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연은 자신이 암시를 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임씨 집안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그들은 소동을 어떻게 볼까?노정순은 겉보기에는 온화해 보였지만, 말 속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고, 친절함 속에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가 엿보였다. 그랬기에 진연은 노정순의 진짜 생각을 알기 어려웠다.약 반 시간 후, 임구택이 위층에서 내려오자 소동은 곧바로 돌아서 그를 바라봤다. 베이지색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잘생긴 이목구비와 차분하고 고귀한 기품을 갖추고 있는 구택이었다. 또한 구택의 걸음걸음은 마치 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자 소동은 넋이 나가 있었다.구택이 다가오기도 전에, 소동의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손바닥은 긴장으로 인한 땀으로 축축했다,“구택아, 소씨 집안의 부인과 소동 아가씨가 왔어. 잠시 와봐.”노정순이 구택을 보며 말하자, 구택은 눈길을 돌려 거실에 있는 진연 모녀를 보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는데,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진연은 바로 일어나며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소동도 일어나며 눈빛이 반짝이고, 표정은 더욱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임구택 사장님, 안녕하세요!”구택은 걸어와 소파에 앉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소처럼 냉담하고 차가웠다. “무슨 일이세요?”진연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임구택 사장님이 소동의 축하 파티에 와주신 거에 감사해서요.”“소동이가 직접 찾아뵙고 사장님께서 자신을 좋게 봐주신 거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해서요.”“시간이 되신다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좋게 봐줬다고요?” 구택의 얇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소동 씨가 뭘 하셔서 제가 좋게 봐줬다고 하신 건지?”싸늘한 구택의 말에 소동의 웃음은 굳어졌고 놀랐다는 듯 구택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진연의 마음도 무거워져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임구택 사장님이 소동의 축하 파티에 직접 오셨으니, 제가 생각하기에 사장님은 소동의 재능을 인정하신 것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축
소동의 얼굴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굳어졌고,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했다. 소동은 지금 당장 임구택 앞에서 사라지고 싶었고, 진연은 겨우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 “저는 임구택 사장님이 소희를 챙겨주시는 것처럼, 평소에 소동도 조금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어요.”“사장님께서 소동을 더 알게 신다면, 소동의 재능이 사장님을 놀라게 할 거예요.”“소희와 비교가 됩니까?” 구택은 마치 당치도 않는 말을 들은 것처럼, 더욱 조롱 섞인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차이가 굉장히 날 것 같은데요!”구택의 조롱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는 소동은 억울한 감정과 자존심이 상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임구택 사장님이 먼저 소희를 더 좋아하시는 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제 성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겁니다!”소동은 말을 마치고 진연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사장님이 저를 이렇게 오해하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우리의 방문 목적은 이미 분명히 했고, 감사의 마음도 전했으니. 이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돌아가죠!”진연은 아쉽다는 듯 일어나며 말했다. “사모님, 임구택 사장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구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노정순도 하인에게 두 사람을 배웅하도록 했다.진연과 소동은 차를 타고 임씨 저택을 떠났다. 차안에서 소동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진연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구택의 성격이 조금 차가운 편이야, 그래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지. 천천히 하자, 서두를 필요 없어!”소동은 울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구택 씨가 저를 그렇게 깎아내리는 게 슬퍼요. 저 정말 소희와 비교도 안 되나요?”“말도 마, 넌 소희보다 백 배는 더 강해. 구택이 그렇게 말한 건, 그가 널 이해하지 못해서야.” 진연은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소희를 과소평가했네.”“가정교사 신분으로 임씨 집안에 들어가 임씨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 소희의 속셈이 내 생각보다 훨씬
소동의 재능을 중요한 홍보 포인트로 삼은 공고는 ‘리틀King’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회사는 King의 인기에 편승해 소동의 인지도와 노출을 빠르게 높이려고 했지만, 이러한 전략은 King 팬들의 반감을 샀다.[단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뿐인데, 어떻게 ‘리틀King'이라고 할 수 있지?][소동의 디자인 스타일이 King과 좀 비슷하기는 하지만, King의 업적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이렇게 언론 플레이하는 건 정말 뻔뻔하다!]……스타쉽 매니지먼트는 King이 수년 동안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고 단단한 팬덤이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바로 PR팀에게 댓글 조작을 시키기 시작했다.스타쉽 매니지먼트는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태도보다는 이 기회를 이용해 소동을 더욱 알리려고 했다. 왜냐면, 악플도 인기의 반증이었기 때문이었고, 트래픽이 있으면 이익이 있는 거였다. 댓글 알바를 고용한 그들은 모든 커뮤니티에서 소동을 예쁘고 재능이 넘치는 캐릭터로 포장했다.[소동은 정말 예쁘고 재능도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팬 됐어, 팬 됐어!][우리 소동은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재능도 있다니, 다른 이의 팬들이 질투해도 소용없어!][유명한 국제 디자이너가 못생겨서 얼굴을 안 보인다는데, 소동이 누구의 인기에 업혀 간다고?][그럼 당당하게 나와서 얼굴을 비교해 보자고! 누가 누구의 인기에 업혀 가는 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난 소동의 더 많은 작품을 기대하고 있어!]……양측의 팬들은 인터넷에서 격렬하게 다퉜고, 결과적으로 소동은 갑자기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리자 자신들의 목적에 달성한 스타쉽 매니지먼트는 굉장히 기뻐했다. 역시 King의 인기를 이용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소희는 드라마 세트장에서도 사람들이 소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미나가 핸드폰을 들고 끊임없이 화면을 스크롤 하며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정말 뻔뻔
진석은 한결같이 무심한 듯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시에 퇴근해? 스승님이 너를 보고 싶어 하셔. 내가 널 데리고 식사하러 가는 김에, 강솔도 함께 부르려고.”진석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는 소희였다.“좋아,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지금 회사에 없어서, 도시로 돌아가려면 조금 늦을 거야. 네가 강솔을 데리러 가서 스승님 집에서 만나자.”“응!” 전화를 끊은 후, 소희는 강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솔도 마침 소희와 할 말이 있었기에, 기분 좋게 수락하며 주예형을 데리고 스승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강솔이 예형을 데리고 도경수를 만나러 가는 건, 거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았기에, 소희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데, 약혼 준비하나?”강솔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거의 그런 셈이지, 이미 논의 중이야. 그런데 예형 씨 회사가 바빠서 아직 날짜를 정하지 못했어.”“미리 축하해!”“고마워, 자기야!”소희는 강솔의 기쁜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약간 쓸쓸함을 느꼈다.강솔이 예형을 스승님에게 데려가는 걸 보면, 오늘 그들의 약혼 소식을 발표할 수도 있는데, 진석은 어떨까?소희도 사랑을 경험해 봤기에 사랑이 주는 희열과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솔의 약혼 소식에 진석도 이제는 마음을 접을수도 있게 되었다.
강솔이 커피를 테이블에 놓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강솔을 바라봤다.그러자 스카이블루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강솔, 왔구나!”그녀의 이름은 손민정으로, 주예형의 대학 후배였다. 예형이 귀국했을 때, 손민정은 다른 도시에서 사직하고 예형의 회사에 합류했으며, 현재는 영업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솔은 이전에 예형의 회사 모임에서 민정을 만난 적이 있었다.“바쁜가 봐?”숏컷이 잘 어울리는 강솔이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께 고객의 요구사항을 말씀드리고 있었어요. 거의 다 얘기했으니, 먼저 나가볼게요. 두 분 이야기하세요!” 민정은 일어서며 강솔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강솔은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아있는 예형을 껴안으며 물었다.“나 많이 보고 싶었어?”예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별로 좋진 않은 것 같아.”단호한 예형에 강솔은 얼굴을 찡그렸다. “왜 못 와? 우리 불륜이 아니라 정식으로 만나는 사이잖아. 누가 뭐라고 갈 수 있어! 게다가 내가 일 끝날 무렵에 온 거잖아.”예형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오늘 찾아온 건 무슨 일 때문이야?”“오늘 진석 사장과 소희랑 같이 스승님 댁에 가기로 했어. 당신도 함께 가자고.”“내 부모님이 경성에 계시고 당신이 그쪽에 갈 시간이 없으니, 먼저 스승님 댁에 가보자고. 스승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면, 우리 부모님도 문제없을 거니까.”강솔은 기뻐하며 말했다.“오늘이야?” 하지만 예형은 약간 주저하며 대답했다. “곧 중요한 고객이 올 예정이라, 오늘은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어떤 고객인데, 이렇게 늦은 밤에 오는 거야? 진짜 밉다.”강솔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Y국에서 온 고객이고, 한 시간 후에 도착해서 내가 직접 마중 나가야 해.” 예형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이 고객은 우리 회사에 매우 중요하거든. 그래서 그런데
강솔이 떠난 후, 주예형은 손민정을 찾아갔고, 두 사람은 다시 협력 방안을 검토했다. 민정이 지적한 문제들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작은 문제들이었기에, 민정은 사과하듯 말했다. “제가 너무 예민했나 봐요. 이번 협력이 중요하다 보니, 작은 실수도 걱정됐어요.”하지만 예형은 오히려 칭찬하며 말했다. “꼼꼼한 태도는 좋은 거야.”예형의 말에 민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의 격려 고마워요! 오늘 스미스 씨가 오시는데,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함께 가서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적극적인 민정의 태도에 만족한 예형은 바로 동의했다.“물론이지!”“감사합니다, 사장님!” 민정은 눈을 반짝이며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준비할게요!”“그래!”……강솔은 차를 몰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형의 회사 건물 아래 카페에서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다.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소희도 딱 맞춰 도착했고, 강솔은 자신의 가방을 들고 소희에게 말했다. “가자!”소희는 강솔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예형 씨는? 같이 안 가?” “오늘 저녁에 고객을 만나야 해서 못 가게 됐어. 다음에 가면 되지!”강솔은 웃으며 소희의 팔을 끼고 함께 밖으로 나갔고, 소희는 예형이 오지 않는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적어도 오늘 밤은 진석이 너무 힘들지 않을 것이었다.도경수의 집에 도착하고, 강솔은 들어가자마자 경수에게 달려가 안겼다. “스승님, 보고 싶었어요!”하지만 경수는 강솔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가, 가, 저리 가!” 그리고는 소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소희야, 여기 앉아. 내가 너를 위해 사 온 맛있는 것들을 봐봐!”경수의 말에 소희가 걸어갔다.“스승님!”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달콤한 디저트와 케이크가 놓여 있자, 소희의 눈이 반짝였다.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 강솔이 투덜거렸다. “이렇게 편애하시면 안 되죠. 어려서부터 항상 소희를 더 좋아하시고, 쳇 저 화났어요!”앙탈을 부리는 강솔에 경수는 냉소적으로 말
“됐어요!” 진석이 강솔을 나무랐다. “스승님하고 싸우지 마!”그 말을 끝으로, 진석은 도경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솔이 항상 생각 없이 말하잖아요. 스승님께서 그녀와 같은 수준에서 대응하실 필요 있나요?”경수는 투덜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널 봐서 내가 참는다.”“진석 때문에 너하고는 신경 안 쓸게!”경수가 돌아서자. 입에 케이크를 한가득 넣어 볼이 빵빵한 소희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소희는 참 착하다니까, 먹는 것조차 복스럽게 먹네!”“…….”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희는 당황했다. 이내 강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석아, 봤지? 스승님이 소희를 얼마나 편애하는지!”진석은 강솔을 훑어보며 말했다. “소희는 너보다 훨씬 말을 잘 듣잖아.”강솔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박했다. “소희는 그저 먹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 그게 잘 듣는 거야?”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먹을 때 입이 바빠서, 적게 말하고 스승님을 화나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착하게 보이지.”강솔은 깨달은 듯 말했다.“음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네!”오늘 모두 모여서 그런지 경수는 기뻤다. 경수는 하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정원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꽃과 풀, 새와 곤충이 있는 정원에서 저녁을 먹으며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모두가 둘러앉아, 경수는 소희에게 물었다. “네 할아버지는 어떠시냐? 내가 네 할아버지랑 영상 통화할 때마다 항상 건강하다고 자랑하더라고.”“한 번에 삼백 그릇을 먹는다느니, 산꼭대기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느니 하며 허풍을 떨어. 그 정도가 하늘을 찌를 정도야.”소희가 대답했다. “어제 장의건 의사선생님이랑 통화했는데, 할아버지는 회복이 잘 되고 있어요.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요.”“그래, 다행이네. 나한테 강성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 노인네는 고집이 세서 안 온다니까. 정말 고집스러운 사람이지!”“할아버지는 산속 공기에 익숙하다고 하시더라고요.”“나이 든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기 싫어하지, 나도 그걸
강솔과 진석이 이야기하는 동안, 소희는 자기 식사에만 집중했다. 마치 King의 일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러다 도경수가 갑자기 강솔에게 물었다. “너 남자친구 사귀었니?”강솔은 놀라며 얼굴이 붉어졌고, 진석을 향해 눈을 흘겼다. “혹시 네가 스승님께 말한 거야?”진석은 안경 너머로 차가운 눈빛을 숨기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니.”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전화해서,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널 좀 지켜봐 달라고 하더라.”“뭐가 볼 거 있어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남자 고르는 눈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강솔이 작게 중얼거리자 도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남자친구를 나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은 없어?”“솔직히 오늘 데려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중요한 고객이 왔다고 해서 못 왔어요.” 강솔이 웃으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소희한테 물어보세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솔의 말이 사실이에요.“소희가 맞다 하니 믿을게.” 도경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 남자 이름이 뭐고, 뭘 하는 사람이야?”“이름은 주예형이고, 스스로 창업해서 회사 사장이에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엄청 대단하죠!” 강솔은 예형을 언급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자 진석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처럼 가정 배경이 좋아서 창업한 사람은 차별받는 건가?”“아니 내가 우리 예형 씨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자기 얘기를 끼워요?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냐?” 강솔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소희는 진석을 바라보며 그가 받은 ‘공격'에 동정심이 들었다.이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조심해야 해.”“아니에요!” 강솔이 서둘러 자신의 남자친구를 감싸고 돌았다.“예형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자수성가이긴 하지만, 하나도 인색하지 않고, 창업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발끈해하는 강솔이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