹이를 쓰다듬으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후, 유진의 휴대폰에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