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아는 이것이 성연희가 지난번에 선물한 장난감 세트에 포함된 것임을 기억해 냈다.“정말 있었네!”장시원이 놀라며 두 개의 반지를 들고 웃었다.“이건 너무 작으니까 좀 개조해야겠어.”은색 반지는 열린 형태였고, 장시원은 우청아의 손가락 크기를 눈대중으로 살핀 뒤 반지를 적당한 크기로 조절했다.그는 자신의 반지에서 장미 모양을 제거하고, 단순한 둥근 형태로 만들어 자신의 손가락에 맞게 조절했다.“이제 됐어!”“삼촌 대단해!”요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손 내밀어봐.”장시원이 우청아를 바라보며 말하자 우청아는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숨겼다. “성의 공주에게 끼워줘요.”“당신이 내 공주야!”장시원이 우청아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그는 팔을 뻗어 우청아의 손을 잡고,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우자 핑크색 다이아몬드 장미가 우청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장시원은 우청아의 손을 잡고,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예뻐!”우청아는 숨이 멎는 것 같았고, 급히 손을 빼냈다.우청아는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뜨거워져,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장시원은 자신의 반지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나한테도 끼워줘요.”우청아는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있자 장시원은 웃으며 반지를 요요에게 건네며 말했다.“엄마가 부끄러워하니 요요가 끼워줘.”“알았어요!”요요가 곧장 받아 장시원의 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정말 예쁘네.”장시원은 자신의 반지를 바라보며 눈이 즐거워 보였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죠?”요요는 눈을 굴리며 생각한 뒤 말했다.“엄마 안아줘요.”“그래!”장시원이 우청아를 바라보며 팔을 벌려 그녀를 안으려 했으나 우청아는 갑자기 일어났다.“그만, 이제 그만 놀고 자야 해요.”“하나도 안 졸려.”요요가 반짝이는 큰 눈으로 말했다.“졸리지 않아도 이제 자야 해. 엄마가 오늘 새로운 그림책 읽어줄게, 어때?”청아가 부드럽게 말했다.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요요는
만약 이번 생에 다시 결혼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이 ‘결혼식’은 평생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장시원이 요요를 달래기 위해 장난으로 한 말일까 봐, 우청아는 갑자기 두려워졌는데 그녀는 실제로 그 속에 빠져버렸고 또한 허홍연처럼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결국 장시원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다.자기 여자를 건드린 사람은 그 누구도 좋게 끝나지 않는다고 했던 장시원이었지만 그는 말을 잘못했다.장시원을 사랑했던 여자들이 좋게 끝나지 않았던 것이었다.요요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우청아는 그녀 옆에 몸을 숙여 누워, 그녀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심란하여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다,‘장시원과 떨어져 있어야 하나?’우청아는 이미 자신 앞에 절벽이 있고, 한 걸음 더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장시원은 샤워를 마치고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끊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이상이 지났는데 우청아는 그와 인사도 하지 않자 문을 열고 나가, 닫힌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그냥 잠들었나?’우청아가 오늘 너무 피곤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편안히 잠들도록 했다.장시원은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려 거실을 지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거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우청아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밤하늘 아래, 그녀는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었고, 그녀의 가녀린 몸은 밤에 더욱 연약해 보였다.장시원은 잠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가, 주방으로 돌아가 물 대신 맥주 두 캔을 들고 발코니로 갔다.요요는 자주 발코니에서 놀기 때문에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장시원도 우청아처럼 바닥에 앉아서 그녀에게 맥주를 건넸다. “한 캔 할래요?”우청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맥주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장시원은 다시 맥주를 가져가서 뚜껑을 열고 나서야 그녀 손에 넘겨주었다.우청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이 남자는 언제나 이렇게 세심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장시원과 함께하는 사람이
“당신…….”우청아가 망설이며 말했다. “당신도 당신의 삶이 있잖아요.”장시원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내가 했던 말은 어떻게 생각해?”우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당신의 병을 고쳐서, 빚을 갚는 게 어떨까요?”장시원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쥐었다. “우청아, 당신이야말로 내 병이야!”우청아는 심장이 쿵쿵 뛰었고 결국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장시원은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입술에 남은 맥주 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낮고 천천히 말했다. “우청아, 당신은 남들한테 빚진 건 다 갚으면서, 나한테 빚지고는 왜 이렇게 태연한 거야?”우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그럼 나한테 갚아요, 나는 세 달만 당신이 필요해요. 세 달 후에, 널 자유롭게 해 줄게, 강성에 남든 시카고로 가든 상관없으니까.”우청아는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정말로 세 달 만인 거예요?”“그래, 세 달.”장시원은 더욱 가까이 다가가 우청아의 손에서 맥주를 빼앗아 옆에 두고는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말했다.그날 밤 달이 유난히 밝았다.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빛 빛이 느껴졌고 장시원의 잘생긴 얼굴에 매력이 더해져 우청아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장시원이 다시 우청아의 삶에 나타난 순간부터, 그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다. 모든 저항은 결국 헛된 몸부림이었고 우청아는 갑자기 소희와 성연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장시원은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을 더 갈망한 것은 그는 거절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우청아를 얻는다면, 우청아의 사랑은 사라질 것이었고 그녀의 삶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었다.우청아의 사랑을 장시원에게 쏟으면 그가 우청아를 자유롭게 풀어줄 것인가 아니면 우청아의 사랑은 애초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었을까?“제가 당신한테 빚진 하룻밤은 하룻밤으로 갚을 게요.”우청아는 떨렸고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으로 저
동쪽에서 서쪽으로 천천히 이동한 달은 게스트 룸의 창밖에서는 보이지 않았기에 방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우청아는 샤워를 마치고 잠에서 깨어나 다시 침대로 돌아와 멍하게 남자를 바라보자 장시원은 그녀의 어리버리한 모습을 굉장히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몸을 숙여 우청아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장시원의 목소리는 허스키하여 섹시하면서도 극도로 부드러웠다. “잘 자요, 나는 요요를 돌볼 테니까 깨어났을 때 내가 없어도 당황하지 마요. 나도 당신이랑 함께 있고 싶어도 참고 있는 중이니까.”우청아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알았어요.” 우청아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장시원은 아쉽다는 듯 우청아를 바라보며 우청아의 턱을 잡고 또다시 입술에 키스했고 이불을 우청아에게 덮어주며 말했다. “잘 자요, 나는 바로 옆방에 있을게요.”장시원이 떠난 뒤, 우청아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많이 피곤했는지 잠이 몰려왔다.장시원은 방으로 돌아가 요요를 확인한 후, 방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거실로 나왔다.장시원은 발코니로 이동해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팔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바람이 얼굴을 감싸고 장시원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임구택도 금방 잠들었는데, 탁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리자 그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소희를 달래며 일어나 전화를 끊었다.다행히 소희는 깨어나지 않았고 임구택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거실로 향한는 도중, 전화가 다시 울렸고 임구택은 빠르게 발코니로 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전화기 너머에서 장시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말 잘 보내!”임구택은 화가 난 상태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제발 용건이 있으면 전화하지?”아래층에 있는 장시원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여 내뿜었고 그의 눈은 따듯하고도 맑았으며 웃음이 계속 났다.“여자가 관계 맺은 후에 먹는 약 중에서 어떤
사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다 뒷일도 고려하지 않은 건 시원의 평소의 처사 방식과 너무 달랐다.하지만 방금 구택과 통화를 하면서 시원은 순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청아가 이번 일로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그대로 낳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요요도 그렇게 예뻐해 줬는데, 자신과 청아의 아이라면 더 예뻐해 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구택보다 먼저 아이가 생길 것만 생각하면 마음 속의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시원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올랐다.어둠 속 뽀얀 담배 연기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는 유난히 빛이 났고, 눈빛 깊은 곳엔 유쾌함이 묻어 있었다.……청아가 다시 깨어났을 땐 날이 이미 밝았다. 밖에서는 시원과 요요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허리 쪽에서 전해오는 시큰거림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그녀에게 강조해주었다.청아는 괴롭고 화가 나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나 정말 너무 충동적이었어, 어떻게 타협할 수가 있지?’‘틀림없이 유혹당했을 거야.’그런데 이때,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청아는 신속히 이불을 다시 덮고 계속 자고 있는 척을 했다.아무 생각 없는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시원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게 분명했다.문이 열리고 시원이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청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아직도 깨지 않은 건가?”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눈치챈 청아는 속눈썹이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떨고 있었다.그러다 천천히 눈을 뜨고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직도 여기에 계세요?”“그럼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원하는 걸 이미 얻었으면 가야 하는 거 아닌가?’“시원 씨.”청아가 두손으로 이불을 꽉 잡고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 눈빛으로 시원을 바라보았다.“저 빚 다 갚은 거 맞죠?”“하룻밤으로 모든 빚을 다 갚은 셈 치겠다고? 우청아, 양심이 찔리지도 않아?”청아는 전혀 찔리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하지
시원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청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옆 얼굴에 입술을 살짝 맞추었다. 그러고는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순간, 청아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어 힘껏 시원을 밀쳤다.“요요 보러 가요 어서!”시원이 소리 없이 가볍게 웃으며 경망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부끄러워하긴, 습관 되면 괜찮을 거야.”“시원 씨…….”청아가 가볍게 입술을 한번 말아 물고는 시원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시원이 곧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시원 오빠라고 불러야지.”“싫어요!”청아의 얼굴에 불쾌함이 묻어 있었다.이에 시원이 한 걸음 양보하기로 했다.“그럼 저녁에 그렇게 부르는 걸로 하고.”청아가 조용히 시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시원 씨, 우리 지금 어떤 관계인 거죠?”“연인 관계.”시원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어떤 연인 관계요?”“당연히 진지한 연인 관계이지.”“3개월이요?”시원이 잠시 멈추더니 되물었다.“3개월 후에 끝났으면 좋겠어?”청아가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시원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한번 도전해보자.”‘3개월이면 청아가 나의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아내기에 충분하겠지? 청아도 3개월 안에 나를 사랑할 수 있을지 도전해 볼 수 있고.’청아가 맑고 깨끗한 눈동자로 한참 고민하고 나서 천천히 대답했다.“그렇게 해요. 단 저는 우리의 관계를 공개하고 싶지 않아요.”자신에게 퇴로를 남겨주고 있는 것이었다.시원이 듣더니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표정 한번 변하지 않고 청아의 부탁에 승낙했다.“그래.”“그럼 먼저 나가줘요, 저 옷 갈아 입어야 해요.”“내가 보는 게 쑥스러워?”시원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농담을 내던졌다. 그러고는 청아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청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한번 맞추고는 애정이 묻은 어투로 말했다.“내가 요요를 보고 있을 테니까 불편하면 좀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청아가 두 눈
“연희 이모!”요요가 연희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달려왔다.이에 연희가 요요를 들어 안아 두 바퀴 돌고는 말했다.“이모 오늘 요요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사왔는데!”요요가 연희의 품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단순한 즐거움에 주위의 어른들도 저도 모르게 따라 즐거워졌다.시원은 자신이 집에 있으면 청아가 많이 불편해할 것 같아 요요를 품에 안고 자상하게 말했다.“편하게 이야기 나눠요, 난 요요와 밖에서 놀고 있을 게요.”“어디 가는데요?”청아의 물음에 시원이 품속의 요요를 보며 물었다.“요요는 어디로 가 놀고 싶어?”“해피 놀이터요!”시원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아를 향해 말했다.“우리 해피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게. 저녁에 구택이도 불러서 같이 밥 먹자, 내가 쏠 터니까.”옆에 있던 연희가 농담 묻은 어투로 끼어들었다.“경사가 나서 그런가? 시원 씨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네요?”청아가 어색한 표정으로 연희를 한번 노려보고는 요요를 향해 당부했다.“함부로 뛰어다니지 말고, 아저씨의 말을 잘 들어야 해.”“네!”놀이터를 엄청 좋아했던 요요의 작은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청아의 당부에 시원의 어깨를 꼭 껴안고 대답했다.시원이 요요를 데리고 집을 떠난 후 연희가 가져온 디저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청아를 향해 물었다.“어젯밤에 함께 있기로 한 거야?”분명 어제 낮에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주 이성적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해 있었으니.청아가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괴고는 괴로운 표정을 드러냈다.“욕하고 싶으면 욕해, 나도 왜 승낙했는지 모르겠어.”“네 탓 아니야, 시원 씨의 매력이 흘러 넘쳐서 그렇지.”연희가 위로하 듯 청아의 머리를 다독이며 말했다.하지만 연희의 위로에 농담이 묻어 있다는 걸 눈치챈 청아는 더욱 난감해졌다.그러자 소희가 이미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마음 속의 결정에 따르면
소희가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일하고 있는데 방해한 거 아니야?]“아니. 솔직히 나 지금 당신 생각하고 있어.”구택이 창문 앞에 서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이에 소희가 낮은 소리로 한번 웃고는 다시 물었다.[내가 평소에 먹던 약을 어디에 뒀어?]“누구에게 주려고?”[장시원 씨.]구택이 나지막하게 웃었다.“침실 캐비닛 두 번째 서랍에 있어.”[알았어. 계속 일 봐.]소희가 지니에게 인사하고는 구택의 집으로 들어갔다.구택이 손목 들어 시간을 한번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방금 시원이 나에게 연락이 왔어. 나 이제 한 시간 더 있으면 돌아갈 거니까 저녁에 보자.”[응, 알았어.]소희가 전화를 끊고 침실로 들어가 서랍을 열었다. 그러다 안에 가지런히 놓인 약상자들을 보고는 순간 멍해졌다.전에 구택이 그녀에게 피임 약을 많이 준비했다고는 했지만, 서랍 가득 갖춰진 약을 직접 보고 나니 여전히 심장이 한번 움츠러들었다.‘구택 씨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야.’‘다들 구택 씨가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분명 아기도 엄청 원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구택 씨는 반대로 이렇게 많은 피임약을 준비하고 있어.’‘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거지?’……소희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소시연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언니! 오늘 ‘여신의 옷장’ 첫방 날이야! 나 너무 긴장돼!]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침착해, 이건 첫 시작일 뿐이야.][나 꼭 언니가 쟁취해 준 기회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할 거야! 우리 엄마도 엄청 기뻐하셨어, 그러면서 집안 친척들에게 오늘 저녁 무조건 ‘여신의 옷장’ 첫방을 봐야 한다며 통지까지 하셨다니까, 하하! 언니, 나 정말 이번 기회는 언니가 쟁취해 준거라고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어.][괜찮아. 네 노력만 보여주면 돼.][그럼 이제 내가 방송에서 성공하고 유명해지면 그때 가서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게 해 줘! 나 정말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진짜
도우미가 식사를 준비하던 중 도경수에게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양재아 아가씨가 방금 전화해서, 오늘 점심은 집에서 먹지 않겠다고 하셨어요.”재아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으며, 회사에서 야근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네.”그 순간, 이반스가 옆문으로 들어와 밝은 목소리로 강시언과 강아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연한 파란색 폴로 셔츠를 입고 있었고, 갈색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아심이 물었다.“이반스 씨, 강성에서 생활은 어떠세요? 잘 적응하고 계시죠?”이반스는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음식도 잘 맞고, 생활도 편해요. 그리고 도경수 선생님께서 소장하고 계신 골동품과 서화들은 정말 감탄스러웠어요.”“제가 C국에 대해 얼마나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정도죠.”도경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하하,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기회 되면 강씨 저택에 가봐. 거긴 정말 더 대단해. 그 집에 가야 진짜 놀랄 거야.”이반스는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정말요?”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강재석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언제든 우리 집에 놀러 오게나.”“꼭 한번 방문할게요.”다들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으며, 분위기는 편안하고 유쾌했다.식사 중에 도도희가 아심에게 물었다.“오후에 일정 있니?”“아니요, 오늘은 쉬는 날이예요.”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오늘은 집에서 자고 가.”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앞으로는 계속 집에서 지낼게요.”도도희와 도경수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눈빛이 반짝였고, 도경수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그래야지! 우리 가족인데 당연히 함께 살아야지.”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눈빛이 더 깊어졌다. 그녀가 자기 말을 듣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온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그러나 시언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 집에 머물기로 결심했을까?시언은 입가
강재석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리 둘이 서로를 안 지가 몇 년인데. 서로 성격도 잘 알고 있으니 진짜로 화낼 일은 없어.”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사실, 이 몇 년 사이에 도경수의 성격이 아주 좋아졌어. 예전처럼 고집만 부리는 건 아니야. 특히 과거에 너랑 재희의 아버지를 갈라놓은 일을 후회하고 있어.”도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도 요 며칠 보니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어요.”강재석은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너희 부녀가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 사람 인생에서 20년이 몇 번이나 있겠어. 지금은 시간을 많이 함께 보내야 해.”그 말에 도도희는 감동하며 말했다.“그럴게요. 아저씨, 그동안 우리 아버지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강재석은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몇십 년 된 친구 사이인데, 고맙다는 말은 너무 멀게 들려.”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강재석은 약간 화난 듯이 말했다.“그 양반, 아심이 시언을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거야.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아?”도도희는 웃음을 터뜨릴 뻔하며 고개를 돌렸다.한편.도경수는 아심과 시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활짝 웃으며 환영했다. 그는 연신 그녀를 걱정하며 물었다.“길 더웠지? 괜찮아?”“왜 그렇게 자주 야근해? 아직 젊으니까 건강도 챙겨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할아버지. 건강 잘 챙길게요.”그녀가 처음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도경수는 순간 멈칫하며 표정이 굳었다. 이내 눈물이 차오르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그래!”20년 전, 어린 아심이 도경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이 장면을 그리워하며 꿈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그리고 양재아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단지 친근한 느낌이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아심이 그렇게
두 사람이 집을 나설 때는 이미 거의 점심시간이었다. 길을 지나던 중, 아심은 꽃집을 발견하고 시언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도도희에게 줄 꽃다발을 샀다.차로 돌아온 아심은 시언에게 물었다.“외할아버지는 어떤 걸 좋아하세요? 뭐 하나 선물 드리고 싶은데요.”시언은 태연히 대답했다.“이번에는 괜찮아. 다음에 하면 돼.”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은 꽃향기로 가득 찼고, 그 은은한 향기가 그녀의 마음을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집으로 간다는 사실에 이제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적어도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은 아니었다.도씨 저택.도경수는 아침부터 마음이 초조해진 듯 거실을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계속 마당 쪽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이를 본 강재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하지 마. 그러다 어지러워 쓰러지겠어. 앉아서 좀 쉬어. 도도희가 그러지 않았나? 아심이가 조금 있다가 점심 먹으러 온다고.”도경수는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네 생각엔 아심이가 정말 오긴 할까?”강재석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그 말을 그제부터 벌써 몇 번이나 물었는지 알아?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겠어. 아심이는 바빠. 걔에게도 시간을 좀 줘.”도경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내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강재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슨 일로?”“내가 예전에 오해했던 일, 그리고 네 앞에서 아심에 대해 별로 좋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들 말이야.”그러나 강재석은 단호히 말했다.“아심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도경수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그래도 아직 우리랑 조금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강재석은 그를 달래며 말했다.“아심이는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가까워질 거고. 아심은 착한 아이라고 믿어.”
이에 강시언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깜빡했어.”강아심은 시언의 품에서 몸을 돌리며 눈가를 살짝 치켜올렸다. 그녀의 요염한 미소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렇다면 앞으로는 매번 내가 이체할게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거든요.”시언은 반쯤 감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자기기만이 그렇게 재밌어?”아심은 시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꾸했다.“재밌죠! 그런데 당신이 그걸 들춰내면 안 재밌어지잖아요!”그 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아심의 손목을 잡아 침대에 눌러두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요금을 받는 상황이라면, 내가 강아심 씨가 기꺼이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드려야겠네.”아심은 고개를 들고 시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몸을 뒤집어 위치를 바꾸었다.아심의 아름다운 얼굴은 매혹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주어 시언의 입술에 깊은 키스를 남겼다.시언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누가 아심이 스폰서인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갑자기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시하고 싶었지만, 벨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심은 남자를 달래듯 가볍게 입술에 키스한 뒤, 몸을 기울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누가 주말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봤을 때, 그녀의 눈이 약간 커지고 긴장으로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발신자는 도도희, 아심의 엄마였다. 울리는 벨 소리는 그녀를 재촉하는 듯했고, 아심은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으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들킨 듯한 느낌이었다.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주말이라 늦잠 잤니? 아침은 먹었어?]“아니요, 좀 있다가 먹으려고요.”아심은 얌전하게 대답했다.[오늘도 혹시 야근하는 건 아니지?]도도희의 웃음 속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 있
강시언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최근에 내가 너의 양부모와 관련된 단서를 따라갔고, 너를 납치했던 사람을 찾아냈어.”“대략 1년 전에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돌봐주게 했지.”아심은 눈빛이 살짝 차가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시언은 말을 이었다.“그리고 널 샀던 양부모도 지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들은 방탕한 삶을 살고,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여자 친구랑 함께 부모를 착취하고 있지.”“돈을 요구하며 부모를 때리고 욕하는 게 다반사야. 그래서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어.”아심은 담담히 말했다.“나는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비웠어요. 어차피 친부모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를 사들였다가 다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감정도 없으니 당연히 원망도 없어요.”“원망은 내가 해!”시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그 사람들이 너를 때리고 욕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 받는 벌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아심의 마음은 순간 간질거렸다. 마치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따뜻하면서도 저릿한 감각이 가슴 끝까지 퍼졌다. 그녀는 눈가가 살짝 물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나를 팔았기에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시언은 팔을 들어 아심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마주쳤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는 점점 더 차갑고도 또렷해졌다.“그날 도경수 할아버지가 네 몸에 있는 태어나는 반점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았잖아. 네 생각엔 뭐라고 답해야 할까?”시언은 끝음을 살짝 끌며, 자기 목소리에 특유의 저음과 자극적인 울림을 더했다. 빗소리에 묻힌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강렬히 두드렸다.이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있는 그대로 대답하세요. 근데, 그럴 용기 있어요?”“내가 무서워서 못 한다고 생각해?”시언은 낮고 짧게 대꾸했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아심의 정교한 턱을 잡아들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오븐 속 닭 날개는 이미 다 구워졌고, 끓던 국도 식어버렸다. 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는지, 부슬부슬한 빗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강시언은 몸을 약간 일으켜 그녀의 옷을 입혀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뒷정리할 테니, 너는 가서 샤워해. 씻고 나오면 바로 식사할 수 있을 거야.”강아심은 나른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샤워 끝낼 때쯤 당신이 음식을 다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딱 두 가지 요리랑 국 하나야. 충분하겠어?”시언이 묻자, 아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점심에 외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식이 많이 남아서, 그거 데워서 먹으면 돼요. 음식은 낭비하면 안 되니까.”“그래.”시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아심을 조리대에서 내려주었지만, 아심은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붉게 물든 눈가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못 걸을 것 같아요.”이에 시언은 낮게 웃으며 아심을 다시 들어 올려 주방에서 주방의 욕실로 데려갔다....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 시언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심은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얇은 잠옷 차림의 그녀는 헝클어진 긴 머리를 어깨에 흘러내린 채 앉아 있었다. 밖에서 스며드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심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날렸고, 하얗고 가녀린 어깨가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났다.아심은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두운 조명이 그녀의 부드럽고 가냘픈 라인을 더 강조했고,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주었다.시언은 그녀에게 다가가 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야근은 좋은 핑계겠지만, 도도희 아주머니랑 도경수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지. 너, 집에 가기 싫은 거잖아.”아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에 아심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 말이 맞아요.
영상 속의 셰프는 유창하게 자국어를 구사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신은 미스터 강의 여자 친구인가요? 참고로 지금 종료해도 보수는 환불되지 않아요.]아심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알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좋아요. 그러면 이만!]셰프의 말을 끝으로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강시언에게 물었다.“닭 날개를 굽고 싶으신 거예요?”“너 할 줄 알아?”“이미 양념까지 다 해두셨으니, 오븐에 넣고 온도와 시간을 맞추면 끝이예요.”시언은 접시에 담아둔 닭 날개를 그녀에게 건네자, 아심은 돌아서서 접시를 오븐에 넣으며 물었다.“어떻게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으셨던 거예요?”시언은 다른 재료를 고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별거 아니야.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밥상을 느껴보라고.”그 말에 아심은 순간 멈칫하며 오븐을 멍하니 바라봤다. 몇 초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타이머를 설정했다. 아심은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뭐 도와줄까요?”시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내가 부른 셰프를 쫓아냈잖아. 네가 안 도우면 생닭을 먹겠다는 뜻인가?”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으며 도마 위에 놓인 토마토를 보며 물었다.“이건 뭐 만들려고요?”“약간의 토마토를 곁들인 소고기볶음.”아심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아직 걷는 법도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달리려는 거예요?”시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지?”아심은 대답 대신 말했다.“그 요리는 오래 걸려요. 배가 고프니까 그냥 토마토는 생으로 먹어요.”시언은 물었다.“생으로? 그냥 먹으라고?”“상쾌하고 맛있어요.”아심은 토마토를 반으로 자른 뒤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시언의 입가에 내밀며 말했다.“한번 먹어보고 생토마토 맛이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아심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눈가가 붉어진 채 가늘게 올라간 눈꼬리와 흐르는 듯한 시선으로 무의식적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시언은
아심은 연희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기절하지 마, 그러다 네 남편이 걱정하실라.”[아심아, 내가 도경수 할아버지를 몇 년 동안 알아 왔는지 너 알아?]연희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리가 친구였는데, 이제 넌 도경수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됐잖아!]아심은 연희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나도 정말 많이 놀랐어.”[그렇지만 정말 축하할 일이야!]연희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정말 깜짝 놀랄 만 하면서도 기쁜 소식이야!]연희는 평소 양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아가 도경수의 손녀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뻤다. 그런데, 아심이 도경수의 손녀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말 그대로 두 배의 기쁨이었다.어젯밤, 연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노명성을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명성은 그녀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고마워.”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연희야, 나도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너무 행복해.”[이제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이기도 하잖아!]연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주말에 도경수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갈게. 축하도 드릴 겸.]“언제든지 환영해.”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오후에 정아현이 다시 업무 보고를 하러 왔을 때는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저,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그저 사장님이 걱정돼서 그랬던 건데, 앞으로는 다시는 미스터 강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게요!”아심은 담담히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남자 친구 생겼다면서요? 데이트하러 가요.”이에 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드려요, 사장님.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게요!”...아심이 퇴근할 때쯤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회사를 나설 땐 직원들마저 모두 퇴근해 그녀 혼자 남아 있었다.점심으로 받은 음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