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조경에 조용하고 아담한 마당으로 들어서자 맡기 좋은 훈향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어떤 특이한 약초 향인 것 같은데 맡으니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이때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용준은 그 소리를 듣더니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음침하던 두 눈동자에도 온화함이 번지고 있었다.둘은 계속 피아노가 울리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와중에 용준이 입을 열었다.“이따 만날 여자애는 예서라고 해요. 지금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네요. 그건 발병을 안 했단 소리겠죠. 그런데 날 보면 안 돼요. 명의님이 먼저 들어가서 얘기 나눠보고, 어떻게 치료할 건지 방안을 세워서 나중에 저랑 따로 얘기합시다.”용준은 예서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방문 앞까지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문어귀에 지키고 있는 메이드를 남서훈과 함께 들여보냈다.방 안에 있는 여자애는 허리춤까지 오는 긴 머리에 흰색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문을 등진 채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녀의 새카만 눈동자는 왠지 텅 비어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은 흑색과 백색으로 엇갈린 피아노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거닐고 있었고 손가락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아름다운 음이 쏟아져나왔다.“예서...”메이드가 그녀를 부르려고 하자 남서훈은 손을 들어 메이드를 저지했다.남서훈은 메이드와 나란히 서서 조용히 피아노곡을 듣고 있었다.원래는 즐거운 음악이어야 할 텐데, 예서의 손에서 연주되는 그 곡은 아름다웠지만 뭔가에 억눌린 느낌이 들었다. 곡을 듣고 있자니 어떤 침울한 공간으로 이끌려 들어간 것처럼 숨마저 답답해져 왔다.드디어 한 곡이 끝나고 예서의 손가락이 멈췄다.가만히 앉아있는 그녀의 텅 빈 시선이 열린 창문을 지나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갑자기 뚝뚝 손바닥 위로 떨어지며 부서졌다.메이드가 이때 그녀를 불렀다.“예서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그 말을 듣더니 예서는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고는 몸을 뒤로 돌았다.말끔하고 청순한 이목
“그뿐만 아니라 양 사장을 지하감옥에서 풀어주라고 할 겁니다. 따로 사람을 배치해 돌보게 하고 가능한 한 빨리 회복하도록 할게요. 하지만 명의님이 양 사장을 다시 만나려면 반드시 먼저 예서 몸안에 있는 독부터 치료해야 합니다.”용준은 잠깐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물론, 명의님도 예서를 하루빨리 치료하여 양 사장님과 다시 재회하기를 원하실 것 같으니 치료하는 동안은 잠시 풍운파에 머무르셨으면 좋겠군요. 예서의 치료가 다 끝날 때까지 말이죠. 그때 되면 제가 명의님과 양 사장님을 같이 보내드리겠습니다.”결국 그렇게 되어 남서훈은 풍운파에 머무르게 되었다.용준은 부하한테 분부하여 남서훈과 남기준한테 거처를 마련해주라 하였다.남서훈이 떠나 멀리 가게 되자 용준 곁에 있던 측근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보스, 진짜 명의님이 예서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겁니까?”“그러길 바라야지.”예전에 데려왔던 의사들은 남서훈처럼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사람이 없었다. 무슨 독이던 간에 전부 제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그도 남서훈이 실망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용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반쪽짜리 금속 가면을 쓴 그의 얼굴에 소름 끼칠 만한 냉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어둠의 장막이 내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밤은 더 캄캄해지고 있었다.남서훈이 배정받은 별채에는 풍운파 부하들이 안팎으로 지키고 있었다.그 시각, 남서훈은 창가 옆에 서있었고, 남 기준은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주인님, 풍운파 보스가 우리를 매우 경계하여 사람을 저렇게도 많이 배치했는데, 아마 저녁에 움직이기에는 좀 무리 아닐까요?”독을 쓸 줄 아는 남서훈한테는 저 정도의 경계 인원을 물리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그녀가 마음먹기만 하면 풍운파 사람들이 마시는 생수에 독을 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남서훈이 아니란 걸 알게 되자 그들은 순식간 긴장을 많이 푼 듯했다.선두에 선 남자는 양나나를 보더니 바로 누군지 알아차렸다.“너 뒤뜰에서 도망쳐 나왔지? 뭐 그 정도 능력이면 미래 후계자가 될 자질은 있어 보이는구나. 그렇지만 함부로 도망쳐 나왔으니 벌받을 각오해.”양나나한테 말하고 난 그는 또 옆에 있는 남자들한테 명령했다.“얼른 붙잡아.”그러자 남자 두 명이 즉시 다가와 커다란 손으로 양나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실패했다. 양나나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워낙 작고 홀쭉한데 몸놀림까지 유연하여 잡힐듯하면서도 얄밉게 빠져나갔다.아까 그 우두머리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한밤중에 웬 아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이러고 있다니.남서훈도 도망쳐 나왔다는데 얼른 이 아이부터 잡고 나서 남서훈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말이다.인내심이 바닥 난 그는 얼른 곁에 있는 두 부하한테 얘기했다.“너희들도 같이 가서 붙잡아.”그렇게 되어 네 명이 남자들이 달려들어 양나나를 붙잡으려 하였다.그들은 워낙에 다 솜씨 좋은 이들이라 조그마한 아이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웬걸, 네 사람이 양나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모두가 손쉽게 잡을 거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 네 남자는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더니 일자로 바닥에 뻗어버렸다.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양나나는 그들이 멍해 있는 틈을 타 신속하게 도망쳤다.우두머리 남자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얼른 쫓아가 잡아! 저 어린놈 꼭 잡으라고!”그러자 몇 명이 양나나가 도망친 데로 향해 빨리 뒤쫓아갔다.우두머리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누워있는 그 네 남자한테로 다가갔다.모두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걸 보니 그냥 기절한 거였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이나 몸에는 다 하얀색 가루가 묻어있었다.‘가루를 안 만지기 다행이군.’만졌다간 그도 아마 지금쯤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남자는 금세 뭘 깨닫고 양나나가 도주한 방향으로 쫓아가며
용준은 그 후 바로 남서훈의 거처로 찾아왔다.남서훈을 보자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명의님, 저희 풍운파 밤 풍경이 어떻던가요? 밤중에 실컷 돌아다녔을 텐데,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났나요?”남서훈은 미간을 좁히며 차가운 눈매로 용준을 바라봤다.“무슨 뜻이죠, 그 말씀은?”그 말은, 그녀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인정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용준도 더는 의미 없는 쟁론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서늘하게 입을 열었을 뿐이다.“명의님, 어젯밤 뭐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 서로 다 알고 있지 않나요? 쓸데없는 잔머리 그만 굴리셨으면 좋겠어요. 양 사장이 풍운파 내에 있을 거라고 이미 짐작했겠죠. 내가 쓴 속임수에 명의님이 속아넘어가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이제 명의님도 별다른 수가 없을 겁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죠, 어젯밤 제가 이미 양 사장님을 다른 곳으로 보냈어요. 이제 여기에 없으니까, 명의님도 그만 시름 놓으세요. 내 허락이 없는 한, 명의님은 양 사장님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거예요.”그 말을 듣는 남서훈의 눈살이 점점 더 세게 찌푸려졌다. 찬 기운이 그녀의 몸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하나 그녀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용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제 양 사장을 보기 위해서라도 빨리 예서 몸안에 독부터 제거해야 하는 게 맞겠죠?”그는 말을 마치고 시선을 남기준 곁에 서있는 양나나한테로 떨궜다.“어젯밤 내가 뒷산에서 후계자 선발을 위해 데려온 한 아이가 도망쳤다더니, 명의님 거처에 있었네요? 이왕 내가 여기까지 온 김에, 넌 이제 나랑 같이 가자.”양나나의 앳된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아직 어린애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양나나는 한발 다가서더니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용준한테 말했다.“난 풍운파 후계자 자리에 관심 없는데요? 뒤뜰에 있는 애들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비록 나만 도망쳐 나왔지만. 난 돌아갈 생각 없어요. 무슨 훈련인지 선발인지, 힘들어 죽겠고, 사람한테 하는 짓 아닌 거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양나나도 의술과 독술에 능했다. 양나나가 따라 가면 많이 배울 수도 있고 도움도 될 것이다.그래서 남서훈이 양나나를 함께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용준이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다.마당에 들어선 후 용준은 어제처럼 밖에 서 있었다.감히 한 발짝도 더 들이지 못했고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가서 예서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예서가 깨어있을 때 그를 보게 되면 자극을 받고 발작할까 봐 그런 것이다.남서훈과 양나나가 안으로 들어갔고 예서는 남서훈을 보더니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남 선생님, 오셨어요?”“네.”남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서는 남서훈 옆에 따라 들어온 양나나를 보더니 눈빛이 번쩍이며 즉시 물었다.“남 선생님, 이 아이는 선생님 아들인가요? 눈썹이 선생님이랑 똑 닮았네요. 너무 잘생겼어요!”남서훈은 당황해하면서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화제를 돌리면서 예서에게 말했다.“이 아이의 이름은 남희예요. 남희도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그러자 예서의 눈빛이 다시 번쩍였다.“진짜요?”양나나는 다가와서 손을 뻗어 예서의 손을 잡고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으로 예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이모, 전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이모만큼 잘 치지는 못해요. 하지만 원하시면 언제든지 들려드릴 수 있어요.”그러자 예서가 답했다.“나야 좋지.”그녀는 양나나의 손을 잡고 피아노 앞으로 끌고 가서 앉았다.앙나나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후 예서는 박수를 쳤다.“정말 잘 치네.”그러고는 남서훈과 양나나의 기대에 찬 눈빛에 못 이겨 직접 한 곡 연주했다.남서훈과 양나나가 예서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고 오전 시간 동안 그들은 예서와 많이 친해졌다.떠나기 전에 남서훈이 입을 열었다.“예서 씨, 제가 먼저 예서 씨 몸 해독을 시도해 봐도 될까요?”예서는 그 말에 몹시 당황했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예쁜 그녀의 얼굴에 쓴 미소가 번졌다.“괜찮아요. 제 몸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전 해독
용준은 미리 다 준비를 마쳤다.예전에 왔던 의사들도 차례로 남서훈이 지금 머물고 있는 마당에서 지냈는데, 예서가 중독된 것을 보아낸 의사들도 몇 명 있었고 최선을 다해 치료 방법을 연구했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한 의사는 여기서 일 년 가까이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의학 실험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남서훈은 실험실로 들어가서 먼저 예서의 몸속에 있는 독소가 도대체 무엇인지 검사해 봐야 했다. 독소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그에 대응하는 해독제를 개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마샤 아라벨라는 벌써 중독된 지 사흘이 지났다.이 사흘 동안, 마샤는 매일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얼굴과 몸을 빽빽하게 덮은 고름 상처를 보고,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고, 하인들이 너무 겁에 질려하며 역겨워서 가까이 오기조차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샤는 이성을 잃고 분노하면서 물건을 부수고 하인들을 처벌했다.화가 나다 못해 히스테리까지 부렸다.“나쁜 년! 그 망할 년이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럴 수 있어? 반드시 그년을 잡아서 이 모든 걸 되찾을 거야! 뼈까지 발라버릴 거야...”그리고 욕을 실컷 하기도 전에 벌써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개미 수백 마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 몸의 모든 장기, 살과 피부가 아주 무딘 칼로 긁히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가렵다 못해 미칠 것 같았다.마샤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독이 발작할 때마다 그녀는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죽을 것처럼 아파도 정말 죽지는 않았다.마샤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두 눈으로 옆에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외쳤다.“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제발, 저를 구할 방법을 찾아주세요.”하지만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마샤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X 국에서 많은 의사들을 초대해 진찰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그럼 가서 그
여신 그룹의 막대한 자산이 뒷받침 해주지 않았다면 그룹에서 가장 오래된 향수 및 화장품 회사는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여은진은 새출발을 위해 조향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향수와 화장품을 연구하며 여신 그룹의 향수 및 화장품회사를 살리기 위한 일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다.그녀는 매일 바빴다.원승진도 점차 여요한을 데려가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중에는 매일 아침 와서 여요한을 데려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여요한을 돌보고 저녁이 되면 다시 여은진네로 돌려보냈다.그러던 어느 날.여은진은 회사에서 돌아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별장에서 나와 원승진이 살고 있는 옆 별장으로 걸어갔다.별장 대문은 열려 있었고 여은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멀리서 여요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요한의 웃음소리 덕분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하지만 여은진이 집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별장 거실에서 원승진과 원이림이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이림아, 이렇게 계속 숨기는 건 해결책이 아니야. 과거에 네가 나쁜 짓을 하고 착한 은진이에게 상처를 줬지만, 은진이는 마음이 넓어서 너한테 따지지 않고 요한이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낳았잖아. 은진이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태도를 보여야 해. 이렇게 숨어서 요한이를 몰래 돌보는 게 무슨 소용이야?”원승진은 답답한 건 딱 질색이었다. 여러 번 아들을 데리고 가서 용서를 구하고 여은진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원이림도 사실 그와 함께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은진이 화를 내고 그에게까지 손자를 볼 수 없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원승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아들놈 원이림이 숨을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혹시 여은진이 집에 오게 되면 들키지 않도록 원이림을 숨겨줘야 했다.하지만 언제 끝날까?원승진은 여은진과 원이림이 결혼하여 자신이 요한이를 돌보면서 한 가족이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매우 희망했다.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서두르지 않고
여은진은 화가 났지만 여전히 교양과 예의를 지켰다.원승진의 말이 끝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어르신, 저랑 이림 씨는 오래전부터 가능성이 없었어요. 저는 앞으로 결혼할 생각도 없고요, 그저 요한이를 잘 돌보면서 살고 싶어요.”말을 마치는 그녀는 원이림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이림 씨도 요한이 데려갈 생각하지 마요. 저는 이미 포기했어요. 다시는 요한이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가 요한이를 가지고 저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건 딱 질색이에요.”원이림은 눈살을 찌푸리고 설명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내뱉지 않고 다시 삼켰다.여은진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년 동안이나 남몰래 그를 사랑하고 따라다녔던 것처럼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얼마나 집요한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그녀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원이림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요한이를 이용해 여은진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려 했었다.여은진은 요한이를 안은 채 떠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는지 요한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말이다.원승진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다가가면서 말했다.“은진아, 요한이가 심하게 우니까 내가 먼저 안아서 달래주면 어떨까? 이제 울음이 그치면 데려가도 되잖아?”그러나 여은진이 차갑게 거절했다.“괜찮아요.”아들이 우는 것을 보자 그녀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요한이를 안고 떠났다.원승진은 돌아서서 원이림을 세게 때렸다.“쓸모없는 놈, 너만 아니었으면 요한이 엄마가 요한이를 데려가지 않았어. 그렇게 슬프게 울지도 않았을 거고. 아이고, 마음이 아프네.”원이림도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 요한이가 큰소리로 서글프게 우는 것도 걱정되었지만, 여은진이 냉담한 태도로 결연하게 떠나는 것을 보자 심장이 부서지는 듯 아팠다.하지만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었고 여은진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그녀가 냉담한 태도로 원이림을 대하고 그를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