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의 눈이 번뜩이며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생각났어. 나 네 목걸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오연서는 이를 기회로 삼아, 마치 대단한 일인 양 물었다. “어디에 있다는 거야? 강솔,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큰 오해가 생겼잖아!”강솔은 차가운 눈빛으로 연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방금 생각난 거야. 너와 김명상이 작은 방에서 30분이나 있었다며? 목걸이는 그곳에 떨어졌을 거야. 거기서 한번 찾아보지 그래?”그 말에 연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이윽고 강솔은 또 한승운을 향해 물었다. “그 방에 CCTV 있죠?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확인하지 마!” 연서가 당황하며 소리쳤다.“왜 확인하지 말라는 거야? 너희가 그 방에서 30분 동안 있었다면서. 목걸이를 거기서 떨어뜨렸을지도 모르잖아?” 강솔은 비웃으며 말하자, 명상은 당황한 나머지 무심코 말했다. “30분은 무슨, 겨우 10여 분밖에 안 있었어!”그말에 승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며, 연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둘이 그 방에서 뭐 한 거야?”연서는 불안하게 고개를 저으며 변명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이에 문희준은 사람을 불러 지시했다. “이 방의 CCTV를 확인해.”방 안에는 CCTV가 없었지만, 작은 방에는 사고 방지를 위해 숨겨진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곧 CCTV 영상이 재생되었고, 소리와 함께 흐릿한 영상이 나오자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강솔은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진석은 강솔의 손을 잡아 품에 끌어안고,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낮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강솔은 진석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원래도 민망했지만 이제는 더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나... 나 화장실에서 들었어.”진석은 몸을 굽혀 다시 강솔에게 물었다. “아까 누가 널 건드렸어? 말해줘.”강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까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지금은 누가 자신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한승운, 오연서, 그리고 여러 명의 보안 요원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오수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강솔 일행에게 증언을 해주겠다고 경찰서에 따라갔다. 강솔은 이윤주와 소울연을 대신해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수재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 아까 너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어.”그러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그들과 한패가 아니었던 것만으로도 고마워.”이에 수재는 점점 더 난처해졌다. “다 동창인데,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어. 처음엔 그냥 오랜만에 다들 만나서 모임 가지자고 했을 뿐이었어.”강솔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괜찮아. 이 일이 끝나면 내가 밥 한번 살게.”“좋아!” 수재는 웃으며 말했다. “너 경성에 당분간 머무는 거지?”“아마도 그럴 거야.”“좋아!”진석은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며 강솔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고 수재에게 말했다. “경찰서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요. 내가 강솔의 남자친구니까, 추후 처리는 제가 할게요.”수재는 진석의 위치를 확실하게 명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자, 상황을 이해하고 실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면 먼저 경찰서로 갈게요.”수재가 떠나자, 강솔은 진석을 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라고 해도 되잖아. 왜 자꾸 남자친구라고 해?”그러자 진석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남자친구가 아니면 왜 내가 너한테 신경 써?”“나, 나도 할 말이 없네.” 강솔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윤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물었다. “괜찮아?”윤주는 벽에 기대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진석이 말했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이에 울연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대문까지 데려갈 테니까 진석 씨는 강솔을 챙겨요. 오늘 일 정말 고마웠어요.”울연과 윤주는 강솔의 오랜 친구였기에, 오래전부터 진석을 알았고 늘 그를 진석 씨라고 불렀다.울연의 말에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차를 준비해서
“강솔 왔구나!”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은 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점점 예뻐지네!”“언니!” 강솔이 웃으며 인사했다. 이 사람들은 진석의 동창들이었고, 강솔도 그들을 알고 있었다. 민명주는 강솔의 팔을 잡고 함께 앉으며 말했다. “진석이랑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들었어. 매일 그 무표정한 얼굴을 봐야 한다니, 정말 안타깝다.”강솔은 얕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어릴 때부터 익숙해졌어요. 명주 언니는 요즘 뭐 하세요?”“작은 회사를 하나 차렸어.” “정말 대단하세요!”“그냥저냥이야.”“강솔아, 날 기억해?” 줄무늬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네자 강솔은 바로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운해 오빠.”다른 사람들도 강솔에게 인사를 건넸고, 대부분은 예전에 만나본 적이 있어 금방 친해졌다. 고운해가 강솔에게 물었다. “강솔아, 디자인으로 여러 상을 받았다며? 이제 디자인계에서 잘나가고 있다면서.”강솔은 겸손하게 웃으며 명주의 어투를 따라 했다. “그냥저냥이요.”그러자 운해는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우리 회사에서 설 지나고 모델 대회를 열 계획인데, 네가 전문가니까 이 의상 디자인이 어떤지 좀 봐줘.”“좋아요!” 강솔은 운해에게 다가가 핸드폰에 있는 의상 사진을 보며 조언을 해줬다. 진석은 그 모습을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운해와는 대학 시절 네 해를 함께 보낸 사이였고, 관계도 좋았다. 게다가 운해는 이미 결혼했고, 아내와도 감정이 매우 깊었다. 명주는 진석의 표정을 살피며 그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가볍게 웃었다. “강솔이 예전에 선배를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결국 어떻게 됐어?”그 말에 진석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작년에 막 헤어졌지.”“그럼 너희는?” 명주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진석을 보며 물었다.“우리는 아직 예전 그대로고.” 진석의 대답에 명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면, 너도 빨리 움직여야지. 기회를 놓치면 어쩌려
민명주는 이러한 상황이 더 이상 놀랍지 않았고, 자신이 물러났음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강솔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진석에게 물었다. “강솔이 너한테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고 정말 확신해?”진석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강솔은 주예형을 좋아할 때는 그의 감정을 매우 신경 쓰고, 자기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석과 함께 있을 때는 그냥 잠옷 차림에 세수도 안 하고 만나러 올 정도로 편하게 생각했다. 이건 분명히 사랑이 아닌 감정이다.명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때로는 두 사람이 너무 오래 함께 있다 보면, 어떤 감정을 무심코 간과하게 돼. 내 생각에 강솔이 그런 것 같아.”진석은 깊은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자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강솔 자신도 잘 모를 수 있어. 이럴 때는 누군가 그녀를 도와 생각을 정리하게 해 줄 필요가 있지.”“응?” 진석은 못 이해한 것 같자 명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예전에 너를 좋아했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번엔 너를 도와줄게. 20년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진석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감정 문제를 어떻게 도와줄 건데?”“내 방법이 있지. 하지만 네가 협조해 줘야 해!” 명주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어떻게 협조해야 해?”명주는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타이핑한 뒤, 진석에게 보냈다. “한번 봐.”진석은 핸드폰을 꺼내 명주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즉시 거절했다. “안 돼!”“진석아, 때로는 여자의 마음은 자극이 있어야 제대로 보이기 마련이야. 내가 널 더 잘 알아!” 명주는 웃으며 말했다. “너 계속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정말 몇 년이고 더 걸릴 거야. 강솔을 더 일찍 품에 안고 싶지 않아? 잘 생각해 봐.”진석은 술을 크게 한 모금 마시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물
민명주의 친구가 선택한 노래는 사랑 때문이라는 노래였다. 명주는 진석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석이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명주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널 사랑했던 기억들이 남아있는 CD 한 장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를 들어봐 때론 내가 널 아직도 사랑한다는 걸 잊어버리기도 해 그 노래를 다시 부르기 힘들어 그저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돌려버리지 하지만 여전히 난 널 사랑하고 있어.”...명주는 이어지는 가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솔은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석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예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심심하면 진석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곤 했었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번처럼 노래를 부르는 데 이렇게 집중한 적은 없었다. 진석의 목소리는 한층 더 매력적이고 깊이 있었으며, 차가운 옆모습에 은은한 따스함이 감돌았다. 그 모습은 마치 저무는 해의 그림자처럼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명주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은은한 슬픔이 담겨 있어 이 노래에 매우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의 듀엣은 완벽했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고운해는 옆에 앉은 김지성에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명주가 아직도 진석을 좋아하는 거 아냐?”강솔은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무심하게 물었다. “명주 언니가 진석을 좋아하나요?”운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명주가 진석을 쫓아다녔던 건 우리 과에서 다 아는 사실이었어. 명주는 열정적인 성격이라 좋아하면 진짜로 열심히 좋아했지.”그러자 지성이 물었다. “그럼 왜 둘이 결국 잘되지 않았어?”운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어쨌든 나중에 명주가 갑자기 포기했지. 그리고 사람들한테는 이제 진석이랑 친구 사이로만 지내겠다고 말했어.”강솔은 속으로 여러
강솔은 물잔에 이가 부딪혀 약간 아팠고, 그걸 내려놓고 미간을 찡그렸다.“그들이야 노래를 부르든 말든, 강솔아, 이거 좀 더 봐줘.” 고운해가 핸드폰을 들고는 말하는데 운해는 확실히 워커 홀릭이었다. 여가 시간에도 일을 놓지 못하는 걸 보면.“아, 네!” 강솔은 약간 신경이 쓰이던 것을 뒤로하고 대답했다.방 안에서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솔은 핸드폰에 있는 모델 의상 사진을 보면서도 주위가 소란스럽게 느껴졌고, 마음도 조급해져서 집중하기 힘들었다.운해도 그걸 눈치채고는 물었다. “무슨 생각 중이야?”“아, 아니에요!” 강솔은 자신이 같은 사진을 5분 동안이나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웃으며 말했다. “이 드레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독특하고, 내년에 유행할 수도 있겠네요.”운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이 옷이 너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네가 내 모델이 되어준다면 반응이 엄청 좋을 거야!”“제가 모델은 무슨, 모델의 기질도 없는데요. 오빠, 농담하지 마세요!”강솔은 웃으며 말했지만 운해는 진지했다.“왜 없겠어? 강솔, 너는 우리가 인정하는 99점짜리 미녀고, 진석 눈에는 100점짜리 미녀라고.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어!”강솔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나를 100점으로 평가했다고요? 그게 누가 한 말이에요? 진석은 늘 나를 싫어한다고만 했었는데!”운해는 웃으며 말했다. “진석이 직접 우리한테 말한 거야! 옛날에 우리가 여자 얘기를 하면서, 진석한테 네 마음속에 100점짜리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거든.”“그랬더니 진석이 뭐라 했는 줄 알아?”운해는 잠시 생각하며 회상하듯 말했다. “그때 우리가 같이 앉아 얘기하고 있었는데, 여자 얘기가 나와서 우리가 진석한테 네가 생각하는 100점짜리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지. 그런데 그때 뭐라고 했더라?”운해가 김지성에게 질문하자 지성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맞아!” 강솔은 소울연과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도착하면 연락 달라고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강솔은 바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중간쯤 걸어가다, 강솔은 앞쪽 베란다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진석과 민명주가 난간 앞에 서서 가까이 다가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리가 멀고,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강솔은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한 강솔은 곧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둑한 조명 아래 서 있던 모습이 강솔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떠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강솔은 다시 고운해와 함께 모델 사진을 보았지만, 자꾸만 무심코 방의 문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여 분 정도 지나, 진석이 명주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강솔은 운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진석의 차가운 얼굴이 은은한 조명 아래 더욱 차분해 보였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기회가 되면 또 모이는 거로 하고.”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운해는 강솔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웃었다. “오늘 고마웠어, 강솔.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 강솔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가지고 고마워해요!”밖으로 나가려던 강솔은 무심코 자신의 외투를 깜빡 잊어버리고 놔두고 있었다. 진석이 자연스럽게 강솔의 외투를 챙기려 했지만, 명주가 살짝 그를 막으며 말했다. “오빠, 나 투자할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같이 리스크 분석 좀 봐줄 수 있을까?” 진석은 명주의 의도를 알아채고 잠시 멈칫하며, 투자 이야기를 나누며 명주와 함께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면서 그는 은연중에 강솔을 힐끗 보았다. 강솔은 운해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자신의 외투를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진석은 강솔에게
진석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민명주의 말대로 바삭한 슈크림을 사지 않고 두리안 페이스트리만 샀다. 돌아온 후, 그는 종이봉투를 명주에게 건네며 말했다. “바람이 차니 집에 가서 먹어.” 명주와 함께 있던 여자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석 오빠, 너무 치우치시는 거 아니에요? 명주 언니 것만 사다 주시고, 저랑 강솔이는 완전히 잊어버리신 거예요?” 강솔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진석을 바라보았고, 진석도 강솔을 보고 있었다. 이에 강솔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 “저 배 안 고파요. 마침 요 며칠 동안 엄마가 살쪘다고 잔소리하셔서,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했어요.” 운해는 웃으며 말했다. “넌 전혀 안 쪘어. 아마도 어머니께서 집밥이 맛있어서 더 많이 먹게 되었다고 생각하셨나 보네.” 사람들은 몇 마디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대리 기사들이 차를 가져왔다. 명주는 진석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집에 가서 카톡 해.” 진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강솔은 순간 약간 놀랐다. 그녀는 진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여자와 별다른 이유 없이 카톡을 주고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날 저녁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진 걸까? 강솔은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진석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진석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고,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강솔은 갑자기 무슨 말을 하고 싶어져서 물었다. “한승운과 오연서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진석은 손으로 미간을 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이미 연락해 놓았어. 죗값을 다 합하면 몇 년은 그 안에서 지내게 될 거야.” 강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오수재가 나한테 주예형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줬어.” 진석은 미간을 무의식적으로 찡그리며 강솔을 보았다. 진석의 눈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뭐라고 했는데?” 강솔은 진석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 “그때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말해줬어.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