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술병이 깨지며 와인은 운박의 머리를 따라 쏟아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마호가니 책상에 기대어 앉았다. 그의 얼굴은 피와 와인이 뒤섞이며 보기만 해도 무척 끔찍했다.구택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싸늘한 한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운박 앞에서 반쯤 쪼그리고 앉으며 그의 손에는 깨진 술병을 들고 있었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운박의 목에 닿았다. 그의 말투는 낮고 차가웠다."다시 한번 소희 씨를 이용할 생각을 하면 나는 당신을 물고기 먹이로 호수에 던질 거예요. 똑똑히 들었어요?"깨진 술병은 무척 날카로웠다. 운박의 얼굴에는 피와 와인이 가득했다. 그는 두려워하며 구택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구택은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던지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하찮고 냉혹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떠났다.운박은 그제야 감히 소리를 냈다."여봐라, 여봐라!"그는 두 번 소리쳤는데 누군가가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눈앞이 어두워지며 바로 기절했다.구택은 자기가 사는 별장으로 돌아와 하인에게 소희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하인은 즉시 말했다. "아가씨는 위층에 계시며 줄곧 외출하지 않으셨습니다."구택은 담담하게 응답하고는 발을 들어 위층으로 걸어갔다. 그는 침실로 들어갔지만 소희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몸을 돌려 옷방과 욕실로 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즉시 나가서 차갑게 그를 따라온 하인에게 물었다."소희 씨는?"하인도 멍해졌다. "아가씨는 줄곧 위층에 계셨습니다."구택은 안색이 보기 흉해지며 그들더러 사람을 찾으라고 명령하려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몸을 돌려 다시 침실로 돌아가 베란다로 걸어갔다.벤치에서 소희는 몸을 웅크린 채 잠을 푹 자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이 카펫 위에 떨어진 줄도 몰랐다.구택의 팽팽한 안색은 단번에 완화해지며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마음속으로는
소희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도운박 씨 만나러 갔다 하지 않았어요?"구택은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고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농담이에요. 그가 실수로 와인을 쏟아서 좀 묻은 거뿐이에요."그는 돌아와서 먼저 샤워하려고 했는데 소희를 보지 못하는 바람에 다급해지며 샤워하는 것을 잊어버렸다.소희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그의 가슴에 기대어 누웠다. "무슨 급한 일이에요?""아무것도 아니에요!"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햇빛이 점점 뜨거워지자 구택은 커튼을 반쯤 당겼고 빛은 인차 부드럽고 따뜻해졌다.소희는 지금이 이번 여름 햇빛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느꼈다.......오후에 힐드는 운박이 다쳤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부인을 데리고 함께 그를 보러 갔다.운박은 머리에 흰색 거즈를 두르고 안색이 하얘진 채 담담하게 웃었다."괜찮아요,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좀 다쳤어요. 모두들 걱정하게 했네요."머크 부인은 걱정을 하며 말했다."의사 불렀어요?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운박이 대답했다."의사는 이미 왔어요. 큰 문제는 없고 며칠만 쉬면 된다고 했어요."힐드는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푹 쉬어요. 비즈니스는 아직 급하지 않으니까요.""미안해요!" 운박은 미안한 듯 웃었다.머크 부인은 은설의 손을 잡고 말했다."도 대표님 잘 챙겨줘요."은설은 가볍게 웃었다."그럴게요."힐드 부부가 떠난 뒤 운박은 안색이 가라앉았고 출혈이 너무 심해서 안색은 유난히 보기 흉했다.은설은 침대 옆에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물 좀 마실래?"운박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요 며칠 외출할 수 없으니까 당신이 머크 부인하고 얘기 좀 많이 나눠. 그리고 나 대신 임구택 좀 감시해."은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임 대표가 때린 거야?"운박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마!"은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그럼요!" 머크 부인은 사진첩을 책상 위에 놓고 은설에게 사진 속의 사람을 소개했다.그중 한 사진에는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정자에 앉아 뒤돌아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부드럽고 차가운 기질은 머크 부인과 비슷했다."이분은……" 은설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외할머니예요!" 머크 부인은 목소리가 가벼워지며 눈빛도 한껏 부드러워졌다."미인이시네요!"은설이 칭찬했다.머크 부인은 그리워하며 말했다."우리 외할머니는 재벌 집 딸이었어요. 재능도 있고 또 무척 부드러운 여자였어요.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자랐고, 나중에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출국했죠. 다시 귀국할 때 외할머니는 이미 중병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어요."은설은 그녀의 말투 속의 암울함을 듣고 머크 부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었다."부인의 외할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든 하늘에 계시든 모두 좋은 대접을 받으실 거예요."머크 부인은 웃었다."고마워요."사진첩을 뒤져보니 모두 오래된 사진들이었고 집과 정원의 사진도 있었다. 은설은 웃으며 물었다."이것은 부인이 전에 살던 집인가요?"머크 부인은 눈에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맞아요, 어렸을 때 외가에 살았거든요. 외가에는 큰 정원이 있었어요."은설은 동작은 멈추며 많은 경문과 두루미가 조각된 옥고리 한 쌍을 가리키며 물었다."정말 아름다운 옥고리네요."머크 부인은 손가락으로 사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이것도 고대의 옥이었어요. 우리 외할머니의 혼수품이었고요. 아쉽게도 후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잃어버렸어요. 이 일 때문에 외할머니도 줄곧 가슴을 앓았고요."은설은 머리를 구르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운성의 문화재국에 내 동창이 있는데 그녀한테 부탁해서 찾아볼 수 있을 거 같아요."머크 부인은 눈빛이 밝아지며 다소 감격스러워하며 말했다."정말 찾을 수 있을까요? 찾을 수 있다면 누구의 손에 있든 얼마를 쓰든 간에 나는 사 올 거예요!"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한 번 해볼게요!"
은설은 틀림없이 최선을 다해 옥고리를 찾아 운박이 힐드의 믿음과 호감을 얻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녀도 구택을 도와주고 싶었다.그녀는 오후가 되어서야 운박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계단에서 굴러내려 머리를 부딪혔다고 한다.오전에 구택이 운박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온 후 셔츠에 묻은 와인 자국을 생각하며 그녀는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구택과 운박은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것일까?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더욱 구택을 도와 힐드와 합작할 기회를 쟁취해야 했다.날이 곧 어두워질 때 구택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운성 시내에 가서 처리할 일 있어 좀 늦게 돌아갈 테니 그녀더러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소희는 답장해 준 뒤 혼자 밥을 먹고는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었다.그녀는 줄곧 옥고리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도무지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그녀는 잠시 뒤 유민과 찬호의 게임 요청에 그들과 게임을 했다. 그녀는 게임에 접속하며 팀에 가입했다.게임을 할 때 유민은 내일 축구 경기 보러 간다고 하면서 소희에게 갈 거냐고 물었다.소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나 지금 운성에 있어서 못 가."유민은 놀라며 말했다."운성? 우리 둘째 삼촌도 운성에 갔는데."소희는 화들짝 놀라며 적을 저격한 뒤 침착하게 말했다."그래? 난 우리 할아버지 보러 왔어."유민은 가볍게 응답한 뒤 곧 게임에 빠져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10시에 소희는 두 사람을 재우고 자신도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카카오톡에서 찬호가 문자를 보냈다."소희 누나, 예전에 누나 키우던 할아버지 보러 갔어요? 며칠 전, 우리 선생님은 노인을 관심하는 활동을 조직했는데 나는 세뱃돈으로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노인들에게 옷과 음식을 사줬어요. 지금 집에 아직 많이 남아서 나한테 주소 보내면 내가 누나 할아버지한테 보낼게요."소희가 금방 소 씨네 집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부모님한테서 소희가 운성의
구택은 고개를 들어 흠칫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요?"소희는 내려오면서 부드럽게 말했다."그들은 머크 부인을 도와 옥고리 한 쌍을 찾고 있어요. 이 옥고리는 머크 부인에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만약 찾는다면 힐드의 신임과 고마움을 받을 수 있으니 도운박 씨는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명우의 말에서 소희는 자신의 추측이 옳다고 느꼈다. 운박은 확실히 구택을 따돌리고 단독으로 힐드와 합작하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구택을 속이고 몰래 사람을 파견하여 옥고리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두 사람의 합작은 한쪽에 다른 마음이 생겼으니 반드시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다만 그는 어제 오후 은설이 떠난 뒤 머크 부인은 그녀에게도 옥고리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몰랐다.구택은 인차 깨달으며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랬군요."명우가 물었다."아가씨는 그들이 찾는 옥고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네, 알아요!" 소희는 눈빛이 깨끗하고 맑았다. "그리고 머크 부인도 나한테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옥고리는 그녀의 할아버지한테 있었다. 그녀는 5살 때 할아버지에 의해 강 씨네 집안으로 입양됐고 그때의 그녀는 약간의 자폐증이 있었다. 그녀는 매일 주위의 모든 사람을 믿지 않았고 매일 구석에 숨어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할아버지와 오빠는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사람들로 하여금 창고에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 그녀더러 장난감으로 삼게 했다. 그녀는 그때 꽃을 조각한 마호가니 함에서 경문과 두루미를 조각한 그 옥고리를 보았다.명우가 물었다."어디에 있죠? 우리 지금 가면 됩니까?"소희는 잠시 생각했다."옥고리를 찾으러 갈 수 있지만, 요구가 하나 있어요.""뭐죠?" 구택이 고개를 들었다.소희가 말했다."나 혼자 가야 해요, 혼자요."구택은 가볍게 웃었다."왜요?"소희는 그의 눈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유가 없어요."물론 그를 할아버지와 만나게 해서는 안 됐고 더욱이는 그더러 자신과 강 씨네 집안의 관계를
강 씨 집안의 조상들은 옛날에 고관대작으로 일했고, 운성 일대에서 유명한 호족이었다고 한다. 전쟁 시기에 강 씨 가족은 민간 반격전을 조직하기도 했다. 금방 나라가 세워진 어려운 시기, 강 씨네 가족은 또 대부분 가산을 상납하고 운성 내에 수십 개의 거처를 설치하여 운성의 거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그 후 강 씨네 가족은 골동품과 마호가니 장사로 운성의 갑부로 되였으며 운성에서의 명망이 아주 높았다.그러나 강 씨네 집안 근 몇 세대에 이르러 사람은 점차 줄어갔다. 전 가주 강순오는 강호서라는 아들 하나밖에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강호서는 40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조난당한 나머지 강 씨네 집안은 10살도 안되는 손자 하나만 남았다.할아버지와 손자 두 사람은 10여 년간 강 씨네 집안을 지켜왔다. 애석하게도 강 씨네 집안의 이 손자는 장사를 좋아하지 않고 줄곧 외국을 떠돌아다녔으며 집에는 오직 강 씨네 어르신 혼자만이 이렇게 큰 가업을 지탱하고 있었다.요 몇 년 동안 강순오도 강가의 장사를 점차 줄이며 수양을 쌓으며 심거간출하기 시작했다.듣자니 강 씨 어르신은 성격이 매우 이상해서 그가 좋아하는 물건은 단지 평범한 기와조각이라도 큰돈을 들여 사서 자기 집 벽 위에 놓고 매일 벽 아래에 앉아 감상해야 했다. 만약 그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수천만 수십억의 골동품도 닥치는 대로 하인에게 던져주며 뒤뜰로 가져가 닭에게 먹이를 주는 대야로 삼게 했다.그러므로 소희는 만약 명우가 강순오한테 이 옥고리를 사러 간다면 틀림없이 거절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강 씨네 집안의 물건은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구택은 담담하게 소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희 씨는 왜 혼자 가려는 거죠?"소희는 머리를 굴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는, 내가 거기에 가서 강 씨 어르신한테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내가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을 보고 옥고리를 나한테 팔지 않을까요?"구택은 비웃었다."소희 씨 듣기 좋은 말도 할
노인은 세 사람을 데리고 복도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는데 명우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이 정원은 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값졌다. 예를 들면 이 복도에 쓰인 모든 나무는 모두 황금보다 더 값진 자단목이었다.일반 집안에 자단목으로 만든 탁자가 하나 있으면 몇 세대의 가보였다. 그러나 강가는 자단목으로 전 복도와 기품 있는 현관 기둥, 연꽃이 조각된 나무 난간을 만들었다. 이는 일부러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강 씨 가족의 대대로 내려온 부유함을 보여주고 있었다.현관 밖에 도착하자 노인은 구택 등 사람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스스로 방에 가서 어르신께 아뢰었다.그는 재빨리 나와서 웃으며 말했다."어르신께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감사합니다!" 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희를 데리고 현관으로 들어갔다.거실 내에도 고색창연한 배치였다. 삼면은 나문으로 만든 창문이라 들어가면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없었고 투명하며 밝고 깨끗해 보였다.방 안에는 옆문이 하나 있는데, 옆문 밖에는 연못이 있었고 어르신은 거기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때 낚싯대를 내려놓고 들어와서 먼저 소희를 본 다음에야 구택을 바라보았는데, 목소리는 무척 우렁찼다."임구택이라고 했나?"구택은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이렇게 불쑥 찾아온 것에 대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명우는 차를 탁자 위에 놓고 소리 없이 물러났다.어르신도 몸에 회색 천 옷을 입고 있었고 몸은 수척하지만 정신이 늠름하며 허허 웃으며 소희를 보고 물었다."이분은?"구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제 친구입니다. 저와 함께 어르신을 방문하러 왔고요.""친구?" 어르신은 소희를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예리한 두 눈은 모든 것을 꿰뚫은 듯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앉게."구택이 소희를 데리고 자리에 앉자 하인이 들어와서 차를 가져다주었다. 구택에게 준 차는 녹차였고 소희에게 준 차는 홍차였다."두 분 무슨 일인가?" 어르신은 차 한 모금 마시며 담담하게 물었다.구택도 돌려서 말하
소희는 원래 차를 마시고 있었고 매우 기뻤다. 집사 할아버지는 그녀가 단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홍차에 우유맛 사탕을 넣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어르신의 말을 듣자 그녀는 하마터면 차를 내뿜을 뻔했는데, 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몰래 기침만 했다.구택은 흠칫 놀라다 눈빛은 재빨리 담담해졌다."어르신 지금 무슨 뜻이죠?"어르신은 계속 부채를 흔들며 담담하게 말했다."오해하지 마라. 오늘 저녁에 정원에 있는 우담화 하나가 꽃을 피울 것이네. 나는 나를 도와 우담화가 필 때의 화분을 수집해야 할 사람을 찾는 거뿐이네. 15분마다 한 번씩 수집해야 하니까 여기서 하룻밤 보낼 사람이 필요한 거야. 나는 이 여자애가 나를 도와주기를 원하네. 만약 자네가 동의한다면 내일 아침 사람을 데리올 때 그 옥고리도 같이 가져가게. 나는 한 푼도 받지 않을 것이네."구택의 눈동자는 맑고 차가워졌다."이 요구는 아마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옥고리는 어르신의 마음대로 가격을 말할 수 있습니다."어르신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상의할 여지가 없어. 이 여자애더러 남아서 나를 도우며 하룻밤을 지내게 하든지, 아니면 당장 여기에서 떠나든지!"구택은 얼굴이 차가운 채 소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그럼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이 끝나자 그는 소희를 데리고 몸을 돌려 나갔다.소희는 고개를 돌려 어르신을 노려보았다. 이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전에 그녀는 이미 그에게 문자를 보내서 그더러 그녀를 모르는 척하라고 했고, 구택을 난처하게 하지 말고 마음대로 가격을 하나 말해서 옥고리를 팔라고 했다.어르신은 소희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소희는 구택에게 끌려 문을 나섰다. 복도에서 명우는 즉시 걸어왔다."어르신께서 동의하셨습니까?"구택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아니, 돌아가자!"소희는 오히려 구택을 잡아당겼다."이렇게 간다고요? 힐드는 그의 아내를 매우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
진구는 고개를 돌려 방연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가 나더러 너 데리러 오라고 하셨어.”연하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투덜거렸다.“엄마한테 곧 간다고 말했는데, 왜 또 오빠까지 부른 거야?”“너 데리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진구의 말투는 점점 더 다정해졌고, 하현욱은 재빨리 말했다.“연하 씨, 남자친구가 왔으니 얼른 들어가요!”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한에게 말했다.“다음에 꼭 사장님 노래 들을게요. 전 먼저 갈게요.”구석한도 더는 말할 수 없어, 체면상 걱정스러운 말만 건넸다.“조심히 들어가요.”연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진구를 바라봤다.“가자, 집에 가자.”진구는 연하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연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대듯 기대고는 완전히 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근데 선배 어떻게 거기 있었어요?”진구는 말했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어. 몇 명이랑 실랑이 중인 거 같아서 혹시 곤란한 일 생긴 건가 싶더라고.”연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안 그랬으면 오늘은 진짜 피 토했을지도 몰라요.”진구는 그제야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무슨 일 있어?”연하는 그를 친구처럼 여겼기에 거리낌 없이 말했다.“생리 중인데, 배가 너무 아파서요.”진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병원 갈래?”“괜찮아요!”방연하는 씩 웃었다.“딱 봐도 여자친구 없어 보여요. 이거 매달 하는 되게 평범한 거예요.”“아...”진구는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그렇게 아픈데도 술 마시러 나갔어?”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쩔 수 없잖아요.”“그러면 잠깐 눈 좀 붙여. 집까지 데려다줄게.”진구가 말에, 연하는 감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선배, 진짜 고마워요.”“고맙긴.”연하는 정말 배가 아파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눈을 감았다.진구는 연하가 어깨를 감싸 쥐고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며, 평소의 활달한 모습과
은정은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내려놓았다.“이거 먼저 마셔. 곧 밥이 다 돼.”그 말을 남기고, 곧장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유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고, 이내 푸르스름해졌다.‘이게 어떻게 친구 사이야?’‘예전엔 왜 몰랐을까, 이 남자 이렇게 능숙하고, 설레게 하는 타입이었나? 하.’역시, 유진은 은정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었다. 은정은 지난번 남겨 냉동해 두었던 생선을 꺼내 생선찜을 만들었다.맛은 나쁘지 않았고 달걀 몇 개를 볶고, 간단한 국도 하나 끓였다. 유진은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이 익숙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건지, 자리에 앉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은정은 생선살을 발라 접시에 담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유진은 한 손으로는 자신이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애옹이에게 먹이를 주었다.계란볶음은 아주 평범한 요리였지만, 유진은 파티장에서 먹던 최고급 참치초밥보다도 더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졌다.은정은 말없이 생선 살을 모두 유진의 앞 접시에 덜어주고, 조용히 유진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며 업무 관련 메시지 몇 개를 간단히 회신했다.유진이 물었다.“왜 안 먹어요?”이에 은정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파티 가기 전에 먹었거든.”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야근해서, 진구와 함께 바로 파티장으로 갔었다. 원래는 파티가 끝나면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었다. 유진은 이내 그 생각이 나 휴대폰을 꺼내 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요.]진구는 이미 파티장을 떠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유진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괜찮아.]폰을 내려놓은 진구는, 갑자기 집에 가고 싶지도 않고,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봐도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 만한 사람도 딱히 없었다.대학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모인 지도 오래됐다. 회사에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선, 누군가와 진심을 나누는 것도 어렵다.유진이 그나마
“그날 밤 이후로, 계속 잠을 못 잤어.”“나, 좀 수척해 보이지 않아?”유진이 잠깐 멈칫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 거지?’유진은 순간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남자의 말이 괜히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은정은 반쯤 눈을 뜬 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유진은 은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지었다.“친구가 되니까 마음이 놓였다고요? 그럼 우린 원래 친구였잖아요. 왜 그렇게 돌아서 가려고 했는데요?”어두운 조명 아래, 은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더욱 짙고 어두워져 먹물처럼 깊었고, 저음의 목소리는 자석처럼 끌리는 울림이 있었다.“왜 그런 것 같아?”유진은 은정의 눈 속에서 깊은 바다 같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괜히 빠져들 것만 같아서, 아예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투덜거렸다.“그럴 만하니까 그렇죠.”은정은 다시 눈을 감으며,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내가 그럴 만하지.”원래 하늘이 은정에게는 치트키를 줬다. 왕으로 곧장 올라설 수 있었던 삶을, 굳이 밑바닥 계급부터 정글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던 그였다.27층으로 돌아왔을 때, 유진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이제는 좀 놔줘도 되지 않아요?”그러나 은정은 손을 놓지 않았다.“애옹이 보고 싶지 않아?”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내가 야식 만들어줄게. 넌 애옹이랑 잠깐 놀고 있어.”은정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리고 유진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자, 그는 그녀가 동의한 것으로 알고 그대로 유진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집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문득 말했다.“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요.”그 말에 그제야 구은정이 손을 놓았다.“얼른 다녀와.”“네.”유진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답하고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은정은 문을 닫지도 않고 열어둔 채, 달려오는 애옹이를 받
은정은 유진을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이제 좀 진지한 얘기를 하자.”“진지한 얘기?”유진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구은정을 도와 서성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기에,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은정의 짙은 눈동자는 깊었다.“친구로 지낼 건지, 아니면 내가 널 계속 쫓아다닐 건지. 결정했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듯 말했다.“그게 지금 진지한 얘기예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유진의 가슴 한쪽이 찌릿하며 저렸다. 분노도 사라지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잘 모르겠어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이미 고백도 받고, 키스도 했는데, 어떻게 친구로 돌아가라는 걸까?’“결정 못 했으면, 그럼 나는 계속 널 쫓아다닐게.”은정의 목소리는 장난기 섞인 당당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고, 유진의 입술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그리고 유진은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났고, 등이 소파에 닿을 만큼 밀려나며 외쳤다.“친구 할게요!”은정의 얇은 입술은 유진의 입술 코앞에서 멈췄다. 단 몇 센티미터만 더 가면 닿을 거리였다.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숨을 참은 채 눈을 내리깔고 은정의 어깨를 밀었다.은정은 결국 몸을 물러섰다. 이 이상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 이 정도면 충분했다.은정은 유진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좋아. 친구 하자. 하지만 조건 있어. 예전처럼 나 피하지 않기!”유진은 속눈썹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고, 은정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우리 이제 집에 가자.”유진은 급히 말했다.“아직 난 못 가요.”말이 끝나기도 전,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는 여진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통화를 받았다.“선배!”진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유진아, 어디야? 파티장 안에 네가 안 보여서.]유진은 자기를 바라보는 은정의 눈빛이 너무나 뜨겁다는 걸 느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