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진은 억지로 감정을 참으면서도 겉으로 예의를 유지했다.그러나 그가 아무리 화제를 돌려도 기자들은 끈질기게 캐물었고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서 이야기를 꾸며내기 시작했다.나석진이 박철을 보자 박철은 그에게 눈짓을 하여 잠시 참으라고 하였다.“여러분 기자님들!”박철이 웃으며 앞으로 나와서 나석진을 뒤로 막았다.“오늘 질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기는 레드카펫이어서 여러분들께서도 뒤의 인터뷰를 지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지금 질문에 대답하기를 꺼리는데, 그러면 나석진 씨께서 정말 약혼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까?”“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저의 프라이빗입니다!”나석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눈빛이 날카로웠다.“질문에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대답 안 하는 걸 보니 찔리나 보네요.”이제는 성질이 좋은 박철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 기자분은 참으로 이상하네요? 우리 석진 씨께서 사적인 일까지 다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요?”“나석진 씨의 사적인 일은 팬들의 공적인 일입니다!”말하는 기자는 당당했다.“만약 나석진 씨께서 팬들에게 해명을 하지 않는다면 팬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것입니다.”“뭐라고요? 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봐요.”박철은 매니저가 되기 전에도 잘나갔고 흑도와 백도에도 모두 세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밑의 연예인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올 수 없었을 것이다.평소에는 예의 바른 체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지금은 누군가가 나석진을 겨냥하고 있으니 그는 반드시 앞장서서 싸울 것이다!“석진 씨, 물러서세요!”박철이 목을 뒤로 젖혔다.“내가 처리할게요!”“매니저님께서 물러서는 게 좋겠어요.”박철이 싸우기도 전에 나적진은 두 손가락으로 그를 뒤로 밀쳤다.나석진은 기세가 등등하고 깊은 눈 밑에는 한기가 서렸다.“제가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제 팬들은 매우 이성적이고 교양있는 분들입니다. 사소한 개인적인 일로 저를 쫓아다니지 않고 제 연기와 작품에만 집중해 줍니다! 저에게
그녀는 늘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심지어 한밤중에도 일어나서 때때로 손을 뻗어 아들의 숨소리를 살핀다.최군혁도 유난히 강서연에게 달라붙어 잠시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트려서 그녀는 쉴 틈이 전혀 없었다.“엄마가 되는 건 쉽지 않아요!”박경실이 웃으며 말했다.“군형이는 착한 아이예요. 인터넷에 무슨 단어가 있더라... 천사 아기라고 하죠!”강서연이 웃었다.“아주머니께서도 인터넷을 하세요?”“당연하죠! 나이는 많아도 유행은 따라가야죠! 오늘 오후에는 내내 페이스북을 했어요.”강서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쩐지 오후 내내 그녀를 보지 못했다.“나는 늙어서 눈이 어두워 어떤 글자는 잘 보이지도 않아 지현 씨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네? 지현이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강서연이 어리둥절했다.“어떻게 된 일이냐면요...”박경실이 설명했다.“지현 씨가 점심때 급하게 나를 찾아와서 몇십 개의 계정을 만들어서 게시물을 올려달라고 했어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니까요! 한국어를 쓸 줄 모르고 글도 잘 읽지 못해서 한참이나 가르쳐 줬어요!”강서연은 듣고도 알쏭달쏭하였고 박경실이 핸드폰을 보여주자 비로소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그 게시물들은 같은 영상 아래에 있었고 계정은 달랐지만 모두 서지현의 말투였다.그리고 그 영상은 바로 나석진이 인터뷰한 것이었다....나석진과 박철은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박철은 이미 여러 관계를 통해 그 영상을 내렸지만 이따금씩 올라오는 몇 개의 게시물들을 보면서 여전히 웃음이 나왔다.특히 눈에 띄는 게 몇 개 게시물이 있었다.“저는 나석진 씨의 친구입니다. 저는 나석진 씨께서 절대로 약혼자가 없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저는 내막을 알고 있습니다. 나석진 씨는 여자친구가 없고 한 번도 팬들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여자아이는 약혼녀가 아닙니다. 나석
그 아래에는 적지 않은 댓글이 달렸는데 모두 서지현이 집착이 심하다고 비웃었다.그러나 나석진의 손은 화면에 머물러 있었고 손가락은 천천히 하나하나의 글자를 스쳐 지나갔다.마치 그녀의 밤색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듯하다.그 계정의 이름은 써니다...나석진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석진 씨.”박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분간 정말 영화를 찍고 싶지 않다면 남양으로 돌아가서 한동안 머무는 거를 제안해요. 가문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세요!”“왜 그래요?”“그게...”박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듣기로 남양의 그 여친왕이 또 석진 씨 소식을 묻고 있다고 해요!”...강서연은 아들을 재우고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웠다.최연준은 욕실에서 나와 그녀 옆에 앉아 큰 손으로 어깨뼈의 위치를 살살 주물러 줬다.“맞아요, 바로 이거에요...”강서연이 작은 소리로 외쳤다.“더 세게요!”최연준은 어안이 벙벙하여 웃었다.“내가 힘이 너무 세서 당신을 아프게 할까 봐서 그래.”“아니에요! 난 당신이 힘을 줬으면 좋겠어요... 후, 정말 좋아요...”그 소리는 부드러워 남자는 통제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해준다면...그럼 얼마나 좋을까!최연준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음흉한 미소를 드러냈다.그러면서 그녀 옆으로 더 다가갔다.“여보.”강서연의 목소리가 말랑말랑했다.“아들이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죠... 도대체 언제쯤 어른이 돼서 내가 안아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집사와 도우미가 있다고 하지만 최군형은 강서연 옆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한다.게다가 이 녀석은 너무 잘 먹어서 체중이 쑥쑥 올라가고 팔다리에 살이 많이 붙었다.강서연이 하루 종일 아들을 안고 있으면 온몸이 산산조각 난 것 같고 특히 두 어깨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최연준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이제 남
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천천히 말해봐, 엄마 왜 그래?"“엄마가 두 달째 계속 몸이 안 좋은데,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윤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아버지는 누나가 방금 출산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누나, 한 번 오면 안 돼요?”강서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공포감이 입을 크게 벌린 괴물처럼 그녀를 집어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안고 핸드폰을 건네와서 윤찬에게 남양으로 간다고 전했다.“여보...”이 순간 강서연은 머리가 텅 비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괴로운 날들을 생각했는데 그 괴로운 날들의 그림자가 영영 지워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걱정하지 마.”최연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장인어른께서 명의라 장모님을 잘 보살필 거야. 처남이 나이가 어려 긴장해서 그래.”강서연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최연준은 그녀를 안고 마음이 아팠다.그는 지금 어떤 위로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능한 한 빨리 그녀를 데리고 남양에 가서 한 번 봐야 안심할 수 있었다....이틀 뒤 강서연과 최연준은 최군형을 데리고 공항에 도착했다.강서연은 많은 죄책감이 들었다. 오성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또 떠나야 하니 할아버지가 화낼까 봐 겁이 났다.그러자 최재원이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를 뭐로 보고? 사부인이 아픈 데 당연히 가야지! 내 증손자를 데리고 가면 보고 기뻐해서 병이 나을 수도 있잖아!”강서연은 영감님의 이해심에 감사했다.최재원은 또한 그의 전용기를 그들에게 양보했다.그의 전용기는 최씨 가문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다. 조종사는 20여 년의 비행 경험이 있어 매우 안전하다.VIP룸에는 강서연이 어린 최군형을 품에 안고 최연준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렇게 잘해 주시는데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 효도도 못하고 당신까지 데려가야 한다니...”“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장모님을 보살피는
서지현은 어안이 벙벙했다.이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잠시 숨이 멎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나석진이 몸을 돌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세상은 멈춘 것 같았다.나석진이 서지현을 오성으로 데려온 이후로 그녀는 줄곧 에덴에서 살았고 그와 연락한 적이 없다.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그녀가 수십 개의 계정을 등록하고 동영상 아래에 댓글을 올린 것이다.지금 다시 만나니 서지현은 어떤 느낌인지 말할 수 없다.그녀는 뻣뻣하게 웃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에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아저씨!”나석진의 눈빛은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옆에 있는 손은 주먹이 되었다.그는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공항까지 따라온 이유가 강서연과 함께 남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고, 작은이모의 병이 걱정돼서 자신도 한동안 남양에 가서 쉬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사실은 서지현이 남양으로 가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실제로 그는 두 개의 급한 행사가 더 있었는데 오늘 임시로 짐을 정리해서 달려오는 바람에 박철이 화가 많이 나 있었다.나석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씁쓸하게 웃었다.헬리콥터에서 그녀가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느냐?그는 그저 아저씨, 아저씨일 뿐이다!이때 최군형이 잠에서 깨어나 한바탕 통곡하여 이곳의 침묵을 깨뜨렸다.강서연은 서둘러 그를 모유 수유실로 데려갔다.나석진은 최연준앞에 가서 마른기침을 두 번하고 말했다.“그... 지현이는 제가 데려갈게요.”“네?”최연준은 어안이 벙벙했다.나석진은 아무 이유 없이 서지현을 자기 곁으로 끌고 왔다.“아저씨...”“너는 내가 영국에서 데려온 사람이니 당연히 나를 따라가야지!”“하지만 서연 언니가 자기를 따라다니면 된다고 했어요...”서지현은 고개를 숙였다.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달콤했다.“서지현.”나석진이 오만하게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이제 내가 말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거야?”“아니에요!”“그러면 내 비행기에 타!”나
설마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난 것인가?강서연과 최연준은 서로 마주 보며 히히 웃기 시작했다.나석진은 이 부부가 한패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과 말다툼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저어 두 손은 등 뒤로 한 채 자기 세상에 심취한 걸음걸이로 비행기를 타러 나갔다.나석진의 전용기는 최씨 가문 비행기에 비해서는 좀 작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촬영을 하기 때문에 이 비행기도 그의 슈퍼스타 기질에 걸맞게 꾸며져 있었다.서지현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조금만 더 움직이면 어디 부딪히고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큰 눈을 뜨고 호기심에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기내에는 나석진이 출연했던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포스터마다 그는 센터 자리에 서 있었다.스타일도 다르고 메이크업도 제각각이지만 이 남자는 아무리 꾸미고 다녀도 잘생기셨다는 공통점이 있다.특히 눈에 띄는 한 장이 있었는데 킬러 역할을 맡았다.포스터 속 그는 상반신을 드러낸 채 완벽한 역삼각형 몸매를 자랑하고 있으며 탄탄한 가슴 근육에는 상처가 선명하게 한 줄 그어있었고 그의 각진 얼굴 위로 빛이 은은하게 드리워져 있다.서지현은 금사빠처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아가씨, 비행기가 곧 이륙하니 안전벨트를 매 주십시오. 아가씨? 아가씨!”스튜어디스가 몇 번이나 그녀를 불렀지만 서지현은 반응이 없었다.나석진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낮은 소리로 외쳤다.“서지현!”“네?”서지현은 깜짝 놀라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스튜어디스가 웃으며 안전벨트를 채워주고는 몇 마디 당부한 뒤 슬리퍼와 담요를 가져다줬다.서지현은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어서 어색하게 웃었다.그러나 그녀는 나석진의 굵직한 기침 소리를 듣고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감추었다.“너...”나석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나에게 할 말이 없어?”서지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이어 고개를 저었다.지난번에
서지현은 임시거주 증명서를 쥐고 가슴에 살포시 대었다.그녀는 조용하게 나석진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시간이 이 순간에 머물렀으면 좋겠다.사실 그녀가 그렇게 똑똑한데 어떻게 그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를 수 있겠는가? 그녀는 단지 그를 더 멀리 밀어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때로는 밀어내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위해서이기도 하다.서지현은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창밖에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그녀의 얼굴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비행기는 곧 남양에 착륙했다.공항 밖에는 윤씨 가문의 운전기사와 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강서연과 최연준은 황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통로를 걸었다.공항 밖으로 나가자 강서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이것은 사방이 높은 야자수로 둘러싸인 낯선 환경이었다. 남양의 기후는 습하고 덥기 때문에 태양이 모든 빛과 열을 이 땅에 쏟아붓는 것 같아 길가의 들꽃마저도 더할 나위 없이 화사했다.강서연은 복잡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야 했는데...최연준은 아들을 안고 뒤에서 걸어가며 속삭였다. “여보, 빨리 차에 타.”강서연은 억지로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안 돼서 윤씨 가문의 사가원림에서 윤정재를 만났다.그는 전형적인 남양 차림을 하고 있었고 최군형이 살이 찐 것을 보자 몹시 기뻐하며 돈봉투뿐만 아니라 금 한 상자를 가득 준비하였다.“아빠, 이렇게 하면 애를 버릇없게 만들 거예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나의 외손자는 당연히 좋은 것만 가져야지!”강서연은 윤문희의 병세를 걱정해서 물었다.“아빠, 엄마는 어떠세요?”최군형을 달래고 있던 윤정재의 손은 순간 멈칫하고 얼굴에 먹구름이 스쳤다.“엄마가 많이 아파요? 지금 어디 있어요? 빨리 가봅시다!”강서연은 몹시 긴장했다.“너무 조급해하지 마.”윤정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문희는 지금 요양원에 계셔. 윤씨
강서연은 잠깐 멈칫했다.“아빠? 무슨 친왕이에요?”윤정재는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군형이를 도우미에게 맡기고 연준이를 불러와. 내가 너희 둘을 데리고 사람들을 만나야 해.”잠시 후 다들 거실로 모였다.문을 들어서자마자 강서연은 소파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윤씨 가문의 거실은 화려하게 꾸미었고 그들 두 사람은 그곳에 앉아 전통 남양 복식에 진주로 화려한 용모를 과시했다.진용수는 황실 예절에 따라 강서연과 최연준을 그들에게 안내했다.“아가씨, 도련님.”진용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왼쪽에 있는 분은 송지아 친왕이고 오른쪽에 있는 분이 송혁준 친왕이에요. 인사해야 합니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그들을 바라보았다.송지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인사를 하는데 그녀는 황실에서 유일한 여성 친왕으로 지위가 높다고 들었다.지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어려서부터 황실에서 자라 우아하고 고귀함이 이미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고 강서연이 속으로 생각했다.그녀의 곁에 있는 송혁준 친왕이 도리어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사람에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에게 다가가기 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전에는 윤 회장님 댁의 도련님만 보았는데 이 아가씨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송혁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는 이 아가씨를 들어본 적이 있어.”송지아가 살짝 웃었다.“예전에 줄곧 강주에 살았던 강서연이잖아.”“이미 윤서연으로 개명했습니다.”윤정재는 입술을 치켜올렸다.“서연이가 20여 년 동안 강서연으로 살아와서 예전에 쓰던 이름이 더 익숙해요. 사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서연이가 내 딸인 것이 가장 중요해요.”강서연은 송지아와 처음 만났는데 이 여친왕이 이미 그녀의 배경을 낱낱이 조사해 와서 의외였다.반면 송혁준은 줄곧 옆에서 웃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최연준의 얼굴에 잠시 멈췄다.“누나, 중요한 일을 잊지 마.”그가 일깨워줬다.송지아는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