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도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류 조감독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화가 나서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지경이었다.그래서 연속 이틀 동안 촬영할 때 여민에게 좋은 태도를 보이지 못했고, 마음이 불쾌한 여민은 이현을 찾아가 하소연했다."그 620만 때문에 류 조감독이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현이야,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이현은 자신이 소희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아이디어를 낸 거였는데, 소희의 반응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날 줄은 몰랐다.그래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류 조감독이 다시 너를 찾게 되면 말해 줘, 그 620만을 절대 헛되이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이현의 말에 여민의 눈빛이 반짝였다."내가 보기엔 소희는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계속 물어뜯었다간 우리도 다칠 수 있을 것 같아.""아무리 강한 상대도, 무서운 게 있는 법이야."......류 조감독은 소희 앞에서 감히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여전히 매일 꽃을 보냈다.그리고 그 모습에 제작진 중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부 소녀들이 소희를 엄청 부러워하고 있었다.아무래도 류 조감독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제작진에서 또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희에게 ‘일편단심’이기도 했으니.이정남이 소희의 사무실 문밖에 놓인 한움큼의 분홍색 장미를 보더는 웃었다."정말 껌딱지가 따로 없잖아. 아무리 쫓아내도 들러붙는 게,"소희는 전혀 보지 못한 듯 일에만 전념했다."보지 않으면 돼요."이에 이정남이 차가운 목소리로 또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역겹잖아!"*이틀 후, 여민이 저녁에 고명계를 따라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마침 임구택도 있었다.여민은 고명계의 곁에 앉아 끊임없이 가장자리에 앉은 남자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고명계를 한번 보고는 또 시종 단아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임구택을 쳐다보았다. 순간 이현이 왜 임구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술을 몇 잔 마신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의견이 분분하여 누군가를 우회적으로 욕하기 시작했고, 남성분들이 몇 마디 듣더니 눈치를 챈 듯 하찮다는 웃음을 지으며 이전의 화제를 계속했다.임구택이 차가운 눈빛으로 여민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눈치 빠르게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고, 그가 한 모금 빨고 내뱉은 연기는 허공으로 흩날리며 그의 차가운 눈빛마저 가렸다.다음 날 아침여민이 막 외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택배인 줄 알고 마스크팩을 붙인 채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이 금방 열리자마자 누군가가 힘껏 밀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 여민은 놀라서 문밖의 네다섯 정도 되는 남자들을 쳐다보았다.맨 앞에 선 여인은 마흔이 넘어 보였고, 얼굴에 살이 너무 쪄있어 두 눈이 실눈처럼 살 사이에 끼워진 게 왠지 사납고 독해 보였다.여인은 음흉하게 여민을 쳐다보더니 바로 다가가 여민의 잠옷 앞깃을 잡고 뺨을 날렸다."염치없는 년, 감히 내 남자를 꼬셔? 꼬시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않았나?"여민은 여인이 날린 뺨에 순간 멍해져 얼굴을 가린 채 화를 내며 물었다."당신들 누구야! 어떻게 올라온 거야?"여민이 사는 곳은 고급 주택단지로 낯선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경비실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주택단지로 들일 수가 있는 거지?’그러자 여인이 이를 악물고 여민을 노려보며 대답했다."우리 남편이 산 집에 내가 왜 못 올라와? 고명계 그 나쁜 놈, 대체 몇 명이나 꼬시고 다닌 거야!"여민이 듣더니 안색이 급변해서는 당황하고 두려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당신들이 사람 잘못 찾았어. 이 집은 내가 직접 산 거야. 난 네 남편을 몰라.""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인정하지 않아?"고 부인이 뒤돌아보며 소리쳤다."장자야, 사진을 보여줘!"그러자 뒤에 있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사진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던졌다.그리고 사진을 확인한 여민은 순간 겁에 질렸다. 그 사진들
고 부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나 아니야."사실 오늘 아침 누군가가 그녀에게 택배를 보내왔었다. 그 속엔 고명계와 여민이 찍혀있는 사진 그리고 여민의 집주소가 들어 있었고, 그녀가 그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몇 사람을 데리고 여민이 사는 곳으로 쳐들어갔던 것이다.심지어 그중에는 고명계와 여민이 호텔을 드나드는 사진뿐만 아니라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도 들어있었다.‘대체 누가 그런 은밀한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온 거지?’장자가 듣더니 갑자기 고 부인의 굵은 허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뽀뽀를 했다."누가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님이 제대로 화풀이를 했으면 된 거죠!"고 부인은 그대로 남자의 품에 기대었고 통통한 손은 남자의 셔츠 속으로 파고들었다.그 후 여민은 3일간의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다가 다시 제작팀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전부터 여민한테 악감정이 있었던 류 조감독이 기회를 빌려 늘 촬영장에서 여민에게 화를 냈다.예전 같았으면 여민은 무조건 류 조감독에게 대들었겠지만 지금은 조용하게 듣기만 할 뿐 한 마디도하지 않았다.게다가 이현과는 점점 가까워지고, 이전보다 더 이현의 비위를 맞추려 하면서도 조수나 스태프들한테는 엄청 포악했다.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민이 자극을 받은 게 아닌가고 의심하고 있었다.......토요일8시 반 정각에 맞춰 소희가 집에서 나오니 임구택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맞은 수제양복을 차려 입은 채 몸을 차문에 기대고 낮은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임구택이 소희를 보더니 차에 타라는 손짓을 하면서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거절할 기회도 없이.소희는 치밀어 오른 화를 억누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그러자 임구택이 전화를 끊고 차에 시동을 걸어 주택단지를 떠났다.몇 십 메터를 사이에 둔 주택단지의 녹화 풀숲에서 갑자기 손에 카메라를 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멀어져 가고 있는 차를 주시하고 있었다.차 안에서, 소희가 조용하게 차창 밖
"하지만 이번엔 달라!"임유민이 고개를 저으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소희에게 말했다."내가 장담하는데, 이번엔 누나가 틀림없이 짝사랑을 하고 있어."소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누가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네 누나를 짝사랑하게 하다니.""임유림 바보, 이번엔 더 이상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임유림을 걱정해주고 있는 임유민의 모습에 소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네 누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강성대에 합격했고, 학교에서도 성적이 줄곧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바보라고?""성적이 좋다고 사람을 보는 안목도 좋은 법은 없잖아. 임유림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사랑만 받고 자라 사람 마음이 얼마나 험악한 지 모른다고."소희가 듣더니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어릴 때부터? 네가 봤어?"임유민이 소희를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걱정 어린 말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우리 엄마 아빤 집에 안 계시고, 둘째 삼촌도 바빠서 그러는데 쌤이 나 대신 임유림을 지켜봐 주면 안 돼? 절대 바보짓 못하게.""이런 일은 외부 사람이 참견하지 않는 게 좋아."소희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그러자 임유민이 바로 당당하게 반박했다."쌤이 왜 외부 사람이야? 쌤은 임유림 둘째 숙모잖아!"임유민의 말에 소희는 하마터면 침에 사레가 들 뻔했다. 그러고는 곧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네 둘째 삼촌과 이미 헤어졌어. 그러니 다시는 날 둘째 숙모라고 부르지 마."임유민이 듣더니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우리 둘째 삼촌은 그런 말하지 않았는데.""그럼 내가 지금 정중하게 말해줄게, 우리 이미 헤어졌어.""쌤은 정말 안목이 없어."임유민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소리에 소희는 임구택이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 그녀의 안목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린아이와 따지고 들 일은 아닌 것 같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유민은 소희가 화를 내기라도 할까 봐 더 이상 농담을 하지 않고 다시 진지하게
‘어쩐지 데리러 오지 않았더라니, 약속이 있었네.’임구택은 이곳에서 소희를 만난 줄 생각지도 못했다.사실 그가 이곳에 나타나게 된 건 와서 누굴 한 번 만나보라며 걸려온 형수의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그러다 룸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형수가 그를 대신해 맞선을 주선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그와 소희 사이의 일은 임씨네 가족들이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그가 한 번도 집으로 여인을 들인 적이 없었으니 가족들은 그가 그쪽 방면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몰래 이번 맞선을 준비했던 것이다.물론, 방금 룸 안에서 그는 이미 오늘 맞선 보러 온 임 아가씨에게 제대로 의사를 표했고, 기왕 거절한 이상 밥도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침 소희를 만나게 되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후 임구택은 임 아가씨를 먼저 보내고 소희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그러고는 소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덤덤한 표정의 소녀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소희는 임구택이 맞은편에 앉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녀는 디자인 원고에만 전념할 뿐 남자의 시선을 외면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았지만 낯선 사람마냥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종업원이 와서 레몬물 한 잔을 내려놓으며 임구택에게 주문할 거냐고 물었고, 임구택이 그제야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초콜릿 케이크요.""네."종업원이 공손하게 물러나고는 곧 케이크를 올려왔다.임구택은 그 케이크 접시를 소희 앞으로 밀어주고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대략 30분 후,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연희야."[길이 너무 막혀서 방금 도착했어, 너 어디야?]성연희의 우렁찬 목소리가 휴대폰 맞은편에서 들려왔다.이에 소희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침 성연희가 빨간색 스포츠카에서 내려 식당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들어와, 네가 보여."소희가 전화를 끊고는 바로 물건을 정리
화요일휴식시간에 류 조감독이 휴식실로 들어갔다. 그러다 대사를 외우고 있는 이현을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갔다."현이 씨 참 부지런하다니까. 역시 잘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이현이 듣더니 고개를 들고 깜찍하게 웃었다."다들 노력하고 있는데, 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죠.""역시 현이 씨는 너무 겸손해!"류 조감독이 말하면서 이현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은 딴 곳으로 가출해 있는 게 분명했다.이에 이현이 반짝이고 있는 두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방금 소희 씨가 촬영장에 있던데, 왜 남아 소희 씨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이쪽으로 오셨어요?""소희는 고집이 너무 세. 꽃도 주고 돈도 쓸 만큼 다 썼는데도 여전히 나를 받아주지 않아."류 조감독이 눈썹을 찌푸린 채 대답하고는 눈알을 한 번 굴렸다. 그러고는 이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듣자니 현이 씨 예전에 소희와 사이가 좋았다던데, 현이 씨가 날 좀 알려줘, 어떻게 해야 소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이현이 듣더니 대본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사실 아주 간단해요. 아무리 좋은 여자라고 해도 끈질긴 구애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자들은 원래 내숭 떠는 걸 좋아하니, 류 조감독도 조금만 더 견지해 보세요. 분명 소희 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내가 산 물건은 하나도 받지 않아.""제작팀에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소희 씨가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소희 씨는 북극 작업실에서 파견된 디자이너인데 어떻게 대놓고 받겠어요? 그러니 집으로 한 번 보내봐요."이현의 건의에 류 조감독이 순간 깨달았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내가 바보짓을 했네! 현이 씨, 역시 현이 씨가 똑똑해.""류 조감독님이 바보짓을 한 게 아니라, 제가 여자의 심리를 더 잘 아는 것뿐입니다.""그럼 소희가 어디에 사는지 좀 물어봐줄래?""물어볼 필요 있나요? 제가 소희 씨 친구인데 주소를 모를 리가 있겠어요? 바로 보내줄게
소희가 듣더니 입술을 오므리고는 다시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갔다.임구택이 소희의 손에 들린 가방을 보더니 눈동자가 순간 어두워졌다.그러다 소희가 가방을 던지고 건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임 대표님,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하늘에 남긴 노을은 임구택의 잘생긴 얼굴에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워 이목구비를 더욱 입체적이고 조각지게 만들었다.임구택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집으로 초대하지 않을 거야?""죄송합니다만 그건 많이 불편할 것 같네요.""그럼 가장의 신분으로 임유민의 성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데."교활한 빛이 스쳐 지나간 임구택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던 소희가 한참 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올라와요."임구택이 순간 목적을 달성한 사람마냥 입꼬리를 올린 채 소희의 뒤를 따라 복도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 임구택이 소희 먼저 층수를 눌렀고 뒤에서 전해 오는 누군가의 눈빛을 감지하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빙그레 웃었다.그러다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혔을 때 갑자기 한 여연이 달려왔다."잠깐만요, 잠깐만요!"임구택이 신속히 열림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하지만 의외로 여자가 개 한 마리도 끌고 있었다. 사람 무릎 높이까지 큰 골든 레트리버가 여자 앞서 엘리베이터로 들어섰고, 소희를 보자마자 소희의 몸에 뛰어오르려 했다.소희는 순간 안색이 크게 변해 뒤로 물러났다.마침 소희의 뒤쪽에 서 있던 임구택이 팔을 뻗어 소희를 품에 안고는 차가운 눈동자로 개를 끈 여자에게 말했다."줄을 잘 잡으시죠."여자가 임구택의 위세에 깜짝 놀라 멋쩍게 말했다."우리 집 강아지는 사람을 안 물어요.""하지만 제 아내를 놀라게 했습니다."임구택의 목소리도 엄청 차가웠다.이에 여자가 황급히 골든 레트리버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골든 레트리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소희는 여전히 몸에 힘을 준 채 아무것도
사실 임구택은 얼마나 그 무더운 여름에 소희 곁에 나타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개들이 소희에게 달려들기 전에 그녀를 뒤쪽으로 감싸고 그녀에게 이 세상에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데.소희는 임구택의 품에 가만히 선 채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은 표정으로 그의 호의를 거부했다. 그의 호의는 뒤쪽에 있는 골든 레트리버보다 더욱 그녀에게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주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16층에서 멈춰 섰고, 개를 끈 여자가 함께 안고 있는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개를 끌고 나갔다.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소희는 즉시 임구택의 품에서 나와 몸을 돌려 문쪽을 마주해 섰다.임구택은 그렇게 뒤쪽 엘리베이터 벽에 기댄 채 무거운 눈빛으로 소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다 한참 후 엘리베이터가 다시 멈추었고, 임구택이 소희의 뒤를 바짝 따랐다.소희는 집 문 앞에 서서 천천히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신속히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세게 닫았다."......"집안에 들어 선 소희가 천천히 긴 숨을 내쉬었다. 요 며칠 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화가 드디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이때 문밖에 선 임구택이 문을 두드렸다."자기야, 문 열어 봐. 우리 얘기 좀 해.""얘기할 것도 없어."소희가 문에 기대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신 주위에는 여자가 끊긴 적이 없었잖아. 그러니 나한테 와서 이렇게 억울한 척할 필요 없어.""여자라니?"임구택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날은 형수님이 나 몰래 맞선을 주선해서 간 거였어. 나도 사전에는 그런 자리일 줄 몰랐다고.""나한테 해석할 필요 없어, 가서 네 여자친구한테나 해석해."소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이에 임구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난 여자친구 없어, 아내 한 명만 있지.""곧 그 아내도 없어질 거야.""......"*장시원이 다시 아래층으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
“‘강’ 씨 성이면 어때? 아심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강재석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그건 아심이 예전에 도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 돌아왔으니 성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도경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재희로?”도경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재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도도희는 계속 다퉜어. 얼마 후 도도희는 재희를 데리고 강성을 떠났고, 그저 재희라는 예비 이름만 붙여줬어.”“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재희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지만, 나와 도도희의 의견이 매번 엇갈려 결국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강재석은 기뻐하며 말했다.“그 말은 재희의 운명적인 이름이 이미 강아심이라는 뜻이니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거야!”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절대 불가능해. 내일 바로 도도희와 상의해서 재희를 우리 도씨 가문의 호적에 올릴 거야.”“그 문제는 아심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강재석이 말했다.“네 멋대로 결정하면 아심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그 말을 듣고 도경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했다.“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그는 위층을 올려다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도도희와 아심이가 한방에서 지내고 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모녀가 이미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거리감도 줄었겠지.”“맞아!” 도경수가 감탄하며 말했다.“볼수록 아심은 우리 도씨 가문의 사람처럼 보여.”강재석이 비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사람 깎아내릴 때는 아니었나 봐?”도경수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그때는...”“그때는 뭐? 양재아의 한마디에 휘둘려, 본 적도 없는 아가씨를 편견으로 대했잖아.”강재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아심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지.”도경수는 주름이 가득 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야!”“잘못을 인정한다니 다행이네!”그 말에 도경수는 찡그리며 말했다.“지금까지 재희가 날 외할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려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이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수 있겠네.”구택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가고 싶은 곳 있어?”그 말에 소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사실, 아직 양재아가 조금 걱정돼.”“걱정하지 마. 형님이 있으니까.” 구택이 웃으며 말했다.“형님은 절대 아무도 아심을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그건 그렇지!” 소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오빠랑 아심이 사귀고 있었으면 좋겠어.”“그럴 거야.”...그날 밤, 도도희는 아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오늘 밤은 한방에서 지내자. 아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도우미들이 아심을 위해 새 세면도구와 잠옷을 준비해 놓았다. 아심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도도희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침대로 와.”아심은 신발을 벗고 도희 옆에 앉았다. 방 안은 냉방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도도희는 이불을 들어 그녀의 다리에 덮어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이 너무 차게 하면 안 돼. 특히 너는 위가 안 좋잖아.”아심은 스스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며 웃었다.“이제 알았어요. 제가 위가 안 좋은 건, 알고 보니 유전 때문이었네요.”이에 도도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원인을 찾았구나!”아심은 사진첩을 넘기다가 자신이 세 살이 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양부모님 댁에서도 제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비슷했어요.”도도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널 자주 때렸니?”“친자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정이 없었죠.” 아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도 다행히 할머니가 아주 착해서 저를 보호해 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이 병에 걸리자 저를 팔아버렸어요.”도도희는 가슴이 아파 그녀를
강재석이 말했다.“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면 다 지난 일이 된다. 재희가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야. 너까지 이러면 재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다.”“그렇지!” 도경수가 눈물을 닦으며 강아심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찾아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식사가 끝난 후,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재석이 소희에게 말했다.“너희 부부도 신혼여행을 가야 하지 않느냐? 이제 재희도 찾았으니 내일부터 떠나도록 해.”소희는 만화에서나 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기뻐서 신혼여행이고 뭐고 갈 마음이 없어요.”그 말에 강시언이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이 그룹 일을 전부 내려놓고 널 위해 시간을 냈는데,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신혼여행을 미루지 마.”구택이 소희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걱정하지 마.” 시언이 잔잔히 미소 지었고, 도경수도 진석과 강솔을 향해 말했다.“너희도 나를 계속 돌보려 하지 말고 할 일 있으면 하러 가라. 여기 강재석도 있고, 나와 이야기하면 충분하다.”진석이 말했다.“그러면 강재석 할아버지께서 강성에 며칠 더 머물러 주세요.”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떠날 수 없구나!”도도희가 말했다.“아저씨, 어떤 일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 말에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너희 아빠에게 물어봐라!”도경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돌아가려면 얼른 돌아가!”도도희가 호기심에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언과 아심의 혼사 얘기다!”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전에 재희를 찾으면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인연을 더 깊게 맺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모두가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