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이 빠르게 지나갔고, 점심시간에는 모두 도도희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했다. 주한결은 커다란 딸기 케이크를 들고 나오며 아심을 불렀다.“아심아! 케이크 먹어!”아심은 감탄하며 물었다.“이거 네가 만든 거야?”한결은 수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응, 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리도 좋아해. 양식, 중식, 베이킹까지 다 연구해 봤어.”기주현은 손가락을 내밀어 케이크에 있는 크림을 조금 묻혀 입에 넣고는 아심에게 웃으며 말했다.“몰랐죠? 우리 선배님 만능 재주꾼이라는 거!”한결은 그녀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손 깨끗하긴 해?”주현은 손을 활짝 펼치며 뻔뻔하게 말했다.“방금 화장실 청소하고 왔거든요? 오리지널 향 그대론데 맡아볼래요?”모두가 주현의 거리낌 없는 말투에 익숙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한결은 코를 막는 척하며 몸을 피했다.주현은 뒤를 돌아보다가 강시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그에게 건넸다.“시언 오빠, 케이크 드세요!”한결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방식으로 공을 들이는 건 아니지.”“누가 만든 케이크야?” 시언이 묻자. 아심은 케이크를 먹으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한결이 만든 거예요. 정말 맛있어요, 대단하죠?”“냄새는 꽤 좋은데?” 시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케이크를 테이블에 놓으며 덧붙였다.“난 단 거 안 좋아해.”“단 거 안 좋아하세요?” 주현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제가 안 달게 케이크 만들어 드릴게요.”한결은 주현이 요리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아심에게 웃으며 말했다.“아심아, 계속 먹어. 학생들에게 줄 더 큰 케이크도 두 개 준비했거든.”아심은 한결의 세심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탄했다.“고마워, 정말 수고했어.”한결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수고랄 게 뭐 있어. 어쨌든 내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내 학생이니까, 내가 잘 챙겨줘야지.”그러고는 웃으며 뒤돌아섰다.아심은 케이크를 다 먹은 후 한 조각을 더
기주현은 말을 마치고 강시언에게 물었다.“시언 오빠, 우리랑 같이 가요.”시언이 답하기도 전에 도도희가 말했다.“시언아,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때? 네가 있으면 나도 마음이 편하니까.”이에 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문제없어요.”주현이 다시 아심에게 돌아보며 물었다.“아심 씨, 같이 갈래요?”이에 아심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아니에요. 오후엔 도도희 이모랑 같이 있을게요.”시언은 눈을 내리깐 채 음식을 먹으며 특별한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굳이 날 신경 쓸 필요 없어. 같이 가서 놀다 와,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도도희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한결도 동의했다.“그래, 같이 가자. 선생님이 오후에 학생들 보충수업을 보실 것 같아. 남아 있으면 아무도 널 챙길 사람 없을걸.”아심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시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나 다 먹었고, 전화 한 통 걸고 올 테니까, 산에 올라갈 시간 정해지면 알려줘요.”도도희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알겠어. 아심이가 널 부르러 갈게.”시언은 가볍게 대답하고 돌아서서 걸어갔다.주현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시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감탄이 가득했다.“뒷모습마저도 멋지다니!”이에 한결이 웃으며 말했다.“그만 봐, 너 침이 폭포처럼 흐르겠어!”주현이 한결을 노려보고 케이크 한 큰술을 퍼서 입에 넣었다....식사를 마친 일행은 잠시 쉬고 오후 한 시에 별장 밖에서 다시 모였다. 아심은 도도희와 계속 함께 있다가 아심과 함께 도착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언도 도착했다. 주현은 다가오는 시언을 바라보다가 아심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둘이 맞춰 입었어요? 커플룩이네!”아심은 흰색 운동화에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 흰색 티셔츠를 입었고, 시언 역시 비슷하게 입었지만 티셔츠가 검은색이었다. 그 모습은 확실히 커플룩처럼 보였다.아심은 시언을 한 번 보고 다시 자신을 보며 즐거워하며 말했다.“이 옷이 흔한 스타일이라 생각했
그러자 에블리가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길 닦는 건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이잖아. 그런데 왜 정부랑 협력한 거지?”주한결이 설명했다.“길 닦으려면 땅을 사야 하는데, 꼬인 사람들이 나서서 방해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지.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강씨 집안뿐이었으니까!”기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깨달았다.“그래서 운성에서 그렇게 명망이 높은 거구나. 주민들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당연하지.”한결은 웃으며 말했다.“운성 사람들을 위해 해 준 일은 셀 수도 없어!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운성으로 발령받아서 3년 동안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운성 사람들한테 정말 특별한 존재거든.”에블리도 생각에 잠겼다.“맞아, 처음에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여기 보내는 걸 꺼렸는데, 강씨 집안 소유의 별장이라고 하니까 안심했지.”아심과 시언은 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다. 그러다 아심이 웃으며 말했다.“저 사람들이 말하는 강씨 집안 사람이 자기들 뒤에 있는 줄 모르네요!”시언이 저음으로 말했다.“우리 집안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건 대대로 쌓아온 덕분이야. 나는 한 게 가장 적지.”아심은 진지한 눈빛으로 시언을 바라보며 답했다.“아니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알거든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당신 조상들은 운성을 위해 헌신했지만, 당신은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을 위해 애썼잖아요.”시언이 살짝 걸음을 멈추고, 뒤에 따라오는 아심을 돌아봤다. 시언의 잘생긴 얼굴에는 나뭇잎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표정은 더욱 깊어졌다.“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네가 이해해 주면 돼.”시언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아심은 시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가 몇 발짝 앞서 나가자 황급히 따라갔다.4월의 산은 이미 초록으로 무성했고, 낮은 봉우리에 오르자 앞에 이 산에서 가장 유명한 경관인 만 무의 자주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초록빛의 바다처럼 대나뭇잎이
그러자 아심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그렇지는 않아요. 당신이 네가 잘 가르쳐 줬잖아요.”“응?” 시언이 눈썹을 살짝 올리자, 아심이 말했다.“당신이 전에 말했잖아, 가끔 어려움이 오히려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네 말을 떠올리고 판단하게 되더라고요.”시언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고고하고 냉정한 얼굴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런 판단에는 지승현을 선택한 것도 포함되는 건가?”아심은 순간 말을 잃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포함되죠.”그때 주한결이 손에 몇 개의 풋대추를 들고 뛰어오며 아심에게 내밀었다.“이거 먹어 봤는데 맛 괜찮아.”아심은 두 개를 받아들였다.“고마워.”“뭘, 별거 아냐!” 한결은 활짝 웃으며 시언에게도 물었다.“형도 드실래요?”시언은 강심의 손에서 하나를 가져가며 말했다.“하나면 충분해요.”곧 기주현과 에블리도 돌아왔고, 둘은 야생 오디를 많이 따와서 오동나무 잎에 싸 들고 신나게 달려왔다. 한결은 그걸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거 먹으면 혀랑 이가 다 검게 되는데, 난 안 먹을래!”“뭐 어때서요? 여기서 누가 선배 치아 색깔을 신경이나 쓴대?” 주현이 태연하게 말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간식을 먹고 잠시 쉰 후,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반 시간 정도 지나자, 한결은 체력이 좋아 괜찮았지만, 에블리는 숨을 헐떡이며 지쳐 보였다. 아심이 다가가며 말했다.“그림 도구는 내가 들어줄게요. 같이 가요.”에블리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괜찮아요, 제가 들 수 있어요!”아심이 말했다. “자, 내가 들어줄 테니까 위에 도착하면 돌려줄게요.”에블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림 도구를 건네주었다.“고마워요!”“별말을 다 하네.”아심은 한결도 지쳐 보이자 말했다.“우리 잠시 쉬면서 물도 마시고, 한결이 짐도 조금 덜어 줘요.”모두 멈춰 서자 한결은 각자에게 물병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짐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는
절은 크지 않았고 이름도 없어 보였다. 오래된 듯 절의 구석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그들이 절 안으로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드리러 온 듯한 산 아랫마을 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그들을 보고 놀라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인사했다.“여행 오셨나요?”주현은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라 흥미진진하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작고 아담한 이 절은 푸르른 소나무와 푸른 버드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불경 소리가 절 위로 맴돌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밖에서는 새와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 절 안의 고요함과 어우러졌다.앞으로 더 걸어가니 본당이 보였다. 대규모 절의 웅장함은 없었으나, 본당의 문은 굳건해 보였고 불상은 당당하게 서 있어 절로 경외심이 느껴졌다.아심은 불교에 대한 경외심은 있었지만 깊이 믿는 편은 아니었기에 한결 등과 함께 본당에 들어가 절을 올리지는 않고, 뒤쪽의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절의 구석에는 대나무가 가득 심겨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달 모양의 문을 지나니 작은 정원이 나왔다. 아심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뒤돌아보니 시언이 그녀를 따라와 있었다.“문이 없는데,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아심이 묻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령에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도 돼요. 오세요.”아심이 돌아보니, 회색 법의를 입은 스님이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있었다. 그는 백발이 섞인 수염을 가진 온화한 인상이었다.아심은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실례할게요.”스님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지요.”아심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시언에게 눈짓을 보낸 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시언도 마지못해 그녀를 따라갔다.스님은 빗자루를 내려놓고, 허름한 나무 탁자에 앉아 두 잔의 차를 따르며 말했다.“두
아심은 무심코 방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나무 격자창에 반사되는 햇빛으로 인해 아지랑이처럼 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곧 스님이 방에서 나와 아심에게 부적을 건넸다.“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모든 일이 명확해질 것이오.”아심은 이런 것들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스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부적을 공손히 받아 들고 두 손으로 가슴에 품었다.“감사해요, 스님!”스님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소, 아가씨. 여기 이것을 보시오.”그는 목에 걸린 줄을 당겨 아래에 걸린 패를 보여주었다. 그 패에는 계좌번호가 찍혀져 있었다.스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4만 원이오. 결제해 주세요.”아심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한편 시언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고, 억제된 웃음 속에 분명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아심은 핸드폰을 꺼내 4만 원을 송금했다....후원을 떠난 뒤에도 시언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 보였고, 그의 인생에서 이보다 우스운 일을 본 적이 없다는 표정이었다.아심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앞서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돌아서서 부적을 그의 손에 쥐어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만 웃어요!”시언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가지고 있어 봐,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질걸? 저런 걸 하는 스님이라면 평범한 스님은 아닐 테니 꽤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아심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억눌렀다.“말했잖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시언은 두 손가락으로 아심의 이마를 살짝 튕기며 말했다.“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아심은 이마의 아픔에 손을 올리며 시언을 올려다보았지만, 시언은 이미 그녀를 지나쳐 커다란 등이 보일 뿐이었다.아심은 아픔을 달래며 미소를 짓고는, 그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둘은 절을 나와 바깥의 돌 위에 앉아 주한결 일행을 기다렸다.
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신 승리하는 건 꽤 잘하네!”“당연하죠!” 아심은 멀리 보이는 맞이 소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스님이 하신 말씀도 꽤 그럴듯했어요.”“어떤 말?” 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속의 달이 하늘의 달이라는 그 말?”시언이 그렇게 묻자, 아심은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눈이 반짝이며 밝게 웃어 보였다. 웃음을 멈춘 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부적 돌려줘요!”“뭐?” 시언이 물었다.“내가 4만 원이나 주고 산, 그 맑은 마음을 준다는 부적이요.” 아심이 말했다. 시언은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집에 가져가서 잘 모셔두려고?”아심은 시언의 농담을 무시하고, 부적을 정성스럽게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매력적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신경 쓰지 마세요!”시언은 아심을 잠시 응시한 후, 고개를 돌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잠시 기다리자, 주한결과 일행들이 나왔다. 한결은 손에 기름종이로 포장된 뭔가를 들고 있었다. 꽤 오래된 느낌을 주는 포장이었다.“절에서 만든 참기름 떡인데 먹을 사람?” 한결이 묻자, 기주현이 신기해하며 물었다.“언제 샀어요? 난 못 봤는데?”“방금 나오면서 샀어. 맛있어 보이길래.” 한결은 떡 하나를 아심에게 내밀었다. 참기름 떡은 일반 기름떡과 같지만, 참기름으로 튀겨 더 기름진 듯 보였다. 그래서 아심은 잠시 망설이다가 떡을 받았다.“이게 다 백가향에서 빌어온 향으로 만든 떡이래. 복이 온다고 하더라고!” 한결이 설명했다.“복은 무슨, 선배 속은 거예요!” 주현이 웃으며 말했다.한결이 떡을 들고 있자, 아심도 떡 하나를 받아 들고 물었다.“얼마야?”“2만 원!” 한결이 답했다.“2만 원?” 주현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선배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진짜 속기 잘하는 사람이구나. 밖에서는 떡 다섯 개에 5천원인데, 2만 원을 썼다고요?”“이건 백가향에서 모아
아심은 산 정상의 바위 위에 서서 시언에게 손짓했다.“저기 좀 봐요.”시언이 다가와 아심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희미하게 중턱에 몇 채의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왜?” 시언이 물었다.“저기 사람 사는 곳인가요?” 아심이 궁금해하며 묻자 시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무도 살지 않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 휴식 공간일 뿐이야.”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아 가보려던 마음을 접었다. 시언은 깊은 눈빛을 드리우며 조용히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오면 데려다줄게. 하지만 별로 볼 건 없어. 그냥 나무집 몇 채야.”아심이 웃었다.“거기 가봤어요?”시언은 바위에 앉아 한 쪽 다리를 구부리며 대답했다.“어렸을 때 몇 달 동안 저기서 지냈지. 근처 산도 다 돌아다녔고.”시언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자 아심은 순간 시언의 부모를 떠올리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어둑어둑해질 때쯤, 일행은 짐을 챙겨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턱쯤 내려왔을 때, 하늘은 이미 캄캄해졌다.깊은 산속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고, 발밑에 놓인 돌길만이 현실감을 주었다. 잎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초승달이 서늘하게 빛나고, 가끔 밤새가 날아다니며 메아리치는 울음소리를 남겼다.에블리는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불안한 눈으로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기 늑대는 없겠죠?”시언은 차분히 대답했다.“늑대는 없어요. 마을 사람들도 자주 올라오지만 늑대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시언의 든든한 말에 일행은 마음이 놓여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다들 밤바람을 맞으며 이런 산속 산책의 독특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주현이 비명을 질렀고, 모두가 주현을 돌아봤다. 가장 가까이 있던 주한결이 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무슨 일이야?”“돌 위에서 발이 미끄러졌어요. 발목을 삔 것 같아요.” 주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은 손전등을 켜서 아심의 발을 비췄다. 겉보기에는 큰 이
강아심은 강시언 맞은편 의자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한 번 바라봤다. 아심은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들고 머리를 살짝 젖혀 술을 한 모금에 들이켰다.시언은 아심이 고개를 젖히며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을 바라보았다. 삼킬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목선이 더욱 선명해졌다.이에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강아심, 넌 그저 약간의 잔재주 말고는 다른 건 할 줄 모르지?”아심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큰 처벌을 피하려고 미리 그를 자극하며 시언의 입을 막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아심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는 술기운에 촉촉해졌고, 붉어진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그런 순진한 표정은 아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며 목소리는 더욱 낮고 묵직해졌다.“네가 매번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 잔재주 때문이 아니야. 그건 내가 네게 관대했기 때문이지, 이해했어?”아심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술기운은 더욱 올라와 눈동자는 한층 더 촉촉해졌다.시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권수영과 양재아가 웃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다시 아심을 보며, 다소 조롱 섞인 어조로 물었다.“네 남자친구 어머니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아심은 입가에 묻은 술 자국을 가볍게 닦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정한 사랑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야죠.”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고, 웃음에서도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진정한 사랑? 겨우 한 잔 마시고 취한 거야?”아심은 그의 말에 되받아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어딘가 찔리는 마음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아심은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은 때로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법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다 미소를 띠며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아심은 놀란 듯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뭘 도와준다는 건데요?”“네가 버틸
강아심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권수영은 아심이 떠나자 안도한 듯 숨을 내쉬며 지승현에게 말했다.“너는 재아 씨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 젊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저는 재아 양과 잘 모르는 사이예요. 특별히 나눌 얘기도 없고요. 엄마 친구분이시니까 엄마가 알아서 모시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재아를 향해 간단히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재아는 표정을 잃지 않았지만,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재아가 승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재아의 마음일 뿐이었지만, 승현이 재아를 무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권수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속으로는 승현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생각했다.‘승현이가 저 모양이라니! 만약 수철이 결혼할 나이가 됐으면 그에게 재아를 소개했을 텐데!’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권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승현이는 원래 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요.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잘 못해요.”“게다가 평소엔 일에 치여서 여자들을 만날 시간도 없거든요.”재아는 냉소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보니까 승현 씨는 아심 씨와 대화는 잘하던데요.”권수영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웃으며 말을 돌렸다.“강아심 씨는 공공 관계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한 거죠.”“하지만 재아 씨는 진짜 명문가의 아가씨에다가 품위 있고 아름다우니 비교가 되겠어요?”권수영의 말에 재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람들은 강아심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하더라고요.”권수영은 속셈이 담긴 태도로 재아의 심리를 읽으며 대답했다.“그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겠어요?”재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다른 주제로 돌렸다.“지아윤은 안 왔나요?”“왔죠.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전화해서 불러볼게요.”권수영은 곧장 대답하며
권수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강아심을 일부러 무시한 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재아 씨, 여기는 내 아들 지승현이예요. 경성대 졸업생이고, 졸업 후 집안 사업을 도와주고 있죠. 지금 우리 집안은 승현이 혼자 다 책임지고 있어요!”권수영은 아들을 한껏 칭찬한 뒤, 다시 승현에게 말했다.“여기는 도재아 양, 국화 대가인 도경수 선생님의 손녀야. 외모도 빼어나지만 재능도 대단하단다!”승현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재아 씨, 반가워요.”재아도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지승현 씨, 반가워요.”사실 재아는 권수영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 세 번이나 전화로 만남을 요청하길래, 받은 선물도 많았고 관계를 틀고 싶지는 않아 마지못해 만나기로 했다.그녀는 권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밭으로 안내받았고, 승현을 보자마자 권수영의 의도를 눈치챘다.승현은 깔끔하고 점잖은 인상이었고, 예전 남자친구인 임예현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언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상당히 컸다.그래서 재아는 자신의 태도를 차분하고 품위 있게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거리감을 두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현에게 말했다.“승현아,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하자. 나는 먼저 가볼게.”“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승현은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으나 강아심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계를 흘낏 보았다. 이미 2분이 지나 있었다.권수영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아니, 이게 누구야? 강아심 씨 아니신가. 이제 공공 관계 사업까지 린 씨 결혼식장에 진출한 건가?”“어머니, 그런 말씀은 삼가세요.”승현이 얼굴을 굳히며 강하게 말렸다.“아심 씨는 연희 씨의 친구이자, 신부 소희 씨와도 친한 사이예요.”이때 재아가 입을 열었다.“아심 씨, 저를 못 알아보겠어요?”재아는 승현이 아심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회사 개업식에서 아심이 어려움을 겪던 중, 승현이 그녀
“승현아.”강아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먼저 뭐라도 먹어봐.”승현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밀어놓으며 말했다.“점심은 아직 못 먹었을 것 같은데.”아심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에 뭔가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지승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오늘 만난 이유는 할머니의 유산 문제 때문이야. 할머니 유언장에 따르면, 돌아가신 지 한 달 뒤에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했어.”“할머니의 뜻에 따라 네가 상속받을 부분을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진심이야.”아심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정 상속에 따라 유산은 승현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승현은 그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유산을 받게 되면 즉시 팔아치우고, 자금을 회수할 게 뻔했다.승현은 그런 방식으로 할머니의 유품이 처분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우려를 솔직히 전했다.“할머니의 유품이 엉뚱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꼭 네가 받아줬으면 해.”아심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유품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하지만 지금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제가 그걸 받는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승현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할머니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어.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날 수도 있으니 절대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그렇게 모든 걸 알고 계시면서도 유품을 당신에게 남기셨잖아. 그러니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파티장 2층.강시언은 프랑스풍의 큰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은 정원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었다.얇은 입술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그의 표정은 연기로 흐릿해졌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
멀리서 도경수와 강아심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구택과 눈이 마주쳤다.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두 손으로 잡은 소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부케를 뒤로 던졌다.햇살이 소희를 온통 감싸고, 드레스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웃음은 그림처럼 찬란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부케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몇몇 사람들은 점프했지만, 손끝과 부케는 20에서 30cm쯤 차이가 나 닿지 않았다. 시원은 부케가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소희의 던지기 실력을 과소평가했다.시원과 백림은 함께 점프했으나 손가락 끝이 꽃잎에 닿았을 뿐 결국 부케를 놓치고 말았다.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부케는 무려 10미터 이상 날아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들고 있는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아심은 꽤 멀리 서 있었고, 부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몰랐는지 놀라 손에 들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도경수는 아심이 손에 든 부케를 보며 뜻밖이라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정말 하늘의 뜻인 것 같아!”아심은 말없이 웃으며 부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희와 군중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심 쪽으로 몰려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희도 멀리서 아심을 향해 웃었지만, 당장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할아버지께 가서 술을 올리자. 그 뒤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서 있는 아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구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뒤 강재석 쪽으로 가서 술을 올렸다. 그곳에는 임씨 집안의 어른들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소희를 아끼며 환대했다.가볍게 술 한 잔을 권한 뒤, 소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소희는 오후 내내 쉴 수 있었고, 연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남궁민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남궁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당신은 나보다 서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심명은 남궁민의 말을 듣고 흘긋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은 그게 좋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남궁민은 반박하며 말했다.“왜 아니죠? 난 서희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거든요.”심명은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심명의 모습은 빛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흐려져 보였다. 남궁민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가며 물었다.“설마 도망치려는 거예요?”심명의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광채를 뿜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치긴 뭘 도망쳐요?”만약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남궁민은 심명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 마시고 취할 때까지 놀아보는 건 어때요?”심명은 남궁민의 손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다.“손 치워요.”그러나 남궁민의 제안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 멀리서 여기까지 온 네 성의를 봐서라도, 서희 대신 내가 너를 잘 챙겨 주도록 하죠.”...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커팅식이 끝나고 결혼식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와이프, 신혼 축하하고 사랑해.”수많은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예식장의 조명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축복과 환희로 가득했다.소희는 구택만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란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욕망도 담겨 있지
“그때,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임구택은 소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분홍빛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눈부신 피부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빛을 받아 반짝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소희도 손에 든 반지를 꺼내 들었고, 구택의 손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은 완벽했고, 마치 차가운 백옥으로 조각한 듯 뚜렷한 관절선에는 부드러운 온기와 견고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조용히 미소 짓고는 물었다.“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왜 나를 다시 데려왔어?”구택은 그녀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왜냐하면 또 하나를 깨달았으니까.”“뭔데?”“내가 주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거야.”소희는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았다. 구택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다.“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없고, 나도 도망칠 수 없어.”“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이 정해져 있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게 될 운명 말이야.”구택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강렬한 키스로 소희의 입술을 덮자, 주변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임유민은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역시 우리 삼촌은 다르지.”요요도 뒤를 보려고 하자, 유민은 손으로 요요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어린아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어른이에요?”그 말에 유민이 당황하며 대답했다.“나, 나는 반쯤 어른이야!”요요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더 궁금해졌다.“그럼 오빠는 머리 쪽이에요, 아니면 발 쪽이에요?”유민은 요요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머리가
예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제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서약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도 함께 느껴 보시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주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임구택 군, 당신은 이 아름다운 소희 양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소희 양의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며,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구택은 깊은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예, 서약합니다. 소희를 평생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충실히 사랑하겠습니다.”주례자는 이번에는 소희를 향해 물었다.“소희 양, 당신은 임구택 님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임구택 군과 함께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고,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소희는 구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약합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구택의 눈에는 감정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는 오직 소희를 위해 존재했다.주례자는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이제 임구택 군과 소희 양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세요!”예식장은 다시 한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모든 하객은 이 감동적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울려 퍼졌다.연희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우청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주례자는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신랑과 신부께서 결혼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를 교환하시겠습니다.”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임유민이 요요를 안고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