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 부인은 무척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래요?"은설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보러 가요!"머크 부인은 고개를 돌려 힐드에게 말한 후 무척 기뻐해하며 은설과 자리를 떠났다.두 사람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빨간 탱크톱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손에 차를 들고 다가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 대표님, 미스터 머크!"운박은 즉시 일어나 힐드에게 소개했다."김여울 씨라고요, 방금 뮤지컬의 여주인공이 바로 그녀예요."힐드의 눈에는 놀라움이 드러났다."미스 김, 아주 훌륭해요!"여울은 부드럽게 웃었다."미스터 머크의 앞에서 뮤지컬을 공연하다니, 정말 제 영광인걸요."그녀는 힐드의 옆에 앉았다."미스터 머크는 또 어떤 뮤지컬을 보고 싶나요? 제가 여기서 간단하게 불러줄 수도 있는데요."운박은 웃으며 말했다."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여울 씨가 나 대신해서 미스터 머크 잘 챙겨주고."여울은 부드럽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미스터 머크는 저의 귀한 손님이니까 도 대표님께서 안심하세요."운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힐드와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나갔다.어둡고 밀폐된 극장 안에는 힐드와 여울 두 사람만 남았다.대략 10여 분이 지난 후 운박은 바깥의 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여울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눈살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여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뮤지컬 노래를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여기에 온 이유는 단지 그의 부인을 위해서라고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눈짓해도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도 대표님, 이번엔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운박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팔을 내밀어 여울의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괜찮아, 어차피 나도 네가 그 독일놈과 함께 있는 게 너무 아까웠어."여울은 애교를 부리며 운박을 살짝 밀었다."도 대표님은 말을 참 달콤하게 해요."운박은 웃으며 말했다."너 먼저 가, 나중에
다음 날 아침, 소희가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밝았고 태양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구택은 침대 옆에 앉아 햇빛을 등지고 잘생긴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일어날래요?"소희는 다가와 그의 다리에 기대며 꼼짝도 하지 않으려 했다.구택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길쭉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릿결을 다듬어 주었다. "요 이틀 동안 뭐 놀았어요?"소희는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그에게 이틀 동안 어디에 가서 놀았는지 보고했다. 그녀도 이미 숲속의 성에 가 보았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다.4살 전, 그녀의 가장 따뜻한 추억은 이웃집 언니가 낡은 동화책 한 권을 들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었다. 백설공주, 완두콩 공주, 재스민 공주...... 그녀들은 모두 성에서 살았고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성에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어린 시절을 되찾은 것 같았고, 기억 속 깊은 곳의 따뜻함을 되찾았다.구택이 물었다."스케이트장에 가 봤어요?""스케이트장이요?" 소희는 그의 다리에서 고개를 들어 눈을 반짝였다.한 시간 후 소희와 구택은 스케이트장 안에 서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옷을 갈아입었고 구택은 소희에게 프로텍터를 입혀주고 있었다."신발은 발에 맞아요?" 구택은 반쯤 쪼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무릎 프로텍터를 입혀주며 부드럽게 물었다."네." 소희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 안 바빠요? 미스터 힐드 만나러 가지 않아도 돼요?""며칠 동안 바빴으니 좀 쉬어야죠. 저녁에 연회가 있으니까 그때 우리 같이 가요."구택은 일어서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 따라와요, 긴장하지 말고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을 잡은 사람이 구택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항상 그녀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가져다줬다.안정감은 그녀에게 있어 낯설고 또 이상한 느낌이었다.이렇게 큰 스케이트장에는 그들 두 사람밖에 없었다. 소희는 원래 몸이 날렵하여 구택을 따라 두 바퀴 돌자 그중의 요령을 터득하고 그의 손을 뿌리
은설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두 배가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 소희는 그녀가 새로운 루비 목걸이를 한 것을 보았다.식사 후 소희와 구택은 돌아가서 잠시 낮잠을 잤다. 오후에 두 사람은 호숫가에 가서 낚시를 했다. 해가 거의 져갈 때 하인이 와서 구택에게 연회를 어디에 차리냐고 물었다.저녁에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식사를 했다. 긴 테이블에는 새하얀 식탁보, 은색 등대, 아름다운 금변 도자기 그릇, 정교한 요리가 있었고 따사로운 밤바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몹시 유쾌하게 했다.해가 지자 주위의 등불이 조금씩 켜졌고, 멀리서 나는 불고기 향기와 마지막 노을은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람들은 이미 서로 익숙해져서 어색하지 않았고 분위기도 무척 즐거웠다.은설은 구택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소희에게 아이스 주스 한잔 건네주었고 소희는 한 모금 마신 뒤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은설을 바라보았다.힐드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구택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몸을 살짝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이스 주스 마실래요?"소희는 멈칫하다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아니에요!""그래요?" 구택은 가볍게 웃었다."오늘은 소희 씨가 좀 편하게 즐겼으면 했는데, 싫으면 내가 가져갈게요."말을 마치고 그는 손을 뻗어 소희 앞에 있는 주스를 가져갔다."......"맞은편 은설은 입을 가리고 어여쁘게 웃으며 눈빛에는 부러움도 있었다.이 남자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계속 소희를 지켜보며 챙겨주고 있었다.구택은 하인더러 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복숭아 요구르트를 가져와 컵에 따르게 했다."음식 좀 먹고 마셔요. 찬 거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요."소희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만 없었으면 그녀는 그에게 키스까지 하고 싶었다.(흠, 저녁에 돌아가서 해줘도 마찬가지야.)운박은 사람 시켜서 운성의 한 오래된 가게에 가서 그들이 직접 만든 매실주를 사 오라고 했다. 머크 부인은 한 입 맛보고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
은설은 또 주사위 하나와 책 한 권을 꺼냈다."주사위를 던져서 던진 포인트에 따라 책에 상응하는 벌칙대로 벌받는 거예요, 어때요?"머크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재밌네요."소희도 당연히 의견이 없었다.하인은 곧 은설의 말에 따라 "시민, 경찰, 도둑"이라고 쓴 쪽지 3개를 준비했고, 세 사람은 선후로 손을 뻗어 제비를 뽑았다.소희는 마지막에 뽑았고 그녀의 쪽지는 “시민”이었다. 즉, 그녀는 어떻게 해도 벌칙을 받지 않을 것이고 차분하게 다른 사람이 알아맞히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머크 부인은 "경찰"을 뽑았다. 그녀는 소희와 은설을 바라보며 그들 두 사람의 표정에서 누가 "도둑"인지 분별하려고 했다.소희는 태연했고 은설은 위장을 잘했다. 그녀는 심지어 구경하는 척하며 소희에게 눈짓을 했다.그러나 바로 이 동작이 머크 부인으로 하여금 그녀가 “도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은설은 쪽지를 꺼내며 믿기지 않은 듯 말했다."내가 들통날 리가 없는데요? 머크 부인은 어떻게 알아맞혔죠?"머크 부인은 환하게 웃었다."제발이 저린 사람만이 자꾸 딴짓을 하기 좋아하거든요. 나는 마침 은설 씨가 딴짓하는 것을 봤고요.""부인님 너무 대단한걸요. 나도 벌칙 받을게요!"은설은 주사위를 들고 힘껏 던졌다.그녀가 던진 숫자는 1, 3, 6이었고 합치면 10 이었다. 그 벌칙이 적혀진 책에서 10에 대응하는 벌칙은 "여기 있는 남자와 각각 1분씩 포옹한다"였다.벌칙을 받지 않으면 술을 세 잔 마시거나 노래 한 곡을 불러야 했다.은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운박과 힐드를 포옹하는 것은 모두 문제가 없다고 느꼈지만 구택의 낯선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카리스마는 정말 그녀로 하여금 감히 그에게 이런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게 했다. 아마 그녀가 막 입을 열 때 그는 그녀를 던져버릴 것이다.그녀는 감히 벌칙을 받지 못하고 결국 노래를 불렀다.그녀는 한 소절만 불렀는데, 아주 듣기 좋았고, 머크 부인은 그녀를 위해 가볍게 박수를 쳤다.그리고 세 사
구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했어요?"소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그의 귓가에 대고 부드럽게 말했다."안아줘요, 그리고 키스도 해줘요. 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반쯤 취해 있었다. 은은한 매실주 향기가 그의 얼굴을 스치며 구택은 순간 심장이 멎은 것만 같았다. 그는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의 영광이죠!"주위에는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소희는 쑥스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그가 가벼운 키스만 할 줄 알았지만 구택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들 단둘이 있는 것처럼 짙은 키스를 해주었다.소희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팔을 꽉 잡고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를 밀치고 고개를 숙이고 예의 있게 말했다."고마워요."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서 일어나 세 사람이 게임을 하는 곳으로 돌아갔다.그녀는 태연자약하고 침착한 척했지만, 오직 그녀 자신만이 지금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귀밑까지 뜨거워졌다.은설은 부러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로맨틱하네요. 나도 이 벌칙 받았으면 좋겠는걸요."머크 부인은 상냥하게 소희에게 주스 한 잔을 따른 뒤 고개를 돌려 은설에게 웃으며 말했다."우리도 가능한 한 은설 씨를 만족시킬게요!""좋아요, 모두들 나 좀 도와줘요!" 은설은 시원하게 웃었다.따뜻한 밤바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세 사람은 유쾌하게 게임을 했다. 소희는 술에 취하며 점차 테이블 위에 기대며 은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하며 완전 노래 부르기에 적합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은 여자가 봐도 설렜다.뒤에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자 남자는 몸을 숙여 그녀를 안고 머크 부인과 은설에게 말했다."미안해요, 소희 씨가 많이 취한 것 같네요. 내가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서 좀 쉴게요.""임 대표님 마음대로 해요. 사양하지 말고요!"머크 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도
잔디밭의 연회에서. 소희가 떠난 후 은설은 머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머크 부인도 점점 술에 취했다.힐드는 다가와 머크 부인을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부인도 이렇게 술을 마시며 취한 지 꽤 오래됐어요. 오늘 그녀는 틀림없이 매우 즐거웠을 거예요."은설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여전히 방긋 웃었다."오늘 모두 즐거웠네요."힐드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운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인을 데리고 돌아가서 쉴게요. 내일 다시 보죠."운박은 웃으며 말했다."부인님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은설과 같이 부인님을 바래다 주죠."말이 끝나자 그는 은설에게 눈짓을 했다.불빛 아래, 은설은 원래 술을 마셔서 얼굴이 약간 빨개졌지만 이때 조금씩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반응이 느려졌는지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운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어지며 그녀를 재촉했다."뭐해, 얼른 가!"은설은 비로소 반응한 듯 낮은 소리로 대답하고는 힐드와 함께 머크 부인을 부축하며 그들이 지내는 별장으로 돌아갔다.깊은 밤, 밤바람은 따뜻했지만 은설은 손발이 차가웠다. 뒤돌아보니 운박은 이미 떠났고 방금까지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웠던 잔디밭은 그릇밖에 남지 않은 텅 빈 채로 무척 쓸쓸했다.그녀의 목에 있는 루비는 눈부신 빛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는 오늘 운박이 그녀를 데리고 가서 산 것이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오늘 밤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주얼리는 차가웠고 그녀의 마음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들어 힐드를 향해 매혹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미스터 머크, 오늘 밤, 정말 멋져 보이네요!"힐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파란색의 눈은 바다처럼 깊었다. 그는 천천히 웃었다."고마워요!"두 사람은 머크 부인을 침실로 데려가자마자 하인이 인차 와서 그녀를 섬겼다.힐드는 하인더러 물러나게 하고는 자신이 직접 머크 부인에게 옷을 갈아입히며 그녀를 안고 샤워하러 갔다.은설과 하인은 침
그녀는 운박과 지내고 있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운박은 아직 자지 않았는데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은설은 나무 난간에 기대어 담담하게 웃었다."당신을 실망시켰는걸. 힐드는 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운박은 실망했고 좀 이상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아마도 나한테 힐드가 바람을 피울 정도로 그런 매력이 없어서일걸."은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침대로 걸어갔다."피곤해서 먼저 잘게."운박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가서 쉬어."은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표정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침실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서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눈을 감고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이튿날, 소희는 구택의 품에서 깨어났다. 날은 이미 완전히 밝았고 햇빛은 얼굴에 내리쬐며 무척 화창하고 열렬했다.어젯밤은 확실히 좀 방자했다. 소희는 온몸이 불편했고 머리는 술에 취해 현기증이 났다.구택은 그녀를 달래며 일어나서 아침을 먹게 했다. 아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운박의 비서가 와서 운박이 구택과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구택을 청했다.구택은 운박을 급히 만나러 가지 않고 먼저 소희와 함께 아침을 먹은 뒤 또 하인더러 소희에게 보신탕을 끓여 주라고 분부했다.소희가 말했다."도운박 씨한테 급한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으면 아침 일찍 와서 구택 씨 부르지도 않을 거고요. 나 신경 안 써도 돼요.""응, 불편하면 침대에 가서 좀 누워요. 금방 다녀올게요." 구택은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하인에게 당부한 후에야 운박을 만나러 나갔다.소희는 허벅지가 시큰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외출하기 싫어 구택이 떠난 후 아예 방으로 돌아가 책을 보았다.운박이 사는 별장 안, 은설은 아침 일찍 머크 부인에게 불려갔고, 서재에는 운박만 있었다.구택을 보자 운박은 마중 나오며 웃으며 물었다."소희 씨는 괜찮아요?"구택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술에 취해서 좀 불편한 거 빼고는 큰 문제 없어요.""그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술병이 깨지며 와인은 운박의 머리를 따라 쏟아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마호가니 책상에 기대어 앉았다. 그의 얼굴은 피와 와인이 뒤섞이며 보기만 해도 무척 끔찍했다.구택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싸늘한 한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운박 앞에서 반쯤 쪼그리고 앉으며 그의 손에는 깨진 술병을 들고 있었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운박의 목에 닿았다. 그의 말투는 낮고 차가웠다."다시 한번 소희 씨를 이용할 생각을 하면 나는 당신을 물고기 먹이로 호수에 던질 거예요. 똑똑히 들었어요?"깨진 술병은 무척 날카로웠다. 운박의 얼굴에는 피와 와인이 가득했다. 그는 두려워하며 구택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구택은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던지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하찮고 냉혹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떠났다.운박은 그제야 감히 소리를 냈다."여봐라, 여봐라!"그는 두 번 소리쳤는데 누군가가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눈앞이 어두워지며 바로 기절했다.구택은 자기가 사는 별장으로 돌아와 하인에게 소희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하인은 즉시 말했다. "아가씨는 위층에 계시며 줄곧 외출하지 않으셨습니다."구택은 담담하게 응답하고는 발을 들어 위층으로 걸어갔다. 그는 침실로 들어갔지만 소희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몸을 돌려 옷방과 욕실로 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즉시 나가서 차갑게 그를 따라온 하인에게 물었다."소희 씨는?"하인도 멍해졌다. "아가씨는 줄곧 위층에 계셨습니다."구택은 안색이 보기 흉해지며 그들더러 사람을 찾으라고 명령하려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몸을 돌려 다시 침실로 돌아가 베란다로 걸어갔다.벤치에서 소희는 몸을 웅크린 채 잠을 푹 자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이 카펫 위에 떨어진 줄도 몰랐다.구택의 팽팽한 안색은 단번에 완화해지며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마음속으로는
전화를 받은 양재아는 먼저 권수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권수영은 다소 억울한 어조로 말했다.“재아양, 우리 수철이가 잠깐 장난 좀 친 거예요. 그 어린 여자아이랑 그냥 놀다 그런 거지, 걔도 아직 어린애잖아요. 그 애한테 뭘 어쩌겠어요?”“게다가 우리 수철이도 이미 혼이 났어요. 수철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알 거예요.”“오늘이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라 내가 참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고요!”“그런데 지금 김화연 여사님이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재아 양이 나서서 부탁 좀 해주면 안 될까?”“오늘은 임씨 집안 결혼식이고, 신부도 재아 양 외할아버지의 제자잖아요. 재아 양이 한마디만 해주면 여사님도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거예요.”권수영은 최대한 간곡하게 부탁하자, 재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재아는 지씨 집안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도움을 준다면 지씨 집안도 체면을 세워줄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잠시 후, 재아는 결정을 내렸다.[알겠어요. 제가 여사님께 가서 얘기해 볼게요. 그냥 애들이 장난친 일이라고 하면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실 거예요.]“정말 고마워요, 재아 양. 정말로 우리 지씨 집안의 은인이에요!”권수영은 과장된 어조로 감사의 말을 전하자, 재아는 말했다.[어디 계신가요? 수철이를 데리고 오세요. 제가 함께 여사님께 가서 말씀드릴게요.]권수영은 재아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고 말했다.“지금 데리고 갈게요.”재아와 권수영이 만났을 때, 재아는 지수철의 부은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너무 심하게 맞았잖아요!”“고작 어린애랑 장난 좀 쳤다고 이렇게까지 때리다니요. 참 권력이 대단한 집안이네요.”권수영은 주위를 살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임씨 집안과 관련된 일이기에 재아는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제가 여사님께서 어디 계신지
임유민은 두 번째 총알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지수철의 입술에 맞았다. 그의 입술은 순식간에 부어올라 더는 강한 척할 수도 없었다. 유민이 세 번째 발사 준비를 하자, 지수철은 입안에서 흐릿하게 소리쳤다.“말할게! 말할게!”유민은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전화해요.”지수철은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이미 요요의 할머니를 따돌렸으니, 세 번째 친구가 빨리 오라고 했다. 이에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아이가 도착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나무에 묶인 지수철을 보자,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유민은 몇 걸음에 그를 따라잡아 꽃밭 가장자리를 발판 삼아 공중에서 회전하며 발길질을 날렸다. 이에 그 자리에서 날아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결국, 세 명 모두 유민에게 나무에 묶였고, 그의 사격 연습 표적이 되었다....한편, 권수영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상황을 알게 되었다. 김화연은 당연히 요요를 괴롭힌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세 아이가 어느 집 자식인지 알아냈다.김화연은 한적한 거실에 앉아 놀고 있는 요요를 지켜보며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집안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니 일이 커져 분위기를 망치는 건 바라지 않아요. 당장 이 세 집에 연락해서 애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나가라고 전하세요!”김화연의 지시는 즉시 실행되었고 김화연은 다시 가사도우미들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당분간 아천이랑 청아한테 알리지 마세요. 결혼식이 끝나기 전까지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요.”이에 다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따랐다....권수영은 곧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수철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바로 그를 찾아 나섰다. 권수영은 수철을 발견한 순간 비틀거리며 땅에 넘어질 뻔했다,수철과 다른 두 소년은 나무에 묶여 있었고, 얼굴은 멍투성이에 입에는 무
정원은 나무와 꽃들로 빽빽해, 두 소년이 요요를 안고 달아난 뒤 금세 그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김화연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고,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몇몇 부인들과 함께 서둘러 그들을 뒤쫓았다.지수철은 요요를 안고 꽃밭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오히려 흥분한 얼굴로 더 빨리 뛰었다. 수철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듯한 빛이 가득했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그 순간, 수철의 무릎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두 다리가 꺾이며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요요 역시 그와 함께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지수철은 무릎을 부여잡고 뒹굴더니 막 욕을 퍼붓기 시작하려는 찰나, 그의 동료가 누군가의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 그의 얼굴을 향해 강력한 발길질이 날아왔다.코뼈가 부러지는 충격에 수철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과 함께 수철의 가슴팍에 또 한 차례 발길질이 들어갔다. 이번엔 고통이 극심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임유민은 땅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잠시 스쳐본 뒤, 요요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기압총을 내려놓고 요요를 일으켜 세웠다. 요요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일부러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빠가 있잖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요는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유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요요는 유민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작은 몸을 떨었다.“괜찮아, 괜찮아.”유민은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도 약간의 경직된 기색이 떠올랐다.“요요!”멀리서 김화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할머니!”요요는 크게 외쳤다.곧 김화연이 나타났고, 그녀의 얼굴은 창백한 빛을 띠었다. 김화연은 빠르게 걸어와 요요를 품에 안았다.“할머니, 유민 오빠가 나쁜 사람들을 혼내줬어요!”요요는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김화연은
강시언은 무언가 느낀 듯 강아심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과 맞닿은 아심의 거의 벌거벗은 듯한 시선에, 그는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약간 냉소적인 표정을 드러냈다.아심은 고개를 돌리며, 귀 끝이 옅은 홍조로 물들었다. 마치 블러셔가 뺨에서부터 번진 것 같았다. 그렇다, 술에 취했음이 분명했다.눈빛이 교차한 후, 분위기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심은 넓은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햇살의 따스함과 결혼식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다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낯선 환경에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 속에서도 아심은 잠들어버렸다. 밤에는 아무리 넓고 편안한 침대에서도 잠들기 힘들고, 종종 불면증이나 악몽에 시달리던 그녀가 지금은 매우 안정적으로 잠들어 있었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쿠션을 가져왔다. 시언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받쳐 머리를 들어 올리고, 쿠션을 아심의 머리 아래에 받쳐주었다.자수 무늬가 새겨진 면을 일부러 아래쪽으로 돌려놓으며 배려 깊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아심의 부드럽고 섬세한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시언의 각진 얇은 입술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시언은 휴대폰을 무음 상태로 설정했다. 가끔 전화가 와도, 그는 잠깐 확인한 뒤 바로 끊고 다시 술을 즐겼다.시언에게 아부와 아첨이 넘치는 술자리들은 피로감만 줄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런 조용함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 큰 안식을 주었다....권수영은 양재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이 때문에 지수철은 완전히 신경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게다가 이곳은 임씨 집안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철저히 경비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수철은 그저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곧 두 명의 같은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수철은 A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동급생들 역시 집안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이런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저택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놀이
강아심은 강시언 맞은편 의자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한 번 바라봤다. 아심은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들고 머리를 살짝 젖혀 술을 한 모금에 들이켰다.시언은 아심이 고개를 젖히며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을 바라보았다. 삼킬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목선이 더욱 선명해졌다.이에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강아심, 넌 그저 약간의 잔재주 말고는 다른 건 할 줄 모르지?”아심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큰 처벌을 피하려고 미리 그를 자극하며 시언의 입을 막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아심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는 술기운에 촉촉해졌고, 붉어진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그런 순진한 표정은 아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며 목소리는 더욱 낮고 묵직해졌다.“네가 매번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 잔재주 때문이 아니야. 그건 내가 네게 관대했기 때문이지, 이해했어?”아심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술기운은 더욱 올라와 눈동자는 한층 더 촉촉해졌다.시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권수영과 양재아가 웃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다시 아심을 보며, 다소 조롱 섞인 어조로 물었다.“네 남자친구 어머니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아심은 입가에 묻은 술 자국을 가볍게 닦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정한 사랑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야죠.”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고, 웃음에서도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진정한 사랑? 겨우 한 잔 마시고 취한 거야?”아심은 그의 말에 되받아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어딘가 찔리는 마음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아심은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은 때로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법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다 미소를 띠며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아심은 놀란 듯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뭘 도와준다는 건데요?”“네가 버틸
강아심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권수영은 아심이 떠나자 안도한 듯 숨을 내쉬며 지승현에게 말했다.“너는 재아 씨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 젊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저는 재아 양과 잘 모르는 사이예요. 특별히 나눌 얘기도 없고요. 엄마 친구분이시니까 엄마가 알아서 모시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재아를 향해 간단히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재아는 표정을 잃지 않았지만,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재아가 승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재아의 마음일 뿐이었지만, 승현이 재아를 무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권수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속으로는 승현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생각했다.‘승현이가 저 모양이라니! 만약 수철이 결혼할 나이가 됐으면 그에게 재아를 소개했을 텐데!’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권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승현이는 원래 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요.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잘 못해요.”“게다가 평소엔 일에 치여서 여자들을 만날 시간도 없거든요.”재아는 냉소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보니까 승현 씨는 아심 씨와 대화는 잘하던데요.”권수영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웃으며 말을 돌렸다.“강아심 씨는 공공 관계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한 거죠.”“하지만 재아 씨는 진짜 명문가의 아가씨에다가 품위 있고 아름다우니 비교가 되겠어요?”권수영의 말에 재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람들은 강아심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하더라고요.”권수영은 속셈이 담긴 태도로 재아의 심리를 읽으며 대답했다.“그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겠어요?”재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다른 주제로 돌렸다.“지아윤은 안 왔나요?”“왔죠.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전화해서 불러볼게요.”권수영은 곧장 대답하며
권수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강아심을 일부러 무시한 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재아 씨, 여기는 내 아들 지승현이예요. 경성대 졸업생이고, 졸업 후 집안 사업을 도와주고 있죠. 지금 우리 집안은 승현이 혼자 다 책임지고 있어요!”권수영은 아들을 한껏 칭찬한 뒤, 다시 승현에게 말했다.“여기는 도재아 양, 국화 대가인 도경수 선생님의 손녀야. 외모도 빼어나지만 재능도 대단하단다!”승현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재아 씨, 반가워요.”재아도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지승현 씨, 반가워요.”사실 재아는 권수영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 세 번이나 전화로 만남을 요청하길래, 받은 선물도 많았고 관계를 틀고 싶지는 않아 마지못해 만나기로 했다.그녀는 권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밭으로 안내받았고, 승현을 보자마자 권수영의 의도를 눈치챘다.승현은 깔끔하고 점잖은 인상이었고, 예전 남자친구인 임예현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언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상당히 컸다.그래서 재아는 자신의 태도를 차분하고 품위 있게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거리감을 두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현에게 말했다.“승현아,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하자. 나는 먼저 가볼게.”“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승현은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으나 강아심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계를 흘낏 보았다. 이미 2분이 지나 있었다.권수영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아니, 이게 누구야? 강아심 씨 아니신가. 이제 공공 관계 사업까지 린 씨 결혼식장에 진출한 건가?”“어머니, 그런 말씀은 삼가세요.”승현이 얼굴을 굳히며 강하게 말렸다.“아심 씨는 연희 씨의 친구이자, 신부 소희 씨와도 친한 사이예요.”이때 재아가 입을 열었다.“아심 씨, 저를 못 알아보겠어요?”재아는 승현이 아심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회사 개업식에서 아심이 어려움을 겪던 중, 승현이 그녀
“승현아.”강아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먼저 뭐라도 먹어봐.”승현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밀어놓으며 말했다.“점심은 아직 못 먹었을 것 같은데.”아심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에 뭔가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지승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오늘 만난 이유는 할머니의 유산 문제 때문이야. 할머니 유언장에 따르면, 돌아가신 지 한 달 뒤에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했어.”“할머니의 뜻에 따라 네가 상속받을 부분을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진심이야.”아심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정 상속에 따라 유산은 승현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승현은 그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유산을 받게 되면 즉시 팔아치우고, 자금을 회수할 게 뻔했다.승현은 그런 방식으로 할머니의 유품이 처분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우려를 솔직히 전했다.“할머니의 유품이 엉뚱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꼭 네가 받아줬으면 해.”아심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유품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하지만 지금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제가 그걸 받는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승현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할머니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어.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날 수도 있으니 절대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그렇게 모든 걸 알고 계시면서도 유품을 당신에게 남기셨잖아. 그러니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파티장 2층.강시언은 프랑스풍의 큰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은 정원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었다.얇은 입술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그의 표정은 연기로 흐릿해졌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