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은데 비용은 최씨 가문에서 지원할 것입니까?”최연준이 눈을 가늘게 떴고 눈 밑에서 한기가 솟아올랐다.이사회에서는 파계가 복잡하여 일부분은 최연준은 성이 김씨가 아니라 최씨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불만이 있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주식 절반 가까이가 최씨 건데 당신이 이 돈을 내고 싶은가요?”“그게...”최연준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곧이어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이 돈은 우리가 투자할게요.”김자옥과 최연준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김성주가 서 있었고 그 옆에 손미현이 있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고 김자옥을 바라볼 때 약간의 도발적인 눈빛을 띠고 있었다.이사회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네가 여기에 왜 왔어?”김자옥이 일어나서 경비원을 불러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손미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소리 질렀다.“뭐 하는 거예요? 우리는 영화에 투자하러 왔는데 대표님께서 이 돈을 포기할 것입니까?”김자옥은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고 또 김성주를 노려보았다.“제가 이사회에서 쫓겨났지만 제 남편은 여기에 설 자격이 있어요!”손미현은 일부러 김성주의 슈트를 정리해 주고 냉소했다.“안 그래요, 형님?”김자옥은 심호흡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상대가 날뛰고 오만할수록 그녀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왜냐하면 사람이 부풀어 오르면 결점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때는 반드시 한 방에 맞을 수 있다.“맞아.”김자옥은 조용히 최연준에게 눈치를 주고 또 손미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성주는 이사회에 올 자격이 있지. 그럼 너희들은 이 영화에 어떻게 투자할 생각인데?”손미현은 드디어 자신이 기세등등해질 때가 왔다고 느꼈다.“1억 유로를 투자할게요!”...최연준은 서재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강서연이 컵을 들고 들어갔는데 그는 받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이 시간에 커피 마시면 안 돼요!”강서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미 늦
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에는 틀림없이 속사정이 있을 것이고 김성주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갑자기 기획사를 차리고 1억 유로를 쏟아내는 건 정상이 아니에요.”강서연이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보미 씨한테는 내가 먼저 연락해서 영화 찍지 말라고 해야겠어요. 이 일은 나중으로 미뤄야 해요! 그리고 여보, 그 미웨이 엔터테인먼트는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최연준은 웃으며 컴퓨터에 두 번 클릭하자 미웨이 엔터테인먼트의 자세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여보, 이미 시키기 전에 다 했습니다!”강서연이 자세히 보니 미웨이 엔터테인먼트의 자본금은 많지 않았고 연예인은 더더욱 없었다. 회사 전체가 법인 대표, 매니저, 그리고 재무 직원 한 명뿐이었다.“법인 대표는 외삼촌이에요.”강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연준 씨,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외삼촌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해요.”“응.”“이건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 같아요!”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컴퓨터를 닫았다.“됐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내가 같이 자러 갈게.”“여보...”강서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요즘 태동이 너무 심해서 허리가 너무 뻐근해요.”최연준은 그녀를 침실로 안고 들어가서 침대에 눕히고는 살며시 허리를 주물렀다.강서연은 또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강서연은 조금 실망했다.그녀가 임신한 이후로 한쪽에는 시어머니 한쪽에는 어머니가 모두 그녀를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이것도 먹지 못하게 하고 저것도 만지지 못하게 한다.심지어 아이스크림은 블랙리스트에 추가되었다.영국에 도착한 후 김자옥은 이 블랙리스트에 따라 최연준에게 강서연의 식사를 잘 챙겨 달라고 명령하였다.강서연은 예전에 먹던 라면, 튀김, 마라탕이 당겼지만 이미 몇 달 동안 이런 것들과 연을 끊었다.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옆으로 몸을 돌려 잠을 잘 준비를 했다.최연준이 그녀를 달랬지만 작은 여인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김자옥은 상황을 지켜보며 손미현이 던진 1억 유로 투자금을 받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손미현이 스스로 실마리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최연준 역시 어머니의 일관된 태도를 고수하며 말을 아끼고 상대를 끌고 가다가 인내심을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특히 그가 육경섭의 전화를 받은 후에 말이다.“지난번에 조사하라고 한 그 사람을 찾았어요!”“네.”최연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무슨 상황이에요?”육경섭의 세력이 맨체스터에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같이 놀던 친구가 해외에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맨체스터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날카롭고 잠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바로 오징국이에요!”“뭐라고요?”최연준은 하마터면 커피를 한 모금 뿜을 뻔했다.“하하하, 다들 모두 그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고 해요!”육경섭이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의 본명이 여진국인데 오성 사람이었다가 나중에 런던으로 갔고 런던에서 잘 안되어 다시 맨체스터로 왔어요... 나쁜 짓을 모두 해놓고 최근에는 또 돈세탁 같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최연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그 돈은 어디서 났어요?”“더러운 돈이요? 어떻게 왔겠어요! 그 사람은 여자한테 빌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렸어요!”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경섭 씨는 보통 돈세탁을 어떻게 해요?”“저는 일찌감치 손을 뗐어요. 저를 끌어들이지 마세요!”육경섭은 마른기침을 두 번 했다.“돈세탁하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데요... 투자하는 거죠! 더러운 돈을 투자하면 벌어들인 돈은 깨끗하잖아요!”“그래요?”투자?그럼 영화에 투자하는 것도 그중 하나겠네?최연준의 마음속에 즉시 이질적인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서지현은 별장에서 여러 날을 묵었다.제임스가 이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안전하다고 느꼈다.아쉽게도 철제
“너 거기서 멍하니 서 있기만 할 거야?”손미현은 뒤돌아서서 서지현을 차갑게 쳐다봤다.“새로 왔어? 차를 끓이고 다과를 가져와야지.”서지현은 지나치게 빠른 심장박동을 억누르고 돌아서 부엌으로 가서 다과를 준비했다.그녀는 일부러 머리를 숙여 손미현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했다.손미현은 그녀를 한 번 흘겨봤는데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그 밤색 긴 머리가 눈에 띄었다.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는데 때마침 방에서 나오는 강서연과 마주쳤다.“서연아!”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고 웃음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외숙모께서 여긴 웬일이에요?”“일이 없으면 오지도 못하는 거야?”강서연의 표정은 하마터면 변할 뻔했다.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서연아, 요즘 배가 많이 나와서 걷는 것도 불편하지?”손미현이 팔짱을 끼려고 하자 강서연이 슬쩍 피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손미현의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자신이 오늘 그녀에게 인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손미현은 말투가 당당해지기 시작했다.“서연아,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겠지? 드디어 우리 집 유정이의 미래가 보이는 거 같아! 맞다, 너랑 곽 감독님이랑 친하다며? 저번에 곽 감독님이 우리 집 유정이를 직접 거절했다고 들었어. 네가 곽 감독님께 앞으로 우리 유정이 잘 부탁드린다고 말해줘.”강서연은 그녀를 보며 소인배가 뜻을 이루어 득세하다가 무슨 말인지 깊이 이해했다.“알겠어요. 유정이는 재주도 많고 외모도 출중해서 여주인공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외숙모께서 1억 유로를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유정이를 캐스팅하지 못했을 거예요! 외숙모께서 돈이 이렇게 많으실 줄 몰랐어요. 저한테도 돈 버는 법을 가르쳐줄 수 없을까요? 저도 여기에 관심이 많아요!”손미현은 바로 안색이 바뀌었다.강서연이 무심코 던진 말에 손미현의 아픈 곳을 세게 찌를 줄은 몰랐다.“돈을 버
검은 포도처럼 커다란 두 눈이 순식간에 빛을 잃더니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서연 언니... 저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6월의 맨체스터 날씨는 비가 많이 내려 습했다. 여름이 가까워졌지만 기온이 높지 않았고 밤공기가 여전히 쌀쌀했다.최연준은 얇은 카디건을 가져와 창가에 서 있는 강서연에게 걸쳐주고는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았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강서연이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그를 돌아보았다.“연준 씨, 지현이 말이... 다 사실일까요?”최연준의 눈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강서연은 오늘 손미현이 찾아온 일과 서지현이 납치당한 날에 겪었던 일을 최연준에게 말했다.“그날 지현이가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대요. 손미현이 한국어를 한 게 아주 인상 깊었대요.”최연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손미현과 여진국이 그렇고 그런 사이이고 김성주는 아무것도 모르고 까맣게 속고 있다는 말인데...이 일이 드러나게 되면 김성주는 돈과 사람 모두 잃게 되고 누구보다도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김씨 가문 전체가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연준 씨...”최연준의 감정 기복을 느낀 강서연은 작은 손으로 그를 껴안고 가슴팍에 기댔다.“아직은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삼촌과 외숙모가 그래도 부부로 오랜 시간 함께 지냈는데 아무런 정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리고 외숙모가 그럴 만한 배짱도 없다고 생각하고요...”“그럴 리가 없다고?”최연준이 냉랭하게 웃었다.“허, 그 여자 그동안 우리 삼촌을 이용하여 돈을 많이 뜯어냈어. 우리 삼촌 이름을 걸고 사업도 많이 말아먹었고... 인제 드디어 그 이유가 뭔지 알았어. 여진국에게 줬던 거야. 김씨 가문의 돈을 훔쳐서 애인을 먹여 살린 거지.”강서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연준 씨, 일단 진정해요.”그녀가 최연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지현이가 그러는데 여
이튿날 나석진은 문 앞에 서 있는 서지현을 보고 너무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도련님.”연미복 차림의 영국 집사가 예의 바르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저희 도련님께서 앞으로 써니 아가씨를 이곳에 묵게 하면서 써니 아가씨의 안전을 석진 도련님께 맡긴다고 하셨습니다.”나석진은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오늘 아침잠이 덜 깬 채 비몽사몽인 상태로 강서연의 전화를 받았다. 서지현이 강서연의 집에서 살면 안전하지 않다는 둥, 곧 큰일을 할 게 있으니 서지현을 잘 지켜야 한다는 둥 이런 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 같았다...그때까지만 해도 나석진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하여 강서연이 서지현을 그에게로 보내겠다고 할 때 대충 알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잠깐만요!”영국 집사를 잡으려던 나석진은 제대로 잡지 못해 하마터면 서지현과 부딪칠 뻔했다.서지현은 캐리어를 끈 채 쭈뼛쭈뼛하며 서 있었다. 나석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표정과 달리 손은 이미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호텔 직원에게 방 하나를 더 잡으라고 했다.“방 카드야.”나석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이 방에서 지내.”서지현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매일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 있고 아래층에 뷔페가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 방 카드만 종업원에게 보여주면 돼.”“네.”“부족한 게 있으면 나에게 말하고.”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에 나석진은 기침을 두 번 하고는 다시 강조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너 아직 신분이 없어서 내 이름으로 방을 잡은 거거든. 혹시라도 네가 프런트에 전화해서 주문할 때 네 주민등록증이라도 검사할까 봐 그래. 그러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나에게 말해. 내가 프런트에 연락해서 가져다주라고 하는 게 더 편해.”“네, 알았어요.”서지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아저씨... 저 그게 필요한데...”나석진이 눈살을 찌푸렸다.“뭔데?”“그러
“음... 닮지는 않았어요.”서지현이 진지하게 말했다.“아저씨, 목걸이는 참 예쁜 물건이에요.”“뭐야? 내가 안 예쁘다는 소리야?”나석진은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비록 예쁘다는 말이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한국 연예계에서 공인한 미남인 건 사실이었다. 국민 첫사랑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생겨난 건 아니었다.“아니, 그게 아니라요.”서지현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무슨 말이야? 목걸이가 예쁜 물건이라며.”“아저씨가 안 예쁘다는 게 아니라.”서지현이 웃으며 말했다.“물건이 아니라는 말이에요.”“서지현!”한국어가 서툰 혼혈인이라기에는 한국어를 너무 잘했다....새 영화가 준비 단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지만 곽보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강서연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채 절망적인 눈빛으로 커피숍에 앉아있는 곽보미를 본 순간 미안함이 밀려왔다.“서연 씨, 그냥 사람 바꾸면 안 돼요?”곽보미가 울상을 지었다.“이 김유정은 대체 뭐예요? 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 희로애락 표정이 다 똑같아요. 나 그냥 천재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게요. 내가 무슨 천재예요? 이런 사람 하나 가르치지도 못하는데.”강서연은 참다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 성설연도 그녀를 이 정도까지는 미치게 하지 않았다.“보미 씨, 조금만 더 참아요.”강서연은 곽보미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김유정은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 해요.”“뭐라고요?”곽보미는 강서연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4컷의 사진을 한 장에 담은 사진이었는데 전부 김유정의 얼굴이었다.강서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똑같은 사진을 네 장이나 보여줘요?”“허. 똑같은 거 아니에요.”곽보미가 냉랭하게 웃었다.“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연기한 네 가지 다른 장면이에요.”강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분명 다 같은 표정인데?’“주아 씨였더라면 네 개의 다른 표정을 연기하는 건 물론이고 신마다 아주 조금씩 다른 표정을 여
“당신은...”최연준은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웃었다.“아들을 무사히 낳기만 하면 돼.”“네.”강서연도 따라서 히죽 웃었다.“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골치 아픈 일들이 전부 다 해결됐으면 좋겠어요.”“꼭 그렇게 될 거야. 여보, 겉으로 절대 티를 내선 안 돼, 알겠지? 보미 씨에게도 귀띔해 줘. 잠시만 김유정을 참고 견디라고.”“나 다 알아요.”강서연은 또 문득 뭔가 떠올랐다.“아 참, 여보. 손미현이 그 남자와 거래한 계좌를 반드시 알아내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증거예요.”최연준은 그녀를 다정하게 쳐다보더니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알았어, 여보.”...손미현은 요 며칠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자꾸만 밀려왔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녀가 김유정에게 물었다.“유정아, 엄마 마음이 너무 불안해. 왜 이러지?”팩을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던 김유정은 손미현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손미현이 바로 짜증을 냈다.“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잖아. 왜 무시해? 아직 유명한 연예인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잘난 척하는 거야? 네가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다 누구 덕인데!”“아이고, 그만 좀 해요. 다 엄마 덕이에요. 됐죠?”김유정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마음이 불안한 건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지려고 그러나 보죠.”“꺼져!”손미현은 가뜩이나 기분이 별로인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더욱 화가 나 슬리퍼를 들고 김유정을 때리려 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그녀의 얼굴을 다치게 할 뻔했다.김유정은 엄마가 억지를 부린다면서 한참 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손미현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대체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우며 가끔 헛구역질도 났다...‘그래! 그날 강서연의 집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야.’손미현은 잠깐 움찔하다가 머릿속에 문득 서지현의 갈색 곱슬머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 도우미의 얼굴이 한 번 보면 잊히
강소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아정을 살폈다.“숙모, 괜찮으세요?”“괜찮아.”표아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창백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숄을 단정히 여몄다.“그런데 아까 그 아이는...”표아정의 눈빛이 번쩍였다. 표아정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돌려 정승우를 바라보았다. 정승우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때 권온유가 안에서 급히 뛰쳐나오더니, 정승우의 피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와아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정승우를 꼭 끌어안았다.“안 아파, 정말 안 아파!”정승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품 안에 보들보들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공주님이 있으니 괜히 어색하고 쑥스러워졌다하지만 속으로는 누나 걱정이 떠나지 않았고 머리가 지끈거려 불편하기도 했다. 아까 맞은 충격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 같았다.“우선 정승우를 병원으로 데려갑시다!”조순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내 차로 가요!”“최씨 연합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최군형이 덧붙였다.“제가 이미 의사에게 연락했으니, 도착하면 상처를 치료하고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저도 갈래요!”권온유는 얼굴이 엉망이 되어 울면서 정승우를 붙잡고 흔들었다.“오빠, 오빠! 제가 병원까지 같이 갈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정승우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온유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중간에서 망설이며 멈췄다.지금은 그때의 낡은 공장도 교외의 길가도 아니었다. 온유는 다시 공주님으로 돌아왔고 자기 손은 늘 더럽고 거칠었다. 그런 손으로 온유의 머리를 만질 순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우는 연합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시장님의 차로 병원에 도착한 데다 최군형이 미리 부탁해 둔 덕분에 간단한 상처지만 최고의 의사가 직접 치료에 나섰다.붕대를 감은 뒤, 정승우는 병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VIP 병실은 정승우에게 마치
정승우는 몸을 피하지 못했고 머리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졌다.정대명이 다시 손을 올리려는 순간, 경찰이 제때 그를 제압하며 상황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그러나 정승우의 이마에는 수갑이 남긴 상처가 선명히 드러났고 그 틈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내렸다. 정승우는 손으로 상처를 감쌌지만, 붉은 피는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흘러내렸다.“정승우!”백인서는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황급히 달려가 정승우의 상처를 살폈다.“이 나쁜 자식! 네가 아버지를 감히 저주해?”정대명은 경찰에 의해 제압당해 몸부림칠 수 없자 대신 고래고래 소리쳤다.“백인서! 이 빌어먹을 년... 네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놨어!”“감히 아버지를 저주하다니! 지옥 가서 천벌 받을 거야?”“이 나쁜 놈아! 네 몸엔 내 피가 흐르고 있어! 결국 넌 나처럼 될 거다, 쓰레기 같은 놈아!”“정대명 씨! 헛소리 그만하세요!”정호가 엄격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아니요! 아니요!”정대명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발로 차고 몸부림쳤다.“경찰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내 아들을 훈계하는 걸 막을 순 없지! 내가 아들만 훈계하겠냐? 저 계집애도 훈계해야지!”백인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정대명을 응시했다.정대명의 잔혹한 언행은 백인서를 순식간에 어두운 과거로 끌어당겼다.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 밤, 백인서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깊은 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온몸이 떨리며 심장은 쿵쿵거렸고 귓가에는 정대명의 독설이 메아리쳤다.“젠장, 이 빌어먹을 년이. 집에 있을 때도 착하게 굴지 않았어... 그때도 내가 올라타면 얼마나 반항했는지!”그 한마디는 깊은 바닷속에서 폭발한 수류탄처럼 연회장의 공기를 산산이 갈라놓았다. 그 소리는 연회장의 모든 혼란을 멈추게 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인서는 최씨 가문의 미래 며느리라는 사실을.그런데 정대명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최지용은 순간 멍하니 굳어졌다. 최지용은 본능적으로 백인서를 바라보았다. 백인서의 청초한 얼굴은 깊은 먹구름
“여기는 시장님의 연회 자리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죠.”정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곳에 인신매매범이 있다면, 반드시 체포해야겠지요!”“아니에요, 저는 인신매매범이 아니에요!”영미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외쳤다.“아이를 납치한 건 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대명이 했어요, 모든 게 그의 짓이라고요! 제발 믿어주세요!”하지만 영미의 몸부림은 허공에 흩어졌고 그녀의 비명은 점점 희미해지다 이내 호텔 밖으로 사라졌다.정대명은 이 광경을 보며 무릎이 풀리고 말았다.지금 정대명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곧 자신도 영미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정대명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며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정말 몰랐어요, 그 여자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저는 그냥 돈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런 일인지 몰랐다고요!”“그 말은 경찰서에 가서 하시죠.”정호가 손짓하자, 사람들이 정대명을 데리고 가려 했다.그 순간, 정대명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있던 정승우를 향했다.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승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 눈빛에는 끝없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고 아버지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그러나 정승우는 정대명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다.정대명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승우의 그 적대적인 눈빛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을 찔러버렸다. 정대명은 자신이 정승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분통이 터졌다.몇 대 때리긴 했지만, 아버지한테 감히 원한을 품다니?정대명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뒤엉키며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 잡았다. 죽더라도 누군가를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들이었다.정대명은 눈빛을 돌리며 표정을 바꾸더니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좋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호텔 후문에서 촬영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선명히 비쳤다. 화면 속에는 영미와 정대명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뚜렷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음향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왔다.“제가 이미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매수했어요. 당신은 그저 그 아이를 훔쳐내기만 하면 됩니다.”“영미 아가씨, 여자애를 훔쳐서 뭘 하려는 건데? 여자애는 값도 안 나가잖아!”“제가 하라는 대로 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영미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진 영미는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아니, 저 여자가 최씨 가문의 딸을 훔치려고 했다고?”“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매년 이상한 일이 생긴다지만, 올해는 더하네. 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보배 같은 아이를 훔쳐려했다고?”“말도 안 돼...”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급히 변명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최 도련님, 제 말을 들어봐 주세요!”“음성이 이렇게 뚜렷한데, 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강소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영미를 꿰뚫어 보며 입을 열었다.“설마 저 영상 속의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영미 씨, 정말 어리석군요.”최군형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웠고 그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우리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그렇게 쉽게 매수될 거라고 믿었습니까?”“뭐라고요?”영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문밖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영미가 매수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 경호원들이었다.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영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에 영미는 몸이 떨렸다.“당신들... 날 배신한 거예요?”영미는 멍한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영미야,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강소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분들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이야. 이분들이 한 행동은 단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야
그 순간, 조순철의 묵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온유가 돌아왔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이유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드디어 백인서 씨의 결백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뭐라고요?”영미의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온유의 실종이 백인서 씨와 연관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죠.”조순철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공간을 메웠다.“심지어 경쟁자들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추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조순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돌려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죠, 영미 아가씨?”영미는 얼어붙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그 시선은 바늘처럼 날카로워 영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영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조... 조 시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영미 아가씨, 제 말을 정말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조순철의 미소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권욱의 시선은 더욱 살기를 띠고 있었다.부모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강소아와 최군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하들이 정대명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영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미는 본능적으로 정대명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정대명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찾은 듯 온몸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아니, 영... 영미 씨! 영미 아가씨! 제발 나 좀 도와줘!”“뭐 하는 짓이에요?”영미는 분노에 차 외쳤다.“제가 왜 당신을 도와줍니까?”“영미 아가씨가 나한테...”“그래요,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줬죠.”영
연회는 여전히 그 4성급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손님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시장님이 정말 청렴하셔서 연회도 대단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간소하게 한다는 대화였다.“무슨 소리야? 새로 취임했으니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겠지!”“하지만 권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 정도라면 연회를 더 화려하게 할 수도 있잖아?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사위는 사업가 아닌가?”“맞아. 게다가 사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좀 더 사치스럽게 해도 문제 될 건 없지.”“혹시... 이 호텔을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영미는 한쪽에서 조용히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특별한 이유라... 글쎄,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다. 영미는 그저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조순철은 무대 위에 서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순철에게 집중됐다.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조순철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다.“먼저, 오늘 연회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지지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성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성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청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며 잔을 들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또한, 여러분께서 제 외손녀 권온유를 많이 걱정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온유가 무대로 달려 나와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조순철은 권온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무대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권온유가 납치당한 일을 알고 있었고 권온유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이 모든 행운이 가능했던 건 정승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순간, 정승우는 한쪽 구석에서 권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