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조감독은 이득을 보았지만 이현에게 보복당할까 봐 두려워서 안 온 거고, 이현은 아마도 아직 멘붕상태에 처해 있겠지?’이정남은 갑자기 예전에 촬영세트장에 있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땐 그와 소희가 방금 이현을 알게 되었고, 당시의 이현은 순진하고 귀여우면서도 식탐이 많고 자주 토라지곤 했다. 세 사람은 늘 작은 정원에 앉아 장난치며 담소를 나눴었는데.사실 소희는 그들의 시시한 화제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와 이현이 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서 주 감독은 그가 이현을 좋아하는 줄 알고 신중해야 한다며 충고까지 해주었고.사실 그는 이현에 대해 확실히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두 사람의 차이가 점점 커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호감을 자제했던 것이다.그러나 그는 그들 사이의 차이를 벌여놓은 게 두 사람의 신분 변화가 아니라 이현의 탐욕과 위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거에 화가 났고, 그토록 소희를 다치게 한 이현이 죽도록 미웠다. 그래서 이현의 처지를 알게 된 후 다시 이전을 생각해 보니, 통쾌하면서도 또 약간의 섭섭함과 아픔이 섞여 있었다.‘임구택이 좋아하는 사람이 소희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주제넘게 달려들었을까?’‘왜 소희를 배신했을까?’‘이 모든 건 이현의 자업자득이야.’"날 때릴 거야?"그 일을 겪고난 후 여민은 세상에 미련을 버렸다. 심지어 이번 작품만 끝나면 연예계를 탈퇴할 작정이었다."널 때리면 내 손이 더러워질 거야."이정남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소희를 데리고 떠났다.*이현이 받은 타격은 여민보다 더 컸다.여민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간이 길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현은 다르다.그는 데뷔하자마자 유명 감독의 인정을 받았고 그 후 승엔과 계약하여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로운 연예 생활을 시작했다. 게다가 배후에 임구택이 있어 종래로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다.그날 밤, 무너진 건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멘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소희는 덤덤하게 웃으며 통계표를 미나에게 건네주었다."이것대로 배우들에게 의상을 준비해 줘.""네!"미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소희를 보는 눈빛이 약간 복잡했다.소희는 방으로 돌아가 계속 작업에 전념했다. 그런데 10분도 안 되어 핸드폰이 진동했다.성연희였다."이 시간에 웬 전화야? 안 바빠?""소희야, 인터넷 뉴스 봤어?"소희에게 되묻는 성연희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무슨 뉴스?""너와 임구택에 관한 거야. 빨리 봐!"소희가 잠깐 멍해지더니 곧 컴퓨터를 켜고 계정에 접속했다."대체 네가 미행당한 거야, 아니면 임구택이 미행당한 거야?"성연희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내가 지금 바로 명성 씨 회사의 홍보팀을 찾아 언론을 통제해 달라고 할게. 그리고 지금 제작진 밖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어. 그러니 먼저 제작진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 내가 사람 데리고 널 데리러 갈게."신속히 실검에 오른 뉴스를 확인한 소희의 눈빛은 유난히 차가웠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 일은 아마 이현과 관련이 있을 거야. 임구택이 나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알았어."전화를 끊고 소희는 다시 실검 뉴스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이현이 그녀에게 보복하려고 한 짓인 게 분명했다.뉴스 속엔 소희와 임구택이 경원주택단지의 아래층에서 찍힌 사진도 걸려 있었다. 사진이 찍힌 각도로 봐서는 프로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소희와 임구택이 알콩달콩하게 찍혔으니까.곧 누군가가 소희의 신분을 파헤쳐 냈다. 제작팀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것과 이현과 한 제작팀에 있다는 것도.그래서 지금 댓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다들 그녀가 이현의 남자친구를 꼬신 뻔뻔스러운 여인이라고 욕하고 있었다.그중에는 제작진의 스태프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나서서 임구택이 이현 보러 왔을 때 소희가 고의로 접근하여 업무적으로 상의할 게 있다며 임구택의 번호를 따갔다고 폭로했다.심지어 그녀가 제작진의 조감독과 제작팀의 직원을 꼬셨다
소희가 듣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아주머니보고 요요를 잘 보고 있으라고 해. 최근 이틀 동안은 밖을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알았어. 그럼 너는? 너 어디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걱정이 앞 선 청아가 급히 물었다.하지만 그러는 청아와 달리 소희의 태도는 오히려 덤덤했다."나 괜찮아, 요 며칠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까 아주머니와 함께 요요를 잘 지키고 있어."청아는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아 다시 물었다.[소희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뉴스 한 번 찾아봐.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난 괜찮으니까."소희의 대답에 청아가 바로 뉴스를 확인했다. 그러다 한참 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열어 물었다.[이현이라는 배우가 바로 예전에 너와 같은 제작진에서 일했다는 그 친구지? 사이가 괜찮다고, 우리 함께 영화도 같이 본 적이 있던 그 친구?]“응.”[그런데 왜 나와서 해명하지 않는 거야? 인터넷에서 떠들고 있는 것들이 다 잘못된 거잖아.]분명 사이좋은 친구이면서 전혀 나서 해명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현의 태도에 청아는 답답하면서도 의아해 소희에게 물었다. 그러다 소희의 의외적인 대답에 청아는 순간 할 말을 잃게 된다."이현이 벌인 일이니까."[뭐?! 어떻게...... 안 되겠다. 내가 댓글을 남겨 진실을 밝힐 거야!]"하지 마, 청아야! 네티즌들이 이미 제대로 말렸어. 그러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게다가 어느 이성을 잃은 네티즌이 네 주소와 신분을 찾아내 인터넷에 폭로하기라도 한다면 요요는 위험해질 거야."급하고 화 나는 마음에 청아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그럼 너 그렇게 누명을 쓴 채 진실을 모르는 네티즌들의 욕만 먹고 있을 거야?]"어차피 사실이 아니니 날 다치게 할 수 없어."소희가 의외로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하지만 청아는 그러는 소희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소희야, 나 너무 쓸모없는 거 같아. 내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땐 네가 옆에서 나를 도와
전화를 끊은 후 소희가 고개 돌려 이정남을 향해 말했다."나 먼저 갈게요. 그리고 당분간 출근 못 할 거 같으니까 이 감독님에게 일이 있으면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전해줘요."찔린 게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지만 제작진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소희는 이 열기가 지나 팬들이 냉정해질 때까지 숨을 수밖에 없었다."그래, 내가 데려다줄게."이정남이 대답하며 소희를 밖까지 데려다주려 했다. 하지만 소희가 차분하게 컴퓨터를 가방에 챙기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나 혼자 갈게요. 걱정 마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타나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소희에게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정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조심하고,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네 핸드폰 번호도 곧 인터넷에 폭로될 수 있으니까 미리 새 번호를 준비하고, 바꾸고 나면 나에게도 새 번호를 알려줘.""네. 이현이 다음으로 정남 씨를 노릴 수 있으니 조심해요.""걱정 마."밖으로 나온 소희는 주위를 한 번 살피고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민첩하게 별장의 담장을 뛰어넘어 성연희가 주차한 곳에 도착했다.그리고 소희가 차에 오르자마자 성연희는 즉시 차에 시동을 걸어 그곳을 떠났다.소희를 토벌하려고 별장 대문으로 몰려든 팬들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격동되어 심지어 스태프들한테까지 손을 댔다.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통제를 벗어났다.차를 몰고 별장 대문 쪽을 지나가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성연희의 예쁜 얼굴에는 노기로 가득했다."이현 그 나쁜 여인이 팬을 이용하여 널 해치려 하더니. 정말 뻔뻔스럽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직접 보내줄 수도 있는데."소희는 순간 전에 여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이현이 블루드에서 겪었던 일들...... 보아하니 결사의 각오로 소희한테 달려든 게 분명했다."소희야, 걱정하지 마. 홍보팀이 이미 사람을 사서 언론을 공제하고, 댓글들을 삭제했어. 실검도 곧 철수될 거고."성연희의 화는 이미 극으로 달했다. 그
소희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쌤통이긴 하지, 임구택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했으니.’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모습에 성연희는 마음이 아파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이 일이 끝나게 되면 너 바로 심명 씨와 함께 강성을 떠나. 그리고 다시는 임구택 앞에 나타나지 마.""지금은 안 돼. 적어도 임구택과 이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해. 안 그러면 심명은 유부녀를 유괴한 죄명을 쓰게 될 거야.""이럴 때엔 농담하지 않으면 안 돼?"소희의 대답에 성연희는 화가 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소희의 태도는 의외로 엄청 진지했다."농담 아니야.""너 임구택과 별거한 지 이미 2년이 넘었어. 이혼을 기소할 수 있다고.""임구택이 동의할 것 같아?""그놈이 대체 뭘 하려는 건데?"성연희의 화가 묻은 물음에 소희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마 죽을 때까지 나와 엮이려는 거겠지."결국 성연희는 소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수운로의 별장으로 데려다주었다.그리고 별장에 도착한 후, 성연희는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산 음식들을 전부 냉장고에 집어넣었다."일은 해결될 거야. 하지만 해결되기 전 너 절대 나가지 마.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매일 사람 시켜 보내줄게."그러면서 성연희는 또 소희에게 새 핸드폰을 건네주며 정중히 당부했다."핸드폰 번호가 인터넷에 폭로되면 이 걸로 연락해. 이현의 팬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절대 방심하지 말고. 네티즌이고 팬들의 폭로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 엄청 많아, 신변이 위험해진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 팬들을 얕보지 마.""알았어, 주의할 게.""나머지는 나에게 맡겨!"성연희의 눈빛은 진지하고 굳건했다."천하의 사람들이 너와 맞서더라도 난 영원히 너의 곁에 있을 거야."소희는 순간 마음이 따듯해 났다."난 한 번도 그 점을 의심한 적이 없었어."소희의 대답에 성연희가 입꼬리를 올려 밝게 웃으며 소희의 어깨를 껴안았다."소희야, 나 영원히 널
기자가 듣더니 되려 화를 내며 말했다."이현 씨, 이현 씨는 정말 너무 착해요! 소희 씨가 이현 씨의 용모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도 노리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라고요!"하지만 이현은 마치 심각한 충격을 받은 사람마냥 두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럼 임 대표님께서는 소희 씨와의 관계를 해석해 준 적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해석했습니까?"기자의 계속되는 물음에 이현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억지웃음을 드러내며 대답했다."구택 씨는 이미 나에게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난 여전히 이 사이에 오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 사람을 믿기로 선택했습니다.""그럼 임 대표님께서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미안하지만, 이건 나와 구택 씨 사이의 사적인 일이니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시죠.""그럼 소희 씨가 제작진의 조감독 및 스태프와 썸을 탔다는 건 사실인가요?"답을 듣지 못한 기자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물음을 제기했다.이에 이현이 이마를 찌푸린 채 한참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희 씨가 조감독님과 많이 가깝게 다니긴 했지만, 난 두 사람이 단지 동료사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럼 이현 씨는 조감독님과 사이가 어떤가요?""처음 합작하는 거라 별로 안 친해요."기자가 계속 물으려고 입을 여는데 이현의 조수가 다가와 이현을 감싸고 현장을 떠나려 했다. 그러면서 큰소리로 말했다."현이가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는데 다들 이해해 주시고 더 이상 현이의 상처를 들춰내지 말아 주세요!""이현 씨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혹시 임 대표님과 소희 씨의 일 때문인가요?"이번 기회를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시 몰려들어 묻는 기자의 물음에 조수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글쎄요? 약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누가 태연할 수 있겠어요? 아무튼 현이에게 시간을 좀 주시죠. 현이가 곧 컨디션을 회복하고 업무에 복귀해 더
제1057화진연이 듣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좋은 싹이 아니니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인 거야."이에 소정인이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눈치를 주었다."소희는 우리가 낳은 아이라는 걸 잊지 마.""우리가 낳았지만 우리가 키운 게 아니잖아!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해도 저질인 땅에 심어져 자라게 되면 결국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야. 뻔뻔스럽긴, 처신을 잘했어야지, 우리까지 연루시켜 창피하게 만들다니!"진연의 조롱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연 소정인이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소동을 보고 어눌하게 입을 다물었다.귀여운 잠옷 차림에 인형을 안고 내려온 소동이 유난히 기뻐하며 물었다."아빠, 엄마,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진연은 소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고 싶지 않아 소동의 손을 잡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요즘 작업실 쪽은 어때?""저 마침 두 분에게 이 일을 말하려던 참이었어요!"소동이 정겹게 진연의 손을 잡고 말을 이어갔다."저희가 지금 외국의 아주 유명한 패션쇼에 참가할 계획이에요. 하지만 그 패션쇼의 문턱이 높아 어느 정도의 자금을 투자해야 하거든요."진연이 듣더니 잠깐 멍해졌다."또 돈을 투자해야 해?""엄마, 우리 작품이 패션쇼에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대박 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무조건 퍼부었던 돈만큼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요!"사실 진연은 벌써 소정인과 상의가 끝난 상태였다, 더는 소동의 작업실에 돈을 투입하지 않기로. 요 몇 년간 그들은 이미 2억 넘게 투자했지만 아무런 수익도 없었으니까.게다가 근 2년 동안 경제 위기가 날로 심각해져 소씨 가문의 장사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진연은 손에 돈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싶었다.그러나 이번에 소희에게 갑자기 일이 생기면서 진연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소희 쪽에 기대를 걸려는 계획은 이미 물거품으로 되었으니 그녀와 소정인의 남은 생은 소동한테 맞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소동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전에 쓰던 핸드폰을 꺼놓은 후, 소희는 줄곧 성연희가 준 핸드폰으로 바깥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인터넷상의 일이 어느 지경까지 발효되었는지에 대해 소희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 핸드폰을 거의 하지도 않았다.오직 성연희가 가끔 전화 와서는 이현이 인터뷰를 받으며 했던 말들을 전하곤 했다.그리고 임구택은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바깥세상과는 달리 소희는 누구보다도 덤덤했다. 매일 서재에 박혀 책을 보지 않으면 디자인에만 전념을 했고, 가끔은 기분전환 할 겸 직접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비록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여전히 진보되지 않아 맛은 늘 이상했지만 소희는 음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의 신조를 지켜 한 번도 남긴 적이 없었다.진석과 하영, 그리고 서인은 매일 소희에게 페이스 톡을 보내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이현의 팬들이 가장 심하게 소희를 욕했을 때 진석은 심지어 소희가 바로 킹이라는 걸 폭로하려 했다. 킹에게도 많은 팬이 있었으니 그녀를 도와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하지만 소희가 바로 거절했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팬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를 수호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했다간 그들도 억울하게 이번 인터넷 폭력에 말려들 수도 있으니까.소희는 사건의 열기가 언젠가는 식을 거고 욕설도 끝나는 날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잘못한 게 없으니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을 거고.다만 이번 일에서 소희는 개인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네티즌들의 문화 수준도 예전보다 점점 높아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유언비어는 여전히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약한 사람이 이런 인터넷 폭력을 당하게 되었더라면 진작 자신의 목숨을 끊어 억울함을 증명했을 것이다.점심에 소희는 면 끓여 먹을 생각에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하지만 면을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결국 반 냄비의 양을 끓이게 되었다.게다가 면의 양에 비해 소금을 너무
강시언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최근에 내가 너의 양부모와 관련된 단서를 따라갔고, 너를 납치했던 사람을 찾아냈어.”“대략 1년 전에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 있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돌봐주게 했지.”아심은 눈빛이 살짝 차가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시언은 말을 이었다.“그리고 널 샀던 양부모도 지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들은 방탕한 삶을 살고,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여자 친구랑 함께 부모를 착취하고 있지.”“돈을 요구하며 부모를 때리고 욕하는 게 다반사야. 그래서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어.”아심은 담담히 말했다.“나는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비웠어요. 어차피 친부모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를 사들였다가 다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감정도 없으니 당연히 원망도 없어요.”“원망은 내가 해!”시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그 사람들이 너를 때리고 욕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 받는 벌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아심의 마음은 순간 간질거렸다. 마치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따뜻하면서도 저릿한 감각이 가슴 끝까지 퍼졌다. 그녀는 눈가가 살짝 물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나를 팔았기에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시언은 팔을 들어 아심의 어깨를 감싸며 눈을 마주쳤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는 점점 더 차갑고도 또렷해졌다.“그날 도경수 할아버지가 네 몸에 있는 태어나는 반점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았잖아. 네 생각엔 뭐라고 답해야 할까?”시언은 끝음을 살짝 끌며, 자기 목소리에 특유의 저음과 자극적인 울림을 더했다. 빗소리에 묻힌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강렬히 두드렸다.이에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있는 그대로 대답하세요. 근데, 그럴 용기 있어요?”“내가 무서워서 못 한다고 생각해?”시언은 낮고 짧게 대꾸했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아심의 정교한 턱을 잡아들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오븐 속 닭 날개는 이미 다 구워졌고, 끓던 국도 식어버렸다. 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는지, 부슬부슬한 빗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강시언은 몸을 약간 일으켜 그녀의 옷을 입혀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뒷정리할 테니, 너는 가서 샤워해. 씻고 나오면 바로 식사할 수 있을 거야.”강아심은 나른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샤워 끝낼 때쯤 당신이 음식을 다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딱 두 가지 요리랑 국 하나야. 충분하겠어?”시언이 묻자, 아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점심에 외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식이 많이 남아서, 그거 데워서 먹으면 돼요. 음식은 낭비하면 안 되니까.”“그래.”시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아심을 조리대에서 내려주었지만, 아심은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붉게 물든 눈가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못 걸을 것 같아요.”이에 시언은 낮게 웃으며 아심을 다시 들어 올려 주방에서 주방의 욕실로 데려갔다....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 시언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심은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얇은 잠옷 차림의 그녀는 헝클어진 긴 머리를 어깨에 흘러내린 채 앉아 있었다. 밖에서 스며드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심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날렸고, 하얗고 가녀린 어깨가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났다.아심은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두운 조명이 그녀의 부드럽고 가냘픈 라인을 더 강조했고,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주었다.시언은 그녀에게 다가가 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야근은 좋은 핑계겠지만, 도도희 아주머니랑 도경수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지. 너, 집에 가기 싫은 거잖아.”아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시언의 깊고 투명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에 아심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 말이 맞아요.
영상 속의 셰프는 유창하게 자국어를 구사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신은 미스터 강의 여자 친구인가요? 참고로 지금 종료해도 보수는 환불되지 않아요.]아심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알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좋아요. 그러면 이만!]셰프의 말을 끝으로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강시언에게 물었다.“닭 날개를 굽고 싶으신 거예요?”“너 할 줄 알아?”“이미 양념까지 다 해두셨으니, 오븐에 넣고 온도와 시간을 맞추면 끝이예요.”시언은 접시에 담아둔 닭 날개를 그녀에게 건네자, 아심은 돌아서서 접시를 오븐에 넣으며 물었다.“어떻게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으셨던 거예요?”시언은 다른 재료를 고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별거 아니야.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밥상을 느껴보라고.”그 말에 아심은 순간 멈칫하며 오븐을 멍하니 바라봤다. 몇 초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타이머를 설정했다. 아심은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뭐 도와줄까요?”시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내가 부른 셰프를 쫓아냈잖아. 네가 안 도우면 생닭을 먹겠다는 뜻인가?”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으며 도마 위에 놓인 토마토를 보며 물었다.“이건 뭐 만들려고요?”“약간의 토마토를 곁들인 소고기볶음.”아심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아직 걷는 법도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달리려는 거예요?”시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지?”아심은 대답 대신 말했다.“그 요리는 오래 걸려요. 배가 고프니까 그냥 토마토는 생으로 먹어요.”시언은 물었다.“생으로? 그냥 먹으라고?”“상쾌하고 맛있어요.”아심은 토마토를 반으로 자른 뒤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시언의 입가에 내밀며 말했다.“한번 먹어보고 생토마토 맛이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아심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눈가가 붉어진 채 가늘게 올라간 눈꼬리와 흐르는 듯한 시선으로 무의식적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시언은
아심은 연희가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기절하지 마, 그러다 네 남편이 걱정하실라.”[아심아, 내가 도경수 할아버지를 몇 년 동안 알아 왔는지 너 알아?]연희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리가 친구였는데, 이제 넌 도경수 할아버지의 친손녀가 됐잖아!]아심은 연희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나도 정말 많이 놀랐어.”[그렇지만 정말 축하할 일이야!]연희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정말 깜짝 놀랄 만 하면서도 기쁜 소식이야!]연희는 평소 양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아가 도경수의 손녀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뻤다. 그런데, 아심이 도경수의 손녀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말 그대로 두 배의 기쁨이었다.어젯밤, 연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노명성을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명성은 그녀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고마워.”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연희야, 나도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너무 행복해.”[이제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이기도 하잖아!]연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주말에 도경수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갈게. 축하도 드릴 겸.]“언제든지 환영해.”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오후에 정아현이 다시 업무 보고를 하러 왔을 때는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저,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그저 사장님이 걱정돼서 그랬던 건데, 앞으로는 다시는 미스터 강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게요!”아심은 담담히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남자 친구 생겼다면서요? 데이트하러 가요.”이에 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드려요, 사장님.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게요!”...아심이 퇴근할 때쯤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회사를 나설 땐 직원들마저 모두 퇴근해 그녀 혼자 남아 있었다.점심으로 받은 음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