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아는 당황했고 장시원이 길에서 그녀가 자신을 ‘사장님'이라고 부른 것에 삐졌다는 걸 깨달았다.임구택과 소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너 언제부터 이렇게 계산적이고 쪼잔해진 거야?”장시원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계산적이라면, 우청아는 아마 몇 번이나 죽었을걸?”소희가 말을 이었다. “오빠가 마음 넓은 사람이라는 거 누가 몰라요? 앞으로도 우청아 잘 부탁드려요.”우청아는 소희를 흘겨보며 화제를 바꿨다. “저녁에 뭐 먹을래요? 요리는 제가 할게요.”“예전처럼, 나랑 장시원이 요리하고, 너랑 소희는 요요랑 놀아!”임구택은 일어나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장시원은 아무 말없이 임구택을 따라 주방으로 갔고 냉장고를 열어 본 임구택이 말했다. “오늘은 있는 것으로 먹자, 까다롭게 굴지 말고.”장시원은 비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까다롭지 않다면, 나는 음식 가리지 않아.”임구택은 냉장고에서 사용할 재료를 꺼냈다.두부, 청피망, 소고기가 있어서, 임구택은 약간 매운 마파두부와 청피망 새우, 토마토 소고기찜을 만들기로 했다.그는 마파두부 요리법을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장시원에게 물었다. “너랑 우청아는 어떤 관계야?”장시원은 셔츠 소매를 걷고 청피망을 씻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죽이기 일보 직전까지 참은 그런 관계.”임구택은 웃으며 말했다. “우청아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너무하게 굴지 마. 진짜 화나게 해서 다시 떠나면, 넌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 거야.”장시원은 채소를 씻다가 멈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도망치면,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해.”임구택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왜 티를 안 내는 거야?”“우청아가 나를 그렇게 배신했는데, 내가 가만히 놔줄 거라고 생각해?” 장시원이 냉소적으로 웃자 임구택은 차분하게 말했다. “너 예전에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어떻게든 사귀었고 싫으면 바로 헤어졌잖아. 왜 이번엔 이렇게 흐지부지한 거야? 따로 이유라도 있
“왜 그래?”임구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희의 등을 두드려줬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먹을 때 장난 안 칠게.”그는 돌아서서 따뜻한 물 한 컵을 그녀에게 건넸다. “물 좀 마셔.”장시원은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괜찮아.” 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장시원을 보지 않았고 그녀는 깨끗이 씻은 사과를 하나 들고 말했다. “나 먼저 나갈게.”“응.”임구택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소희가 떠나고 주방 문이 닫히자, 장시원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 너 진짜 대단하다. 너랑 알고 지낸 지 27년인데 그런 모습 처음 봤어.”임구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잘 챙겨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어서 어쩔 수 없어. 뭔가 소중히 받들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소희는 도대체 너를 어떻게 길들인 거야?”장시원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해 보였고 임구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아마도, 운명인 거 같아!”장시원이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너 이제 소희한테서 벗어날 수 없겠다. 그냥 빨리 결혼해 버려. 결혼식 언제 할 생각이야?”“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소희가 나를 강성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면 결혼 준비 시작할 거야.”장시원은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그럼 난 들러리 할게!”“소희가 오케이 하면.”임구택의 말에 장시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거실에서, 소희는 사과를 썰어 요요에게 주었다.우청아는 마지막에 소희가 아침을 갖다 줬을 때 우연히 장시원을 만난 일에 관해 설명하자 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나는 너희가…….”우청아는 얼굴이 붉어져 소희의 말을 끊었다.“아니야, 너도 알잖아.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거.”소희는 조용히 말했다. “장시원이 너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전혀 감정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 정말로 만나 볼 생각 없어? 요요 아빠잖아.”우청아는 고개를 저었고 목소리는 평온했다. “생각해 본 적 없어. 그 사람이랑 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고 갭이 크다는 거 잘
음식 재료가 한정되어 있어서, 임구택은 네 개의 요리를 만들었다. 마침 장시원이 가져온 술이 아직 남아 있었고, 앉아서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장시원은 식사 내내 요요를 안고 있었고, 인내심 있고 세심하게 챙겼기에 요요도 그에게 매우 의존적이었다.그런 모습을 본 소희는 갑자기 장시원이 점점 아버지의 자격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얼떨결에 장시원은 요요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주고 있었다.식사를 마친 후, 임구택과 장시원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소희와 우청아는 발코니에 서서 밖의 빗소리를 들었다.강성의 밤비는 항상 사람의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화투나 윷놀이 같은 게 있으면 좀 놀아볼까요?”갑작스러운 장시원의 제안에 우청아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화투는 없고 윷놀이는 있어요. 예전의 임차인이 남겨둔 건데, 그냥 뒀었어요.”장시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가져와서 놀아요!”우청아가 캐비닛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윷놀이를 꺼냈다.네 사람 모두 거실로 돌아와 테이블 주위에 앉자 장시원은 윷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나랑 우청아랑 한 팀, 임구택이랑 소희랑 한 팀.”이때, 요요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누구랑 한 팀이지?”요요의 어리지만 진지한 목소리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장시원이 그녀를 안으며 인내심 있고 부드럽게 말했다. “요요는 삼촌이랑 한 팀이야, 어때?”“좋아요!” 요요가 기뻐하며 대답했고 우청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이거 안 한지 너무 오래돼서 다 까먹었어요. 하면서 다시 배워야겠으니까 잘 못해도 나한테 화내지 마요.”그러자 장시원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상대편에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소희는 장시원이 자신을 말하는 걸 알았다. 명절 때마다 윷놀이를 놀았는데, 소희는 운이 없어 임구택이 아니었으면 처참하게 졌었다.왜 윷놀이를 하거나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해도 잘하지 못하는지 본인도 의문이었다.어쩌면 신이 소희에게 공부머리를 주고 이런
임구택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있었다.소희는 ‘개’를 던졌고 게임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하지만 우청아가 ‘윷’을 뿌리게 되면서 주도권을 잡았고 이어 ‘몽’에 ‘걸’을 뿌리게 되자 순식간에 그들의 하얀색 윷놀이 말 하나가 나갔다.우청아와 장시원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고, 임구택과 소희는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했다.임구택이‘걸’을 뿌리자 장시원은 ‘개’를 뿌려 임구택과 소희의 검정색 윷놀이 말을 잡았다.다음 라운드에서 장시원은 여전히 검정색 윷놀이 말을 잡으려고 혈안이었고, 임구택은 장시원한테 안 잡히기 위해 혈안이었다.장시원은 비웃으며 말했다. “소희가 한 거 커버 치느라 바쁘네.”임구택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여자를 내가 커버 쳐줘야지, 누가 쳐줘?”“하하, 그래 그럼 열심히 해.”장시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소희는 곧 자리를 떠났고, 그녀의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다. 소희는 임구택을 향해 손뼉을 쳤는데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소희가 손을 들자마자, 임구택도 손을 들어 하이 파이브를 했고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러자 우청아는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이런 게 바로 사랑이지!장시원은 맞은편에 앉은 우청아를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요, 지게 하지는 않을 거니까!” 결국, 이 게임은 무승부로 끝났다.모두 점점 더 열정적으로 게임을 해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몰랐다.요요는 장시원의 품에 안겨 잠이 들자 그는 요요를 안방으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고는 게임을 계속했다.밤 11시가 되어서야, 술 한 병이 거의 비었고 그중 대부분은 장시원이 마셨다.우청아는 자신 때문에 장시원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다시 게임에서 졌을 때, 그의 손에서 술잔을 뺏으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마실게요.”“나 걱정하는 건가?” 장시원은 술을 들이켰고 그의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소희와 임구택 앞에서 우청아는 얼굴이 붉어지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무심코 돌아본 소희에게 한눈에 반한 임구택은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소희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빠져들었다. 임구택의 눈빛은 매우 많은 사연이 담겨 있어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날 때, 세상이 아름다울 때, 당신과 나는 서로를 둘러싸고 있어”장시원의 눈길은 계속 우청아의 얼굴에 머물렀다.우청아의 긴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고, 낮고 감미로운 노래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를 낳은 엄마였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부드러웠고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장시원은 우청아가 강하고 용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노래가 끝나자 우청아는 고개를 들었는데 많이 부끄러워했다. 소희가 박수를 치며 일어났고, 장시원이 이어서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어요, 당신한테 이런 숨은 재능이 있을 줄은.”임구택은 장시원이 우청아를 바라보는 눈길을 흘끗 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발코니로 걸어갔다. 소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따라 일어섰다.발코니의 창문은 열려 있었고, 미세한 비와 안갯 속에 잠긴 강성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번화하던 모습은 없어지고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것이,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다.축축한 공기가 얼굴에 부딪히자 마음속까지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소희는 그와 나란히 서서 밖에 보이는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임구택은 소희를 끌어안았고 그녀를 품에 가둔 채로 깊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네가 돌아온 그날도 비가 내렸어.”소희는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옆모습은 어두웠지만 잘생긴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임구택은 계속 말했다. “네가 새벽 5시 10분에 시카고 공항에서 출발했고, 강성에는 새벽 6시 25분에 도착했었어.”소희는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기억해?”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깊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거든.”비가 내리는 밤이었고, 그는 발코니에 앉아 한 시간마다
우청아는 무심코 먼 곳을 응시하며, 잠시 침묵한 후 물었다. “당신의 말은, 내가 하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가요?”장시원은 표정이 굳어졌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날 나는 널 지켜줘야 했던 게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에게 맞아 죽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했어!”그는 답답해하며 술잔을 반쯤 비웠고 우청아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장시원은 우청아가 흘깃 웃는 것을 보고, 이 여자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상하게도, 그는 덩달아 웃음이 났다.임구택과 소희는 발코니에서 돌아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벌써 늦었으니 이만 가볼게요. 여러분도 일찍 쉬세요.”우청아는 얼굴이 붉어지며, 고의로 소희 앞에서 장시원에게 물었다. “오늘도 게스트 룸에서 자나요?”그녀의 물음에 장시원이 말했다.“저번에 안방에서 잔 거 아니었나?”우청아는 말을 잇지 못했고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임구택은 미소를 띠고, 똑같이 웃음을 참고 있는 소희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우청아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속으로는 화가 나 장시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침실로 돌아갔다.장시원은 마음이 복잡하여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이내 손에 있던 담배를 다시 넣었다.잠시 후, 우청아는 목욕 가운을 들고나와 소파의 팔걸이 위에 걸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샤워하러 가세요.”우청아는 말을 마치고, 테이블 위의 윷놀이판과 와인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눈을 반쯤 감고, 옆얼굴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우청아였다.입술에는 립스틱 대신 투명한 글로스를 바른 듯,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났다.장시원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고 우청아에게 물었다.“내가 준 립스틱 왜 안 써요?”우청아는 놀란 듯 그를 바라보며, 그가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서둘러 말했다. “요요를 임신할 때는 화장을 못해서 습관이 됐어요.”장시원은 그녀의 자연스러운 입술색이 세상 모든 립스틱 색상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말했다. “이제 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우청아는 입술을 깨물었고 그녀의 고집처럼 눈물은 속눈썹에 맺혀 떨리고 있었다.“물지 마요!”“금방 발랐는데 물면 다시 발라야 하잖아.”그의 립스틱은 약간 오렌지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부드러움 속에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나 우청아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장시원은 립스틱이 이렇게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특히 우청아가 지금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한 모습과 어울려서 그녀의 부드러운 매력이 그를 제어할 수 없게 두근거리게 했다.원래 연애에 능숙한 그였지만, 지금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당황스러웠고 그는 숨이 가빠 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어?”우청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말해봐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나한테 당신을 줘요.”장시원이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는데 그의 목소리는 유혹적이고 섹시했다.“3개월이면 돼요. 당신도 알다시피 난 3개월 이상 한 여자를 만나지 않아요. 3개월이 지나서 내가 당신한테 질리면 우리 사이는 아무런 빚도 없게 될 겁니다.”우청아는 부들부들 떨었고 장시원은 그런 모습에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싫어요?”우청아의 눈물이 갑자기 떨어졌다. “그거 말고는…….”“이거 말고 뭐가 있어요?”장시원의 얼굴이 갑자기 차가워졌는데 더 이상의 인내심도 없어져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우청아 씨, 본인 몸 말고 내게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저를 벌하셔도 되잖아요. 제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평생 당신의 조수로 일할게요.”“당신을 벌하라고?”장시원은 갑자기 웃더니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녀 뺨의 눈물을 닦아냈다. “당신이 매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데, 그게 나에게 벌을 주는 거지 당신을 벌하는 건가?”우청아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끊어 말했다. “그럼 그냥 빚진 걸로 둬요, 난 갚을 생각 없으니까!”“다시
장시원은 그녀의 옷 매무새를 정돈해 주고는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그리고 우청아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그를 쫓아갔다.장시원은 현관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손을 뻗자 우청아는 달려가 문을 막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밖에 비 오는데, 어디 가려고 하는 거예요?”장시원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우청아 씨, 오늘 밤은 봐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자극하지 마요!”우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돼요, 당신은 못 가요. 게스트 룸에서 자더라 하더라도 상관없고 앞으로 나를 친구로 대하지 못하겠다 해도 괜찮으니까 오늘만큼은 못 가요!” 장시원의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우청아 씨, 난 당신을 봐주고 있다고 말했고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요!”그가 말하면서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지만 우청아는 꿋꿋이 문 앞에서 막으며 말했다.“어쨌든 오늘 밤엔 못 가요!”장시원의 눈빛이 서늘해졌고, 그녀를 옆으로 밀어내며 다시 문을 열려고 했다.우청아는 달려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기 시작했다.“장시원,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요?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장시원은 그녀의 무력하고 슬픈 울음소리를 듣자 마음이 아팠다.“놔요.”“안돼!”우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럼 내가 놔줄게요. 시카고로 돌아가서 다시 돌아오지도,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마요.”장시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청아는 순간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불안하고 마음이 아파졌다.“이 정도면 손 놓을 수 있겠어요?”상처받은 눈빛으로 우청아를 응시하는 장시원이었다.우청아는 그를 꽉 안고 있었지만, 그의 말에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장시원을 놓아주고 각자 갈 길을 가야 했다.장시원은 자신을 안고 있던 그녀의 팔을 천천히 떼어내고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문이 열리자 밖의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왔고 우청아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텅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
강아심은 용병에게 조하루네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용병은 냉랭하게 알겠다고 대답하며 기억해두었고, 하루가 망설이자 바로 그를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밖으로 걸어갔다. 이에 하루는 몸부림치며 울먹이며 외쳤다.“삼촌, 누나!”점점 그 목소리는 멀어져 갔다.아심은 목이 메었지만, 하루를 떠나보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오두막 바깥에서는 시언에게 맞아 쓰러진 자들이 동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부상이 심한 자들은 땅에 누워 쉬고, 가벼운 부상자들은 안으로 들어와 명령을 기다렸다.가면을 쓴 남자는 밖에 나가 전화를 걸고, 돌아와 자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저들을 잘 지켜보고 있어. 윗선의 지시를 기다려.”“예!” 몇몇 용병들이 대답했다.가면 남자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다른 용병들도 따라 나갔다. 오두막 안에는 두 명의 용병만이 남아 시언과 아심을 감시하고 있었다.잠시 후, 시언은 갑자기 아심을 들어 올려 돌며 옆에 있던 대나무 침대에 넘어졌다. 손발이 묶여 있어 힘 조절이 어려웠고, 그가 아심 위에 넘어지며 아심은 깜짝 놀랐다. 시언은 바로 몸을 뒤집어 아심이 자신의 위에 있도록 했다.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감시 중이던 용병들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누었지만, 두 사람이 단순히 침대에 누워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천천히 총을 내렸다.아심은 약간 고개를 들어 아래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언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두 사람이 줄에 묶여서 뻣뻣하게 서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이렇게 누워 있는 게 그나마 나아.”아심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그러자 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도 겪어봤어. 걱정하지 마, 난 쉽게 죽지 않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도 절대 죽지 않을 거야.”아심은 그들을 감시하는 용병들을 한 번 흘깃 보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를 바로 죽여 노도를
시언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노도를 위해 복수하러 온 건가?”가면을 쓴 남자가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변성기를 사용한 탓에 그 웃음소리는 거칠고 듣기 거북했다. 마치 산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야수가 내는 소리 같았다.“진언이 설마 노도의 죽음을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남자가 손짓하자, 바로 누군가가 하루를 그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하루의 목을 쓰다듬으며 냉소를 지었다.“이게 진언의 아들인가?”“아니!” 시언이 차갑게 응수했다.“보기엔 아닌 것 같지만, 진언은 무고한 아이가 본인 앞에서 죽는 걸 원하지 않겠지?”가면을 쓴 남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루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하루는 고개를 돌려 시언을 바라보며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도움을 청하거나 가면 남자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았다.이때 아심이 차갑게 말했다.“그 아이는 마을에 사는 평범한 농가의 아이야. 내가 인질이 될 테니 그를 풀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가면을 쓴 남자가 시언을 보며 물었다.“진언의 생각은 어때?”시언은 들고 있던 총을 내던졌다.“우리 조직에는 조직만의 규칙이 있어. 여성이나 아이를 인질로 잡는 건 가장 비열한 용병들만 하는 짓이야.”“너희들이 원하는 건 나니까 나를 마음대로 처리해. 하지만 여자와 아이는 산 아래로 보내.”아심이 시언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젓자, 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깊은 눈빛을 보냈다.“내 말을 들어.”아심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때, 가면을 쓴 남자가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아이는 풀어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여자는 안 돼. 이름은 넘버세븐. 진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지? 내가 틀리지 않았군!”시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 남자를 노려봤다. 그의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럼 아이부터 풀어줘!”“서두르지 마. 그 아이가 내 손 안에 없으면, 이 사람들로는 진언을 막아낼 수 없어. 내가 그 정도는 알고
강아심이 몸을 드러내는 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두 개의 창문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아심은 결국 한 사람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아심은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한 빠르고 강력하게 상대의 약점을 노려 공격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창문을 통해 밀려들었고, 하루가 숨던 곳에서 고개를 내밀자 한 고용병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들어가!” 아심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발로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를 걷어차 상대의 어깨를 가격해 총을 떨어뜨렸다.“탕!” 총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고, 총알이 벽을 뚫고 나갔다.아심은 두 명을 밀어내며 하루가 숨은 대나무 침상으로 다가가 그를 보호했다. 그 순간 또 다른 고용병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하루가 숨은 침상 밑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아심은 몸을 날려 고용병의 총을 걷어차며 떨어뜨렸고, 다시 그 총을 잡으려는 찰나 또 다른 고용병 두 명이 그녀를 공격해 왔다.아심은 한 남자의 팔을 비틀어 탈골 시키고, 몸을 회전시켜 다른 남자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 아심의 힘은 이 고용병들보다 약했지만 몸놀림이 민첩하고 공격이 매끄러워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 대나무 침상 위로 한 남자가 뛰어올라 침상을 들어 올리며 하루를 붙잡아 칼을 그의 여린 목에 들이댔다.“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이 아이를 죽일 거야!”이와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시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언이 지나온 길에는 이미 쓰러진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언의 등장에 방 안의 고용병들은 더욱 경계하며 총을 모두 그에게 겨누었다.가장 가까이 있던 고용병이 아심의 머리에 총을 겨누자 시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총으로 겨누지 마.”고용병은 시언의 서늘한 시선을 받자 손이 떨렸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시언은 천천히 아심 쪽으로 걸어갔다. 고용병의 눈빛은 두려움이 엿보였고, 본
조하루가 즉시 과일 주스를 시언에게 내밀며 말했다.“삼촌, 이거 드세요. 저를 그렇게 오랫동안 업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시언은 얇게 입가를 올리며 주스를 다시 돌려주었다.“난 누나와 장난친 거야.”“아...”시언은 최대한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조하루는 멍하게 대답하며 다시는 시언을 쳐다보지 못했다.아심은 입술을 꽉 다물며 웃음을 참았고, 차마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빵을 베어 물었다.숲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직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는 새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아심은 빵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 창가에 놓았다. 새는 신나게 부리로 쪼아먹었지만 다 먹기도 전에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시언은 창 아래에 서 있는 아심을 보며 반쪽 남은 빵을 들어 올렸다.“천천히 먹어, 난 밖에 좀 보고 올게.”아심은 시언이 문을 나가는 걸 보고 하루에게 속삭였다.“볼일 보러 가야 해? 삼촌이랑 같이 가면 돼!”하루는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갔다. 아심은 천천히 빵을 다 먹고 물병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밖에서 탕! 하고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아심의 얼굴이 굳어졌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시언이 떨고 있는 하루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바로 따라오던 한 남자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매우 빠르게 말했다.“지켜, 절대 나오지 마. 창문도 다 잠가!”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심은 이미 상황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나무집 주위는 전부 위장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용병들로 가득했고, 적어도 스무 명이 넘었다.문이 닫히고 난 뒤, 바깥에서는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아심은 조하루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두 개의 창문을 빠르게 닫은 뒤, 창을 야생 동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