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현은 집에 있는 차도 운전하지 않고 길거리까지 걸어 나가서 택시를 탔다. 가는 길 내내 그녀는 마음이 초조했고 여진국네 집 근처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택시는 여진국의 집 밑까지 들어가지 않고 길모퉁이에 멈췄다. 두 사람은 그동안 늘 이렇게 움직였다.사람들의 눈과 귀를 피해 차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 동안 걸었다. 그런데 오늘 조용한 골목길을 돌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순간 움찔한 손미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골목길을 달렸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꾸만 바짝 따라오는 것 같았다.그녀가 돌아보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앞으로 가면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손미현은 잠깐 멈췄다가 눈알을 굴리더니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여진국의 아파트로 황급히 들어갔다.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야릇한 광경에 그녀는 혈압이 마구 치솟았다.여진국이 두 백인 여자와 소파 위에서 마구 뒹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손미현이 그에게 사준 튀르키예 양털 카펫을 깔고 있었다.“으악! 이 X놈, X새끼야!”손미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던 꽃병을 냅다 던졌다. 한창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그들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그중 한 백인 여자가 머리를 맞았는데 피부가 째지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다른 한 여자는 겁에 질린 나머지 옷도 입지 못하고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여진국은 손미현의 목을 잡고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곧이어 방안에서 히스테릭한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족히 30분 넘게 이어지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여진국은 부하에게 들어와서 방을 정리하라고 했다. 손미현은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여진국의 얼굴에도 할퀸 핏자국이 여러 개 생겼다.손미현이 던진 꽃병에 맞아 머리를 다친 백인 여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
두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매번 산부인과에 올 때마다 모든 게 다 정상이었고 의사도 뭐라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강서연은 긴장한 마음에 최연준의 손을 꽉 잡았다.“여보,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죠?”“그건 절대 아닐 거야.”사실 최연준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다.평소 입으로는 계속 아들을 싫어하는 척했지만 어쨌거나 그의 핏줄이고 그의 목숨이었다.최연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강서연에게 웃어 보이고는 그녀와 함께 의사 진료실로 걸어갔다.강서연의 주치의는 아주 다정하고 자상한 영국 아주머니였는데 경험도 아주 풍부한 산부인과 교수였다.두 사람이 진료실로 들어오자 의사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이건 사모님의 검사 결과입니다.”강서연은 불안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수치가 전부 정상인데 의사 선생님이 왜 보자고 하셨지?’최연준을 쳐다보는 의사의 눈빛이 어딘가 의미심장했다.“두 분 긴장해 하지 말아요. 사모님과 아이 모두 아무 문제 없어요. 하지만 도련님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서 이렇게 보자고 한 거예요.”최연준은 귀를 쫑긋하고 의사의 말에 집중했다.의사가 느긋하게 말했다.“사모님 지금 만삭이라 격렬한 운동을 해서는 안 돼요... 도련님,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 옆에 있는 강서연의 얼굴은 이미 귀밑까지 빨개졌다.의사는 계속 진지하고 본업에 충실한 태도로 검사 결과의 수치를 가리키며 설명했다.“사모님의 이 몇 가지 수치가 조금 불안정해요... 지금 태아의 머리가 점점 골반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단계거든요. 만약 지금 격렬한 ‘운동’을 자주 한다면 태아에게도 좋지 않아요. 게다가 사모님 지금 힘이 따르지 못하니까 도련님이 참으셔야 해요. 사모님이 아이를 무사하게 순산하고 몸조리 잘한 다음에 부부 생활을 점차 늘리도록 하는 게 좋아요...”강서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어 후다닥 도망쳤다. 최연준은 그녀를 쫓아가기 전에 의사에게 변명했다.“저 아주 살살했는데 왜
최연준이 뭐라 하려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강서연도 발견하고는 시선을 움직였다.“외숙모 아니에요?”최연준은 본능적으로 강서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손미현이 혼자 온 듯했는데 걷는 모습조차 어딘가 수상해 보였다. 방향을 보니 산부인과 쪽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외숙모가 왜 여길 왔을까요?”강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우릴 미행한 건 아니겠죠?”최연준은 경호원들을 전부 다 불러온 후 강서연과 함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미행이든 아니든 나쁜 꿍꿍이가 있어도 절대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서연아.”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집사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당신도 앞으로 뭘 먹을 때 조심해. 삼촌과 외숙모가 가져온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도 마.”“네, 알고 있어요.”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연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잘 지켜야지.”“네... 그래서요?”“그래서 당신 옆에 딱 붙어 자면서 지키려고.”...곽보미의 새 영화가 마지막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대본을 여러 번이나 수정했지만 확 와닿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김유정이 촬영할 때 자꾸 성질을 부리고 잘난 척하는 바람에 더욱 심란했다.그날 곽보미는 촬영장에서 집중하여 대본을 수정하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촬영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김유정만 의자에 기댄 채 네일을 받고 있었는데 네일 아티스트가 무릎까지 꿇고 네일을 해주고 있었다.유찬혁이 도시락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김유정은 그 모습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유찬혁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다 막혔다.곽보미는 유찬혁을 옆으로 끌어와 웃으며 말했다.“아직 스타도 아닌데 벌써 저렇게 까칠하게 굴고 있어. 불량 식품인 햄버거를 재벌 집 딸이 입에 대기나 하겠어?”유찬혁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표정이 확 굳어졌다.“하지만 난 좋아해.”곽보미는 환하게 웃으며 봉지에서 햄버거와 음료수를 꺼냈다.“이 음료수는 안 돼.”유찬혁은 얼음을 넣은
서지현은 유찬혁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모습이 참으로 멋졌다. 특히 금테 안경을 써서 더욱 지적이고 점잖아 보였고 미간 사이에 카리스마도 넘쳐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더는 거리에서 중상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던 그때의 유찬혁이 아니었다. 다친 곳이 다 나았으니 다시 그의 귀한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옆에 예쁘고 재능 있는 여자친구도 있었다.곽보미와 함께 있을 때 유찬혁의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쁨이었다. 그 모습에 서지현도 기뻤고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석진의 표정이...서지현은 웃음을 거두어들이고 숨을 죽인 채 찍소리도 내질 못했다. 요 며칠 아저씨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이토록 진지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한참 후 서지현이 조심스럽게 떠보듯 물었다.“아저씨... 왜 절 여기에 데리고 왔어요? 저더러 연예인이 되라고요?”나석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옆에 앙증맞은 서지현이 서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곽보미가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그저 보러 온 것이었다.“아저씨.”서지현은 기분이 쓸쓸해졌지만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보미 언니에게 인사하러 안 가요?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오래 서 있었는데도 우릴 보질 못했어요.”나석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인사?’만약 예전의 성격이었더라면 곽보미와 유찬혁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갈라놓고 적어도 유찬혁이 좋아하는 꼴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곽보미가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저 밀크티 엄청 단가 보네? 찬혁 씨가 사준 것이니까 더 달게 느껴지겠지.’단 걸 입에 대지도 않았던 최연준은 강서연이 만든 쿠키나 케이크는 아주 즐겨 먹었다.나석진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아저씨?”서지현은 걱
“왜 그래요?”곽보미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평소에는 신인을 자주 추천했었잖아요.”나석진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도 말했다시피 그건 평소였다. 만약 오성이었더라면 후배를 추천하고 신인에게 기회를 주었을 테지만 서지현은 예외였다.만약 서지현에게 신분이 생긴다면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용모만으로도 단숨에 스타 자리에 앉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인기를 얻게 되면 가려야 할 시비도 많아진다. 특히 연예계처럼 물고 뜯는 바닥은 더욱 그러했다.그녀에게 단단한 배경이 없는 건 둘째 치고 배경이 있다고 해도 몰래 뒤에서 모함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여자 연예인은 인기를 얻게 되면 스캔들이 터지기 쉽다는 것이다...서지현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남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터져 듣기조차 민망한 말이 귀에 들어올 상상만 한다면...나석진의 표정이 삽시간에 싸늘해졌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참, 대체 이런 이상한 느낌은 어디에서 나온 거지?’사실 그도 잘 알지 못했다.“저기요.”곽보미가 나석진을 쿡쿡 찔렀다.“저기요!”“왜요?”나석진은 쌀쌀맞게 그녀를 째려보았다. 유찬혁은 재빨리 다가가 여자친구를 감싸안았고 변호사가 용의자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갑자기 왜 그래요?”곽보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문득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나석진은 상상력이 풍부한 천재형 선수이다. 유명해진 서지현이 어떤 모습일지 벌써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모양이다.곽보미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아직 지현이를 영화에 출연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석진 씨 말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신분도 없어서 무턱대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지현이에게도 안 좋아요.”“누가 카메라 앞에 서는데요?”그때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고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요.”나석진이 김유정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난 잠시 이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없어요.”“잠시 없는 거 맞죠?”김유정이 웃으며 말했다.“저 나중에 나석진 씨의 매니저에게 연락할 겁니다. 출연료를 보면 석진 씨도 출연할 생각이 생길지도 몰라요.”나석진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전에 강서연에게서 최연준에게 아주 골치 아픈 사촌 여동생이 있다고 들었었다. 그때 나석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집안에 시집을 갔으면 남편의 가족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남양 윤씨 가문의 공주처럼 잘난 척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한마디 하기까지 했었다.지금은 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김유정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세상 물정도 모른다. 이러니 김씨 가문에 있는 동안에도 미움이나 받았지.“석진 씨.”김유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석진 씨가 우리 새언니 사촌오빠라고 했죠? 저의 사촌 오빠가 최연준이에요. 이렇게 보면 우리도 한 가족이에요.”나석진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할 얘기 아직도 더 남았어요?”“뭐가 그리 급해서 자꾸 가려고 해요?”김유정은 앞으로 다가가 서지현을 옆으로 밀쳐내고는 대본을 꺼냈다.“석진 씨, 이 부분 좀 봐요...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잘 몰라서 그래요.”“잘 모르겠으면 감독님에게 물어봐요.”나석진은 참다못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연극 수업을 들어요. 난 감독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데 나한테 물어서 무슨 소용이에요?”“당신...”김유정은 나석진의 기세에 눌려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예전에 듣기로 나석진이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고 연예인 병도 없다고 했는데 오늘은 왜 이러지...나석진은 서지현의 손을 잡고 김유정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김유정 씨, 나 사실 아까 유정 씨가 카메라 테스트한 신을 몇 개 봤는데 그건 잘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목석이던데요?”김유정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최연준이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의 천둥 같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불효자식!”“엄마?”“뭔 생각을 그렇게 해? 서연이를 부축해야지.”김자옥이 급히 달려와 최연준을 밀쳐내더니 강서연의 팔을 잡았다. 그녀에게 아들은 완전히 뒷전이었다.“서연이 지금 배가 많이 불러서 걸을 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단 말이야.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가 뒤에서 힘들게 따라오는데 부축하지도 않고 혼자 걸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너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니.”최연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친엄마가 계모로 바뀐 기분이 어떤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다가 한순간에 사랑을 잃은 기분이 또 어떤지, 최연준의 계정을 구독하고 라이브 방송에 들어오면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서연아, 발밑 조심해. 하하, 정원이 깨끗하지? 어제 또 한 번 깨끗하게 청소하라고 했어. 아마 돌멩이 하나도 없을 거야.”“그렇지, 왼발부터 디뎌... 계단 조심해. 우리 서연이 잘한다!”최연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아무튼 김자옥은 며느리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지금 모든 가족의 이목이 강서연과 그녀 배 속의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어 최연준을 거들떠보는 사람조차 없었다.요 며칠 최재원도 매일 여덟 번씩 전화 와서 강서연과 아이의 상태를 묻곤 했다.사람들의 냉대에 최연준은 입을 삐죽거렸다.‘흥, 확 남양으로 가버릴까? 남양에는 장모님이 내 편을 들어준단 말이야!’강서연은 최연준을 돌아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달콤한 웃음을 본 순간 최연준의 불만도 눈 녹듯 사라졌다.최연준도 환하게 웃으며 그녀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강서연은 그의 가슴팍에 살포시 기댔다. 역시 남편의 가슴이 가장 듬직하고 따뜻했다.김씨 본가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가족들은 정원에 모여 앉아 차를 마셨다.그때 집사가 다가와 공손하게 예를 갖추면서 김성주와 손미현이 왔다고 보고를 올렸다.김씨 가문 영감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자기 아들이 싫은 게 아니라
말을 마친 손미현이 상 위의 접시를 들고 거북 젤리를 입에 넣으려는데 강서연이 가볍게 웃었다.“외숙모에게 드리는 게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 거북 젤리는 임산부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거든요.”손미현이 숟가락질을 갑자기 멈추었다.“이건 남양에서 택배로 보낸 거예요. 이 안에 귀한 한약재가 많긴 하지만 성질이 차가워서 임산부가 먹으면 유산할 가능성이 커요.”“올케.”김자옥이 싸늘하게 웃었다.“이건 서연이 부모님이 아버지께 드리려고 보낸 건데 참 동작 하나는 빠르단 말이지. 벌써 자기 앞에 가져다 놓았네?”화들짝 놀란 손미현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거북 젤리를 다시 밀어냈다.김씨 가문 영감은 더는 앉아있을 수가 없어 지팡이를 짚으며 방으로 들어갔다.“아빠 왜 저러셔?”김성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누나, 아빠 기분이 안 좋으셔?”김자옥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를 째려보았다.“여보, 괜찮아.”김성주는 손미현을 보며 웃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도우미에게 해달라고 할게. 지금 요리사들이 다 집에 있어서...”“성주야.”김자옥이 싸늘하게 말했다.“오늘 집에 요리사가 많긴 하지만 아버지가 서연이를 위해 준비한 거야. 너희 두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누나, 왜 그래?”김성주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더니 손미현의 손을 잡고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손미현은 가족끼리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면서 김성주를 달래는 척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김자옥은 컵을 냅다 던졌다. 컵이 바닥에 깨지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강서연은 급히 다가가 그녀를 위로했다.“어머님, 저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말아요. 몸이 상해요.”“정말 역겨워 죽겠어.”김자옥이 욕설을 퍼부었다.“서연아, 저 꼴이 임신한 꼴 같아?”강서연은 멈칫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 생각에 저년 아예 임신하지도 않았어.”김자옥이 냉랭하게 말했다.“또 돈을 뜯어내고 싶은데 임신이라는 핑계를 댄 거겠지. 이제 두고 봐. 며칠 후에 손에 돈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