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놀라서 의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알았어?”“저의 눈으로 님의 건강을 스캔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체질은 볼 수 있어요.”지니는 자신의 큰 귀를 쳤다.소희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정말 대단해!”“밥 먹으러 가세요, 안녕. 나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갈게요.”지니는 작별 인사를 하고 휙 하고 사라졌다. 이윽고 스크린은 어두워졌다.그리고 은색 금속 케이스가 자동으로 닫혔다.소희는 로봇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로봇도 감정이 있다고?’소희는 이 스마트 시스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느꼈다.청아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청아에게 곧 도착할 것이라고 알렸다.다음날.소희가 아침에 외출하려는 데 맞은편 스크린이 밝아지며 지니가 튀어나왔다.“소희님,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어젯밤 소희는 집으로 돌아온 후 또 지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지니를 스크린이나 로봇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지니는 뚱뚱한 손을 입에 대고 하품을 하며 풀밭을 달리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야?” 소희가 물었다.“달리기, 공주가 어제 저한테 뚱뚱한 남자는 별로라고 했어요. 그러니 살을 빼야겠어요!”소희는 지니의 동글동글한 몸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젯밤 이야기를 나눌 때 지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공주라는 것, 또 그 공주는 자기소개도 했다. 덕분에 지니는 공주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맞아요!” 지니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15분 후에 강성에 비가 올 것입니다. 우산을 가지고 가는 게 좋겠어요!”“그래?”소희는 핸드폰을 켜고 날씨를 살펴보았다. 과연 15분 후에 비가 올 것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지니는 화가 나서 말했다.“나를 믿지 않는 거예요!”“아니, 습관일 뿐이야, 우산 가지고 갈게!”소희는 집에 들어가 우산을 들고나왔다. 나올 때 지니는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뚱뚱한 몸이 한번 뛸 때마다 화면 전체가 진
소희는 부탁받고 마연을 찾아갔다.마연은 휴게실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는데, 소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콧방귀를 뀌었다.“이 감독님이 불렀죠.”“당신은 배우이고, 감독과 협조하는 것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게다가 혼자만 맞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비를 맞습니다.”소희가 밖을 보았다.“비가 이제 거의 그치는 것 같으니 빨리 가보세요!”“저는 비 오는 날이 싫어요. 젖으면 몸에 달라붙으니 찝찝해 죽겠어요!”마연은 입을 삐죽 내밀며 원망했다.소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마연은 일어나서 매니저에게 말했다.“옷을 많이 준비해 줘. 촬영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안심하세요!” 매니저가 웃었다.마연은 밖으로 나가면서 소희를 보며 웃었다.“화내지 마세요, 지금 갈 테니까!”“감독님과 잘 협조해서 한 번에 오케이 사인받으세요. 그러면 당신도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고 감독님도 더 꾸짖지는 않을 겁니다.”소희가 말했다.“네!” 마연은 매니저를 따라 촬영장으로 갔다.이때 소연은 옆 분장실에서 구은서와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패션, 설계, 명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또 소연은 구은서의 아우라가 좋아 평범한 제작진 팀의 옷을 입어도 명품을 입은 것 같다며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은서의 담담한 웃음은 온화하고 고상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그 어떤 단점도 없는 완벽히 아름다운 얼굴이다. 소연은 마연의 직설적인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구은서와 며칠 대화를 나누면서 직설적인 사람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적어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구은서, 종래로 온화하고 단아한 태도다. 수다를 같이 떨 수 있지만 그녀에게서 무언가 얻으려고 한다면 인차 화제를 돌린다.정말 빈틈이 없다!이렇게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연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지수현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품에서 벨벳 상자를 꺼내 소연에게 밀었다.“어제 우리 엄마와 함께 쇼핑할 때 생각나서 하나 샀어요. 어머니가 여자 친구가 생겼냐고 묻더라고요.”소연은 응석받이처럼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GK의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하지만 소연은 이내 상자를 닫고 수현에게 돌려주었다.“우리 엄마가 이미 사준 겁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세요.”수현은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신 말고 줄 사람 없는데요?”소연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잠시 스쳤다.수현은 마음이 동하여 또다시 상자를 그녀에게 밀었다.“점원이 말하더라고요. 강성에서 딱 두개뿐인 팔찌랍니다. 하나는 별이고 하나는 달입니다. 이는 별과 달처럼 영원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하나 가지고 있다면 이는 하늘이 정해준 운명 아닐까요.”소연은 수현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진짜예요?”“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열어보세요!”소연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팔찌를 들어 보았다. 사슬 단추 아래에 달린 것은 달이다. 확실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달랐다.소연은 그제야 믿고 수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 팔찌를 받으셔서 제가 더 기쁩니다. 그러니 제가 감사해야죠!”소연은 즐거워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시네요.”수현은 소연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더욱 좋아졌다.웨이터가 요리와 디저트를 들고 오자 수현은 스윗하게 소연에게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스테이크를 썰며 웃으며 물었다.“혹시 제작진 팀에 소희라는 디자이너가 있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소연은 손에 들고 있던 은색 나이프를 떨궜다.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소연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네, 왜요?”“스튜디오 T의 대명씨가 며칠 전에 그쪽 제작진 팀에 스타 관리하러 갔는데, 이 디자이너에게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소희에 대해 알아보나 봐요. 또 제 사촌 여동생이 극 중에서 여주인공이
수현은 말을 마치고 팔을 뻗어 소연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입맞춤했다.소연은 무의식적으로 반항하다가 앞으로 지수현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천천히 받아들였다.소희를 위해서 소현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러니 수현이가 소연을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이틀 후, 이 감독은 술자리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드라마 투자자이니 꼭 오라고 했다.이 감독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전에 합작했던 한 감독이 또 연락이 왔다.“이 감독, 스튜디오 T의 대 사장이 저녁에 함께 밥을 먹자고 초청했어. 듣자 하니 당신도 온다고 하더라고, 마침 이 감독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말이야.”이 감독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이든 얼마든지 말해!”“영화를 준비하고 있어. 아마 하반기에 크랭크인 할 거야. 그래서 이 감독 제작진 팀 그 패션 디자이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데리고 오면 안 돼? 저녁에 자세히 얘기해.”이 감독이 말했다.“아직 드라마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 팀에 있는 사람을 탐해?”“네 드라마는 하반기면 다 찍잖아. 그러니 우리 인연을 생각해서 그 디자이너 한 번 데리고 와. 될지 안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이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소희에게 말할게. 아무 문제 없을 거야.”“그럼 그렇게 하자, 저녁에 봐!”이 감독은 전화를 끊고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오라고 했다.소희는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왔다. “이 감독님, 찾으셨어요?”이 감독은 활짝 웃으며 소희에게 물 한 병 가져다주었다.“잠시 앉아 쉬세요.”“감사합니다!” 소희는 물을 받아 옆 소파에 앉았다.이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그게 오늘 투자자의 모임이 있어요. 마침 제 감독 친구가 하반기에 영화에 들어가는데 소희씨를 한 번 봤으면 한다네요. 그래서 소희씨를 소개도 해줄 겸, 괜찮으면 함께 갑시다.”소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시원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이 감독은 따뜻하게 말했다.“도착하면 두 분이
소희는 생각이 났다. 임구택이 이 감독의 TV 판권을 샀다는 것을. 한 마디로 이 드라마의 투자자이다. 이런 장소에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다.다만 보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갑자기 만나니 좀 의외였다.“소희씨, 이 분이 바로 제가 당신에게 말한 손 감독입니다.” 이 감독이 소희에게 소개했다.소희는 손 감독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일찍이 소희씨 명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협력하기를 바라요!”손 감독은 마흔이 넘었다. 몸매는 마른 편이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소희를 보고 있다.소희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좋아요!”“앉으세요, 모두 앉으세요, 소희씨를 둘러싸지 마시고요!”소희와 이 감독은 빈자리에 앉았다. 총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탁이었다. 임구택은 상석에 앉아 소희와 마주 앉았다.소희는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전반 전세방은 대략 20명 좌우였다. 이 감독과 손 감독을 제외하고 대부분 TV 투자 쪽 사람들이었다. 모두 양복과 가죽 신발을 신고 한껏 영민함을 뽐내었다. 물론 그들의 곁에는 그들의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앉아 있다.상업 모임이다. 그런데 소희와 이 감독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소희가 앉자 오른손에는 이 감독이 앉았다. 그는 손 감독이 왼쪽에 앉아 영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낯선 남자가 옆에 앉았다.손 감독은 그녀와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소희는 원래 손 감독이 거기 앉아 있는 줄 알고 개의치 않았다.옆에 있는 남자는 30대에 분홍색 셔츠를 입고 손목에는 수억원짜리 시계를 차고 있었다. 뚱뚱한 얼굴에 눈썹이 옅고 눈이 살짝 처졌다. 그런 그가 소희를 바라보며 웃으며 물었다.“소희씨는 무엇을 마시겠습니까?”소희는 그가 이렇게 말을 듣고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본 적이 없었다.“주스면 됩니다. 제가 할게요!”소희는 주스 병을 가지러 손을 뻗었다.“제가 부어 드릴게요!”남자는 주스 병을 들고 소희에게 가득 부어줬다.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소희의 얼굴을
대명은 한참을 자랑해도 소희가 미동도 없자 조급해나 옆 사람 몇 명에게 은근히 눈짓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씨 성을 가진 남자가 다가와 소희에게 술을 권했다.“소희씨가 평소에 제작진 팀에서 고생한다고 들었어요. 제작진 팀이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소희씨 덕분입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제가 한 잔 권하겠습니다.”이 감독은 소희에게 소개했다.“이분은 방원 미디어의 유 사장입니다!”소희는 투자자라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술을 마셨다.그 후 서너 명이 더 왔다. 모두 투자자였다. 모두 소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이 제작진 팀에 소희가 없었다면 일이 진행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다시 누군가가 소희에게 다가오자 대명이 갑자기 가로막고 말했다. 수호신처럼 말이다.“소희씨는 젋고 술을 잘 못 마시니 저한테 주세요!”옆에 있던 사람들은 분분히 분위기를 띄웠다.“대 사장님이 이렇게 흑기사를 자청하시다니?”“그러면 저희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미인을 위해 오늘 대 사장님이 목숨을 걸었군요!”이 감독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소희를 데리고 온 것이 후회됐다.소희도 알아차렸다. 하지만 대명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이 술자리에서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임구택은?그는 대명의 의도를 알고 있을까?거대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임구택이 전화를 받았다. 임구택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리던, 그 옆에 앉아 있던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여자친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나 잠깐 밖에 나가 전화 좀 하고 올게, 임 사장이랑 마시고 있어.”여자는 샴페인 색의 오프숄더,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의 말에 놀란 듯했다.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임구택이 갑자기 말했다. “장 아가씨는 전 사장님의 파트너이신데 제가 어떻게 두 분 사이에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구택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기쁨도 분노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소희, 여기 와!”순간 방안의 모든
진 사장은 임구택이 그에게 묻는 것을 보고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고는 계속 협력상의 일을 이야기했다.다른 사람들은 눈빛은 미묘했다. 임구택을 쳐다보지도 못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담을 나누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분위기는 다시 회복됐다.소희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하게 밥을 먹었다.임구택은 진사장과 한담을 나누다가 가끔 소희가 좋아하는 요리를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또 소희가 국을 다 마신 것을 보고 그녀를 위해 국 한 그릇을 추가했다.30분 후, 배부른 소희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임구택은 여전히 온화한 표정이었다. 긴 눈동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배불러?”“어.”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돌아가, 아래에 명우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걔가 널 데려다줄 거야!”소희는 자신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임구택은 아래를 보며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응.”소희는 밖으로 나가면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임구택과 소희가 이야기한 후부터 방은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이 소희가 떠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소희가 떠나자 임구택은 담배 한 대를 꺼냈다. 4~5명이 라이터를 가져다주었다. 임구택은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대명을 바라보았다.구택의 표정은 냉담하고 의미심장했다. 흉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명은 구택의 시선에 몸을 벌벌 떨었다.대명은 술을 들고 임구택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앞에 서서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대명의 뚱뚱한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임 사장님, 소희가 사장님 사람인 걸 몰랐네요. 제가 이렇게 보는 눈이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임구택의 청백색의 담배 연기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흐렸다. 이 때문에 대명은 구택의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방 전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그는 몸을 살짝 기울여 대명에게 다가갔다.“좀 가까이 오세요.”대명은 멍해져서 한 걸음
손 감독은 당황했다.“그 소희라는 애,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임 사장도 알아?!”“그녀가 임 사장을 알든 모르든, 네가 오늘 한 일은 너무했어. 소희는 내 제작진 팀의 디자이너야. 그런데 손 감독이 내 사람을 대명에게 팔려고 했지. 이런 짓을 하면서 내 생각은 해봤어?”이 감독이 진지하게 물었다.손 감독은 부끄러워하며 소리쳤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이 감독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대 사장이 네 새 영화에 투자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가 비록 영화를 만들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우리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말을 마치자 이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가 버렸다.손 감독의 괴로운 얼굴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지금 소희는 명우의 차에 앉아 있다. 그녀는 사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머리가 맑았다.경원 주택단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명우가 입을 열었다.“사모님, 임 사장님이 최근에 약속이 많아서 자주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돌아오곤 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그를 설득해 주세요.” 소희의 맑은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비쳤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임 사장의 혼인이 어떻게 된 일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다시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명우가 말했다. “사모님, 커피숍에서 저희가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사모님의 정체를 비밀로 유지하고, 사모님은 임 사장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소희는 이마를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그를 해치지 않았어요!” 명우는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계속 말했다. “저는 사모님의 당당함이 좋습니다. 임 사장님에게도 당당하게 대하셨죠. 그러니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소희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명우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아파트 아래층에 차를 세우고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사모님, 안녕히 계세요!”“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소희는 고맙다며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몇 걸음 걷다가 무의식적으로 고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