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벌써 알아봤어요! 최연준은 아직 결혼 안 했어요.”“그러면... 유 변호사님은?”성설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학창 시절부터 유찬혁이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고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찬혁이 줄곧 자기를 그리워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러나 성설연은 유찬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유씨 가문은 학자 집안에 불과하여 최씨 가문, 배씨 가문과 같은 대가족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공부할 때부터 성설연은 학교의 퀸카여서 그녀의 결혼 상대도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설연아.”낸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정말 최연준을 만나고 싶은 거야? 하지만 나는 유 변호사님도 괜찮다고 생각해. 적어도 너에게는 진심이니까... 그리고 최연준 같은 사람은 변덕스러워서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거야.”“무슨 소리예요!”성설연이 그녀를 노려보았다.낸시는 입술을 깨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성설연이 재능이 있고 야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지금까지 운이 안 따라와서 오랜 세월 동안 잠적해 있을 뿐이다.진짜 최연준과 엮일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낸시는 한숨을 내쉬며 성설연의 어깨에 손을 얹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 길은 걷기가 쉽지 않을 거야.”그녀는 성설연을 바라보았다.“네가 굳이 간다면 나도 너를 지지할 수밖에 없어.”“고마워요, 언니!”성설연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걸어갈 거예요! 그리고 나랑 최연준은 동창이잖아요!”...주말의 임씨 가문은 떠들썩하기 그지없다. 몇 채의 별장은 전부 다시 공사를 했는데 권민지는 별장 사이에 같은 양식의 화단을 가꾸고 조약돌이 깔린 작은 길로 연결해 특별한 설계를 하였다.몇 채의 별장은 유럽의 거리를 모두 옮겨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축하연에 권민지는 임수정을 데리고 참석했다. 임수정은 휠체어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안색이 많이 좋아졌고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소를 담고 있었다. 겉으로는 창백하고 연약하지만 생명력이 더해져 색다른 아
유찬혁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권민지에게 술 한 잔을 청했다.그의 오늘 차림은 권민지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권민지가 기억하는 평소의 유찬혁은 비교적 경직되어 있었다. 아마도 직업상의 관계 때문인지 늘 엄숙했고 블랙 슈트 차림으로 재판 중이거나 재판장에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블랙 슈트를 옅은 카키색으로 바꿔 입었다. 이런 칼라는 사람과 몸매를 가리지만 유찬혁이 입으니 마치 화보에서 걸어 나온 남자 모델 같다.권민지가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유 변호사님께서 오늘 참 잘생겼네요! 젊은 사람은 이렇게 밝게 입어야 활력이 넘쳐 보여요!”유찬혁은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고 눈 밑에는 남모를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는 이 축하연에서 줄곧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그런데 유찬혁은 멀리서 계속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일부러 유찬혁과 같은 색상의 슈트로 골라 입었다.그 사람은 계속 슈트의 단추를 만지작거렸고 눈빛은 유찬혁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며 감정 기복이 심했다....최연준이 도착했을 때는 연회가 막 시작된 참이었다.그는 어른들과 몇몇 중요한 파트너들과 인사를 나누고 또 직접 축하 선물을 전달하고는 한쪽으로 물러나 소파에 앉아 심심하게 손에 든 술잔을 흔들었다.강서연이 최연준과 함께 오지 않아 그는 외로워 죽을 지경이었다.“도련님, 조급해하지 마세요.”방한서가 옆에서 설명했다.“서연 씨께서 일이 끝나면 바로 오겠다고...”“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한데!”최연준은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또 약간 받아들이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엄마도 참, 자기는 일벌레라고 해도 이젠 서연이까지 잘못 가르쳐 주고 있단 말이야!”방한서는 입가가 두 번 씰룩거렸다.‘할 수 있으면 황태후 앞에 가서 직접 말하던가!’“도련님, 화내지 마세요... 김 대표님께서는 단지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칠 뿐이에요. 서연 씨도 책임감이 강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야근하는 것도 회사를 위해서
성설연은 머리가 백지가 되어 멍하니 이 남자 앞에 서 있었고 감히 크게 숨을 쉬지도 못했다.학창 시절부터 최연준이 냉혹하고 무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졸업한 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최씨 가문의 유혹이 너무 커서 성설연은 결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써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동창을 만났는데 이렇게 내쫓는다고요?”최연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참으로 이상한 여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배경원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옛 동창이라는 것도 기억 못하고 있을 것이다.게다가 강서연에게서 한 통의 문자도 오지 않아 그의 마음은 더욱 착잡해서 아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성설연은 깜짝 놀라 최연준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따라갔지만 두 걸음도 가기 전에 맞은편에 또 한 여자가 나타났다.이 여자의 외모는 여배우에 비해 못 미쳤지만 온몸에는 여배우가 따라올 수 없는 귀티가 배어 있어 아마도 어느 가문의 따님일 것이다.최연준은 눈살을 찌푸렸고 각진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리고 다시 한번 이런 연회를 꺼리는 마음이 극치로 도달했다.성설연은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또 그를 도와 여자를 막았다.그 여자가 멀리 가버리자 성설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최연준의 눈빛이 아까처럼 차갑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맙습니다.”남자는 차갑고 딱딱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성설연은 머리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저는 다른 여자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해요.”최연준은 이 말을 남기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연회장의 인파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성설연은 제자리에서 잠시 멈칫했다.최연준이 방금 한 말이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 맴돈다.다른 여자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한다...하지만 연회에서 그녀만이 최연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성설연은 속으로 미칠 듯이 기뻤고 황홀했다.혹시 최연준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다른 여자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하지
강서연이 급하게 일을 마치고 임씨 빌라로 가던 중에야 최연준에게 문자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오래 기다렸어요? 금방 갈게요!」그때 최연준은 휴게실에 앉아 심심해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개인 핸드폰이어서 그 안에는 강서연의 번호만 저장되어 있었다.드디어 그를 생각났나 보지?최연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줄의 문자를 여러 번 되짚어 보았고 눈 밑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웃음기가 나타났다.그는 빨리 답장을 보내지 않고 적어도 15분 후에 보내서 똑같은 외로움을 맛보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하지만 문자를 받은 지 10초 만에 최연준의 손가락은 솔직하게 화면에서 빠르게 타자했다.「괜찮아, 일이 중요하지!」문자를 보내고 최연준은 화면을 응시하며 웃고 있다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이렇게 답장하면 자기가 너무 말이 잘 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그래서 황급히 문자를 취소하고 다시 타자를 하기 시작했다.「서연아, 너무 오래 기다려서 지금 기분이 많이 안 좋아! 와서 어떻게 위로할지 생각해 봐.」보내고 또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다시 취소했다.그렇게 몇 번이고 문자를 취소했고 강서연의 핸드폰도 쉬지 않고 진동했다. 다시 핸드폰을 열어볼 때 화면에 십수 개의 똑같은 문자가 와있었다.「우주 슈퍼 무적 훈남 남편이 한 통의 메시지를 취소했습니다.」‘뭐 하는 거지?’강서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연락처 이름은 애초에 최연준이 바꾼 것인데 바꾼 후에는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강서연은 이름을 최 세 살이라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남자가 자기 앞에서 하는 짓은 세 살짜리 아이와 다름없다.기사는 임씨 별장 앞으로 데려다줬고 강서연이 외투를 벗으니 안에는 세련되고 우아한 발목 길이의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망사 소재가 그녀의 볼륨 몸매를 돋보이게 받쳐주었다.강서연은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최연준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다가가서 포옹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
“성설연 씨.”강서연이 담담하게 웃었다.“저는 오늘 밤 최연준 씨의 파트너 강서연입니다.”성설연은 냉소하며 눈을 굴렸다.‘파트너?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다니!’“죄송합니다. 강서연 씨, 최연준의 파트너는 저예요!”그녀는 거만하게 강서연을 봤다.강서연은 가슴이 무언가에 뜯긴 듯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갔다.‘최연준, 최연준!’방금 취소한 그 십여 개의 문자는 아마도 그녀에게 오늘 밤에 첫사랑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강서연은 심호흡을 했고 관자놀이가 욱신욱신 아팠다.성설연의 자료를 손에 넣었을 때 강서연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만나는 장면을 예행연습한 적이 있었고 심지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과 동작으로 해야 할지까지 생각했다.그런데 정말 만났을 때는 전혀 생각해 둔 대로 행동하지 못했다.강서연은 입을 꼭 다물고 지금은 화내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자기를 상기시켰다. 우선 이 첫사랑부터 해결하고 집에 돌아가서 다시 최 세 살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성설연 씨,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강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최연준 씨가 그쪽을 오늘 밤의 파트너로 선택했나요?”“네, 맞아요!”“맞습니다. 저희가 들었어요!”옆에서 강 건너 불구경만 하던 여자 연예인 몇 명이 이번 기회에 자기 주제도 모르는 이 여자 가수를 놀리려고 작정했다.“강서연 씨는 아직 설연 씨를 모르죠? 얼마 전에 정섭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는데 올해 골든디스크 어워즈 베스트 아티스트 후보예요!”“맞아요, 최연준 씨께서도 태도가 남다르다니깐요!”“강서연 씨께서 눈치가 없네요.”강서연은 놀라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다 그녀가 데리고 있는 연예인이어서 평소에는 모두가 화목한 분위기였다. 절대로 연합해서 강서연을 맞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 조금 전 그녀들의 그 괴상한 말투와 못된 웃음은...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연예계에서 상대를 자만에 빠지게 해 장래를 망치게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겉으로 칭찬하고 속으로 비웃고
“왔는데 왜 전화 안 했어? 내가 데리러 갈 수도 있는데.”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강서연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질투심을 매섭게 끌어냈다.“연준 씨, 나는 당신에게 전화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강서연이 말했다.“당신 여자가 나를 막고 있어요!”최연준의 얼굴빛은 순간 어두워졌고 눈에는 한기가 서렸다.성설연은 어리둥절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 파악이 안 됐다.조금 전에 최연준이 분명히 다른 여자가 가까이 오는 게 싫다고 했는데 지금 소중하게 품에 안겨 있는 여자는 누구지? 성설연은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하며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최연준 씨, 이건...”“설연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도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여자 연예인들이 또 시작했다.“저기...”“설연 씨, 어떻게 강서연 씨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못 들어가게 막는다니요! 설마 다음 단계는 강서연 씨를 대신해서 최씨 사모님이 되려는 거 아니에요?”강서연은 입꼬리를 누르며 차오르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역시 자기가 손수 키운 보람이 있다...이렇게 능숙하게 연기를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전에 비싼 값으로 연기 학원을 지원한 것이 헛되이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최연준은 인상을 찌푸렸고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강서연은 그와 깍지 손을 살며시 하고 부드럽게 최후의 한 방을 날렸다.“괜찮아요. 성설연 씨도 무심이겠죠. 나는 당신들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것도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잖아요.”“무슨 소리 하는 거야?”최연준은 눈을 부릅떴다.“내말은...”강서연이 떠봤다.“성설연 씨는 당신이 열여섯 살 때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니에요?”“아니야!”최연준은 생각도 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답을 주었다.강서연은 의아했다.“그럼 왜 내가 접근 못 하게 막았어요?”“나도 몰라.”최연준이 묵직하게 대답했다.“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16살 때 이미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어. 지금까지 당신 말고는 내 마음속에 다른 여자는 없었어. 앞
배경원과 임수정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임수정이 손짓을 하자 연회장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하객들이 놀란 듯 낮은 소리를 내자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최연준과 강서연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온 세상의 초점이 그들이었고 최연준의 눈에는 강서연뿐이었다.연회장 중앙의 천장에는 거대한 꽃 구슬이 천천히 열리고 장미 꽃잎이 흩날리며 부드러운 불빛과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알록달록한 비눗방울과 함께 모든 것이 꿈처럼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졌다.강서연은 눈앞의 이 광경에 넋이 나가 말을 잇지 못했다.최연준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것은 원래 그가 강서연을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한 것이고 일찍이 임씨 가문과도 잘 소통한 것인데 성설연 때문에 앞당겨질 줄은 몰랐다.최연준은 미소를 지으며 강서연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 무려 10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가 완벽하게 커팅되어 불빛 아래서 광채가 돋보였다. “최씨 집 도련님께서 여기서 청혼하는 건가요?”“이런 귀한 장면을 찍어야지!”“맞아요.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조회수가 장난 아닐 거예요.”손님들은 속삭였고 모두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대의 눈빛이 담겨있었다.그들의 기억 속의 최연준은 넘사벽이어서 마치 인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인 것 같고 욕망과 감정도 없어 보였다.하지만 오늘, 바로 이 순간, 그들은 전혀 다른 최연준을 만났다.“서연아.”강서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우주를 담은 것 같고 마성의 목소리로 그 말을 정중하게 했다.“나랑 결혼해 줘.”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에 분위기는 즉시 들끓기 시작했다.이 사람이 그들이 알던 최연준이 맞나?그 무자비한 사업가? 최연준?지금 그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입술 언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곡선은 매혹적이었다.심지어 강서연에게 무릎 꿇고 프러포즈까지 하다니!“세상에!”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마치 놀라움을 제외하고는 이미 그들이 이 순간 부러워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
이때 육경섭이 사람을 뚫고 나와 손뼉을 치며 축하해줬다.“경섭 씨도 오셨군요.”강서연이 인사했다.“우정 언니는요?”“우정이도 일벌레여서 지금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어요!”육경섭은 고개를 저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연준 씨, 지금 세상이 변했나 봐요. 여자들은 다 유능한데 앞으로 우리 남자들은 정말 여자가 먹여 살려야 하는 건가요?”“그게 어때서요.”최연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교활하게 웃었다.그는 강서연의 손을 들어 올렸고 다이아몬드 반지는 눈부시게 반짝거렸다.“보세요. 나는 계약금을 냈어요.”최연준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우리 집 서연이가 앞으로 나를 먹여 살릴 거예요.”육경섭이 경멸했다.“정말 속물이 다름없네요.”“그럼 진짜로 속물이 무엇인지 보여 줄까요?”최연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눈 밑에는 누구도 꿰뚫어 볼 수 없는 깊고 복잡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그는 다시 그 냉혹하고 기품 있는 남자로 회복했고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욱 싸늘해져서 연회장 전체가 저기압에 휩싸인 것 같았다.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낸시가 성설연을 데리고 떠나려는데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설연 씨, 우리 사이에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아요?”성설연의 몸은 굳었고 어색하게 몸을 돌렸는데 최연준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었다.최연준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누군가가 내 아내를 막아서서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자신이 최씨 집안 미래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어요?”“아니에요!”낸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련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은데. 설연이는...”“나는 당신에게 묻지 않았고 성설연 씨에게 물었어요!”낸시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성설연은 이미 여러 가지 감정에 휩쓸려 질투, 분노, 두려움, 당혹감... 이것들이 그녀를 가득 채워 지금 이성을 찾지 못하고 생각할 능력도 없었다.“경섭 씨.”최연준이 급히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여유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
백인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그때 최지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표아정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최지용은 결국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백인서를 데리고 최씨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넓은 거실에는 최군형과 강소아도 나와 있었고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백인서가 들어서자, 표아정이 백인서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강소아는 백인서와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미소 지었다.백인서가 의아해하던 찰나, 영미가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아줌마, 지용 오빠. 제가 권온유의 행방을 알아냈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뭐라고?”최지용이 놀라서 물었다.“네가 어떻게 아는데?”영미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지용 오빠,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보가 우리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씨 가문은 만능이 아니에요, 최씨 가문도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요.”표아정은 가볍게 기침하며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고 있었다.최지용의 이마에는 점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미의 눈에는 한 줄기 교만한 빛이 번졌다.영미는 오는 길에 이미 모든 계획을 짰다. 정대명의 말이 맞았다. 누구를 훔치든 상관없었다. 인신매매범의 딸인 백인서가 아이들을 해치러 다닌다는 누명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면 백인서는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될 터였다.영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강소아가 인신매매범을 곁에 둘 리 없다고 믿었고, 최지용 역시 이 사실을 알면 더는 백인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영미는 정대명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영미는 권온유를 넘기고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한패가 되어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주장할 계획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인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몰릴 것이었다!“지용 오빠.”영미는 고개를 돌려 최지용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권온유는 정승
“그... 괜찮아!”정승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권온유에게 말했다. 정승우는 이곳에서 권온유를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이때, 공장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곧바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정승우는 재빨리 권온유에게 눈짓했고 권온유도 알아채고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척했다.정승우는 벽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았다.“이 아이인가요?”영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맞아.”정대명은 영미를 흘깃 노려보며 묵묵히 대답했다.영미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희미한 빛 속에 있는 아이를 살펴보더니,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이 아이... 혹시 권씨 집안의 막내딸 아니에요?”정대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아이를 훔쳐 올 때 이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리가 없었다.“정대명 씨.”영미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보았다.“제가 최씨 가문 집안 아이를 훔쳐 오라고 했지, 권씨 집안 아이를 훔치라고 했나요? 이러고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고요?”“그게...”정대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영미 아가씨, 어차피 목적은 백인서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잖아? 그러니 누구를 훔쳐 오든 상관없지 않아? 아이를 훔치기만 하면 유괴범이 되는 거니까.”이 말은 영미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었다. 정승우의 귀에도 또렷이 들어왔다.“좋아요.”영미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는 잘 지키고 있어요, 제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한편, 권씨 집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권욱은 조순영을 탓하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고, 조순영은 오열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조순영은 권욱이 바깥에서 여자와 부적절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했다.“헛소리하지 마!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소문을 퍼뜨렸는지 잘 알잖아. 결혼 생활 내내 너한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정말 떳떳하게 행동했다면 왜 사람들이 당신만 가만두지 않는 건데?”며칠 전까지만