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의자에 앉아 있자, 미나가 바로 물병을 따서 건넸다.“고마워요!” 소희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이지민 감독님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씨 집안과 맞서길 원해요?”“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온 드라마 팀이 영향을 받는데, 감독님이 혼자서 그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이지민 감독님의 입장에서는 드라마 팀을 생각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나는 원망한 적이 없고요. 내가 집에 머무르겠다고 제안했던 거야.”미나가 소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소희, 난 네 의견에 동의하는 바야.”하지만 정남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해!”“뭐가 답답한데?” 미나가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정남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선유도 우리 소희 때문에 경성으로 돌아갔는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알아? 전체 드라마 팀 승리했다고 느끼는데, 어디가 답답해? 게다가.” 미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소희가 온라인에서 공격받던 날, 이지민 감독님이 온라인에서 소희를 옹호하는 글을 몇 개나 썼어.”“그날 나는 감독님 사무실에 물건을 전달하러 갔을 때, 감독님이 시나리오 아래에 둔 핸드폰에서 장문을 고치고 있는 걸 봤어.”“모두 소희가 일에 진지하고 능력이 있다고 칭찬하는 내용이었어. 그러니까 감독님도 소희 편인데, 그저 이씨 집안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그런 거야.”그러자 정남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건 다행이네!”“어쨌든 대감독이야, 너 좀 보라고, 그 마음씨가!” 미나가 비웃자 정남이 화를 내며 말했다.“누구? 넌 어제 내가 산 아이스크림 먹을 때는 왜 그런 소리 안 했어? 너 이 아이스크림 하나에 만원이나 써놓고!”“그 돈으로 밥 한 끼를 먹고도 남겠어.”“그냥 대충 골랐을 뿐인데, 누가 그렇게 비쌀 줄 알았겠어?”소희가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의 다툼을 보고 있었다. 소희가 없는 며칠 동안 둘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것이
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지민 감독님을 탓하지 마. 내가 돌아오고 싶었어.”임구택은 소희가 이 드라마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무엇도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말해. 다시 숨기지 마.”“알겠어.”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배고파, 먼저 밥 먹으러 가야겠어.”구택은 그녀의 얼버무리는 어조에 화가 났지만 화낼 기력이 없었다. “가, 밥 많이 먹고, 찬 것은 덜 먹어.”“알았어!” 소희가 순순히 대답했다.오후에 성연희가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자기가 오후에 시간이 있다며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소희는 손에 들고 있던 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일하고 있어서 시간이 없어.”“드라마 팀에 갔어? 언제 퇴근요?” “5시쯤에 퇴근!”“그럼 5시에 데리러 갈게요!” 연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임구택한테 휴가 신청하고, 저녁에 술 한잔해요!”연희가 계속 질척거리자 소희가 펜을 멈추며 물었다. “노명성하고 아직도 안 풀렸어?”“아니!”“이선유가 떠났는데, 무슨 문제 있어?” 무심코 말하는 연희에 소희의 미간을 찌푸렸다.“저녁에 얘기해!”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밖에서 옷을 사는데, 너한테 딱 맞는 옷이 있어. 검은색이 좋아 아니면 하얀색? 됐어, 둘 다 사면되지. 그럼 나 끊을게!”연희는 소희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소희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연희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만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쇼핑하러 갔었다. 그러니, 연희는 겉보기와 달리 전혀 태평스럽지 않았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성희는 화려한 스포츠카를 몰고 왔다.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는 선글라스를 낀 채, 벽돌색의 타이트한 롱드레스와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연예인 뺨치는 모습이었다.연희는 바로 소희 앞으로 걸어가 소희 손에서 제작 리스트를 빼앗아 미나에게 건네주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퇴근 시간이 됐으니
“그 사람이 회사로 꽃을 보냈는데, 내가 다 버렸어!” 성연희의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성연희는 굉장히 매혹적이었고 소희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눈앞에서 김영과 이선유가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걸 보고만 있었어. 이건 절대 용서할수 없는 일이야!”바에서 강한 술 냄새와 헤비메탈 음악으로 가득 찼고, 깜빡이는 조명 아래에서도 소희의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다. “사실, 네 마음에 가장 걸리는 건 노명성이 결혼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는 거잖아?”연희는 푸른색의 술이 담긴 잔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명성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먼저 고백했고, 첫 키스도, 첫날밤도 내가 먼저 했어.”“근데 결혼얘기도 내가 먼저 꺼내야 하나? 함께한 이 많은 시간 동안, 매번 다투고 나 화내서 집에 갔다가도 결국엔 얌전히 돌아갔어.”“명성은 내가 본인 없이는 못 산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연희는 고개를 들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술이 그녀의 붉은 입술을 적시며 불길처럼 타올랐고, 연희의 말투도 결연했다. “이번엔 내가 정말로 명성 없이도 살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소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명성은 널 사랑해!”“하지만 나는 더 사랑해. 언젠가는 못 버티고 말 걸 나도 알아.”연희가 한숨을 쉬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만약 우리가 정말로 헤어진다 해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사랑도 받았으니까.”소희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김영이 두 잔의 술을 들고 와 연희 앞에 한 잔을 놓으며 소유욕이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연희 누나!”연희가 고개를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부족했나? 왜 여기 와? 나 지금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얼른 꺼져!”김영은 연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에 든 술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김영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지며 결연해졌다. “누나, 나 누나를 좋아해요! 사랑하
반 시간 후, 임구택은 술집 근처의 경찰서에서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소희를 발견했다.소희는 구택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소희의 모습은 멀쩡해 보였고 다소 억울해 보였다. “나도 몰라, 이렇게 사소한 일로 술집 사람들이 경찰을 부를 줄은!”구택은 소희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경찰서에서 전화 왔을 때, 네가 싸움으로 경찰서에 갇혔다는데 하나도 놀라지 않았어!”구택의 말에 소희는 다소 죄책감이 들었다. “성연희가 치마를 입고 있어서 불편하니까, 그래서.”시무룩해하는 소희에 구택은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 “앞으로 연희와 술 마시러 가지 않는 건 어때?”“나랑 술 마시는게 어때서요?” 연희가 다가오며 태연하게 웃었다. “구택 씨가 오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하고 소희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었어요!”그리고 구택은 일어서 연희 뒤를 따라오는 김영을 바라보았다. 김영은 구택의 차가운 눈빛에, 다급히 해명했다.“제가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니에요!”“압니다.” 구택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앞으로 연희 씨에게서 멀리하세요. 다음번에 소희가 또 때리면 발로 차기만 하는 게 아닐 겁니다.”김영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구택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집에 가자!” 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명우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연희는 술을 마셨으니 연희를 태워 집에 데려다 주었다. 구택은 다른 차를 몰고 소희를 집으로 데려갔다. 소희는 조수석에 앉아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가능하면 손은 안 쓸게.”이선유 때문에도 경찰서에 가지 않았는데, 김영 때문에 다시 온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소희가 여자 경찰을 다시 만났을 때, 여자 경찰 다가오는 걸 보고 이제 곤란해졌다는 걸 알았다. 분명 나쁜 소식일게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구택은 미소를 띤 채 가볍게 눈길을 주었다.
수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고명계 부사장이 우청아를 사무실로 부른다.고명계 부사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청아에 대한 태도에는 인재를 아끼는 온화함이 묻어났다. “오늘 성수현 사장님이 전화하셔서 당신이 디자인한 별장에 대해 상세히 매우 만족하신다고 하셨어요.”“시대를 앞서가면서도 인간적임을 잃지 않았다고, 정말 훌륭하다고요!”청아는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감사합니다!”“이것도 청아 씨가 회사에 온 후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죠. 제가 디자인을 봤는데 정말 괜찮더라고요!” 고명계 부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 성수현 사장님이 저녁을 대접한다고 하셨어요. 첫째로는 청아 씨 아직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으니 정식으로 인사를 나눠요.”“두 번째로는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요구사항을 청아 씨랑 직접 논의하고 싶어 하세요.”“좋아요, 문제없어요!” 청아는 쾌활하게 대답했다.“그럼 준비하고, 퇴근하고 나서 제가 청아 씨를 데려다 줄게요!” “네, 그럼 저는 먼저 나가겠습니다!” 청아가 웃으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이지현이 의자를 타고 다가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고명계 부사장님이 무슨 일로 부른 거예요? 또 다른 일거리를 주는 건가?”“아니에요!” 청아가 성수현 사장에게 제출한 모든 디자인 초안을 정리하며 말했다. “성수현 사장의 원본 작업이 통과됐어요. 내부 디테일에 대해 더 논의할 것이 있어서 고명계 부사장님이 성수현 사장과 약속을 잡았어요.“오늘 저녁에 직접 이야기할 예정이래요.”“긴장돼요?” 지현이 물었다. “전 첫 고객을 만났을 때 나는 너무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어요.”“그 고객은 30대 여성이었는데, 명품으로 치장하고는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타입이었고요.”“내가 한 일에 트집을 잡으면서 욕을 퍼붓더라고요. 그래서 난 밖에 나가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고요.”“그 후에는 어땠어요?”“그 후에 나는 뻔뻔스럽게도 자주 고객을 찾아갔어요.”“고객이
음식과 술이 준비되자 성수현은 먼저 우청아에게 술을 따랐다. “청아 씨, 비록 오늘이 우리의 첫 만남이지만 꽤 오래 알고 지내온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이 잔은 청아 씨를 위해 제가 따르도록 하죠.”“이렇게 멋있는 별장을 저를 위해 설계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전 원샷 할 테니 청아 씨는 편히 마셔요.”성수현의 말에 청아는 아무 말없이 반 잔을 마셨다.“좋아요, 저는 청아 씨처럼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요!” 성수현이 다시 술병을 들어 청아에게 술을 따르자 청아의 옆에 있던 고명기가 웃으면서 말했다.“청아 씨가 술을 잘 못 마시니까 두 번째 잔은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를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의 협업이 즐겁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청아 씨가 계시니 당연히 즐거울 겁니다!” 성수현 사장이 청아에게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고는 한꺼번에 마셨다.“청아 씨.” 또 빈 잔을 청아에게 보이는 성수현에 고명기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청아 씨, 디자인의 세부 사항을 성수현 사장님과 상의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서 가져와 보세요!”“아!” 청아는 바쁘게 자신이 가져온 디자인 도면과 자료를 성수현에게 보여주었지만 성수현 은 필요 없다는 듯 크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볼 필요 없어요, 청아 씨, 청아 씨 생각대로 디자인하면 됩니다. 저는 당신을 믿어요!”“그래도 한 번 봐주세요!”청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성수현은 자신의 BMW M8 차 키를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던졌다.“볼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자꾸 선 그으면 저 진짜 화낼 겁니다.”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성수현에 청아와 고명기는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져온 디자인 도면을 접었다.“청아 씨, 난 이제부터 그냥 청아라고 부를거고, 청아도 저한테 말 놔요. 뭐 수현 오빠라고 불러요, 성수현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정 없잖아요.”성수현이 계속해서 청아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는
“참나, 정말 융통성이 없네!” 성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취하면 어때서, 여기서 고급 스위트룸을 열어 줄게. 원하는 만큼 머무르면 돼!”성수현의 강요에 우청아는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자 기분 좋아 보이는 성수현에 고명기가 청아에게 말했다.“담배가 없네요. 청아 씨 나가서 담배 한 갑 사다 줘요, 말보로 레드로.”이에 성수현 사장이 바로 말했다. “여기 시가렛 있는데 내 걸로 피워요.”“아닙니다. 전 이 담배가 익숙해져서 청아 씨보고 사오라고 하면 됩니다.”고명기의 말에 청아는 담배를 사러 일어났고 잠시 뒤, 청아에게서 연락이 왔다.“부사장님, 편의점 왔는데 말보로 레드는 없고 화이트후레쉬 멘솔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이에 고명기가 차갑게 말했다.“이런 사소한 일도 못 하나요? 머리는 달고 다니는 겁니까? 그 편의집에 없으면 다른 데 가서 사요. 사지 못하면 돌아올 필요도 없고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자 성수현이 웃으며 말했다.“뭘 또 담배 한 갑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성수현의 말에 고명기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로 온 직원이라 좀 서툴러서 가르쳐 줘야죠.”“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너그럽게 봐줘야죠!” 성수현이 비릿하게 웃었는데 그 웃음속에 불순한 의도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고 술잔을 들고 고명기와 건배했다.“우리끼리 먼저 한잔해요.”레스토랑 맞은편 편의점에서 청아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혼이 난 청아는 한참 멍해 있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고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부사장님, 나가실 때 제 디자인 도안을 회사로 가져도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문자를 보낸 청아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다음 날, 성수현은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일찍 떠났는지 물었다. 이에 청아는 대충 핑계를 대며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청아는 디자인 작업만 잘하고 싶을 뿐, 다른 문제는 원하지
꽤 큰 유혹에도 불구하고 청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저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아니 이 아가씨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황대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회사의 어떤 고급 디자이너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어요. 누구인지는 말 안 할게요.”“그 사람은 이 몇 년 동안 돈을 벌어서 강성에 두 채의 집을 샀고,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어요. 당신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당신에게는 이런 기회가 있어요. 당신은 예쁘고 피부도 좋잖아요. 성수현 사장님이 당신을 좋아하시는데, 이런 기회는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합니다.”이에 청아는 비꼬며 말했다. “저 실례지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건축 디자인 회사인가요 아니면 클럽인가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아니 청아 씨, 내가 이렇게 좋게 얘기하고 있는데 왜 말하는 태도가 그런 거죠?”“저는 제안하신 방법으로 승진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제가 이 프로젝트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 디자인은 제가 양보할 수도 있고요.”맹랑하게 말하는 청아에 황대헌 부사장이 차갑게 말했다.“총이익의 5%를 줄게요. 그걸로 강성에 집 한 채 살 수 있어요!”하지만 청아는 여전히 결연하자 황대헌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이익을 전부 주신다고 해도 제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우청아 씨, 성수현 사장님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단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고객과의 충돌’로 해고할 수 있어요!”“편하실 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는 가지 않을 거니까. 해고 통지 기다릴게요.”말을 마치고 청아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가자 황대헌은 화가 나 거의 컵을 던질 뻔했다,“무식한 것!”다음 날, 황대헌은 다시 청아를 찾아와 3일의 시간을 주며 가지 않으면 해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지 3초 만에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 안에서 소희는 깜빡거리는 전화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민이 불편해할까 싶어 임구택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끊고,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문자로 해.][왜 전화 끊었어? 그 사람은 왜 왔어?]소희는 첫 질문은 넘기고 대답했다.[아마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온 것 같아.][그런데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밥까지 사?][손님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지.]그러자 구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그럼 어디로 가는지 주소 보내.]소희는 예정된 식당 주소를 보냈다. 그 사이 앞좌석에서는 심명과 남궁민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소희는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날렵하고 우아한 맞춤 정장을 입고, 시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심명도 구택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며 소희에게 물었다.“왜 임구택까지 불렀어?”소희가 대답했다.“구택도 남궁민을 알아.”심명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가려고 했다. 그때 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뭐죠? 얼굴 보기도 전에 도망가려는 건가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남에게 뺏긴 거죠.”소희는 남궁민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무슨 말이야?”심명은 얼굴이 굳어지며 남궁민에게 한 대 더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소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임구택이 왔으면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군.”구택은 이미 소희를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소희의 손을 먼저 잡은 뒤 남궁민과 심명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남궁민이 입을 열기 전, 소희가 먼저 소개했다.“내 남자친구, 임구택.”남궁민은 이미 이디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내밀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장님, 반가
“남궁민은 어디 있어?” 소희가 물었다. 심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희는 소파에 다리와 팔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남궁민을 보게 되었다.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희, 드디어 다시 만났네!”소희는 다가가 직접 그의 묶인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을 보러 왔지!심명은 이 광경에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말하려면 제대로 해. 그 지독한 표정은 뭐야? 나도 아직 여기 있거든.”남궁민은 심명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예전부터 찾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한동안 강시언의 일을 돕느라 조금 늦었거든.”소희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새해에 그 메시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남궁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나야!”소희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데?”“호텔에 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그럼 점심은 내가 대접할게.”“좋지!” 남궁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사는 곳이니, 네가 주인이지.”그때 심명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희에게 애교 섞인 불만을 표했다.“나도 같이 갈래! 그런데 왜 나한텐 밥 사준다고 안 해?”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여긴 네 구역이라며. 자기 땅에서 뭘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우리 둘 사이에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거든요!” 심명은 이를 악물자, 소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둘 다 그만 좀 해. 점심은 내가 두 사람 다 대접할 테니까.”두 사람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점심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소희는 차를 가져왔고, 남궁민은 아까까지 묶여 있었기에 당연히 소희의 차에 탔다. 그는 앞좌석 문을 열
소희는 놀란 듯 말했다.[남궁민? 어디 있어?]“지금 내 곁에 있어. 네가 오랫동안 미행을 당하는 걸 보고 그를 데려왔어.”“그자가 혹시라도 너를 괴롭히는 거라면, 내가 당장 그를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소희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주소 좀 보내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알았어!” 심명은 기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희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명은 소희와 곧 만나게 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즉시 주소를 보냈다. 그러자 남궁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심명을 쳐다보았다.“이제 내가 소희의 친구라는 걸 알았으니, 얼른 나 좀 풀어줄래요?”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소희의 전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후로 불편함이 가득했기에, 냉소하며 말했다.“소희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나요? 얌전히 기다려요.”남궁민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다리는 자유로워 스스로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심명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심명은 남궁민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소희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남궁민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무시하듯 말했다.“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심명은 냉소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소희가 오기 전에 널 영영 소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 권리도 있다는 거 잊지 마요.”남궁민은 심명이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우린 꽤 오래된 친구예요.”“꽤 오래됐다고요? 그럼 내가 소희를 만난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절이라는 건가요?”“당연히 그렇죠!” 남궁민은 소희와의 만남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며 말했다.“그때 소희가 나한테 총을 건네줬거든요.”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자기 보호도 못 하는 주제에 전장에 나간 걸 자랑이라고 해요?”“난 그래서 그 생사를 함께한 친
남궁민은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랑 소희의 관계? 나는 소희의 전 남친이자, 생사를 함께한 친구...”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은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위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신의 소희의 뭐라고요? 방금 잘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봐요.”남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소희의 전...”퍽! 심명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심명의 매력적인 눈매는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섬뜩하고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내가 아는 한, 소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건 나뿐이에요. 감히 나의 소희를 핑계 삼으려고 하다니, 죽여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요!”남궁민은 입가에 상처가 생겨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물고 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기도 법과 인권이 있는 나라니 조심해요.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니까. 아니, 지금 내 인신 자유를 불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꼭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심명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이곳은 내 구역인데, 당신이 뭘 하든 내가 겁낼 줄 알아요?”그리고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데려가서 실컷 두들겨 패.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남궁민은 심명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진짜로 서희를 알아요. 그래서 C 국까지 찾아온 거라고요!”심명은 남궁민이 서희라는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경계심이 더해졌다.“찾으러 온 이유가 뭐죠?”남궁민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말했잖아요. 우리는 친구이자, 생사를 함께한 사이라고.”“생사를 함께 했다고요?” 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우리 소희를 구한 적이라도 있다는 건가요?”“서희가 날 구했죠.” 남궁민은 자부심이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또한 우린 함께 싸운 적도 있다고.”심명은 소희의 과거에 대해 일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약간의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에게 구원받았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네.”남궁민은 심명의 비꼬는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
결혼식까지는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원래라면 소희는 지금쯤 운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결혼 전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소희는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직접 할아버지께 말씀드려.”구택은 낮게 웃으며 끝없이 소희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좋아, 내가 말할게. 할아버지도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야.”소희는 침대에 눕자 이불을 뒤집어쓰며 몸을 말아 올렸다. 손을 뻗어 불을 끄고는 말했다.“너무 졸려, 이제 자자!”구택은 욕실 가운을 벗어 이불을 젖히고 들어가 소희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에 입맞춤을 남겼다.“분명 아까까지는 아주 생기 넘치더니.”“조금 자제해주면 안 돼?” 소희는 살짝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구택은 그녀의 목선을 따라 올라가 귀밑을 가볍게 입 맞추며 말했다.“곧 운성으로 돌아가잖아. 우리 사흘 동안 못 보겠는걸.”“나흘이야!” 소희는 구택을 바로잡았다.“나흘도 길지. 내가 혼자 이 침대를 지키며 네가 없는 네 밤을 보내야 한다니.” 구택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고 매혹적으로 변해갔다. 그는 소희의 귀 뒤에 자극적인 입맞춤을 남겼다.소희는 귀 뒤의 예민한 피부가 붉게 물들며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그 결과, 다음 날 아침 소희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구택은 원래 그녀와 함께 출근하고 싶었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보고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얻었으니, 오늘은 양보해야지. 나 혼자 출근할 수밖에.”소희는 그의 애처로운 투정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구택을 보았다.“얼른 출근해. 저녁에 내가 데리러 갈게.”“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아침 꼭 챙겨 먹고, 나갈 때는 연락해.” 구택이 당부했다.“알겠어!”구택은 소희의 뺨에 입맞춤을 남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소희는 열 시까지 푹 자고 아침을 먹은 후 구택
그날 밤, 어정.임구택이 샤워하는 동안 소희는 발코니의 소파에 기대어 성연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희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가 묻어 있었고, 눈매는 지쳐 보였다. 연희는 결혼식 날 구택이 신부를 맞이하러 올 때 어떻게 혼내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아, 맞다. 소희야, 지씨 가문의 일 들었어?] 연희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고, 졸음이 밀려오던 소희는 흐릿하게 대답했다.“지씨 가문? 무슨 일이야?”[지씨 가문의 어르신이 돌아가시자마자 엄청난 권력 다툼이 일어났대. 결국 지승현이 이겼다고 하더라.][다들 상상도 못 했지. 지씨 가문에서 내쫓겼던 할머니가 이런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을 줄은 말이야!] 연희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사실 나도 아심이 때문에 지씨 가문에 관심을 두게 됐어. 그동안 유언장 때문에 아심이가 지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거든.][나도 그녀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집 할머니가 몰래 주식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지씨 가문 사람들도 아심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어.]아심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는 금세 정신이 들었고, 성연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눈빛에는 생각에 잠긴 기색이 더해졌다.연희가 덧붙였다.[지승현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정말 냉정한 사람인 것 같아.][이틀 만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측 사람들을 많이 내쫓았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이런 성격을 가진 지승현이니,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지.][그래서 아심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좀 걱정돼.]소희는 마음이 복잡해져 연희와 몇 마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옆에 앉으며 방금 말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아까는 졸린다며?”소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뭔데?” 구택은 욕실 가운을 반쯤 열어젖히고 다가왔고, 그로 인해 은은한 차가운 향과 함께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승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할머니의 마음이야. 그리고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기도 해.”아심이 대답했다.“할머니의 마음은 손자며느리에게, 지씨 가문의 일원에게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받을 수 없어. 네가 가지고 있다가, 미래의 아내에게 전해줘.”“아심아...” 승현은 여전히 아심을 설득하고 싶어 하자, 아심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넌 날 잘 안다고 했잖아. 그러니 더는 설득하지 마.”승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심아, 굳이 모든 관계를 이렇게 명확히 나눌 필요는 없잖아.”“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친구 사이에도 서로 조금씩 빚지며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는 거야.”아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게.”승현은 아심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져 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아쉬움도 느껴졌다.“아심아, 앞으로 우리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물론이지.” 아심은 미소 지었다.“설마 나에게 원망이 남아서, 선을 긋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당연히 그럴 리 없지!” 승현은 즉시 대답했다.“난 네게 오직 고마운 마음뿐이야.”그리고 아쉬움도 함께.“그럼 됐네.”이때 직원이 음식을 가져와 두 사람은 대화를 잠시 멈췄다. 아심은 숟가락을 들어 웃으며 말했다.“일단 식사하자. 며칠 동안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오래야.”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그렇게 고생해? 돈이야 끝없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고생하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야.” 아심은 해산물 수프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한 번 바빠지면 그냥 멈추기 싫어지거든.”승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래도 건강은 챙겨야 해. 의사도 그렇게 당부했잖아.”“알겠어.”두 사람은 가볍게 일상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승현
아심은 표정 변함없이 물을 따라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눈치챘어?”승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응.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내 개인 계좌에 정아현 씨가 보낸 돈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아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아현 씨가 그러더라고. 네가 부탁한 거라고, 네가 소개해 준 고객에 대한 커미션이라고 말이야.”“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정말로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구나.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병원에서 서명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그리고, 그때 이미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며 힘든 시기를 함께해준 거고.”“또한 예전에 네가 아플 때 내가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고.”“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너는 일부러 강성을 떠났지.”“혹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을까 봐,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아심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 나도 아쉬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매일 할머니와 통화했잖아.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셨고, 가시는 길도 평온하셨어.”“그렇다면 다행이네.”아심은 승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별할 때 얽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심아, 정말로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아심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사실 중간에 너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겐 무리였어.”승현이 물었다.“그 사람 때문이야?”아심은 솔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래.”승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