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재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생각에 잠긴 듯했다.“서연이는 다 좋은데 출신이 조금...”‘출신?’최연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비록 윤정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요즘 대체 무슨 영문인지 최연준을 볼 때마다 원수 보듯 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강서연의 친아버지였다. 최연준이 참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아내를 사랑하면 처가 말뚝에다 대고 절까지 한다고 했다.최연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재원에게 강서연의 출신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최재원이 갑자기 확고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연준아, 아무래도 서연이의 양부모가 될만한 괜찮은 집안을 알아봐야겠어.”“네?”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4대 가문끼리 대대로 사돈을 맺어왔어.”최재원의 눈빛이 복잡했다.“이건 우리 조상님들이 남긴 규정인데 내 세대에서 깨지면 안 돼. 그런데 난 서연이가 참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서연이에게 양부모를 찾아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어.”“할아버지...”“배경이 있는 가족을 찾아주면 서연이도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기고 남들도 더는 서연이의 출신이 좋지 않다고 수군거리지 않을 거야. 어때?”최재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는데 그 표정은 마치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나 똑똑하지?’최연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 서연이는...”“왜 필요 없어?”최재원이 그를 째려보았다.“넌 네 와이프가 걱정되지 않겠지만 난 내 손녀가 걱정된다고.”“손... 녀요?”“그래!”최재원이 당당하게 말했다.“서연이는 나와 마음이 잘 맞아. 너희들 같이 집안을 망치는 자식들보다 훨씬 나아.”최연준은 막연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어떻게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할 수가 있죠? 집안을 망치는 자식은 최지한뿐인데.’최재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옥패를 다시 넣더니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아무튼 이미 다 찾아놓았어.”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내 병
최연준이 에덴으로 돌아왔을 때 강서연은 박경실에게서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박경실이 가스 불을 낮추었고 솥 안의 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와 따뜻함이 가득했다.“마지막에 이걸 넣으면 돼요.”박경실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었고 강서연도 열심히 배웠다.“이러면 돼요?”“네.”“그렇군요.”강서연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이걸 넣으니까 향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이런 국은 사모님과 도련님 모두 드셔도 좋아요. 이젠 겨울이라 날씨도 차갑고 건조하잖아요. 영양 보충하셔야죠.”“네.”강서연은 웃으며 대답한 후 솥뚜껑을 닫고 불을 꺼버렸다. 그러자 박경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안... 드세요?”“연준 씨가 돌아오면 같이 먹으려고요.”“도련님 오늘 본가로 가시지 않았어요? 바로 돌아올 것 같진 않은데 먼저 드세요. 도련님 건 따로 남겨드리면 되죠.”“안 돼요. 혼자 먹으면 맛없어요.”강서연이 히죽 웃었다.“와서 같이 먹어야 맛있어요.”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에 주방 밖에 있던 최연준은 마음이 설렜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예전에 강주에 있을 때도 강서연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최연준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먹곤 했다. 그때 그녀는 최연준이 제대로 먹지 못할까 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여 밖에서 놀림이라도 당할까 봐 가장 걱정했었다. 하여 그에게 최대한 좋은 삶을 주기 위하여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3개월의 인센티브를 모아서 최연준에게 수백만 원짜리 양복을 사주었고 전 재산을 털어 자동차까지 사주었다.가장 어려웠을 때도 최연준이 60만 원짜리 벨트를 사겠다고 하자 강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돈을 줬었다.그리고 강서연이 첫 월급을 탔을 때 두 사람은 제인 호텔에 갔었다. 강서연은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랍스터 리소토를 사주면서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먹여 살리면 되죠.”최연준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오성에 온 후 사람들은 최연준이 강서연
“감독님.”누군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곽보미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비난하듯이 쳐다보고는 옆에 빈자리에 앉았다.“무슨 일이죠?”곽보미는 피곤한지 미간을 어루만졌다.다가온 여자의 이름은 주아였는데 다년간 곽보미와 함께 작품을 한 간판급 여배우였다.지난번 임씨 가문의 연회에서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힘을 합쳐 성설연을 몰아붙일 때 주아도 한몫했었다.비록 가끔 생트집을 잡고 남에게 빌붙으려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연기력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났다. 주아가 여러 작품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친 덕에 곽보미도 상을 탈 수 있었다.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없었더라면 오늘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감독님, 서브 여주 좀 바꿔주면 안 돼요?”주아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이 속도로 촬영했다가 언제 다 촬영해요? 아직 나석진 씨와의 신도 남아있단 말이에요.”“주아 씨와 석진 씨의 연기가 문제없어서 한 번에 오케이 할 수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곽보미의 목소리가 축 처졌다.곽보미와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주아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해?’남자는 무엇인가? 주아에게 있어서 남자는 그저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는 디딤돌에 불과했다. 그녀는 항상 남자는 끊이지 않지만 트로피는 흔치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그러니 연애란 무엇이겠는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그때 즐기면 된다. 어쨌거나 일보다 더 좋은 건 없으니까.“보미 씨.”주아는 곽보미의 어깨를 잡고 진지하게 쳐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진짜로 때리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저년 얼굴을 아주 만신창이로 만들어서 복수해... 읍!”주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곽보미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곽보미는 그녀를 째려보았고 주아는 미친 듯이 발버둥 치다가 놀란 얼굴로 거울을 비춰보았다.“보미 씨, 이렇게 꽉 누르면 어떡해요. 턱을 한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에요.”곽보미는 잠깐 멈칫하다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주아
“설연 씨.”곽보미가 다가가 진지하게 말했다.“이 신은 클로즈업 해야 해서 이따가 설연 씨 협조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진짜로... 맞아야 해요. 알겠죠?”“뭐라고요?”성설연의 낯빛이 확 굳어지더니 잠시 후 싸늘하게 웃었다.“허,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곽 감독님의 재주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봐요? 제가 왜 맞아야 하죠?”곽보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방금 클로즈업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실감 나는 효과를 위해서라면 진짜로 때리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주아 씨는 경험 있는 배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예전에도 다른 작품을 촬영할 때 진짜로 때리긴 했지만 아프지 않게 알아서 잘 조절했거든요.”“그 말 지금 저더러 믿으라고요?”성설연은 곽보미를 째려보았다.“감독님,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죠? 따귀 신을 진짜로 때린다면 교통사고 신은 그럼 진짜로 차에 부딪혀야겠네요?”곽보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전에 성설연이 촬영팀에 합류하면 잘 챙겨주겠다고 유찬혁과 약속했었다. 유찬혁은 고맙다면서 그녀에게 밥까지 사주었다. 곽보미는 힘들고 속상한 식사 자리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갔다. 유찬혁과 함께할 수 있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칠 수가 없었다.식사 자리에서 유찬혁은 곽보미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면서 말끝마다 성설연 소리만 했다. 곽보미는 마음이 울컥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억지 미소를 쥐어짜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나에게 맡겨.”곽보미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설연과 대화하려 했다.“촬영은 원래 힘들어요. 주아 씨는 여우주연상까지 탄 배우인데도 필요하다면 차가운 물에 종일 몸을 담그라고 하면 담가요. 그리고 나석진 씨는 액션 신을 찍을 때도 스턴트맨을 쓰지 않아요. 와이어 신을 찍다가 온몸이 퉁퉁 부어도 아프단 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설연 씨는 따귀 신 하나 찍는데 이 정도로 엄살 부릴 필요 있나요? 게다가 이번 신은 주요하게 주아 씨를 찍어요. 주아 씨 연기라면 많아봤자 두 번 정
곽보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문 쪽을 돌아보았다.유찬혁이 문 앞에 서 있었고 촬영팀 사람들도 가득 몰려있었다.곽보미는 유찬혁의 두 눈에 스친 실망감을 보아냈다. 이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성설연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먹이며 유찬혁의 품에 와락 안겼다.갑작스러운 포옹에 유찬혁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성설연의 어깨를 토닥였다.“찬혁아, 내 말 좀 들어봐...”곽보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방금은...”“방금 일은 나도 다 들었고 내 눈으로도 똑똑히 봤어.”유찬혁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했지만 검은 두 눈에는 그녀에 대한 실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곽보미는 찢어질 듯한 마음의 고통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보미야.”유찬혁은 그녀 앞으로 다가가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설연이는 가수 출신 연기자야.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러는 건데 차근차근 가르쳐줄 수도 있잖아. 얘가 잘못한 게 있다면 내가 먼저 대신 사과할게.”“변호사님도 참 웃기시네요.”주아가 날카롭게 말했다.“대신요? 뭐든지 다 대신할 수 있다면 차라리 연기까지 대신하시죠?”유찬혁은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고 곽보미만 어두운 눈빛으로 보았다. 곽보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다시 풀었다. 잠시 후,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신 하나 찍는데 설연 씨가 NG를 스무 번 넘게 냈어.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나머지 신은 어떡해?”“보미 너...”“찬혁아, 됐어.”성설연은 속상한 척하며 그에게 기댔다.“곽 감독님이 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 남들은 연기 경험도 있고 천부적인 재능도 있지만 나만 멍청해. 아마 난 태어날 때부터 이런 애였나 봐. 찬혁아, 감독님에게 뭐라 하지 마. 감독님은 좋은 감독님이야. 지금까지 줄곧 인내심 있게 가르쳐줬어.”“인내심?”유찬혁의 눈빛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고 아수라장이 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이건
“여우주연상이 뭐 어때서요?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흑기사는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니에요!”유찬혁은 그녀의 말투 속의 조롱함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이런 말썽이 많이 생기는 연예계에서 성설연이 살아남으려면 곽보미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말없이 곽보미를 한번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았다.왠지 모르게 유찬혁의 마음은 원인 모를 아픔이 몰려왔다.강서연은 천천히 성설연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성설연 씨, 촬영장 생활에 적응하고 있어요?”강서연이 그녀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유찬혁은 성설연에게 강서연과 대화를 더 많이 하라고 눈치를 줬다.하지만 성설연이 강서연을 바라보는 눈빛은 질투와 두려움이 역력했다.“제가 특별히 하나뿐인 디저트를 준비해 왔어요.”강서연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누군가가 작은 바구니 속 물건들을 꺼내놓았다.정교한 유럽식 본차이나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홍차가 아니라 약간 푸른빛이 도는 색이었다.“성설연 씨, 촬영장에 들어오면 화내지 마세요. 녹차를 마셔서 화를 가라앉히는 게 당신에게 좋을 거예요.”눈치가 있는 사람은 강서연이 성설연을 욕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성설연 씨, 좋은 차로 준비 했어요.”강서연은 또 옆에 작은 접시에서 디저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이건 흰 연꽃의 꽃술로 만든 거예요. 한번 드셔보세요! 왜요? 맘에 안 들어요?”또 일부러 말했다.“성설연 씨 전에 이 차를 다른 손님에게 대접한 적이 있는데 그분마저도 좋다고 했어요! 마시지 않으면 너무 아까워요.”“당신...”성설연은 화가 났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고 강서연과 눈이 마주친 순간 아연실색했다.유찬혁은 곧 강서연의 깊은 뜻을 알게 됐고 그 역시 이 갈등은 성설연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성설연을 지켜줬다.온 세상이 그녀를 비난해도 유찬혁은 그녀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는 온 세상을 등
곽보미는 강서연과 눈을 마주친 후 살짝 웃으며 정신을 다잡았다.“준비하세요.”그녀는 무전기를 들고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액션!”“쌍년아!”주아에게 클로즈업을 하자 여우주연상 받은 배우답게 전혀 사양하지 않고 손을 위로 들어 세게 성설연의 얼굴을 한 대 후려쳤다.성설연은 경악하여 본능적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고 너무 아파서 머리가 어지러웠다.주아는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한복의 단추는 두 개나 뜯어져 있어 캐릭터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다.그녀는 성설연을 가리키고 침을 튀기며 욕을 했다.“이년아, 감히 나한테서 남자를 빼앗아? 네가 뭔데!”이 말에는 다소 진실한 감정이 실려있었다.주아는 1초 만에 몰입했고 자신을 곽보미로 상상하며 성설연을 노려봤다.“지금 아주 좋아요!”조감독이 한쪽에서 지휘했다.“배우님은 감정에 주의하세요. 맞습니다... 더 격하게! 클로즈업해 주세요... 계속 대사 하세요!”“야, 일어나! 반항해 봐! 내 앞에서 약한 척하는 거야? 너의 이런 수법은 남자에게는 통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아! 오늘은 안 봐줄 거야!”주아는 대사를 말하는 요령이 탄탄하고 표정과 감정도 모두 갖춰져 있어 이 신은 순조롭게 끝났다.“좋았어요!”곽보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이 장면이 통과되자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큰 돌덩이가 땅에 떨어졌다. 금세 방금의 불쾌함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리고 다음 장면을 준비했다.다음은 성설연의 신이 없다.성설연은 주아의 따귀를 맞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발이 차갑고 온몸을 떨며 한쪽으로 물러나 강서연과 곽보미를 싸늘하게 응시했다.주아는 속이 후련한지 망토를 두르고는 우쭐거리며 그녀의 앞을 지나쳐 가면서도 그녀에게 경멸 가득한 눈빛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촬영장은 다시 정돈된 질서를 되찾았고 곽보미도 일에 몰두하고 다른 배우들도 모두 호흡을 맞췄다.성설연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유찬혁을 바라보며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듯한 모습이다.유찬혁은 인상을 구겼고 잠
“고마워.”“친구끼리 이 정도쯤이야!”유찬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럼... 지금 화 풀렸어?”“응?”“나도 네가 이성적이고 신중하고 열정적이고 솔직한 사람인 거 알아. 그래서 아까... 분명히 설연이가 잘못해서 네가 그렇게 화내 게 된 거야. 내가 대신 사과할게. 화내지 마.”곽보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막 사라졌던 먹구름이 다시 마음속에 막혔다.알고 보니 유찬혁이 자기에게 이것을 준 것은 결국 성설연 때문이었다.유찬혁의 눈에 곽보미는 매우 철이 들었기 때문에 철이 든 사람은 관대하고 이해심이 많아야 하며 마음이 넓어야 한다. 설령 억울한 일을 당해도 따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사탕은 우는 애들이나 주는 거다!곽보미는 시종일관 성설연 같은 모습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그래서 유찬혁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영원히 성설연보다 못하다.곽보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니 손에 들고 있는 복주머니가 그렇게 화사해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늦은 시간 남자 몇 명이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최연준은 원래 가고 싶지 않았으나 배경원이 이 술값은 그가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마지못해 갔다.배경원은 그를 보자마자 배시시 웃기만 했다.“형, 내가 기억하기로는 강주에 있을 때 형수님이 형한테 돈을 다 썼잖아요! 형은 어떻게 지금... 이렇게 초라해졌어요?”최연준은 그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며 손에 들고 있는 시바스 리갈을 먹고 있었다.“당연히 초라하죠!”육경섭은 게임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경원 씨는 온몸에 10만 원만 가지고 있는 재벌 후계자를 본 적이 있어요?”“경섭 형님도 만만치 않아요!”배경원이 팩폭을 했다.“형님, 마지막으로 담배 피운 게 언제 적이에요?”“에잇!”육경섭은 게임기를 버리고 그를 때리러 갔다.최연준은 싸움을 말리는 척하며 틈을 타 배경원을 몇 대 때렸고 배경원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세 사람은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어울렸지만 유찬혁만이 한쪽에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