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원 씨 술 마셨어요, 운전하면 안 돼요. 기사를 부르세요!”우청아가 말했다.장시원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저를 쫓아내는 거예요?”“아니요!”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단지 일찍 돌아가서 쉬시라고요.”장시원은 미적지근하게 그녀를 힐끗 보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안 받는다.하지만 장시원은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다.“어디 가세요?” 청아가 물었다. “운전하시면 안 돼요!”그러자 장시원은 그윽하게 청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나보고 여기에 계속 있으라고요?”이 말을 들은 청아의 표정이 굳어졌다.이어 시원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그때 청아가 그를 쫓아가며 급히 소리쳤다.“잠깐만 기다리세요, 운전기사님한테 무슨 바쁜 일이 생기신 거겠죠. 곧 전화하실 거예요!”장시원은 말없이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대꾸했다. “제발 자신의 일에나 집중하세요. 제 일엔 신경 쓰지 마십시오.”그리고 그는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아는 당황해 그의 소매를 잡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장시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손 떼세요.”그의 말에도 청아는 고집스럽게 그를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주무세요.”그 말을 들은 시원의 눈빛이 잠시 깊어졌다.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술기운에 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는 거죠?”청아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의 집 게스트룸에서 주무세요, 괜찮으시다면요.”장시원은 여전히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요? 왜 그렇게 저를 신경 쓰세요?”청아는 당황스러워하며 서둘러 해명했다. “당신이 우리 집에서 술을 드셨으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연루될 수 있으니까요.”장시원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가 뭔가요? 최결이 평소에 어떻게 말하는지, 우민율이 어떻게 나에게 비위를 맞추는지
장시원은 방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아니, 괜찮아!”“그럼 일 있으면 다시 연락주세요!”“그래!”장시원은 전화를 끊고 방문을 열어 맞은편 침실을 바라보았다. 이 집의 구조는 두 개의 침실이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안방과 게스트룸의 문이 서로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복도만 있다. 청아는 목욕 가운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건 제 것인데, 사이즈가 좀 커서 맞을 거예요”장시원은 가운을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연분홍색에 헬로키티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청아가 서둘러 해명했다.청아가 서둘러 설명했다. “요요가 헬로키티를 좋아해서 골라준 거예요.”이 말을 들은 시원은 단번에 표정이 많이 풀렸다.‘그래도 입을 수는 있겠어. 어쨌든 샤워하고 나서 입었던 옷은 못 입을 테니까.’“그럼 먼저 샤워하세요!”청아가 말했다. “욕실에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를 준비해 뒀어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분홍색 헬로키티 목욕 가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청아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욕실 문을 닫은 시원은 비록 좁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욕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세면대 위에는 청아와 요요의 칫솔 컵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청아가 새로 준비한 세면도구 세트가 있었다. 수건과 치약까지 모두 새것이었다.세 사람의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자, 시원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칫솔 컵을 들고 양치를 했다.샤워를 마치고 목욕 가운을 입을 때 시원은 무의식적으로 코끝에서 나는 향기를 맡았다. 분명 청아의 향기였다.목욕 가운은 확실히 시원이 입기에 충분했다. 물론 약간 짧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이윽고 시원은 목욕 가운을 둘러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방에서 나오던 청아와 마주쳤다.청아는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돌아섰다.시원의 물기 어린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헐겁게 묶인 목욕 가운이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를
이런 집은 구조상 방음이 좋지 않다.장시원은 그 욕실을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자신과 우청아가 같은 샤워 젤을 쓴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해졌다. 술기운이 서서히 몸을 감쌌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욕실에서 나는 소리가 멎었고, 옆방 문이 조심스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불도 꺼졌다.시원은 옆방 문 닫는 소리를 듣고 괴로워했다. 그래도 자기 전에 한번 자신을 보러 올 수 있지 않는가. 손님이기도 하고 지금 청아의 집에 머물고 있으니. 그런데 청아는 왜 잠자리가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않는 걸까?’‘정말로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걸까!’시원은 화가 났다. 왜 여기에 머물려 했는지 속상함에 몸을 뒤척이며,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낯선 집이라 복도 스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방으로 돌아왔다.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원의 품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첫 번째 생각은 ‘또 어떤 여자가 나의 침대에 올라온 걸까?’였다.시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를 밀쳤다.“내가 화내기 전에 스스로 나가!”그런데 그 여자는 청아였다. 청아는 시원이 밀치는 바람에 깨어나, 침대에 낯선 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시원도 일어나 어둠 속에서 청아와 눈이 마주쳤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며 불편한 감정이 고조되었다.“우청아, 당신이 왜 내 침대에 있어요?”청아는 당황해서 그를 걷어찼다. “이건 당신 침대가 아니라고요!”시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청아에게 차여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청아도 놀라 시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침대에서 떨어졌다.청아는 시원의 품에 안겨 떨어졌다. 시원은 이 기회를 이용해 청아 위에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청아가 요요를 위해 바닥에 카펫을 깔아 놓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잠깐의 침묵 끝에 청아는 그를 밀쳐냈다.“일어나세요!”“움직이지
우청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잠시 후, 청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술이 덜 깬 거예요?”장시원은 낮게 웃으며 이마를 그녀의 귀에 더 가까이 대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애정이 담긴 포즈였지만, 그의 말투는 한없이 냉담하고 무심했다. “난 자주 당신이 생각나요. 여자가 나에게 접근할 때마다 항상 당신이 생각나죠!”청아는 어둠 속에서 깊이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심장은 격렬히 뛰었지만, 그의 말투가 어딘가 잘못된 듯했다. 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 다시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아졌어요.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나를 허연에게 팔아 넘겼잖아요! 내가 얼마나 역겨워했는지 알아요? 다른 여자를 만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역겨워요!”청아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시원의 목소리는 냉정했다.“우청아,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건지 말해봐요.”청아는 놀란 눈으로 시원을 바라보았다. 시원이 술에 취해 그런 비밀을 털어놓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술에서 깨어나면 자신을 해치려 들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청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체검사나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요?”청아의 말이 끝나자, 시원의 숨결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청아도 말을 잇지 못했다. 시원은 분노했다. 그는 청아의 턱을 잡고 차갑게 그녀를 응시했다.“당신이 나에게 보상하는 방법은 찾지 않고 의사한테 보내려고요? 나를 온 강성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어요?”청아는 내심 두려웠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시원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청아는 그의 냉정한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딘가 낯설고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어떻게 보상하길 원해요?”시원은 청아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동시에 애정 어린 듯했다. “저는 2년 동안 여자를 만지지 않았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청아
청아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어둠 속에서 어깨가 가볍게 떨라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소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눈이 크게 떠졌다.방문이 열리는 순간 키가 큰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남자는 소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잘 잤어?”소희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소희는 어젯밤 문을 꼭 닫은 것으로 기억한다.당황해하는 소희와 달리 구택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다.구택은 서서히 소희 곁으로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의 차분하면서도 언제나 냉담하게 보이던 얼굴이 아침 햇살에 의해 훨씬 부드러워졌다.미소를 띠며 그는 할 말을 다시 가다듬었다.“참, 내가 깜빡하고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네. 집 살 때 자기 이 집까지 내가 같이 샀어.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우리 자기 집주인인 셈이야. 집주인이 키를 가지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도 돼?”그러자 소희는 말문이 막혔다.‘그래! 돈만 많으면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잘 잤어?”구택은 맑고 그윽한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잘 잤어.”“왜 나한테 잘 잤냐고 안 물어봐?”“인사가 늦었습니다. 집주인께서는 어젯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아니, 난 한숨도 제대로 못 잤어. 우리 세입자 생각하느라 잠이 와야 말이지.”그러자 소희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어차피 평소에도 제대로 못 자잖아.”소희의 일침에 구택은 단번에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곧 눈썹을 들썩이며 주도권을 도로 잡아 왔다.“근데, 너랑 같이 자기만 하면 난 푹 잘 수 있어.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소희는 더 이상 그의 말꼬리를 받지 않았다.“너 먼저 나가 있어. 씻고 나갈게.”“볼 것 다 본 사이에 이러면 섭섭하지.”구택은 말하면서 직접 소희를 이불에서 끌어안았다.소희는 잠옷 한 세트를 반듯하게 입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구택은
청아는 자기 자리로 다가와 앉았다.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오전 내내 시원은 무슨 일이든 최결에게만 부탁했다.평소에 청아가 책임져야 했던 업무도 모두 최결에게 맡겼다.그뿐만 아니라 청아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기원의 협력 방안마저도 최결에게 넘겨주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 최결은 한껏 흥분한 얼굴로 대표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그대로 청아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청아 씨, 저는 점심시간에 대표님과 함께 참석해야 하는 협상 회의가 있어요. 아마 좀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동안 다른 업무는 청아 씨가 처리해 주세요. 남은 자료들도 부탁할게요.”최결은 다소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청아에게 말했다.마치 시원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청아가 아니라 자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이제 알겠어? 대표님은 아끼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그렇게 최결은 기타 자질구레한 업무를 전부 청아에 떠넘기고 시원과 함께 기원으로 가서 협상 회의에 참석할 준비에 전념했다.청아는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최결의 업무를 건네받았다.12시도 되지 않아 최결은 예쁘게 차려입고 시원과 함께 회사를 떠났다.청아는 오후 1시쯤이 다 되어서야 손에 든 일을 다 마치고 밀린 점심을 먹으려고 12층으로 갔다.점심을 먹고 나서 청아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업무를 계속 보았다. 시간은 서서히 흘러 오후 3시가 되었고 최결은 그제야 회사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재무부의 안나와 업무상의 얘기를 나누고 나서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안나는 부러워하며 운을 뗐다.“대표님이 최결 씨한테 점점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기원과의 중요한 협상 회의에도 최결 씨만 데리고 가셨잖아요.”그러자 최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과 함께한 세월이라는 게 있는데, 설마 그 모든 세월이 부질없겠어요?”최결은 말하면서 청아가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그러다 씩 웃으며 덧붙였다.“저희 대표님은 밥이나 해주고 내숭이나 떠는
시원의 눈빛을 떠올린 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청아는 정신을 차리고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지금이 딱 좋아. 내가 원했던 거잖아.’‘그래! 더는 신경 쓰지 말자!’청아는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지었지만, 두 눈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입가의 미소마저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금요일 오후에 시원과 최결은 한창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있는데, 민율이 갑자기 시원을 찾아왔다.그녀는 짧은 머리를 자르고 옷 스타일도 바꾸었는데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다.넓은 긴 치마에 짙은 남색 스카프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요조숙녀가 따로 없었다.민율은 핸드백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청아에게 말했다.“대표님 입맛대로 커피 한 잔만 부탁해요.”“네.”청아는 웃으며 커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민율은 핸드백에서 모 브랜드의 립스틱을 꺼내서 청아에게 건네주었다.“지난번에 제가 청아 씨한테 선물을 드리지 못했어요. 자, 이 립스틱 선물로 받으세요.”케이스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립스틱은 불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한눈에 봐도 가치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하지만 청아는 단번에 거절했다.“고맙습니다만 마음만 받을게요.”그러자 민율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인데, 프리미엄 제품이라 사고 싶어도 사기 힘든 제품이에요.”“필요 없습니다.”청아의 태도는 더없이 단호했다.“그래요 그럼.”민율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맑고 솔직한 청아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립스틱을 탁자 위에 놓고 고개를 들어 다정하게 웃으며 청아에게 말했다.“요즘 대표님 찾으러 온 여자는 있었어요? 아니면 대표님이 대신 선물을 사 달고 시킨 적은 없었나요?”청아는 사실대로 말했다.“아니요. 없었습니다.”그러자 민율의 두 눈에는 기쁨이 드러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앞으로 대표님 찾으러 오는 여자분이 있으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이건 제 명함이에요. 우리 서로 연락
최결은 민율이 손에 들고 있는 립스틱을 보고 경탄했다.“이거CL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이죠? 케이스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진짜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우 비서가 선물로 달라고 한 모양이네요.”청아는 비아냥거리는 최결을 뒤로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밀린 업무가 있어서 전 그만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청아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시원은 청아의 뒷모습을 한 번 보고 민율의 손에 있는 립스틱도 한 번 훑어보았다.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민율에게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온 겁니까?”그러자 민율을 마냥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먼저 찾아오지 않으면 우린 만날 수도 없잖아요.”최결도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사무실로 가시죠.”시원은 덤덤하게 말했다.민율은 그의 말에 두 눈이 밝아지며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따라 들어갔다.최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청아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봤어요? 우리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는 저분이에요.”청아는 그녀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 두 눈은 여전히 깨끗하고 덤덤했다.“저기요, 최 비서님, 전 그 어느 방면으로든 최 비서님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저를 적대시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최결은 약간 경악한 표정으로 청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물론이죠.”청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계속 일했다.한편, 대표 사무실.민율은 넓은 책상 앞에 서서 몸을 숙여 앞으로 엎드려 한 쪽 다리를 들고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아양을 떨며 시원을 바라보고 있다.“머리 짧게 잘랐는데, 어때요? 예뻐요?”시원은 뒤로 등을 의자 기대어 입꼬리를 올렸다.“예쁘네요.”“그럼, 저녁에 제가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해도 될까요?”“제가 저녁 대접할게요.”시원은 두 눈에서 부드러운 감정이 흘러나오면서 나지막하게 웃었다.“인제 저를 마다하지 않네요? 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제야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