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강하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무서워하지 마. 너랑 누나 아무 일도 없을 거야.”“삼촌과 약속 하나 하자.”“너랑 누나 다 안전해지면 누나에게 내가 많이 미안했다고 전해줘.”“용서…”“제발 용서해 달라고 전해줘…”양신우는 마지막 힘을 다해 이 말을 내뱉고는 생기 없는 얼굴로 손을 축 늘어트렸다. 그러더니 영원히 눈을 감았다.“삼촌!”양신우는 죽었지만 죽어서도 강하성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강하성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신명훈의 부하가 양신우의 손을 뜯어냈다. 그러더니 강하성을 데려가 신명훈에게 건네주었다.윤정월도 양신우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피로 범벅이된 채 쓰러져 숨이 끊어진 양신우를 끌어안았다.“아들!”“내 아들아!”윤정월은 양신우의 시체를 안고 통곡했다.“왜 그렇게 미련해? 내가 말했잖아. 윤성아는 누나가 아니라고!”“왜?”“이렇게 젊은 나이에 왜 이렇게 죽어버린 거야.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비통함에 통곡하면서도 윤정월은 원망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양신우를 죽인 원수를 한에 서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그쪽으로 걸어가 단번에 끌어냈다.“네가 내 아들 죽인 거야?”“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내 아들 목숨 물어내!”“그만해!”신명훈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더니 음침한 눈빛으로 윤정월을 보며 말했다.“당신 아들의 죽음은 사고야. 말만 잘 들었어도 죽진 않았을 거야.”“…”윤정월은 아들을 잃었다. 어릴 때부터 끔찍이 아끼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신명훈 앞이라 그녀도 길길이 날뛰지는 못했다. 하여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윤성아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이게 다 그 천한 것 때문이라고 윤정월은 생각했다. 그 천한 것만 아니었어도 소중한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천한 것을 죽여달라고 빌 만큼 괴롭히다가 죽여버리겠다고 윤정월은 다짐했다.“대표님.”신명훈의 부하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보고했다.“차 열몇 대가 우리
한 시간이 좀 지나 강주환이 운성시에 도착했고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그때도 윤성아는 응급실에서 나오지 못했다.강주환은 응급실 밖에서 기다렸다. 중간에 신명훈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강주환이 살기를 내뿜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신명훈에게 말했다.“내 여자 아직도 응급실에 나오지 못했어요.”“신 사장님은 일단 조금 기다려요.”“물론 제 아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아니면…”강주환은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까만 눈동자로 진하상에게 물었다.“찾았어?”“아직입니다.”진하상이 대답했다.강하성이 납치된 걸 안 다음부터 강주환은 바로 운성시에 있는 강씨 집안의 모든 세력을 동원했다.비록 강주환은 지금 병원을 지키고 있지만 부하의 세력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안 씨 집안 사람들과 같이 찾고 있었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하지만 강씨 가문과 안씨 가문이 손을 잡은 이상 신명훈이 강하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짧은 시간 내에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한 시간쯤 더 지나 응급실 문이 열렸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에서 나왔다.강주환이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상태는 어떤가요?”의사가 멈칫했다. 강주환의 기운에 놀란 듯 보였다.“환자분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여러 번 세게 가격당하다 보니 머리에 출혈이 좀 있고 팔도 부러지고 갈비뼈도 몇 개 부러졌습니다.”“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내출혈이 동반되어 있습니다.”이 모든 걸 듣고 있는 강주환이 점점 더 무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윤성아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안효연과 나엽이 마음이 아파 발을 동동 굴렀다.“젠장.”나엽이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안효주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쓰레기야.”“8년 전에도 언니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야. 얼마 전에는 아버님까지 죽이려고 했고.”“지금은 감히 하성이까지 납치하다니.”“하성이가 자기…”나엽과 안효연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강하
신명훈은 충분히 은밀하다는 이유로 몇 년 전 이 집을 사들였다. 신명훈은 이 집에서 많은 부당한 짓거리를 했다.안효주는 강하성을 데리고 지금 이 별장에 숨어있다. 밖에는 몇십 명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강주환과 안 씨 집안의 세력이 이곳을 찾아냈고 강주환이 이곳에 도착해 손쉽게 별장을 손에 넣었다.“쾅!”하는 소리와 함께 별장 대문이 열렸다.올 블랙 차림의 강주환이 걸어들어왔다. 그의 뒤로 김시우와 열댓 명의 경호원이 따랐다.안효주가 바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안효주를 따라 온 신명훈의 부하들과 거실에 같이 남아있던 남자 몇 명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그들은 모두 깐깐하게 선발된 싸움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신명훈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남겨놓은 사람들이었다.“아빠!”강하성은 걸어들어온 남자를 보고 바로 강주환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안효주가 한발 빠르게 강하성을 잡아 자기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주환 씨, 여긴 어쩐 일로?”“허!”강주환이 차갑게 웃었다. 그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효주를 보는 까만 눈동자는 살기가 가득했다.“하성이 이리 줘.”“…”안효주가 고분고분 줄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빠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강주환의 살기가 더 짙어졌다.“주환 씨, 더는 다가오지 마요.”강주환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안효주는 신명훈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바로 눈치챘다.하여 안효주는 강하성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하성이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성이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에요.”“내 친아들이라고요!”안효주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강주환을 쳐다봤다.“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주환 씨, 난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과 결혼해서 세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어요.”강주환이 차갑게 웃으며 계속 안효주 쪽으로 걸어갔다.“다가오지 마요!”안효주가 계속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매
김시우는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안효주에게 걸어가 그녀의 복부를 세차게 걷어찼다.“우두둑.”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안효주가 극심한 고통에 억지로 정신을 차렸고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이제 시작이었다.김시우는 안효주를 바닥에서 들어 올려 무쇠와도 같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안효주를 샌드백 삼아 쥐어팼다.“악!”안효주의 비명이 점점 높아졌다.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눈에서도 피가 나기 시작했다.“그만 때려요.”“제발, 그만 좀 때려요.”……그녀를 때리지만 않는다면 무릎을 꿇으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안효주가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김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으로 계속 내리쳤다. 그러더니 샌드백을 차듯 한발 두발 안효주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다시 안효주를 주워와서 다시 걷어차기를 반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효주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머리는 돼지머리처럼 부어올랐고 성형을 한 얼굴도 이리저리 변형되고 뒤틀려 보기가 너무 흉측했다. 뼈도 얼마나 부러지고 부서졌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안효주는 그렇게 걸레짝처럼 바닥에 버려졌다.숨이 간들간들했고 넘어가기 직전이었다.김시우는 그제야 행동을 멈추었다. 그는 안효주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한편.진하상은 이미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경찰에 연락해 신명훈을 연행했다.강주환의 사람들은 신명훈의 지시하에 강하성을 납치한 악한 세력을 일망타진해 경찰서로 연행했다.안효주와 신명훈은 납치와 공갈 및 상해죄로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강주환은 신명훈이 장기적으로 탈세와 밀수를 감행하고 사채를 놓아 사람을 해친 많은 증거를 제공했다.……병실.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진 윤성아는 원래 이튿날 깨어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날 밤 잠에서 깼다.눈을 뜬 윤성아는 침대 옆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당신…”“하성이는요? 그리고 신우는요?”윤성아는 까만 눈동자로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주환 씨, 하성이랑 신우 괜찮은 거죠? 무
강하성이 납치된 사건은 전체 성운시를 뒤흔들었다.권모술수 신명훈은 이번에도 납치 공갈 사건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건이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자신은 그저 안효주를 수양딸로 삼았기에 딸을 위해 입장을 따지기 위해서라고 했다.안효주가 강하성을 납치하고 강주환을 협박한 것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신명훈은 잠시 풀려났다.하지만 이때 강주환이 제공한 탈세 증거로 신명훈은 국세청의 조사를 받았고 기소되어 20억을 추징당했다.밀수와 사채를 놓아 사람을 해친 일은 관련 부서의 조사를 받았고 수많은 소송에 휘말렸다.강주환의 복수도 물밀듯 밀려들었다. 호진 그룹은 신명훈이 운성시에서 일궈놓은 모든 산업을 인수하고 무너트렸다.신명훈은 손실이 막대했다.운성시에 신명훈이 발붙일 곳이 거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이 모든 걸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안효주는 납치 사건의 주범임이 틀림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눈물로 경찰 측에 자신이 강하성의 친모라고 호소했다. 그저 아들이 보고 싶어서 데려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은 정상 참작이 되었다.윤성아를 심하게 다치게 한 사건은 안효주가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고 호소했다.신명훈은 안효주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줬다.결국 법원의 심판을 거쳐 안효주는 징역을 살게 되었지만, 사형은 아니었다. 기소를 당하더라도 기껏해서 몇 년간 감옥살이하게 될 뿐이었다.온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숨만 겨우 붙어있는 안효주도 치료하러 병원에 입원했다.경찰 측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침대에 누워있는 안효주는 음침하게 웃었다.그녀는 죽을 리 없었다. 신명훈이 분명히 자신을 구해 줄 것이고 감옥살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윤성아 그 천한 것은 절대 이대로 넘어가기 싫었다. 언젠간 윤성아 그 천한 것을 직접 죽여버리리라 다짐했다.윤성아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안효주가 그렇게 쉽게 몇 년만 감옥에서 살다가 나오게 두고 볼 수가 없었다.윤성아는 안효주가 몇 년 전 양지강
윤정월은 죽일 듯이 윤성아를 노려보며 말했다.“양지강은 내 남편이야. 차에 치여 죽은 거 와이프인 나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뭔데 계속 추궁해?”“전에 내가 말했잖아. 그 일은 그만하기로.”“그리고 신우는…”양신우의 죽음을 말하자 윤정월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눈동자는 윤성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신우가 죽은 것도, 다 천한 네년 때문이야!”“물어내! 내 아들 목숨 물어내!”윤정월이 명령식으로 윤성아에게 말했다.“효주까지 해치게 두진 않을 거야. 사람을 시켜서 경찰서에서 증거 빼내게 할 거야!”“그건 불가능하죠.”윤성아가 말했다. 그녀도 안효주가 자신이 했던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윤정월이 극도로 분노하며 말했다.“네가 감히 내 말을 안 들어?”윤정월은 눈동자가 빨개졌고 감정을 억누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넌 아빠도 모자라서 네 친동생까지 죽였어.”“지금은 이 엄마도 죽이게?”윤정월은 이미 이유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 그래서 소리내 말했다.“안효주는 이미 나를 엄마로 인정했고 늙어서 효주가 효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어.”“근데 네가 감옥으로 보내면 난 어떡해?”윤성아의 까만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윤정월을 보며 말했다.“나한테는 참 각박하네요.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나를 배신했고, 신우더러 하성이를 데려가라고 꼬드겼어요.”“신우를 죽인 게 당신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나 아니야!”윤정월이 험악한 눈빛으로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너야! 재수 없는 네년이야. 천한 것, 네가 우리 신우를 죽인 거야!”윤정월이 저주를 퍼부으며 욕했다. 어찌 됐든 윤정월은 윤성아가 안효주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을 요구했다.“허허.”윤성아가 차갑게 웃었다. 그러더니 윤정월을 보며 말했다.“왜 내가 안효주를 도와야 하죠? 이미 당신을 엄마라고 생각한다면서요. 허허. 사실 엄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엄마 아니에요?”
지금 윤성아의 호소를 들으며 양신우를 죽인 게 윤정월 자신이라고 하자 윤정월은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윤정월은 눈빛이 매서웠고 큰 소리로 말했다.“네 말이 맞아. 효주 내 친딸 맞아. 20년 전 내가 내 손으로 너랑 바꿨지.”“재수탱이.”“네가 명이 이렇게 질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너를 목 졸라 죽이는 건데.”윤정월이 악을 쓰며 아우성 쳤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원래 너를 버리려고 했는데 네가 우는 바람에 내가 마음이 약해졌어.”“내 딸이 너의 삶을 빼앗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 차라리 너를 키우자는 생각을 한 거야.”윤정월은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선심을 쓰는 게 아니었어.”윤성아가 놀랐다. 하지만 너무 의외는 아니었다.안효주가 윤정월의 친딸임을 안 그날부터 강주환과 윤성아는 이미 윤성아가 진짜 안씨 집안 둘째 아가씨임을 눈치챘고 어릴 때 안효주와 신분이 바뀐 게 아닌지 의심했다.하지만 이 모든 게 진짜일 줄이야.윤성아는 까만 눈동자로 미친 듯이 날뛰는 윤정월을 쳐다봤다.“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훔쳐 간 게 당신이었군요.”“당신이 내가 태어나자마자 안효주랑 신분을 바꿔치기 한 거네요.”윤성아가 순간 울음을 터트렸다.“나는 혹시나 잘못 안은 게 아닌가 이 모든 게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나와 안효주 다 당신의 친딸은 아닐지 생각했다고요!”“근데 사실 그런 거였다니.”윤성아가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비참하게 산 건 누군가의 음모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원래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윤정월이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너처럼 명이 질긴 재수탱이가 내 딸일 리가 없잖아?”“허허.”“너 때문에 내 생활이 무너졌어.”윤정월은 이 모든 걸 호소하며 말했다.“너 같은 천하고 재수 없는 년 때문에, 너라는 숨겨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아?”“어렵게 양지강을 만나 좀 편해지나 했더니, 또 재수없는 네년 때문에 양지강은 도박이나 하고.”“너 때문에 양지강도 결국 죽은 거야.”“지
안진강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그는 황송했고 최대한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성아를 쳐다봤다.“내 새끼,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거 용서해 줄 수 있겠니?”“네가 원망해야 할 사람은 아빠야.”“엄마가 너를 낳자마자 내가 데려갔어. 지금까지 네 엄마는 수백 번 효주가 우리 딸이 아닌 것 같다고 의심했어.”“네 엄마는 좋은 엄마야.”“엄마는 몇 년째 몸이 안 좋아. 엄마 원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니?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 엄마만큼은 인정해 줘.”윤성아는 부드럽기 그지없는, 눈빛에 자애로움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는 안진강과 그와 똑같이 이런 자신을 가슴 아파하며 자애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연우를 가만히 쳐다봤다.윤성아가 그들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전에 안효연의 요구로 윤성아는 안효연을 가장해 안 씨 집안에 갔을 때 안진강과 서연우를 만난 적이 있었다.그때도 그들은 자신을 매우 반겨주었고 아껴주었다.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부터 윤성아는 그들에게서 무언의 친밀감을 느꼈다. 심지어 안효연처럼 행운스럽게 이런 자애로운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진짜 그들이 자기의 부모님일 줄은 몰랐다.“내 새끼, 정말 효연이와 똑 닮았구나. 만약 너를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난 네가 내 딸인 걸 단번에 알아봤을 거야.”서연우는 끝내 손을 내밀어 윤성아의 눈물을 닦아줬다.그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자애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이고, 내 새끼, 이제 불행한 날은 다 지나갔어.”“이제부터는 아빠 엄마가 너를 지켜줄 거야. 그 누구도 괴롭히지 못하게 꼭 지켜줄 거야.”이런 분위기 속에서 안효연도 울음을 터트렸다.“엄마, 아빠, 사실은 전에 성아 이미 만난 적 있어요.”안효연이 말을 이어갔다.“전에 한번, 나엽이랑 나갔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성아더러 저인 척해달라고 했었어요…”안효연은 침대에 누워 있는 윤성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입꼬리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성아야,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