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터가 명세서를 소희에게 건네자 이 감독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명세서를 빼앗으려 했다."그냥 내가 계산할게!""아닙니다."그런데 소희가 웃으며 명세서를 가지고 가서는 휴대폰을 꺼내 계산할 준비를 했다.이에 이정남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돈이 충분해?""네."이때 옆에 있던 이현과 여민이 눈길을 마주쳤고, 여민이 바로 콧방귀를 뀌었다."속이 깊긴 깊네, 다들 보는 앞에서 난폭하게 화를 내며 추태를 부리지 않다니."그러다 또 실망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재밌는 연극은 물 건너갔네. 진짜로 계산할 돈이 있었으니."이현은 의외로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필경 소희가 임구택과 그렇게 오래 같이 있었는데, 임구택이 소희를 박대할 리가 없었으니까.그녀는 고개를 돌려 류 조감독에게 눈짓을 했고, 류 조감독이 접수하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 소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대범하고도 자상하게 말했다.."소희가 갓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술을 쏠 돈이 있겠어? 이 술은 내가 소희를 대신해 지불할게."말하면서 그는 휴대폰을 꺼내 진짜 계산하려고 했다. 사실 그는 소희가 말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혀 막을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그래서 몸을 돌려 떠보듯이 소희를 향해 말했다."소희야, 내가 대신 낸다?"그러자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감사합니다, 류 조감독님."류 조감독의 미소가 순간 살짝 굳어졌다.그가 소희를 대신해 지불할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왠지 소희의 태도가 수상했다.이때 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웃으며 말했다."류 조감독님, 정말 통이 크시네요."이미 한 말이 있으니 류 조감독은 번복할 수가 없어 명세서를 들고 꾸물거리며 620만 원을 지불했다.돈이 카드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그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이 감독이 류 조감독의 어깨를 두드리며 농담하듯 말했다."류 조감독, 이렇게 대범한 모습은 처음 보네."류 조감독이 듣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 소희에게 모두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하지만 그녀도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류 조감독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화가 나서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지경이었다.그래서 연속 이틀 동안 촬영할 때 여민에게 좋은 태도를 보이지 못했고, 마음이 불쾌한 여민은 이현을 찾아가 하소연했다."그 620만 때문에 류 조감독이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현이야,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이현은 자신이 소희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아이디어를 낸 거였는데, 소희의 반응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날 줄은 몰랐다.그래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류 조감독이 다시 너를 찾게 되면 말해 줘, 그 620만을 절대 헛되이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이현의 말에 여민의 눈빛이 반짝였다."내가 보기엔 소희는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계속 물어뜯었다간 우리도 다칠 수 있을 것 같아.""아무리 강한 상대도, 무서운 게 있는 법이야."......류 조감독은 소희 앞에서 감히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여전히 매일 꽃을 보냈다.그리고 그 모습에 제작진 중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부 소녀들이 소희를 엄청 부러워하고 있었다.아무래도 류 조감독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제작진에서 또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희에게 ‘일편단심’이기도 했으니.이정남이 소희의 사무실 문밖에 놓인 한움큼의 분홍색 장미를 보더는 웃었다."정말 껌딱지가 따로 없잖아. 아무리 쫓아내도 들러붙는 게,"소희는 전혀 보지 못한 듯 일에만 전념했다."보지 않으면 돼요."이에 이정남이 차가운 목소리로 또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역겹잖아!"*이틀 후, 여민이 저녁에 고명계를 따라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마침 임구택도 있었다.여민은 고명계의 곁에 앉아 끊임없이 가장자리에 앉은 남자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고명계를 한번 보고는 또 시종 단아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임구택을 쳐다보았다. 순간 이현이 왜 임구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술을 몇 잔 마신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의견이 분분하여 누군가를 우회적으로 욕하기 시작했고, 남성분들이 몇 마디 듣더니 눈치를 챈 듯 하찮다는 웃음을 지으며 이전의 화제를 계속했다.임구택이 차가운 눈빛으로 여민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눈치 빠르게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고, 그가 한 모금 빨고 내뱉은 연기는 허공으로 흩날리며 그의 차가운 눈빛마저 가렸다.다음 날 아침여민이 막 외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택배인 줄 알고 마스크팩을 붙인 채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이 금방 열리자마자 누군가가 힘껏 밀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 여민은 놀라서 문밖의 네다섯 정도 되는 남자들을 쳐다보았다.맨 앞에 선 여인은 마흔이 넘어 보였고, 얼굴에 살이 너무 쪄있어 두 눈이 실눈처럼 살 사이에 끼워진 게 왠지 사납고 독해 보였다.여인은 음흉하게 여민을 쳐다보더니 바로 다가가 여민의 잠옷 앞깃을 잡고 뺨을 날렸다."염치없는 년, 감히 내 남자를 꼬셔? 꼬시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않았나?"여민은 여인이 날린 뺨에 순간 멍해져 얼굴을 가린 채 화를 내며 물었다."당신들 누구야! 어떻게 올라온 거야?"여민이 사는 곳은 고급 주택단지로 낯선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경비실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주택단지로 들일 수가 있는 거지?’그러자 여인이 이를 악물고 여민을 노려보며 대답했다."우리 남편이 산 집에 내가 왜 못 올라와? 고명계 그 나쁜 놈, 대체 몇 명이나 꼬시고 다닌 거야!"여민이 듣더니 안색이 급변해서는 당황하고 두려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당신들이 사람 잘못 찾았어. 이 집은 내가 직접 산 거야. 난 네 남편을 몰라.""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인정하지 않아?"고 부인이 뒤돌아보며 소리쳤다."장자야, 사진을 보여줘!"그러자 뒤에 있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사진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던졌다.그리고 사진을 확인한 여민은 순간 겁에 질렸다. 그 사진들
고 부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나 아니야."사실 오늘 아침 누군가가 그녀에게 택배를 보내왔었다. 그 속엔 고명계와 여민이 찍혀있는 사진 그리고 여민의 집주소가 들어 있었고, 그녀가 그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몇 사람을 데리고 여민이 사는 곳으로 쳐들어갔던 것이다.심지어 그중에는 고명계와 여민이 호텔을 드나드는 사진뿐만 아니라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도 들어있었다.‘대체 누가 그런 은밀한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온 거지?’장자가 듣더니 갑자기 고 부인의 굵은 허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뽀뽀를 했다."누가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님이 제대로 화풀이를 했으면 된 거죠!"고 부인은 그대로 남자의 품에 기대었고 통통한 손은 남자의 셔츠 속으로 파고들었다.그 후 여민은 3일간의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다가 다시 제작팀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전부터 여민한테 악감정이 있었던 류 조감독이 기회를 빌려 늘 촬영장에서 여민에게 화를 냈다.예전 같았으면 여민은 무조건 류 조감독에게 대들었겠지만 지금은 조용하게 듣기만 할 뿐 한 마디도하지 않았다.게다가 이현과는 점점 가까워지고, 이전보다 더 이현의 비위를 맞추려 하면서도 조수나 스태프들한테는 엄청 포악했다.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민이 자극을 받은 게 아닌가고 의심하고 있었다.......토요일8시 반 정각에 맞춰 소희가 집에서 나오니 임구택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맞은 수제양복을 차려 입은 채 몸을 차문에 기대고 낮은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임구택이 소희를 보더니 차에 타라는 손짓을 하면서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거절할 기회도 없이.소희는 치밀어 오른 화를 억누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그러자 임구택이 전화를 끊고 차에 시동을 걸어 주택단지를 떠났다.몇 십 메터를 사이에 둔 주택단지의 녹화 풀숲에서 갑자기 손에 카메라를 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멀어져 가고 있는 차를 주시하고 있었다.차 안에서, 소희가 조용하게 차창 밖
"하지만 이번엔 달라!"임유민이 고개를 저으며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소희에게 말했다."내가 장담하는데, 이번엔 누나가 틀림없이 짝사랑을 하고 있어."소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누가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네 누나를 짝사랑하게 하다니.""임유림 바보, 이번엔 더 이상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임유림을 걱정해주고 있는 임유민의 모습에 소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네 누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강성대에 합격했고, 학교에서도 성적이 줄곧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바보라고?""성적이 좋다고 사람을 보는 안목도 좋은 법은 없잖아. 임유림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사랑만 받고 자라 사람 마음이 얼마나 험악한 지 모른다고."소희가 듣더니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어릴 때부터? 네가 봤어?"임유민이 소희를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걱정 어린 말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우리 엄마 아빤 집에 안 계시고, 둘째 삼촌도 바빠서 그러는데 쌤이 나 대신 임유림을 지켜봐 주면 안 돼? 절대 바보짓 못하게.""이런 일은 외부 사람이 참견하지 않는 게 좋아."소희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그러자 임유민이 바로 당당하게 반박했다."쌤이 왜 외부 사람이야? 쌤은 임유림 둘째 숙모잖아!"임유민의 말에 소희는 하마터면 침에 사레가 들 뻔했다. 그러고는 곧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네 둘째 삼촌과 이미 헤어졌어. 그러니 다시는 날 둘째 숙모라고 부르지 마."임유민이 듣더니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우리 둘째 삼촌은 그런 말하지 않았는데.""그럼 내가 지금 정중하게 말해줄게, 우리 이미 헤어졌어.""쌤은 정말 안목이 없어."임유민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소리에 소희는 임구택이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 그녀의 안목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린아이와 따지고 들 일은 아닌 것 같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유민은 소희가 화를 내기라도 할까 봐 더 이상 농담을 하지 않고 다시 진지하게
‘어쩐지 데리러 오지 않았더라니, 약속이 있었네.’임구택은 이곳에서 소희를 만난 줄 생각지도 못했다.사실 그가 이곳에 나타나게 된 건 와서 누굴 한 번 만나보라며 걸려온 형수의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그러다 룸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형수가 그를 대신해 맞선을 주선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그와 소희 사이의 일은 임씨네 가족들이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그가 한 번도 집으로 여인을 들인 적이 없었으니 가족들은 그가 그쪽 방면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몰래 이번 맞선을 준비했던 것이다.물론, 방금 룸 안에서 그는 이미 오늘 맞선 보러 온 임 아가씨에게 제대로 의사를 표했고, 기왕 거절한 이상 밥도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침 소희를 만나게 되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후 임구택은 임 아가씨를 먼저 보내고 소희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그러고는 소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덤덤한 표정의 소녀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소희는 임구택이 맞은편에 앉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녀는 디자인 원고에만 전념할 뿐 남자의 시선을 외면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았지만 낯선 사람마냥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종업원이 와서 레몬물 한 잔을 내려놓으며 임구택에게 주문할 거냐고 물었고, 임구택이 그제야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초콜릿 케이크요.""네."종업원이 공손하게 물러나고는 곧 케이크를 올려왔다.임구택은 그 케이크 접시를 소희 앞으로 밀어주고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대략 30분 후,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연희야."[길이 너무 막혀서 방금 도착했어, 너 어디야?]성연희의 우렁찬 목소리가 휴대폰 맞은편에서 들려왔다.이에 소희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침 성연희가 빨간색 스포츠카에서 내려 식당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들어와, 네가 보여."소희가 전화를 끊고는 바로 물건을 정리
화요일휴식시간에 류 조감독이 휴식실로 들어갔다. 그러다 대사를 외우고 있는 이현을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갔다."현이 씨 참 부지런하다니까. 역시 잘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이현이 듣더니 고개를 들고 깜찍하게 웃었다."다들 노력하고 있는데, 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죠.""역시 현이 씨는 너무 겸손해!"류 조감독이 말하면서 이현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은 딴 곳으로 가출해 있는 게 분명했다.이에 이현이 반짝이고 있는 두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방금 소희 씨가 촬영장에 있던데, 왜 남아 소희 씨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이쪽으로 오셨어요?""소희는 고집이 너무 세. 꽃도 주고 돈도 쓸 만큼 다 썼는데도 여전히 나를 받아주지 않아."류 조감독이 눈썹을 찌푸린 채 대답하고는 눈알을 한 번 굴렸다. 그러고는 이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듣자니 현이 씨 예전에 소희와 사이가 좋았다던데, 현이 씨가 날 좀 알려줘, 어떻게 해야 소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이현이 듣더니 대본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사실 아주 간단해요. 아무리 좋은 여자라고 해도 끈질긴 구애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자들은 원래 내숭 떠는 걸 좋아하니, 류 조감독도 조금만 더 견지해 보세요. 분명 소희 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내가 산 물건은 하나도 받지 않아.""제작팀에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소희 씨가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소희 씨는 북극 작업실에서 파견된 디자이너인데 어떻게 대놓고 받겠어요? 그러니 집으로 한 번 보내봐요."이현의 건의에 류 조감독이 순간 깨달았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내가 바보짓을 했네! 현이 씨, 역시 현이 씨가 똑똑해.""류 조감독님이 바보짓을 한 게 아니라, 제가 여자의 심리를 더 잘 아는 것뿐입니다.""그럼 소희가 어디에 사는지 좀 물어봐줄래?""물어볼 필요 있나요? 제가 소희 씨 친구인데 주소를 모를 리가 있겠어요? 바로 보내줄게
소희가 듣더니 입술을 오므리고는 다시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갔다.임구택이 소희의 손에 들린 가방을 보더니 눈동자가 순간 어두워졌다.그러다 소희가 가방을 던지고 건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임 대표님,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하늘에 남긴 노을은 임구택의 잘생긴 얼굴에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워 이목구비를 더욱 입체적이고 조각지게 만들었다.임구택이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집으로 초대하지 않을 거야?""죄송합니다만 그건 많이 불편할 것 같네요.""그럼 가장의 신분으로 임유민의 성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데."교활한 빛이 스쳐 지나간 임구택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던 소희가 한참 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올라와요."임구택이 순간 목적을 달성한 사람마냥 입꼬리를 올린 채 소희의 뒤를 따라 복도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 임구택이 소희 먼저 층수를 눌렀고 뒤에서 전해 오는 누군가의 눈빛을 감지하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빙그레 웃었다.그러다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혔을 때 갑자기 한 여연이 달려왔다."잠깐만요, 잠깐만요!"임구택이 신속히 열림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하지만 의외로 여자가 개 한 마리도 끌고 있었다. 사람 무릎 높이까지 큰 골든 레트리버가 여자 앞서 엘리베이터로 들어섰고, 소희를 보자마자 소희의 몸에 뛰어오르려 했다.소희는 순간 안색이 크게 변해 뒤로 물러났다.마침 소희의 뒤쪽에 서 있던 임구택이 팔을 뻗어 소희를 품에 안고는 차가운 눈동자로 개를 끈 여자에게 말했다."줄을 잘 잡으시죠."여자가 임구택의 위세에 깜짝 놀라 멋쩍게 말했다."우리 집 강아지는 사람을 안 물어요.""하지만 제 아내를 놀라게 했습니다."임구택의 목소리도 엄청 차가웠다.이에 여자가 황급히 골든 레트리버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골든 레트리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소희는 여전히 몸에 힘을 준 채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