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것이 저질적인 무언가였다면 여은진은 결코 지금처럼 이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다.지금 그녀는 너무 덥고 답답했고 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원이림 앞에서 그녀는 점점 더 주체할 수 없었다.하지만 절대 이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무언가를 원했지만 찬물로 샤워를 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원이림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도우미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야?”여은진이 대답했다.“그 애는 내가 석진이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마도 석진이를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을 거예요.”“제기랄!”원이림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사람은 절대 집에 둬서는 안 돼.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문혜인의 행동은 확실히 선을 넘은 것이었고 바람직하지 않았다. 허락 없이 그런 짓을 했다면 해고하고 여씨 가문 저택에서 나가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하지만 여은진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문복 아저씨는 충성스럽고 수십 년 동안 여씨 가문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여은진은 문복 아저씨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문복 아저씨의 딸 문혜인은 여석진과 함께 자랐고, 이번에도 사실 여석진을 도우려는 의도가 부적절하게 사용되었을 뿐이다. 잘못을 하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그녀를 해고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여은진이 말했다.“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때가 되면 이 문제에 대해 문복 아저씨와 문혜인과 이야기하고 적절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여은진의 손목은 여전히 원이림의 손에 잡혀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원이림을 바라보며 말했다.“방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이제 놔줘요.”원이림이 물었다.“방으로 돌아가서 뭐 하려고?”여은진은 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방에 돌아가서 뭐 하겠는가? 당연히 찬물로 샤워하려고 했다.하지만 여은진은 원이림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침을 흘리게 만드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바
원이림은 행복해하며 웃었다.검고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예전에 네가 10년 동안 나를 좋아하면서 나한테 못된 짓도 당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으니 나를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건 이해해. 하지만 은진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야. 나한테 기회를 줘. 내가 너와 요한이 곁에서 잘 돌봐줄게. 내가 잘 못하면 언제든지 쫓아내도 돼. 그때 가서 후회하는 사람을 나일 거니까.”원이림은 사업가였다. 협상의 달인이자 비즈니스에 능한 사람이었다.그런데 그가 침대 위에서도 사람을 설득하는 데 능숙하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설득력 있게 말했다.마지막에 원이림은 큰 손을 들어 여은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이제 넌 조금 더 자도 돼. 내가 요한이를 안고 가서 아침을 차려줄게.”그렇게 말한 후 그는 가까이 다가가 여은진의 입술에 키스했다.그리고 나서야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큰 키에 건장한 원이림은 일어나 아기침대 옆으로 걸어가 이미 눈을 떴지만 울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 요한이를 바라보며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요한아, 너 왜 이렇게 얌전하니? 아빠가 안아줄게, 알았지?”원이림은 먼저 요한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입혔다. 그러고는 요한이를 안고 여은진의 침실에서 떳떳하게 걸어 나갔다.때마침 도우미 아주머니가 왔다. 원래는 이 시간에 요한이가 깨어나면 아주머니가 와서 요한이를 안고 나간다. 그런데 그녀는 원이림이 잠옷을 입고 여은진의 방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아주머니의 눈은 날카로웠고, 곧바로 원이림의 목에 있는 붉은 키스 마크를 한눈에 알아챘다.“아주머니, 좋은 아침입니다.”원이림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평소에도 온화한 성격이었던 그는 이 순간 마치 날개를 활짝 편 수컷 공작새처럼 더욱 상냥한 모습이었다.“요한이를 먼저 안고 있어 주세요. 저는 방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올게요.”“알았어요.”아주머니는 멍한 표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여은진을 바라보았고 깊은 눈빛에서 애틋함이 드러났다.“내가 보기에 넌 어젯밤에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고 내가 키스했을 때...”여은진은 발꿈치를 들고 손을 뻗어 원이림의 얇은 입술을 가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아름다운 얼굴은 수줍어 보였다.원이림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손을 뻗어 여은진의 작은 손을 치웠다. 그녀를 위험하게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이미 불꽃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는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은진아, 나 어젯밤에 또 샤워했어.”여은진은 당황했다.‘그래서 뭐?’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데, 저건 무슨 뜻일까?그러나 그녀는 이내 원이림의 말뜻을 알아차렸다.원이림이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쌌고 힘을 주자 그녀는 그의 튼튼한 가슴에 부딪혔다.그는 여전히 짙은 눈빛으로 조금 더 쉰 목소리로 말했다.“혼자 샤워를 하는데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상처에 물이 묻었을 텐데, 또 감염된 건 아닌지 모르겠어.”그 말을 듣자 여은진은 즉시 눈살을 찌푸리면서 차갑게 말했다.“이거 놓고 상처 좀 봐봐요.”“그래.”원이림은 순순히 대답했다.그는 여은진을 놓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협조하여 즉시 웃옷을 벗었다.원이림의 건장한 등을 보자 화상을 입은 상처는 물에 닿아서 전보다 더욱 붉어지고 부어올랐다. 심지우 일부분에서는 이미 고름이 흘러나왔다.여은진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원이림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꾸짖었다.“샤워 안 하면 안 돼요?”“안 돼.”원이림은 가여운 표정으로 여은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어젯밤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샤워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어.”여은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어젯밤 원이림이 땀을 흘린 것을 생각하자 갑자기 귀가 뜨거워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어젯밤은 할 수 없었다.여은진은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오늘 밤엔 씻지 마요.”그러나 원이림은 여전히 안 된다고
한편.별장 거실에서 여은진과 배희주 두 사람은 마당에 서 있는 두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갑자기 배희주가 입을 열었다.“은진 씨는 정말 행복하겠네요.”배씨 가문에 변화가 생기고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갔으며 자신은 하마터면 살해당할 뻔했으니 배희주는 더 이상 예전의 거만한 아가씨가 아니었다.그녀의 눈빛은 걱정이 있는 듯 깊어 보였다. 여은진에게 말했다.“은진 씨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향수 사건은 내가 은진 씨를 속이려고 한 게 아니에요.”여은진도 배희주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면서 여은진은 여석진을 바라보며 배희주에게 말했다.“석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아이였어요. 성격도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했죠. 그래서 석진이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희주 씨는 안목이 좋아요.”그러자 배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러게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죠.”다만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아직 버티고 있긴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여은진은 배희주의 미소에 담긴 씁쓸함을 보아냈다.그녀도 많은 것을 겪었던 사람이라 짙은 눈동자로 배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석진이 지금은 희주 씨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그건 아직 희주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변할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에 진심이 필요해요. 어쨌든 처음부터 희주 씨가 석진이를 속인 건 사실이니까 석진이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석진이가 결혼을 동의했다는 건 희주 씨와 아이를 지키겠다는 거니까 오직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닐 거예요. 아마 석진이도 자신이 희주 씨를 좋아하는 걸 모르고 있을 수도 있죠.”순간 배희주의 눈빛이 밝아졌다가 곧 다시 어두워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석진이 사실 자신을 좋아한다니, 가능한 일일까?여은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지금 석진이가 희주 씨를 안 좋아할지 몰라도 절대 싫어하는 건 아닐 거예요.
며칠 후 여석진과 배희주는 드디어 혼인신고를 마치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축하를 위해 두 사람은 다시 별장으로 와서 원이림, 여은진과 함께 밥을 먹었다.결혼식은 물론 당연히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없었다.여은진은 여석진과 단 둘만 남은 기회를 틈 타 여석진에게 물었다.“혼인신고만 하고 희주 씨랑 결혼식은 안 올릴 거야?”“네.”그는 간결하게 대답하고 여은진에게 이유를 설명했다.“나도 바쁘고 희주도 결혼식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지금 내가 희주를 아내로 맞아 준 것만으로도 대단하죠.”여은진은 미간을 구겼다.그녀는 여석진에게 천천히 말했다.“석진아, 세상에 결혼식을 마다할 여자는 없어. 희주 씨도 마찬가지 일거고. 희주 씨가 널 좋아한다고, 그리고 배씨 가문에 문제가 생겨 희주 씨가 배씨 가문 아가씨로서의 모든 지위와 신분을 잃었다고 네가 함부로 대해선 안 돼.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으니 희주 씨는 이제 너의 아내잖아. 넌 희주 씨를 존중해 주고 아껴줘야지.”배희주가 고등학교 때 자신을 도와줬던 일을 여은진은 여석진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여은진은 이어서 말했다.“희주 씨가 좀 오만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인 건 틀림없어!”여은진은 여석진이 배희주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배희주에게 관심을 가지다 보면 그도 배희주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여은진의 말이라면 여석진은 잘 받아들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알았어요.”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며 원이림과 여은진의 감정은 점점 좋아졌다. 끈끈한 두 사람의 사이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 없었다.완전히 별장으로 이사해 온 원이림은 여은진의 방에서 그녀와 함께 지냈다.요한이가 7개월이 된 어느 날, 원승진은 여은진을 찾아왔다. 원승진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여은진과 상의했다.“은진아, 내가 요한이를 며칠만 데리고 있으면 안 될까? 며칠 뒤면 이림이 엄마 제사야. 요한이를 데려가 보여주고
나른한 여은진의 목소리에 달뜬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가볍게 원이림을 밀어냈다.“그거 해요.”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불끈 솟아 있는 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바라보며 애꿎고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여보, 나 당신 여기 데려온 건 처음이라 그거 준비 안 했는데. 내일 나가서 사 올게. 그렇지만 오늘은...”원이림은 지금 몹시 괴로웠다.고혹스럽기 짝이 없는 여은진을 그는 유난히도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장탄했는데 쏘지 않으면 난 급사해 버릴지도 몰라. 여보...”결국 여은진은 마음이 누그러져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며칠 후, 여은진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원이림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그녀의 생리 날짜를 세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몰래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숨겨 놓기까지 하고, 그녀가 먹는 음식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였다.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마치 그녀가 꼭 임신할 것처럼 굴었다.같이 원이림의 고향에 갔을 때를 빼면 매번 피임을 놓치지 않고 하였는데, 설마...여은진은 문득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밤이 되자, 그녀는 남자를 추궁했다.“저번에 당신 고향 갔을 때 말이에요. 당신이 술에 취한 날. 그날 준비 안 했다는 거 거짓말이었죠? 애초에 나 임신시키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그녀가 잔뜩 가라앉은 낯빛으로 노려보며 따지고 들자 원이림은 대뜸 나른한 자세로 대응했다.“여보...”말꼬리를 길게 끌며, 그것도 덩치가 산만 한 장신의 남자가 애교를 부리는 꼴은 참 볼만했다.하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은 여은진은 화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니 원이림도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진지한 태도를 갖추며 설명했다. “나 그날 진짜 취했어. 정말 사전에 준비할 생각을 못 했다고. 그리고 나 이튿날에 사 왔잖아.”그 이튿날에 원이림이 사 오긴 했었다. 그것도 박스째로.버젓이 박스 하나를 안고 들어올 때 여은진은 적지 않게 놀랐다. 뭐 하러 이렇게 많이나 사 왔냐고 그를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