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 여은진과 아이는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원이림을 정말로 잊은 듯했고, 자신만의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원이림 역시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더 이상 그녀 앞에 나타나 여은진의 행복한 생활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그 때문에 당사자가 아닌 윤성아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남 자식의 첫돌잔치에 참석한 손님으로서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축복을 전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윤성아와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첫 돌잔치가 한창인 그때, 거의 모든 사람이 여은진과 아이를 둘러싸고 그들에게 축복을 전하고 있을 무렵.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연회장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고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호원들이 각각 연회장 대문 양쪽으로 섰다.희주 아가씨가 등장하자! 그녀의 뒤로 십여 명의 경호원들도 그녀를 따라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여석진을 보며 말했다. “나 임신했어! 네 아이야!”여석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빛이 무섭도록 싸늘해졌다. 그는 희주 아가씨에게로 몇 걸음 걸어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은 내 아들의 첫 돌잔치인 만큼 최대한 소란 피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희주 아가씨가 대답했다.“그렇지 않으면?”그녀는 여석진에게 잡혀있던 손목을 뿌리치며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내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도 가만두지 않겠다? 여석진, 내 배 속에 있는 아이야말로 진정한 네 핏줄이야! 오히려 첫 돌잔치의 주인공인 이 아이는 남의 자식이잖아! 이 아이는 여은진과 다른 남자의 아이잖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주 아가씨의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여석진 손아귀의 힘은 엄청났다. 희주 아가씨의 뺨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술에서는 피가 흐리고
여석진은 확실히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만큼은 아빠나 엄마가 곁에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배희주가 진짜로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지우게 할 생각이었다!여은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렇게 되면 불공평해! 희주 아가씨와 그 아이에게 너무 불공평해! 그리고 비록 희주 아가씨가 교만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너를 좋아하잖아. 알고 보면 사실 아주 순진한 사람이야!”“내가 보기에 그녀는 본성은 선량하지만 지나치게 귀하게 큰 소녀일 뿐이야.”사실 여은진과 여석진은 진정한 의미의 결혼은 진행하지 않았다. 둘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식 상황을 만든 것뿐이었다. 여석진이 청혼하여 여은진과 간단한 결혼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실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술을 먹고 희주 씨에게 말려들었어요.”커다란 키의 여석진이 무릎을 꿇었다.그는 여은진의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날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요? 내가 무조건 배희주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할게요!”“난 그 여자가 싫어요. 누나, 난 누나면 돼요. 누나만 원한다고요!”“우리 혼인신고 하러 가요. 오늘, 지금 당장 가요! 그리고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알리자고요! 네?”여은진은 한숨을 내쉬며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석진아,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애초에 그녀가 여석진의 청혼을 받아들여 간단하게 결혼식을 거행한 이유는 원이림을 잊을만하면 귀국하고 나서 가끔 그녀의 생활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원이림은 비록 그녀에게 매달리면서 귀찮게 굴지 않았지만 묵묵히 많은 일을 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여은진의 회사를 처분해 여씨 가문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비록 아프고 힘든 과거였지만 여은진 자신도 아직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한때는 오로지 자신감 하나로 맹목적으로 사랑에 빠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이가 갈라면서 그 자리에는 천천히 실망이 자리매김했다.그
어르신께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성아의 잘못이 아니야!”어르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남녀 사이는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야! 성아는 처음부터 이림이를 좋아하지 않았어. 그건 자기가 더 잘알 거야. 단지...”“흠...”원승진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그도 원이림이 이렇게 된 이유가 윤성아와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윤성아가 강주환과 함께 있고 나서 원이림이 귀국했고! 그 후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생활 습관이 달라지고 건강에 소홀하게 되었다.마치 실연당한 사람 같았다!어르신은 원이림이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휴...”이런 걱정에 또다시 한숨이 절로 나왔다.원승진은 속상한 마음에 아들을 놓아줄 수가 없었다! 매듭이 엉켰으니,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원승진은 휴대폰을 들어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아야, 나 원승진이야.”윤성아는 원승진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윤성아가 되묻기도 전에 원승진은 이어서 말했다.“혹시 시간 괜찮으면 F 국에 한 번 오지 않겠니?”“이림이가 많이 아프단다. 위암이야...”원승진은 뒤로 갈수록 목이 막혀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윤성아는 지금 여은진 아들의 돌잔치에 참석 중이었다! 이때까지는 배희주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여서 윤성아는 전화가 울리자 곧장 밖으로 나가 받았다.그녀는 최근 반년 동안 원이림의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슬픔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면서 늘 취한 상태로 술집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병원에도 여러 번 실려 갔었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악화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윤성아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어르신, 뭐라고요? 이림 씨가...”원승진의 목소리가 더욱 힘없이 들려왔다.“위암이야! 지금은 혼수상태에 빠져있고 응급실에서 구급 중이야! 난 네가 지안이를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이림이를 말릴 수 있지 않을까 싶
그녀는 지금 여은진이 원승진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윤성아는 원승진에게 말했다. “제가 은진 씨에게 전화는 걸어볼게요. 은진 씨가 아이를 데리고 어르신을 만나러 올 의향이 있는지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원승진은 대답했다. “그래.”그의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말대로 이림이가 그 여인에게 잘못한 게 맞아. 크게 상처를 줬지! 그 여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도 당연한 거야. 그러나... 만약 가능하다면, 나도 그 여인과 아이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내가 이림이를 제대로 잘 가르치지 못한 탓에, 그 여인에게 큰 상처를 줬어. 그 여인과 아이에게 보상할 수만 있다면 내가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고 있는 곳은 원이림의 병실이었다. 그 시각, 원이림은 혼수상태였다! 비록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숨이 간들간들한 채로 병상에 누워있었다. 언제 깨어날지도 미정이었다.윤성아는 잘생긴 얼굴에 뼈가 돌출될 정도로 무척이나 수척해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원이림을 보며 그녀의 심장도 무척 아파왔다. 그는 마치 언제든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흘렀다.눈물이 흘러내리던 순간, 그녀는 뒤돌아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연로한 노인이 자신의 눈물로 인해 더욱 힘들어할까 봐 염려되었다. 윤성아는 병실 밖을 나가서 안전 출구 쪽으로 걸어가 그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녀의 인생에 만약 원이림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윤성아는 없었을 것이다!윤성아는 원이림과의 만남이 너무나 감사했다. 눈물이 멈추자, 윤성아는 여은진의 전화번호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자 윤성아는 얼른 물었다.“은진 씨, 전화 받기 괜찮아요?”여석진은 곁에 없었고 여은진은 방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윤성아는 그제야 말을 이어갔다. “은
그녀는 여은진에게 말했다. “그때는 나도 마음이 이미 식어버린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번 생은 두 번 다시는 강주환과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내 마음은 결국 강주환이더라고요. 여석진 씨가 은진 씨에게 무척 잘해주고 있죠! 하지만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이 아무리 잘해주고, 많은 노력을 한다 해도 당신의 마음에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을까요?”여은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담담한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입꼬리를 올린 채 자신을 비웃는듯한 쓴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그녀는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도 이림 씨의 마음에 들어가기가 어렵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도 이제는 포기했어요.”윤성아는 말이 없었다. “...”예전의 원이림은 확실히 윤성아를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했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가며 그녀를 위해 그의 전부를 걸었다! 심지어 그녀의 아이까지도 서슴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아이처럼 예뻐해 주었다. 그러나 이미 다 지난 얘기였다!윤성아는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은진 씨, 지금의 원이림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에요! 이전에 이림씨가 저와 지안이에게 잘해준 건 맞아요! 그가 나를 좋아했기 때문이죠. 4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줬어요. 심지어 내 아이에게도 무척 잘해줬고요.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마음은 항상 자제해왔어요. 이림 씨는 저를 좋아했지만, 사랑하는 건 아니었어요. 저에게 이림 씨는 늘 자상한 오빠였고, 가족이었어요! 그러나 은진 씨에게는 달라요!”윤성아는 여은진에게 말했다. “주환 씨가 말하길, 만약 한 남자가 정말로 한 여인을 사랑한다면,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차지하려고 한대요! 이 세상에 진정한 플라토닉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대요.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자고 싶어 한대요.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남자는 없어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거죠! 주환 씨가 말하길, 좋아하면 가지려고 하기 때문
“사실 진작에 의심해 봤어야 해요. 은진 씨가 금방 당신 애를 유산했는데 또 임신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되면 그때 유산된 게 아니라 배 속의 아이를 낳은 거라고요.”“그 아이가 바로 여요한, 바로 이림 씨 친자식이에요!”원이림은 웃음이 나왔다.공허한 눈동자가 잠시 반짝거렸다가 금세 다시 차갑게 변했다.‘정말 내 아이였다니!’다행이다. 그가 직접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식을 죽이지 않았으니.하지만 그가 여은진에게 입힌 상처는 돌이킬 수 없었다. 비록 아이는 살아남았지만 원이림은 자신의 잔혹함과 그녀가 피를 흘리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했다...여은진은 분명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더구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면목도 없었다.현재 그녀는 이미 여석진과 결혼해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그런데 만약 은진 씨가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면요?”윤성아가 말했다.“이림 씨, 혹시 희주 아가씨라고 아시죠? 어제 여석진 씨네 아들 돌잔치에 희주 아가씨가 들이닥쳤어요.”“희주 아가씨가 여석진의 아이를 임신했대요!”원이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공허했던 눈동자에 순간 살기가 가득했다.“젠장! 여석진 그 자식이 설마 바람났어? 감히?”“맞아요.”윤성아가 답했다.“은진 씨도 참 박복해요. 꼬박 10년을 당신만 좋아하면서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을 조용하고 안일하게 살고 싶었지만 결과는요?”“여석진이 은진 씨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켰어요.”“더구나 배씨 가문에서 분명 은진 씨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윤성아가 원이림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아직도 치료받지 않고 이대로 죽고 싶나요?”“은진 씨는 당신을 10년이나 사랑했어요. 당신은 닥치는 대로 무조건 치료받은 뒤에 은진 씨랑 아이를 곁에 두고 보살펴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이미 은진 씨한테 많이 빚진 상태면서 사과 한마디 없이 그녀가 순순히 용서해 주기를 바랐어요? 온 힘을 다 바쳐 당신을 사랑한 사람이고 당신의 아이까
여석진이 여은진의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전 누나만 원해요!”“은진 누나, 저 버리지 마요. 네?”여석진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글썽한 두 눈으로 여은진에게 빌었다.“제가 이렇게 빌게요. 저랑 결혼하겠다고 해줘요. 평생 제 애인이 되어줘요. 네?”“배희주 씨의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제가 꼭 해결할 테니까.”“저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요.”“그때의 일은 전혀 예상치 못했고 저랑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하지만 여은진은 그가 쥐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석진아, 나도 노력해 봤는데 더 이상 내 자신을 속이기가 싫어.”“미안해, 정말 못하겠어.”“더구나 배희주 씨는 정말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해!”“나는 네가 희주 씨를 소중히 여기고 그 여자와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여석진이 고개를 저었다.남자가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자 드디어 감정 통제를 잃었다. 그리고 빨개진 두 눈으로 미친 사람마냥 여은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누나, 내가 여태껏 누나를 너무 잘 대해줬지?”“내가 너무 아껴줘서 누나를 갖지 못했나 봐, 맞지?”“그래서 누나가 아직 그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서 잊지 못하는 것 같아!”말을 마치고 여석진은 갑자기 여은진을 덮치다시피 꽉 안았다.깜짝 놀란 여은진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 여석진에게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너 뭐 하는 거야?”여석진은 그저 말없이 그녀를 안고 위층 침실로 향했다.그리고 힘껏 그녀를 침대에 던졌다. 마치 오랫동안 갇혔던 야수마냥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여은진에게 말했다.“내가 취했던 그날 밤에 원래 누나를 내 여자로 만들었어야 했어.”“그때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됐다고.”그리고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는 여은진의 몸부림을 무시하고 그녀 위로 덮쳤다.“찌익!”여은진이 입고 있던 외투가 찢겼다.여석진은 그녀의 턱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뒤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그는 소리높이 노래를 불렀다.그리고 다시 하객들을 바라보았다.“예식장의 다채로운 색깔과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노래를 부르자. 친척과 친구들을 위해 잔을 들자. 아름다운 연인과 배우자를 사랑하라! 오늘과 같은 좋은 날에 기쁨이 넘치기를!”흥겨운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결혼식 절차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강주환은 미리 준비한 방으로 안내되어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레드와 블랙이 어우러진 빈티지한 신랑 복장을 하고 있었다.“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나엽이 큰 소리로 소개했다.“다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신랑·신부 입장!”대문이 열렸다.윤성아는 유리 왕관을 쓰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보석으로 만든 왕관은 고급스럽고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안에는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이미 반년 전에 강주환이 장인을 찾아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그녀의 하얀 드레스에 수놓아진 금실 무늬도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전에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들도록 부탁했다.드레스도 드레스지만 신부 자체가 너무 눈부셨다.윤성아의 용안은 마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 고혹적이고 매력적이었다.반듯하게 넘긴 머리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왕관이 유난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얼굴에 내려진 너울과 유리알 같은 액세서리들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오똑한 코, 붉은 입술, 반듯한 얼굴!요즘 시기에 이런 미모의 여자는 찾아보기 보기 힘들 정도로 윤성아는 태생적으로 이뻤다.그런 그녀를 강주환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영혼까지 모두 뺏길 것 같았다.윤성아도 시선이 그 남자를 향했다.핏된 양복을 입은 강주환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차가워 보여서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하지만 지금 아래위 세트로 입은 정장은 그를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게 했다. 이런 모습은 그녀도 여태껏 본 적이 없던 터라 눈을 떼지 못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사랑스레 빤히 쳐다보았다.그리고 손을 잡고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 별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