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원은 방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아니, 괜찮아!”“그럼 일 있으면 다시 연락주세요!”“그래!”장시원은 전화를 끊고 방문을 열어 맞은편 침실을 바라보았다. 이 집의 구조는 두 개의 침실이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안방과 게스트룸의 문이 서로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복도만 있다. 청아는 목욕 가운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건 제 것인데, 사이즈가 좀 커서 맞을 거예요”장시원은 가운을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연분홍색에 헬로키티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청아가 서둘러 해명했다.청아가 서둘러 설명했다. “요요가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골라준 거예요.”이 말을 들은 시원은 단번에 표정이 많이 풀렸다.‘그래도 입을 수는 있겠어. 어쨌든 샤워하고 나서 입었던 옷은 못 입을 테니까.’“그럼 먼저 샤워하세요!”청아가 말했다. “욕실에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를 준비해 뒀어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분홍색 헬로키티 목욕 가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청아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욕실 문을 닫은 시원은 비록 좁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욕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세면대 위에는 청아와 요요의 칫솔 컵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청아가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 세트가 있었다. 수건과 치약까지 모두 새것이었다.세 사람의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자, 시원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칫솔 컵을 들고 양치를 했다.샤워를 마치고 목욕 가운을 입을 때 시원은 무의식적으로 코끝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분명 청아의 향기였다.목욕 가운은 확실히 시원이 입기에 충분했다. 물론 약간 짧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이윽고 시원은 목욕 가운을 둘러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방에서 나오던 청아와 마주쳤다.청아는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돌아섰다.시원의 물기 어린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헐겁게 묶인 목욕 가운이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를
이런 집은 구조상 방음이 좋지 않다.장시원은 그 욕실을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자신과 우청아가 같은 샤워 젤을 쓴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해졌다. 술기운이 서서히 몸을 감쌌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욕실에서 나는 소리가 멎었고, 옆방 문이 조심스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불도 꺼졌다.시원은 옆방 문 닫는 소리를 듣고 괴로워했다. 그래도 자기 전에 한번 자신을 보러 올 수 있지 않는가. 손님이기도 하고 지금 청아의 집에 머물고 있으니. 그런데 청아는 왜 잠자리가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않는 걸까?’‘정말로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걸까!’시원은 화가 났다. 왜 여기에 머물려 했는지 속상함에 몸을 뒤척이며,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낯선 집이라 복도 스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방으로 돌아왔다.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원의 품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첫 번째 생각은 ‘또 어떤 여자가 나의 침대에 올라온 걸까?’였다.시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를 밀쳤다.“내가 화내기 전에 스스로 나가!”그런데 그 여자는 청아였다. 청아는 시원이 밀치는 바람에 깨어나, 침대에 낯선 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시원도 일어나 어둠 속에서 청아와 눈이 마주쳤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며 불편한 감정이 고조되었다.“우청아, 당신이 왜 내 침대에 있어요?”청아는 당황해서 그를 걷어찼다. “이건 당신 침대가 아니라고요!”시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청아에게 차여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청아도 놀라 시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침대에서 떨어졌다.청아는 시원의 품에 안겨 떨어졌다. 시원은 이 기회를 이용해 청아 위에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청아가 요요를 위해 바닥에 카펫을 깔아 놓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잠깐의 침묵 끝에 청아는 그를 밀쳐냈다.“일어나세요!”“움직이지
우청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잠시 후, 청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술이 덜 깬 거예요?”장시원은 낮게 웃으며 이마를 그녀의 귀에 더 가까이 대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애정이 담긴 포즈였지만, 그의 말투는 한없이 냉담하고 무심했다. “난 자주 당신이 생각나요. 여자가 나에게 접근할 때마다 항상 당신이 생각나죠!”청아는 어둠 속에서 깊이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심장은 격렬히 뛰었지만, 그의 말투가 어딘가 잘못된 듯했다. 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 다시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아졌어요.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나를 허연에게 팔아 넘겼잖아요! 내가 얼마나 역겨워했는지 알아요? 다른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역겨워요!”청아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시원의 목소리는 냉정했다.“우청아,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건지 말해봐요.”청아는 놀란 눈으로 시원을 바라보았다. 시원이 술에 취해 그런 비밀을 털어놓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술에서 깨어나면 자신을 해치려 들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청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체검사나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요?”청아의 말이 끝나자, 시원의 숨결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청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시원은 분노했다. 그는 청아의 턱을 잡고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당신이 나에게 보상하는 방법은 찾지 않고 의사한테 보내려고요? 나를 온 강성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어요?”청아는 내심 두려웠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시원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청아는 그의 냉정한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딘가 낯설고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보상하길 원해요?”시원은 청아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동시에 애정 어린 듯했다. “저는 2년 동안 여자를 만지지 않았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청아
청아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어둠 속에서 어깨가 가볍게 떨라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소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눈이 크게 떠졌다.방문이 열리는 순간 키가 큰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남자는 소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잘 잤어?”소희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소희는 어젯밤 문을 꼭 닫은 것으로 기억한다.당황해하는 소희와 달리 구택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다.구택은 서서히 소희 곁으로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의 차분하면서도 언제나 냉담하게 보이던 얼굴이 아침 햇살에 의해 훨씬 부드러워졌다.미소를 띠며 그는 할 말을 다시 가다듬었다.“참, 내가 깜빡하고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네. 집 살 때 자기 이 집까지 내가 같이 샀어.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우리 자기 집주인인 셈이야. 집주인이 키를 가지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도 돼?”그러자 소희는 말문이 막혔다.‘그래! 돈만 많으면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잘 잤어?”구택은 맑고 그윽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잘 잤어.”“왜 나한테 잘 잤냐고 안 물어봐?”“인사가 늦었습니다. 집주인께서는 어젯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아니, 난 한숨도 제대로 못 잤어. 우리 세입자 생각하느라 잠이 와야 말이지.”그러자 소희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어차피 평소에도 제대로 못 자잖아.”소희의 일침에 구택은 단번에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곧 눈썹을 들썩이며 주도권을 도로 잡아 왔다.“근데, 너랑 같이 자기만 하면 난 푹 잘 수 있어.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소희는 더 이상 그의 말꼬리를 받지 않았다.“너 먼저 나가 있어. 씻고 나갈게.”“볼 것 다 본 사이에 이러면 섭섭하지.”구택은 말하면서 직접 소희를 이불에서 끌어안았다.소희는 잠옷 한 세트를 반듯하게 입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구택은
청아는 자기 자리로 다가와 앉았다.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오전 내내 시원은 무슨 일이든 최결에게만 부탁했다.평소에 청아가 책임져야 했던 업무도 모두 최결에게 맡겼다.그뿐만 아니라 청아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기원의 협력 방안마저도 최결에게 넘겨주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 최결은 한껏 흥분한 얼굴로 대표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그대로 청아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청아 씨, 저는 점심시간에 대표님과 함께 참석해야 하는 협상 회의가 있어요. 아마 좀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동안 다른 업무는 청아 씨가 처리해 주세요. 남은 자료들도 부탁할게요.”최결은 다소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청아에게 말했다.마치 시원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청아가 아니라 자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이제 알겠어? 대표님은 아끼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그렇게 최결은 기타 자질구레한 업무를 전부 청아에 떠넘기고 시원과 함께 기원으로 가서 협상 회의에 참석할 준비에 전념했다.청아는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최결의 업무를 건네받았다.12시도 되지 않아 최결은 예쁘게 차려입고 시원과 함께 회사를 떠났다.청아는 오후 1시쯤이 다 되어서야 손에 든 일을 다 마치고 밀린 점심을 먹으려고 12층으로 갔다.점심을 먹고 나서 청아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업무를 계속 보았다. 시간은 서서히 흘러 오후 3시가 되었고 최결은 그제야 회사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재무부의 안나와 업무상의 얘기를 나누고 나서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안나는 부러워하며 운을 뗐다.“대표님이 최결 씨한테 점점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기원과의 중요한 협상 회의에도 최결 씨만 데리고 가셨잖아요.”그러자 최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과 함께한 세월이라는 게 있는데, 설마 그 모든 세월이 부질없겠어요?”최결은 말하면서 청아가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그러다 씩 웃으며 덧붙였다.“저희 대표님은 밥이나 해주고 내숭이나 떠는
시원의 눈빛을 떠올린 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청아는 정신을 차리고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지금이 딱 좋아. 내가 원했던 거잖아.’‘그래! 더는 신경 쓰지 말자!’청아는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지었지만, 두 눈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입가의 미소마저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금요일 오후에 시원과 최결은 한창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있는데, 민율이 갑자기 시원을 찾아왔다.그녀는 짧은 머리를 자르고 옷 스타일도 바꾸었는데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다.넓은 긴 치마에 짙은 남색 스카프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요조숙녀가 따로 없었다.민율은 핸드백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청아에게 말했다.“대표님 입맛대로 커피 한 잔만 부탁해요.”“네.”청아는 웃으며 커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민율은 핸드백에서 모 브랜드의 립스틱을 꺼내서 청아에게 건네주었다.“지난번에 제가 청아 씨한테 선물을 드리지 못했어요. 자, 이 립스틱 선물로 받으세요.”케이스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립스틱은 불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한눈에 봐도 가치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하지만 청아는 단번에 거절했다.“고맙습니다만 마음만 받을게요.”그러자 민율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인데, 프리미엄 제품이라 사고 싶어도 사기 힘든 제품이에요.”“필요 없습니다.”청아의 태도는 더없이 단호했다.“그래요 그럼.”민율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맑고 솔직한 청아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립스틱을 탁자 위에 놓고 고개를 들어 다정하게 웃으며 청아에게 말했다.“요즘 대표님 찾으러 온 여자는 있었어요? 아니면 대표님이 대신 선물을 사 달고 시킨 적은 없었나요?”청아는 사실대로 말했다.“아니요. 없었습니다.”그러자 민율의 두 눈에는 기쁨이 드러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앞으로 대표님 찾으러 오는 여자분이 있으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이건 제 명함이에요. 우리 서로 연락
최결은 민율이 손에 들고 있는 립스틱을 보고 경탄했다.“이거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이죠? 케이스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진짜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우 비서가 선물로 달라고 한 모양이네요.”청아는 비아냥거리는 최결을 뒤로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밀린 업무가 있어서 전 그만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청아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시원은 청아의 뒷모습을 한 번 보고 민율의 손에 있는 립스틱도 한 번 훑어보았다.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민율에게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온 겁니까?”그러자 민율을 마냥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먼저 찾아오지 않으면 우린 만날 수도 없잖아요.”최결도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사무실로 가시죠.”시원은 덤덤하게 말했다.민율은 그의 말에 두 눈이 밝아지며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따라 들어갔다.최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청아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봤어요? 우리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는 저분이에요.”청아는 그녀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 두 눈은 여전히 깨끗하고 덤덤했다.“저기요, 최 비서님, 전 그 어느 방면으로든 최 비서님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저를 적대시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최결은 약간 경악한 표정으로 청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물론이죠.”청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계속 일했다.한편, 대표 사무실.민율은 넓은 책상 앞에 서서 몸을 숙여 앞으로 엎드려 한 쪽 다리를 들고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아양을 떨며 시원을 바라보고 있다.“머리 짧게 잘랐는데, 어때요? 예뻐요?”시원은 뒤로 등을 의자 기대어 입꼬리를 올렸다.“예쁘네요.”“그럼, 저녁에 제가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해도 될까요?”“제가 저녁 대접할게요.”시원은 두 눈에서 부드러운 감정이 흘러나오면서 나지막하게 웃었다.“인제 저를 마다하지 않네요? 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제야
“네, 알았어요.”청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무슨 일로 또 찾아가신 거지?’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 확실했다.처음부터 하온을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해버린 것이 실수였다.거짓말 하나가 수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청아는 손을 들어 흩어진 머리카락을 위로 모으고 짜증이 나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청아는 회사 주소를 하온에게 보냈다.그리고 시간을 한 번 보고는 그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4시 반쯤에 청아는 물건을 정리하고 퇴근하려고 했다.엘리베이터로 갈 때 뒤에서 갑자기 문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청아 씨.”청아는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그러자 시원과 문율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보아하니 두 사람은 데이트하러 가려는 것 같았다.청아를 바라보는 시원의 눈빛은 여전히 무관심한 가운데 냉기를 띠고 있다.“이제 퇴근하시는 거예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제가 가는 길에 바래다 드릴까요?”문율은 기분이 좋아서 유난히 친절했다.“고맙습니다. 전 괜찮습니다.”청아는 심지어 그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입술이 유난히 붉은 문율은 시원에게 팔짱을 끼고 있다.“시원 씨 비서 꽤 재미있는 것 같아요.”그러자 시원은 청아를 흘겨보며 웃는 듯 마는 듯했다.“뭐가 재미있다는 거죠?”문율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청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문율과 시원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문율은 고개를 돌리자, 청아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다.그리하여 청아에게 웃으며 말했다.“어서 타세요. 편하게 타도 괜찮아요. 청아 씨네 대표님 그렇게 빡빡한 사람 아니에요.”청아는 시원을 한번 보았다.하지만 그녀는 곧 눈을 내리깔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청아는 가장 뒤쪽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문율은 줄곧 시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었다.“제 친구가 바 오픈했는데, 와 달라고 노래를 불렀었어요.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
여진구는 바로 문을 나가려 했다. 임유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따라붙으며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선배 지금 우리 엄마한테 말하러 가는 거예요?”진구는 붉어진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어린애들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안 될 이유가 뭐야?”“안 돼요! 절대 가면 안 돼요!”유진은 온 힘을 다해 진구를 붙잡았다. 그러나 진구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줘서 떼어내려 했다.“손 놔!”“안 놔요! 선배, 선배가 뭔데 내 일에 참견죠?”“너희 가족은 전부 내가 너를 회사에서 관리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 난 너에 대한 책임이 있고!”“뭐요? 지금 미쳤어요? 선배 회사가 무슨 어린이집이에요? 선배는 그냥 내 상사죠,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잖아요!”“너 내 부서 사람이잖아. 내 책임이야!”“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요!”“넌 너무 철이 없어!”“뭐요? 철이 없다고요?”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순식간에 진구의 팔을 붙잡고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차려 했다. 진구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도, 유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봐 신경을 썼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서인이 커다란 뼈다귀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무뚝뚝했고, 목소리에도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비키지?”유진은 순간 당황해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서인은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야옹이에게 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애옹이는 음식 냄새를 맡고 서인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서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살짝 밀어냈다.서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애옹이는 몸이 가볍고 재빠른 덕분에 부드럽게 착지했다.야옹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마치 동정을 하듯, 입에 물고 있던 뼈 하나를 작은 애옹이 쪽으로 던졌다.그리고 유진은 이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인이 애옹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때
가끔 서인이 몇 마디 맞장구를 쳤지만, 대부분은 임유진이 혼자 말하는 시간이었다.“옆 부서에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있는데, 자꾸 우리 사무실에 와요. 꼭 진구 선배가 있을 때 찾아와서, 다들 걔가 짝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그런데 문제는 진구 선배가 그 애를 네 번이나 봤는데도 아직 이름을 기억 못 한다는 거죠.”“이번 워크숍에 그 부서도 같이 가는데, 혹시 이번 기회에 좀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죠!”“우리 동료 중 한 명이 집에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는데, 벌써 한 살이 넘었대요. 내가 애옹이 사진 보여줬더니 완전 반하더라고요.”“나중에 둘이 고양이 맞선 한 번 보자더라고요. 물론, 이건 사장님 허락이 필요하죠!”...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던 유진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서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서인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유진은 입술을 앙다물다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결혼하면, 매일 이렇게 같이 있는 거잖아요. 꽤 괜찮지 않아요?”서인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무심한 듯 말했다.“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맨날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 거야?”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사장님 생각이죠!”유진은 서인의 등 뒤에서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서인의 어깨가 살짝 경직되었고,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그러나 서인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유진은 애옹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너 말해 봐. 저 사람,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 맞지?”“냐옹.”애옹이는 맑은 크리스탈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울었다.잠시 후, 오현빈이 다가와 유진을 불렀다.“유진아, 수박 가져왔어. 먹고 가!”유진은 애옹이를 내려놓고, 마당을 정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수박을 먹으며 쉬던 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러나 바로, 유진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앞에
소희는 우청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금요일, 샤부샤부 가게아침에는 영업하지 않기 때문에, 오현빈과 직원들은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가게 청소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재료를 구매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 막 가게 문을 연 순간, 임유진이 커다란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자 안에는 애옹이를 위한 사료, 간식, 모래 등이 잔뜩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현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평일인데, 너 출근 안 했어?”유진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회사 단체 워크숍이 있는데 안 갔어요.”이문이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워크숍 좋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뭐가 좋아요? 차라리 집에서 푹 쉬는 게 낫죠.”현빈은 이문과 눈을 맞추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주된 이유는 워크숍에 사장님이 없어서겠지?”“사장님이랑 무슨 상관이죠?”유진은 턱을 치켜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위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사장님, 아직 안 일어났어요?”현빈과 이문을 비롯한 직원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서인이랑 상관없다고 하더니, 바로 그의 일정을 묻다니!유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상자 안에서 작은 공을 꺼내 현빈에게 던졌다.“뭘 웃어요?”“아직도 웃어요?”오현빈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두 손을 들었다.“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한바탕 장난을 친 후, 유진은 후원으로 가서 애옹이를 보러 갔다.한편, 서인은 아침 운동으로 샌드백을 몇 번 친 뒤, 아래층 주방에서 야옹이의 밥그릇을 챙겼다. 그리고 후원으로 가려고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작은 나무집
도설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졌다.“지금 나를 일부러 모욕하는 거예요?”심명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내가 준 거울은 가져가고, 이제 꺼져요. 그 따위로 소희에게 덤비다니, 집에 거울이 부족했나 보군.”설유는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그래서 이 모든 게 일부러였다는 거네요!”설유는 심명의 말을 곱씹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설마, 당신도 임구택을 좋아하는 거예요?”‘그래서 자신이 임구택에게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약혼식장에서 데려왔던 거라면?’콜록!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심명은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그러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설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장 꺼져요.”‘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거야?’설유는 계속 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자 심명은 그대로 차 문을 열어 설유를 밀어냈다.마침 밖에 있던 남자가 설유가 다치지 않게 잡아주려 했지만, 설유는 격분하며 그를 마구 밀쳤다.“건방지게 어디 감히 날 만져?”남자는 설유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놓아버렸다.쿵! 그리고 설유는 땅바닥에 세게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지만, 제대로 화를 낼 틈도 없이, 앞에서 스포츠카가 급가속하며 떠났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설유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연회장에서 소희와 우청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희는 심명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소희야, 너 때문에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어!]뒤에는 벽에 숨어 우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소희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그 여자가 나한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어?]심명은 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안 돼, 네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면 안 돼.]소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그래서, 무슨 짓을 했어?]심명은 여전히 장난스러
소희는 임구택의 넓고 단단한 어깨에 몸을 기댔다. 소희의 섬세한 눈매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었고, 손가락은 그의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구택의 손이 소희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가슴으로 끌어안았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맞춤이 소희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도설유는 화원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아까 장시원 사장 옆에 있던 남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누구야?”설유의 질문에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짐작했다.“장시원 사장이랑 친한 사람이라면, 임구택, 조백림, 장명원 정도인데, 누구 말하는 거야?”설유는 직감적으로 대답했다.“임구택? 임씨 그룹의 사장?”“맞아, 임구택!”도설유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 사람, 결혼했어?”그 말을 듣자 상대방은 흥분한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엄청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 그때 인터넷에서도 라이브로 방송됐었는데!”설유는 곧바로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던 여자를 떠올리고는 비웃듯이 말했다.“그 사람 와이프, 성격 엄청 안 좋아 보이던데? 그런 남자가 왜 그렇게 무서운 와이프를 골랐을까?”그때, 옆에서 부드럽고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임구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난 그의 모든 걸 알고 있는데요?”도설유가 뒤를 돌아보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 베이지 캐주얼 슈트를 입고, 귓가에는 흑요석 귀걸이가 반짝이는 남자.그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이었고, 요염한 매력까지 풍기자, 설유의 눈빛이 흔들렸다.“당신 임구택 사장을 알아요?”그 남자는 능청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남자는 입꼬리를 날렵하게 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도발적인 눈길은 상대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설유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나 나눌까요? 궁금한 거, 다 알려줄게요. 심지어 네가 임구택을 쫓아다니게 도와줄 수도 있어요.”설유는 살짝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