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의 설명에도 윤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괜찮은 거 맞죠?”“네. 이제 어지러운 건 많이 나아졌어요. 저 혼자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고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윤슬도 자연스레 그녀의 팔을 놓아주었다.“고맙습니다.”고유정 또한 윤슬의 어깨에 감았던 팔을 스르륵 풀었다.“악!”그런데 이때 윤슬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던 고유정의 눈이 커다래졌다. 고유정의 반지에 윤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끼인 채 떨어나왔던 것이다.깜짝 놀란 듯한
그런데 오늘 딸이 먼저 다가와주니 그 동안 들인 노력이 성과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속 한켠이 따뜻해졌다.“갑자기 이러는 거 아니에요. 사실... 가족들이랑 다시 만났을 때 반갑고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놀라운 마음이 더 컸어요. 이렇게 촌스러운 제가 재벌 2세였다는 게 믿겨지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유나도 절... 싫어하는 눈치고. 그래서 왠지 더 주눅이 들어서... 엄마도 절 그렇게 생각할까 봐 차마 다가가지 못한 거였어요.”채연희의 어깨에 기댄 고유정의 말에 채연희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럴 리가. 딸 싫어하는
“이렇게 빨리?”“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요. 별로 힘 안 들이고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윤슬이 끄덕이고 수화기 저편의 부시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도와주는 사람이라면... 아마 가짜 고유정을 말하는 거겠지.가짜 고유정은 윤슬과 성준영이 고씨 일가에 심은 스파이, 지금 고유나는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윤슬이 직접 고도식의 집으로 쳐들어가지 않은 이상 녹취 파일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가짜 고유정뿐이었다.“그래. 일단 먼저 경찰서로 가. 난 그 사건에 참여한 두 사람 전부 경찰서로 보낼 테니까.
장비서가 병실을 나가고 부시혁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윤슬에게 전화를 걸면 좋을까 문자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는 결국 문자를 선택했다.“장 비서가 그 두 사람 경찰서로 연행하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봐.”한편 경찰서 복도 의자에 앉아있던 윤슬은 핸드백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그리고 문자 내용을 확인한 윤슬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네, 고마워요!”“아니야. 그리고 그 두 사람... 경찰에 보내기 전에 내가 좀 손 봐줬어.”손 봐줬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뭘 어떻게 했는데요.”“도
장 비서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윤슬이 취조실 문을 두드렸다.아직 구속 영장이 내려지지 않은 탓에 윤슬은 신고자로서 용의자를 만날 자격이 있었다.취조실에 들어간 윤슬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오전까지 멀쩡하던 남자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상태. 두 다리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고 휠체어에 탄 모습이었다. 호텔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도 그 꼴이 처참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팔 모두 깁스를 한 상태였으니까.한 사람은 두 다리, 다른 한 사람은 두 팔이 부러졌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겠지.게다가 오전까지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숨겨야 할까...고유정이 입술을 깨물었다.그녀가 윤슬의 신분을 눈치챘던 건 우연히 그녀 팔목에 있는 붉은 반점을 발견해서였다. 그래. 그 붉은 반점만 없으면 윤슬이 진짜 고유정이라고 누가 의심하겠어?한참을 고민하던 고유정은 뭔가 다짐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이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고유정은 심호흡을 하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억눌렀다.“여보세요? 엄마.”“유정아, 너 어디야. 얼른 집으로 와봐!”수화기 저편에서 채연희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유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엄마?
“그렇군요. 그럼 아빠한테는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요.”사실 고유정은 저번 대화를 엿들은 덕에 고도식이 나서지 않을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 당당하게 아빠한테 알리는 게 좋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지... 아빠가 없다면 엄마가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야.“유정아...”채연희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고유정이 말을 가로챘다.“엄마, 일단 진정하세요. 지금 집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얼굴 보고 얘기해요. 차안에서 통화하려니까 어지럽네요.”“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몸이 안 좋다는 고유정의 말에 채연희는 별말없
“뭐? 고유나가? 징역을?”윤슬의 말에 육재원은 목걸이 따위는 바로 잊어버린 듯 언성을 높였다.몇백억짜리 목걸이보다 고유나가 벌을 받는 게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고유나 그 여자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잔뜩 흥분한 육재원과 달리 윤슬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예전에 했던 일이 밝혀진 거야. 네 생일 파티가 있었던 날, 고유나가 호텔 직원을 시켜서 내 술에 약을 탔어.”“헐! 그런 일이 있었다고?”순간 육재원의 얼굴이 굳고 구두굽으로 바닥을 콱 내리찍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 다시 떠오른 듯 육재원의 표정이 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