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새우를 손질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확고했다.“이번 생에 그녀가 아니면 안 돼. 그런데 왜 자신을 괴롭히겠어?”장시원은 시선을 돌리며 갑자기 웃었다.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마. 그냥 그녀가 그리워서 못 견딜 뿐이잖아!”구택이 시원을 흘긋 보며 말했다. “내가 좋으니까!”장시원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네가 좋다면 이 세상에 네가 못 할 일이 어디 있겠어?”“내가 너라면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을 거야!”구택이가 비웃었다.그 말을 들은 시원이가 구택에게 물었다.“내가 뭐?”“청아 집에서 맞선보라고 부추긴다고 하더라?”구택이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런 일이 있어?”시원은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토마토를 계속 씻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구택이가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청아가 2년 동안 혼자서 꽤 힘들어했어. 적당한 사람이 있다면, 나도 소희한테 청아 좀 설득해 보라고 했을 거야. 결혼할 나이잖아.”장시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너 너무 심하게 기뻐하는 거 아니야?”임구택이 조롱했다. “상관없다며?”“어쨌든 청아가 내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관계는 있어!”“그건 사생활이야, 네가 상사라고 해도 관여할 수는 없어!”시원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구택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기운을 빼고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네. 앞으로 너하고 소희에 관한 일도 입 닫고 있을게.”구택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청아를 그렇게 신경 쓰면서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야?”시원은 이 말을 듣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너무 멀리 갔네. 청아는 나를 배신하고 나를 속인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지금 나랑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받으려 하는 게 말이 돼?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갈 것 같아?”이 말을 들은 구택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면 왜 요 2년 동안 다른 여자를 안 만났는데? 청아 때문이
해물탕은 좀 더 끓여야 했다. 따라서 몇몇 사람들은 먼저 식사를 하기로 했다.장시원은 요요를 자신의 곁에 두고 소고기와 토마토 계란 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임 아저씨가 만든 요리인데 한번 먹어볼까?”요요는 입을 내밀고 호호 불며 조심스럽게 한 입 먹었다. 꼭꼭 씹은 후,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맛있어요!”그리고 요요는 장시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삼촌도 요리할 줄 알아요?”시원은 당황했지만, 요요 마음속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웃으며 거짓말했다.“물론이지, 내가 만들어 줄게. 이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야!”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아이를 속이지 마세요. 기왕 하기로 한 이상 해 보여야죠!”시원이 말했다.“뭐 그까짓 거 구택한테서 배우면 되죠. 그게 뭐라고!”청아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요요가 그냥 물어본 거니까, 장 사장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리고는 임구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럼 임 사장님은 여기 계속 사시는 거예요? 임 사장님은 줄곧 여기서 사는 거예요? 그런 거면 앞으로 소희처럼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하셔도 돼요.”“그래요, 고마워요!”구택이 엷게 웃었다.“잠깐만요!” 장시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구택에게 물었다.“너 어디서 사는데?”청아가 웃으며 말했다.“구택 씨는 소희의 이웃이죠. 소희 집 맞은편에서 거주하고 있어요.”장시원이 놀란 표정으로 구택을 바라보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언제?”“이틀 전, 이사했어.”구택이 침착하게 대답했다.“대단해!” 시원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소희에게 농담을 건넸다.“제가 소희씨라면 그 자리에서 구택에게 청혼할 텐데요.”그 말에 구택이 소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웃었다.“애초에 나와 결혼할 사람이야!”장시원은 놀란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놀라운 날이네!”그러고는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이 화해했으니 이제 저놈 얼굴을 볼 일이 없겠네요. 건배합시다!”모두들 잔
장시원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사실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깔끔하게 씻기만 하면 되었다. 우청아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옆으로 가서 도마를 치우며 시원이가 씻은 접시를 닦아 찬장에 넣었다. 청아는 접시를 정리하며 슬쩍 시원의 건장한 옆모습을 눈짓으로 훑었다. 그는 열심히 설거지하고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굵은 팔뚝을 드러냈다. 청아는 그의 곁에서 분주히 움직였지만 요동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청아는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이 회사에서 관계를 생각하며 이상한 생각을 멈추려고 했다.한편, 거실에서 소희는 요요와 함께 블록을 쌓고 있었고, 임구택은 옆에서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소희와 요요의 모습을 보며 구택은 갑자기 약간의 불만이 생겼다. ‘장시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놈한테 이렇게 예쁜 딸이 그냥 생긴다니.’구택과 소희는 함께한 시간이 길었지만 아직 자녀가 없었다.‘세상 참 불공평하다!’“무슨 일 있어?” 소희는 마치 마음이 통하는 듯 구택을 올려다보았다.구택의 눈빛에는 약간의 원망이 서려 있었다.“아기 좋아해?”그러나 소희는 임구택이 자주 건네는 그 백색 알약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요요만 좋아, 다른 사람의 아이는 싫어.”“우리 아이라면?”임구택의 눈빛이 더욱 타오르고 있었다.소희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본 적 없어.”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구택은 계속해서 자녀에 관한 질문을 할 것 같았지만 이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이때 청아가 과일 접시를 들고 나왔다. “과일 먹을 시간이에요!”장시원도 손을 닦고 주방에서 나와 구택에게 술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그래, 이사 간 기념으로 파티를 하는게 어때?”임구택은 시원이 농담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러워? 차라리 너도 청아 씨 맞은편 집을 사서 다 같이 지내는 것이 좋겠어!”청아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우청아는 가볍게 화를 내며 말했다.“엄마 말 좀 듣자. 엄마랑 같이 잘까? 엄마가 동화책도 읽어줄게.”“싫어요, 삼촌이 재워주세요!”임구택과 소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이 반짝였다.‘요요가 시원 씨를 이렇게 좋아하다니!’“제가 재워드릴게요.”장시원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요요를 포근히 안아 침실로 향했다.“삼촌과 같이 자자.”“네.”요요는 시원의 목을 꼭 안고 따라갔다.청아는 무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따라갔다.침실에 들어서자, 시원은 잠시 멈칫했다. 평소와 다른, 여성의 침실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우청아가 잠을 자는 그곳이었다.침실에 들어서자 연한 우유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고 그 향기는 청아의 향기였다.안방은 소박했다. 침대 하나, 옅은 노란색에 작은 데이지가 수 놓인 시트, 같은 색상의 커튼, 옷장, 작은 서랍장, 그 위에는 연 청색 꽃병에도 작은 데이지가 담겨 있었다.침대 머리맡에 따뜻한 노란색 스탠드가 켜져 있어, 소박하지만 아늑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시원은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구름을 밟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마음도 가벼워졌다.요요를 침대에 눕힌 후에도 요요는 그의 팔을 꼭 붙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나랑 같이 누워요. 더 이야기 듣고 싶어요.”“요요, 말썽 부리면 안 돼!”청아가 엄하게 꾸짖었다.‘남자를 침실에 들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시원 씨를 침대에 눕힐 수 있을까?’“삼촌이 동화책 읽어줘야 해요!”요요는 졸린 눈을 비비며 청아의 꾸지람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리고는 삐죽 튀어나온 입술로 목이 메인 듯 말했다.시원은 요요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려 청아에게 물었다.“내가 누워도 됩니까?”청아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어떻게 설득할까?’“내일 새 침대 시트를 사줄게요.”장시원은 그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말했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청아는 거절했다.“게 아니에요.
임구택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저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우청아는 놀란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곧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우청아는 혼자 남겨졌다.청아는 분노를 억누르며 내일부터 소희를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 시각 소희는 위층으로 올라가며 걱정이 되었다.“둘이서만 있어도 괜찮을까?”“안심해, 장시원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니까.”임구택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그들 관계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소희는 시선을 아래로 고정하고 말했다.“나는 단지 장시원이 미덥지 않을 뿐이야.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시원 씨가 청아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 설령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일편단심일 수 있을까?”필경 시원은 과거가 복잡한 사람이었다.“그에게 기회를 줘, 이번엔 다를 거야.”구택은 소희의 손을 꼭 잡고 따듯하게 웃어 보였다.“그래!”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위층에 도착하자, 소희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난 이제 자러 갈게, 너도 일찍 자!”구택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다정하게 물었다. “어디 가서 자려고?”소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진지했다.“임구택, 우리는 각자 살기로 했잖아. 서로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주기로. 그래서 이웃으로 사는 거 아니야? 난 이런 관계가 좋아.”이 말을 들은 임구택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자기야, 우리는 부부야, 연인이 아니야.”“우리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어!”소희가 말했다.“결혼식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그래도 네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리고 부모님을 만난 후에야 결정할 수 있잖아? 따라서 그동안 우리는 연인이야.”“어정에 있을 때 우리는 연인이었고 함께 살았어!”소희가 말했다.“하지만 지금 함께 살고 싶지 않아.”임구택은 이를 악물었다.“이틀 만에 원래대로 돌려놓다니,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소희는 한 걸음 다가가
임구택의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스쳤다. 짜리하면서도 뜨거운 느낌이었다. 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주말.”“이틀 뒤.”소희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말했다.“좋아!”임구택은 그제야 웃으며 만족스럽게 말했다.“그래, 기다릴 수 있어!”소희는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그럼 나는 돌아가서 잘래!”“응.”임구택은 아쉬운 듯 소희에게 한참 동안 키스한 후에야 그녀를 보내주었다.건너편 문이 닫히고 임구택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원래 닫혀 있던 스크린이 갑자기 열리며 지니가 나타났다.“주인님 안녕하세요!”임구택은 손잡이를 잡고 경고했다.“몰래 보지 마!”지니는 곧장 눈을 가리며 웃었다.“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주인님의 모든 프라이버시와 관련해서 지니는 자동으로 정보를 차단한답니다.”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았어, 너를 확장 원급 레벨로 레벨 업 시켜 줄게.”“주인님 감사합니다!” 지니는 감동에 젖어 제자리에서 퐁퐁 뛰었다.이윽고 구택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지니가 물었다.“주인님, 왜 소희 씨한테 여행 갔다고 하라고 하셨어요?”임구택은 걸음을 옮기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희가 힘들어하잖아. 며칠 동안 좀 쉬게 해야지.”지니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네가 필요할 때 너를 부를게!”구택이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한편 아래층에서 청아는 거실에서 10분 동안 안절부절 못했다. 하지만 장시원이 나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들어가 보았다.문을 살짝 연 청아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두 사람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따뜻하고 어두운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요요는 달콤한 꿈나라에 있었다. 여전히 시원의 소매를 붙잡은 채. 장시원도 옆에 누워 곤히 잠들었다.청아는 차마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무려 3분 동안 서 있다가 그제야 작은 소리로 외쳤다.“장 사장님?”“장 사장님!”“시원 씨!”시원이가 깊이 잠든 모
“장시원 씨 술 마셨어요, 운전하면 안 돼요. 기사를 부르세요!”우청아가 말했다.장시원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저를 쫓아내는 거예요?”“아니요!”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단지 일찍 돌아가서 쉬시라고요.”장시원은 미적지근하게 그녀를 힐끗 보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안 받는다.하지만 장시원은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다.“어디 가세요?” 청아가 물었다. “운전하시면 안 돼요!”그러자 장시원은 그윽하게 청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나보고 여기에 계속 있으라고요?”이 말을 들은 청아의 표정이 굳어졌다.이어 시원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그때 청아가 그를 쫓아가며 급히 소리쳤다.“잠깐만 기다리세요, 운전기사님한테 무슨 바쁜 일이 생기신 거겠죠. 곧 전화하실 거예요!”장시원은 말없이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대꾸했다. “제발 자신의 일에나 집중하세요. 제 일엔 신경 쓰지 마십시오.”그리고 그는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아는 당황해 그의 소매를 잡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장시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손 떼세요.”그의 말에도 청아는 고집스럽게 그를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주무세요.”그 말을 들은 시원의 눈빛이 잠시 깊어졌다.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술기운에 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는 거죠?”청아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의 집 게스트룸에서 주무세요, 괜찮으시다면요.”장시원은 여전히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요? 왜 그렇게 저를 신경 쓰세요?”청아는 당황스러워하며 서둘러 해명했다. “당신이 우리 집에서 술을 드셨으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연루될 수 있으니까요.”장시원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가 뭔가요? 최결이 평소에 어떻게 말하는지, 우민율이 어떻게 나에게 비위를 맞추는지
장시원은 방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아니, 괜찮아!”“그럼 일 있으면 다시 연락주세요!”“그래!”장시원은 전화를 끊고 방문을 열어 맞은편 침실을 바라보았다. 이 집의 구조는 두 개의 침실이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안방과 게스트룸의 문이 서로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복도만 있다. 청아는 목욕 가운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건 제 것인데, 사이즈가 좀 커서 맞을 거예요”장시원은 가운을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연분홍색에 헬로키티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청아가 서둘러 해명했다.청아가 서둘러 설명했다. “요요가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골라준 거예요.”이 말을 들은 시원은 단번에 표정이 많이 풀렸다.‘그래도 입을 수는 있겠어. 어쨌든 샤워하고 나서 입었던 옷은 못 입을 테니까.’“그럼 먼저 샤워하세요!”청아가 말했다. “욕실에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를 준비해 뒀어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분홍색 헬로키티 목욕 가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청아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욕실 문을 닫은 시원은 비록 좁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욕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세면대 위에는 청아와 요요의 칫솔 컵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청아가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 세트가 있었다. 수건과 치약까지 모두 새것이었다.세 사람의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자, 시원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칫솔 컵을 들고 양치를 했다.샤워를 마치고 목욕 가운을 입을 때 시원은 무의식적으로 코끝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분명 청아의 향기였다.목욕 가운은 확실히 시원이 입기에 충분했다. 물론 약간 짧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이윽고 시원은 목욕 가운을 둘러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방에서 나오던 청아와 마주쳤다.청아는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돌아섰다.시원의 물기 어린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헐겁게 묶인 목욕 가운이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를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