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고명계 부사장이 우청아를 사무실로 부른다.고명계 부사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청아에 대한 태도에는 인재를 아끼는 온화함이 묻어났다. “오늘 성수현 사장님이 전화하셔서 당신이 디자인한 별장에 대해 상세히 매우 만족하신다고 하셨어요.”“시대를 앞서가면서도 인간적임을 잃지 않았다고, 정말 훌륭하다고요!”청아는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감사합니다!”“이것도 청아 씨가 회사에 온 후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죠. 제가 디자인을 봤는데 정말 괜찮더라고요!” 고명계 부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 성수현 사장님이 저녁을 대접한다고 하셨어요. 첫째로는 청아 씨 아직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으니 정식으로 인사를 나눠요.”“두 번째로는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요구사항을 청아 씨랑 직접 논의하고 싶어 하세요.”“좋아요, 문제없어요!” 청아는 쾌활하게 대답했다.“그럼 준비하고, 퇴근하고 나서 제가 청아 씨를 데려다 줄게요!” “네, 그럼 저는 먼저 나가겠습니다!” 청아가 웃으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이지현이 의자를 타고 다가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고명계 부사장님이 무슨 일로 부른 거예요? 또 다른 일거리를 주는 건가?”“아니에요!” 청아가 성수현 사장에게 제출한 모든 디자인 초안을 정리하며 말했다. “성수현 사장의 원본 작업이 통과됐어요. 내부 디테일에 대해 더 논의할 것이 있어서 고명계 부사장님이 성수현 사장과 약속을 잡았어요.“오늘 저녁에 직접 이야기할 예정이래요.”“긴장돼요?” 지현이 물었다. “전 첫 고객을 만났을 때 나는 너무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어요.”“그 고객은 30대 여성이었는데, 명품으로 치장하고는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타입이었고요.”“내가 한 일에 트집을 잡으면서 욕을 퍼붓더라고요. 그래서 난 밖에 나가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고요.”“그 후에는 어땠어요?”“그 후에 나는 뻔뻔스럽게도 자주 고객을 찾아갔어요.”“고객이
음식과 술이 준비되자 성수현은 먼저 우청아에게 술을 따랐다. “청아 씨, 비록 오늘이 우리의 첫 만남이지만 꽤 오래 알고 지내온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이 잔은 청아 씨를 위해 제가 따르도록 하죠.”“이렇게 멋있는 별장을 저를 위해 설계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전 원샷 할 테니 청아 씨는 편히 마셔요.”성수현의 말에 청아는 아무 말없이 반 잔을 마셨다.“좋아요, 저는 청아 씨처럼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요!” 성수현이 다시 술병을 들어 청아에게 술을 따르자 청아의 옆에 있던 고명기가 웃으면서 말했다.“청아 씨가 술을 잘 못 마시니까 두 번째 잔은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를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의 협업이 즐겁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청아 씨가 계시니 당연히 즐거울 겁니다!” 성수현 사장이 청아에게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고는 한꺼번에 마셨다.“청아 씨.” 또 빈 잔을 청아에게 보이는 성수현에 고명기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청아 씨, 디자인의 세부 사항을 성수현 사장님과 상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서 가져와 보세요!”“아!” 청아는 바쁘게 자신이 가져온 디자인 도면과 자료를 성수현에게 보여주었지만 성수현 은 필요 없다는 듯 크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볼 필요 없어요, 청아 씨, 청아 씨 생각대로 디자인하면 됩니다. 저는 당신을 믿어요!”“그래도 한 번 봐주세요!”청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성수현은 자신의 BMW M8 차 키를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던졌다.“볼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자꾸 선 그으면 저 진짜 화낼 겁니다.”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성수현에 청아와 고명기는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져온 디자인 도면을 접었다.“청아 씨, 난 이제부터 그냥 청아라고 부를거고, 청아도 저한테 말 놔요. 뭐 수현 오빠라고 불러요, 성수현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정 없잖아요.”성수현이 계속해서 청아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는
“참나, 정말 융통성이 없네!” 성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취하면 어때서, 여기서 고급 스위트룸을 열어 줄게. 원하는 만큼 머무르면 돼!”성수현의 강요에 우청아는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자 기분 좋아 보이는 성수현에 고명기가 청아에게 말했다.“담배가 없네요. 청아 씨 나가서 담배 한 갑 사다 줘요, 말보로 레드로.”이에 성수현 사장이 바로 말했다. “여기 시가렛 있는데 내 걸로 피워요.”“아닙니다. 전 이 담배가 익숙해져서 청아 씨보고 사오라고 하면 됩니다.”고명기의 말에 청아는 담배를 사러 일어났고 잠시 뒤, 청아에게서 연락이 왔다.“부사장님, 편의점 왔는데 말보로 레드는 없고 화이트후레쉬 멘솔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이에 고명기가 차갑게 말했다.“이런 사소한 일도 못 하나요? 머리는 달고 다니는 겁니까? 그 편의집에 없으면 다른 데 가서 사요. 사지 못하면 돌아올 필요도 없고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자 성수현이 웃으며 말했다.“뭘 또 담배 한 갑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성수현의 말에 고명기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로 온 직원이라 좀 서툴러서 가르쳐 줘야죠.”“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너그럽게 봐줘야죠!” 성수현이 비릿하게 웃었는데 그 웃음속에 불순한 의도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고 술잔을 들고 고명기와 건배했다.“우리끼리 먼저 한잔해요.”레스토랑 맞은편 편의점에서 청아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혼이 난 청아는 한참 멍해 있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고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부사장님, 나가실 때 제 디자인 도안을 회사로 가져도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문자를 보낸 청아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다음 날, 성수현은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일찍 떠났는지 물었다. 이에 청아는 대충 핑계를 대며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청아는 디자인 작업만 잘하고 싶을 뿐, 다른 문제는 원하지
꽤 큰 유혹에도 불구하고 청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저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아니 이 아가씨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황대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회사의 어떤 고급 디자이너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어요. 누구인지는 말 안 할게요.”“그 사람은 이 몇 년 동안 돈을 벌어서 강성에 두 채의 집을 샀고,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어요. 당신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당신에게는 이런 기회가 있어요. 당신은 예쁘고 피부도 좋잖아요. 성수현 사장님이 당신을 좋아하시는데, 이런 기회는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합니다.”이에 청아는 비꼬며 말했다. “저 실례지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건축 디자인 회사인가요 아니면 클럽인가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아니 청아 씨, 내가 이렇게 좋게 얘기하고 있는데 왜 말하는 태도가 그런 거죠?”“저는 제안하신 방법으로 승진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제가 이 프로젝트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 디자인은 제가 양보할 수도 있고요.”맹랑하게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 부사장이 차갑게 말했다.“총이익의 5%를 줄게요. 그걸로 강성에 집 한 채 살 수 있어요!”하지만 청아는 여전히 결연하자 황대헌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이익을 전부 주신다고 해도 제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우청아 씨, 성수현 사장님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단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고객과의 충돌’로 해고할 수 있어요!”“편하실 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는 가지 않을 거니까. 해고 통지 기다릴게요.”말을 마치고 청아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가자 황대헌은 화가 나 거의 컵을 던질 뻔했다,“무식한 것!”다음 날, 황대헌은 다시 청아를 찾아와 3일의 시간을 주며 가지 않으면 해
오후 8시, 호텔에서.성수현이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우청아가 이미 도착했을 거라 짐작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며 뒤돌아 문을 닫고 소리쳤다. “청아 씨, 청아 씨!”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거실을 지나 침실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나고, 문 뒤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청아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들 예뻤다. 이에 성수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아 씨, 이게 뭐지? 친구들 불러 함께 놀자는 거야?”“함께 놀기는 개뿔!” 성연희가 성수현 머리에 술병을 직접 내리쳤고, 술병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술병에 있던 술이 머리에서 흘러내렸다.“아악!” 성수현이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이어 연희는 한 발로 성수현의 가슴을 차서 침대 위로 넘어뜨렸고, 이어서 이불을 그 위에 덮어쓰고는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그리고 소희는 청아를 보며 눈썹을 한 번 추켜세우며 말했다. “올라가서 몇 번 걷어차!”청아는 어차피 일도 끝났으니 차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침대 위로 뛰어올라 세게 찼다. 어디를 찼는지 모르겠지만, 성수현은 계속하여 비명을 질렀다.“잘했어!” 연희가 청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청아는 분이 안 풀렸는지 발을 들어 계속 차며 말했다. “개새끼야, 건방지게 여자를 노리개 취급을 해! 돈이 많으니까 세상 다 가진 기분이야? 본인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해? 같잖게 돈지랄하다니!”이불 밑에서 성수현은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그만해, 청아 씨,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제발 그만해요. 용서해 줘!”청아는 숨이 차올랐는 몇 발 더 차고 나서야 멈췄고 연희가 웃으며 물었다.“기분 어때?”연희의 질문에 청아의 눈빛은 반짝였다. “시원해!”두 사람이 침대에서 내려왔고, 소희가 뒤따라가며 한 번 더 이불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을 무심하게 바라보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소희 일행이 떠난 후, 젊은 여자가 들어
그날 성수현은 자신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난 얘를 부르지 않았다고!”하지만 성수현의 아내는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누워 있는 것만 보고,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두 사람을 다시 패기 시작했다.또한 성수현은 금방 맞은 데 또다시 맞게 된 판이었다. 바로 옆방에서 성연희가 나와 성수현의 비명과 애원 소리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이에 소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듣지 말고 그냥 가자!”연희가 우청아의 어깨를 끌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오늘 정말 속이 다 시원했어. 간만에 이렇게 기분이 좋았네.”청아가 웃으며 말했다. “저녁은 내가 살게, 뭐 먹을래?”청아의 질문에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양꼬치 어때?”소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넘버 나인의 셰프보고 양꼬치를 해달라고 하려고?”“오늘은 그럴 필요 없어, 아무 가게에서나, 야외에서 하는 그런 곳에서 먹어. 사실 기분이 좋으면 뭘 먹든 좋잖아!”연희가 유혹적으로 눈을 흘기며 말했다. “호텔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마주치는 곳에서 먹자!”“좋아!”“그렇게 해!”소희와 청아가 입을 모아 동의했다.반 시간 후, 세 사람은 양꼬치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옆에 있는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이때 연희가 청아에게 물었다. “성수현을 건드렸으니, 너희 사장이 널 해고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일 나랑 소희가 너네 회사로 가서 기 좀 살려줄까?”연희의 말에 청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황대헌이 성수현과 함께 가라고 할 때부터 사직할 준비가 됐어.”그러자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가 돈을 내서 스튜디오를 차리고 네가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 게 어때? 네 재능으로라면 크게 성공시킬 수 있을 거야.”“지금은 안 돼!” 청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워야 할 게 아직 많다는 걸 알았어. 내가 배울
장시원은 우청아를 한참 바라보다가 청아의 얼굴을 가볍게 톡 쳤다. 너무 세게 치지 않으려고 가볍게 만졌는데, 부드럽고 섬세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시원의 마음 깊은 곳의 기억을 자극했다. 곧 시원의 눈동자가 어둡게 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청아, 일어날 수 있어?”“응, 할 수 있어.” 청아가 중얼거렸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시원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청아를 안아 올려 차로 향했다. 임구택과 함께 왔던 차가 밖에 주차되어 있었기에 청아를 조수석에 앉혔다. 근데 청아는 뭐가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렸고 시원 자신도 모르게 함께 미간을 좁혔다.“이렇게 많이 마셔서 뭐 해? 헤어진 후에도 이렇게 날 걱정시키면.”시원은 안전벨트를 매주고 자신의 코트를 청아에게 덮어주고 나서 운전석으로 갔다. 길을 가는 동안 청아는 조용히 머리만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경원 주택단지에 도착했을 때, 시원은 청아를 안고 건물로 들어갔고 집에 들어서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시원이 차분하게 답했다. “요요는 어때요?”“요요는 벌써 잤어요!” 이경숙 아주머니가 서둘러 답했고 시원은 청아를 안고 침실로 가며 이경숙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경숙 아주머니, 오늘은 집에 가지 마시고 여기서 요요와 같이 자세요. 청아가 술을 좀 마셔서요.”“알겠어요!” 이경숙 아주머니의 집은 어차피 혼자라 집에 가든 안 가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경숙 아주머니가 요요를 확인하러 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청아가 있는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얼핏 보니 시원이 청아의 화장을 지워주고 따듯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래서 이경숙 아주머니는 시원과 청아가 다시 화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다.방에서, 시원은 침대 옆에 앉아 청아의 손을 닦아주었다. 청아의 손가락은 길고 하얀 편이었고, 손을 잡으면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러웠다.“요요, 요요!” 청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장시원은 요요를 가만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시원의 시선이 점점 더 부드러워졌고, 요요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가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시원은 그렇게 눈을 깜빡이지 않고 요요를 바라보다가, 이내 일어나서 침대 옆에 놓인 이야기책을 정리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램프를 좀 더 어둡게 조절한 뒤에야 문을 열고 나갔다.이경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시원이 나오자 일어나며 말했다.“이미 늦었는데 여기서 주무시는 게 어때요?”“괜찮습니다. 우청아가 좀 많이 마셔서 내일 아침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어요. 아침에 해장국 좀 끓여주세요.” 시원이 부탁하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청아 씨 잘 챙길게요!”그리고 시원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청아가 새로운 일이 바빠서 가끔 야근해야 할 겁니다. 요요를 돌보는 것 외에 청아도 좀 챙겨주세요. 사례비로 2000만원 계좌이체 해드릴게요.”하지만 이경숙 아주머니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청아 씨가 이미 잘 주고 있어요. 따로 주실 필요 없어요!”“그냥 받아주세요. 청아에게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시원이 당부하고는, 외투를 입고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제가 청아를 데려다준 것도 말하지 마세요.”“알겠어요.”이경숙 아주머니는 시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직 화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시원처럼 좋은 남자라면, 두 사람이 다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면 청아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테니까....시원은 건물 밖으로 나와 자신의 차에 앉았지만, 바로 출발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밤은 이미 깊어져 조용한 주택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가끔 새들이 무언가에 놀라 날아가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이때 구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원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내가 심심해서 전화한 거라고 하면 믿겠어?”전화 너머로
두 사람이 대화 중이던 중, 이반스가 측문으로 들어왔다. 그는 도도희를 보며 놀란 듯 물었다.“도도희, 바둑을 두고 있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도도희는 어릴 적부터 바둑을 잘 뒀지. 학교 다닐 때 상도 받았었다고. 정말 대단했어!”이반스는 눈을 반짝이며 감탄과 부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배우고 싶어요!”도도희는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넌 바둑보단 오목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아.”이반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도도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오목이 더 어려워. 너의 높은 지능에 딱 맞을 거야.”이반스는 칭찬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고마워, 도도희!”강재석은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크게 웃었다....양재아는 요즘 매일 늦게 귀가했다. 이날도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강재석과 도도희에게 인사를 건넨 뒤 물었다.“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도도희는 대답했다.“서재에 계셔.”재아는 거실 옆의 작은 서재로 향했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쪽의 모습을 보았다.도경수와 강아심은 커다란 화판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크고 작은 붓과 각종 채색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도경수는 가끔 아심의 붓질을 살펴보며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그의 눈에는 뿌듯함과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감정은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재아는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속이 쓰리고,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나와버렸다.잠시 뒤, 도도희는 밤참을 들고 서재 문을 열며 들어왔다.“이제 그만하고 쉬세요. 너무 늦었어요.”도경수는 얼굴 가득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우리 재희는 정말 재능이 있어! 너랑 똑같아!”도도희는 딸을 보며 기쁜 미소를 지었다.“그러게요. 역시 혈연은 속일 수가 없네요.”아심의 얼굴 한쪽에는 물감이 살짝 묻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더욱 생기 있고 사랑스럽게 보였다.“할아버지가 훨씬 대단하세요! 오
집에 도착하자 도도희가 직접 부엌에서 음식을 데우고 있었다.도경수는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반가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말했다.“왜 맨날 야근이야? 회사에 직원들 많다며. 그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도희가 다가오며 말했다.“직원들은 직원들 할 일이 있고, 사장님은 사장님 할 일이 있죠. 아버지는 그만 신경 쓰세요. 우리 재희가 알아서 잘할 거예요.”아심도 따뜻하게 웃으며 설명했다.“오후에 일이 조금 밀려서 늦었어요. 다음엔 조심할게요.”“일단 가서 저녁 먹자.”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끌었다. 도경수는 따라가려다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서재로 돌아가 강재석과 함께 차를 마시러 갔다.식탁에서는 도도희와 강아심이 마주 앉았다. 도우미들이 음식을 차려 놓고는 자리를 비워, 두 사람이 조용히 식사할 수 있도록 했다.아심은 놀라며 물었다.“엄마도 아직 식사 안 하셨어요?”“응, 네가 혼자 먹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랑 다른 분들 먼저 먹으라고 했어. 난 네가 오길 기다렸다 같이 먹으려고.”도도희는 딸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이 족발 요리는 내가 한 거야. 한 번 먹어봐!”아심은 가슴이 따뜻해지며 한 입 먹고 미소를 지었다.“정말 부드럽고 맛있어요.”“내가 요리를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자신 있는 메뉴는 있지. 앞으로 내가 다 해줄게.”아심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우리 같이 요리해요. 제가 엄마한테 배울게요.”두 사람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이어갔다.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아심은 무심코 물었다.“오늘 시언 씨는 안 보여요. 안 왔어요?”도도희는 대답했다.“아까 아저씨가 그러시는데, 시언이 오늘 바빠서 집에 안 온다고 하더라.”그녀는 아심을 보며 물었다.“시언이 네게 말 안 했어?”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저도 오늘 너무 바빴어요.”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오자 도도희가 강아심에게 말했다.“예전에 그림 배우고 싶다고
강아심은 택시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돌아가 자신의 차를 찾으려 했다. 택시에 앉아 있던 그녀는 문득 오늘 점심 원래는 고객과 미팅이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아심은 급히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고객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었기에, 태도가 매우 너그러웠다.[사과할 필요 없어요. 레스토랑 밖에서 교통사고가 난 걸 다 알고 있어요.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으셔서 다들 걱정했어요. 괜찮아요?]“네, 괜찮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려요.”그녀는 몇 마디 더 예의를 차린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그중에는 강시언의 전화도 포함되어 있었다....자신의 차를 찾은 뒤 회사로 돌아오자 곧바로 퇴근 시간이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 오후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던 아심은 이 모든 일이 참으로 절묘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권수영은 분명 지승현과 양재아를 이어주기 위해 그들을 레스토랑으로 불러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승현이 우연히 마주쳤다.그 후에 차량이 승현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 차량은 명백히 승현을 노리고 있었고, 그의 동선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승현을 해치려 한 사람은 그와 가까운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승현을 레스토랑으로 부른 사람은 권수영이었다. 그러나 권수영이 자기 아들을 해치려고 했을 리는 없었다. 만약 승현이 목적이라면 재아까지 그 자리에 부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최근 승현은 회사를 인수하며 내부의 적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반감을 샀다. 회사의 복잡한 세력 다툼 속에서 그의 동선을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아심은 한참을 고민했지만,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지금은 다른 문제가 골치를 아프게 했다. 바로 시언이 화가 난 문제였다. 아심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내 시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계속 울리다가 끊겼고, 시언은
양재아는 권수영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권수영은 병실에 들어가 지승현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화가 치밀어 올라 강아심을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강아심 씨, 대체 언제까지 우리 아들을 괴롭힐 거예요? 헤어졌다면서 왜 아직도 우리 승현이를 붙잡고 있는 거냐고요?”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심을 향해 계속 비난을 퍼부었다.“얼굴 하나 믿고 여기저기 남자를 꾀고 다니고, 부끄럽지도 않아요?”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시끄럽게 싸우고 싶지 않았던 아심은 권수영과 언쟁을 벌이기보다 돌아서서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러나 권수영은 포기하지 않고 아심을 쫓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층 더 공격적인 어조로 경고를 쏟아냈다.“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 승현이의 여자 친구는 재아예요. 그러니 당신 다시는 치사하게 달라붙지 마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당신 같은 여자가 우리 아들을 꾀려고 한다는 걸 온 강성에 소문내서, 여기서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예요!”권수영 뒤에서 재아는 일부러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경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주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차분히 말하세요. 폭력을 휘두르지 마시고, 이분의 손을 놓으세요!”권수영은 경찰의 말에도 아심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비웃으며 말했다.“이 여자는 천하의 나쁜 여자예요! 쓰레기 같은 여자라고요!”그 말에 아심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권수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힘을 주자 권수영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고통스럽게 손을 놓았다.아심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양재아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당신의 모욕을 참고 있는 건 내가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에요.”“당신은 정말로 웃음거리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말다툼하는 건 제 시간 낭비라고 생각돼서예요.”권수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아심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경찰이 재빨리
재아는 시언의 냉랭한 시선을 받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자기 말에 허점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언이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에 불안감이 밀려왔다.검사실 밖시언이 검사실에 도착했을 때, 아심은 문밖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시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시언은 아심에게 다가가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팔에 약간의 긁힌 상처가 있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아심이 먼저 물었다. 시언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날 나한테 뭐라고 약속했지?”아심은 잠시 멈칫했다. 곧바로 그날 저녁 그의 별장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시언은 그녀에게 다시는 승현과 얽히지 말라고 했었다.아심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일 외에는 사적인 연락은 없었어요.”시언은 아심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아니겠지?”아심은 그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시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답하려던 찰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검사 끝났어요. 보호자 분, 빨리 오세요!”아심은 시언을 한 번 바라본 뒤, 검사실로 향하는 침대로 먼저 달려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기운이 마음속 깊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시언은 재아의 이간질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심은? 승현이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아심은 간호사들과 함께 승현을 검사실에서 병실로 옮겼다. 병실로 돌아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복도를 살피며 시언을 찾았지만,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속에서 차오르는 불안을 애써 누르며, 그녀는 승현을 돌보는 데 집중했다.잠시 후, 의사가 결과를 들고 와 말했다.“다행히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것 말고는 내장이 다치지 않았어요. 머리 외상으로 출혈이 많고 가벼운 뇌진탕이 있지만,
양재아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래선 급히 택시를 잡아 아심이 타고 간 차량을 따라갔다.병원에 도착하자 재아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다섯 번, 여섯 번 울렸을 때까지 상대가 받지 않아 그녀는 체념하려던 순간,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재아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둘러 말했다.“시언 오빠, 큰일 났어요. 빨리 병원으로 와 주세요!”시언이 물었다.[무슨 일이지?]재아는 다급히 말했다.“아심 씨랑 지승현 씨가 차에 치였어요. 둘 다 병원에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재아는 상대방의 숨소리가 잠시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다급하고 불안했다.[어느 병원이지?]재아는 병원 이름을 말했고, 그녀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언은 전화를 끊었다.시언은 최대한 빠르게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심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그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20분 후, 시언은 병원에 도착해 바로 프론트로 갔다.“30분 전쯤 교통사고로 남녀 한 쌍이 이 병원에 실려 왔나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프론트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정리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네요. 다른 데 물어보세요.”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쉰 듯, 서늘하고 날카로웠다.“그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직원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꽤나 긴장시켰고, 그녀는 얼른 말했다.“바로 확인해 드릴게요!”프론트 직원은 최근 접수 기록을 찾아 시언을 승현과 아심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응급실 안에서, 의사들은 지승현의 출혈을 멈추고 붕대를 감으며 각종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의사 중 한 명이 물었다.“가족분은 오셨나요?”아심이 급히 대
고객은 지승현에게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넨 뒤 먼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고 하길래, 너도 부른 줄 알았어.”아심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너희 어머니와 이미 다 얘기 끝낸 거 아니었어?”승현 역시 의아한 듯 대답했다.“그렇지, 이미 어머니께 우리가 헤어졌다고 말했어. 그런데 어머니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아심은 양재아가 지아윤을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승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재아가 너희 어머니랑 아윤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승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이미 친어머니와 지아윤의 계략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재아와 결혼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레스토랑 안에.재아는 창문 너머로 승현과 아심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심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아심이 승현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까 봐 마음이 불안해졌다.재아는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어, 정말 우연이네요!”재아는 승현의 옆으로 다가가 친근한 척하며 아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심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고, 승현은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도재아 씨,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승현이 아심의 앞에서 자신을 도재아라고 부르자 재아는 순간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승현 씨 어머니가 저를 여기로 부르셨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마치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승현 씨도 어머님이 부르신 건가요?”승현은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고, 그의 표정은 차갑고 딱딱해졌다.“마침, 저도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오늘 만난 김에 제대로 얘기 나누죠.”재아는 지승현이 자신을 거절하려는 것임을 직감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얼굴에는 억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좋아
오늘 강아심은 철저히 준비하고 왔다. 분명 지승현이 정보를 흘려 미리 아심에게 알렸을 것이었다.‘나를 회사에서 해고할 뿐만 아니라, 외부인과 짜고 집안사람을 괴롭히다니.’순간, 지아윤의 마음속에서 승현에 대한 증오가 아심에 대한 분노를 훨씬 뛰어넘었다.아윤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복수할 것이었다....양재아는 출근길 내내 심란했다. 권수영의 생일이 지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지만, 권수영은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했다.심지어 예전보다 더 정성스럽게 대해줬지만, 정작 승현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 받은 그 전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잠시 고민한 뒤, 재아는 권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재아 씨, 출근했어요?]권수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네, 출근했어요.”권수영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아침에 보내주신 옷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사모님.”[고맙긴. 곧 우리도 한 가족이 될 텐데, 내가 재아 씨를 아끼는 건 당연한 거죠.]권수영의 말투는 여전히 따뜻하고 세심했지만, 재아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분은 그날 이후로 저를 전혀 찾지도 않으셨어요. 그분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알아요.”“그러니 앞으로는 선물 같은 것도 주지 마세요. 저희는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죠.”권수영은 순간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재아 씨, 그건 재아 씨가 오해한 거예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집에도 잘 못 들어오고 있어요.][정말로 재아 씨를 일부러 소홀히 하는 게 아니예요. 사실, 옷을 사주라고 부탁한 것도 승현이예요.]재아는 비웃듯 말했다.“정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윤이가 전화해서, 승현 씨가 여전히 강아심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저더러 마음을 접으라고 하더라고요.”권수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에만 신경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본 강아심은 왠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강시언에게 물었다.“외할아버지가 우리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지 물으시면, 뭐라고 설명할까요?” 게다가 둘이 같이 돌아왔으니 말이었다. 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굳이 설명이 필요해?”아심은 미소를 지었지만,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쳤다.거실에는 도경수와 강재석이 여전히 깨어 있었다. 두 사람은 체스를 두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경수는 도우미가 전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재희야, 또 야근했니?”아심은 강재석에게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네, 굳이 저 때문에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도경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잠이 안 와서 바둑 두고 있었어. 배고프지 않아? 간식 준비해 줄까?”이에 시언이 끼어들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뭐 좀 먹고 왔거든요.”도경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쉬거라!”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럼, 위로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 다 좋은 꿈 꾸세요!”“그래, 올라가!”재석은 아심을 향해 자상하게 미소 지었다. 아심이 계단을 올라간 뒤, 강시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도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도 너무 늦지 않게 주무세요.”...강재석은 두 사람이 차례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미소를 참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도경수는 잠시 미소를 멈추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뭐가 좋아지는 건데? 그저 같이 야근하고 돌아온 것뿐이야. 너무 앞서가진 말아.”그러나 강재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계속 그렇게 현실을 외면해 봐. 어차피 아심이는 시언일 좋아해. 막으려 해도 소용없을걸.”도경수는 일부러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내가 막으면 결혼 못 하게 할 수도 있어!”강재석은 바둑판에 돌을 탁 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