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혁이 정말 다른 인력으로 그의 자리를 대체하고 다른 기업에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 떠날 수 있을 리가.그리고 애초에 회사를 나갈 생각도 없었다고!“윤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비록 주호준도 끔찍했지만 부시혁의 사람들이 천강그룹에 들어오는 건 더 싫었다.부시혁에게 또 신세를 지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주 대표님은 참 농담이 심하시다니까요.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하시죠.”“그래요.”부시혁이 실망스러운 듯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주 대표님이...”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윤슬이 대답했다.“주 대표님도 동의하셨어요.”“정말요?”“네.”그제야 박희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나도 관련 부서쪽에 연락할게. 박 비서가 도착하면 바로 절차 밟을 수 있게.”부시혁 역시 바로 휴대폰을 꺼내더니 통화를 위해 발코니로 향했다.휴, 이렇게 또 부시혁한테 신세를 지네...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부시혁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잔뜩 굳어있었다.심상치 않은 그의 모습에 윤슬의 가슴 또한 철렁 내려앉았다.“왜요?
두 사람의 등장에 기자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윤슬, 부시혁을 향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하지만 30여 명의 경호원들의 탄탄한 방어막 덕분에 기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뭐야? 벽에 부딪히는 것 같잖아.결국 방어막을 뚫는 걸 포기한 기자들은 먼 거리서라도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윤슬 씨, 정말 고유나 씨의 성폭행을 사주하신 겁니까?”“한 말씀 좀 해주세요, 윤슬 씨!”기자들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윤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기자들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발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윤슬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때, 무슨 상황인지 미처 살펴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부시혁이 윤슬을 끌어안아 몸 전체를 홱 돌려버린 것이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유리가 꺼지는 소리와 함께 처음 들어보는 츠즈즉 소리가 윤슬의 귀를 자극했다.“윽...”부시혁의 신음소리에 윤슬이 고개를 홱 돌려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요?”갑자기 낯빛이 창백해져서는 식은 땀을 흘리던 부시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슬을 놓아준 뒤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부여잡았다.떨리는 부시혁의 오른손을 바라본
진료소, 의사가 부시혁의 손등에 생긴 상처를 처리하고 있다.옆에 서 있는 윤슬이 두 주먹을 꽉 쥔 채 물었다.“선생님, 손 괜찮을까요?”손은 여러 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부위, 혹시나 손 신경이 파괴되어 앞으로 손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입은 상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잔뜩 찌푸린 미간, 불안감으로 요동치는 눈동자...윤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부시혁이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방금 전부
“응.”“부시혁이 왜 너랑 같이 있었는데?”육재원이 미간을 찌푸리고 윤슬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말하자면 길어. 어쨌든 결론만 말하면 부시혁이 날 구한 건 사실이야. 부시혁이 아니었으면 난 지금 시체실이나 응급실 중 한 곳에 누워있겠지.”“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아, 그리고 아까 말은 취소. 부시혁이 슈퍼 히어로라니 말도 안 돼. 그리고 부시혁 그 자식이 너한테 상처준 게 얼만데. 이 일로 그 자식 마음만 편해지게 생겼네.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그렇게 말하지 마. 그건 그거고
윤슬의 말에 부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윤슬을 구한 건 온전히 그의 의지였고 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이 사실을 빌미로 윤슬과의 재결합을 추진한다거나 사귄다거나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경고에 가까운 윤슬의 말에 부시혁은 마음이 씁쓸하면서도 왠지 화가 치밀었다.내가 그렇게 치졸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이런 일로 네 감정을 강요할 만큼?“그건 천천히 얘기해.”갑자기 차가워진 부시혁의 표정에 윤슬이 고개를 갸웃했다.또 왜 갑자기 다운된 거래? 하여간 변덕은.영수증에 사인을 마친 윤슬이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저 의연한 태도... 누가 봐도 범인은 아니었다.하지만 연락을 대포폰으로 했을 수도 있고 다른 차명계좌로 범인들에게 입금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들도 수두룩하니 윤슬을 혐의선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하지만 일단 지금은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형사도 오늘은 윤슬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에 가서 고유나한테 직접 사건 현장 상황에 대해 물어야겠어.“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죠.”자리에서 일어선 형사가 윤슬을 향해 손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