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 정말 융통성이 없네!” 성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취하면 어때서, 여기서 고급 스위트룸을 열어 줄게. 원하는 만큼 머무르면 돼!”성수현의 강요에 우청아는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자 기분 좋아 보이는 성수현에 고명기가 청아에게 말했다.“담배가 없네요. 청아 씨 나가서 담배 한 갑 사다 줘요, 말보로 레드로.”이에 성수현 사장이 바로 말했다. “여기 시가렛 있는데 내 걸로 피워요.”“아닙니다. 전 이 담배가 익숙해져서 청아 씨보고 사오라고 하면 됩니다.”고명기의 말에 청아는 담배를 사러 일어났고 잠시 뒤, 청아에게서 연락이 왔다.“부사장님, 편의점 왔는데 말보로 레드는 없고 화이트후레쉬 멘솔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이에 고명기가 차갑게 말했다.“이런 사소한 일도 못 하나요? 머리는 달고 다니는 겁니까? 그 편의집에 없으면 다른 데 가서 사요. 사지 못하면 돌아올 필요도 없고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자 성수현이 웃으며 말했다.“뭘 또 담배 한 갑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성수현의 말에 고명기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로 온 직원이라 좀 서툴러서 가르쳐 줘야죠.”“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너그럽게 봐줘야죠!” 성수현이 비릿하게 웃었는데 그 웃음속에 불순한 의도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고 술잔을 들고 고명기와 건배했다.“우리끼리 먼저 한잔해요.”레스토랑 맞은편 편의점에서 청아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혼이 난 청아는 한참 멍해 있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고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부사장님, 나가실 때 제 디자인 도안을 회사로 가져도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문자를 보낸 청아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다음 날, 성수현은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일찍 떠났는지 물었다. 이에 청아는 대충 핑계를 대며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청아는 디자인 작업만 잘하고 싶을 뿐, 다른 문제는 원하지
꽤 큰 유혹에도 불구하고 청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저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아니 이 아가씨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황대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회사의 어떤 고급 디자이너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어요. 누구인지는 말 안 할게요.”“그 사람은 이 몇 년 동안 돈을 벌어서 강성에 두 채의 집을 샀고,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어요. 당신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당신에게는 이런 기회가 있어요. 당신은 예쁘고 피부도 좋잖아요. 성수현 사장님이 당신을 좋아하시는데, 이런 기회는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합니다.”이에 청아는 비꼬며 말했다. “저 실례지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건축 디자인 회사인가요 아니면 클럽인가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아니 청아 씨, 내가 이렇게 좋게 얘기하고 있는데 왜 말하는 태도가 그런 거죠?”“저는 제안하신 방법으로 승진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제가 이 프로젝트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 디자인은 제가 양보할 수도 있고요.”맹랑하게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 부사장이 차갑게 말했다.“총이익의 5%를 줄게요. 그걸로 강성에 집 한 채 살 수 있어요!”하지만 청아는 여전히 결연하자 황대헌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이익을 전부 주신다고 해도 제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우청아 씨, 성수현 사장님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단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고객과의 충돌’로 해고할 수 있어요!”“편하실 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는 가지 않을 거니까. 해고 통지 기다릴게요.”말을 마치고 청아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가자 황대헌은 화가 나 거의 컵을 던질 뻔했다,“무식한 것!”다음 날, 황대헌은 다시 청아를 찾아와 3일의 시간을 주며 가지 않으면 해
오후 8시, 호텔에서.성수현이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우청아가 이미 도착했을 거라 짐작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며 뒤돌아 문을 닫고 소리쳤다. “청아 씨, 청아 씨!”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거실을 지나 침실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나고, 문 뒤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청아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들 예뻤다. 이에 성수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아 씨, 이게 뭐지? 친구들 불러 함께 놀자는 거야?”“함께 놀기는 개뿔!” 성연희가 성수현 머리에 술병을 직접 내리쳤고, 술병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술병에 있던 술이 머리에서 흘러내렸다.“아악!” 성수현이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이어 연희는 한 발로 성수현의 가슴을 차서 침대 위로 넘어뜨렸고, 이어서 이불을 그 위에 덮어쓰고는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그리고 소희는 청아를 보며 눈썹을 한 번 추켜세우며 말했다. “올라가서 몇 번 걷어차!”청아는 어차피 일도 끝났으니 차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침대 위로 뛰어올라 세게 찼다. 어디를 찼는지 모르겠지만, 성수현은 계속하여 비명을 질렀다.“잘했어!” 연희가 청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청아는 분이 안 풀렸는지 발을 들어 계속 차며 말했다. “개새끼야, 건방지게 여자를 노리개 취급을 해! 돈이 많으니까 세상 다 가진 기분이야? 본인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해? 같잖게 돈지랄하다니!”이불 밑에서 성수현은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그만해, 청아 씨,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제발 그만해요. 용서해 줘!”청아는 숨이 차올랐는 몇 발 더 차고 나서야 멈췄고 연희가 웃으며 물었다.“기분 어때?”연희의 질문에 청아의 눈빛은 반짝였다. “시원해!”두 사람이 침대에서 내려왔고, 소희가 뒤따라가며 한 번 더 이불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을 무심하게 바라보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소희 일행이 떠난 후, 젊은 여자가 들어
그날 성수현은 자신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난 얘를 부르지 않았다고!”하지만 성수현의 아내는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 위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누워 있는 것만 보고,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두 사람을 다시 패기 시작했다.또한 성수현은 금방 맞은 데 또다시 맞게 된 판이었다. 바로 옆방에서 성연희가 나와 성수현의 비명과 애원 소리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이에 소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듣지 말고 그냥 가자!”연희가 우청아의 어깨를 끌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오늘 정말 속이 다 시원했어. 간만에 이렇게 기분이 좋았네.”청아가 웃으며 말했다. “저녁은 내가 살게, 뭐 먹을래?”청아의 질문에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양꼬치 어때?”소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넘버 나인의 셰프보고 양꼬치를 해달라고 하려고?”“오늘은 그럴 필요 없어, 아무 가게에서나, 야외에서 하는 그런 곳에서 먹어. 사실 기분이 좋으면 뭘 먹든 좋잖아!”연희가 유혹적으로 눈을 흘기며 말했다. “호텔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마주치는 곳에서 먹자!”“좋아!”“그렇게 해!”소희와 청아가 입을 모아 동의했다.반 시간 후, 세 사람은 양꼬치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옆에 있는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이때 연희가 청아에게 물었다. “성수현을 건드렸으니, 너희 사장이 널 해고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일 나랑 소희가 너네 회사로 가서 기 좀 살려줄까?”연희의 말에 청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황대헌이 성수현과 함께 가라고 할 때부터 사직할 준비가 됐어.”그러자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가 돈을 내서 스튜디오를 차리고 네가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 게 어때? 네 재능으로라면 크게 성공시킬 수 있을 거야.”“지금은 안 돼!” 청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워야 할 게 아직 많다는 걸 알았어. 내가 배울
장시원은 우청아를 한참 바라보다가 청아의 얼굴을 가볍게 톡 쳤다. 너무 세게 치지 않으려고 가볍게 만졌는데, 부드럽고 섬세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시원의 마음 깊은 곳의 기억을 자극했다. 곧 시원의 눈동자가 어둡게 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청아, 일어날 수 있어?”“응, 할 수 있어.” 청아가 중얼거렸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시원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청아를 안아 올려 차로 향했다. 임구택과 함께 왔던 차가 밖에 주차되어 있었기에 청아를 조수석에 앉혔다. 근데 청아는 뭐가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렸고 시원 자신도 모르게 함께 미간을 좁혔다.“이렇게 많이 마셔서 뭐 해? 헤어진 후에도 이렇게 날 걱정시키면.”시원은 안전벨트를 매주고 자신의 코트를 청아에게 덮어주고 나서 운전석으로 갔다. 길을 가는 동안 청아는 조용히 머리만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경원 주택단지에 도착했을 때, 시원은 청아를 안고 건물로 들어갔고 집에 들어서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시원이 차분하게 답했다. “요요는 어때요?”“요요는 벌써 잤어요!” 이경숙 아주머니가 서둘러 답했고 시원은 청아를 안고 침실로 가며 이경숙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경숙 아주머니, 오늘은 집에 가지 마시고 여기서 요요와 같이 자세요. 청아가 술을 좀 마셔서요.”“알겠어요!” 이경숙 아주머니의 집은 어차피 혼자라 집에 가든 안 가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경숙 아주머니가 요요를 확인하러 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청아가 있는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얼핏 보니 시원이 청아의 화장을 지워주고 따듯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래서 이경숙 아주머니는 시원과 청아가 다시 화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다.방에서, 시원은 침대 옆에 앉아 청아의 손을 닦아주었다. 청아의 손가락은 길고 하얀 편이었고, 손을 잡으면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러웠다.“요요, 요요!” 청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장시원은 요요를 가만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시원의 시선이 점점 더 부드러워졌고, 요요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가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시원은 그렇게 눈을 깜빡이지 않고 요요를 바라보다가, 이내 일어나서 침대 옆에 놓인 이야기책을 정리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램프를 좀 더 어둡게 조절한 뒤에야 문을 열고 나갔다.이경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시원이 나오자 일어나며 말했다.“이미 늦었는데 여기서 주무시는 게 어때요?”“괜찮습니다. 우청아가 좀 많이 마셔서 내일 아침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어요. 아침에 해장국 좀 끓여주세요.” 시원이 부탁하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청아 씨 잘 챙길게요!”그리고 시원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청아가 새로운 일이 바빠서 가끔 야근해야 할 겁니다. 요요를 돌보는 것 외에 청아도 좀 챙겨주세요. 사례비로 2000만원 계좌이체 해드릴게요.”하지만 이경숙 아주머니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청아 씨가 이미 잘 주고 있어요. 따로 주실 필요 없어요!”“그냥 받아주세요. 청아에게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시원이 당부하고는, 외투를 입고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제가 청아를 데려다준 것도 말하지 마세요.”“알겠어요.”이경숙 아주머니는 시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직 화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시원처럼 좋은 남자라면, 두 사람이 다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면 청아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테니까....시원은 건물 밖으로 나와 자신의 차에 앉았지만, 바로 출발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밤은 이미 깊어져 조용한 주택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가끔 새들이 무언가에 놀라 날아가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이때 구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원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내가 심심해서 전화한 거라고 하면 믿겠어?”전화 너머로
“네?” 이경숙 아주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어정쩡하게 말했다. “그게, 소희 씨였어요!”우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경숙 아주머니를 같이 밥 먹자고 말했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청아는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젯밤에 나하고 성연희 다 너무 많이 마셔서, 네가 계산한 거야? 얼마야, 내가 너한테 보내줄게, 내가 쏘기로 했잖아!]이에 소희가 금방 답장을 보냈다. [나 아니야, 장시원 오빠가 산 거야.]청아는 소희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어젯밤, 시원 씨도 왔었어?][응, 임구택이랑 같이 왔어.]청아는 원래 시원에게 전화해서 어젯밤에 시원이 대신 낸 돈이 얼마인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밥을 먹고 나서, 청아는 출근했는데,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서 평소처럼 출근할 때의 열정과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오늘이 콜드스프링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만든 여러 디자인 초안을 보면서, 청아는 더욱 떠나기 싫어졌다. 청아는 정말로 이 일을 좋아했고, 사무실에는 많은 경험이 풍부한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또한, 함께 일하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청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황대헌 사무실고명기가 청아를 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청아 씨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해고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이에 황대헌은 비웃으며 말했다. “성수현이 아침 일찍 전화해서 청아 씨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었어요. 청아를 해고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와의 모든 협력을 취소하겠다고 하면서요.”“성수현 같은 큰 고객을 잃으면, 우리 둘 중 누가 책임을 지게 될 거 같습니까?”“그 성수현의 의도가 나쁜 겁니다. 우청아 씨는 억울하죠!”“고객을 불쾌하게 했는데 어떻게 억울한 거죠?” 강하게 주장하는 고명기에 황대헌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혼자서 고고한
황대헌이 우청아를 해고하기 전에, 청아는 사직서를 황대헌의 얼굴에 내던지며 말하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사직할 거니까 더 이상 인형처럼 여기저기 불려 다닌 지 않을 거야!’청아는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 안에서 황대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가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처음 본 것은 성수현이었는데, 얼굴엔 멍이 들어 있고 눈빛이 다소 음울했지만 청아를 보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청아 씨, 어서 들어와요!” 황대헌이 열정적이고 친근하게 청아를 불렀다. 그리고 청아는 황대헌의 태도에 당황하여 안으로 두 걸음 들어서서야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봤다.장시원은 오늘 정장을 입지 않고 연회색 V넥 얇은 스웨터를 입었는데, 그로 인해 시원의 얼굴이 더욱 잘생기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치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한 고상한 귀공자 같았다.“청아 씨, 앉아서 얘기해요!” 황대헌이 직접 청아에 물 한 잔을 따라주며 시원을 소개했다. “이분은 장시원 사장님입니다. 예전에 장씨 그룹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니까 잘 알겠죠?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할게요.”“장시원 사장님께서 성수현 사장님에게 보여주신 설계도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그래서 진도준 디자이너와 함께 빌딩의 설계를 맡아달라 하는데 어떤가요?” 청아는 소파에 앉아 시원과 눈을 마주치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고, 사직서를 쥔 손도 저도 모르게 꽉 쥐었다.그리고 청아는 생각했다. 황대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시원 때문이라는 것을. 시원이 이른 아침부터 여기 나타난 것은 정말로 청아의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여 협력하고 싶어서였을까?시원은 깊은 눈동자로 청아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장씨 그룹을 떠났다고 해서 아예 협력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공과 사는 구분을 하셔야죠, 혼동하지 마시고.”“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청아가 다소 당황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시원의 앞에서, 청아는 언제나 침착할 수 없었다.“청아 씨, 장시원 사장님께 이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지 3초 만에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 안에서 소희는 깜빡거리는 전화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민이 불편해할까 싶어 임구택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끊고,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문자로 해.][왜 전화 끊었어? 그 사람은 왜 왔어?]소희는 첫 질문은 넘기고 대답했다.[아마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온 것 같아.][그런데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밥까지 사?][손님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지.]그러자 구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그럼 어디로 가는지 주소 보내.]소희는 예정된 식당 주소를 보냈다. 그 사이 앞좌석에서는 심명과 남궁민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소희는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날렵하고 우아한 맞춤 정장을 입고, 시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심명도 구택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며 소희에게 물었다.“왜 임구택까지 불렀어?”소희가 대답했다.“구택도 남궁민을 알아.”심명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가려고 했다. 그때 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뭐죠? 얼굴 보기도 전에 도망가려는 건가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남에게 뺏긴 거죠.”소희는 남궁민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무슨 말이야?”심명은 얼굴이 굳어지며 남궁민에게 한 대 더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소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임구택이 왔으면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군.”구택은 이미 소희를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소희의 손을 먼저 잡은 뒤 남궁민과 심명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남궁민이 입을 열기 전, 소희가 먼저 소개했다.“내 남자친구, 임구택.”남궁민은 이미 이디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내밀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장님, 반가
“남궁민은 어디 있어?” 소희가 물었다. 심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희는 소파에 다리와 팔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남궁민을 보게 되었다.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희, 드디어 다시 만났네!”소희는 다가가 직접 그의 묶인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을 보러 왔지!심명은 이 광경에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말하려면 제대로 해. 그 지독한 표정은 뭐야? 나도 아직 여기 있거든.”남궁민은 심명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예전부터 찾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한동안 강시언의 일을 돕느라 조금 늦었거든.”소희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새해에 그 메시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남궁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나야!”소희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데?”“호텔에 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그럼 점심은 내가 대접할게.”“좋지!” 남궁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사는 곳이니, 네가 주인이지.”그때 심명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희에게 애교 섞인 불만을 표했다.“나도 같이 갈래! 그런데 왜 나한텐 밥 사준다고 안 해?”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여긴 네 구역이라며. 자기 땅에서 뭘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우리 둘 사이에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거든요!” 심명은 이를 악물자, 소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둘 다 그만 좀 해. 점심은 내가 두 사람 다 대접할 테니까.”두 사람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점심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소희는 차를 가져왔고, 남궁민은 아까까지 묶여 있었기에 당연히 소희의 차에 탔다. 그는 앞좌석 문을 열
소희는 놀란 듯 말했다.[남궁민? 어디 있어?]“지금 내 곁에 있어. 네가 오랫동안 미행을 당하는 걸 보고 그를 데려왔어.”“그자가 혹시라도 너를 괴롭히는 거라면, 내가 당장 그를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소희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주소 좀 보내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알았어!” 심명은 기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희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명은 소희와 곧 만나게 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즉시 주소를 보냈다. 그러자 남궁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심명을 쳐다보았다.“이제 내가 소희의 친구라는 걸 알았으니, 얼른 나 좀 풀어줄래요?”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소희의 전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후로 불편함이 가득했기에, 냉소하며 말했다.“소희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나요? 얌전히 기다려요.”남궁민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다리는 자유로워 스스로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심명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심명은 남궁민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소희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남궁민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무시하듯 말했다.“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심명은 냉소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소희가 오기 전에 널 영영 소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 권리도 있다는 거 잊지 마요.”남궁민은 심명이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우린 꽤 오래된 친구예요.”“꽤 오래됐다고요? 그럼 내가 소희를 만난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절이라는 건가요?”“당연히 그렇죠!” 남궁민은 소희와의 만남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며 말했다.“그때 소희가 나한테 총을 건네줬거든요.”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자기 보호도 못 하는 주제에 전장에 나간 걸 자랑이라고 해요?”“난 그래서 그 생사를 함께한 친
남궁민은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랑 소희의 관계? 나는 소희의 전 남친이자, 생사를 함께한 친구...”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은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위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신의 소희의 뭐라고요? 방금 잘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봐요.”남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소희의 전...”퍽! 심명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심명의 매력적인 눈매는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섬뜩하고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내가 아는 한, 소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건 나뿐이에요. 감히 나의 소희를 핑계 삼으려고 하다니, 죽여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요!”남궁민은 입가에 상처가 생겨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물고 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기도 법과 인권이 있는 나라니 조심해요.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니까. 아니, 지금 내 인신 자유를 불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꼭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심명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이곳은 내 구역인데, 당신이 뭘 하든 내가 겁낼 줄 알아요?”그리고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데려가서 실컷 두들겨 패.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남궁민은 심명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진짜로 서희를 알아요. 그래서 C 국까지 찾아온 거라고요!”심명은 남궁민이 서희라는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경계심이 더해졌다.“찾으러 온 이유가 뭐죠?”남궁민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말했잖아요. 우리는 친구이자, 생사를 함께한 사이라고.”“생사를 함께 했다고요?” 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우리 소희를 구한 적이라도 있다는 건가요?”“서희가 날 구했죠.” 남궁민은 자부심이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또한 우린 함께 싸운 적도 있다고.”심명은 소희의 과거에 대해 일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약간의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에게 구원받았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네.”남궁민은 심명의 비꼬는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
결혼식까지는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원래라면 소희는 지금쯤 운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결혼 전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소희는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직접 할아버지께 말씀드려.”구택은 낮게 웃으며 끝없이 소희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좋아, 내가 말할게. 할아버지도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야.”소희는 침대에 눕자 이불을 뒤집어쓰며 몸을 말아 올렸다. 손을 뻗어 불을 끄고는 말했다.“너무 졸려, 이제 자자!”구택은 욕실 가운을 벗어 이불을 젖히고 들어가 소희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에 입맞춤을 남겼다.“분명 아까까지는 아주 생기 넘치더니.”“조금 자제해주면 안 돼?” 소희는 살짝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구택은 그녀의 목선을 따라 올라가 귀밑을 가볍게 입 맞추며 말했다.“곧 운성으로 돌아가잖아. 우리 사흘 동안 못 보겠는걸.”“나흘이야!” 소희는 구택을 바로잡았다.“나흘도 길지. 내가 혼자 이 침대를 지키며 네가 없는 네 밤을 보내야 한다니.” 구택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고 매혹적으로 변해갔다. 그는 소희의 귀 뒤에 자극적인 입맞춤을 남겼다.소희는 귀 뒤의 예민한 피부가 붉게 물들며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그 결과, 다음 날 아침 소희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구택은 원래 그녀와 함께 출근하고 싶었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보고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얻었으니, 오늘은 양보해야지. 나 혼자 출근할 수밖에.”소희는 그의 애처로운 투정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구택을 보았다.“얼른 출근해. 저녁에 내가 데리러 갈게.”“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아침 꼭 챙겨 먹고, 나갈 때는 연락해.” 구택이 당부했다.“알겠어!”구택은 소희의 뺨에 입맞춤을 남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소희는 열 시까지 푹 자고 아침을 먹은 후 구택
그날 밤, 어정.임구택이 샤워하는 동안 소희는 발코니의 소파에 기대어 성연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희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가 묻어 있었고, 눈매는 지쳐 보였다. 연희는 결혼식 날 구택이 신부를 맞이하러 올 때 어떻게 혼내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아, 맞다. 소희야, 지씨 가문의 일 들었어?] 연희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고, 졸음이 밀려오던 소희는 흐릿하게 대답했다.“지씨 가문? 무슨 일이야?”[지씨 가문의 어르신이 돌아가시자마자 엄청난 권력 다툼이 일어났대. 결국 지승현이 이겼다고 하더라.][다들 상상도 못 했지. 지씨 가문에서 내쫓겼던 할머니가 이런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을 줄은 말이야!] 연희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사실 나도 아심이 때문에 지씨 가문에 관심을 두게 됐어. 그동안 유언장 때문에 아심이가 지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거든.][나도 그녀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집 할머니가 몰래 주식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지씨 가문 사람들도 아심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어.]아심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는 금세 정신이 들었고, 성연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눈빛에는 생각에 잠긴 기색이 더해졌다.연희가 덧붙였다.[지승현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정말 냉정한 사람인 것 같아.][이틀 만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측 사람들을 많이 내쫓았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이런 성격을 가진 지승현이니,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지.][그래서 아심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좀 걱정돼.]소희는 마음이 복잡해져 연희와 몇 마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옆에 앉으며 방금 말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아까는 졸린다며?”소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뭔데?” 구택은 욕실 가운을 반쯤 열어젖히고 다가왔고, 그로 인해 은은한 차가운 향과 함께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승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할머니의 마음이야. 그리고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기도 해.”아심이 대답했다.“할머니의 마음은 손자며느리에게, 지씨 가문의 일원에게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받을 수 없어. 네가 가지고 있다가, 미래의 아내에게 전해줘.”“아심아...” 승현은 여전히 아심을 설득하고 싶어 하자, 아심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넌 날 잘 안다고 했잖아. 그러니 더는 설득하지 마.”승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심아, 굳이 모든 관계를 이렇게 명확히 나눌 필요는 없잖아.”“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친구 사이에도 서로 조금씩 빚지며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는 거야.”아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게.”승현은 아심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져 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아쉬움도 느껴졌다.“아심아, 앞으로 우리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물론이지.” 아심은 미소 지었다.“설마 나에게 원망이 남아서, 선을 긋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당연히 그럴 리 없지!” 승현은 즉시 대답했다.“난 네게 오직 고마운 마음뿐이야.”그리고 아쉬움도 함께.“그럼 됐네.”이때 직원이 음식을 가져와 두 사람은 대화를 잠시 멈췄다. 아심은 숟가락을 들어 웃으며 말했다.“일단 식사하자. 며칠 동안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오래야.”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그렇게 고생해? 돈이야 끝없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고생하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야.” 아심은 해산물 수프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한 번 바빠지면 그냥 멈추기 싫어지거든.”승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래도 건강은 챙겨야 해. 의사도 그렇게 당부했잖아.”“알겠어.”두 사람은 가볍게 일상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승현
아심은 표정 변함없이 물을 따라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눈치챘어?”승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응.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내 개인 계좌에 정아현 씨가 보낸 돈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아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아현 씨가 그러더라고. 네가 부탁한 거라고, 네가 소개해 준 고객에 대한 커미션이라고 말이야.”“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정말로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구나.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병원에서 서명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그리고, 그때 이미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며 힘든 시기를 함께해준 거고.”“또한 예전에 네가 아플 때 내가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고.”“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너는 일부러 강성을 떠났지.”“혹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을까 봐,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아심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 나도 아쉬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매일 할머니와 통화했잖아.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셨고, 가시는 길도 평온하셨어.”“그렇다면 다행이네.”아심은 승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별할 때 얽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심아, 정말로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아심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사실 중간에 너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겐 무리였어.”승현이 물었다.“그 사람 때문이야?”아심은 솔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래.”승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