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잠시 후, 청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술이 덜 깬 거예요?”장시원은 낮게 웃으며 이마를 그녀의 귀에 더 가까이 대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애정이 담긴 포즈였지만, 그의 말투는 한없이 냉담하고 무심했다. “난 자주 당신이 생각나요. 여자가 나에게 접근할 때마다 항상 당신이 생각나죠!”청아는 어둠 속에서 깊이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심장은 격렬히 뛰었지만, 그의 말투가 어딘가 잘못된 듯했다. 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 다시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아졌어요.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나를 허연에게 팔아 넘겼잖아요! 내가 얼마나 역겨워했는지 알아요? 다른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역겨워요!”청아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시원의 목소리는 냉정했다.“우청아,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건지 말해봐요.”청아는 놀란 눈으로 시원을 바라보았다. 시원이 술에 취해 그런 비밀을 털어놓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술에서 깨어나면 자신을 해치려 들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청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체검사나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요?”청아의 말이 끝나자, 시원의 숨결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청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시원은 분노했다. 그는 청아의 턱을 잡고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당신이 나에게 보상하는 방법은 찾지 않고 의사한테 보내려고요? 나를 온 강성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어요?”청아는 내심 두려웠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시원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청아는 그의 냉정한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딘가 낯설고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보상하길 원해요?”시원은 청아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동시에 애정 어린 듯했다. “저는 2년 동안 여자를 만지지 않았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청아
청아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어둠 속에서 어깨가 가볍게 떨라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소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눈이 크게 떠졌다.방문이 열리는 순간 키가 큰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남자는 소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잘 잤어?”소희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소희는 어젯밤 문을 꼭 닫은 것으로 기억한다.당황해하는 소희와 달리 구택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다.구택은 서서히 소희 곁으로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의 차분하면서도 언제나 냉담하게 보이던 얼굴이 아침 햇살에 의해 훨씬 부드러워졌다.미소를 띠며 그는 할 말을 다시 가다듬었다.“참, 내가 깜빡하고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네. 집 살 때 자기 이 집까지 내가 같이 샀어.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우리 자기 집주인인 셈이야. 집주인이 키를 가지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도 돼?”그러자 소희는 말문이 막혔다.‘그래! 돈만 많으면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잘 잤어?”구택은 맑고 그윽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잘 잤어.”“왜 나한테 잘 잤냐고 안 물어봐?”“인사가 늦었습니다. 집주인께서는 어젯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아니, 난 한숨도 제대로 못 잤어. 우리 세입자 생각하느라 잠이 와야 말이지.”그러자 소희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어차피 평소에도 제대로 못 자잖아.”소희의 일침에 구택은 단번에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곧 눈썹을 들썩이며 주도권을 도로 잡아 왔다.“근데, 너랑 같이 자기만 하면 난 푹 잘 수 있어.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소희는 더 이상 그의 말꼬리를 받지 않았다.“너 먼저 나가 있어. 씻고 나갈게.”“볼 것 다 본 사이에 이러면 섭섭하지.”구택은 말하면서 직접 소희를 이불에서 끌어안았다.소희는 잠옷 한 세트를 반듯하게 입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구택은
청아는 자기 자리로 다가와 앉았다.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오전 내내 시원은 무슨 일이든 최결에게만 부탁했다.평소에 청아가 책임져야 했던 업무도 모두 최결에게 맡겼다.그뿐만 아니라 청아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기원의 협력 방안마저도 최결에게 넘겨주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 최결은 한껏 흥분한 얼굴로 대표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그대로 청아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청아 씨, 저는 점심시간에 대표님과 함께 참석해야 하는 협상 회의가 있어요. 아마 좀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동안 다른 업무는 청아 씨가 처리해 주세요. 남은 자료들도 부탁할게요.”최결은 다소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청아에게 말했다.마치 시원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청아가 아니라 자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이제 알겠어? 대표님은 아끼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그렇게 최결은 기타 자질구레한 업무를 전부 청아에 떠넘기고 시원과 함께 기원으로 가서 협상 회의에 참석할 준비에 전념했다.청아는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최결의 업무를 건네받았다.12시도 되지 않아 최결은 예쁘게 차려입고 시원과 함께 회사를 떠났다.청아는 오후 1시쯤이 다 되어서야 손에 든 일을 다 마치고 밀린 점심을 먹으려고 12층으로 갔다.점심을 먹고 나서 청아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업무를 계속 보았다. 시간은 서서히 흘러 오후 3시가 되었고 최결은 그제야 회사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재무부의 안나와 업무상의 얘기를 나누고 나서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안나는 부러워하며 운을 뗐다.“대표님이 최결 씨한테 점점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기원과의 중요한 협상 회의에도 최결 씨만 데리고 가셨잖아요.”그러자 최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과 함께한 세월이라는 게 있는데, 설마 그 모든 세월이 부질없겠어요?”최결은 말하면서 청아가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그러다 씩 웃으며 덧붙였다.“저희 대표님은 밥이나 해주고 내숭이나 떠는
시원의 눈빛을 떠올린 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청아는 정신을 차리고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지금이 딱 좋아. 내가 원했던 거잖아.’‘그래! 더는 신경 쓰지 말자!’청아는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지었지만, 두 눈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입가의 미소마저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금요일 오후에 시원과 최결은 한창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있는데, 민율이 갑자기 시원을 찾아왔다.그녀는 짧은 머리를 자르고 옷 스타일도 바꾸었는데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다.넓은 긴 치마에 짙은 남색 스카프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요조숙녀가 따로 없었다.민율은 핸드백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청아에게 말했다.“대표님 입맛대로 커피 한 잔만 부탁해요.”“네.”청아는 웃으며 커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민율은 핸드백에서 모 브랜드의 립스틱을 꺼내서 청아에게 건네주었다.“지난번에 제가 청아 씨한테 선물을 드리지 못했어요. 자, 이 립스틱 선물로 받으세요.”케이스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립스틱은 불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한눈에 봐도 가치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하지만 청아는 단번에 거절했다.“고맙습니다만 마음만 받을게요.”그러자 민율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인데, 프리미엄 제품이라 사고 싶어도 사기 힘든 제품이에요.”“필요 없습니다.”청아의 태도는 더없이 단호했다.“그래요 그럼.”민율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맑고 솔직한 청아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립스틱을 탁자 위에 놓고 고개를 들어 다정하게 웃으며 청아에게 말했다.“요즘 대표님 찾으러 온 여자는 있었어요? 아니면 대표님이 대신 선물을 사 달고 시킨 적은 없었나요?”청아는 사실대로 말했다.“아니요. 없었습니다.”그러자 민율의 두 눈에는 기쁨이 드러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앞으로 대표님 찾으러 오는 여자분이 있으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이건 제 명함이에요. 우리 서로 연락
최결은 민율이 손에 들고 있는 립스틱을 보고 경탄했다.“이거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이죠? 케이스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진짜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우 비서가 선물로 달라고 한 모양이네요.”청아는 비아냥거리는 최결을 뒤로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밀린 업무가 있어서 전 그만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청아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시원은 청아의 뒷모습을 한 번 보고 민율의 손에 있는 립스틱도 한 번 훑어보았다.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민율에게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온 겁니까?”그러자 민율을 마냥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먼저 찾아오지 않으면 우린 만날 수도 없잖아요.”최결도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사무실로 가시죠.”시원은 덤덤하게 말했다.민율은 그의 말에 두 눈이 밝아지며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따라 들어갔다.최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청아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봤어요? 우리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는 저분이에요.”청아는 그녀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 두 눈은 여전히 깨끗하고 덤덤했다.“저기요, 최 비서님, 전 그 어느 방면으로든 최 비서님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저를 적대시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최결은 약간 경악한 표정으로 청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물론이죠.”청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계속 일했다.한편, 대표 사무실.민율은 넓은 책상 앞에 서서 몸을 숙여 앞으로 엎드려 한 쪽 다리를 들고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아양을 떨며 시원을 바라보고 있다.“머리 짧게 잘랐는데, 어때요? 예뻐요?”시원은 뒤로 등을 의자 기대어 입꼬리를 올렸다.“예쁘네요.”“그럼, 저녁에 제가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해도 될까요?”“제가 저녁 대접할게요.”시원은 두 눈에서 부드러운 감정이 흘러나오면서 나지막하게 웃었다.“인제 저를 마다하지 않네요? 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제야
“네, 알았어요.”청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무슨 일로 또 찾아가신 거지?’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 확실했다.처음부터 하온을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해버린 것이 실수였다.거짓말 하나가 수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청아는 손을 들어 흩어진 머리카락을 위로 모으고 짜증이 나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청아는 회사 주소를 하온에게 보냈다.그리고 시간을 한 번 보고는 그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4시 반쯤에 청아는 물건을 정리하고 퇴근하려고 했다.엘리베이터로 갈 때 뒤에서 갑자기 문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청아 씨.”청아는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그러자 시원과 문율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보아하니 두 사람은 데이트하러 가려는 것 같았다.청아를 바라보는 시원의 눈빛은 여전히 무관심한 가운데 냉기를 띠고 있다.“이제 퇴근하시는 거예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제가 가는 길에 바래다 드릴까요?”문율은 기분이 좋아서 유난히 친절했다.“고맙습니다. 전 괜찮습니다.”청아는 심지어 그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입술이 유난히 붉은 문율은 시원에게 팔짱을 끼고 있다.“시원 씨 비서 꽤 재미있는 것 같아요.”그러자 시원은 청아를 흘겨보며 웃는 듯 마는 듯했다.“뭐가 재미있다는 거죠?”문율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청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문율과 시원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문율은 고개를 돌리자, 청아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다.그리하여 청아에게 웃으며 말했다.“어서 타세요. 편하게 타도 괜찮아요. 청아 씨네 대표님 그렇게 빡빡한 사람 아니에요.”청아는 시원을 한번 보았다.하지만 그녀는 곧 눈을 내리깔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청아는 가장 뒤쪽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문율은 줄곧 시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었다.“제 친구가 바 오픈했는데, 와 달라고 노래를 불렀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마침내 1층에 멈추게 되었다.시원은 등을 꼿꼿하게 펴고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문율도 그의 발걸음을 쫓아 나갔다.청아는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는데, 방금 시원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그러나 아직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온이 생각에 더는 지체하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회사 건물을 나서자, 시원과 문율은 아직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하온은 차에서 내려 청아에게 인사했다.“청아 씨, 이쪽이에요.”청아는 하온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오늘 연희로부터 선물을 받은 오피스 룩을 입었다.치마 기장은 평소보다 좀 짧고 몸에 붙는 재단이 마침 몸매를 감싸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냈다.뒤에서 보면 더욱 영롱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다.문율은 웃으며 청아에게 말했다.“데이트 잘해요!”청아는 감히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즉시 시원 앞에서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하온의 두 눈에는 석양이 비추면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청아를 바라보았다.“오피스 룩도 너무 잘 어울리네요.”청아는 덤덤하게 웃었다.원래 뒷좌석으로 앉으려고 했는데, 이미 주동적으로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는 하온을 보고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올랐다.문율은 하온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시원에게 말했다.“방금 청아 씨가 좀 재밌다고 했었잖아요, 실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좀 이상해요.”시원은 앞의 차 그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어디가 이상한데요?”“경계심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조금 전에도 분명 남자 친구인데, 아니라고 했잖아요.”문율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웃었다.이때 운전기사는 이미 차를 몰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시원은 곧 발을 들어 차에 올랐다.문율은 시원의 얼굴에 어느새 웃음이 사라지고 눈빛도 다소 음침해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청아는 즉시 하온에게 물었다.“형수 아버님은 무슨 일로 찾아간
청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멋쩍게 웃었다.“그래서 뭐라고 했어요?”“전 그런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렸는데, 믿지 않던데요. 제가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숨긴다고 생각하시던데요.”하온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몰라요.”청아는 레몬주스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어색하게 웃었다.“사실 다른 사람이 도와줬어요. 근데 그 댁에서는 하온 씨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괜찮아요. 앞으로 하온 씨를 찾아가는 일만 없으면 돼요.”“아, 그렇군요.”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부탁하신 일을 제가 거절했는데, 그 사람들이 청아 씨한테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리 집이라고 무조건 모든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잖아요.”청아는 눈빛이 차가워졌고 정씨 가문의 후안무치함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잃었다.하온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아니면 제가 병원 관계자분께 부탁 좀 해볼게요.”“그러지 마세요!”청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 앞으로 친구고 뭐고 할 수 없어요.”무고한 하온을 연루시킨 것도 미안한데, 이런 도움까지 받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하온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지금 저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예요?”청아는 솔직하게 말했다.“하온 씨, 병원에 있을 때 저희 엄마 보살펴 주셔서 내내 고마워하고 있어요. 근데 단지 고마움뿐이에요. 남녀 사이의 그 어떠한 감정도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집안 문제로 하온 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하온은 약간 실망했다.“감정이 전혀 없어요? 제가 이렇게 형편없는 남자인가요?”청아는 바삐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하온 씨가 아니라 제가 문제가 많아서 그래요. 연애를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청아 씨가 뭘 고민하고 있는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해요. 청아 씨 혼자서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