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땅한 해결책을 얻지 못한 미연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마음이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엄두가 나지 않은 이현은 조용히 미연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후 미연은 회사의 홍보팀과 긴급회를 열어 더는 아무런 공식입장도 밝히지 말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비록 GK의 공식입장이 이현에게 불리하긴 했지만 드레스는 확실히 킹이 디자인한 것이었으니 기껏해야 이현이 킹의 인기를 이용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을 뿐 거짓말을 했다고 모함할 수는 없을 것이다.여론을 공제하고 있는 일부 네티즌들에 대해서는 홍보팀이 적당히 간섭할 거고, 이현의 팬들도 이현을 지켜주고 있으니 금방이면 잔잔해질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이현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무너질 건 분명했다.밖에 기자들이 모여 있어 감히 외출도 못하게 된 이현은 결국 미연에게 한바탕 화를 냈다. 미연이 그녀와 킹을 함께 엮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GK 측에 그 드레스를 요구하지 않았을 거고,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면서.이에 미연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나도 너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 게다가 북극 작업실이 갑자기 튀어나와 공공연히 우리를 디스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마치 우리가 그들의 원수인 것마냥!]무심하게 내뱉은 미연의 말에 이현은 갑자기 소희가 생각났다.이현은 북극 작업실과 왕래가 없었으니 원한을 품을 일도 없었다. 유일하게 그녀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희뿐이고, 소희는 북극 작업실의 직원이었다.‘설마 소희가 이간질을 해서 북극 작업실이 나를 노린 건가?’그런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니 더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이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그녀는 소희가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 그녀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니.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상대방을 물고 뜯을 생각만 하고.‘두고 봐, 이 일이 지나가기만 하면 넌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4~5일이 지나니 이현의 드레스 사건은 서서히 식기 시작했고, 마침 한
일주일 후의 어느 날, 오후에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제작진은 일찍 촬영을 끝냈고, 소희가 집에 도착했을 땐 겨우 3시밖에 되지 않았다.그래서 아래층에서 요요랑 놀다가 청아가 돌아온 후 함께 밥을 먹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위층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마침 이정남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소희야, 블루드로 와.][무슨 일인데요?]소희가 답장을 보내니 잠시 후에야 이정남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제작진에 새 배우가 들어왔어, 와서 인사해. 감독님들도 다 계셔.]그리고 곧 또 소희에게 방 번호를 보냈다.소희가 시간을 한 번 보고는 답장했다.[30분 후에 만나요.][그래, 기다릴게.]소희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낮에 입는 심플한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그리고 9시에 소희는 블루드에 도착하여 이정남이 보낸 방 번호에 따라 8층으로 갔다.문을 밀고 들어서니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밀려왔다. 방에는 등불이 색을 바꿔가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에 한참 적응한 후에야 소희가 안으로 들어갔다.방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겨우 네다섯 명정도.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누구는 여직원을 껴안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전부 소희가 아는 그 몇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정남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류 조감독이 보였다.그는 품속에 제복을 입은 여직원을 안은 채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여직원은 소희 쪽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고 소희를 발견한 류 조감독이 갑자기 안색이 변해서는 무의식 중에 품속의 여인을 밀어냈다.류 조감독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여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현이 가장 먼저 일어나 소희를 맞이했다."소희 씨!"소희가 덤덤하게 물었다."정남 씨는?""정남 씨는 술에 취해 저쪽 방에서 쉬고 있어요."이현이 손을 들어 한 방을 가리켰고, 소희는 그제야 방 안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무엇에 쓰이는 방인지 알 수가 없었다.소희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
소희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들어 걷어찼다. 하지만 이정남이 갑자기 그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소희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같이 뒤로 물러났다. 따라서 문을 걷어차기 위해 다 한 힘은 순간 분산되었고, 문이 한 번 흔들리고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이정남은 고의로 소희를 잡아당긴 것이 아니었다, 단지 버틸 수가 없었을 뿐.소희는 뒤로 끌려가면서 숨이 흩어지는 바람에 결국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갑자기 ‘윙-’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더 이상 호흡을 억제할 수 없었다.불길한 예감이 든 소희는 즉시 문을 걷어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빨아들인 연기는 신속히 그녀의 신경을 마비시켰고, 그녀는 마치 마취제를 맞은 사람마냥 의식이 흐리멍덩해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여전히 문을 걷어찼지만 문은 움직이지도 않았다.그리고 소희가 걷어찬 첫 발에 문 밖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져 놀란 얼굴로 문쪽을 쳐다보았다.류 조감독이 눈살을 찌푸린 채 이현을 바라보았다."이현 씨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이현이 여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러자 방안에는 그녀와 류조감독, 여민 세 사람만 남았다.이현이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평소의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악함이 더 해져 있었다."류 조감독님께서 줄곧 소희를 품고 싶어 하셨잖아요? 오늘 밤, 소희는 조감독님의 것입니다."류 조감독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한 거예요?"그러자 이현이 여민을 보며 웃었다."여민이 덕분이에요."그 작은 방은 게임에서 진 사람을 징벌하기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벽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데 고추물을 뿌릴 수도 있고 겨자 연기를 뿜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민이 블루드의 매니저를 알고 있는 덕분에 쉽게 겨자 연기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던 것이고.여민이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내가 류 조감독님을 위해 큰 선물까지 해줬는데, 이걸로 전에 잃은 600만 원을 미봉하는 건 어때요?"류 조감독은 여
"지금 갈 거야?""가긴 뭘 가? 재밌는 연극이 막 시작되었는데, 보고 싶지 않아?"여민의 물음에 이현이 소파에 앉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당연히 봐야지!"여민이 감격에 겨워 이현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전에 저 방안에 카메라를 달았어야 했는데, 생방송을 볼 수 있게."이에 이현이 웃으며 대답했다."현장에서 들어도 똑같잖아."그런데 이때, 이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누군가가 방 문을 세게 걷어찼다. 그리고 웅장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고, 뒤에는 명우와 명빈 등이 따르고 있었다.이현의 웃음이 순간 굳어지더니 바로 놀라서 일어섰다."임 대표님!"임구택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방안을 훑어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소희는?"이현이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소희 씨는 여기에 없어요!"임구택이 작은 방의 문을 한눈에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이현이 막으려 했지만 명우가 먼저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만히 계시죠."임구택이 힘껏 문을 당겼다. 그리고 방안의 장면을 본 그의 안색은 순간 얼음판마냥 차가워졌다.어두컴컴한 방 안에 이정남은 머리가 깨진 채 한쪽에 쓰러져 있었고 류 조감독은 소희의 옷깃을 잡은 채 침대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소희는 아직 조금 남아있는 이성과 힘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상의 단추는 뜯겨져 하얀 어깨와 속옷 어깨끈이 드러났다.그리고 소희의 손에 들린 작은 총은 류 조감독의 명치를 조준하고 있었다.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희와 류 조감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눈에 핏줄이 퍼진 소희는 순간 손에 힘을 풀었다. 손에 들린 총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1초만 더 늦었더라면 그녀는 이미 류 조감독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마음속에 억압된 두려움은 철저히 분노로 변했다. 임구택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가가 류 조감독의 목을 잡고 그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는 살육의 포악함이 묻어났다.방안에 남아 있는 연기를 조금 빨아들인 류 조감독의 얼굴은
이현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뭐 하는 거야! 임구택!""임구택, 돌아와!"하지만 임구택은 소희를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명우가 부하를 향해 손짓을 하자 부하가 바로 여민과 이현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인차 여민의 몸에서 투명한 작은 주머니를 찾아냈다. 주머니 속에는 흰색의 가루가 들어있었다.명빈이 술 세 잔을 따른 후 주머니 속의 가루를 술에 부었다. 그리고 술잔을 앞으로 밀었다.그는 임씨 가문의 모든 부두 장사를 관장하고 있었다. 왕래하는 손님들 중에는 점잖고 예의 바른 신사와 부유한 상인이 있는가 하면 교활한 건달 해비들도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이상한 일들을 다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명빈은 이현과 여민의 모욕과 구걸에 얼굴색 한 번 번하지 않았다. 술잔을 앞으로 밀어주는 모습마저 음료수를 밀어주는 것 마냥 덤덤하고 차가웠다.그의 부하들이 술 한 잔씩 들고 이현, 여민 그리고 작은 방안의 류 조감독을 향해 걸어갔다.동시에 안에 있는 이정남을 데리고 나왔다.명빈이 술을 따른 순간부터 이현은 무언가를 깨닫고 필사적으로 후퇴했다. 공포심은 순간 극에 달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안 돼, 난 싫어!""임구택은 너희들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을 거야!""안 돼!"이현과 여민 두 사람은 두려움에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반항의 여지도 없이 술 한 잔을 강박적으로 들이켰다."콜록콜록!"이현은 소파에 쓰러진 채 격렬히 기침을 했다. 몸은 끊임없이 떨고 있었고 마음속의 공포는 갈수록 커졌다. 그녀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류 조감독에게 술을 먹이러 간 부하가 돌아와 명빈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땅에서 주운 겁니다. 소희 씨의 것인 것 같습니다."명빈이 총을 보고 잠깐 멍해 있더니 의미심장하게 명우에게 건네주었다.일반 것보다는 짧지만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진 총을 알아본 명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대표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명빈
순간 임구택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2년 동안 밤낮으로 그렸던 여인이 옷 반쯤 벗겨지고 눈동자에 야릇한 빛을 띤 채 그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임구택은 소희를 품에 꼭 안은 채 용솟음치는 정서를 애써 누르고 고개를 들어 분부했다."다음 길목에서 돌아 어정으로 가.""네!"임구택은 어쩔 수 없이 소희를 힘껏 품 속에 짓누르고 옷을 다시 잘 입혀 주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조급해하지 마, 자기야. 조금만 더 기다려."소희는 임구택의 가슴팍에 엎드린 채 그의 옷깃을 힘껏 잡고 목이 쉰 소리를 냈다."임구택, 나 너무 괴로워.""알아."임구택의 눈동자는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그는 넓은 손바닥으로 소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음 같았으면 소희를 대신해 그 고통을 감당하고 싶었다."아니, 당신은 몰라!"소희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당신 분명 나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자고 했잖아.""나 시력을 잃은 적이 있었어. 하지만 난 전혀 어둠이 두렵지 않았어. 반대로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 거 같아서 너무 슬펐지.""그래서 당신한테 연락을 했는데, 당신은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가라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그러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지.""당신 정말 미워!"목이 멘 채 중얼거리고 있는 소희의 소리에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임구택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나 소희의 얼굴을 들어 자신에게 붙였다."미안해.""소희야, 미안해!"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키스했다. 미간에서부터 눈가로, 열정적이면서도 다정스럽게."한번 만 기회를 줘, 내가 다 보상할게."*차가 어정에서 멈추자 임구택이 양복으로 소녀를 감싸고 위층으로 걸어갔다.2년 동안 비어 있던 방이었지만 전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펫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소파에는 소희가 좋아하는 쿠션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탁자에는
"아니, 없어.""착하네."방안은 줄곧 불이 꺼진 상태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불기 시작한 광풍은 맑은 달과 별을 뒤덮었고, 달빛을 가로막은 먹구름은 소녀의 아름다운 몸과 함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바람이 한 시간 동안 불더니 새벽 3시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밤비는 여름의 무더위와 갑갑함을 씻어내 주고 불안을 달래주며 즐거운 꿈과 함께 사람들에게 상쾌함을 가져다주었다.소희는 빗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깥세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한밤중의 비는 그칠 줄 모르다 날이 거의 밝아서야 바람이 점점 잦아졌다. 소희는 그제야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똑똑히 듣게 되었다.드디어 눈을 붙일 수 있었다.그녀는 엄청 많은 꿈을 꾸었다. 어렸을 때 양모에게 호통을 맞고 욕먹는 꿈, 실수로 동생의 장난감을 망가뜨렸다고 양모가 바늘을 들고 그녀의 손가락을 찌르는 꿈.하지만 그녀는 울 수 없었다. 울기만 하면 양아버지가 그녀를 걷어찼으니까.성인 남자의 발길은 오랫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그 죽음에 직면하는 것 같은 아픔은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정원의 문이 열리고 키가 엄청 큰 남자가 다가와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쫓아내고 그녀의 앞을 지켰다.고개를 들어 남자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눈물이 그녀의 눈을 흐려 아무리 해도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는 다시 사라졌다. 당황한 마음에 남자를 찾으려고 힘껏 눈을 크게 떴지만 남자의 희미한 그림자는 점점 멀어져 갔다.이때 화면이 갑자기 바뀌면서 그녀는 다시 그 버려진 공장으로 돌아갔고, 그녀와 전우들은 적에게 포위되어 한 작은 창고에 갇혔다.귓가에는 총소리와 폭발음이 난발했고 백양이 피투성이로 된 채 그녀의 앞을 지켰다.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를 구하려 했지만 임구택이 달려들어 그녀를 잡아당겼다."소희야!"그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뒤에 심명이 서있었다.
등이 유리에 붙으면서 전해온 차가운 촉감은 순간 소희의 모든 세포를 자극하고 있었다.30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마치 심연과 같았다.하지만 모든 것이 또 그렇게 익숙할 수가 없었다.소희는 갑자기 아주 긴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은 황홀감이 들었다.한낮의 햇살은 남자의 옆모습을 더욱 눈부시게 비추었다..상체에만 헐렁헐렁하게 흰색 셔츠를 걸쳐 입은 그의 넓은 어깨에는 손톱에 긁힌 붉은색 자국이 나 있었고, 그 자국은 팽팽한 근육을 따라 아래로 쭉 이어졌다. 왠지 모르게 섹시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소희는 고개를 들어 유리에 기대었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눈에 비치면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소희가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소희는 다시 잠들었다. 다만 잠들기 전 임구택이 그녀를 달래며 약 두 알을 먹였다.어렴풋이 그중 한 가지 약의 냄새가 익숙한 것 같아 눈을 반쯤 뜨고 물었다."무슨 약이야?"임구택이 알약을 소희의 입술 옆으로 가져다 대고 그녀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피임약."이에 소희가 입술을 벌리고 알약을 삼켰다."착하네."임구택이 소희의 입꼬리에 입술을 한 번 맞추고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잘 자."*소희는 지금 극도로 잠이 필요할 때라 오후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잠에서 깨지 못했다.그러다 누군가가 계속 건드려서 겨우 잠에서 깨게 되었다. 소희는 귀찮다는 듯 몸을 비틀고 애교가 섞인 어투로 소리쳤다."임구택, 하지 마!"그리고 그녀의 말투는 두 사람 다 멍하게 만들었다. 순간 두 사람이 함께 어정에서 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소희는 어쩔 수 없이 깨어나 눈살을 찌푸린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흐리멍덩했던 눈동자는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한참 후, 임구택이 일어나 소희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러자 소희가 곧 또 눈을 감았다.임구택이 불을 켜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소희를 품에 안고 물었다."자기야, 뭐 좀 먹을래?""아니, 나 잘래."소희가 피곤함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