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강남은 자기 전에 갑자기 내일이 추석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허홍연과 상의했다.“엄마, 내일 추석인데 청아한테 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할까요?”“오랜만에 오니까 내일 아침에 시장에 가서 청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사오죠.”“그리고 요요도 있으니까 우리 가족이 함께 즐거운 명절을 보내자고요.”강남이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청아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허홍연의 얼굴색이 변하며 서둘러 말렸다. “전화하지 마!”“왜 그래요?” 강남이 당황해서 묻자 허홍연은 동공이 흔들렸다. 허홍연은 우임승이 이미 일을 찾아 떠났다는 것을 모르고 우임승이 여전히 청아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청아가 오면 우임승도 함께 오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허홍연은 우임승이 새집을 찾아오고 여기에 살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본인과 우임승이 한집에서 사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갔고, 허홍연은 매일 싸우고 싶지 않았다.더욱이 정소연이 강남에게 이런 도박꾼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화를 내면서 친정으로 돌아가게될까 봐서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허홍연은 소연이 빨리 손주를 낳기를 바랐다.“청아가 오늘 오후에 전화 왔어, 내일 일 한다고 못 온다고 했고!” 허홍연은 아무 생각 없이 변명하자 강남이 미간을 찌푸렸다.“추석에도 일을 나간다고요?”그러자 소연이 다가와서 비웃듯이 말했다. “큰 회사니 바쁘지. 당신 동생은 사장님 곁의 사람이니 일이 더 많을 거야.”“당신처럼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쥐꼬리만큼 일 거라고 생각해?”강남은 소연의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급히 말했다. “그럼 됐어, 청아 보고 일하라고 하고 시간 날 때 부르지 뭐.”허홍연이 소연이 주방에 물을 마시러 간 사이에 강남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낮게 말했다. “소연이 너한테 불만이 있는 거 아니야?”“아니에요!” 강남이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그건 농담이었어요.”강남의 대답에 그제야 안심이 된 허홍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제 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으니 자주 야
소희가 조용히 말했다. “둘이 화해했는지 안 했는지, 당신도 몰라?”“모르겠어, 명절 전에 바빠서 이 며칠 동안 장시원 못 봤어.”이에 소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청아와 시원 오빠 사이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청아를 설득해서 요요의 일을 시원에게 말하게 하는 건 어때?”임구택의 말에 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청아는 말하지 않을 거야. 특히 시원 오빠 어머니가 요요를 만난 적이 있다면 더더욱.”“요요가 시원 오빠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요요를 청아 곁에서 데려갈 수도 있어. 그리고 청아는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아 하고.”그러자 구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청아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는 건 아닐까?”“청아에게는 약점이 있고,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어. 그리고 요요를 위해서라도 청아는 신중해야 해.”소희의 눈빛이 차갑게 식으며 말했다. “명절에 청아와 요요가 본가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평소에 청아에게 얼마나 냉담한지 알 수 있어.”“청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들이 청아를 위해 나설 것 같아?”우씨 집안 사람들이 청아를 끌어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소희는 그들이 양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허홍연은 우임승을 부양할 책임을 모두 청아에게 미루고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타인인 소희도 화가 나는데 하물며 친딸인 청아는 오죽할까!진연이 소동을 편애하는 것은 소동이 어렸을 때부터 진연의 곁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진연은 모든 사랑과 정성을 소동에게 쏟아부었고, 이는 바꿀 수 없는것이었다. 그런데 왜 허홍연은 진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소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구택이 옆으로 누워 소희를 안아 주며 어깨를 감싸며 낮게 말했다. “아마도 우씨 집안 사람들의 냉담함이 시원이 청아를 더욱 연민하게 만들어. 그리고 어떤 사랑은 상쇄되는 것일 거야.”소희가 구택의 가슴에 기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일 청아한테 물어볼
소희는 상쾌하게 세수하고 우청아의 집으로 내려갔다.“구택 오빠는 왜 안 왔어?” 청아가 문을 열자 소희 혼자 온 걸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내 짐 정리해 주고 있어.”소희가 말하고 요요에게 다가가 아침을 같이 먹으러 가자며 요요를 안아 들었다.식사하면서 소희가 청아에게 함께 운성으로 명절을 보내자고 제안하자 청아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운성으로 간다고?”“응!” 소희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 혼자 계시고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하셔.”소희의 말에 청아가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불편하시지 않을까?”“전혀, 숙소 걱정도 할 필요 없어!” 소희가 생각할수록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식사 끝나면 나한테 설거지를 맡기고, 너랑 요요는 짐을 싸. 우리 9시에 출발하게!”소희가 말을 마치고 요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이모랑 함께 이모 고향에 가서 명절 보내는 거 어때?”요요는 활발했고 활기찬 걸 좋아해서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청아는 소희가 언급한 바 있는 소희를 입양하신 할아버지에 대해 항상 들어왔기에, 그저 어르신을 만나보는 걸로 생각하고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그리고 곧장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운성에서 이틀 동안 있을 예정이라 청아는 2일 치 옷을 가져갔고, 요요는 어린아이라 짐이 좀 더 많았다.모든 준비를 마치자 9시에 명우의 차가 아래로 도착했고 모두가 곧이어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요요는 놀러간다고 하니 계속 신이 나 있었다....10시에 비행기가 정시에 이륙했고, 사설 비행기였기 때문에 운성까지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오석은 일찍부터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고, 일행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아가씨, 임구택 씨!”“집사 할아버지, 추석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구택이 말했다.“평안하세요!”오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구택 씨가 보내주신 추석 선물
“소희의 친구라고?” 강재석은 오석과 마찬가지로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좋아, 좋아!”강재석은 요요를 바라보다가 소희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어쩐지 말이 안 된다고 했어. 네가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겠어?”갑작스러운 공격에 소희는 할 말을 잃었다....곧이어 강재석이 하인을 불러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 좀 가져와. 없으면 지금 바로 사 오고!”이에 청아가 서둘러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 길에 이미 많이 먹었어요.”요요는 친절하고 다정한 강재석을 좋아했고,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활짝 웃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강재석은 요요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더욱 다정하게 웃으며 요요에게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한테 와봐!”요요가 팔을 벌리고 강재석에게 달려가자 그는 요요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자, 우리 밥부터 먹자!”구택의 곁을 지나면서 강재석이 낮게 말했다. “너와 소희도 서둘러, 나도 손주 좀 안아 보게!”그러자 구택이 소희를 향해 은근한 눈길을 보내며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곧 안겨드릴게요.”“염두에 두고 있다니 그러면 됐어!” 강재석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요요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식당에서 하인들이 밥을 차리고 있었는데, 열 개의 반찬과 국 한 가지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운성 지역의 요리로 특색이 있었다.“청아 씨가 같이 올 줄 몰라서 점심은 좀 간단하게 준비했어요. 이해 바랄게요.”오석이 웃으며 말하자 청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미 아주 풍성한데요!”강재석도 한마디 거들었다. “모두 운성 지역의 음식이고, 입에 맞지 않는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말해요.”그러자 청아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강성의 많은 요리는 운성 요리에서 발전했죠. 여기에 다른 요리를 접목해서 발전한 거니까.”“강성의 음식이 퓨전이라면, 운성의 음식은 전통적이고 깔끔하다고 할 수 있죠
소정인 역시 소희더러 집으로 돌아와 명절을 함께 보내자고 했는데 소정인의 말에 진심이 어려 있었다. 소동은 일정 기간 심리 치료를 받은 후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소동도 이제 자신의 과거 행동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진심으로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소희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소희의 눈빛은 차가웠고, 어이없다는 듯 피식 비웃었다. “소동이 내가 집에 돌아오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돌아갈 수 없겠죠?”갑작스러운 말에 소정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말했다. “그런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야. 너와 소동이는 우리 딸이고, 너희 둘도 좋은 자매가 될 수 있어.”“괜찮아요. 엄마가 공개적으로 말했잖아요.”“나는 단지 입양한 딸일 뿐이고, 내 모든 것이 당신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요. 셋이 함께 잘 사세요.”소희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임구택이 서 있었다.“별일 아니야!” 소희가 구택을 보자 아까까지만 해도 냉기가 가득 서려 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었고 다정하게 구택을 쳐다봤다.“응.” 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손을 잡고 식사를 계속하러 방으로 들어갔다.식사 동안 요요와 강재석은 금세 친해졌다. 특히 강재석이 요요에게 자신의 연못 속 물고기를 자랑하자, 요요는 오후 낮잠도 거르고 함께 낚시하겠다고 했다. 둘은 연못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는데, 전혀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한편 청아는 복도의 목조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미소를 지을 때 양 볼에 생기는 작은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소희야, 네 집이 이렇게 부유할 줄 몰랐어!”강씨 저택으로 온 후 소희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원래 소희가 고아로, 산속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소희를 입양한 곳이 강씨 집안이었더니.두 사람은 복도에 앉아 있었고, 앞에는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뒤에는 자줏빛 대나무 길이 있었다. 건축을 전공한 데다가 산들바람과, 고
“아니, 나도 적절한 기회에 그만두려고 했어.” 청아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연인 사이가 될 수 없다면, 확실히 끊는 게 나으니까.”“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시카고로 돌아갈 거야?” “아니!” 청아의 눈빛은 맑고 깨끗했다. “3 년 전에 이미 한 번 도망쳤어.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나는 강성에서 자랐고 강성이 좋아.”“그래서 더 이상 떠돌지 않을 거고, 더 이상 요요에게 떠돌이 생활을 시키고 싶진 않아.”“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고, 추석 연휴가 지나면 면접 보러 갈 거야. 내 전공이랑 관련된 일이야.” 청아가 손으로 볼을 받치며 눈에는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원래 내 꿈은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거였어.”“이 몇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요요를 위해 살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은 없었어.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야!”소희는 이렇게 단호한 청아를 보며 진심을 다해서 응원했다.“넌 할 수 있을 거야!”이에 청아가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 소희야!”“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소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연못가에서 요요가 흥분해서 박수치며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돌아보니, 두 사람이 긴 팔의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린 것이었다. 강재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석을 불렀다.“오늘 밤에는 이 물고기를 먹도록 하지!”그때 청아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고, 전화를 확인해 보니 우임승의 전화였다. “청아야, 오늘 명절인데 집에 갔어?”“아니요, 친구랑 함께 있어요.”“명절에 왜 엄마랑 함께 시간을 안 보내?”이에 청아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아빠는 어때요?”“괜찮아, 상사들이 나를 잘 챙겨줘. 명절에는 많은 혜택도 줬어.”“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너는 너랑 요요만 잘 돌보면 돼.” 우임승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냥 안부 전화였어.”청아는 우임승이 정말로 제대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위에서 통화하고 있어!” 이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달콤한 월병을 집어 들고 오현빈에게 물었다. “너 뭐 먹을래?”“난 배 안 고파, 저녁에 먹자.”“난 뒷마당에 내 꽃이 피었는지 보러 갈게요!” 임유진이 월병을 하나 들고 뒷마당으로 향했고 위에서 서인은 발코니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며 졸고 있었다.잠시 후, 휴대폰이 진동하며 서인을 깨웠다. 서인은 겨우 눈을 뜨고 나른하게 화면을 살펴보다가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명절에 집에 오라고 하신 전화였는데, 어제부터 시작해서 벌써 세 번째였다. 곧이어 서인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이미 말했잖아요, 안 갈 거라고요. 알아서 명절 보내세요.”“서인아, 오늘은 가족이 모이는 날이야. 어떻게 너만 안 올 수 있니? 우리 몇 년간 함께 추석 보낸 적이 없잖아!” 구은태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 상태 너도 잘 알잖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거. 이번이 우리 부자가 같이 쇨 수 있는 마지막 추석일지도 몰라.”“그냥 내 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되겠니?”서인이 담배를 찾았고 얼굴에 분명한 불쾌함이 드러났다. “그저 추석일 뿐인데, 그렇게 중요한가요?”“너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추석이 있겠지만, 아빠에게는 너와 함께 보낼 추석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구은태가 진지하게 말했다.“6시에 갈게요.”딸칵, 서인이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말했다. “좋아, 좋아!” 구은태가 연신 대답하며 말했다. “우리는 너 오길 기다릴게!”“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서인이 전화를 끊었고 잠깐 들르기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서인은 그 ‘집'에 대해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서민지 모녀를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지 않았다.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나서 서인은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서 현빈과 다른 이들이 수박을 자르고 월병을 나누고 있었는데 서인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그에게 월병을 권했다.“어디서 온
“풉.” 옆에 있던 사람이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뿜어내었다. 이문도 크게 웃어서 어금니가 다 보였다. 본인들 사장이 현대판 신데렐라고 황금동앗줄을 잡은 사람이라니! 안 웃을래야 안 웃을 수가 없었다.한편, 서인은 자신이 부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서인의 마음은 이유 모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아마도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었다. 서인은 부엌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했고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멜빵 바지를 입은 소녀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임유진이었다.유진은 몸을 반쯤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옆에 있는 야옹이는 유진의 발아래에 누워 고개를 쓰다듬게 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장미 한 송이가 우연히 유진의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옆모습을 비추었고, 순식간에 온 마당이 생기를 되찾는 듯했다. 그 모습에 서인은 가슴이 뛰었다. ‘오현빈이 떠났다고 하지 않았나?’서인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당 안으로 걸어가며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명절인데 왜 여기에 왔어?” 유진이 서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유진의 눈꼬리는 귀엽게 휘어졌고 목소리는 쨍하게 울렸다. “보고 싶어서 왔죠!” 서인은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임유진, 네가 계속 이러면 나 직접 네 둘째 삼촌한테 전화할 거야!” 그러자 유진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작은 목소리로 불평했다. “서른 살이나 되었는데, 연애 한번 하는데 가족까지 찾아야 하는 거예요?” 유진의 도발에 서인은 이마에 파란 핏줄이 돋을 정도로 화가 났다. “무슨 연애야? 난 네 둘째 삼촌한테 전화해서 앞으로 네가 여기 오지 못하게 할 거야. 애초에 임구택도 네가 오는 걸 원치 않았어!” 그러자 유진은 일어나 서인에게 다가갔다. “알았으니까 화내지 마요.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 거지.” 유진은 눈을 깜빡이며 약간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유진의 애교에 서인은 마음이 간질간질했지만, 얼굴에는 표정을 드러내지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
결혼식까지는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원래라면 소희는 지금쯤 운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결혼 전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소희는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직접 할아버지께 말씀드려.”구택은 낮게 웃으며 끝없이 소희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좋아, 내가 말할게. 할아버지도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야.”소희는 침대에 눕자 이불을 뒤집어쓰며 몸을 말아 올렸다. 손을 뻗어 불을 끄고는 말했다.“너무 졸려, 이제 자자!”구택은 욕실 가운을 벗어 이불을 젖히고 들어가 소희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에 입맞춤을 남겼다.“분명 아까까지는 아주 생기 넘치더니.”“조금 자제해주면 안 돼?” 소희는 살짝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구택은 그녀의 목선을 따라 올라가 귀밑을 가볍게 입 맞추며 말했다.“곧 운성으로 돌아가잖아. 우리 사흘 동안 못 보겠는걸.”“나흘이야!” 소희는 구택을 바로잡았다.“나흘도 길지. 내가 혼자 이 침대를 지키며 네가 없는 네 밤을 보내야 한다니.” 구택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고 매혹적으로 변해갔다. 그는 소희의 귀 뒤에 자극적인 입맞춤을 남겼다.소희는 귀 뒤의 예민한 피부가 붉게 물들며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그 결과, 다음 날 아침 소희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구택은 원래 그녀와 함께 출근하고 싶었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보고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얻었으니, 오늘은 양보해야지. 나 혼자 출근할 수밖에.”소희는 그의 애처로운 투정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구택을 보았다.“얼른 출근해. 저녁에 내가 데리러 갈게.”“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아침 꼭 챙겨 먹고, 나갈 때는 연락해.” 구택이 당부했다.“알겠어!”구택은 소희의 뺨에 입맞춤을 남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소희는 열 시까지 푹 자고 아침을 먹은 후 구택
그날 밤, 어정.임구택이 샤워하는 동안 소희는 발코니의 소파에 기대어 성연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희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가 묻어 있었고, 눈매는 지쳐 보였다. 연희는 결혼식 날 구택이 신부를 맞이하러 올 때 어떻게 혼내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아, 맞다. 소희야, 지씨 가문의 일 들었어?] 연희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고, 졸음이 밀려오던 소희는 흐릿하게 대답했다.“지씨 가문? 무슨 일이야?”[지씨 가문의 어르신이 돌아가시자마자 엄청난 권력 다툼이 일어났대. 결국 지승현이 이겼다고 하더라.][다들 상상도 못 했지. 지씨 가문에서 내쫓겼던 할머니가 이런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을 줄은 말이야!] 연희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사실 나도 아심이 때문에 지씨 가문에 관심을 두게 됐어. 그동안 유언장 때문에 아심이가 지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거든.][나도 그녀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집 할머니가 몰래 주식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지씨 가문 사람들도 아심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어.]아심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는 금세 정신이 들었고, 성연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눈빛에는 생각에 잠긴 기색이 더해졌다.연희가 덧붙였다.[지승현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정말 냉정한 사람인 것 같아.][이틀 만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측 사람들을 많이 내쫓았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이런 성격을 가진 지승현이니,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지.][그래서 아심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좀 걱정돼.]소희는 마음이 복잡해져 연희와 몇 마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옆에 앉으며 방금 말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아까는 졸린다며?”소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뭔데?” 구택은 욕실 가운을 반쯤 열어젖히고 다가왔고, 그로 인해 은은한 차가운 향과 함께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승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할머니의 마음이야. 그리고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기도 해.”아심이 대답했다.“할머니의 마음은 손자며느리에게, 지씨 가문의 일원에게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받을 수 없어. 네가 가지고 있다가, 미래의 아내에게 전해줘.”“아심아...” 승현은 여전히 아심을 설득하고 싶어 하자, 아심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넌 날 잘 안다고 했잖아. 그러니 더는 설득하지 마.”승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심아, 굳이 모든 관계를 이렇게 명확히 나눌 필요는 없잖아.”“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친구 사이에도 서로 조금씩 빚지며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는 거야.”아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게.”승현은 아심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져 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아쉬움도 느껴졌다.“아심아, 앞으로 우리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물론이지.” 아심은 미소 지었다.“설마 나에게 원망이 남아서, 선을 긋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당연히 그럴 리 없지!” 승현은 즉시 대답했다.“난 네게 오직 고마운 마음뿐이야.”그리고 아쉬움도 함께.“그럼 됐네.”이때 직원이 음식을 가져와 두 사람은 대화를 잠시 멈췄다. 아심은 숟가락을 들어 웃으며 말했다.“일단 식사하자. 며칠 동안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오래야.”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그렇게 고생해? 돈이야 끝없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고생하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야.” 아심은 해산물 수프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한 번 바빠지면 그냥 멈추기 싫어지거든.”승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래도 건강은 챙겨야 해. 의사도 그렇게 당부했잖아.”“알겠어.”두 사람은 가볍게 일상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승현
아심은 표정 변함없이 물을 따라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눈치챘어?”승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응.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내 개인 계좌에 정아현 씨가 보낸 돈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아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아현 씨가 그러더라고. 네가 부탁한 거라고, 네가 소개해 준 고객에 대한 커미션이라고 말이야.”“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정말로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구나.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병원에서 서명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그리고, 그때 이미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며 힘든 시기를 함께해준 거고.”“또한 예전에 네가 아플 때 내가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고.”“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너는 일부러 강성을 떠났지.”“혹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을까 봐,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아심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 나도 아쉬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매일 할머니와 통화했잖아.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셨고, 가시는 길도 평온하셨어.”“그렇다면 다행이네.”아심은 승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별할 때 얽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심아, 정말로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아심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사실 중간에 너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겐 무리였어.”승현이 물었다.“그 사람 때문이야?”아심은 솔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래.”승현의
승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심을 따라가며 계속 불렀다.“아심아!”아심은 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더 이상 묘지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너 대신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줘.”승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우리 엄마 성격이 원래 그렇고, 내 동생도 엄마가 너무 편애해서 버릇이 없거든. 그들이 한 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승현은 아심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며칠 동안 나와 함께 해주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집에 가서 푹 쉬어.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보자.”아심은 답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집에 도착하면 알려줘.”“들어가 봐.”아심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그날 밤, 아심은 승현과 통화를 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다음 날, 아심은 출근했고, 한 주 동안 밀려 있던 업무가 그녀를 압도했다. 비서인 정아현이 서류 한 묶음을 들고 와서 서명을 부탁하며 조심스레 물었다.“사장님, 요 며칠은 지승현 사장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시나 봐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앞으로 며칠 동안 지씨 집안에 관한 동향, 특히 주식 쪽에 신경 좀 써줘요.”아현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사장님이 여전히 신경 쓰시는 줄 알았어요. 사실 전에도 사장님이...”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제가 꼼꼼히 살펴볼게요!”“그래, 가서 일 봐요.” 아심은 미소 지었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고, 승현도 여러 가지 일에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은 중간에 점심을 함께 먹은 것 외에는 별다른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셋째 날 오후, 아심은 마침내 모든 업무를 끝냈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아현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사장님, 뉴스 보셨어요? 지씨 집안의 주식이 크게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지승현의 눈 아래는 푸른 기운이 돌았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어머니 권수영을 깊이 응시했다. 권수영은 승현의 눈빛에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그게 무슨 눈빛이니?”승현은 냉소하며 말했다.“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지수철이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그 애만 편애하더니, 지금은 핑계를 대며 모든 재산을 작은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거잖아요!”권수영은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지만 변명했다.“너와 수철은 모두 내 아들인데 내가 어찌 편애하겠니? 네가 굳이 그딴 업계 종사하는 여자를 여자친구로 사귀니, 내가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니!”승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다면 엄마 말대로 모든 재산을 수철에게 넘기세요!”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걸어 나갔다. 권수영은 분노로 씩씩거렸고,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정말 내가 못 할 줄 아나? 그 천한 여자랑 결혼이라도 하면, 너도 당장 집에서 내쫓아버릴 거야!”“과연 이 집안 도련님의 자리를 잃으면 그 여자가 여전히 널 곁에 둘지 보자고!”승현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권수영뿐만 아니라, 다른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아심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아심이 김후연의 유산 대부분을 상속받게 된 후로 지씨 가문의 첫째와 둘째 집안 식구들, 심지어 승현의 할아버지까지도 아심의 배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모두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후연의 유산이 아심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지아윤은 기회를 보아 수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 아심 쪽을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 여자 보여?”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봤어. 근데 왜?”아윤은 말했다.“저 여자가 네 집 재산에 눈독 들이고 네 형에게 달라붙어서 돈을 빼앗아 가려고 해. 네 엄마가 지금 무척 화가 났거든.”“가서 몇 마디 쏘아붙이고, 장례식장에서 쫓아내 버려!”수
지승현은 서둘러 말했다.“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앞으로 우린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사실 양세민은 김후연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김후연이 없으니, 굳이 자기를 계속 고용할 이유도 없고, 집마저도 팔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승현의 말에 그녀는 비로소 안심되었다.“도련님, 저에게 이 집까지 주실 필요 없어요. 그냥 여기 머물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 급여도 필요 없어요.”“나중에 도련님이 오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게요.” 양세민이 감격해 말하자 승현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양세민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강아심은 오후 내내 승현과 함께 김후연의 유품을 정리해 주었다.김후연은 승현이 어렸을 때 입었던 옷들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받았던 상장, 심지어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며 받은 작은 플라스틱 메달까지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승현은 그 물건들을 바라보다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심은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승현의 곁에 머물며 김후연의 장례 준비를 도왔다. 아심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승현의 옆에서 함께 있어 주기만 했다.셋째 날, 김후연의 장례식이 열렸다. 아심은 조문객으로 참석해 마지막으로 꽃 한 다발을 헌화했다.이날 많은 사람이 김후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아심은 그곳에서 승현의 할아버지가 유가족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할머니의 영정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아심은 그가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아내와 함께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승현은 곧바로 그의 어머니 권수영에게 불려 나갔다. 권수영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일부러 물었다.“아까 네 옆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니?”승현이 대답했다.“제 여자친구예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